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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9)

자치통감강목(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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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普通三年이요 魏正光三年이라
夏四月 高車王弟越居 殺其王伊匐而自立하다
◑ 五月朔 하다
◑ 冬十一月 魏行正光曆하다
魏世宗以玄始曆浸疎라하여 命更造新曆이러니 至是하여 著作郎崔光 取張龍祥等九家所上曆하여 候驗得失하고 合爲一曆行之하다
梁主養臨川王宏之子正德하여 爲子러니 太子統生 正德還本하고 賜爵西豐侯하니 怏怏不滿意하여 常蓄異謀注+① 沈約宋志 “臨川郡有西豐縣.”러니
是歲 奔魏하니 魏人待之甚薄이라 正德逃歸이어늘 梁主泣而誨之하고 復其封爵하다
柔然婆羅門 叛魏하고 亡歸嚈噠注+① 嚈, 益藥切. 噠, 當割切. 嚈噠國, 大月氏之種類也, 亦曰高車之別種. 其原出於塞北, 自金山而南, 在于闐之西, 去長安一萬一百里. 其王都拔底城, 蓋王舍城也.이어늘 魏以平西長史費穆으로 爲行臺하여 將兵討之하니
柔然遁去어늘 穆曰 戎狄之性 見敵即走하고 乘虛復出하니 若不使之破膽이면 終恐疲於奔命注+② 奔命者, 赴急之兵也.이라하고
乃簡精騎하여 伏山谷하고 以歩兵之羸者 爲外營하니
柔然果至어늘 奮擊破之하니 婆羅門 爲涼州軍所擒이라 送洛陽하다


梁나라 高祖 武帝 蕭衍 普通 3년이고, 北魏 肅宗 孝明帝 元詡 正光 3년이다.
【綱】 여름 4월에 高車王의 아우 越居가 왕인 伊匐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綱】 5월 초하루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綱】 겨울 11월에 北魏에서 正光曆을 시행하였다.
【目】 예전에 北魏의 世宗(元恪)은 玄始曆이 점차 맞지 않는다고 하여, 명을 내려 新曆을 다시 만들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著作郎 崔光이 張龍祥 등 9家들이 올린 冊曆을 취하여 장점과 단점을 검증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冊曆으로 만들어 시행하였다.
【綱】 梁나라 西豐侯 蕭正德이 北魏로 달아났다가 얼마 뒤에 도망쳐 돌아왔다.
【目】 예전에 梁主(武帝)가 臨川王 蕭宏의 아들 蕭正德을 양육하여 아들로 삼았는데, 太子 蕭統이 태어나자 소정덕을 本家로 돌려보내고 西豐侯라는 작위를 하사하니, 〈소정덕이〉 원망을 품고 마음에 차지 않아 늘 모반할 마음을 품었다.注+① 沈約의 ≪宋書≫ 〈州君志〉에 “臨川郡에 西豐縣이 있다.” 하였다.
이해에 北魏로 달아났는데, 북위 사람들이 매우 각박하게 대우하자 소정덕이 도망쳐 돌아오니, 梁主가 울면서 그를 가르치고 그의 封爵을 회복시켜주었다.
【綱】 柔然王 郁久閭婆羅門이 北魏를 배반하자, 북위가 토벌하여 그를 사로잡았다.
【目】 柔然王 郁久閭婆羅門이 北魏를 배반하고 도망쳐서 로 귀순하자,注+① 嚈은 益藥의 切이다. 噠은 當割의 切이다. 嚈噠國은 大月氏의 종류이고, 역시 高車의 별종이다. 그들의 원류는 塞北에서 나왔는데, 金山 이남으로부터 于闐의 서쪽에 있으니, 長安으로부터 1만 1백 리의 거리이다. 그의 왕은 拔底城에 도읍하였는데 아마도 王舍城인 듯하다. 北魏에서 平西長史인 費穆을 行臺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그를 토벌하게 하였다.
유연이 달아나자, 비목이 말하기를 “戎狄의 성향은 적을 보면 즉시 도주하고 허점을 틈타서 다시 나오니, 만약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지 못한다면 끝내 명령을 받고 달려온 군사들을 지치게 할까 두렵다.”라고 하고,注+② “奔命”은 다급한 상황을 구원하러 달려온 병사들을 말한다.
마침내 정예 기병을 선발하여 산골짜기에 매복시키고 보병들 중에 수척한 자들을 외곽 진영에 배치하였다.
유연이 과연 그곳에 이르자 공격하여 그들을 대파하니, 바라문은 涼州의 군사들에게 포로가 되어 洛陽으로 압송되었다.


역주
역주1 日食旣 : “개기일식은 큰 변고이다. 이해에 蕭正德이 北魏로 달아났다가 도망쳐 돌아왔고, 侯景이 강을 건너는 재앙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에서 개기일식을 기록한 것은 12번인데 그 응험은 없은 적이 없었다.[食旣 大變也 是歲正德奔魏逃歸 而侯景渡江之禍始此矣 綱目書食旣十有二 未有無其應者也]” ≪書法≫
역주2 梁西豐侯……旣而逃歸 : “蕭正德에 대해 ‘北魏로 달아났다.[奔魏]’라고 기록하고 ‘도망쳐 돌아왔다.[逃歸]’라고 기록하였는데 그가 아버지를 배반하며 임금에게 반란한 죄를 바로잡았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니 梁主의 政刑의 실책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정덕이 이와 같은 짓을 감히 하게 된 것은 또한 梁主가 반드시 자기를 죽이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이후로 더욱 본받아서 악을 행하는 데에 익숙해져서 대부분 망설이고 꺼리는 바가 없게 되니 어지러움의 계제가 어디에서 그치겠는가.[正德書奔魏 書逃歸 而不聞正其背父叛君之罪 則梁主政刑之失 爲可知矣 然正德之所以敢於如此者 亦知梁主之必不殺己故也 自是而後 尤而效之 狃於爲惡 無所顧忌者多矣 亂階何自而弭乎]” ≪發明≫
역주3 (汲)[及] : 저본에는 ‘汲’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柔然王……而執之 : “柔然에는 ‘반란[叛]’이라고 기록한 것이 없었는데 여기서 ‘叛’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미 항복했기 때문이니 한 글자로 판단함이 엄격하다.[柔然未有書叛者 此其書叛 何 已降也 一字之權衡嚴矣]” ≪書法≫
역주5 嚈噠(압달) : 중앙아시아에 있던 유목족으로 에프탈(Ephthalites)이라 한다. 한때 영토가 인도, 이란, 소그디아나에 이르렀고 동쪽으로 高車와 柔然을 압박하였다.

자치통감강목(19) 책은 2022.11.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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