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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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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戌年(B.C. 47)
갑술년(B.C. 47)
二年이라
[綱] 나라 효원황제孝元皇帝 초원初元 2년이다.
春正月 帝如甘泉하여 郊泰畤하다
봄 정월에 황제가 감천甘泉에 가서 태치泰畤에서 교제郊祭를 지냈다.
[綱] 소망지蕭望之주감周堪종정宗正 유경생劉更生하옥下獄하고 모두 면직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史高以外屬으로 領尙書事하고 蕭望之, 周堪 爲之副
[目] 사고史高는 외척으로 상서尙書의 일을 겸하였고, 소망지蕭望之주감周堪가 되었다.
望之, 堪 皆以師傅舊恩으로 天子任之하니數言治亂하여 陳王事注+陳王者之事也.하고 選白宗室明經有行 諫大夫更生하여 給事中하여 與侍中金敞으로 竝拾遺左右注+更生, 宗正德之子, 敞, 安上之子也.하다
소망지와 주감은 모두 사부師傅의 옛 은혜로 천자가 신임하니, 이들은 나라가 다스려지고 혼란한 이유를 말하면서 자주 왕자王者의 일을 아뢰고,注+〈“진왕사陳王事”는〉 왕자王者의 일을 아뢴 것이다.종실宗室 중에 경학經學에 밝고 훌륭한 행실이 있는 간대부諫大夫 유경생劉更生을 선발하여 아뢰어서 급사중給事中으로 삼아, 시중侍中 김창金敞과 함께 좌우左右에서 습유拾遺(보좌)하게 하였다.注+유경생劉更生종정宗正 유덕劉德의 아들이고, 김창金敞김안상金安上의 아들이다.
四人 同心謀議하여 勸導上以古制하여 多所欲匡正이어늘 甚鄕納之注+鄕, 讀曰嚮. 意信嚮之而納用其言.하니 史高 充位而已
네 사람이 한 마음으로 모의謀議하여 을 옛 제도로써 권면하고 인도해서 바로잡고자 한 것이 많았는데, 이 매우 중히 여겨 이들의 말을 받아들이니,注+(향하다)은 으로 읽으니, 〈“심향납지甚鄕納之”는〉 마음이 믿고 중히 여겨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고는 자리만 채울 뿐이었다.
由此 與望之有隙이러라
이로 말미암아 사고는 소망지 등과 틈이 있게 되었다.
中書令弘恭 僕射石顯 自宣帝時 久典樞機注+弘, 姓也.러니 帝卽位多疾이라
[目] 중서령中書令 홍공弘恭복야僕射 석현石顯선제宣帝 때로부터 오랫동안 〈국가의〉 추기樞機를 맡았는데,注+이다. 황제가 즉위하자 병이 많았다.
以顯中人無外黨이라하여 遂委以政事하여 無大小 因顯白決하니 貴幸傾朝하여 百僚皆敬事顯注+中人, 宦官也. 無外黨, 謂少骨肉之親, 無婚姻之家也. 白, 奏也. 決, 斷也.하니라
황제는 석현이 중인中人(환관)으로서 외척外戚이 없다 하여, 마침내 정사를 그에게 맡겨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석현을 통하여 아뢰고 결단하게 하니, 귀함과 총애가 조정을 휩쓸어서 백관百官들이 모두 석현을 공경히 섬겼다.注+중인中人환관宦官이다. “무외당無外黨”은 골육骨肉의 친척이 적고 혼인한 집이 없음을 말한다. 은 아룀이고, 은 결단한다는 뜻이다.
爲人 巧慧習事하니 能深得人主微指注+深得, 石顯傳, 作探得.하여
석현은 사람됨이 재치 있고 지혜로우며 일에 숙달하니, 군주의 은미한 뜻을 잘 정탐하여 알았다.注+심득深得”은 《한서漢書》 〈석현전石顯傳〉에 “탐득探得”으로 되어 있다.
內深賊하고 持詭辯하여 以中傷人하여 忤恨睚眦 輒被以危法注+詭, 違也, 詭辯, 違道之辯也. 危法, 謂以法危殺之.이러라
그리하여 속으로 은밀하게 남을 해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로 사람들을 중상모략해서,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번번이 법으로 위태롭게 몰아 죽였다.注+는 어긴다는 뜻이니, “궤변詭辯”은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말이다. “위법危法”은 으로써 위태롭게 몰아 죽이는 것을 이른다.
與高 爲表裏하여 論議 常持故事하고 不從望之等이라
석현은 사고史高와 한통속이 되어, 의논할 적에 항상 고사故事를 주장하고 소망지蕭望之 등을 따르지 않았다.
望之等 患苦許, 史放縱하고 又疾恭, 顯擅權하여 建白以爲 中書 政本이라
소망지 등은 허씨許氏사씨史氏가 방종함을 걱정하였고, 또 홍공과 석현이 권력을 전횡하는 것을 미워해서, 건의하여 아뢰기를 “중서는 정사의 근본입니다.
國家樞機 宜以通明公正處之어늘 武帝游宴後庭故 用宦者하시니 非古制也
국가의 중요한 기구機構이니, 마땅히 일에 통달하고 지혜가 밝으며 공정한 자를 이 자리에 있게 해야 하는데, 무제武帝후정後庭에서 놀고 잔치하였으므로 환관宦官을 등용하였으니, 이는 옛 제도가 아닙니다.
宜罷中書宦官하여 應古不近刑人之義注+禮 “刑人不在君側.” 故曰應古.라호되
마땅히 중서의 환관을 파하여 옛날에 ‘형벌 받은 사람(환관)을 가까이하지 않은 뜻’에 응하여야 합니다.”注+예기禮記》 〈곡례曲禮〉에 “형벌 받은 사람은 군주君主의 곁에 있지 않게 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응고應古(옛 제도에 응한다.)”라고 한 것이다. 하였다.
初卽位하여 謙讓하고 重改作하여 議久不定이러니 出更生爲宗正注+重, 難也. 未欲更置士人於中書也. 給事中中朝官也. 宗正外朝官也, 故云出.하다
그러나 은 처음 즉위하여 겸양하고 일을 고치는 것을 어렵게 여겨서 의논이 오랫동안 결정되지 못했는데, 유경생劉更生을 내보내어 종정宗正으로 삼았다.注+은 어렵게 여김이니, 다시는 선비들을 중서中書에 두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급사중給事中중조中朝(내조內朝)의 관원이고, 종정宗正외조外朝의 관원이다. 그러므로 이라고 말한 것이다.
望之, 堪 數薦名儒하여 以備諫官하니 鄭朋 陰欲附望之하여 上疏言高爲奸利及許, 史子弟罪過하여 章視周堪한대
[目] 소망지蕭望之주감周堪이 유명한 학자들을 여러 번 천거하여 간관諫官에 오르게 하니, 정붕鄭朋은 은밀히 소망지에게 붙고자 하여 글을 올려 사고史高가 부정하게 이익을 추구한 일과 허씨許氏사씨史氏 자제들의 잘못을 말하고, 이 글을 주감에게 보였다.
하여 令朋으로 待詔金馬門注+視, 讀曰示, 以朋所奏之章, 示堪也. 漢雜事云 “凡群臣書通於天子者四, 一曰章, 二曰奏.” 하다
주감은 임금에게 아뢰어서 정붕으로 하여금 금마문金馬門에서 대조待詔하게 하였다.注+로 읽으니, 정붕鄭朋이 아뢴 글을 주감周堪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잡사漢雜事》에 “무릇 신하들이 천자天子에게 글을 올려 의견을 통하는 것이 네 가지이니, 첫째는 이고 둘째는 이다.” 하였다.
望之始見朋하고 接待以意러니 後知其傾邪하고 絶不與通注+接待以意者, 推誠待之, 接以殷勤也. 하니 怨恨하고 更求入許, 史하여推所言事曰 皆堪, 更生敎我注+推, 吐雷切.라하다
소망지는 처음 정붕을 보고는 간곡한 마음으로 접대하였는데, 뒤에 그가 사람을 모함하여 간사하다는 것을 알고는 끊고 왕래하지 않으니,注+접대이의接待以意”는 정성으로 대하고 간곡함으로써 접대한 것이다. 정붕은 원한을 품고 다시 허씨와 사씨에게 찾아가서 자기가 말했던 일을 떠넘기며 말하기를 “모두 주감周堪유경생劉更生이 나를 사주한 것이다.”注+(떠넘기다)는 토뢰吐雷이다. 하였다.
待詔華龍 行汚穢注+華, 胡化切, 姓也. 行, 去聲.
대조待詔 화룡華龍은 행실이 추악하였다.注+호화胡化이니 이다. (행실)은 거성去聲이다.
欲入堪等호되 堪等 不納하니 亦與朋相結이러니
주감 등의 무리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주감 등이 받아들여주지 않자, 정붕과 서로 결탁하였다.
恭, 顯 令二人告望之等 欲疏退許, 史狀하니 候望之出休日하여 上之하다
홍공弘恭석현石顯은 이들 정붕과 화룡 두 사람으로 하여금 소망지 등이 상소하여 허씨, 사씨를 물러나게 하려고 한 내용을 고발하게 하니, 소망지가 휴가 가는 날을 기다려 이 일을 아뢰었다.
事下弘恭問狀한대 望之對曰 外戚在位하여 多奢淫하니 欲以匡正國家 非爲邪也니라
[目] 이 일을 홍공弘恭에게 회부하여 내용을 묻자, 소망지蕭望之가 대답하기를 “외척外戚이 높은 지위에 있어 사치하고 음탕한 행위가 많으니, 나는 국가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요 간사한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恭, 顯호되 望之, 堪, 更生 朋黨相稱擧하여 數讒訴大臣하고 毁離親戚하여 欲以專擅權勢하니 爲臣不忠하고 誣上不道
홍공弘恭석현石顯은 아뢰기를 “소망지蕭望之주감周堪유경생劉更生붕당朋黨을 만들어 서로 칭찬하고 천거해서 자주 대신大臣을 중상하고 황제의 친척들을 훼방하여 이간질해서 권세를 독점하고자 하니, 신하가 되어 충성스럽지 못하고 윗사람을 속여 부도不道합니다.
請謁者召致廷尉하노이다
알자謁者정위廷尉에게 불러오게 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上初卽位하여 不省召致廷尉爲下獄也하고 可其奏注+省, 悉井切.하다
이때 은 처음 즉위하여 정위에게 불러오는 것이 하옥下獄인 줄을 알지 못하고 아뢴 대로 하라고 허락하였다.注+(살펴보다)은 실정悉井이다.
召堪, 更生한대 曰 繫獄이니이다
뒤에 이 주감과 유경생을 부르자, 대답하기를 “에 갇혀 있습니다.” 하였다.
大驚曰 非但廷尉問邪아하고 以責恭, 顯하니 皆叩頭謝어늘
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정위가 묻기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홍공과 석현에게 책망하니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였다.
上曰 令出視事하라 恭, 顯 使高言호되 新卽位하여 未以德化聞於天下하고 而先驗師傅하시니 卽下獄이면 宜因決免注+決, 謂免其罪, 免, 謂罷其官.이라한대
은 “이들로 하여금 나와서 일을 보게 하라.” 하니, 홍공과 석현은 사고史高를 시켜 말하기를 “이 처음 즉위하여 덕화德化로써 천하에 알려지지 못하고, 먼저 사부를 너그럽게 용서하려 하시니, 만일 하옥시켰으면 마땅히 죄를 면하고 대신 관직을 파면해야 합니다.”注+은 그 죄를 면해주는 것을, 은 관직을 파면하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於是 赦望之罪하고 收印綬하고 及堪, 更生 皆免爲庶人하다
이에 소망지의 죄를 사면하고 인수印綬를 거두었으며, 주감과 유경생은 모두 파면하여 서인庶人이 되게 하였다.
隴西 地震하다
[綱] 농서隴西에 지진이 있었다.
敗城郭屋室하고 壓殺人하다
[目] 성곽과 가옥이 무너지고, 사람이 압사하였다.
罷黃門狗馬하고 以禁囿假貧民하고 擧直言極諫之士注+黃門, 近署也, 故親幸之物, 屬焉. 하다
[綱] 황문黃門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인 개와 말을 파하고 금원禁苑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빌려주었으며, 직언直言하고 극간極諫하는 선비를 천거하게 하였다.注+황문黃門은 황제와 가까운 부서이다. 그러므로 친히 쓰는 물건이 여기에 소속된 것이다.
◑ 夏四月 立子驁하여 爲皇太子하다
[綱] 여름 4월에 아들 유오劉驁를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待詔鄭朋 薦太原太守張敞호되 先帝名臣이니 宜傅輔皇太子라한대
[目] 대조待詔 정붕鄭朋태원태수太原太守 장창張敞을 천거하기를 “선제先帝의 유명한 신하이니, 마땅히 황태자皇太子를 가르쳐 보필해야 합니다.” 하였다.
上以問蕭望之하니 望之 以爲敞 能吏
소망지蕭望之에게 물으니, 소망지가 말하기를 “장창은 유능한 관리입니다.
任治煩亂이나 材輕하니 非師傅之器니이다
번거롭고 어려운 임무를 맡아 다스릴 수 있으나, 재질이 경박하니 사부師傅의 그릇이 아닙니다.” 하였다.
欲以爲左馮翊이러니 病卒注+任, 音壬. 張敞傳 “敞無威儀, 罷朝會, 過走馬章臺街, 使御驅, 自以便面拊馬, 又爲婦畫眉.” 所謂材輕也. 便面, 所以障面扇之類也.하다
은 그를 좌풍익左馮翊으로 삼고자 하였는데, 마침 장창이 병으로 죽었다.注+(맡다)은 음이 이다. 《한서漢書》 〈장창전張敞傳〉에 “장창張敞위의威儀가 없어서 조회를 파하고 말을 달려 장대章臺 거리를 지날 적에 모시는 아전들로 하여금 수레를 몰게 하고 자신은 편면선便面扇으로 말을 가볍게 두들겼으며, 또 부인에게 눈썹을 그려주었다.” 하였으니, 이른바 재질이 경박하다는 것이다. 편면便面은 얼굴을 가리는 부채 따위이다.
[綱] 소망지蕭望之에게 관내후關內侯의 관작과 급사중給事中을 하사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조회하게 하였다.
◑ 關東饑하다
[綱] 관동關東 지방에 기근이 들었다.
◑ 秋七月 하다
[綱] 가을 7월에 다시 지진이 있었다.
◑ 以周堪, 劉更生으로 爲中郞이러니 尋繫獄免하다
[綱] 주감周堪유경생劉更生중랑中郞으로 삼았는데, 얼마 후에 감옥에 갇혀 면직되었다.
冬十二月
겨울 12월에 소망지蕭望之가 자살하였다.
以宦者石顯으로 爲中書令하다
환관宦官석현石顯중서령中書令으로 삼았다.
復徵周堪, 劉更生하여 欲以爲諫大夫한대 恭, 顯하여 以爲中郞注+諫大夫, 秩比八百石, 中郞, 秩比六百石.하다
[目] 이 다시 주감周堪유경생劉更生을 불러 간대부諫大夫를 삼고자 하였으나, 홍공弘恭석현石顯이 아뢰어 중랑中郞으로 삼았다.注+간대부諫大夫팔백석八百石과 같고, 중랑中郞육백석六百石과 같다.
器重蕭望之不已하여 欲倚以爲相하니 恭, 顯, 許, 史皆側目이라
소망지蕭望之를 훌륭한 인물로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기를 마지 않아서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고자 하니, 홍공과 석현, 허씨許氏사씨史氏가 모두 눈을 흘겨보았다.
更生 乃使其外親上變事하여 言地震殆爲恭等注+外親, 謂母黨也. 殆, 近也. 爲, 去聲.이니 宜退恭, 顯하여 以章蔽善之罰하고 進望之等하여 以通賢者之路라한대
유경생은 마침내 자신의 외친外親으로 하여금 고변告變하는 일을 올려서 “지진은 아마도 홍공 등 때문인 듯하니,注+외친外親모당母黨(외갓집)을 이른다. 는 가까움이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마땅히 홍공과 석현 등을 물리쳐 선인善人을 엄폐한 벌을 밝히고, 소망지 등을 올려 써서 현자賢者를 중용하는 길을 터놓아야 한다.”고 말하게 하였다.
恭, 顯 疑其更生所爲하고 白請考奸詐하여 辭服이어늘 遂逮繫獄이라가 免爲庶人하다
홍공과 석현은 유경생이 사주한 것으로 의심하고 황제에게 아뢰어 유경생의 간사한 행위를 고찰할 것을 청하여 자복을 받아내자, 마침내 유경생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뒀다가 면직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望之子伋 亦上書하여 訟望之前事어늘 事下有司한대 復奏호되 望之敎子上書하니 失大臣體 不敬이라하여 請逮捕하다
[目] 마침 소망지蕭望之의 아들 소급蕭伋이 또한 글을 올려서 소망지의 예전 일을 하소연하였는데, 이 사건을 유사有司(옥리獄吏)에게 내리자, 〈홍공弘恭석현石顯은〉 다시 아뢰기를 “소망지가 아들로 하여금 글을 올리게 하였으니, 대신大臣의 체통을 잃어 불경不敬합니다.” 하여 체포할 것을 청하였다.
恭, 顯等 知望之素高節하여 不詘辱하고 建白호되
홍공과 석현 등은 소망지가 평소 절개가 높아서 굴욕을 받지 않을 것을 알고는, 건의하기를
望之前幸不坐하고 復賜爵邑이나 不悔過服罪하고 深懷怨望하여 自以託師傅하여 終必不坐注+言恃舊恩, 自謂終不坐罪.라하니
“소망지가 예전에 다행히 죄에 걸리지 않고 다시 작읍爵邑을 하사받았으나, 잘못을 뉘우쳐 죄를 인정하지 않고 깊이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서 스스로 사부師傅의 지위를 믿고 끝내 반드시 죄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니,注+〈“자이탁사부自以託師傅 종필부좌終必不坐”는〉 사부師傅의 옛 은혜를 믿고서 스스로 끝내 죄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非頗屈望之於牢獄하여 塞其怏怏心이면 則聖朝無以施恩厚니이다
소망지를 감옥에 가두어 그의 앙앙불악怏怏不樂하는 마음을 크게 막지 않으면 성조聖朝의 두터운 은혜를 베풀 길이 없습니다.” 하였다.
上曰 太傅素剛하니 安肯就吏리오
은 말하기를 “태부太傅가 평소 강직하니, 어찌 옥리獄吏에게 나오려 하겠는가.” 하였다.
顯等曰 人命至重하고 望之所坐 語言薄罪 必無所憂리이다 乃可其奏하다
석현 등이 말하기를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하고, 소망지가 걸린 죄는 언어의 작은 것이니, 반드시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은 마침내 아뢴 대로 하라고 허락하였다.
顯等 令謁者 召望之하고 因急發執金吾車騎하여 馳圍其第注+恐脅之, 速其自盡也.하니
[目] 석현石顯 등은 알자謁者로 하여금 소망지蕭望之를 부르고 인하여 급히 집금오執金吾의 수레와 기병을 징발하여 달려가 그 집을 포위하게 하였다.注+〈“급발집금오거기急發執金吾車騎 치위기제馳圍其第(급히 집금오執金吾의 수레와 기병을 징발하여 달려가 그 집을 포위하게 하였다.)”는〉 공갈하고 협박해서 자진自盡(자살)하기를 재촉한 것이다.
望之以問門下生朱雲한대 好節士 勸望之自裁어늘
소망지가 이에 대한 계책을 문하생門下生주운朱雲에게 물으니, 주운은 절개를 좋아하는 선비였으므로 소망지에게 자결할 것을 권하였다.
望之仰天歎曰 吾嘗備位將相하고 年踰六十矣
소망지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기를 “내 일찍이 장상將相의 지위에 올랐고 나이가 60이 넘었다.
老入牢獄하여 苟求生活 不亦鄙乎아하고 飮鴆自殺하다
늙어서 감옥에 들어가 구차히 살기를 바라는 것은 또한 비루하지 않은가.” 하고는, 짐독鴆毒(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天子聞之하고하여 拊手曰注+拊, 拍也. 曩固疑其不就牢獄이러니
천자天子는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손을 치며 말하기를注+는 친다는 뜻이다. “지난번에 내 진실로 그가 감옥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었는데.
果然殺吾賢傅라하고 卻食涕泣하여 哀動左右注+時, 太官方上晝食.
과연 나의 어진 사부를 죽였다.” 하고는, 음식을 물리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여 좌우左右의 신하를 감동시켰다.注+이때 태관太官에서 에게 점심을 올리고 있었다.
召顯等하여 責問以議不詳하니 皆免冠謝하여 良久然後已注+詳, 審也.하다
이 석현 등을 불러 자세히 의논하지 않은 점을 문책하니, 모두 관을 벗고 사죄하여 한동안 지난 뒤에야 그만두었다.注+은 자세히 살핀다는 뜻이다.
追念望之不忘하여 每歲時 遣使者하여 祠祭其冢하여 終帝之世하다
은 소망지를 추념하고 잊지 아니하여 매번 세시歲時사자使者를 보내어 그의 무덤에 제사하기를 세상을 마칠 때까지 계속하였다.
是歲하니 遂以顯爲中書令하다
이해에 홍공弘恭이 죽으니, 석현을 중서령中書令으로 삼았다.
司馬公曰
[目] 사마공司馬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甚矣
“심하다.
孝元之易欺而難寤也
효원황제孝元皇帝가 속이기 쉽고 일깨우기 어려움이여.
夫恭, 顯之邪說詭計 誠有所不能辨也
홍공弘恭석현石顯의 간사한 말과 속이는 계책은 진실로 분별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至於望之自殺하여는 則恭, 顯之欺亦明矣
그러나 소망지蕭望之가 자살함에 이르러서는 홍공과 석현의 속임수가 또한 분명하였다.
在中智之君이면 孰不感動奮發以底邪臣之罰注+底, 音旨, 致也.이리오
라면 누가 감동하고 분발하여 간신姦臣을 벌하지 않겠는가.注+는 음이 이니, 이룬다는 뜻이다.
孝元則不然하여 雖涕泣不食하여 以傷望之로되 而終不能誅恭, 顯하고 纔得其免冠謝而已 如此 則姦臣安所懲乎리오
효원황제는 그렇지 않아서 비록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소망지의 죽음을 슬퍼하였으나, 끝내 홍공과 석현을 주벌하지 못하고 겨우 그들이 을 벗고 사죄하게 하였을 뿐이니, 이와 같이 하면 간신이 어떻게 징계되겠는가.
是使恭, 顯得肆其邪心하여 而無復忌憚者也니라
이는 홍공과 석현으로 하여금 간사한 마음을 멋대로 부려서 다시 기탄할 것이 없게 만든 것이다.”
역주
역주1 下蕭望之……皆免爲庶人 : “元帝는 이때에 이르러 이미 賢者와 함께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없었다. 蕭望之와 周堪이 모두 옛 師傅로서 宣帝의 遺詔를 받아 정치를 보필하였는데, 채 2년이 못 되어 마침내 劉更生(劉向)과 함께 모두 죄 없이 구속되었다. 심지어는 이들을 廷尉에게 불러온 것이 이들을 下獄시킨 것임을 알지 못하다가 詰問한 뒤에야 이를 알았으나 또 환관이 기망한 죄를 바로잡지 못하고 도리어 주감 등을 내쳐 면직하였다. 원제의 어둡고 용렬함이 이와 같았으니, 어떻게 그와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옛 史書를 살펴보고 分注한 것을 참고해보면 다만 주감과 유경생을 옥에 가두었다고 말하고 소망지에게는 미치지 않았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는 소망지까지 함께 하옥시켰다고 썼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弘恭과 石顯이 ‘소망지를 정위에게 불러오게 해야 한다.’고 아뢴 것을 보면 소망지가 진실로 이미 이 가운데 함께 들어 있었고, 史高의 宣言에도 또한 ‘먼저 師傅를 조사하여 하옥했다.’는 말이 있었으니, 이미 사부라고 말했으면 단지 주감과 유경생뿐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혹자는 또 말하기를 ‘소망지가 후일 특별히 獄에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으니, 이전에는 옥에 갇히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홍공과 석현이 처음 아뢸 적에 이미 함께 하옥되어 진실로 홀로 면할 리가 없었으니, 이는 다만 처음에 謁者가 불러 데려갔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내 생각건대 소망지가 이때에는 그래도 은인자중할 수 있었으나 후일에 이르러서는 太常에서 급히 執金吾의 兵車와 騎兵을 출동시켜 달려와 자기 집을 포위하였으므로 자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더구나 홍공과 석현이 함께 아뢸 적에 원제가 이미 이들의 청을 허락하였으니, 설사 과연 소망지를 하옥시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또한 하옥된 사람인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쓴 것이 어찌 지나치겠는가. 그러므로 특별히 자세히 분변한 것이다.[元帝至是 已不可與有爲矣 望之堪皆以師傅舊人 受遺輔政 未及二載 乃與更生 俱以無罪被繫 至於不省召致廷尉爲下獄 曁詰問得知 又復不能正其欺罔之罪 乃反黜免堪等 其昏庸若此 尙可與之有爲哉 考之前史 乃參以分注 止謂堪更生繫獄 而不及望之 今綱目所書 則倂以望之爲下獄 何哉 觀恭顯召致廷尉之奏 望之固已俱在其中 至史高宣言 亦有先驗師傅下獄之語 旣曰師傅 則不但堪更生明矣 或者又謂望之他日 特以不肯就獄之故而死 是前此未嘗逮繫也 殊不知恭顯初奏 旣已倂及 固無獨免之理 特始焉謁者召致 竊意望之是時 猶可隱忍 至後來 太常急發執金吾車騎 馳圍其第 故決意自裁爾 況恭顯倂奏 元帝旣可其請 正使果不下獄 是亦下獄之人也 綱目所書 夫豈過哉 故特詳而辯之]” 《發明》
역주2 (史)[吏] : 저본에는 ‘史’로 되어 있으나, 《漢書》 〈張敞傳〉에 의거하여 ‘吏’로 바로잡았다.
역주3 賜蕭望之……朝朔望 : “蕭望之가 전일에 죄가 없이 내침을 당하였으니, 진실로 몸을 이끌고 물러가서 邱園에 은거하여 明哲保身하는 계책을 세웠어야 옳은데, 관작을 하사하자 초하루와 보름에 조회함은 과연 무슨 짓인가? 거취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여 화가 자기 몸에 미치게 하였다. 《資治通鑑綱目》에 비록 폄하한 말이 없으나 폄하한 뜻이 이 안에 들어 있으니, 二疏(疏廣과 疏受)에게 크게 부끄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과연 기미를 본 군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후일 자살했을 적에 그의 관직을 모두 삭제한 것이다.[望之前日 以無罪見黜 固當引身而退 高蹈邱園 爲明哲保身之計 可也 賜爵而朝朔望 果何爲哉 去就不明 以及其身 綱目雖無貶詞 而義則在其中 其有愧二疏多矣 又果見幾之君子乎 是以他日自殺 盡削其官也]” 《發明》
역주4 地復震 : “‘다시[復]’라고 쓴 것은 무엇 때문인가? 異變으로 여긴 것이다. 이보다 먼저 지진을 쓴 경우는 많았으나 한 해에 2번 지진이 일어난 경우는 없었으니, 이것을 이변으로 여겼으므로 특별히 ‘다시’라고 쓴 것이다. 이후로는 지진이 일어난 것을 모두 쓸 수가 없어서 비록 한 해에 2번 지진이 일어났더라도 ‘다시’라고 쓰지 않았다.[復者 何 異之也 先是書地震多矣 未有一歲再震者 以是爲異也 故特書復 自是不可勝書 雖一歲再震 不以復書矣]” 《書法》
역주5 蕭望之自殺……爲中書令 : “자살했을 적에 연고를 쓰지 않은 경우가 있지 않으니, 연고를 쓰지 않은 것은 연고가 없기 때문이다. 연고가 없는 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으니, 이에 그 잘못을 책임질 자(황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蕭望之를 어찌하여 관작을 쓰지 않았는가? 漢나라(황제)를 나쁘게 여긴 것이다. 어찌하여 나쁘게 여겼는가? 소망지는 顧命大臣인데 이미 면직하여 庶人이 되었으니, 관작을 하사한 것은 진실로 쓸 것이 못 되는 것이다. 弘恭이 中書令이 된 것은 쓰지 않았는데, 石顯이 중서령이 된 것을 쓴 것은 어째서인가? 漢나라를 나쁘게 여긴 것이다. 어찌하여 나쁘게 여겼는가? 소망지가 자살했을 적에 元帝가 눈물을 흘리고 밥을 먹지 않았는데, 석현을 처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그를 중서령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진실로 무슨 마음인가. 《資治通鑑綱目》에서 소망지의 자살에 이어 석현을 중서령으로 삼은 것을 쓴 것은 元帝를 깊이 나쁘게 여긴 것이다.[自殺未有不書故者 不書故 無故也 無故者 必有其故 於是有任其咎者矣 然則望之何以不書爵 病漢也 曷爲病之 望之顧命大臣 旣免爲庶人矣 賜爵固不足書也 弘恭爲中書令 則不書 書石顯 何 病漢也 曷爲病之 望之自殺 帝涕泣不食矣 不惟不能罪顯 又以爲中書令 是誠何心哉 綱目聯書之 所以深病帝也]” 《書法》
“蕭望之가 자살했을 적에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니, 元帝의 잘못은 진실로 말할 것이 없다. 환관을 中書令으로 삼은 것으로 말하면 그 禍가 크다. 이것을 특별히 게시하여 쓴 것은 漢나라 기업이 쇠약해진 근본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望之自殺 不言其故 元帝之繆 固無可言者 若夫以宦者而令中書 則其禍博矣 揭而書之 所以著漢業衰微之本]” 《發明》
역주6 中智의 군주 : 중간(보통)의 지혜를 간직한 군주를 말한 것이다. 지혜를 上ㆍ中ㆍ下 세 등급으로 나누어 上智는 聖人, 中智는 보통 사람을 가리키며, 下智는 下愚라고 칭한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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