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張奐이 처음 관직에 부임하니注+≪수경주水經注≫에 “안정속국도위安定屬國都尉는 삼수현三水縣에 치소治所를 두었다.” 하였다., 성벽 안에 오직 200여 명의 병력이 있었다.
장환이 이 소식을 듣고는 즉시 군대를 무장하고 출동하니, 군리軍吏가 머리를 땅에 두드리면서 굳이 만류하였다. 그러나 장환은 만류를 물리치고 마침내 군대를 전진하여 장성長城에 주둔하고서注+이 장성長城은 바로 진秦나라 몽념蒙恬이 쌓은 장성長城이니, 상군上郡의 경계에 있다. 병력을 수습하면서 장수 왕위王衛를 보내어 동강을 불러 달래고,
인하여 구자현龜玆縣을 점거해서 흉노匈奴로 하여금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注+구자현龜玆縣은 상군속국도위上郡屬國都尉의 치소治所가 있는 곳이니, 구자국龜玆國 사람 중에 와서 항복하고 귀순한 자를 이곳에 거처하게 하였으므로 구자현龜玆縣이라고 이름한 것이다.동강東羌의 여러 호족들이 마침내 서로 거느리고 와서 장환과 함께 욱건 등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항복시켰다.
目
【목目】 강족羌族의 토호土豪가 장환張奐에게 말 20필과 금金으로 만든 장신구 8개를 주었는데注+거鐻는 음音이 거渠로 장신구의 이름인데, 모양과 제도는 자세하지 않다., 장환은 술을 땅에 부어 맹세하기를
“만일 말이 양羊처럼 많더라도 내 이 말을 마구간에 넣지 않을 것이요, 만일 금이 곡식과 같이 흔하더라도 내 이 금을 품에 넣지 않을 것이다.” 하고는 모두 이것을 되돌려주었다.注+뢰酹는 랑외郞外의 절切로 술을 땅에 붓는 것이니, 스스로 맹세한 것이다. 양羊과 같고 곡식과 같다는 것은 많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전에 부임했던 여덟 명의 도위都尉는 대부분 재화財貨를 좋아하여 강족羌族들의 미움을 받았는데, 장환이 몸을 바르게 하고 자신을 깨끗이 하자, 기뻐하여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위엄과 교화가 크게 행해졌다.
역주
역주1人相食 :
“元嘉 元年(151)에 ‘任城과 梁國에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라고 썼는데, 이때 다시 보인다. ≪資治通鑑綱目≫에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라고 쓴 것이 10번인데, 武帝 때 2번 썼고 王莽 때 2번 썼고 安帝 때 2번 썼고 桓帝 때 두 번 썼으니, 백성들의 不幸이 심한 것이다.[元嘉之元 書任城梁國饑 人相食矣 於是復見 綱目書人相食十 武再書 莽再書 安再書 桓再書 民之不幸甚矣]다” ≪書法≫
역주2左薁鞬(좌욱건) :
匈奴의 左部에는 左賢王을 필두로 左谷蠡王, 左犂汗王, 左呼盧訾王, 左薁鞬王 등의 王號가 있다. 左薁鞬은 左薁鞮로 된 곳도 있다.(≪後漢書 外國傳 譯註≫)
역주3安定屬國都尉 :
屬國은 漢나라 때 귀부한 이민족을 안치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구역이다. 이는 漢나라 북․서․동쪽의 변경에 설치되었으며, 특히 天水․上郡․西河․五原․金城․北地․犍爲․張掖․居延․遼東 등에 설치되었다. 속국에는 屬國都尉, 屬國長史 등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