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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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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8권 중
新 王莽 始建國 4년(A.D.12)~漢帝 劉玄 更始 원년(A.D.23)
壬申年(A.D.12)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8권 중
신 왕망新 王莽 시건국始建國 4년(A.D.12)~한제 유현漢帝 劉玄 경시更始 원년(A.D.23)
임신년壬申年(A.D.12)
殺匈奴順單于登하다
】 봄에 왕망王莽흉노匈奴순선우 등順單于 登을 죽였다.
定東西都及諸侯員數하다
동도東都서도西都로 개칭한 것과 제후諸侯의 인원수를 정하였다.
下書하여 以洛陽爲東都하고 常安爲西都注+莽改長安曰常安.하고 諸侯員 千八百이요 附城數亦如之하여 以俟有功注+八州, 州二百一十國, 幷畿內, 凡千七百七十三國, 言千八百國, 擧成數也.하니
왕망王莽이 글을 내려 낙양洛陽동도東都라 하고 상안常安(장안長安)을 서도西都라 하고注+왕망王莽장안長安을 고쳐 상안常安이라 하였다., 제후諸侯의 인원을 1,800명으로 정하고 부성附城(부용附庸)의 인원수 또한 이와 같이 하여 이 있는 자를 기다렸다.注+8개의 마다 210개국이고 기내畿內를 합하여 모두 1,773개국이니, 1,800개국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숫자[성수成數]를 든 것이다.
諸公 一同 有衆萬戶 其餘 以是爲差注+地方百里曰同. 差, 次也. 以圖簿未定이라하여 未受國邑하고
들은 전지田地 1에 백성 1만 를 소유하고, 그 나머지는 이로써 차등을 삼았으나注+땅의 넓이가 100인 것을 이라 한다. 는 차등이다. 지도地圖호적戶籍 등 문서가 아직 정해지지 못했다 하여 나라와 식읍食邑을 받지 못하고,
且令受奉都內호되 月錢數千注+奉, 讀曰俸.하니 諸侯皆困乏하여 至有傭作者러라
우선 도내都內에서 녹봉을 받게 하되 매월 수천 을 받게 하니注+(녹봉)은 으로 읽는다., 제후들이 모두 곤궁하여 심지어는 품팔이를 하는 자도 있었다.
令民得賣田하다
】 백성들로 하여금 전지田地를 매매할 수 있게 하였다.
性躁擾하여 不能無爲하니 每有所興造 動欲慕古하여 不度時宜하고
왕망王莽은 성품이 조급하고 소란스러워서 가만히 있지 못하였는데, 매번 일을 일으키거나 만들 때마다 번번이 옛 제도를 흠모하여 시의時宜를 헤아리지 않고 그대로 따르려 하였고,
制度又不定이라 吏緣爲姦하니 天下謷謷하여 陷刑者衆注+謷, 音敖. 謷謷, 衆口愁聲.이러라
제도가 또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들이 이를 이용하여 간악한 짓을 저지르니, 천하의 백성들이 근심하고 원망하여 형벌에 빠지는 자가 많았다.注+는 음이 이니, “오오謷謷”는 여러 사람이 근심하는 소리이다.
知民愁怨하고 乃令民食王田者 皆得賣之이나 他政誖亂 刑罰深刻 賦斂重數 猶如故焉注+誖, 惑也. 數, 音朔.이러라
왕망은 백성들이 근심하고 원망한다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왕전王田을 경작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전지田地를 매매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기타 미혹되고 혼란한 정사와 가혹한 형벌, 무겁고 번다한 세금과 부역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다.注+는 혼란함이다. (자주)은 음이 이다.
五威將帥 出西南夷 改句町王爲侯하니 王邯 怨怒注+邯, 句町王之名也.
】 처음에 오위장수五威將帥서남이西南夷로 나갈 적에 구정왕句町王로 강등시키니, 구정왕 함句町王 邯이 원망하고 노여워하였다.注+구정왕句町王의 이름이다.
諷牂柯大尹周歆하여 詐殺邯注+莽改郡太守曰大尹.한대 邯弟承 起兵殺歆하니 州郡擊之호되 不能服이라
왕망王莽장가대윤 주흠牂柯大尹 周歆에게 넌지시 지시하여 속임수로 을 죽이게 하였는데注+왕망王莽태수太守를 바꾸어 대윤大尹이라 하였다., 의 아우 이 군대를 일으켜 주흠을 죽이자, 주군州郡에서 을 공격하였으나 복종시키지 못하였다.
又發高句驪兵하여 擊匈奴호되 不欲行이어늘 彊迫之하니 亡出塞하여 犯法爲寇注+句, 古侯切. 驪, 與麗通, 力之切. 高句驪, 國名, 居遼東之東. 扶餘王金蛙, 得女子於太白山南, 問之, 曰 “我是河伯之女, 名柳花.” 金蛙異之, 幽閉於室中, 爲日所炤, 因而有孕, 生一大卵. 其母以物裹之, 置之暖處, 有一男子破殼而出, 甫七歲, 自作弓矢, 百發百中. 其俗呼善射者, 爲朱蒙, 故以名云. 王子及諸臣, 謀欲殺之, 逃至卒本川, 遂都焉, 國號高句驪, 因以高爲氏, 是漢元帝建昭二年也.러라
왕망은 또다시 고구려高句驪()의 군대를 징발하여 흉노匈奴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고구려가 군대를 출동시키려 하지 않았다. 이에 강제로 압박하니, 고구려는 도망하여 변경을 나가서 법을 범하고 도둑질을 하였다.注+고후古侯이고, 와 통하니 력지力之이다. 고구려高句驪는 나라의 이름이니, 요동遼東의 동쪽에 있었다. 부여왕 금와扶餘王 金蛙태백산太白山 남쪽에서 한 여자를 얻어 물으니,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이 유화柳花이다.” 하였다. 금와가 괴이하게 여겨 방 안에 그녀를 유폐幽閉하였는데, 햇빛이 비쳐들자 인하여 임신을 하여 하나의 큰 알을 낳았다. 그 어미가 알을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는데, 한 사내아이가 알의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다. 이 아이는 겨우 일곱 살에 활과 화살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백발백중하였다. 이 지역의 풍속은 활을 잘 쏘는 자를 주몽朱蒙이라 불렀으므로 그 아이를 주몽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왕자와 신하들이 모의하여 죽이려고 하자, 도망하여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러서 마침내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인하여 성씨姓氏로 삼으니, 바로 나라 원제 건소元帝 建昭 2년(B.C.37)이다.
嚴尤奏호되 宜令州郡으로 且慰安之니이다 今匈奴未克이어늘 夫餘, 濊貉 復起하니 此大憂也注+貉, 與貊同.니이다
엄우嚴尤가 아뢰기를 “마땅히 주군州郡들로 하여금 우선 오랑캐들을 위무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흉노匈奴를 이기지 못하였는데 부여夫餘예맥濊貉이 다시 일어나니, 이는 큰 걱정입니다.”注+과 같다. 하였으나,
不聽하고 詔尤擊之하다 尤誘高句驪侯騶하여 至而斬焉하니 於是 貉人 愈犯邊하여 東北西南 皆亂注+東, 濊貊. 北, 匈奴也.호되
왕망王莽은 듣지 않고 엄우에게 조령詔令을 내려 이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엄우가 고구려高句驪를 유인해 오게 하여 참수하니, 이에 예맥 사람들이 더욱 변방을 침범하여 동쪽과 북쪽, 서쪽과 남쪽 변방이 모두 혼란하였다.注+동쪽은 예맥濊貊이고 북쪽은 흉노匈奴이다.
志方盛하여 以爲四夷 不足呑滅이라하고 專念稽古之事하니라
그러나 왕망은 의욕이 매우 왕성하여, 사방의 오랑캐들을 굳이 병탄하고 멸망시킬 것이 못 된다고 여기고, 오로지 옛것을 상고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역주
역주1 新나라……4년이다 : A.D.12년에서 A.D.24년까지는 無統이다. 朱熹의 凡例에 國號, 諡號, 姓名, 年號, 年度의 경우 正統은 大字로 쓰고 無統은 小字로 쓴다고 하였는데, 이를 따라 小字로 처리하였다. A.D.25년 光武帝가 등극한 이후로는 다시 大字로 처리하였다.
역주2 王莽의……것이다 : 新나라 始建國 3년(A.D.11)에 王莽이 呼韓邪單于의 아들들을 불러 單于로 봉하였다. 당시 右犁汗王 咸과 아들 登, 助가 왔는데, 咸을 孝單于, 助를 順單于로 봉하였다. 이후 咸이 도망가고 助가 병으로 죽자 登을 순선우로 봉하였다.
역주3 西南夷가……쳐들어왔다 : 본서 387쪽 지도1 ‘前漢末 동북아의 정황’ 참조.
역주4 殺牂柯大尹 : “大尹을 죽인 것은 叛逆인데 ‘叛’이라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王莽이 배반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益州에서 大尹을 죽였으나 다만 ‘擊’이라고 쓴 것이다.[殺大尹 叛也 不書叛 何 莽叛者也 故益州殺大尹 止書擊]” ≪書法≫ 書法은 ‘筆法’이란 말과 같다. 朱子는 ≪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적에 孔子의 ≪春秋≫ 筆法을 따라 綱과 目으로 나누었는바, 綱은 ≪春秋≫의 經文을, 目은 ≪春秋左氏傳≫ 傳文을 따랐다. ≪資治通鑑綱目≫의 筆法을 밝힌 것으로는 劉友益(宋)의 ≪綱目書法≫, 尹起莘(宋)의 ≪綱目發明≫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책은 현재 淸나라 聖祖(康熙帝)가 엮은 ≪御批資治通鑑綱目≫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 필법은 綱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우리나라 학자들이 특별히 이 ≪자치통감강목≫을 愛讀한 이유는 바로 이 필법에 있었다. ≪어비자치통감강목≫에는 이외에도 汪克寬(元)의 ≪綱目凡例考異≫ 등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 본서에서 다 소개하지 못하고 ≪강목서법≫과 ≪강목발명≫만을 소개하되, ≪강목서법≫과 ≪강목발명≫은 중요한 것만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또한 陳濟(明)의 ≪資治通鑑綱目集覽正誤≫를 인용하여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각각 ≪書法≫, ≪發明≫, ≪正誤≫로 요약하여 표기하였다.
역주5 : 反切音을 표시한 것이다. ‘反(번)’은 뒤집는다(되치다)는 뜻으로 번역을 의미하고, ‘切’은 자른다는 의미이다. 앞 글자의 初聲을 따고 뒷글자의 中聲과 終聲을 따서 읽는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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