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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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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
壬辰年(B.C. 209)
二世皇帝元年이라
楚隱王陳勝元과 趙王武臣元과 齊王田儋注+儋, 丁甘切.元과 燕王韓廣元과 魏王咎元年이라
◑ 是歲에 建國凡五라
綱
冬十月에 大赦하다
綱
◑ 春에 帝東行到碣石하고 竝海하야 南至會稽而還하다
綱
◑ 夏四月에 殺諸公子公主하다
目
二世謂趙高曰 吾已臨天下矣라 欲悉耳目之所好하며 窮心志之所樂하야 以終吾年壽하노니 可乎아
高曰 此는 賢主之所能行而昏亂主之所禁也라
然沙丘之謀를 諸公子及大臣이 皆疑焉하나니
今陛下初立에 此其屬이 意怏怏하야 皆不服하니 恐爲變일까하노니
陛下安得爲此樂乎시리잇고
二世曰 爲之奈何오 高曰 嚴法刻刑하야 誅滅大臣宗室하고 收擧遺民하야 貧者를 富之하며 賤者를 貴之하야 盡除故臣하고 更置所親信注+更, 平聲, 下同.하면
陛下則高枕肆志寵樂矣리이다
二世乃更爲法律하야 益務刻深하야 大臣諸公子有罪에 輒下高鞫治之注+鞫, 音菊, 推窮也.하니
公子十二人僇死咸陽市하고 十公主矺死於杜注+矺, 音摘, 與磔同, 謂裂其支體而殺之. 班志 “杜縣屬京兆, 宣帝改曰杜陵.”하다
目
囚公子將閭於內宮하야 將殺之하니 將閭仰而呼天하고 拔劒自殺하니 宗室이 震恐注+呼, 火故切, 叫也.하더라
公子高欲犇不敢하야 乃上書請從死先帝하야 得葬驪山之足이어늘
二世大說하야 以示趙高한대 高曰 人臣이 當憂死而不暇니 何變之得謀리오 二世可之하야 賜錢以葬하다
綱
復作阿房宮하다
目
復作阿房宮할새
徵材士五萬人爲衛注+材士, 材官蹶張之士.하다
狗馬禽獸當食者多注+食, 讀曰.라 調郡縣하야 轉輸菽粟芻稁注+調, 徒弔切, 計發也. 芻, 草也. 稁, 古老切, 禾稈也.호대 皆令自齎糧食하니
咸陽三百里內에 不得食其穀이러라
綱
秋七月에 楚人陳勝吳廣이 起兵於蘄하야
勝自立爲楚王하고 以廣爲假王하야 擊滎陽하다
目
是時에 發閭左戍漁陽者九百人이라 屯大澤鄕注+閭左, 謂居閭里之左也. 秦時復除者, 居閭左. 今力役煩, 在閭左者, 盡發之也. 一說 “凡居以富彊爲右, 貧弱爲左, 秦役戍多, 富者役盡, 兼取貧弱, 而發之也.” 徐廣曰 “大澤鄕在沛郡蘄縣.”하니 陽城人陳勝과 陽夏人吳廣이 爲屯長注+勝, 音升. 夏, 音賈. 班志 “陽夏縣, 屬淮陽國.” 屯, 猶營也. 每營, 置長率.이러니
會天大雨하야 道不通이라
度已失期하니 法皆斬이라
目
勝廣이 因天下之愁怨하야 乃殺將尉注+尉, 官也. 漢舊儀 “大縣三人, 其尉將屯九百人, 故云將尉.”하고 令徒屬曰 公等이 皆失期하니 當斬이요
假令毋斬注+言假使幸得不見斬也.이라도 而戍死者固什六七이라
且壯士不死則已어니와 死則擧大名耳니
王侯將相이 寧有種乎注+種, 上聲, 類也.리오 衆皆從之어늘
乃詐稱公子扶蘇項燕注+扶蘇無罪, 而二世殺之, 百姓未知其死. 項燕, 楚之良將, 爲秦將王翦所殺. 或以爲死, 或以爲亡, 今故詐自稱扶蘇項燕, 以爲天下倡. 以百姓賢扶蘇, 而楚人憐項燕也.하고 爲壇而盟하야 稱大楚하고
攻大澤鄕拔之하고 攻蘄한대 蘄下어늘
徇蘄以東注+下, 降也. 徇, 略也.하야 行收兵하니 比至陳에 卒이 數萬人이라
入據之注+行收兵, 言就道上收兵也. 比, 必寐切. 班志 “陳縣屬淮陽國.”하다
目
大梁張耳陳餘詣門上謁注+謁, 猶刺也. 上謁, 上其謁而求見也.하니
勝이 素聞其賢이라 大喜하더라
豪傑父老請立勝爲楚王이어늘 勝이 以問耳餘한대
耳餘對曰 秦爲無道하야 滅人社稷하고 暴虐百姓일새 將軍이 出萬死之計하야 爲天下除殘也니
今始至陳하야 而王之면 示天下私니
願將軍은 毋王하고 急引兵而西하야
遣人立六國後하야 自爲樹黨하고 爲秦益敵하라
敵多則力分이요 與衆則兵彊注+與衆, 謂黨與衆多也.이니 如此면 野無交兵하고 縣無守城注+六國, 皆爲與國, 則兵不交鋒於野矣. 諸縣皆畔秦, 復爲六國, 無復爲秦守城者.하리니
誅暴秦據咸陽하야 以令諸侯하면 則帝業이 成矣리라
不聽하고 遂自立爲王하야 號를 張楚注+欲張大楚國, 故稱張楚也.라하니 郡縣이 苦秦法이라 爭殺長吏以應之하더라
目
使從東方來하야 以反者聞한대 二世怒하야 下之吏러니
後至者曰 群盜는 鼠竊狗偸라
郡守尉方捕逐하니 今盡得이니 不足憂也러이다 乃悅하더라
勝이 以廣으로 爲假王하야 監諸將하야 擊滎陽注+假, 兼攝也.하다
綱
楚遣諸將하야 徇趙魏하고 以周文으로 爲將軍하야 將兵伐秦하야
至戲어늘 秦이 遣少府章邯하야 拒之하니 楚軍이 敗走하다
目
張耳陳餘復請奇兵하야 略趙地어늘
勝이 以所善陳人武臣으로 爲將軍하고 耳餘로 爲校尉하야 予卒三千人하야 徇趙하고
又令魏人周巿로 徇魏하고 聞周文은 陳之賢人이라 習兵하고 使西擊秦하다
目
武臣等이 從白馬渡河注+白馬, 卽白馬津也. 度, 與渡同.하야 收兵得數萬人하야
號武信君이라하야 下趙十餘城하니 餘皆城守어늘
乃引兵擊范陽注+范陽, 在范水之陽. 班志 “范陽縣屬涿郡.”한대 范陽蒯徹이 說曰注+蒯, 姓也. 范陽令徐公이 畏死欲降하나니 君이 毋以爲秦所置吏라하야 誅殺하고 而以侯印授之면
則燕趙諸城을 可毋戰而降矣리라 從之하니
不戰而下者三十餘城이라
目
涉이 旣遣周文에 有輕秦之意하야 不復設備注+涉, 陳勝字.어늘
博士孔鮒曰 臣聞兵法에 不恃敵之不我攻이요 恃吾之不可攻이라하니
今王이 恃敵而不自恃하니 若跌而不振이면 悔無及也리라
不聽注+跌, 音迭, 足失厝也.하다
目
文이 行收兵注+句.하니 車千乘이요 卒數十萬이라
至戲하야 軍焉한대 二世乃大驚注+至戲軍焉, 言至戲而停軍也. 戲, 音羲. 師古曰 “戲, 水名, 在京兆新豊東.”이러라
少府章邯이 請赦驪山徒하야 悉發以擊楚軍하야 大敗之하니 文이 走注+班 “少府, 秦官, 掌山海池澤之稅, 以給共養.” 邯, 下甘切.하다
鮒는 子順之子也러라
綱
八月에 楚將武臣이 至趙하야 自立爲趙王하다
目
張耳陳餘聞諸將爲陳王徇地者 多以讒毁誅하고 乃說武信君하야 自立爲趙王한대
勝이 大怒하야 欲族其家注+族, 謂誅及其族也.어늘 柱國房君이 諫曰注+房君, 姓蔡, 名賜, 上蔡人. 爲上柱國, 爵之於房邑, 因號房君. 上柱國, 楚爵之尊者. 秦未亡而誅武信君等家하면 此는 生一秦也니
不如因而賀之하야 使急引兵西擊秦이니라
勝이 從其計어늘
耳餘曰 楚特以計로 賀王이언정
已滅秦이면 必加兵於趙하리니
願王은 毋西兵而北徇燕代하고 南收河內하야 以自廣注+毋西兵, 勿令兵西出也.하라
楚雖勝秦이나 必不敢制趙요 不勝秦이면 必重趙하리니
趙乘秦楚之弊면 可以得志於天下리라 趙王이 從之하야
因不西兵而使韓廣으로 略燕하고 李良으로 略常山하고 張黶으로 略上黨注+黶, 烏點‧於琰二切.하다
綱
九月에 楚人劉邦이 起兵於沛하야 自立爲沛公하다
目
沛人劉邦의 字는 季注+沛, 本秦泗水郡之屬縣. 劉氏, 帝堯之後. 有劉累, 學擾龍, 事孔甲. 至士會, 仕晉, 食采於范, 因氏焉. 從士會奔秦而不返者, 乃復劉累之姓, 爲劉氏. 戰國, 從秦軍伐魏, 爲魏所獲, 復居魏. 隨魏徙大梁, 後居豐, 豐屬荊. 母媼嘗息大澤之陂, 夢與神遇, 是時雷電晦冥. 父太公往視, 則見蛟龍於其上, 已而有娠, 遂産高祖.니 隆準龍顔注+隆,高也. 準,音準的之準, 鼻也. 高祖, 感龍而生, 故其顔貌似龍, 長頸而高鼻.이요
漢 高祖 劉邦漢 高祖 劉邦
愛人喜施하고 意豁如也注+喜‧施, 竝去聲. 豁然, 開大之貌.하고 有大度하야 不事家人生産作業하더라
目
初에 爲泗上亭長注+泗水亭在沛縣東. 亭者, 停留行旅宿食處. 秦法, 十里一亭, 亭置長, 主督盜賊.이러니 單父人呂公이 奇其狀貌하야 以女妻之注+單父, 音善甫. 班志 “單父縣屬山陽郡.” 呂公, 史失其名. 或云名文. 妻, 去聲, 納女於人曰妻.하다
爲縣하야 送徒驪山注+爲, 去聲. 始皇葬驪山, 郡國送士役作.할새 徒多道亡이어늘
自度比至에 皆亡之注+道亡, 謂在道亡歸.라
到豐西止飮注+豐, 鄕名, 屬沛. 後沛爲郡, 豐爲縣.하고 夜에 乃解縱所送徒曰 公等이 皆去하라
吾亦從此逝矣로리라
徒中壯士願從者十餘人이러라
目
季被酒하고 夜徑澤中注+被, 皮義切, 加也. 被酒者, 爲酒所加被也. 徑, 小道也. 從小道而行, 過於澤中.할새 有大蛇當徑이어늘 季拔劒斬之러니
有老嫗哭曰 吾子는 白帝子也러니 今爲赤帝子所殺이라하고 因忽不見注+嫗, 威遇切, 老母也. 秦襄公, 自以居西戎, 主少昊之神, 作西畤, 祠白帝. 至獻公時, 櫟陽雨金以爲瑞, 又作畦畤, 祠白帝. 少昊, 金德也. 赤帝, 謂漢也. 漢承堯緖, 爲火德. 殺之者, 明漢當滅秦也. 見, 胡電切.이러라
季亡匿芒碭山中注+碭, 宕‧唐二音. 班志 “芒縣屬沛國, 碭縣屬梁國.” 應劭曰 “二縣之界, 有山澤之固, 故隱其間.”이러니
劉邦이 큰 뱀을 베다劉邦이 큰 뱀을 베다
目
沛令이 欲應陳涉이어늘 主吏蕭何曹參曰注+主吏, 功曹也. 通鑑, 主吏上, 有掾字. 參爲獄掾, 何爲主吏. 君爲秦吏하야
今背之면 恐子弟不聽일까하노니
願召諸亡在外者하야 以劫衆하라
乃召劉季하니 季之衆이 已數十百人矣注+此不定數也. 自百以下, 或至八十九十.라
令이 悔하야 閉城이어늘
季乃書帛射城上하야 遺沛父老하야 爲陳利害한대
父老乃率子弟殺令하고 迎季하야 立以爲沛公注+春秋之時, 楚僭王號, 其大夫多封縣公, 如申公‧葉公‧魯陽公之類, 是也. 今立季爲沛公, 用楚制也.하고
蕭曹爲收子弟하야 得二三千人하야 以應諸侯할새 旗幟를 皆赤하다
綱
楚人項梁이 起兵於吳하다
目
項梁者는 下相人이니 楚將項燕의 子也注+相, 去聲. 班志 “下相縣屬臨淮郡.”라
嘗殺人하고 與兄子籍으로 避仇吳中注+吳縣, 會稽郡治所, 故吳都也.하니 吳中賢士大夫皆出其下러라
籍은 字는 羽니
少時에 學書不成去하고 學劒又不成이어늘
梁이 怒한대 籍이 曰 書는 足以記名姓而已요 劒은 一人敵이니 不足學이라
學萬人敵호리이다
於是에 梁이 乃敎籍兵法한대 籍이 大喜호대
略知其意요 又不肯竟學하더라
長이 八尺餘요 力能扛鼎하고 才器過人注+扛, 音江, 擧也.이러라
會稽守殷通이 欲應陳涉하야 使梁將이어늘 梁使籍斬通하고
乃召故所知豪吏하야 喩以所爲起大事하야 擧吳中兵하고 收下縣하야 得精兵八千人注+下縣, 會稽管下諸縣也. 非郡所都, 故謂之下也.하야
梁이 自爲會稽守하고 以籍爲裨將하니 籍이 時年이 二十四러라
綱
齊人田儋이 自立爲齊王하다
目
儋은 故齊王族也라
與從弟榮橫으로 皆豪健宗彊하야 能得人이러라
周巿徇地至狄하니 狄이 城守注+狄, 縣名.어늘
儋이詳縛奴從少年至廷하야 欲謁殺之注+詳, 讀曰佯, 詐也. 縛, 束也. 古殺奴婢, 皆當告官. 儋欲殺令, 故詐縛奴爲殺奴之狀, 以謁也. 廷, 縣廷也.라가 因殺狄令而召豪吏子弟曰 諸侯皆反秦自立하니
齊는 古之建國也요 儋이 田氏니 當王이라하고
遂自立하여
擊巿走之하고
東略定齊地하다
綱
趙將韓廣이 略燕地하고 自立爲燕王하다
目
韓廣이 至燕한대 燕豪桀이 欲立以爲王이어늘 廣曰 廣母在趙하니 不可니라 燕人曰 趙方西憂秦하고 南憂楚하니 其力이 不能禁我요
且以楚之彊으로도 不敢害趙王將相之家하니
趙又安敢害將軍家乎리오
廣이 乃立이러니 居數月에 趙奉其母歸之하다
綱
燕軍이 獲趙王이러니 旣而歸之하다
目
趙王이 與張耳陳餘로 略地러니 王이 間出이라가 爲燕軍所得注+間出, 謂投間隙而微出也.이라
囚之以求割地하야
使者往請에 燕이 輒殺之러니
有厮養卒이 往見燕將曰 君知張耳陳餘 何如人也注+析薪爲厮, 炊烹爲養.오 曰賢人也니라
曰知其志何欲고 曰欲得其王耳니라
養卒이 笑曰 君未知此兩人所欲也로다
夫武臣張耳陳餘 杖馬箠下趙數十城注+杖, 去聲, 持也. 箠, 之遂切, 檛馬策也. 杖馬箠而下之, 言其易也.하니 此亦各欲南面而王이로대
顧其勢初定이요 且以少長으로 先立武臣注+顧, 思念也. 少, 去聲. 長, 上聲.이어니와
今趙地已服하니 此兩人이 亦欲分趙而王이어늘
今君이 乃囚趙王하니
此兩人이 名爲求之나 實欲燕殺之而分趙自立하나니
夫以一趙로도 尙易燕注+易, 弋鼓切, 下同.이어든 況以兩賢王으로 左提右挈而責殺王之罪면 燕이 易矣注+提挈, 言相扶持也.리라
燕將이 乃歸趙王이어늘 養卒이 爲御而歸注+爲趙王御車而歸.하다
綱
楚將周市立魏公子咎하야 爲魏王而相之하다
目
周市定魏地어늘 諸侯欲立之한대 市曰 天下昏亂에 忠臣이 乃見注+見, 賢遍切.이니
必立魏王後라야
乃可니라 諸侯固請호대 市終辭하고
乃迎魏公子寗陵君咎於陳注+寗陵, 卽漢之寧陵縣, 屬陳留郡. 咎, 名也.한대 五反而後에 王이 遣之어늘
乃立以爲王而相之하다
綱
秦이 廢衛君角하야 爲庶人注+周烈王三年, 衛愼公卒, 子聲公訓立. 顯王七年卒, 子成侯速立. 三十六年卒, 子平侯立. 四十四年卒, 子嗣君立. 赧王三十二年卒, 子懷君立. 五十五年朝魏, 魏人殺之, 立其弟元君. 秦始皇十七年卒, 子角立. 自愼公至角, 凡八君.하다
目
初에 秦이 幷天下而衛獨存이러니 至是하야 二世廢之하니 衛遂絶祀하다


綱
임진년(B.C. 209)
[綱] 진秦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 원년이다.
초楚나라 은왕隱王 진승陳勝 원년, 조왕趙王 무신武臣 원년, 제왕齊王 전담田儋 원년,注+담儋은 정감丁甘의 절切이다.연왕燕王 한광韓廣 원년, 위왕魏王 위구魏咎 원년이다.
이해에 건국된 나라가 모두 다섯이다.
綱
[綱] 겨울 10월에 크게 사면하였다.
綱
[綱] 봄에 황제가 동쪽으로 가서 갈석碣石에 도착하였으며, 바다를 끼고 내려와서 남쪽으로 회계會稽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綱
[綱] 여름 4월에 여러 공자와 공주를 살해하였다.
目
[目] 이세二世가 조고趙高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이미 천하를 다 차지하였으니, 눈과 귀가 좋아하는 바를 다해보고 마음과 뜻이 즐거워하는 바를 다 누리면서 나의 수명을 마칠까 하는데, 할 수 있겠소?”라고 하자,
조고가 아뢰기를, “이는 어진 임금은 능히 행할 수 있는 바이고, 혼란한 임금은 금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에 대해서 여러 공자와 대신들이 모두 의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폐하께서 처음 즉위하신 때인데, 그런 족속들이 마음속으로 앙앙불락하면서 모두 승복하지 않으니, 변란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어찌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세가 이르기를,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소?”라고 하니, 조고가 아뢰기를 “법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혹독하게 시행하여 대신과 종실들을 모조리 처형하고, 6국의 유민들을 거두어 등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부자가 되게 해주고, 미천한 자들은 귀하게 해주어, 예전의 신하들을 모두 제거한 다음,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로 바꾸어 앉히소서.注+경更(고치다)은 평성平聲이다. 아래도 같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마음먹은 대로 다하면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세가 이에 법률을 변경하여 더욱더 각박하고 혹독하게 하기를 힘써서 대신과 여러 공자들에게 죄가 있으면 그때마다 문득 조고에게 회부시켜 끝까지 캐물어서 다스리게 하였다.注+국鞫은 음이 국菊이며, 추궁하는 것이다.
공자 12인을 함양咸陽의 저잣거리에서 욕보여 처형하였으며, 공주 10인을 두杜 지역에서 사지를 찢어 죽었다.注+책矺은 음이 적摘이며, 책磔(책형)과 같은데, 사람의 사지를 찢어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두현杜縣은 경조京兆에 속하는데, 한漢나라 선제宣帝가 고쳐서 두릉杜陵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目
[目] 공자 장려將閭를 내궁內宮에 가두고서 장차 죽이려고 하자, 장려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하늘이시여!’라고 크게 소리 지르고는, 칼을 빼어서 자살하니, 종실들이 모두 덜덜 떨었다.注+호呼는 화고火故의 절切이니,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이다.
공자 고高가 달아나려고 하다가 감히 달아나지 못하고는 글을 올려 선제의 묘에 가서 죽어 여산驪山의 자락에 장사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이세二世가 크게 기뻐하면서 그 편지를 조고趙高에게 보이니, 조고가 아뢰기를 “신하들이 자신이 죽을까 걱정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어찌 변란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이세가 이를 허락하고, 돈을 하사하여 장사 지내주게 하였다.
綱
[綱] 다시 아방궁阿房宮을 지었다.
目
[目] 다시 아방궁阿房宮을 지었다.
재사材士 5만 명을 징발해서 호위하게 하였다.注+재사材士는 이나 의 군사이다.
개와 말과 짐승들이 먹어야 할 먹이가 많아서注+사食(먹이다)는 사飤라고 읽는다. 이를 군현郡縣에서 조달하게 하여 콩과 조와 꼴과 짚을 실어왔는데, 운반하는 사람들은注+조調는 도조徒弔의 절切이니, 헤아려서 보내는 것이다. 추芻는 풀이다. 고稁는 고로古老의 절切이니, 볏짚이다. 모두 자신의 식량을 자신이 직접 싸가지고 오라고 명을 내렸다.
이에 함양咸陽 땅 300리 이내의 사람들이 그 곡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綱
[綱] 가을 7월에 초楚나라 사람 과 이 기蘄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진승이 스스로 서서 초왕楚王이 되고는 오광을 가왕假王으로 삼아 형양滎陽을 공격하였다.
目
[目] 이 당시에 에서 징발되어 어양漁陽으로 수자리를 살러 가는 자 900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해 있었는데,注+여좌閭左는 여리閭里의 왼쪽에 사는 것을 말한다. 진秦나라 때에는 역을 면제받은 자들이 여좌閭左에 살았다. 이제 역역力役이 번거로워져서 여좌에 사는 자들까지 모두 조발調發한 것이다. 일설에는, “부유하고 강한 자들은 여문閭門의 오른쪽에 살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여문閭門의 왼쪽에 살았는데, 진秦나라가 역역力役과 수자리를 사는 일이 많아서 부자들을 모두 역에 내보내고도 부족하여 가난한 자들까지 함께 징발하여 보낸 것이다.”라고 한다.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대택향大澤鄕은 패군沛郡의 기현蘄縣에 있다.”라고 하였다.양성陽城 사람인 진승陳勝과 양하陽夏 사람인 오광吳廣이 둔장屯長으로 있었다.注+승勝은 음이 승升이다. 하夏는 음이 고賈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양하현陽夏縣은 회양국淮陽國에 속한다.”고 하였다. 둔屯은 영營과 같다. 매 영營마다 장솔長率(장졸將卒)을 둔다.
그때 마침 하늘에서 큰비가 내려 길이 불통되었다.
도착할 날짜를 헤아려보니 이미 기한을 놓치게 되었는데, 기한 내에 도착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법에 모두 참수하게 되어 있었다.
目
[目]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천하의 사람들이 근심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을 인솔하던 위尉를 죽이고,注+위尉는 관직 이름이다. 에 이르기를, “큰 현에는 3인의 위尉가 있는데, 그 위가 둔졸屯卒 900명을 거느리므로 장위將尉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무리들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공들은 모두 기한을 놓쳤으니 참수될 것이다.
설령 참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注+〈“가령무참假令毋斬”은〉 “가령 요행히 참수를 당하지 않더라도”라는 말이다. 수자리를 살다가 죽는 자가 참으로 열에 예닐곱은 될 것이다.
그리고 장사壯士가 죽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죽는다면 크게 이름을 날려야 할 뿐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따로 종자가 있겠는가.”注+종種은 상성上聲이니, 종류라는 뜻이다.라고 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 말에 따랐다.
이에 공자 부소扶蘇와 항연項燕이라고 사칭하고는,注+부소扶蘇가 죄가 없는데도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살해하였는데, 백성들은 그가 죽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항연項燕은 초楚나라의 뛰어난 장수로, 진秦나라의 장수인 왕전王翦에게 살해되었는데, 혹자는 죽었다고 하고 혹자는 도망쳤다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짐짓 사람들을 속여, 자신들이 부소扶蘇와 항연項燕이라고 칭하면서 천하에 주창한 것이다. 이는 백성들이 부소를 어질게 여기고, 초楚나라 사람들이 항연을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이다.단壇을 만들고서 맹세한 다음 국호를 대초大楚라고 칭하였다.
대택향大澤鄕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기蘄를 공격하자, 기蘄가 항복하였다.
기蘄를 경락하고 동쪽으로 가면서注+하下는 항복하는 것이다. 순徇은 경략하는 것이다. 도중에 군사를 거두어 모았는데, 진陳 땅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군사가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진승이 진陳에 들어가 주둔하였다.注+“행수병行收兵”은 길을 가면서 병사들을 거두어 모았다는 말이다. 비比(근처)는 필매必寐의 절切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진현陳縣은 회양국淮陽國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目
[目] 대량大梁 사람인 장이張耳와 진여陳餘가 성문에 와서 명함을 올리면서 만나주기를 청하였다.注+알謁은 명함과 같다. “상알上謁”은 명함을 올리고서 만나보기를 구하는 것이다.
진승陳勝이 평소에 그들의 어짊에 대해서 듣고 있었으므로 크게 기뻐하였다.
진陳의 호걸과 부로들이 진승이 서서 초왕楚王이 되기를 청하니, 진승이 장이과 진여에게 이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장이와 진여가 대답하기를, “진秦나라가 무도하여 다른 사람의 사직을 멸망시키고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굴었으므로, 장군이 만 번 죽을 계책을 내어, 천하 사람들을 위해서 잔악한 자를 제거하였습니다.
지금 비로소 진陳에 이르렀는데, 왕 노릇을 한다면, 이는 천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사로움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왕위에 오르지 마시고,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소서.
그러고는 사람들을 보내어 의 후손들을 찾아 왕으로 세워, 스스로 장군의 당여를 만들어 심어서 진秦나라의 적이 더욱더 불어나게 하소서.
적이 많아지면 힘이 분산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면 군사가 강해질 것이니,注+“여중與衆(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다.)”은 당여의 무리가 많은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하면, 들판에서는 진秦나라를 위해 맞서 싸우는 자가 없고, 고을에서는 진秦나라를 위해서 성을 지키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注+육국六國이 모두 우호국이 되면 병사들이 들판에서 병기를 부딪치며 싸우지 않을 것이요, 여러 현縣들이 모두 진秦나라를 배반하고 다시 육국六國이 되면, 다시는 진秦나라를 위하여 성을 지키는 자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포악한 진秦나라를 주멸하고 함양咸陽을 점거한 다음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황제의 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승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어서는 나라의 이름을 장초張楚라고 하니,注+초楚나라를 장대하게 하고 싶었으므로 장초張楚라고 칭한 것이다. 각 군현에서 진秦나라의 법을 괴롭게 여겨, 앞다투어 지방 장관들을 살해하고는 진승에게 호응하였다.
目
[目] 동쪽에서 온 사자가 모반을 하는 자가 있다는 내용으로 아뢰자,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노하여 그 사자를 옥리에게 회부시켰다.
뒤에 온 사자가 말하기를, “여러 도적들은 쥐가 훔치고 개가 도둑질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각 고을의 수령과 위尉들이 현재 추포追捕하고 있는데, 이제는 거의 다 잡았으니, 걱정할 것이 못 됩니다.”라고 하니, 이세가 기뻐하였다.
진승陳勝이 오광吳廣을 가왕假王으로 삼아 여러 장수들을 감독하여 형양滎陽을 공격하게 하였다.注+가假는 맡은 직무 이외에 다른 직무를 겸해서 보는 것이다.
綱
[綱] 초楚나라가 여러 장수들을 보내어 조趙나라와 위魏나라 지역을 순행하고 주문周文으로 장군을 삼아서 군사를 거느리고 진秦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희수戲水에 이르렀을 때 진秦나라에서는 을 보내어 맞서 싸우게 하니, 초楚나라 군사가 패하여 도주하였다.
目
[目] 장이張耳와 진여陳餘가 다시 기병奇兵을 써서 조趙나라 지역을 경략하기를 청하자.
진승陳勝이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진陳 지역 사람 을 장군으로 삼고 장이와 진여를 교위校尉로 삼아, 군사 3,000명을 주어 조趙나라 지역을 순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또 위魏나라 사람인 주불周巿로 하여금 위魏나라 지역을 순행하게 하였으며, 또 이 진陳 지역의 현인으로 병법에 익숙하다는 말을 듣고는, 그로 하여금 서쪽으로 가서 진秦나라를 치게 하였다.
目
[目] 무신武臣 등이 백마白馬로부터 하수河水를 건너가서注+백마白馬는 바로 백마진白馬津이다. 탁度(건너다)는 도渡와 같다. 군사를 거두어 수만 명의 군사를 얻었다.
무신을 무신군武信君이라고 호칭하고는, 조趙나라 지역의 10여 성을 함락하자, 나머지 성들이 모두 굳게 지켰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 범양范陽을 공격하자,注+범양范陽은 범수范水의 북쪽에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범양현范陽縣은 탁군涿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범양 사람 괴철蒯徹이 유세하여 말하기를,注+괴蒯는 성이다. “범양의 현령인 서공徐公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항복하고자 하니 당신께서는 그를 진秦나라에서 둔 관리라고 하여 주살하지 마시고 후侯의 인印을 가지고 가서 그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연燕나라와 조趙나라 지역의 여러 성들을 싸우지 않고서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무신이 그 말에 따랐다.
그러자 싸우기도 전에 항복한 것이 30여 성이나 되었다.
目
[目] 이 이미 주문周文을 파견하고서는 진秦나라를 가볍게 보는 뜻이 있어서 다시는 방비책을 세우지 않았다.注+섭涉은 진승陳勝의 자이다.
지금 왕께서는 적을 믿고 스스로를 믿지 않으시니, 만약 넘어져서 떨치지 못하게 된다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섭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注+질跌은 음이 질迭이니, 발이 미끄러지는 것이다.
目
[目] 주문周文이 행군을 하면서 군사를 거두어 모으니注+여기서 구句를 뗀다. 수레가 1천 승이고, 사졸이 수십만 명이었다.
희수戲水에 이르러서 진陣을 치자 이세二世가 이에 크게 놀랐다.注+“지희군언至戲軍焉”은 희戲에 이르러서 군사를 멈추었다는 말이다. 희戲는 음이 희羲이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희戲는 물 이름으로, 경조京兆의 신풍新豊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소부少府 장한章邯이 여산驪山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무리들을 모두 사면해주기를 청한 다음, 이들을 모두 동원하여 초楚나라 군사를 쳐서, 크게 패배시키니, 주문이 도망쳤다.注+《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소부少府는 진秦나라의 관직으로, 산과 바다와 연못과 소택沼澤의 세금을 관장하여 공양에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라고 하였다. 함邯은 하감下甘의 절切이다.
공부孔鮒는 의 아들이다.
綱
[綱] 8월에 초楚나라의 장군 무신武臣이 조趙나라 지역에 이르러 스스로 서서 조왕趙王이 되었다.
目
[目] 장이張耳와 진여陳餘가, 여러 장수들 가운데 진왕陳王(진승陳勝)을 위하여 각 지방을 경략하였던 자들이 대부분 참소와 비방을 받아 주살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무신군武信君(무신武臣)에게 유세하여 스스로 서서 조왕趙王이 되게 하였다.
그러자 진승陳勝이 크게 노하여 무신군의 집안을 멸족시키고자 하니,注+족族은 주벌이 그 족속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말한다.이 간하기를,注+방군房君은 성이 채蔡이고 이름이 사賜이며, 상채上蔡 사람이다. 상주국上柱國이 되어 방읍房邑에서 작위를 받았으므로, 인하여 방군房君이라 불렀다. 상주국上柱國은 초楚나라의 관작 중에서 높은 것이다. “진秦나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는데, 무신군 등의 집안을 멸족시킨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진秦나라가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하여 축하해주면서, 그로 하여금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진秦나라를 치게 하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진승이 그 계책을 따랐다.
그러자 장이와 진여가 조왕에게 말하기를, “초楚나라에서는 단지 계책을 써서 왕께 축하한 것입니다.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면 반드시 우리 조趙나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서쪽으로 군사를 보내지 말고, 북쪽으로 연燕과 대代 지방을 순행하고, 남쪽으로 하내河內 지방을 거두어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십시오.注+“무서병毋西兵”은 군사들로 하여금 서쪽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럴 경우 초楚나라가 비록 진秦나라를 이길지라도 반드시 우리 조趙나라를 감히 제압하지 못할 것이고, 진秦나라를 이기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우리 조趙나라를 중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 조趙나라가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피폐한 틈을 탄다면 천하에 뜻을 펼 수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조왕이 그 말에 따랐다.
이에 군사를 서쪽으로 보내지 않고 한광韓廣으로 하여금 연燕 지방을 경략하게 하고, 이량李良으로 하여금 상산常山 지방을 경략하게 하고, 장염張黶으로 하여금 상당上黨 지방을 경략하게 하였다.注+암黶은 오점烏點의 절切과 어염於琰의 절切이다.
綱
[綱] 9월에 초楚나라 사람 유방劉邦이 패沛 땅에서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서서 패공沛公이 되었다.
目
[目] 패沛 땅 사람인 유방劉邦은 자가 계季이며,注+패沛는 본래 진秦나라 사수군泗水郡의 속현이다. 유씨劉氏는 요堯임금의 후손이다. 유루劉累라는 사람이 있어 용을 부리는 법을 배워서 공갑孔甲을 섬겼다. 사회士會 때에 이르러 진秦나라에서 벼슬하여 범范에서 식읍과 채지를 받았으므로 인하여 이를 씨氏로 삼았다. 사회를 따라서 진秦나라로 도망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유루의 성姓을 회복하여 유씨劉氏가 되었다.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 군대를 따라서 위魏나라를 정벌하러 갔다가 위魏나라에 포로가 되어, 다시 위魏나라에 살게 되었다. 위魏나라를 따라 대량大梁으로 옮겨갔다가 나중에 풍豐에 살았는데, 풍은 형荊나라(초楚나라)에 속하였다.
고조高祖의 어머니 유온劉媼이 일찍이 큰 연못가에서 쉬고 있다가 꿈속에서 신과 만났다. 이때 번개가 치면서 어둑해졌으므로 아버지인 태공太公이 가서 보니, 교룡蛟龍이 어머니의 배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 뒤에 임신을 하여 드디어 고조를 낳았다.
코가 높고 용의 얼굴을 하였다.注+융隆은 높은 것이다. 준準은 음이 준적準的이라 할 때의 준準이니, 코를 말한다. 고조高祖가 용에게 감응하여 태어났으므로, 그 얼굴 모습이 용과 비슷하여 목이 길고 코가 높았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였으며, 뜻이 활달하고注+희喜(좋아하다)와 시施(베풀다)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활연豁然”은 시원스럽게 트인 모습이다. 큰 도량이 있어서, 일반 사람들이 하는 생업을 일삼지 않았다.
目
[目] 유방劉邦이 처음에 사상정泗上亭의 정장亭長이 되었는데,注+사수정泗水亭은 패현沛縣의 동쪽에 있다. 만구정亭이라는 것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머물러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이다. 진秦나라 법에 10리마다 만구정亭 하나를 두었으며, 정에는 정장亭長을 두어 도적들을 살펴보게 하였다.선보單父 사람인 여공呂公이 그의 모습을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注+선보單父는 음이 선보善甫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단부현單父縣은 산양군山陽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여공呂公은 역사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름이 문文이라고 한다. 처妻는 거성去聲이니, 다른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것을 처妻라고 한다.
현縣을 위해서 형도刑徒들을 여산驪山으로 호송하였는데,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진秦 시황始皇을 여산驪山에 장사 지낼 때 군국郡國에서 도형徒刑을 받은 자들을 보내 노역을 하였다. 형도들이 대부분 가는 도중에 도망을 쳤다.
이에 스스로 헤아려보니, 여산에 도착할 때쯤에는 모두 도망할 것이었다.注+“도망道亡”은 길을 가다가 도망쳐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풍豐 땅의 서쪽에 이르러서 쉬면서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注+풍豐은 마을의 이름으로, 패현沛縣에 속하였다. 뒤에 패현을 군으로 삼고, 풍향豐鄕을 현으로 삼았다. 밤중에 호송해가던 형도들을 풀어주어 놓아보내면서 말하기를, “공들은 모두 떠나가라.
나 역시 이로부터 떠나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형도들 가운데 유방을 따르고자 하는 장사가 10여 명이나 되었다.
目
[目] 유계劉季가 술에 취하여 밤중에 못 가운데에 있는 길을 가는데,注+피被는 피의皮義의 절切이니, 입혀지는 것이다. 피주被酒는 술에 취하는 것이다. 경徑은 작은 길이니, 작은 길을 따라서 소택지沼澤地를 지나간 것이다. 큰 뱀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므로, 유계가 칼을 뽑아서 그 뱀을 베었다.
그러자 어떤 할멈이 통곡을 하면서 말하기를, “내 아들은 백제白帝의 아들인데, 지금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살해당하였다.”라고 하고는, 인하여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注+구嫗는 위우威遇의 절切이니, 할머니를 말한다. 진秦나라 양공襄公이 스스로 서융西戎에 산다는 이유로 소호少昊의 신을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서치西畤를 세워 백제白帝를 제사하였다. 헌공獻公 때에 이르러 역양櫟陽 지역에 금비가 내리자, 이를 상서롭게 여겨 또 휴치畦畤를 세워 백제를 제사하였다. 소호는 금덕金德이다. 적제赤帝는 한漢나라를 이른다. 한漢나라는 요堯임금의 서업緖業을 이어 화덕火德이 되었다. 적제赤帝가 백제를 죽였다는 것은 한漢나라가 마땅히 진秦나라를 멸망시킬 것임을 밝힌 것이다. 현見(보이다)은 호전胡電의 절切이다.
유계가 도망하여 망탕산芒碭山 속에 숨어 있었다.注+탕碭은 탕宕과 당唐 두 가지 음이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망현芒縣은 패국沛國에 속하고 탕현碭縣은 양국梁國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응소應劭는 말하기를, “망현芒縣과 탕현碭縣의 경계 지역에 산택이 아주 험고한 곳이 있으므로, 그 사이에 숨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目
[目] 패沛 땅의 현령이 진섭陳涉에게 호응하고자 하자, 주리主吏인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이 말하기를,注+주리主吏는 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주리主吏 위에 연掾자가 있다. 조참曹參은 옥연獄掾이 되었고, 소하蕭何는 주리主吏가 되었다. “당신께서는 진秦나라의 관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秦나라를 배반하면 자제들이 명을 듣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니 도망가서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이들을 이용해 사람들을 겁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현령이 이에 유계劉季를 불러왔는데, 유계의 무리가 이미 수십 명이나 되었다.
注+이것은 일정한 숫자가 아니다. 100 이하부터 혹 80이나 90까지 이른다. 그러자 현령이 후회하고는 성문은 닫아걸고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유계가 이에 비단에 글씨를 써서 성 위로 쏘아 패沛의 부로들에게 보내어 이해득실에 대해서 진술하였다.
그러자 부로들이 자제들을 거느리고 가서 현령을 살해하고 유계를 맞아들인 다음, 그를 세워서 패공沛公으로 삼았다.注+춘추시대 때 초楚나라에서는 왕호王號를 참칭하여 대부들 가운데 현공縣公에 봉해진 자가 많은데, 신공申公이나 섭공葉公이나 노양공魯陽公과 같은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유계劉季를 세워서 패공沛公으로 삼은 것은 초楚나라의 제도를 쓴 것이다.
그러자 소하와 조참이 자제들을 거두어 모아 2, 3천 명을 얻어 제후들에게 호응하였는데, 기치旗幟를 모두 붉은색으로 하였다.
綱
[綱] 초楚나라 사람 항량項梁이 오吳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目
[目] 항량項梁은 하상下相 사람으로, 초楚나라의 장수인 항연項燕의 아들이다.注+상相(돕다)은 거성去聲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상현下相縣은 임회군臨淮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일찍이 살인을 하고 형의 아들인 항적項籍과 함께 원수를 피하여 오吳 땅에 살고 있었는데,注+오현吳縣은 회계군會稽郡의 치소로, 옛 오吳나라의 도읍지였다.오吳 땅의 어진 사대부들이 모두 그 아래에서 나왔다.
항적은 자字가 우羽이다.
어렸을 적에 글을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고 버렸으며, 다시 검술을 배웠으나, 또다시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항량이 노하여 화를 내자, 항적이 말하기를, “글은 이름과 성을 쓸 줄만 알면 충분한 것이고, 검술은 한 명만 대적할 수 있을 뿐이니, 배울 것이 없습니다.
만 명을 대적하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항량이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치자, 항적이 몹시 기뻐하였다.
그러나 대충 그 뜻만 알고서는 또 끝까지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항적은 키가 8척이 넘었고, 힘은 능히 정鼎을 들었으며, 재주와 기국이 남들보다 뛰어났다.注+강扛은 음이 강江이니, 쳐드는 것이다.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項羽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項羽
회계會稽의 군수 은통殷通이 진섭陳涉에게 호응하고자 하여 항량으로 하여금 장수가 되게 하였는데, 항량이 항적을 시켜서 은통을 참수하였다.
그러고는 이어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호리豪吏를 불러들여서 대사大事를 일으킨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으며, 오吳 땅의 군사들을 일으키고 오吳의 관할하에 있는 현들을 거두어들여 정병精兵 8,000명을 얻었다.注+“하현下縣”은 회계군會稽郡 관할 아래에 있는 여러 현이다. 군郡의 치소治所가 있는 곳이 아니므로 하下라고 한 것이다.
항량이 스스로 서서 회계군會稽郡의 군수가 되었으며, 항적으로 비장을 삼았는데, 그 당시에 항적의 나이가 24세였다.
綱
[綱] 제齊나라 사람 전담田儋이 스스로 서서 제왕齊王이 되었다.
目
[目] 전담田儋은 옛 제齊나라의 왕족이다.
그의 사촌 동생인 전영田榮과 전횡田橫과 더불어 세력과 덕망이 드높고 종족이 강성하여 능히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주시周市(주불)이 지역을 순행하다가 적현狄縣에 이르렀는데, 적현의 현령이 성을 굳게 지키면서 열어주지 않았다.注+적狄은 현의 이름이다.
그러자 전담이 거짓으로 노복을 결박하고 소년을 따라가 관청에 이르러 노복을 죽이겠다고 현령에게 아뢰다가注+양詳은 양佯으로 읽으니, 남을 속이는 것이다. 박縛은 묶는 것이다. 옛날에는 노비를 죽였을 경우 의당 관청에 보고하여야 했다. 전담이 현령을 죽이고자 하였으므로 거짓으로 노복을 묶고 가서 노복을 죽이려는 척하여 현령을 만나보고자 한 것이다. 정廷은 현縣의 관청이다. 인하여 현령을 죽인 다음, 호리豪吏의 자제들을 불러 말하기를, “제후들이 모두 진秦나라를 배반하고서 자립하고 있다.
제齊나라는 오래전에 세워진 나라이고, 나 전담은 전씨田氏이니,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주불을 치니, 주불이 도주하였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경략하여 제齊나라 지역을 평정하였다.
綱
[綱] 조趙나라의 장수 한광韓廣이 연燕나라 지역을 경략하고는 스스로 서서 연왕燕王이 되었다.
目
[目] 한광韓廣이 연燕나라 지역에 이르렀을 때 연燕나라 지역의 호걸들이 한광을 세워서 왕으로 삼고자 하니, 한광이 말하기를, “저 한광은 어머니가 현재 조趙나라 지역에 있으니, 왕이 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연燕나라 지역 사람들이 말하기를, “조趙나라는 현재 서쪽으로는 진秦나라를 걱정하고, 남쪽으로는 초楚나라를 걱정하느라, 그 힘이 우리 연燕나라 지역을 금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초楚나라의 강함을 가지고서도 감히 .
그러니 조趙나라가 어찌 감히 장군의 집안을 해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한광이 이에 서서 연왕燕王이 되었는데, 몇 달이 지난 뒤에 조趙나라에서 그의 어머니를 받들어 한광에게 돌려보냈다.
綱
[綱] 연燕나라 군사가 조왕趙王을 사로잡았다가 얼마 뒤에 되돌려 보냈다.
目
[目] 조왕趙王(무신武臣)이 장이張耳와 진여陳餘와 함께 땅을 경략하던 중에 왕이 몰래 밖으로 빠져나왔다가 연燕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혔다.注+“간출間出”은 틈 사이를 통해서 은밀하게 나가는 것을 이른다.
연燕나라에서는 조왕趙王을 가두고서 땅을 떼어주기를 요구하였다.
조趙나라의 사신이 가서 왕을 돌려주기를 요청하니, 연燕나라에서 갑자기 그 사신을 죽였다.
어떤 시양졸厮養卒(천역을 하는 병졸)이 가서 연燕나라의 장수를 보고 말하기를, “당신께서는 장이와 진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십니까?”注+땔나무를 베는 것이 시厮이고, 불을 때어서 끓이는 것이 양養이다.라고 하니, 장수가 답하기를, “어진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시양졸이 말하기를, “그들의 뜻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아십니까?”라고 하니, 장수가 말하기를, “그들의 왕을 데려가고자 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시양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신께서는 이 두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무릇 무신과 장이와 진여는 말채찍을 잡고서 조趙나라 지역의 수십 개의 성을 함락시켰으니,注+장杖(잡다)은 거성去聲이다. 추箠는 지수之遂의 절切이니, 말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말채찍을 잡고서 함락시켰다는 것은 아주 쉬움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각자가 남면하여 왕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형세를 돌아보건대 이제 막 정해졌으며, 나이가 많고 적음을 따져서 먼저 무신을 세워 왕으로 삼았습니다.注+고顧는 생각하는 것이다. 소少(젊다)는 거성去聲이며, 장長(나이 먹다)은 상성上聲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趙나라 지역이 이미 다 항복하였으니, 장이와 진여 두 사람도 역시 각자 조趙나라 지역을 나누어서 왕 노릇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께서는 조왕趙王을 가두어두고 있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명분은 조왕을 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연燕나라에서 그를 죽게 하여, 조趙나라 지역을 나누어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의 조趙나라도 오히려 연燕나라쯤은 우습게보았는데,注+역易(쉽다)는 익고弋鼓의 절切이다. 아래도 같다. 더구나 두 어진 왕이 좌우에서 서로 도우면서 자신의 왕을 죽인 죄를 따진다면, 연燕나라는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注+제提와 설挈은 서로 돕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연燕나라 장수가 이에 조왕을 돌려보내자, 시양졸이 임금이 탄 수레를 몰아서 조趙나라로 돌아왔다.注+조왕趙王을 위하여 수레를 몰아서 돌아온 것이다.
綱
[綱] 초楚나라의 장수 주시周市(주불)이 위魏나라의 공자 구咎를 세워 위왕魏王이 되게 하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目
[目] 주시周市이 위魏나라 지역을 평정하자, 제후들이 주불을 세워 왕으로 삼고자 하니, 주불이 말하기를, “천하가 혼란할 적에 충신이 이에 드러나는 법이다.注+현見(드러나다)은 현편賢遍의 절切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위왕魏王의 후손을 세워야만 한다.”라고 하였다.
제후들이 굳이 청하였는데, 주불이 끝내 사양하였다.
이에 위魏나라의 공자인 영능군寗陵君 위구魏咎를 진陳 땅에서 영접해왔는데,注+영능寗陵은 바로 한漢나라의 영릉현寧陵縣으로, 진류군陳留郡에 속하였다. 구咎는 이름이다.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요청한 뒤에야, 진왕陳王(진승陳勝)이 위구를 보내주었다.
이에 위구를 세워서 왕으로 삼고는 주불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綱
[綱] 진秦나라에서 위군衛君 각角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注+주周나라 열왕烈王 3년(B.C. 373)에 위衛나라 신공愼公이 졸하고 그의 아들 성공聲公 훈訓이 서서 임금이 되었다. 주周 현왕顯王 7년(B.C. 362)에 성공이 졸하고 그의 아들 성후成侯 속速이 서서 임금이 되었다. 주 현왕 36년(B.C. 333)에 성후가 졸하고, 그의 아들 평후平侯가 서서 임금이 되었다. 현왕 44년(B.C. 325)에 평후가 졸하고, 그의 아들 사군嗣君이 서서 임금이 되었다. 주周 난왕赧王 32년(B.C. 283)에 사군이 졸하고, 그의 아들 회군懷君이 서서 임금이 되었다.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 55년(B.C. 252)에 회군이 위魏나라에 조현하자 위魏나라 사람들이 그를 죽임에 따라 그의 동생인 원군元君이 서서 임금이 되었다. 진秦 시황始皇 17년(B.C. 230)에 원군이 졸하고, 그의 아들 각角이 서서 임금이 되었다. 신공愼公에서부터 각角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덟 임금이었다.
目
[目] 처음에 진秦나라가 천하를 병탄하였을 적에 위衛나라 임금만 홀로 남아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세황제二世皇帝가 폐하니, 위衛나라의 제사가 드디어 끊어졌다.


역주
역주1 沙丘의 모의 : 沙丘는 秦 始皇이 죽은 곳이다. 진 시황이 천하를 순행할 때 趙高가 符璽令으로 따라갔는데, 진 시황이 죽음에 임박해서 큰아들인 扶蘇를 불러 후사를 이으라는 내용의 詔書를 조고에게 전했으나, 조고가 진 시황의 사망 사실과 조서를 숨기고 李斯와 결탁하여 가짜 조서를 내려 부소를 자살하게 하고, 그때 수행한 막내아들인 胡亥를 二世皇帝로 삼은 것을 말한다.
역주2 材官 : 武官을 말한다.
역주3 蹶張(궐장) : 쇠뇌를 당길 적에 왼쪽 다리로 밟고서 잡아당기는 것을 말한다. 손으로 쇠뇌를 당기는 것은 擘張(벽장)이라고 한다.
역주4 (飮)[飤] : 저본에는 ‘飮’으로 되어 있으나, 思政殿訓義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飤’로 바로잡았다.
역주5 陳勝 : 秦나라 陽城 사람으로 자가 涉이다. 陳涉, 陳王 등으로 칭해졌다. 秦나라 二世 때 吳廣과 함께 반기를 들고 일어나 스스로 楚王이 되어 세력을 확장했으나, 마침내 御者 莊賈에게 살해당하였다. 그러나 진승의 反秦 봉기는 秦나라가 망하고 漢나라가 일어난 계기가 되었다.
역주6 吳廣 : 秦나라 陽夏 사람으로, 자는 叔이다. 진승과 함께 秦나라에 반기를 들고 항거하여 假王이 되었다가 뒤에 부하에게 피살되었다.
역주7 閭左 : 閭巷의 왼쪽이란 뜻으로, 그 당시에 여항의 왼쪽에는 가난한 자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역주8 漢舊儀 : 後漢 光武帝 때의 학자인 衛宏이 지은 책이다. 위굉은 謝曼卿과 杜林에게 수학했으며, 《毛詩序》ㆍ《古文尙書》ㆍ《訓旨》 등도 지었다.
역주9 六國 : 전국시대 때 秦나라에 대항하였다가 멸망한 초, 연, 제, 한, 위, 조를 말한다.
역주10 少府 章邯 : 少府는 《漢書》 〈百官表〉에 보면 秦나라 관직으로 산림과 수택의 부세를 관장한다. 章邯은 장한, 장감, 장함 등으로 칭해지는데, 본서에서는 訓義에 의거해 장함으로 통일하였다. 장함은 陳涉을 멸망시키고 項梁과 魏咎를 격파한 秦나라의 猛將인데, 뒤에 항우에 귀순하여 雍王이 되었다가 韓信에게 멸망당했다.
역주11 武臣 : 秦나라 말기의 陳 지역 사람으로, 陳勝에 의해 장군에 임명되어 張耳와 陳餘를 거느리고 북쪽으로 가 趙나라 지역을 공략한 뒤 邯鄲으로 진격하여 스스로 趙王이 되었다. 그러나 뒤에 자신의 部將인 李良에게 살해당했다.
역주12 周文 : 《史記》 〈秦始皇本紀〉와 〈高祖本紀〉에는 周章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고조본기〉의 주석에는 “周章의 字가 文이고 陳人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3 陳涉 : 陳勝을 가리킨다. 진승의 자가 涉이므로 이렇게 칭하는 것이다.
역주14 병법에……믿으라 : 《孫子》 〈九變〉에 “用兵하는 방법은 적이 쳐들어오지 않음을 믿지 말고 우리가 대비함이 있음을 믿어야 하며, 적이 공격하지 않음을 믿지 말고 우리에게 공격할 수 없는 대비가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用兵之法 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之 無恃其不攻 恃吾有所不可攻也]”라 하였다.
역주15 子順 : 孔子의 6세손인 孔斌의 字이다. 공빈은 전국시대 말에 魏나라 安釐王(안희왕)의 재상으로 있었다.
역주16 (志)[表] : 저본에는 ‘志’으로 되어 있으나, 《漢書》와 《資治通鑑》의 註에 근거하여 ‘表’로 바로잡았다.
역주17 柱國 房君 : 房君은 蔡賜의 봉호로 房은 吳房縣을 말한다. 《史記》 〈陳涉世家〉에는 上柱國에 임명되었다고 하였다. 상주국은 전국시대 楚나라에서 國都를 보위하는 관직으로 令尹보다 조금 낮다.
역주18 (徙)[徒] : 저본에는 ‘徙’로 되어 있으나, 본문과 思政殿訓義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徒’로 바로잡았다.
역주19 功曹 : 秦나라의 관직 이름으로, 지방 군현의 胥吏를 맡은 하급 관리이다.
역주20 趙나라……못하였습니다 : 陳勝이 趙王이 된 武臣의 집안을 해치치 못하였는데, 이 사건이 145쪽에 보인다.
역주21 (楚)[陳] : 저본에는 ‘楚’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과 《史記》에 근거하여 ‘陳’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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