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臣聞 命者는 天之令也요 性者는 生之質也요 情者는 人之欲也라
堯舜行徳이면 則民仁壽하고 桀紂行暴면 則民鄙夭하여 有治亂之所生이라
故
로 不齊也
注+仁者, 不鄙詐. 壽者, 不夭折也.니이다
天道之大者는 在陰陽하니 陽爲徳이요 陰爲刑이요 刑主殺而徳主生이라
是故로 陽은 常居大夏하여 而以生育長養爲事하고 陰은 常居大冬하여 而積於空虛不用之處하니 以此로 見天之任徳, 不任刑也니이다
王者는 承天意以從事라 故로 任徳敎而不任刑也니이다
今廢先王徳敎之官하고 獨任執法之吏하여 而欲徳敎之被四海하시니 難矣니이다
目
仲舒少治春秋爲博士하여 進退容止를 非禮不行하니 學士皆師尊之러니
及爲江都相
하여 事易王
注+易, 音亦, 謚也. 王名, 非.하니
王은 帝兄이라 素驕好勇이어늘 仲舒以禮匡正하니 王이 敬重焉이러라
嘗問之曰 粤王句踐
이 與大夫泄庸, 種, 蠡
로 伐吳滅之
하니 寡人
은 以爲粤有三仁
이라하노니 何如
注+句踐, 粵王名. 泄姓, 庸名也. 種, 卽大夫種也. 蠡, 范蠡也.오 仲舒對曰
昔에 魯君이 問伐齊於柳下惠한대 惠有憂色曰 吾聞伐國에 不問仁人이라하니 此言이 何爲至於我哉잇가하니
夫仁人者는 正其誼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라
爲其先詐力而後仁義也니繇此言之하면 則粤未嘗有一仁也니이다
目
[目] 현량賢良하고 방정方正하고 직언극간直言極諫하는 선비를 뽑아 상上이 친히 책문策問하였는데, 광천廣川 사람 동중서董仲舒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臣이 삼가 《춘추春秋》의 기록을 살펴 전대前代에 이미 행해진 일을 보고서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感應하는 즈음을 살펴보니, 매우 두려울 만하였습니다.
국가가 장차
도道를 잃어 패망함이 있으려 할 때에는 하늘이 먼저 재해를 내어 견책하여 경고하고,
注+견譴은 견책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스스로 살필 줄을 모르면 또다시 변괴를 보여 경계하고 두렵게 합니다.
그런데도 변할 줄을 모르면 상패傷敗가 마침내 이르니, 이로써 하늘의 마음이 임금을 인애仁愛하여 그 혼란을 그치게 하고자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크게 무도한 세상이 아니면 하늘이 모두 붙들어주어 온전히 하고 편안히 하고자 하니, 일은 힘써 노력함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注+강强(힘쓰다)은 기량其兩의 절切이다.
학문을 힘쓰면 견문이 넓어져 지혜가 더욱 밝아지고,
도道를 행함을 힘쓰면
덕徳이 날로 일어나 크게
공功이 있으니, 이는 모두 곧바로 이르러서 당장 효험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注+지知(지혜)는 지智로 읽으니, 아래의 “지명知明”과 “진지盡知”도 같다. 선還은 선旋으로 읽으니, 빠르다는 뜻이다.
目
[目]
도道는 말미암아 다스림에 나아가는 길이니,
注+적適은 간다는 뜻이다.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이 모두 그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별세한 뒤에도 자손들이 장구하게 수백 년 동안 편안하였으니, 이는 모두 예악禮樂으로 교화한 공功입니다.
임금 중에는 나라가 편안하고 보존되기를 바라고 위태롭고 망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사가 혼란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은, 임용한 자가 올바른 사람이 아니고 행한 바가 올바른 도道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사가 날로 쇠퇴하여 멸망에 이른 것입니다.
注+부仆는 죽음이다.
주周나라의 도道가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에서 쇠하였으니, 도道가 망한 것이 아니고 유왕과 여왕이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선왕宣王에 이르러서는 옛 선왕의 덕徳을 생각하여 침체한 것을 일으키고 해진 것을 보충하여,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공업功業을 밝혀서 주周나라의 도道가 찬란하게 부흥하였습니다.
이에 상천上天이 선왕을 도와 어진 보좌를 내어 후세의 칭송이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으니, 이는 선왕이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고 선善을 행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은 군주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하늘이 내린 명이어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注+반反은 돌아온다는 뜻이다.
目
[目] 신臣이 들으니, 명命은 하늘이 명령한 것이고 성性은 타고난 본질이고 정情은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덕徳을 행하면 백성들이 인仁하고 장수하며,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이 포악한 짓을 행하면 백성들이 탐욕스럽고 요절하여, 다스려짐과 혼란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똑같지 않은 것입니다.
注+인仁은 탐욕스럽거나 속이지 않음이고, 수壽는 요절하지 않음이다.
왕자王者가 훌륭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단서를 하늘에서 찾아야 합니다.
천도天道의 큰 것은 음陰‧양陽에 있으니, 양陽은 덕이고 음陰은 형벌이며, 형벌은 죽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덕은 살리는 것을 위주로 합니다.
이 때문에 양陽은 항상 한여름[대하大夏]에 있어 생육生育하고 장양長養하는 것을 일로 삼고, 음陰은 항상 한겨울[대동大冬]에 있어 공허하여 쓰지 않는 곳에 쌓이니, 이로써 하늘이 덕徳에 맡기고 형벌에 맡기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자王者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종사從事하므로 덕교徳敎에 맡기고 형벌에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선왕先王의 덕교를 맡은 관원을 폐하고 오직 법을 집행하는 관리에게 맡기고서 덕교가 사해四海에 입혀지기를 바라시니, 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目
[目] 상上이 다시 책문策問하자, 동중서董仲舒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臣이 들으니, 성왕聖王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어려서는 학교에서 익히게 하고 장성해서는 재목에 따라 지위를 맡겨주어, 관작과 녹봉으로써 그 덕徳을 길러주고 형벌로써 그 오惡을 두렵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예의禮誼(
예의禮義)를 분명히 알아서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것입니다.
注+“재제위材諸位”는 재질의 우열에 따라 지위를 맡겨줌을 이른다. 일설에 “지위를 주어 그 재능을 시험한다.” 하였다.
무왕武王이
대의大誼(
대의大義)를 행하여
잔적殘賊을 평정하시고
주공周公이
예악禮樂을 만들어
문식文飾을 가하셨는데,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에 이르러서는 〈죄인이 없어서〉 감옥이 40여 년 동안 텅 비었으니, 이는 교화가 젖어들어
인의仁義가 흘러 퍼졌기 때문입니다.
注+영囹은 음이 영零이고 어圄는 음이 어語이니, 영어囹圄는 진秦나라 감옥의 명칭이다. 영囹은 명령하여 듣게 하는 것이고 어圄는 말해주어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일설에 “영囹은 거느림이고 어圄는 막음이니, 죄수들을 거느려 잘못을 금하고 막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진秦나라에 이르러는 그렇지 아니하여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학설을 스승으로 삼고
제왕帝王의
도道를 미워하여, 탐욕스럽고 사나운 것을 풍속으로 삼으며, 명분을
책責하고 실질을 살피지 않아,
선善을 행한 자가 반드시 화를 면하지는 못하였고
오惡을 범한 자가 반드시 형벌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注+이리의 성품이 모두 탐욕스럽기 때문에 탐욕스러운 자를 탐랑貪狼이라 한다. 주誅는 책責함이다.
이 때문에 백관百官이 모두 빈말을 꾸미고 실제를 돌아보지 아니하여, 겉으로는 임금을 섬기는 예禮가 있으나 속으로는 윗사람을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서 거짓을 지어내고 속임수를 꾸며서 이익을 쫓고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형벌 받은 자가 매우 많고 죽은 자가 서로 이어졌으나 간악함이 그치지 않았으니, 세속의 변화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目
[目]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모두 소유하시어 천하에 따르고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으나 공功이 백성들에게 베풀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왕자王者의 마음을 베풀지 않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들은 바를 행하시되, 성심誠心을 안에 간직하고 지극히 행하시면 삼왕三王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폐하께서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 일어나셔서 현자賢者를 구하는 일을 힘쓰시니, 이는 바로 요堯‧순舜의 마음 쓰심입니다.
그런데도 훌륭한 선비를 얻지 못하는 것은 선비들을 평소 권면하여 양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注+여厲는 권면勸勉함을 이른다. 일설에 “그 행실을 갈고닦음이다.” 하였다.
평소 선비를 기르지 않고 현자를 구하고자 하면, 이는 비유하건대 옥을 쪼아 다듬지 않고 문채文采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선비를 기르는 데 있어
태학太學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니,
注+호虖는 호乎의 고자古字이다. 태학은 어진 선비의
관문關門이고 교화의 근본입니다.
注+관關은 경유한다는 뜻이다.
원컨대 태학을 일으키고 현명한 스승을 배치하여, 천하의 선비를 길러서 자주 상고하고 물어 그 재능을 다하게 하시면 영재英材와 준걸俊傑들을 마땅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目
[目] 상上이 세 번째로 책문策問하자, 동중서董仲舒가 다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
신臣이 들으니, 하늘은
만물萬物의 시조이므로 만물을 두루 덮어주고 포용하여 차별하는 바가 없고,
注+함函(포함하다)은 함含과 같다.성인聖人 또한 하늘을 본받아
도道를 세울 적에 두루 사랑하고 사사로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注+부溥는 음이 보普이니, 두루한다는 뜻이다.
봄은 하늘이 만물을 낳는 것이고 인仁은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며, 여름은 하늘이 만물을 자라게 하는 것이고 덕徳은 군주가 백성을 길러주는 것이며, 서리는 하늘이 만물을 죽이는 것이고 형벌은 군주가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공자孔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실 적에 위로는 천도天道를 헤아리고 아래로는 인정人情에 바탕을 두셨습니다.
그리하여 옛날을 참작하고 지금을 상고하셨으니, 이 때문에 《춘추》에서 비판한 것은 재해가 가해지는 것이고, 《춘추》에서 싫어한 것은 괴이한 일이 시행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께서 국가의 잘못을 기록할 적에 재이災異의 변고變故도 아울러 기록하셨으니, 이로써 사람의 행위에 지극히 아름답거나 추악한 것이 마침내 천지와 유통하여 오고 가며 서로 응함을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천도天道를 말하는 한 단서입니다.
目
[目] 하늘이 사물과 물건에게 명한 것을 명命이라 하니 명命은 성인聖人이 아니면 행하지 못하고, 질박한 것을 성性이라 하니 성性은 교화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람의 욕망을 정情이라 하니 정情은 제도制度가 아니면 절제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왕자王者가 위로는 하늘의 뜻을 삼가 받들어 명命을 순히 따르고, 아래로는 교화를 밝혀 백성들을 교화해서 성性을 이루기를 힘쓰며, 법도의 마땅함을 바루고 상하의 차례를 분별하여 욕망을 막으니, 이 세 가지를 닦으면 큰 근본이 거행됩니다.
사람은 하늘에서
명命을 부여받아 본래 여러 생물과는
초연超然히 달라서 들어가면 부모와 형제의 친함이 있고 나가면 군신과 상하의 의리가 있으며, 만나고 서로 모일 적에
기로耆老와
장유長幼의 차례를 베풂이 있습니다.
注+시施는 베푼다는 뜻이니, 그 차례를 진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찬란하게 문채가 있어 서로 대하며, 즐겁게 은혜가 있어 서로 사랑합니다.
이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낳은 것 중에
注+성性은 태어난다는 뜻이다. 사람이 가장 귀하다.”라고 하셨으니,
천성天性을 밝게 알아서 스스로 만물萬物보다 귀함을 안 뒤에야 인의仁誼를 알 수 있고, 인의仁誼를 안 뒤에야 예절을 중하게 여기고,
예절을 중하게 여긴 뒤에야 선善에 처하기를 편안히 여기고, 선善에 처하기를 편안히 여긴 뒤에야 이치를 따르기를 좋아하고, 이치를 따르기를 좋아한 뒤에야 군자君子라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目
[目] 신臣이 또 들으니, 적은 것을 모아 많음을 이루고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어둠으로써 밝음을 이루고 은미함으로써 드러남을 이루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注+엄晻(어둠)은 암暗의 고자古字이다.
이 때문에
요堯임금은
제후諸侯의 신분으로
발신發身하여 천자가 되셨고
순舜임금은 깊은 산중에서 일어나 천자가 되셨으니, 하루아침에 현달한 것이 아니고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注+요堯임금은 당후唐侯로 있다가 천자의 지위에 올랐고, 순舜임금은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었다.
말은 자신에게서 나와 막을 수가 없고, 행실은 몸에서 드러나 가릴 수가 없습니다.
말과 행실은 좋은 정치를 하는 중대한 요인으로, 군자가 하늘과 땅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극진하게 하는 자는 커지고 은미한 것을 삼가는 자는 드러나서,
注+능히 여러 작은 것을 다하면 고대高大한 것을 이루고, 은미한 것을 삼가면 그 선善이 밝게 드러나는 것이다. 몸에
선善을 쌓는 것은 사람의 키가 날로 자라는데도 〈키가 자란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과 같고, 몸에
오惡을 쌓는 것은 불이 기름을 태우는데도 〈기름이 줄어든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注+장長은 신체의 길고 짧음을 말하니, 어릴 때로부터 장성함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훌륭한 명성을 얻고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두려워할 만한 대상이 된 이유입니다.
目
[目] 도道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으니,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도道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우禹임금은
순舜임금을 이으시고
순舜임금은
요堯임금을 이으시어 세
성인聖人이 서로
천자天子의 자리를 물려주셨는데, 한 가지
도道를 지켜서 폐단을 바로잡는 정사가 없으셨습니다.
注+〈“망구폐지정야亡捄敝之政也”는〉 정사가 화평하여 굳이 폐단을 바로잡지 않아도 됨을 말한다.
이것을 가지고 관찰해보면 치세治世를 잇는 자는 그 도道가 같고, 난세亂世를 잇는 자는 그 도道가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
한漢나라는 크게 혼란한 뒤를 이었으니, 마땅히
주周나라의
문식文飾을 다소 덜고
하夏나라의
충忠을 취하여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注+“치용致用”은 취하여 쓴다는 말과 같다.
옛날의 천하는 또한 지금의 천하이니, 똑같은 천하인데 옛날을 가지고 지금을 헤아려봄에 어쩌면 그리도 미치지 못함이 심하단 말입니까.
짐작컨대 옛날의
도道에 위배되는 바가 있어서일 것이고,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는 바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注+궤詭는 어긋나고 다르다는 뜻이다.
目
[目] 동중서董仲舒는 젊어서부터 《춘추春秋》를 전공하여 박사博士가 되어서 나아가고 물러가는 절도와 행동거지를 예법禮法이 아니면 행하지 않으니, 학사學士들이 모두 스승으로 삼아 높였다.
그러다가
강도국江都國의 정승이 되어
역왕易王을 섬겼다.
注+역易은 음이 역亦이니, 시호이다. 역왕의 이름은 비非이다.
왕王은 황제의 형이라서 평소 교만하고 용맹을 좋아하였는데 동중서가 예禮로써 바로잡으니, 왕王이 공경하고 소중히 대하였다.
왕王이 일찍이 동중서에게 묻기를 “
월왕粤王 구천句踐이 대부
설용泄庸,
문종文種,
범려范蠡와 함께
오吳나라를 쳐서 멸망시켰으니,
과인寡人은
’라고 여기는데 어떠한가?”
注+구천句踐은 월왕粵王의 이름이다. 설泄은 성姓이고 용庸은 이름이다. 종種은 바로 대부大夫 문종文種이고, 려蠡는 범려范蠡이다. 하자, 동중서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옛날 노魯나라 임금이 제齊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유하혜柳下惠에게 묻자, 유하혜가 근심스런 얼굴빛으로 대답하기를 ‘제가 들으니, 남의 나라를 정벌할 적에는 인仁한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이 어찌 저에게 이른단 말입니까.’ 하였습니다.
유하혜는 단지 묻기만 하였는데도 부끄러워하였는데, 하물며 속임수를 써서 행하는 경우이겠습니까.
인仁한 사람은 의리를 바로잡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도道를 밝히고 공功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중니仲尼의 문하에서는 5척尺의 동자도 오패五霸를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이는 오패가 속임수와 무력을 앞세우고 인의仁義를 뒷전으로 여겼기 때문이니,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월粤나라에는 일찍이 한 사람의 인仁한 사람도 있지 않은 것입니다.”
目
[目] 뒤에
공손홍公孫弘 또한 《
춘추春秋》를 전공하였는데, 세속에 영합하여 권세를 부렸다.
注+희希는 살펴본다는 뜻이다.
동중서董仲舒가 공손홍을, 군주를 따라 아첨한다고 비판하니, 공손홍이 그를 미워하였다.
그리하여 생각하기를
교서왕膠西王은
상上의 형으로 매우
방종放縱하여 자주
를 살해한다고 하여,
상上에게 아뢰어 동중서로 하여금 교서왕의 정승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교서왕은 평소 동중서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잘 대우하였다.
동중서가 전후로 교만한 두 왕을 섬길 적에 모두 몸을 바르게 해서 아랫사람들을 통솔하여 부임하는 곳마다 잘 다스려졌다.
벼슬을 버리고 집에 있게 되자, 산업産業(집안의 살림)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강학講學과 저서著書를 일삼았으며, 조정에 큰 의논이 있을 적에 사자를 보내어 찾아가 물으면 그 대답이 모두 분명한 법식이 있었다.
目
“신공申公의 말이 마땅하나, 다만 그가 말한 ‘힘써 행한다.’는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겠다.
신공이 단서만 꺼내고 다 말하지 않았는데, 무제武帝가 뜻에 거슬린다 하여 묻지 않았으니, 애석하다.
그러나 명당明堂과 순수巡狩, 책력과 복식의 색깔을 바꾸는 것이 어찌 힘써 행할 급선무이겠는가.
대답이 맞지 않고 또 그대로 머물고 떠나가지 않았으니,
에게 미치지 못함을 더욱 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