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현모는
옹주성雍州城 안팎의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 안정시키고 여러 사람들의 의혹을 해소시켰다. 그리고 사신을 급히 보내
상上(
효무제孝武帝)에게 아뢰어 자초지종을 자세히 진술하게 하였다.
송주宋主는
주서主書注+③ 主書는 後漢의 尙書令史의 직책이다. 漢나라 尙書曹에는 主書令史 21인이 있었고, 江左(東晉) 이래로 中書省에 主書가 있었다. 오희吳喜를 보내어 왕현모를 위로하고 또 회답하기를 “70살
노공老公이 반란하여 무엇을 구하려 하겠는가. 임금과 신하 사이에 서로 보증할 수 있으니, 우선 다시 한번 웃고서
경卿의 눈살을 펴시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