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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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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年(A.D.28)
무자년戊子年(A.D.28)
四年이라 遣鄧禹하여 將兵擊延岑하여 破之하다 奔蜀한대 公孫述 以爲大司馬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4년이다. 봄에 등우鄧禹를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연잠延岑을 격파하였다. 연잠이 으로 달아나자, 공손술公孫述이 그를 대사마大司馬로 삼았다.
◑夏四月 帝如鄴하여 遣吳漢하여 擊五校於臨平하여 破之하고 遣耿弇, 祭遵等하여 討張豐하여 斬之하니 遂進擊彭寵注+臨平, 縣名, 屬鉅鹿郡.하다
】 여름 4월에 황제가 에 가서 오한吳漢을 보내 임평臨平에서 오교五校를 격파하였고, 경감耿弇채준祭遵(채준) 등을 보내 장풍張豐을 토벌하여 참살하니, 경감이 마침내 팽총彭寵을 향해 진격하였다.注+임평臨平의 이름이니 거록군鉅鹿郡에 속하였다.
好方術이라 有道士言 豐當爲天子注+西都, 有方士, 東都因稱爲道士.라하고 以五綵囊裏石하여 繫豐肘하고 云 石中有玉璽注+肘, 陟柳切, 臂節也.라하니
장풍張豐방술方術을 좋아하였다. 한 도사道士가 “당신이 마땅히 천자天子가 될 것이다.”注+서도西都(서한西漢)에 방술사方術士가 있었는데, 동도東都(동한東漢)에서는 그를 도사道士라 칭하였다. 하고는 오채五綵의 주머니에 돌을 싸서 장풍의 팔뚝에 매어주고 이르기를 “이 돌 안에 황제의 옥새가 있다.”注+척류陟柳이니 팔뚝이다. 하니,
信之하고 遂反하다 旣當斬 猶曰 肘石有玉璽라하여늘 傍人 爲椎破之注+爲, 去聲, 下同.하니
장풍이 이 말을 믿고 배반하였다. 장풍은 참수를 당할 적에도 여전히 말하기를 “내 팔뚝의 돌에 옥새가 있다.” 하므로, 옆 사람이 그에게 돌을 깨뜨려 보여주니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도 같다.,
乃知被詐하고 仰天曰 當死無恨이라하다 詔耿弇하여 進擊彭寵하니
장풍은 그제야 속았음을 알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내 마땅히 죽어야 하니, 여한이 없다.” 하였다. 경감耿弇에게 조령詔令을 내려 팽총彭寵을 향해 진격하게 하니,
弇以父況 與寵同功注+況與寵, 同有助漢之功.이요 又兄弟無在京師者라하여 不敢獨進하고 求詣雒陽한대
경감은 부친인 경황耿況이 팽총과 함께 공이 같고注+경황耿況팽총彭寵은 똑같이 나라를 도운 공이 있었다., 또 자신의 형제 중에 경사京師에 남아 있는 자가 없다 하여, 감히 홀로 진군하지 못하고 낙양雒陽으로 소환될 것을 청하였다.
詔報曰 將軍 擧宗爲國하여 功効尤著어늘 何嫌何疑而求徵고하다 聞之하고 更遣弇弟國하여 入侍하다
이에 황제가 조령詔令을 내려 답하기를 “장군將軍은 온 집안이 나라를 위하여 공로가 더욱 드러났는데, 무엇을 혐의하고 의심할 것이 있어서 소환되기를 청하는가.” 하였다. 경황은 이 말을 듣고 다시 경감의 아우 경국耿國을 들여보내 황제를 모시게 하였다.
六月 帝還宮하다
】 6월에 황제가 환궁하였다.
◑秋七月 如譙하다 遣將軍馬武, 王霸하여 圍劉紆於垂惠하다 董憲將賁休 以蘭陵降이러니 攻拔之注+郡國志 “沛郡山桑縣, 有垂惠聚.”하다
】 가을 7월에 〈황제가〉 (초)에 갔다. 장군 마무將軍 馬武왕패王霸를 보내 수혜垂惠에서 유우劉紆를 포위하였다. 동헌董憲의 장수 분휴賁休(분휴)가 난릉蘭陵을 가지고 항복하였는데, 동헌이 그를 공격하여 함락하였다.注+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에 “패군沛郡산상현山桑縣수혜垂惠라는 취락이 있다.” 하였다.
聞賁休以蘭陵降하고 自郯圍之注+賁, 音奔. 賁休, 姓名. 郯, 音談. 郯縣, 屬東海郡.어늘 蓋延及龎萌 在楚라가 請往救之注+楚, 彭城也.한대
동헌董憲분휴賁休(분휴)가 난릉蘭陵을 가지고 항복했다는 말을 듣고 담현郯縣(담현)에서부터 출발하여 난릉을 포위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분휴賁休는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은 음이 이니, 담현郯縣동해군東海郡에 속하였다. 갑연蓋延방맹龎萌에 있다가 가서 구원할 것을 청하자注+팽성彭城이다.,
帝勅曰 可直往擣郯이면 則蘭陵自解注+擣, 擣虛也. 此兵法所謂攻其必救也.라호되 延等 以賁休城危라하여 遂先赴之하다
황제가 칙명을 내리기를 “곧바로 가서 비어 있는 담현을 공격하면 난릉蘭陵의 포위가 저절로 풀릴 것이다.”注+는 비어 있는 곳을 공격하는 것이니, 이는 병법兵法에 이른바 라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갑연 등은 분휴의 이 위태롭다 하여 먼저 분휴에게로 달려갔다.
逆戰而陽敗退어늘 延等 因拔圍入城이러니 明日 大出兵合圍
동헌이 이들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주하자, 갑연 등은 인하여 포위를 풀고 성으로 들어갔는데, 다음 날 동헌이 크게 병력을 내어 사방을 포위하였다.
延等하여 遽出突走하여 因往攻郯한대 帝讓之曰 間欲先赴郯者 以其不意故耳注+間, 謂近間也.
갑연 등이 두려워하여 급히 성을 나와 달아나서 그 길로 담현으로 가서 공격하려 하자, 황제가 책망하기를 “근일에 내가 먼저 담현으로 달려가라 했던 것은 그들이 담현으로 올 것을 생각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注+근간近間을 이른다.
今旣奔走 賊計已立하니 圍豈可解乎 延等 至郯하여 果不能克하니 而董憲 遂拔蘭陵하고 殺賁休하다
이제 달아나서 적의 계책이 이미 수립되었으니, 포위를 어찌 풀 수 있겠는가.” 하였다. 갑연 등이 담현에 이르렀으나 과연 이기지 못하니, 동헌이 난릉蘭陵을 함락하고 분휴를 죽였다.
八月 帝如壽春하여 遣將軍馬成하여 擊李憲하다 九月 圍舒注+地理志 “廬江郡, 治舒縣.”하다
】 8월에 황제가 수춘壽春에 가서 장군 마성將軍 馬成을 보내 이헌李憲을 공격하였다. 9월에 서현舒縣을 포위하였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여강군廬江郡서현舒縣에 치소를 두었다.” 하였다.
◑以侯霸爲尙書令하다
후패侯霸상서령尙書令으로 삼았다.
王莽末 天下亂이로되 臨淮大尹侯霸 獨能保全其郡이어늘 帝徵霸하여 會壽春하여 拜尙書令하다
왕망王莽의 말년에 천하가 혼란하였으나, 임회대윤 후패臨淮大尹 侯霸가 홀로 그 을 잘 보전하니, 황제가 후패를 불러 수춘壽春에서 만나 상서령尙書令을 제수하였다.
朝廷 無故典하고 又少舊臣이러니 霸明習故事하고 收錄遺文하여 條奏前世善政法度하여 施行之하다
이때에 조정에는 옛 전고가 없고 또 경력이 오랜 신하가 적었는데, 후패가 고사故事를 밝게 익히고 유문遺文을 거두어 기록해서 전대前代의 좋은 정사와 법도를 조목별로 아뢰어서 시행하게 하였다.
冬十月 帝還宮하다
】 겨울 10월에 황제가 환궁하였다.
◑隗囂遣馬援하여 奉書入見하다
외효隗囂마원馬援을 보내 상주하는 글을 받들고 들어와 뵙게 하였다.
隗囂使馬援으로 往觀公孫述한대 與述舊同里閈하여 相善注+援與述, 皆茂陵人.이라 以爲旣至 當握手歡如平生이러니
외효隗囂마원馬援을 보내 공손술公孫述을 만나게 하였다. 마원은 옛날에 공손술과 같은 마을에 살아서 서로 친하였으므로注+마원馬援공손술公孫述은 모두 무릉茂陵 사람이다. 자신이 가면 마땅히 손을 잡고 평소처럼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而述 盛陳陛衛하여 以延援入하고 交拜禮畢 使出就館注+陛衛, 於階陛間, 大布儀衛也.이라가
그러나 공손술은 섬돌 사이에 호위병을 성대하게 진열하여 마원을 맞이해 들이고는 서로 절하는 가 끝나자 마원을 관사로 나가게 하였다.注+폐위陛衛”는 섬돌 사이에 의장儀仗과 호위병을 성대하게 진열한 것이다.
更爲援制都布單衣, 交讓冠하여 會百官於宗廟中하여 立舊交之位注+爲, 去聲. 東觀記曰 “都, 作答, 答布, 白疊布也.” 南史 “高昌國, 有草實如繭, , 名曰白疊.” 單, 通作襌, 竝音丹. 襌衣, 若朝服中單也. 交讓冠, 蓋講賓主禮相見之冠.”하고
그러고는 다시 마원에게 도포단의都布單衣교양관交讓冠을 만들어주고서 종묘宗廟백관百官들을 모아놓고 옛 친구의 자리를 세웠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동관한기東觀漢記≫에 “으로 써야 하니, 답포答布백첩포白疊布이다.” 하였다. ≪남사南史≫에 “고창국高昌國에 누에고치와 비슷한 풀 열매가 있는데, 고치 안의 실이 가는 실과 같으니, 이름을 백첩白疊이라 한다.” 하였다. 과 통하는데, 모두 음이 이니, 단의襌衣조복朝服중단中單(조복朝服 안에 받쳐 입는 옷)과 같다. 교양관交讓冠은 손님과 주인의 로 서로 만나보는 것을 익힐 때 쓰는 관이다.” 하였다.
鸞旗旄騎 警蹕就車하고 磬折而入注+旄, 音毛. 旄騎, 旄頭騎也. 乘輿黃麾內, 羽仗班弓, 左罼右罕, 執罼者, 冠熊皮冠, 謂之旄頭. 魏文帝列異傳曰 “秦文公時, 梓樹化爲牛, 以騎擊之, 騎不勝, 或墮地, 䯻解被髮, 牛畏之入水, 故秦因是置旄頭騎, 使先驅.” 磬折, 屈身如磬之曲折, 敬也.하니 禮饗 官屬甚盛이러라
공손술이 난기鸞旗모기旄騎하여 수레에 나아가고 허리를 굽혀 경례[경절磬折]하고 들어왔으며注+는 음이 이니 모기旄騎모두기旄頭騎이다. 승여乘輿황휘黃麾 안에 우장羽仗(금군禁軍의장儀仗)과 궁전수弓箭手가 있으며, 을 잡은 자는 곰 가죽 관을 쓰니, 이것을 라 한다. 위 문제魏 文帝의 ≪열이전列異傳≫에 “나라 문공文公 때에 가래나무가 변하여 소가 되자, 기병이 이를 공격하였다. 기병이 이기지 못하여 혹 땅에 쓰러졌는데, 머리털이 풀려 온통 산발이 되니, 소가 이것을 두려워하여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나라는 이로 인하여 모두기旄頭騎를 두어서 선구先驅로 삼았다.” 하였다. “경절磬折”은 경쇠의 굽은 모양처럼 몸을 굽히는 것이니, 공경함이다. 로 연향할 적에 관속들이 매우 성대하였다.
欲授援以封侯大將軍位한대 賓客 皆樂留어늘 曉之曰 天下雌雄未定이어늘 公孫 不吐哺走迎國士하여 與圖成敗하고
공손술公孫述마원馬援에게 후작侯爵을 봉하고 대장군大將軍의 지위를 제수하려 하자, 빈객들은 모두 마원이 그대로 머물기를 바랐으나, 마원이 이들을 타이르기를 “천하가 아직 자웅雌雄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먹던 밥을 뱉고 달려와 국사國士를 맞이해서 함께 성패成敗를 도모하지 않고,
反修飾邊幅하여 如偶人形하니 此子何足久稽天下士乎注+周公戒伯禽曰 “我嘗一沐三捉髮, 一飯三吐哺, 起以待士, 猶恐失天下之賢人.” 修飾邊幅, 言若布帛之修整邊輻也. 偶人, 刻木爲人, 象人之形. 稽, 音鷄, 留也.아하고
도리어 겉치레를 하여 허수아비와 같으니, 이 사람이 어찌 천하의 훌륭한 선비를 오랫동안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注+주공周公이 아들 백금伯禽에게 경계하기를 “내 일찍이 한 번 머리를 감을 적에 세 번이나 상투를 움켜쥐었고, 한 번 밥 먹을 적에 세 번이나 먹던 밥을 뱉고 일어나 선비를 대우하면서도, 천하의 현인賢人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하였다. “수식변폭修飾邊幅”은 마치 포백布帛의 가장자리를 꾸미는 것처럼 겉모습을 꾸밈을 말한 것이다. 우인偶人은 나무를 조각하여 사람을 만들어서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이다. 는 음이 이니 머무름이다. 하고는
因辭歸하여 謂囂曰 子陽 井底蛙耳 而妄自尊大하니 不如專意東方注+井底蛙, 言述志識褊狹, 如坎井之蛙, 所見者小也. 東方, 謂雒陽也.이러이다
그대로 하직하고 돌아와서 외효隗囂에게 이르기를 “자양子陽(공손술)은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망령되이 자신을 높이고 큰 체하니, 동방東方(낙양)에 전념하는 것만 못합니다.”注+정저와井底蛙”는 공손술公孫述의 뜻과 식견이 편협해서 마치 구덩이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본 바가 적음을 말한 것이다. 동방東方낙양雒陽을 이른다. 하였다.
囂乃使援奉書雒陽하다 初到하여 良久 中黃門引入이라 帝在宣德殿南廡下注+廡, 音武, 堂下周屋也.하여 但幘坐라가 迎笑하고
외효隗囂가 이에 마원馬援낙양雒陽에 보내 글을 받들어 올리게 하였다. 마원이 처음 도착하자, 한참 후에 중황문中黃門이 인도하여 맞아들였는데, 황제는 선덕전宣德殿 남쪽 회랑 아래에서注+는 음이 이니 아래에 둘러 있는 회랑이다. 만 쓰고 앉아 있다가 웃으면서 맞이하였다.
謂援曰 卿 遨遊二帝間하니 今見卿 使人大慙注+二帝, 指述與己也. 慙, 自慙德薄而稱帝也.이로다
그러고는 마원에게 이르기를 “이 두 황제의 사이에서 분주히 오가니, 내가 지금 을 만남에 몹시 부끄럽다.”注+이제二帝”는 공손술公孫述과 자신을 지칭한 것이다. 은 덕이 적으면서 황제를 칭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한 것이다. 하였다.
頓首辭謝하고 因曰 當今之世에는 非但君擇臣이라 臣亦擇君矣니이다
마원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는 군주만 신하를 가려서 쓰는 것이 아니라 신하 또한 군주를 가려서 섬깁니다.
與公孫述同縣하여 少相善이러니 臣前至蜀 陛戟而後 進臣이어늘 臣今遠來 陛下何知非刺客姦人하여 而簡易若是니잇고
공손술公孫述과 한 고을에 살아서 젊은 시절 친한 사이였는데도, 이 지난번 에 갔을 적에 공손술은 섬돌 사이에 창을 잡은 호위병을 진열한 뒤에야 을 나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제 멀리서 왔는데도, 폐하께서는 어찌 제가 자객이나 간사한 사람이 아닌 줄을 아시고서 이와 같이 소탈하게 대하십니까?” 하였다.
帝復笑曰 卿非刺客이요 顧說客耳로다 援曰 天下反覆하여 盜名字者 不可勝數注+盜名字, 謂僭竊位號, 稱帝稱王也.
황제가 다시 웃으며 말하기를 “은 자객이 아니라, 다만 유세하러 온 선비일 뿐이다.” 하였다. 마원이 말하기를 “천하가 뒤집어져서 제왕의 명칭을 도둑질한 자를 이루 셀 수가 없습니다.注+도명자盜名字”는 지위와 칭호를 참람하게 도둑질하여 라 칭하고 이라고 칭함을 이른다.
今見陛下호니 恢廓大度同符高祖하시니 乃知帝王自有眞也注+恢廓, 廣大貌. 同符高祖, 言與高祖若合符節也.로이다
그런데 이제 폐하를 뵈니, 넓고 큰 도량이 고조高祖와 똑같으시니, 이제야 비로소 제왕帝王은 본래 진짜 제왕이 있음을 알겠습니다.”注+회확恢廓”은 광대한 모양이다. “동부고조同符高祖”는 부절符節을 합한 것처럼 고조高祖와 똑같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太傅褒德侯卓茂卒하다
태부太傅포덕후 탁무褒德侯 卓茂하였다.
◑十二月 帝如黎丘하여 遣將軍朱祜하여 圍秦豐하고 岑彭 擊田戎하다
】 12월에 황제가 여구黎丘에 가서 장군 주호將軍 朱祜를 보내 진풍秦豐을 포위하고, 잠팽岑彭을 보내 전융田戎을 공격하였다.
岑彭 攻秦豐三歲 斬首九萬餘級하니 豐餘兵 裁千人이요 食且盡이라
잠팽岑彭진풍秦豐을 공격한 지 3년에 9만여 명의 수급을 베니, 진풍은 남은 병력이 겨우 천여 명에, 식량도 장차 다하게 되었다.
帝幸黎丘하여 遣使招豐호되 不肯降이어늘 乃使朱祜等으로 代岑彭圍黎丘하고 使岑彭, 傅俊으로 南擊田戎하다
황제가 여구黎丘에 행차하여 사신을 보내 진풍을 불렀으나 진풍이 항복하려 하지 않자, 마침내 주호朱祜 등으로 하여금 잠팽을 대신하여 여구黎丘를 포위하게 하고, 잠팽岑彭부준傅俊으로 하여금 남쪽으로 전융田戎을 공격하게 하였다.
공손술公孫述이 군대를 보내 진창陳倉에 주둔하자 외효隗囂가 군대를 보내 풍이馮異를 도와서 그를 격파하였고, 공손술이 사신을 보내 외효를 부르자 외효가 그 사신을 참수하였다.
公孫述 聚兵數十萬人하고 積糧漢中하며 又造十層樓船하고 多刻天下牧守印章하다
공손술公孫述이 수십만의 병력을 모으고 한중漢中에 식량을 저축하였으며, 또 10층의 누선樓船을 만들고 천하天下주목州牧군수郡守들의 인장印章을 많이 새겨놓았다.
遣將軍李育, 程烏하여 將數萬衆하여 出屯陳倉하고 就呂鮪하여 將徇三輔러니 馮異迎擊하여 大破之注+時, 鮪據陳倉, 遣使降蜀.하다
그러고는 장군 이육將軍 李育정오程烏를 보내 수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나가 진창陳倉에 주둔하게 한 다음 여유呂鮪(여유)에게 가서 장차 삼보三輔(장안長安) 지역을 순행하려 하였는데, 풍이馮異가 공손술을 맞아 공격해서 대파하였다.注+이때에 여유呂鮪진창陳倉을 점거하였는데, 사신을 보내 에 항복하였다.
是時 隗囂遣兵佐異有功하고 遣使上狀이어늘 帝報以手書曰 將軍 南拒公孫之兵하고 御羌, 胡之亂注+御, 讀曰禦.이라
이때에 외효隗囂가 군대를 보내 풍이를 도와 공을 세우고, 사신을 보내 글을 올리자 황제가 친서로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장군이 남쪽으로는 공손술의 군대를 막고 북쪽으로는 강족羌族호족胡族(흉노匈奴)의 을 막았다.注+(막다)는 로 읽는다.
是以 馮異西征 得以數千百人으로 躑躅三輔注+躑, 直昔切. 躅, 直錄切. 躑躅, 猶踟躕也, 又跳也.하니 微將軍之助 則咸陽已爲它人禽矣리라
이 때문에 풍이가 서쪽으로 정벌함에 겨우 수천 수백 명을 가지고 삼보三輔 지역에 머물 수 있었으니注+직석直昔이고 직록直錄이니, “척촉躑躅”은 머뭇거림과 같고 또 뜀이다., 장군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함양咸陽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제압당하였을 것이다.
如令子陽到漢中三輔 願因將軍兵馬하여 鼓旗相當이니 儻肯如言이면 卽智士計功割地之秋也니라
만일 자양子陽(공손술)이 한중漢中삼보三輔에 이른다면 장군의 군대와 말을 이용하여 깃발과 북으로 서로 맞이하기를 원하노니, 진실로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하고자 한다면 바로 지사智士을 계산하고 땅을 떼어 받을 기회이다.”
其後 公孫述 數遣將間出이어늘 囂輒與馮異合勢하여 共摧挫之注+折其鋒曰挫.하다
】 그 뒤에 공손술公孫述이 여러 번 장군을 보내 간간이 출동하였는데, 외효隗囂가 번번이 풍이馮異와 합세하여 그 예봉을 꺾었다.注+그 예봉을 꺾는 것을 라 한다.
遣使하여 以大司空, 扶安王印綬授囂注+扶安, 謂相扶助而安也.어늘 囂斬其使하고 出兵擊之 以故 蜀兵 不復北出하니라
공손술이 사신을 보내 대사공大司空부안왕扶安王인수印綬를 외효에게 주었으나注+부안扶安”은 서로 부조扶助하여 편안함을 이른다., 외효는 그 사신을 참수하고 군대를 내어 공격하였다. 이 때문에 의 군대가 다시는 북쪽으로 진출하지 못하였다.
以陳俊爲泰山太守注+泰山豪傑, 多與張步連兵, 吳漢薦陳俊爲太守, 擊破步兵, 遂定泰山.하다
진준陳俊태산태수泰山太守로 삼았다.注+태산泰山의 호걸 중에 장보張步와 병력을 연합한 자가 많았는데, 오한吳漢진준陳俊을 천거하여 태수太守로 삼아서 장보의 군대를 격파하고 마침내 태산泰山 지역을 평정하였다.
역주
역주1 적이……공격한다 : 이 내용은 ≪孫子≫ 〈虛實〉의 “우리가 싸우고자 하면 적이 비록 堡壘를 높이 쌓고 塹壕를 깊이 파더라도 우리와 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는 우리가 적이 반드시 구원할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다.[我欲戰 敵雖高壘深溝 不得不與我戰者 攻其所必救也]”라고 한 데에 보인다.
역주2 警蹕(경필) : 고대에 天子가 거둥할 적에 行人의 통행을 금지하는 것으로, 곧 辟除를 가리킨다. ≪漢書≫ 권47 〈文三王傳〉에 “梁孝王은 나갈 적에 警이라 일컫고 들어올 적에 䟆이라 말하였다.[出稱警 入言䟆]”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顔師古의 注에 “警이란 경계하여 엄숙히 함이고 䟆은 행인을 금지함이다. 出入을 각각 말한 것은 互文일 뿐이니, 나갈 적에도 䟆이 있다. ≪漢官儀≫의 주에 ‘황제의 輦이 거둥하면 帷幄에서 모시는 좌우의 近臣이 警이라 일컫고, 殿을 나오면 蹕이라 전하여 행인의 통행을 금지해 길을 깨끗이 한다.[警者 戒肅也 䟆 止行人也 言出入者 互文耳 出亦有䟆 漢儀注 皇帝輦動左右侍帷幄者稱警 出殿則傳蹕 止人淸道也]’”라고 설명하였다. 警은 儆으로도 적으며, 蹕은 驆 또는 䟆로도 적는다.
역주3 왼쪽은……罕인데 : 罼과 罕은 본래 새나 토끼 등 작은 짐승을 잡는 데 쓰는 그물의 명칭으로, 고대 제왕이 출행할 때에 행렬의 전면에 세우는 일종의 儀仗旗이다. ≪宋史≫ 권148 〈儀衛志〉에 의하면, 罼과 罕은 ‘하늘의 畢宿와 昴宿가 天階가 됨[畢昴爲天階]’을 상징하는 것으로, 모두 적색 바탕에 金銅으로 장식하고 朱藤을 사용하여 그물을 짜는데, 罕은 方形으로 위에 紅絲를 물린 두 개의 螭首가 있고, 罼은 圓形으로 扇과 같다고 한다. 罕은 䍐으로도 적는다.
역주4 旄頭 : ‘髦頭’라고도 적는바, 帝王이 거둥할 때의 儀仗에 있어서 전면에 배열된 자들이 착용하는 冠服을 가리킨다. ≪北堂書鈔≫ 권130 〈儀飾部 髦頭〉에 인용된 南朝 宋나라 徐爰의 ≪釋疑略注≫에 “승여는 황휘로 장식하는데 안에 羽林(禁衛軍)이 있고 弓箭手를 나열하며 왼쪽은 罼(필)이고 오른쪽은 罕인데 罼과 罕을 잡은 자는 곰 가죽 관을 쓰니, 이것을 髦頭라 한다. 그러므로 執事로 하여금 皮冠을 쓰게 하여서 그 이름을 따른 것이다.[乘輿黃麾 內羽林 班弓箭 左罼右罕 執罼罕者 冠熊皮冠 謂之髦頭 故使執事戴皮冠 以倣其名]”라고 보인다.
역주5 [繭]中絲(爲)[如]細纑 : 저본에는 “中絲爲細纑”라고 되어 있으나, ≪南史≫에 의거하여 “繭中絲如細纑”로 바로잡았다.
역주6 (前)[箭] : 저본에는 ‘前’으로 되어 있으나, ≪御批資治通鑑綱目≫에 의거하여 ‘箭’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隗囂遣兵……囂斬其使 : “君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그 종말의 나쁜 것을 가지고 그 처음의 善함마저 없애지 않는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쓴 것을 보면 ‘隗囂가 군대를 보내 馮異를 도왔다.’고 한 것과 ‘公孫述이 사신을 보내 외효를 부르자 외효가 그의 사신을 참수하였다.’라는 등의 말은 모두 외효를 허여하는 뜻을 보여준 것이니, 만일 외효가 시종 이와 같이 했다면 또한 어찌 불가할 것이 있었겠는가. 애석하다.[君子樂於成人之美 故不以其終焉之惡 而倂沒其始焉之善 觀綱目所書 隗囂遣兵助馮異 與夫公孫述遣使招囂 囂斬其使等語 皆所以示予之之意也 使囂始終若此 亦何不可之有 惜哉]” ≪發明≫
역주8 (比)[北] : 저본에는 ‘比’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北’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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