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삼아 앞서 가서 궁궐을 수리하게 하니注+사예교위司隷校尉는 삼보三輔와 삼하三河(하남河南․하동河東․하북河北), 홍농弘農을 살폈으므로 유수劉秀로 하여금 앞서 가서 궁궐을 수리하게 한 것이다., 유수는 마침내 관속을 두고 공문公文을 만들어서 속현屬縣에 돌리고 종사사從事史를 두어 사무를 맡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한결같이 옛 법과 똑같게 하였다.注+“문이文移”는 문서文書를 속현屬縣에 돌리는 것을 이른다. ≪속한서續漢書≫에 “사예교위司隷校尉는 종사사從事史 12명을 두니, 문서를 독촉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를 감찰, 검거하는 일을 주관한다.” 하였다.
이때 삼보三輔 지역의 관리와 군사들이 동쪽으로 경시를 맞이할 적에, 지나가는 장수들이 책관幘冠(책관)을 쓰고 부인婦人의 의복을 입은 것을 보고는 비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동영東迎’ 아래에 ‘경시更始’ 두 글자가 있다. 책幘은 측혁側革의 절切로 두건頭巾이니, 혹은 승로承露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관冠만 있고 책幘은 없었다. 책幘은 비천한 자가 일을 할 때 관을 쓰지 않는 경우에 착용하던 것이었는데, 그 뒤에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모두 착용하였고, 점차 안제顔題(두건의 이마 부분을 덮는 것)를 만들었는데, 문신文臣은 귀를 길게 하고 무신武臣은 귀를 짧게 하였다.
그러나 사예교위司隷校尉의 관속을 보고는 모두 기쁨을 절로 가누지 못하여, 늙은 관리들은 더러 눈물을 떨구며 말하기를 “오늘날에 다시 한漢나라 관리의 위의威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니,
이로 말미암아 식자識者들이 모두 유수에게 마음을 두었다.注+촉屬은 음이 촉燭이니 주목함이다. 경시가 마침내 북쪽으로 낙양洛陽에 도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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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사자使者를 나누어 보내 군국郡國을 순행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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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경시更始가 사자使者를 나누어 보내 군국郡國을 순행하게 하고 “먼저 항복하는 자는 작위를 회복시켜주겠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사자가 상곡上谷에 이르자 상곡태수 경황上谷太守 耿況이 맞이하여 인수印綬를 올렸는데, 사자는 인수를 받고 하룻밤을 묵었는데도 작위를 돌려줄 뜻이 없었다.注+〈“무환의無還意”는〉 작위를 돌려줄 뜻이 없음을 이른다.
공조 구순功曹 寇恂이 군대를 무장하고 들어가 사자를 보고 말하기를注+군郡의 공조功曹는 공로에 따라 사람을 선발하여 임용하는 일을 주관하니, 여러 조曹의 위에 있었다. 순恂은 음이 순荀이니, 구순寇恂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천하가 이제 막 안정됨에 사군使君이 부절符節을 세우고 황제의 명命을 가지고 오시니, 군국郡國의 사람들이 모두 목을 늘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처음 상곡에 이르러 먼저 큰 신의를 훼손하니, 장차 다시 무엇으로 다른 군郡을 호령하시겠습니까?”注+휴墮는 휴隳로 읽으니, 훼손함이다. 하였다.
사자가 응하지 않자, 구순이 좌우를 질책하여 사자의 명命으로 경황을 불러 인수를 가져다가 차게 하니, 이에 사자가 마지못해 제制(조령詔令)를 받들어 명하였다.注+“승제承制”는 제制(황제의 명령)를 받들어 명함을 말하니, 부절符節을 잡은 자는 제制를 받들어 상벌賞罰을 마음대로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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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팽총彭寵을 어양태수漁陽太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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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완宛 사람 팽총彭寵과 오한吳漢이 망명하여 어양漁陽에 있었는데, 한홍韓鴻이 경시更始의 사자使者가 되어 북쪽의 주州를 순행할 적에, 제制를 받들어 팽총을 어양태수漁陽太守로 임명하고 오한을 안락령安樂令으로 삼았다.注+안락安樂은 현縣의 이름이니 어양군漁陽郡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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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번숭樊崇이 한漢나라에 항복하였었는데, 얼마 후에 도망하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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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경시更始가 적미赤眉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항복하게 하자注+〈“견사항적미遣使降赤眉”는〉 사자使者를 보내 초유招諭해서 적미赤眉로 하여금 항복하고 병기를 버리게 한 것이다., 번숭樊崇 등이 한漢나라가 부흥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병사들은 남겨두고 직접 우두머리[거수渠帥] 20여 명을 거느리고 사자를 따라 낙양洛陽에 이르렀다.
이들을 모두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았으나 국읍國邑을 소유하지 못하여 남아 있던 무리들(적미赤眉)이 점차 이반하자, 마침내 번숭 등이 도망하여 돌아갔다.
【목目】 경시更始가 〈가까이 대하는〉 대장大將으로 하여금 하북河北 지역을 순행하게 하자, 대사도 유사大司徒 劉賜가 말하기를 “여러 종친의 자제 중에 유독 문숙文叔(유수劉秀)은 등용할 만합니다.”注+유사劉賜와 경시更始는 똑같이 창오태수 유리蒼梧太守 劉利의 손자이다. “제가자諸家子”는 남양南陽의 여러 종친의 자제들을 이른다. 문숙文叔은 유수劉秀의 자이다. 하였다.
주유朱鮪 등은 불가하다 하였으나 유사가 굳이 권하여 마침내 유수劉秀를 행대사마사行大司馬事로 임명하여 부절符節을 잡고 북쪽으로 하수河水를 건너 주군州郡을 진무하고 위로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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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유사劉賜를 승상丞相으로 삼아서 관중關中(장안長安)에 들어가 종묘宗廟와 궁실宮室을 수리하게 하였다.注+장차 장안長安에 도읍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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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대사마 유수大司馬 劉秀가 하북河北 지역에 이르러 왕망王莽의 가혹한 정사를 없애고 한漢나라의 관명官名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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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대사마 유수大司馬 劉秀가 하북河北 지역에 이르러 지나는 군현郡縣마다 관리들을 고찰考察해서 유능한 자를 올리고 유능하지 못한 자를 내치며, 수도囚徒들을 공평하게 판별하여 내보내고, 왕망王莽의 가혹한 정사를 제거하고 한漢나라의 관명官名을 회복하였다.注+평平(공평하다)은 음이 병病이다. 견遣은 석방하여 보냄이다. 수도囚徒는 형틀에 매인 채 복역하는 자이다.
관리와 백성들이 기뻐하여 다투어 소와 술을 가지고 와서 맞이하여 위로하였으나, 유수는 모두 받지 않았다.注+노勞(위로하다)는 거성去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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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남양南陽의 등우鄧禹가 말채찍을 잡고 유수劉秀를 따라 업鄴에 이르자注+장杖은 잡음이고, 책策은 말채찍이다. 등우鄧禹는 나이 13세에 ≪시경詩經≫을 외웠다. 장안長安에서 수업受業할 당시 광무제光武帝 역시 경사京師에서 유학游學하였는데, 등우는 나이가 어림에도 광무제를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는 마침내 가까이 따랐다., 유수는 “내가 작위를 봉하고 관직을 임명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생生이 멀리서 온 것은 벼슬하고자 해서가 아닌가?”注+“득전봉배得專封拜”는 스스로 관직을 제수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생生은 등우鄧禹를 이른다. 하니, 등우는 “원치 않습니다.” 하였다.
유수가 말하기를 “만일 그렇다면, 무엇을 바라는가?”注+글에 위爲자 하나가 더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욕하위欲何爲라 해야 할 것이다. 하니, 등우는 “다만 명공明公의 위엄과 덕德이 사해四海에 더해짐에, 제가 척촌尺寸의 공功을 바쳐 공명功名을 죽백竹帛에 남기고자 합니다.” 하였다.
유수가 웃고는 그대로 함께 유숙하면서 한담閑談을 나누었는데注+한閒(한가하다)은 음이 한閑이다. 유숙하는 곳으로 나가 머물면서 한가할 때에 한담을 나누기를 기다린 것이다., 등우가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注+세說(유세하다)는 수예輸芮의 절切이다.
鄧禹(≪雲臺三十二將圖≫)
“지금 산동山東 지역이 안정되지 못해서 적미赤眉와 청독靑犢의 무리들이 번번이 만 명으로 헤아려지고注+청독靑犢 또한 도적의 칭호이다.,
경시更始는 용렬한 재주를 타고나서 직접 정사를 결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수들은 모두 갑자기 일어난 용렬한 사람들로 재물과 폐백에만 뜻을 두고 위엄과 무력을 다투어 사용하여 당장 스스로 만족하게 할 뿐注+굴屈은 혹 굴崛로 쓰니, 갑자기 솟아난 것을 굴기崛起라 한다.,
충량忠良과 밝은 지혜, 깊은 사려와 먼 도모가 있어서 군주를 높이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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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옛날 성인聖人이 일어난 것을 낱낱이 살펴보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 두 가지일 뿐입니다.
지금 천시天時를 가지고 관찰하건대 경시更始가 이미 섰는데도 재변災變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또 인사人事를 가지고 관찰하건대 제왕帝王의 대업大業은 범상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注+임任은 음이 임壬이니 맡음이다.
나라가 분열되고 와해되어서 형세를 알 수 있으니, 명공明公이 비록 나라의 울타리가 되고 보좌할[번보藩輔] 공功을 세웠으나, 행여 성취할 바가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注+번藩은 번병藩屛(울타리)이니, 제후를 세우는 것은 나라의 울타리로 삼으려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더구나 명공明公은 본래 성대한 덕德과 큰 공功이 있어서 천하 사람들이 향하고 복종하는 분이시고, 군정軍政이 정제整齊하고 엄숙하며 상벌賞罰이 분명하고 미더우니,
지금을 위한 계책으로는, 영웅들을 맞이하고 민심을 기쁘게 해서 고조高祖의 기업基業을 세우고 만민의 목숨을 구원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공公의 입장에서 생각건대 천하는 굳이 평정할 것이 못 됩니다.”注+공公은 유수劉秀를 칭한다. 여慮는 도모하고 생각함이다.
유수劉秀가 크게 기뻐하고는 등우鄧禹를 항상 장막 안에 머물게 하고서 그와 함께 계책과 의논을 결정하였다.注+중中은 막부幕府 안을 이른다. 또 매번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부릴 적에 대부분 등우에게 물었는데, 모두 그들의 재주에 합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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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유수劉秀는 형 유연劉縯이 죽은 뒤로 홀로 거처할 적에는 번번이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고, 베개와 누운 자리에 눈물을 흘린 자국이 있었다.注+곁에 모시는 사람이 없으므로 독거獨居라 한 것이다. 어御는 올림이다.
주부 풍이主簿 馮異가 홀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서 너그럽게 타이르고注+풍이馮異가 보성父城에서 돌아온 뒤로 광무제光武帝가 사예주부司隷主簿로 삼았었는데, 하수河水를 건너가자 대사마주부大司馬主簿로 삼았다. 관寬은 풀어줌이고 비譬는 깨우침이니, 〈“관비寬譬”는〉 비유하고 깨우쳐서 그의 슬픈 마음을 너그럽게 풀어준 것이다. 이어서 설득하기를 “경시更始의 정사가 혼란하여 백성들이 의지할 곳이 없으니, 사람들이 오래 굶주리고 목마르면 배를 채워 배부르게 해주기가 쉽습니다.
마땅히 관속들을 나누어 보내 군현郡縣을 순행해서 나라의 혜택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니, 유수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기도위 경순騎都尉 耿純이 유수를 뵙고 물러날 적에 유수의 관속과 장병들의 법도가 여타의 장수와 다른 것을 보고 마침내 스스로 교분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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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12월에 왕랑王郞이 한단邯鄲(한단)에서 황제를 칭하고, 유幽와 기冀를 순행하여 함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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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유림劉林이 유수劉秀에게 열인列人을 지나는 하수河水를 터서 적미赤眉에게 물을 주입시키라고 설득하였는데, 유수가 따르지 않자 진정眞定으로 떠나갔다.注+유림劉林은 조경숙왕 유팽조趙敬肅王 劉彭祖의 6대손代孫인 유원劉元의 아들이다. 열인현列人縣은 거록군鉅鹿郡에 속하였다. 진정眞定은 현縣의 이름이니 진정국眞定國에 속하였다. 유림은 평소 조趙, 위魏 사이에서 임협任俠으로 지냈다.
왕망王莽 때에 장안長安에서 성제成帝의 아들 자여子輿라고 자칭하는 자가 있었는데, 왕망이 그를 죽였다. 한단邯鄲의 점쟁이인 왕랑王郞이 이를 빌미로 자신이 진짜 자여라고 사칭하였다.注+왕랑王郞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니, 일명 왕창王昌이다.
유림 등이 이 말을 믿고 조趙의 대호大豪인 이육李育 등과 함께 한단邯鄲에 들어가서 왕랑을 천자天子로 세우고 유幽와 기冀를 순행하여 점령하니, 주군州郡이 모두 호응하였다.注+순徇은 군대를 순행巡行하면서 명령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下는 군대의 위엄으로 굴복시키는 것이다.
역주
역주1行司隷校尉 :
漢代 兼職의 경우 行官과 守官이 있는데, 行官은 해당 관직에 관리가 부재시 임시로 다른 관리가 해당 직을 겸임하는 것이다. 守官은 1년 동안 임시로 관직을 맡아서 그 재능을 시험해보고 합당하면 그 관직에 임명하는 것이다.(大庭脩, ≪秦漢法制史の硏究≫, 倉文社, 1982)
역주4大司馬秀至河北 除莽苛政 :
“특별히 쓴 것이다. 沛公이 咸陽에 들어갔을 적에 ‘秦나라의 가혹한 법을 없앴다.’라고 썼고, 大司馬 劉秀가 河北에 이르렀을 적에 ‘王莽의 가혹한 정사를 없앴다.’라고 썼으니, 漢나라가 중흥한 것이 당연하다.[特筆也 沛公之入咸陽也 書除秦苛法 大司馬之至河北也 書除莽苛政 漢之中興 宜哉]” ≪書法≫ “帝王이 일어났을 적에 그 행동과 기상에는 반드시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점이 있다. 漢 高祖가 關中에 들어간 초기에 秦나라의 가혹한 법을 제거한 것과 世祖 光武帝가 河北 지역을 순행하는 날에 王莽의 가혹한 정사를 제거한 것을 보면, 區區하게 사슴을 쫓아 황제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무리와 어찌 똑같은 기준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中國에 제사하여 하늘과 짝하게 해서 선대의 문물제도를 잃지 않은 것이 어찌 우연한 연고이겠는가. 이것을 써서 찬미함이 당연하다.[帝王之興 其施爲氣象 必有大過人者 觀漢祖入關之始 除秦苛法 與世祖徇河北之日 除莽苛政 則區區逐鹿爭雄之徒 豈可同日而語 然則祀夏配天 不失舊物 亦豈偶然之故哉 書以美之宜也]” ≪發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