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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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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年(165)
을사년乙巳年(165)
八年이라 春正月 遣中常侍左悺하여 之苦縣하여 注+苦, 音戶, 又如字. 老子者, 楚苦縣厲鄕曲仁里人也. 名耳, 字聃, 姓李, 爲周守藏吏. 有神廟, 故就祠之.하다
나라 효환황제 연희孝桓皇帝 延熹 8년이다. 봄 정월에 중상시 좌관中常侍 左悺을 보내 고현苦縣에 가서 노자老子에게 제사하게 하였다.注+이고, 또 본음本音대로 읽는다. 노자老子나라 고현 여향곡苦縣 厲鄕曲 인리仁里 사람이다. 이름이 이고 (담)이고 이니, 나라 수장리守藏吏를 지냈다. 고현苦縣에 그의 신묘神廟가 있기 때문에 나아가 제사한 것이다.
◑是月晦 하다
】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으니, 조령詔令을 내려 현량賢良하고 방정方正한 선비를 천거하게 하였다.
중상시 후람中常侍 侯覽이 파면되고 좌관左悺이 자살하였으며, 구원具瑗을 강등하여 도향후都鄕侯로 삼았다.
侯覽弟參 爲益州刺史하여 殘暴貪婪하여 累臧億計 楊秉 奏檻車徵參하니 於道自殺하다
후람侯覽의 아우 후참侯參익주자사益州刺史가 되어서 잔인하고 포악하고 탐욕을 부려서 여러 차례 부정하게 장물을 취한 것이 으로 계산되었다. 양병楊秉이 아뢰어 함거檻車로 후삼을 불렀는데, 길에서 자살하였다.
因奏曰 臣案舊典하니 宦官 本任給使省闥하고 司昏守夜어늘 而今猥受過寵하여 執政操權하니이다
양병이 인하여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이 옛 법을 살펴보니, 환관은 본래 궁중에서 사령使令을 맡고 밤중에 호위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지금 외람되게 지나친 은총을 받아서 정사를 집행하고 정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中常侍侯覽弟參 貪殘元惡하여 自取禍滅하니 知釁重하고 必有自疑之意
중상시中常侍 후람의 아우 후삼이 탐욕스럽고 잔인한 원흉元兇으로서 스스로 화와 멸망을 취하였으니, 후람은 자기 죄가 무거움을 알고 반드시 스스로 의심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臣愚以爲覽 宜急屛斥하여 送歸本郡이니이다
어리석은 은 생각하건대, 마땅히 후람을 급히 물리쳐서 본군本郡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書奏 尙書召秉椽屬하여 詰之曰 三公 統外하고 御史 察內하니
】 글을 아뢰자 상서尙書양병楊秉의 아전들을 불러 힐책하기를 “삼공三公은 밖을 통솔하고 어사御史는 안을 살핀다.
今越奏近官 經典, 漢制 何所依據 其開公具對注+令其開說, 與楊秉具以回對.하라 使對曰 春秋傳曰 除君之惡 唯力是視注+左傳, 載寺人披之言. 此, 經典也.라하고
그런데 지금 삼공三公월권越權하여 황제를 가까이 모시는 관원을 아뢰었으니, 이는 경전經典나라 제도에 어느 것을 근거한 것인가? 공개적으로 자세히 대답하라.”注+〈“개공구대開公具對”는〉 공개적인 답변을 양병楊秉과 자세히 의논하여 회답回答하게 한 것이다. 하였다. 양병이 사자使者를 시켜 대답하기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24년에 ‘군주의 악을 제거함에는 오직 힘을 다할 뿐이다.’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시인寺人(내시) 의 말이 기재되어 있으니, 이는 경전經典에 근거한 것이다. 하였고,
鄧通懈慢 申屠嘉召詰責之注+事見文帝後二年. 此, 漢制也.하고 漢世故事 三公之職 無所不統이라하니 尙書不能詰이라 帝不得已免覽官하다
환관인 등통鄧通이 태만하자 승상 신도가丞相 申屠嘉가 불러 힐책하였으며注+이 일이 문제 후원文帝 後元 2년(B.C.162)에 보이니, 이는 나라 제도에 근거한 것이다., 한대漢代고사故事삼공三公의 직책은 통솔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하니, 상서尙書가 더 이상 힐책하지 못하였다. 황제가 부득이 후람侯覽의 관직을 파면하였다.
司隷韓縯 因奏左悺罪惡及其兄太僕稱하니 皆自殺하고 又奏具瑗兄恭臧罪하니 貶都鄕侯하다
사례 한연司隷 韓縯이 인하여 좌관左悺의 죄악과 그의 형인 태복 좌칭太僕 左稱을 아뢰니 모두 자살하였고, 또 구원具瑗의 형 구공具恭의 장물죄를 아뢰니 구원을 도향후都鄕侯로 강등시켰다.
황후 등씨皇后 鄧氏하고서 유폐하여 죽였다.
帝多內寵이라 鄧氏驕忌하니 廢送暴室한대 以憂死注+漢官儀曰 “暴室, 在掖庭內, 丞一人, 主宮中婦人疾病者. 其皇后․貴人有罪者, 亦就此室.”하다
】 황제에게 내총內寵(총애하는 여인)이 많았다. 등씨鄧氏가 그녀들을 교만하게 대하고 시기하니, 하여 폭실暴室로 보내자 근심으로 인하여 죽었다.注+한관의漢官儀≫에 “폭실暴室액정掖庭 안에 있는데, 한 사람이 있어 궁중宮中부인婦人 중에 질병疾病이 있는 자를 주관한다. 그리고 황후皇后귀인貴人 중에 죄가 있는 자도 이 폭실暴室로 보내졌다.” 하였다.
詔李膺, 馮緄, 劉祐하여 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이응李膺풍곤馮緄, 유우劉祐좌교左校에서 노역하게 하였다.
宛陵羊元群 罷北海郡注+宛陵縣, 屬河南尹.하니 臧汙狼籍하고 郡舍溷軒有奇巧 亦載以歸注+狼藉草而臥, 去則穢亂, 故物之雜亂者, 謂之狼藉. 一說 “狼, 貪猛之獸, 聚物而不整, 故稱狼藉.” 溷軒, 廁屋也.어늘
완릉宛陵 사람 양원군羊元群북해군北海郡에서 파직되었는데注+완릉현宛陵縣하남윤河南尹에 속하였다. 장물贓物을 받은 것이 낭자하였고, 군청 측간에 기이하고 좋은 물건이 있으면 그것마저도 싣고 돌아갔다.注+이리가 풀을 깔고 누웠다가 떠나가면 더럽고 어지러워지므로 물건이 잡란雜亂한 것을 낭자狼藉라 한다. 일설一說에 “이리는 탐욕스럽고 사나운 짐승이니, 물건을 모아만 놓고 정돈하지 않기 때문에 낭자狼藉라고 칭한다.” 하였다. “혼헌溷軒”은 측간이다.
河南尹李膺 表按其罪하니 元群 行賂宦官하여 竟反坐하다
하남윤 이응河南尹 李膺표문表文을 올려 그 죄를 조사하려 하니, 양원군이 환관들에게 뇌물을 써서 이응이 도리어 에 걸렸다.
單超弟遷 爲山陽太守하여 以罪繫獄이어늘 廷尉馮緄 考致其死注+考鞠而致其死罪也.하니 中官 飛章하여 誣緄以罪하고
선초單超의 아우 단천單遷산양태수山陽太守가 되어서 죄를 짓고 옥에 갇혀 있었는데, 정위 풍곤廷尉 馮緄이 고문을 하다가 그를 죽게 하니注+〈“고치기사考致其死”는〉 고문을 하다가 죄인을 죽게 한 죄에 이른 것이다., 중관中官이 익명의 글을 돌려서 풍곤을 죄로 무함하였다.
中常侍蘇康, 管霸 固天下良田美業호되 州郡 不敢詰注+固, 猶强占也.이어늘
중상시 소강中常侍 蘇康관패管霸가 천하의 좋은 전지田地와 아름다운 산업産業(재산)을 강점强占하고 있는데도 주군州郡이 감히 힐책하지 못하였다.注+(견고히 지키다)는 강점强占과 같다.
大司農劉祐 移書所在하여 依科品沒入之하니 帝大怒하여 三人俱坐輸作左校하다
대사농 유우大司農 劉祐가 소재지에 공문서公文書를 보내 과품科品(등급)에 따라 몰수하여 들였다. 이에 황제가 크게 노하여 세 사람을 모두 연좌시켜 논죄하여 좌교左校에서 노역하게 하였다.
詔壞諸淫祀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여러 음사淫祀를 없앴다.
特留洛陽王渙, 密縣卓茂二祠하다
낙양洛陽왕환王渙밀현密縣탁무卓茂의 두 사당은 특별히 남겨두었다.
夏五月 하니 以劉瑜爲議郞하다
】 여름 5월에 태위 양병太尉 楊秉하니, 유유劉瑜의랑議郞으로 삼았다.
爲人 淸白寡欲하여 嘗稱我有三不惑하니 酒, 色, 財也라하니라
양병楊秉은 사람됨이 청백淸白하고 욕심이 적어서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세 가지 미혹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술과 여색과 재물이다.” 하였다.
秉旣沒 所擧賢良劉瑜 乃至하여 上書言호되 中官 不當裂土傳爵注+順帝陽嘉四年, 著令, 聽中官以養子襲爵.이니이다
양병이 별세하자, 그가 천거한 현량賢良유유劉瑜가 마침내 와서 다음과 같이 상서上書하였다. “중관中官(환관)은 땅을 떼어 작위爵位를 전해주어서는 안 됩니다.注+순제 양가順帝 陽嘉 4년(135)에 법령을 만들어 중관中官양자養子로 작위를 세습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又嬖女冗食하여 傷生費國注+無事而食, 謂之冗食.하며 第舍增多하고 窮極奇巧하여 掘山攻石 促以嚴刑하고
또 총애하는 여인들이 무위도식無爲徒食하여 백성에게는 폐해가 되고 국가에는 낭비를 초래합니다.注+일 없이 먹는 것을 용식冗食이라 한다. 저택을 많이 짓고 기이함과 교묘함을 지극히 하여 산을 파서 돌을 다스릴 적에 엄한 형벌로 재촉하고,
州郡考事 公行賕賂하니 民愁鬱結하여 去入賊黨이어든 官輒誅討하니
주군州郡에서 일을 조사할 적에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니, 백성들의 시름이 쌓이고 맺혀서 향리를 떠나 도적의 도당徒黨에 들어가면 에서 번번이 토벌합니다.
貧民 或賣首級以要賞이라 父兄 相代殘身하고 妻孥相視分裂이니이다
가난한 백성들은 혹 수급首級을 팔아 을 요구하고, 부형父兄들은 서로 대신하여 자신의 몸을 잔해하고, 처자식들은 서로 바라보며 흩어집니다.
陛下又好微行近習之家하시니 賓客市買하여 因此暴縱이라
폐하께서는 또 근습近習(환관)의 집에 미행微行하기를 좋아하시니, 〈환관의〉 이로 인해 포학하고 방종한 짓을 합니다.
惟陛下開廣諫道하고 博觀前古하사 遠佞邪之人하고 放鄭衛之聲하시면 則政致和平矣注+諫道, 謂言路也.리이다
바라건대 폐하陛下께서는 언로言路를 널리 열고 전고前古의 일을 널리 살피시어,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을 멀리하고 나라와 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추방하소서. 그리하시면 화평和平정사政事가 이루어질 것입니다.”注+간도諫道”는 언로言路를 이른다.
詔問災咎之證하니 執政者欲令瑜依違其辭하여 乃更策以他事한대 瑜對愈切이라 拜爲議郞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재앙과 허물의 징조를 물으니, 집정자들은 유유로 하여금 그 말을 모호하게 하도록 하려고 마침내 다른 일로 바꾸어 책문策問하였는데, 유유의 대답이 더욱 간절하였다. 이에 의랑議郞을 제수하였다.
桂陽賊 攻零陵이어늘 度尙 擊斬之하다
계양桂陽의 도적이 영릉零陵을 공격하자, 도상度尙이 공격하여 참수하였다.
桂陽賊胡蘭等 攻零陵이어늘 太守陳球固守러니
계양桂陽의 도적 호란胡蘭 등이 영릉零陵을 공격하자, 태수 진구太守 陳球가 굳게 지켰다.
掾史白球하여 遣家避難한대 球怒曰 太守分國虎符하여 受任一方하니 豈顧妻孥而沮國威乎 復言者호리라
연사掾史가 진구에게 집안 식구들을 피난 보내자고 아뢰자, 진구가 노하여 말하기를 “태수太守는 나라의 호부虎符를 나누어 가져 한 고을의 임무를 받았는데, 어찌 처자식을 돌보느라 국가의 위엄을 손상시키겠는가. 다시 말하는 자가 있으면 참형에 처하겠다.” 하고는,
乃弦大木爲弓하고 羽矛爲矢하여 引機發之하니 多所殺傷注+引, 開弓也. 主發, 謂之機.이라
큰 나무에 활줄을 매어 활을 만들고 창에 깃털을 달아 화살을 만든 다음 활시위를 당겨 발사 장치에 걸어서 발사하니, 죽거나 부상한 적이 많았다.注+은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다. 활을 발사하는 장치를 라 한다.
激流灌城이어늘 球輒於內 因地勢하여 反決水淹賊하니 相拒十餘日 不能下
적이 물을 격류시켜 성에 대자, 진구가 곧바로 성안에서 지형을 이용하여 역으로 물길을 돌려 터서 적에게 대었다. 서로 대치한 지 10여 일이 되었는데도 적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度尙 徵還한대 詔以爲中郞將하니 討擊斬之하다
이때 도상度尙이 부름을 받아 〈경사京師에〉 돌아와 있었는데, 조령詔令을 내려 중랑장中郞將을 삼으니, 도상이 적을 토벌하여 참수하였다.
復以尙爲荊州刺史러니 餘黨 南走蒼梧어늘 交趾刺史張磐 擊破之하니 復還入荊州하다
】 다시 도상度尙형주자사荊州刺史로 삼았는데, 적의 잔당이 남쪽의 창오蒼梧로 달아나자 교지자사 장반交趾刺史 張磐이 격파하니, 적이 다시 형주荊州로 들어갔다.
懼爲己負하여 乃僞言蒼梧賊 入州界注+負, 罪負也, 懼以不能盡滅群賊爲罪.라한대 於是 徵磐下廷尉러니
도상은 자신의 죄가 될까 두려워해서 “창오의 적이 형주荊州의 경내로 들어왔다.”라고 거짓말하였다.注+죄책罪責이니, 도적 떼를 다 죽이지 못한 것이 자신의 죄가 될까 두려워한 것이다. 이에 장반을 불러들여 정위廷尉에게 회부하였다.
호되 不肯出하고 曰 磐實不辜하니 赦無所除 如以苟免이면 永受侵辱이라한대
마침 사면이 되었으나, 장반은 옥에서 나가려 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는 실로 죄가 없으니, 사면하여도 없앨 죄가 없다. 만약 이렇게 구차히 면한다면, 내 영원히 침해와 모욕을 받을 것이다.” 하자,
乃徵尙面對하니 辭窮受罪어늘 以先有功이라하여 原之하다
이에 도상을 불러 대면하였다. 도상은 말이 궁하여 죄를 받게 되었는데, 먼저 이 있다 하여 용서하였다.
段熲 擊西羌하여 破之하다
단경段熲서강西羌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段熲 擊破西羌하고 進兵窮追하여 展轉山谷하여 自春及秋 無日不戰하니 虜遂敗散이라
단경段熲서강西羌을 격파하고 군대를 전진하여 끝까지 추격해서 산골짜기를 전전展轉하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싸우지 않는 날이 없으니, 오랑캐가 마침내 패하여 흩어졌다.
斬首二萬하고 獲數萬人하고 降萬餘落하니 封都鄕侯하다
그리하여 2만 명의 수급을 베고 수만 명을 생포하고 1만여 부락을 항복시키니, 단경에게 도향후都鄕侯하였다.
秋七月 以陳蕃爲太尉하다
】 가을 7월에 진번陳蕃태위太尉로 삼았다.
讓於太常胡廣 議郞王暢 弛刑徒李膺이어늘 不許하다
진번陳蕃태상 호광太常 胡廣의랑 왕창議郞 王暢이응李膺에게 태위太尉의 자리를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龔之子也 嘗爲南陽太守 奮厲威猛하여 大姓有犯이면 或使吏發屋伐樹하고 堙井夷竈注+破其家業也.하니
왕창은 왕공王龔의 아들이다. 일찍이 남양태수南陽太守로 있을 적에 위엄을 떨쳐서, 큰 성씨姓氏(호족豪族)들이 죄를 범하면 혹 아전을 시켜서 지붕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고 우물을 메꾸고 부엌을 평지로 만들기도 하니注+〈“발옥벌수 인정이조發屋伐樹 堙井夷竈”는〉 그 가업家業을 파괴한 것이다.,
功曹張敞 諫曰 發屋伐樹 將爲嚴烈이니 雖欲이나 難以聞遠注+聞, 音問.이니이다
공조 장창功曹 張敞이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지붕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는 것은 엄하고 혹독한 행위이니, 비록 악을 징계하고자 하나 널리 소문나게 하면 곤란합니다.注+(소문나다)은 이다.
懇懇用刑 不如行恩이요 孶孶求姦 未若禮賢이라 舜擧皐陶 不仁者遠하니 化人 在德이요 不在用刑이니이다
급박하게 형벌을 사용하는 것이 은혜를 행하는 것만 못하고, 부지런히 간악한 자를 색출하는 것이 현자를 예우하는 것만 못합니다. 사람을 교화시키는 것은 덕에 있고 형벌을 사용함에 있지 않습니다.”
深納其言하여 更崇寬政하니 敎化大行하니라
왕창이 그의 말을 깊이 받아들여 다시 너그러운 정사를 숭상하니, 교화敎化가 크게 행해졌다.
八月 注+漢田租三十稅一, 而計畝斂錢, 則自此始.하다
】 8월에 처음으로 전묘田畝의 세금을 거두었다.注+나라는 예전에 전조田租로 30분의 1을 세금으로 징수하였는데, 이랑 수를 계산하여 세금을 거둔 것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九月 地震하다
】 9월에 지진이 있었다.
◑立貴人竇氏하여 爲皇后하다
귀인 두씨貴人 竇氏를 세워 황후皇后로 삼았다.
采女田聖 有寵이라 帝將立以爲后러니 時竇融之玄孫武有女하여 亦爲貴人이라
채녀采女전성田聖이 총애를 받아, 황제가 장차 그녀를 세워 황후로 삼으려 하였는데, 이때 두융竇融현손玄孫두무竇武의 딸 또한 귀인貴人이었다.
陳蕃及司隷應奉 皆以田氏卑微하고 竇氏良家라하여 爭之甚固하니 帝不得已立竇氏하고 拜武爲特進하여 封槐里侯하다
진번陳蕃사례교위 응봉司隷校尉 應奉은 모두 전씨田氏는 신분이 미천하고 두씨竇氏양가良家 출신이라 하여 매우 강력히 간쟁諫爭하니, 황제가 부득이하여 두씨를 세우고 두무에게 특진特進의 벼슬을 제수하여 괴리후槐里侯하였다.
以李膺爲司隷校尉하다
이응李膺사례교위司隷校尉로 삼았다.
陳蕃 數言李膺, 馮緄, 劉祐之枉하여 請加原宥하여 誠辭懇切하여 以至流涕호되 帝不聽하니
진번陳蕃이응李膺, 풍곤馮緄, 유우劉祐의 억울함을 자주 말하여 용서해줄 것을 청하면서 말이 진실로 간절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으나, 황제가 듣지 않았다.
應奉 上疏曰 夫忠賢武將 國之心膂 立政之要 記功忘失이니이다
이에 응봉應奉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충현忠賢무장武將은 나라의 심장과 척추와도 같은 중요한 인재이고, 정사를 세우는 요점은 을 기억하고 잘못을 잊는 것입니다.
前討蠻荊 均吉甫之功注+緄以順帝時, 討武陵․長沙蠻夷, 有功, 故以吉甫比之.하고 數臨督司 有不吐茹之節注+謂祐奏梁冀弟旻, 又爲司隷校尉, 權豪畏之也. 詩曰 “柔亦不茹, 剛亦不吐.”하고 著威幽, 幷하고 遺愛度遼注+膺爲漁陽太守․烏桓校尉, 皆幽部也. 度遼將軍, 則屯幷部, 是其著威遺愛之地.하니
풍곤은 전에 만형蠻荊을 토벌할 적에 와 똑같은 이 있었고注+풍곤馮緄순제順帝 때에 무릉武陵장사長沙만이蠻夷를 토벌하여 이 있었으므로 윤길보尹吉甫를 그에게 견준 것이다., 유우는 자주 관사官司를 감독할 적에 가 있었으며注+〈“유불토여지절有不吐茹之節”은〉 유우劉祐양기梁冀의 아우 양민梁旻을 탄핵하여 아뢰고, 또 사례교위司隷校尉가 되었을 적에 권세가 있는 자와 호강豪强한 자들이 두려워한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대아 증민大雅 烝民〉에 “부드러워도 삼키지 않고, 강하여도 토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응은 유주幽州병주幷州에 위엄이 드러나고 도료장군度遼將軍으로 있을 적에 백성들에게 인자仁慈한 사랑이 남아 있습니다.注+이응李膺어양태수漁陽太守오환교위烏桓校尉로 있었으니 모두 유주幽州부내部內이다. 도료장군度遼將軍병주幷州부내部內에 주둔하니, 이곳은 바로 위엄이 드러나고 사랑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今三垂蠢動하여 王旅未振注+三垂, 三方邊垂也.이라 乞原膺等하여 以備不虞하소서 書奏 乃悉免其刑이러니 久之 李膺 復拜司隷校尉하다
지금 세 변방에 적들이 준동蠢動하는데 의 군대가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注+삼수三垂”는 세 방위의 변방이다. 청컨대 이응 등을 용서하여 불우不虞의 사태에 대비하소서.” 글을 아뢰자, 마침내 이응의 을 면제하였다. 오랜 뒤에 이응은 다시 사례교위司隷校尉에 제수되었다.
小黃門張讓弟朔 爲野王令하여 貪殘無道러니 畏膺威嚴하여 逃還京師하여 匿於兄家合柱中注+野王縣, 屬河內郡, 而河內郡, 屬司部. 畏膺察擧其罪, 故逃還京師也. 合柱, 謂兩柱相直, 兩屋相合處也.이어늘
】 이때 소황문 장양小黃門 張讓의 아우 장삭張朔야왕령野王令이 되어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무도無道하였는데, 이응李膺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경사京師로 도망쳐 돌아와서 형(장양張讓)의 집의 합주合柱 안에 숨어 있었다.注+야왕현野王縣하내군河內郡에 속하였고, 하내군河內郡사례교위司隷校尉에 속하였다. 장삭張朔이응李膺이 자신의 죄를 살피고 탄핵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도망하여 경사京師로 돌아간 것이다. 합주合柱는 두 기둥이 서로 만나고 두 지붕이 합하는 곳을 이른다.
率吏卒하여 破柱取朔하여 付獄하여 受辭畢 卽殺之하다 訴寃한대 帝召膺詰之하니
이응이 관리와 병졸들을 거느리고서 즉시 기둥을 부숴 장삭을 잡아서 옥으로 보내 조사를 받자마자 즉시 죽였다. 장양이 억울함을 하소연하자, 황제가 이응을 불러 힐책하니,
對曰 昔 仲尼爲魯司寇七日而誅少正卯하시니 今臣到官 已積一旬이라 私懼以稽留爲愆이러니 不意獲速疾之罪로이다
이응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옛날 지금 은 관직에 부임한 지 이미 열흘이 되었습니다. 죄인을 색출함이 지체되어 죄를 얻게 될까 내심 두려워했었는데, 뜻밖에 신속히 처리했다고 하여 죄를 얻었습니다.
自知釁責 死不旋踵이나 乞留五日하여 剋殄元惡하고 退就鼎鑊이면 始生之願也니이다
저의 죄가 당장 죽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청컨대 5일을 유임하여 원악元惡을 섬멸하고 물러나 끓는 가마솥에 나아가고자 하오니, 바로 이것이 평소의 소원입니다.”
帝顧讓曰 汝弟之罪 司隷何愆고하니 自此 諸宦官 皆鞠躬屛氣하여 休沐 不敢出宮省이라
황제가 장양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네 아우의 죄이다. 사례교위司隷校尉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하니, 이로부터 환관들이 모두 몸을 굽히고 숨을 죽여서 휴일에도 감히 궁성宮省을 나가지 못하였다.
帝問其故하니 幷叩頭泣曰 畏李校尉라하니라
황제가 그 이유를 물으니, 모두 머리를 땅에 두드리고 울며 말하기를 “이교위李校尉를 두려워해서입니다.” 하였다.
朝廷 日亂하여 紀綱頹弛호되 而膺 獨持風裁하여 以聲名自高注+風者, 雷厲風飛之謂. 裁, 才代切, 能鑑別也.하니 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云注+賢曰 “以魚爲喩也. 龍門, 河水所下之口, 在今絳州龍門縣. 辛氏三秦記曰 ‘河津, 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鱉之屬莫能上. 江海大魚數千, 薄集龍門下, 不得上, 上則爲龍.’”이러라
】 이때 조정朝廷이 날로 혼란하여 기강이 무너지고 해이해졌으나 이응李膺이 홀로 풍재風裁(엄격한 풍모와 뛰어난 판별력)를 지켜서 명성으로 스스로를 높이니注+〈“풍재風裁”의〉 은 기세가 맹렬하고 행동이 빠름을 이르고, 재대才代이니 인물人物에 대한 감별鑑別을 잘함이다., 선비 중에 그의 우대를 받는 자가 있으면 등용문登龍門이라고 불렸다.注+이현李賢이 말하기를 “물고기를 가지고 비유한 것이다. 용문龍門하수河水가 내려가는 어귀이니, 지금의 강주 용문현絳州 龍門縣에 있다. ≪신씨삼진기辛氏三秦記≫에 ‘하진河津은 일명 용문龍門이라고 하니, 수세水勢가 험하여 통과하지 못해서 물고기와 자라의 등속이 올라가지 못한다. 강과 바다의 큰 물고기 수천 마리가 용문龍門 아래에 이르러 모여들지만 위로 올라가지 못하다가, 올라가면 이 된다.’ 했다.” 하였다.
以劉寬爲尙書令하다
유관劉寬상서령尙書令으로 삼았다.
歷典三郡注+寬, 崎之子也.호되 溫仁多恕하여 雖在倉卒이나 未嘗疾言遽色하고
유관劉寬이 세 을 차례로 맡았는데注+유관劉寬유기劉崎의 아들이다. 온화하고 인자하여 용서하는 일이 많았다. 비록 창졸간倉卒間의 급박한 상황에 있더라도 일찍이 말을 빨리하거나 얼굴빛을 갑자기 바꾸지 않고,
吏民有過 但用蒲鞭罰之하여 示辱而已 終不加苦注+古者, 鞭用生皮爲之.러라 有功善이면 推之於下하고 有災異 則引躬自責하며
관리와 백성들이 잘못했을 때에도 다만 부들 채찍을 사용하여 벌을 주어서 욕을 보일 뿐, 끝내 고통을 가하지 않았다.注+옛날에 채찍은 생가죽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공로와 선행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 미루고 재이災異가 있으면 자신에게 죄를 돌려 자책自責하였으며,
每見父老 慰以農里之言하고 少年 勉以孝弟之訓하니 人皆悅而化之하니라
매번 부로父老를 보면 향리鄕里의 이야기를 묻고 소년을 보면 효도하고 공경하는 가르침으로 권면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여 교화되었다.
역주
역주1 祠老子 : “군주가 道敎를 숭상함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삼가 쓴 것이다. 明年에는 濯龍宮에 친히 제사했다고 썼다.[人主崇道敎始此 故謹書之 明年而有親祠濯龍之書矣]다” ≪書法≫
역주2 日食 詔擧賢良方正 : “≪資治通鑑綱目≫에 쓴 367번의 日食 가운데 선비를 구했다고 쓴 것이 다섯 번인데, 桓帝가 두 번을 차지한다. 그러나 고친 바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또한 具文(형식적인 것)일 뿐이다.[綱目書日食三百六十七 而書求士者五 帝居其二 然未聞有改焉 則亦具文而已矣]다” ≪書法≫
역주3 中常侍侯覽……爲都鄕侯 : “세 환관의 죄가 드러났는데도 ‘以罪’를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죄가 오로지 세 환관에게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니, 세 환관만 오로지 죄 주지 않은 것은 桓帝를 깊이 죄책한 것이다. 秦 始皇 이래로 환관에게 미혹된 자가 많았으나, 편당하고 비호하기를 桓帝와 같이 한 자는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서 桓帝의 篇에 처음에 梁冀를 쓰고 끝에 환관을 쓴 것이다. 환관에게 ‘自殺’을 쓴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貶’을 쓴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자치통감강목≫이 끝날 때까지 환관에게 ‘自殺’을 쓴 것이 두 번(左悺, 侯覽)이고, ‘貶’을 쓴 것이 두 번(具瑗, 白志貞)이고, ‘免’을 쓴 것이 두 번(石顯, 侯覽)이고, ‘削官’을 쓴 것이 세 번(程元振, 仇士良, 李敬寔)이다.[三閹之罪著矣 不書以罪 何 罪不專在三閹也 不專罪三閹 所以深罪桓帝也 自秦皇以來 惑於宦閹者多矣 未有黨護之如桓帝者 故綱目於桓帝之篇 始則書梁冀 末則書宦官而已 宦官自殺始此 書貶始此 終綱目 宦官書自殺二(左悺侯覽) 書貶二(具瑗白志貞) 書免二(石顯侯覽) 書削官三(程元振仇士良李敬寔)]” ≪書法≫ 都鄕侯에 대해서는 본서 96쪽 역주 11) 참조.
역주4 廢皇后鄧氏 幽殺之 : “鄧后는 본래 근심으로 인하여 죽었는데, 어찌하여 죽였다고 썼는가. 桓帝를 심하게 여긴 것이다. 환제는 안에 총애하는 여인이 많았으니, 등후가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인데, 폐하여 暴室로 보내 죽게 만들었으므로 심하게 여긴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廢后를 죽였다고 쓴 것이 환제로부터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폐후를 죽였다고 쓴 것이 세 번인데, 晉나라 賈氏가 신하에게 폐위되어 살해된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鄧后本以憂死 則曷爲以殺書 甚帝也 帝多內寵 鄧后妬忌 恒也 而廢送暴室 以致其死 故甚之 綱目書殺廢后 自桓帝始 終綱目 廢后書殺三 晉賈氏爲臣所廢殺 不與焉]다” ≪書法≫
역주5 輸作左校 : “논죄하여 노역하게 하였다고 쓴 것이 많으나, 詔라고 쓴 적이 있지 않았는데 詔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아직 獄事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말이니, 이로써 환관들을 편당하여 비호하고 정직한 사람을 미워한 것이 모두 황제의 뜻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資治通鑑綱目≫에서 詔令을 내려 노역하게 했다고 쓴 것이 두 번(李膺 등과 劉猛)이다.[書論輸多矣 未有書詔者 書詔 何 未具獄之辭也 以見黨護閹宦 憎惡正人 皆出於帝意也 綱目書詔輸作二(李膺等劉猛)]다” ≪書法≫
역주6 反坐 : 誣告를 한 사람에게 오히려 무고죄를 가하는 형벌을 이른다.
역주7 太尉秉 卒 : “楊秉에게 姓을 쓰지 않은 것은 글자를 빠뜨린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 前漢과 後漢의 여러 신하가 卒했을 때에 姓을 쓰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칭호이지만 양병은 淸白하고 忠貞하여 大臣의 절개가 있었으니, 일반적인 칭호만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자를 빠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秉不書姓 缺也 綱目兩漢諸臣卒 不書姓者恒稱也 秉淸白忠貞 有大臣節 不當止從恒稱 故知其缺也]” ≪書法≫
역주8 賓客들이……하여 : 내용이 분명치 않다. ≪全譯 後漢書≫(漢語大詞出版社)에는 ‘市賈’를 “賓客商人 由此十分放縱”으로 되어 있어 商人으로 풀이하였는바, 이 경우에는 ‘賓客市買가’로 懸吐하여야 할 것이다.
역주9 弛刑徒 : 죄인의 목에 씌우는 항쇄와 발에 채우는 차꼬를 임시로 벗겨 부역시키는 무리를 이른다.
역주10 舜임금이……사라졌으니 : ≪論語≫ 〈顔淵〉의 “순임금이 천하를 소유했을 적에 여러 사람 중에 선발하여 皐陶를 등용하자, 不仁한 자가 멀리 사라졌다.[舜有天下 選於衆 擧皐陶 不仁者遠矣]”라고 한 孔子의 말씀을 원용한 것이다.
역주11 : ‘徵(징계하다)’은 ‘懲’과 통용된다. ≪後漢書≫에도 ‘徵’이 ‘懲’으로 되어 있다.
역주12 初斂田畝稅錢 : “初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처음 시작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은 백성에게서 취하는 것을 重視하여 매번 삼가(신중하게) 그 일을 썼다. 이 때문에 高帝가 算賦를 만들자 初라고 썼고, 武帝가 술 파는 것을 전매하자 初라고 썼고, 桓帝가 田畝에 세금을 거두자 初라고 썼고, 晉 孝武帝가 백성들의 稅米를 증가시키자 初라고 썼고, 唐나라가 租․庸․調 제도를 정하자 初라고 썼고, 德宗이 兩稅法을 만들자 始라고 썼고, 間架와 陌錢에 대한 稅法을 행하자 初라고 썼고, 茶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자 初라고 썼으니, 모두 그 처음 백성들에게서 취하는 것을 삼가 다룬 것이다.[初者 何 志始也 綱目重取民 每謹書之 是故高帝爲算賦則書初 武帝榷酒酟則書初 桓帝斂田畝稅錢則書初 晉孝武增民稅米則書初 唐定租庸調則書初 德宗作兩稅則書始 行間架陌錢則書初 稅茶則書初 皆謹其始取民也]” ≪書法≫ 間架는 唐나라 때 집의 間數에 따라 징수하던 가옥세이고 陌錢은 除陌錢이라 하는데 唐 德宗 시기의 잡세이다.
역주13 尹吉甫 : 周 宣王 때의 賢臣으로 자는 吉甫이고, 尹은 관직 이름인데 뒤에 氏가 되었다. 宣王이 오랑캐인 玁狁을 北伐하고 중흥의 업적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頌을 잘 지었다. ≪詩經≫ 〈大雅 烝民〉에 “윤길보가 誦詩를 지으니, 深遠하기 청풍과 같도다.[吉甫作誦 穆如淸風]”라고 보인다.
역주14 강하다고……절개 : 원문의 ‘不吐茹’는 ‘剛亦不吐 柔亦不茹(강하여도 토하지 않고 부드러워도 삼키지 않음)’를 줄여 쓴 것이다. ≪詩經≫ 〈大雅 烝民〉에서 仲山甫를 칭찬한 말로, 권문세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절개를 이른다.
역주15 仲尼는…하셨는데 : 仲尼는 孔子의 字이며, 司寇는 국법을 관장한 장관이다. 少正卯는 魯나라의 유명한 大夫였는데 작은 지혜를 믿고 국정을 어지럽혔다. 이에 魯 定公이 공자를 司寇로 임명하자, 공자는 첫 번째로 소정묘의 죄를 열거하여 주살하였다.(≪史記≫ 권47 〈孔子世家〉)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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