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二月에 魏主召英還한대 英表稱必克하니 願少寛假하소서하니
叡自合肥
로 由陰陵大澤
하여 行値澗谷
에 輒飛橋以濟師
注+① 水經注 “濠水出陰陵縣之陽亭, 東北流, 逕鍾離城下而注于淮, 陰陵蓋在鍾離西南, 合肥東北也.”하니
人畏魏兵盛하여 多勸緩行한대 叡曰 鍾離鑿穴而處하고 負戶而汲하니 車馳卒奔이라도 猶恐其後어든 而況緩乎아 魏人已墮吾腹中하니 卿曹는 勿憂也하라하다
旬日
에 至邵陽
하니 梁主豫敇景宗曰 韋叡
는 卿之鄉望
이니 宜善敬之
注+② 景宗, 新野人. 韋叡以京兆著姓, 居襄陽, 旣同州鄉, 而韋爲望族.하라하니
景宗見叡禮甚謹한대 梁主聞之曰 二將和하니 師必濟矣로다하다
乃進頓邵陽洲하니 叡塹洲爲城하여 去魏城百餘歩하니
馮道根能走馬歩地
하여 計馬足以賦功
하여 比曉而營立
注+③ 走, 如字. 走馬歩地, 謂驅策而走之, 以步量地之遠近. 賦, 布也, 給與也. 功, 力也, 計一夫之力所任作, 謂之功.이라 英大驚曰 是何神也
오
景宗等器甲精新하고 軍容甚盛하니 魏人望之奪氣라 城中知有外援하고 勇氣百倍러라
目
三月
에 淮水瀑漲六七尺
이어늘 叡使馮道根等
으로 乗艦
하여 擊魏洲上軍盡殪
注+① 殪音翳, 死也.하고
别以小船으로 載草灌膏하여 焚其橋하니 風怒火盛하여 煙塵晦冥이라 死士拔柵斫橋하여 倐忽俱盡하고
道根等身自搏戰하여 軍人奮勇하니 呼聲動天地하여 無不一當百이라
魏軍大潰하여 英脫身走하고 大眼亦焚營去하니 諸壘土崩하여 水死者十餘萬이요 斬首亦如之라
逐北至濊水上
注+② 濊音穢. 濊水當在沛․臨淮二郡界.하니 英單騎入梁城
하다
緣淮百餘里에 尸相枕藉하고 生擒五萬人이요 收其資糧器械山積이라
義之德景宗及叡
하여 設錢二十萬
하여 官賭之
注+③ 樗蒲, 賭博, 私相與爲戲耳. 不設於公庭, 今官賭之於徐州府廨, 公賭之也. 博以取財曰賭.하니
景宗擲得雉
하고 叡徐擲得盧
라가 遽取一子反之曰 異事
라하고 遂作
注+④ 反, 讀曰翻, 又如字. 摴蒱戯有梟ㆍ盧ㆍ雉ㆍ犢ㆍ塞五者, 爲勝負之采, 博頭有刻爲梟形者爲最勝, 盧次之, 雉與犢又次之, 塞爲最下. 韋叡擲得盧, 本勝雉矣, 乃故反其子而作塞. 異事, 猶言怪事也.하다
群帥爭先告捷호되 叡獨居後하니 世尤以此賢之하더라
目
【目】 北魏의 中山王 元英이 장군 楊大眼 등 군사 수십만 명과 鍾離城을 공격하였다.
종리성의 북쪽은 淮水에 막혀서 북위의 군사들은 卲陽洲의 양쪽 연안에 다리를 설치하고 수백 보 길이의 목책을 세워 淮水를 건너는 길을 통하게 하였다. 성안에 있는 군사는 겨우 3천 명이었는데, 昌義之가 방편에 따라 대항하며 막았다.
북위의 군대는 무리들에게 흙을 져다가 해자를 메우게 하고 정예 기병이 그들을 압박하여, 사람들이 몸을 돌리기도 전에 흙으로 그들을 덮으니 조금 뒤에 해자가 꽉 메워졌다.
注+① 迮(핍박하다)의 음은 窄이니, 압박함이다.
衝車로 부딪히자 성의 흙벽이 번번이 무너졌는데 창의지가 진흙을 이용하여 보수하니, 충차가 비록 쳐들어왔어도 성벽을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
북위의 군대는 밤낮으로 고생스럽게 공격하여 순번을 나누어 서로 교대하면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 물러서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에 수십 차례 전투를 치르니, 전후로 죽고 다친 사람이 만 명을 헤아렸고, 북위의 전사자가 성의 높이와 비슷할 만큼 쌓였다.
目
【目】 2월에 魏主(元恪)가 元英을 불러 돌아오도록 하였는데, 원영이 表文을 올리기를 “반드시 함락시킬 것이다. 시일을 조금 더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梁主(蕭衍)는 韋叡에게 명령을 내려 鍾離를 구원하게 하고 曹景宗의 지휘를 받도록 하였다.
위예는 合肥에서 陰陵의 大澤을 경유하여 행군하다가 시내와 골짜기를 만나면 번번이
를 설치하여 군사들을 건너게 하였다.
注+① ≪水經註≫에 “濠水가 陰陵縣의 陽亭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鍾離城 아래를 경유하여 淮水로 유입되니, 陰陵은 鍾離의 서남쪽과 合肥의 동북쪽 사이에 있다.” 하였다.
군사들이 강성한 北魏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대부분 위예에게 천천히 진군하라고 권하자 위예가 말하기를 “종리에서는 지금
수레와 병졸이 급히 달려가도 오히려 뒤쳐질까 걱정되는데, 하물며 천천히 진군한단 말인가. 북위의 군대를 격파할 계책이 이미 나의 심중에 있으니,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열흘 만에 卲陽에 도착하였는데 梁主가 미리 조경종에게 칙령을 내려서 말하기를 “위예는 卿의 고향에서 명망 있는 종족이니, 그를 잘 공경해야만 하오.”라고 하였다.
注+② 曹景宗은 新野 사람이다. 韋叡는 京兆의 이름 있는 성씨로 襄陽에 살았으니, 이미 고향이 같았지만, 韋氏가 명망이 있는 종족이었다.
조경종이 위예를 보고 몹시 행동을 조심하자, 梁主가 그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두 장수가 화목하니 군대가 반드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군하여 邵陽洲에 주둔하고는 위예가 소양주에 참호를 파고 성을 쌓았는데, 북위의 군사가 있는 성에서 100여 보 떨어져 있었다.
馮道根이 말을 달려서 땅의 거리를 헤아리고, 말의 걸음수로 계산하여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의 양을 할당해주어, 새벽녘에 미쳐 軍營이 세워졌다.
注+③ 走(달리다)는 본음대로 읽는다. “走馬歩地”는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서 걸음으로 땅의 거리를 재는 것을 말한다. 賦는 폄이며, 줌이다. 功은 힘이니, 장정 한 명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계산하는 것을 功이라고 한다. 元英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어찌 이리 귀신같이 빠른가.”라고 하였다.
조경종 등은 무기와 갑옷이 정교하고 새로웠고 군대의 위용이 아주 성대하였는데, 북위의 군사들은 바라만 보고서도 기세가 꺾였다.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외부에 지원군이 있음을 알고 용기가 백배나 되었다.
目
【目】 3월에 淮水가 갑자기 불어나서 6, 7척이 되자 韋叡가 馮道根 등을 시켜서 전투함을 타게 하여 邵陽洲에 있는 北魏의 군대를 공격하여 전멸시켰다.
注+① 殪는 음이 翳이니, 죽음이다.
따로 작은 배에다 마른 풀을 싣고 거기에 기름을 부어 그들의 다리를 불태웠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불길이 치솟아 연기와 먼지로 어둑해졌다. 결사대가 목책을 뽑고 다리를 찍어내어 잠깐 사이에 다리와 목책이 모두 없어졌다.
풍도근 등이 직접 전투에 나서자 군대가 분발하고 용맹을 떨치니 고함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여 모두가 일당백이었다.
북위의 군대가 크게 무너지자 元英은 몸을 빼내어 달아났고 楊大眼도 군영을 불태우고 떠났다. 여러 보루가 흙처럼 무너져 물에 뛰어들어 죽은 사람이 10여만 정도였고, 머리를 벤 숫자도 그만큼 되었다.
패퇴한 적군을 추격하여 濊水에 이르렀는데,
注+② 濊는 음이 穢이다. 濊水는 沛郡과 臨淮郡 두 郡의 경계에 있다. 원영이 한 필의 말을 타고 梁城으로 들어갔다.
淮水에 접해 있는 100여 리에는 시체가 서로 이어져 있었고, 5만 명을 생포하였으며, 그들의 물자와 양식 그리고 산처럼 쌓여 있는 무기와 기계를 거두었다.
昌義之가 曹景宗과 위예에게 은덕을 입었다고 여겨 20만 錢을 마련하여 관사에서 樗蒲 놀이를 하였다.
注+③ 樗蒲는 賭博이니, 사적으로 함께 즐기는 일일 뿐이다. 公庭에서 하지 않는데, 지금 徐州府 관청에서 도박을 하는 것은 공적인 도박이다. 도박놀이로 재물을 취하는 것을 ‘賭’라고 한다.
조경종이 말을 던져서 ‘雉’를 얻었고 위예는 서서히 던져서 ‘盧’를 얻었다가 재빨리 하나를 잡아서 뒤집으며 말하기를 “이상한 일이네.”라고 하고, 마침내 ‘塞’로 만들어놓았다.
注+④ 反은 翻으로 읽고, 또는 본음대로 읽는다. 摴蒱戯에는 梟ㆍ盧ㆍ雉ㆍ犢ㆍ塞 5가지가 있어 勝負의 采(牌)가 되는데, 주사위 머리에 彫刻에 올빼미[梟] 모양으로 된 것이 가장 좋고, 盧가 다음이고, 雉와 犢이 또다시 다음이 되고, 塞가 가장 낮다. 韋叡가 던져서 盧를 얻은 것은 본래 雉보다 좋은 것이었는데, 고의로 그 주사위를 뒤집어서 塞로 만들었다. “異事”는 괴이한 일과 같은 말이다.
여러 장수들이 다투어 먼저 승첩을 알렸지만 위예는 홀로 뒤에 머물러 있으니 세상 사람들이 이로 인해 그를 더욱 현명하다고 여겼다.
조서를 내려 조경종과 위예에게 작위와 봉읍을 늘려주도록 하고, 창의지 등에게는 각각 차등 있게 상을 내리게 하였다.
目
【目】 李崇이 자신의 개인 산업에 일삼는 것이 많았는데, 長史 辛琛이 여러 차례 간언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마침내 글을 올려 탄핵하니, 조서를 내려 두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숭이 신침에게 말하기를 “長史(신침)는 뒤에 반드시 刺史가 될 터인데, 어떤 上佐(長史)를 얻을지 모르겠소.”라고 하였다.
신침이 말하기를 “만일 외람되이 刺史의 자리에 오른다면 올바른 한 명의 長史를 얻어서 아침저녁으로 저의 허물을 듣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하니, 이숭이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