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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0)

자치통감강목(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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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年(195)
을해년乙亥年(195)
二年이라 春正月 曹操敗呂布於定陶하다
나라 효헌황제 흥평孝獻皇帝 興平 2년이다. 봄 정월에 조조曹操정도定陶에서 여포呂布를 패퇴시켰다.
卽拜袁紹爲右將軍注+時紹在鄴, 就鄴拜之.
하다
】 현지(업성鄴城)에서 원소袁紹우장군右將軍에 임명하였다.注+당시에 원소袁紹업성鄴城에 있었으므로 업성에 나아가 그를 임명한 것이다.
◑二月 李傕 殺樊稠, 攻郭汜하고 劫帝하여 入其營하다
】 2월에 이각李傕(이각)이 번주樊稠(번조)를 죽이고 곽사郭汜(곽사)를 공격하고, 황제를 겁박하여 자기 군영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董卓 初死 三輔民 尙數十萬戶 傕等 放兵劫掠하고 加以飢饉하니 二年之間 民相食略盡이러라
동탁董卓이 죽은 초기에는 삼보三輔 지역의 백성이 아직도 수십만 가호家戶나 되었는데, 이각李傕 등이 군대를 풀어놓아 약탈을 자행한 데다가 기근까지 닥치니, 2년 사이에 백성이 서로 잡아먹어서 거의 다하였다.
李傕, 郭汜, 樊稠 矜功爭權이러니 傕以稠勇而得衆이라하여 忌之하여 請稠會議라가 於坐殺之하니 由是 諸將 轉相疑貳하니라
이각李傕곽사郭汜번주樊稠가 각자 공로를 자랑하여 권력을 다투었는데, 이각은 번조가 용맹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고 생각해서 그를 꺼려 번조를 청하여 모여서 의논하다가 그 자리에서 그를 죽였다. 이로 말미암아 장수들이 더욱 서로 의심하여 배반하였다.
傕, 汜 各治兵相攻할새 遂將兵圍宮하여 以車三乘迎帝하고
이각李傕곽사郭汜가 각자 군대를 정비하고 서로 공격할 적에 이각이 마침내 군대를 거느려 궁을 포위하고서 수레 세 대로 황제를 〈자기의 군영으로〉 맞이해 가고,
放兵하여 入掠宮人, 御物하며 幷取金帛하고 遂放火하여 燒宮殿, 官府, 居民하여 悉盡하다
군대를 풀어놓아 궁에 들어가 궁인宮人어물御物을 약탈하며 아울러 금과 비단을 취하고 마침내 불을 질러서 궁전宮殿관부官府민가民家를 전부 다 태워 버렸다.
帝復使公卿으로 和傕, 汜注+前帝使侍中ㆍ尙書和傕ㆍ汜, 傕ㆍ汜不從, 故云復使.한대 汜留太尉楊彪, 大司農朱儁等十人하여 以爲質注+質, 音致.하니 憤懣하여 發病死하다
황제가 다시 공경公卿을 보내어 이각과 곽사를 화해시켰는데注+예전에 황제가 시중侍中상서尙書를 보내서 이각李傕곽사郭汜를 화해시켰는데, 이각과 곽사가 이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보냈다[복사復使]’라고 한 것이다., 곽사가 태위 양표太尉 楊彪대사농 주준大司農 朱儁 등 열 명을 억류하여 볼모로 삼으니注+이다., 주준朱儁이 분하고 답답해하여 병이 나서 죽었다.
夏四月 立貴人伏氏爲皇后하다
】 여름 4월에 귀인 복씨貴人 伏氏를 세워 황후皇后로 삼았다.
◑郭汜攻李傕이어늘 遷帝於北塢하다
곽사郭汜이각李傕을 공격하자, 이각이 황제를 북오北塢로 옮겼다.
郭汜議攻李傕이어늘 楊彪曰 群臣共鬪하여 一人 劫天子하고 一人 質公卿 可乎
곽사郭汜이각李傕을 공격하는 일을 상의하였는데, 양표楊彪가 말하기를 “신하들이 함께 다투어 한 사람은 천자天子를 겁박하고 한 사람은 공경公卿을 볼모로 삼으니,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汜怒하여 欲手刃之한대 彪曰 卿 尙不奉國家하니 吾豈求生邪아하니 汜乃止하다
그러자 곽사가 노하여 직접 칼로 치려고 하였는데, 양표가 말하기를 “국가國家(천자天子)도 받들지 않으니 내가 어찌 살기를 구하겠는가.” 하니, 곽사郭汜가 마침내 그만두었다.
召羌, 胡數千하여 以御物與之하고 許以宮人하여 欲令攻汜어늘 汜遂將兵하고 夜攻傕門하여 矢及帝帷러라
이각이 강족羌族호족胡族 수천 명을 불러와서 어물御物을 그들에게 주고 궁인宮人을 주기로 허락하여 곽사를 공격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곽사가 마침내 군대를 거느리고 밤에 이각의 영문營門을 공격하여 화살이 황제의 휘장에까지 날아왔다.
復移乘輿하여 幸北塢注+時帝在南塢, 傕在北塢.하고 使校尉 監塢門하니 內外隔絶하여 侍臣 皆有飢色이라
이각李傕이 다시 승여乘輿(황제)를 옮겨서 북오北塢에 이르고注+당시에 황제는 남오南塢에 있었고 이각李傕북오北塢에 있었다. 교위校尉에게 오문塢門을 감시하게 하니, 안팎이 단절되어서 모시는 신하들이 모두 굶주린 기색을 띠었다.
帝求米及牛骨하여 以賜左右하니 以臭牛骨與之하다
황제가 쌀과 쇠뼈를 요구하여 좌우의 신하들에게 하사하고자 하였는데, 이각이 악취가 나는 쇠뼈를 주었다.
司徒趙溫 與傕書曰 公 前屠陷王城하여 殺戮大臣하고 今爭睚眥之隙하여 以成千鈞之讐注+千鈞, 言重也.
사도 조온司徒 趙溫이각李傕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예전에 왕성王城을 도륙해서 대신大臣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지금 사소한 원한 때문에 곽사郭汜와 다투어서 매우 큰 원수를 만들었다.注+천균千鈞은 무거움을 말한 것이다.
朝廷 欲令和解호되 詔命不行하고 而復欲轉乘輿於黄白城하니 此誠老夫所不解也注+黃白城, 在弘農郡.로라
조정朝廷(황제)이 화해시키고자 하였으나 조령詔令을 시행하지 않고 다시 승여乘輿(황제)를 황백성黄白城으로 옮기고자 하니, 이는 진실로 노부老夫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이다.注+황백성黃白城홍농군弘農郡에 있었다.
於易 一爲過 再爲涉이요 三而弗改하여 滅其頂하니이라하니 不如早共和解注+易大過上六曰 “過涉滅頂, 凶.” 溫依此而分一再三之義.니라
주역周易≫에 ‘잘못을 한 번 함은 가 되고 잘못을 거듭함은 이 되고 잘못을 세 번 하여 고치지 않으면 그 정수리까지 빠지니 하다.’ 하였으니, 빨리 함께 화해하는 것만 못하다.”注+주역周易대과괘 상육효사大過卦 上六爻辭에 “지나치게 건너 정수리까지 빠지니 하다.” 하였는데, 조온趙溫이 이것에 의거하여 의 뜻을 나눈 것이다.
大怒하여 欲殺溫이러니 其弟應 諫之하니 數日 乃止注+應, 溫故掾也.하다
이에 이각이 크게 노하여 조온을 죽이고자 하였는데, 그의 아우 이응李應이 간하니, 며칠 만에 마침내 그만두었다.注+이응李應조온趙溫의 옛 연리掾吏이다.
閏月 帝使謁者僕射皇甫酈으로 和傕, 汜할새 先詣汜하니 汜從命이러니
】 윤5월에 황제가 알자복야 황보력謁者僕射 皇甫酈을 보내어 이각李傕곽사郭汜를 화해시킬 적에 황보력이 먼저 곽사에게 찾아가니 곽사가 명을 따랐는데,
又詣傕하니 不肯하여 曰 君 觀吾方略士衆 足辦郭多否注+郭汜, 一名多. 傕謂汝以我之方略, 我之士衆觀之, 可勝郭汜否乎. 多又劫質公卿이어늘 而君苟欲左右之邪注+左右, 讀曰佐佑.
또다시 이각에게 찾아가니 이각이 명을 따르려고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이 보기에 나의 방략方略과 군대가 충분히 곽다郭多를 제압하겠는가?注+곽사郭汜는 또 다른 이름이 곽다郭多이다. 이각李傕이 이르기를 “네가 나의 방략方略과 나의 군대를 가지고 볼 때에 곽사를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곽다가 또 공경公卿을 겁박하고 볼모로 삼고 있는데, 은 진실로 그를 돕고자 하는가?”注+좌우左右(돕다)는 좌우佐佑로 읽는다. 하자,
酈曰 近者 董公之强 將軍所知也 呂布受恩而反圖之하니 有勇而無謀也일새라
황보력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근자에 동공董公(동탁董卓)의 강함은 장군이 아는 바이다. 여포呂布가 은총을 받고서 도리어 동공을 살해하였으니, 이는 동공이 용맹만 있고 무모하였기 때문이다.
今汜質公卿而將軍脅主하니 誰輕重乎 張濟與汜有謀하고 楊奉 知將軍所爲非是注+奉, 白波賊帥也.하니 將軍 雖寵之 猶不爲用也리라
지금 곽사는 공경公卿을 볼모로 삼고 있고 장군은 천자天子를 협박하고 있으니, 누구의 죄가 가볍고 무거운가? 장제張濟는 곽사와 함께 모의하고 양봉楊奉은 장군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注+양봉楊奉백파적白波賊의 우두머리이다., 장군이 비록 그들을 총애하더라도 장군에게 쓰이지 않을 것이다.”
呵之出하니 詣省門하여 白傕不肯奉詔하고 辭語不順注+省門, 卽禁門也.한대 帝恐傕聞之하여 亟令酈去하다
이각이 황보력을 꾸짖고 내보내니, 황보력이 금문禁門에 이르러 “이각이 조령詔令을 받들려 하지 않고 언사가 공손하지 못하였습니다.”注+성문省門”은 바로 금문禁門이다. 하고 아뢰었다. 황제는 이 말을 이각이 들을까 두려워 급히 황보력에게 떠나가도록 명하였다.
李傕 自爲大司馬하다
이각李傕이 스스로 대사마大司馬가 되었다.
◑曹操攻拔定陶하니 呂布走歸劉備하고 留廣陵太守張超하여 守雍丘하다
조조曹操정도定陶를 공격하여 점령하자, 여포呂布가 달아나 유비劉備에게 귀의하고 광릉태수 장초廣陵太守 張超를 남겨두어 옹구雍丘를 지키게 하였다.
呂布將薛蘭, 李封 屯鉅野러니 曹操攻之하여 斬蘭等注+鉅野縣, 屬山陽郡.하다 操以陶謙已死라하여 欲遂取徐州하고 還乃定布어늘 荀彧曰
여포呂布의 장수 설란薛蘭이봉李封거야鉅野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조조曹操가 공격하여 설란 등을 참살하였다.注+거야현鉅野縣산양군山陽郡에 속하였다. 조조는 도겸陶謙이 이미 죽었다고 하여 마침내 서주徐州를 취하고 돌아와 여포를 평정하고자 하였는데, 순욱荀彧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高祖保關中하고 光武據河內하니 皆深根固本以制天下 進足以勝敵이요 退足以堅守
“옛적에 고조高祖관중關中을 확보하고 광무제光武帝하내河內를 점거하였으니, 모두 뿌리를 깊게 하고 근본을 견고히 하여 천하를 제압해서, 나아가면 충분히 적을 이길 수 있고 물러나면 충분히 굳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雖有困敗 而終濟大業注+高祖取天下, 令蕭何守關中, 光武經營河北, 令寇恂守河內, 皆以爲王業根本.하니이다 將軍 本以兗州首事하고 且河, 濟 天下之要地
이 때문에 비록 어려움과 실패가 있었으나 끝내 대업大業을 이룬 것입니다.注+고조高祖가 천하를 취할 적에 소하蕭何에게 관중關中을 지키게 하고 광무제光武帝하북河北을 경영할 적에 구순寇恂에게 하내河內를 지키게 하여, 모두 왕업王業의 근본으로 삼았다. 장군은 본래 연주兗州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였고, 또 황하黃河제수濟水 가에 있는 연주兗州는 천하의 요해지입니다.
是亦將軍之關中, 河內也 不可以不先定注+操初從東郡守鮑信等迎領兗州牧, 遂進兵破黃巾等. 兗州之域, 東南據濟, 西北距河.이니이다 今分兵하여 東擊陳宮하고 以其間收熟麥이면 一擧而布可破也리이다
이 또한 장군에게 관중關中하내河內 같은 곳이니, 먼저 평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注+조조曹操가 처음 동군태수 포신東郡太守 鮑信 등이 맞이하는 대로 따라서 영연주목領兗州牧이 되었다가 마침내 진군하여 황건적黃巾賊 등을 격파하였다. 연주兗州 지역은 동남쪽으로 제수濟水를 점유하고 서북쪽으로 황하黃河에 이른다. 이제 군대를 나누어 동쪽으로 가서 진궁陳宮을 공격하고 그 사이에 이미 성숙한 보리를 수확하면 일거에 여포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若舍而東注+舍, 讀作捨.인댄 多留兵則不足用이요 少留兵則布乘虛寇暴하여 民心益危하리니 無兗州也니이다
만약 여포를 놓아두고 동쪽으로 가서 서주徐州를 공격하면注+(버리다)는 로 읽는다., 군사들을 많이 남겨둘 경우 병력을 쓰기에 충분하지 못하고, 군사들을 조금 남겨둘 경우 여포가 빈 틈을 타고서 약탈과 포악한 짓을 자행하여 민심이 더욱더 동요될 것이니, 이는 연주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若徐州不定이면 將軍 當安所歸乎 且謙雖死 徐州未易亡也
】 만약 서주徐州를 공격하여 평정하지 못하면 장군이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또한 도겸陶謙이 비록 죽었으나 서주를 멸망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彼懲往年之敗하여 必堅壁淸野以待將軍하리니 攻之不拔하고 略之無獲이면 不出十日 則十萬之衆 未戰而自困耳
서주徐州의 사람들은 왕년에 실패하였던 경험을 감계鑑戒로 삼아 틀림없이 성벽을 견고하게 수리하고 들판의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여서 미리 준비하고 장군을 기다릴 것이니, 서주徐州를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노략질해도 얻는 바가 없으면 열흘도 못 되어 십만의 군대가 전투하기도 전에 절로 곤핍하게 될 것입니다.
前討徐州 威罰實行注+謂多所屠戮也.하니 其子弟念父兄之恥하여 必無降心이요 就能破之라도 尙不可有也注+徐州子弟, 旣有父兄之讐, 必不心服於操, 縱破其兵, 猶不能有其地也.리이다
예전에 서주徐州를 토벌할 적에 위엄과 형벌을 실로 행하였으니注+〈“위벌실행威罰實行”은〉 도륙한 바가 많음을 이른다., 그 자제子弟들이 부형父兄들의 치욕을 기억하여 틀림없이 항복하려는 마음이 없을 것이요, 설령 서주를 격파하더라도 오히려 소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注+서주徐州자제子弟들은 이미 부형父兄들의 원한이 있어서 반드시 조조曹操에게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을 것이니, 비록 그들의 군대를 격파하더라도 오히려 그 땅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夫事固有棄此取彼者하니 以大易小可也 以安易危可也 權一時之勢하고 不患本之不固 可也어니와
무릇 일에는 진실로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는 경우가 있으니, 큰 것을 작은 것과 바꾸는 것도 괜찮고, 편안함을 위태로움과 바꾸는 것도 괜찮고, 한때의 형세만 헤아리고 근본이 견고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는 것도 괜찮습니다.
今三者莫利하니 願將軍 熟慮之하소서 操乃止하다
그러나 지금 세 가지를 비추어보았을 때에 우리에게 이로운 점이 없으니, 장군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조조가 마침내 〈서주徐州의 공격을〉 중지하였다.
布復與陳宮으로 將萬餘人來戰하니 操兵 皆出收麥하고 在者不能千人이라
여포呂布가 다시 진궁陳宮과 함께 만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싸웠는데, 조조曹操의 군사들이 모두 보리를 수확하러 군영을 나가고 군영 안에 있는 자들은 천 명도 채 되지 못하였다.
屯西 有大隄어늘 操隱兵隄裏하고 出半兵挑戰이러니 旣合 伏發하여 大破之하여 攻拔定陶하고 分兵平諸縣하다
조조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의 서쪽에 큰 제방이 있었는데, 조조가 제방의 뒤쪽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절반의 병사만을 내보내어 싸움을 걸게 하였다. 두 군대가 이미 교전을 하자 제방 뒤쪽에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이 뛰쳐나와 여포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정도定陶를 함락하고 군대를 나누어 여러 을 평정하였다.
布東奔劉備어늘 張邈 從之하고 留弟超하여 守雍丘하다
여포가 동쪽으로 서주徐州에 가서 유비劉備에게 의탁하였는데, 장막張邈이 여포를 따르고 그 아우 장초張超를 남겨두어 옹구雍丘를 지키게 하였다.
布見備 甚尊敬之하여 請備於帳中하여 坐婦牀上하고 令婦向拜하고 酌酒飲食하며 名備爲弟하다
여포는 유비를 만나보고 매우 존경하여 유비를 자신의 장막 안으로 초청하여 그 아내의 침상 위에 앉히고 아내에게 유비를 향하여 절을 올리게 하고 주연을 베풀어 술을 따르고 음식을 대접하며 유비를 아우라고 칭하였다.
備見布語言無常하고 外然之 而內不悦하니라
유비는 여포가 말에 조리가 없는 것을 보고 겉으로는 좋은 체하였으나 속으로는 기뻐하지 않았다.
六月 하다 秋七月 發長安할새 以濟 爲驃騎將軍하여 開府하다
】 6월에 장군 장제張濟가 황제를 맞이하여 동쪽으로 돌아왔다. 가을 7월에 〈황제가〉 장안長安을 출발할 적에 장제를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삼아 개부開府하게 하였다.
李傕, 郭汜相攻連月하니 死者以萬數 傕將楊奉 謀殺傕이라가 事泄叛去하니 傕衆 稍衰
이각李傕곽사郭汜가 몇 달 동안 연이어 서로 공격하니, 죽은 자가 만 명으로 헤아릴 정도로 많았다. 이각의 장수 양봉楊奉이 이각을 죽일 것을 도모하다가 일이 누설되자 이각을 배반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떠나가니, 이각의 병력이 점점 쇠약해졌다.
張濟自陝西至注+陝縣, 屬弘農. 濟初平三年出戍焉.하여 欲和傕, 汜하고 遷乘輿하여 權幸弘農하니 帝亦思舊京注+舊京, 謂雒陽也.하여 遣使宣諭하여 十反 汜, 傕 許和러니
장제張濟섬현陝縣에서 서쪽으로 장안長安에 이르러注+섬현陝縣홍농弘農에 속하였다. 장제張濟초평初平 3년(192)에 이곳에 나가 수자리를 살았다. 이각과 곽사를 화해시키고 승여乘輿(천자天子)를 옮겨서 잠시 동안 홍농弘農에 가 있게 하고자 하니, 황제 역시 구도舊都낙양雒陽을 그리워하여注+구경舊京낙양雒陽을 이른다. 사자를 보내어 선유宣諭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자, 곽사와 이각이 화해할 것을 허락하였다.
計未定 而羌, 胡數來窺省門하고 曰 天子在此中邪 李將軍 許我宮人이러니 今皆何在
이각이 화해할 계획을 아직 결정하지 못하였는데, 이각이 거느리고 있던 강족羌族호족胡族들이 자주 찾아와서 성문省門을 엿보고 말하기를 “천자天子가 이 안에 계신가? 이장군(이각)이 우리에게 궁인宮人을 주겠다고 허락하였는데 지금 모두 어디에 있는가?” 하였다.
帝患之하여 使謂將軍賈詡曰 卿 前奉職公忠故 升榮寵이러니 今羌, 胡滿路하니 宜思方略하라
황제가 이를 근심하여 사람을 보내 장군 가후賈詡에게 이르기를 “이 옛날에 직무를 수행함에 공정하고 충직하였기 때문에 승진하여 영총榮寵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강족羌族호족胡族들이 길에 가득하니, 마땅히 방략方略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詡乃召羌, 胡大帥하여 飲食之하고 許以封賞한대 羌, 胡皆引去하니 由此單弱하니라
가후가 마침내 강족과 호족들의 우두머리를 불러서 술과 음식을 먹이고 을 내려주겠다고 허락하자 강족과 호족들이 모두 무리를 거느리고 떠나가니, 이각의 병력이 이로 말미암아 고단하고 약해졌다.
七月 車駕東出하여 夜到霸陵하니 從者皆飢어늘 張濟賦給有差하다
】 7월에 거가車駕(황제皇帝)가 동쪽으로 나가서 밤에 패릉霸陵에 이르니 시종하는 자들이 모두 굶주렸는데, 장제張濟가 관직에 따라 차등을 두어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出屯池陽注+池陽縣, 屬馮翊.하니 郭汜欲令帝幸高陵注+高陵縣, 屬馮翊.이어늘 公卿及濟 以爲宜幸弘農이라하여 議之不決이라
이각李傕장안長安을 떠나 지양池陽에 주둔하였다.注+지양현池陽縣풍익馮翊에 속하였다. 곽사郭汜가 황제를 고릉高陵으로 거둥하게 하고자 하였는데注+고릉현高陵縣풍익馮翊에 속하였다., 공경公卿장제張濟는 마땅히 홍농弘農으로 거둥해야 한다고 하여 신하들의 의논이 정해지지 못하였다.
帝遣使諭汜曰 弘農 近郊廟하니 勿有疑也하라 汜不從하니 帝遂終日不食이라
황제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곽사에게 효유曉諭하기를 “홍농弘農교묘郊廟와 가까워서 그리로 가고자 할 뿐이니, 장군은 의심하지 말라.” 하였다. 곽사가 황제의 뜻을 따르지 않자, 황제가 마침내 종일토록 음식을 들지 않았다.
汜聞之하고 曰 可且幸近縣이라하다 八月 幸新豐이러니 汜復謀脅帝還都郿注+董卓傳, 都作幸.어늘
곽사가 이를 듣고 말하기를 “잠시 가까운 에 거둥해도 괜찮다.” 하였다. 8월에 황제가 신풍新豐으로 거둥하였는데, 곽사가 다시 계획을 꾸며 황제를 협박해 되돌아와서 미현郿縣에 도읍하고자 하였다.注+
侍中种輯 知之하고 密告楊定, 董承, 楊奉하여 令會新豐注+承, 靈帝母董太后之姪.하니 汜自知謀泄하고 乃棄軍入南山注+自新豐驪山西接終南, 謂之南山.하다
시중 충집侍中 种輯(충집)이 이를 알고 은밀히 양정楊定동승董承양봉楊奉에게 알려 신풍新豐에 모이게 하니注+동승董承영제靈帝의 모친인 동태후董太后의 조카이다., 곽사가 자신의 계획이 누설되었음을 알고 마침내 군대를 버리고 도망쳐 남산南山으로 들어갔다.注+신풍新豐여산驪山으로부터 서쪽으로 종남산終南山에 이르기까지를 남산南山이라 한다.
八月 曹操圍雍丘하니 張邈 爲其下所殺注+操圍雍丘, 邈詣袁術求救, 未至, 爲其下所殺.하다
】 8월에 조조曹操옹구雍丘를 포위하니, 장막張邈이 그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注+조조曹操옹구雍丘를 포위하자 장막張邈원술袁術에게 찾아가서 구원을 청하였으나, 이르기 전에 그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冬十月 以曹操爲兗州牧하다
】 겨울 10월에 조조曹操연주목兗州牧으로 삼았다.
◑十二月 帝至弘農하니 張濟與傕, 汜合하여 追帝至陝이어늘 하다
】 12월에 황제가 홍농弘農에 이르니 장제張濟이각李傕곽사郭汜와 연합하여 황제를 뒤쫓아 섬현陝縣에 이르렀는데, 황제가 황하黃河를 건너 이락李樂의 군영으로 들어갔다.
郭汜黨 復謀脅乘輿西行하니 楊定, 董承 將兵迎天子하여 幸楊奉營하고 幸華陰注+通鑑, 營下云 “夏育等勒兵, 欲止乘輿, 楊定ㆍ楊奉力戰破之, 乃得出. 壬寅, 行幸華陰.”하다
곽사郭汜당여黨與가 다시 계획을 꾸며서 승여乘輿(황제皇帝)를 협박하여 서쪽으로 거둥하게 하고자 하니, 양정楊定동승董承이 군대를 거느리고 천자天子를 맞이해서 양봉楊奉의 군영으로 거둥하였고, 뒤에 화음華陰으로 거둥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자 아래에 “하육夏育 등이 군대를 무장하여 승여乘輿를 저지하고자 하였는데, 양정楊定양봉楊奉이 힘써 싸워서 격파하여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다. 임인일壬寅日에 황제가 화음華陰에 거둥하였다.” 하였다.
將軍段煨 具服御, 資儲하여 欲上幸其營이러니 煨與楊定有隙이라
장군 단외段煨(단외)가 어용御用의 물품과 관원들에게 필요한 물자와 기구들을 갖추고서 황제가 자기 군영으로 거둥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단외는 양정과 사이가 나빴다.
定黨 言煨欲反이라한대 楊彪, 趙溫, 劉艾皆曰 段煨不反이니 臣等 敢以死保之하노이다 帝疑之러라
양정의 당여가 “단외가 반란을 일으키고자 한다.”라고 무함하자, 양표楊彪조온趙溫류애劉艾가 모두 말하기를 “단외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들이 감히 죽음으로써 이를 보증합니다.” 하였으나 황제가 의심하였다.
將與奉, 承攻煨할새 請帝爲詔한대 帝曰 煨罪未著어늘 奉等 攻之而欲令朕有詔邪 固請호되 弗聽하다
양정楊定양봉楊奉동승董承과 함께 단외段煨를 공격하려고 할 적에 황제에게 조령詔令을 내려줄 것을 청하였으나 황제가 말하기를 “단외의 죄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양봉 등이 그를 공격하면서 에게 조령을 내리게 하고자 하는가.” 하였다. 한사코 청하였으나 황제가 들어주지 않았다.
奉等 乃輒攻煨營호되 不下러니 煨供給御膳하고 廩贍百官하여 無二意 詔和解之하니 定等 還營하다
양봉 등이 이에 곧 단외의 군영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는데, 단외가 어선御膳을 공급하고 백관百官에게 양식과 물자를 제공하여 딴마음이 없었다. 황제가 조령을 내려 화해시키자, 양정 등이 군영으로 돌아갔다.
李傕, 郭汜聞定攻煨하고 相招共救之하고 因欲劫帝而西하니 楊定 單騎亡走荊州하다
이각李傕곽사郭汜양정楊定단외段煨를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서로 불러서 함께 단외를 구원하고 이어서 황제를 겁박하여 서쪽으로 거둥하게 하고자 하니, 양정이 필마로 도망하여 형주荊州로 달아났다.
張濟與奉, 承不相平하여 乃復與傕, 汜合하니 車駕遂幸弘農이어늘 濟, 傕, 汜 共追乘輿하여 大戰於東澗하니
장제張濟양봉楊奉동승董承과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여 이에 다시 이각과 곽사와 연합하였다. 거가車駕가 마침내 홍농弘農으로 거둥하자 장제와 이각과 곽사가 함께 승여乘輿를 뒤쫓아가서 홍농弘農동간東澗에서 크게 전투를 벌였는데,
承, 奉軍敗하여 百官, 士卒 死者不可勝數 棄御物, 符ㆍ策, 典籍하여 略無所遺注+凡乘輿服御之物, 皆爲御物. 符, 銅虎符ㆍ竹使符之類. 策, 編簡爲之, 古者誥ㆍ命皆書之策. 漢制, 天子策書長二尺. 典籍, 內府圖籍及尙書中故事之類.하다
동승과 양봉의 군대가 패하여 백관百官사졸士卒로서 사망한 자가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어용의 물품, , 전적典籍을 버려서 대부분 거의 다 유실되었다.注+무릇 승여乘輿(황제)가 사용하는 물건은 모두 어물御物이 된다. 동호부銅虎符죽사부竹使符 따위이다. 을 엮어서 만드니, 옛적에 을 모두 에 썼다. 나라 제도에 천자天子책서策書는 길이가 2이다. 전적典籍내부內府도적圖籍상서대尙書臺 안의 고사故事 따위이다.
露次曹陽注+野宿無廬舍, 謂之露次. 杜佑曰 “陝郡西四十五里有曹陽澗.”하니 承, 奉 乃譎傕等하여 與連和하고
황제가 조양曹陽에 이르러 노숙하자注+한데서 묵어 여사廬舍가 없는 것을 노차露次라고 한다. 두우杜佑가 말하기를 “섬군陝郡 서쪽 45리 지점에 조양간曹陽澗이 있다.” 하였다., 동승과 양봉이 마침내 이각 등을 속여서 연합하는 체하고,
而密遣間使至河東注+譎, 詐也. 間, 古莧切.하여 招故白波帥李樂, 韓暹, 胡才及南匈奴右賢王去卑注+靈帝末, 黃巾餘黨郭太等起於西河白波谷, 因號白波賊. 暹, 音纖. 去卑, 右賢王名, 大夏赫連氏, 卽其裔也.하니
은밀하게 간사間使하동河東으로 보내어注+은 속임이다. (몰래)은 고현古莧이다.백파白波의 우두머리인 이락李樂, 한섬韓暹(한섬), 호재胡才남흉노南匈奴우현왕 거비右賢王 去卑를 불러들이니注+영제靈帝 말엽에 황건적黃巾賊의 잔당인 곽태郭太 등이 서하西河백파곡白波谷에서 일어나니, 이로 말미암아 백파적白波賊이라고 불렀다. 은 음이 이다. 거비去卑우현왕右賢王의 이름이니, 대하大夏혁련씨赫連氏가 바로 그 후예이다.,
竝率其衆數千騎來하여 共擊傕等하여 大破之하다
모두 각자 자기 군대 수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와서 함께 이각 등을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車駕發東注+自曹陽發而東行也.이러니 傕等 復來戰하니 奉等 大敗하여 死者甚於東澗이라
거가車駕가 출발하여 동쪽으로 갔는데注+〈‘차가발동車駕發東’은 거가車駕가〉 조양曹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간 것이다. 이각李傕 등이 다시 와서 싸우니, 양봉楊奉 등이 크게 패하여 사망한 자의 수가 동간東澗의 전투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李樂曰 事急矣 陛下宜御馬니이다 上曰 不可舍百官而去 何辜哉
이락李樂이 말하기를 “일이 급박하니, 폐하陛下께서는 마땅히 말을 타셔야 합니다.” 하자, 이 말하기를 “백관百官을 버리고 떠나갈 수 없으니, 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하였다.
兵相連綴四十里注+綴, 株衛切, 聯也.하여 至陝하여 乃結營自守하니 虎賁, 羽林 不滿百人이라
군사들의 행렬이 길에 40리나 이어져注+주위株衛이니, 잇닿음이다. 섬현陝縣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군영을 만들고 스스로 지키니, 황제를 호위하는 호분虎賁우림羽林의 무사들이 백 명도 채 못 되었다.
李樂하여 欲令車駕御船하여 過砥柱하여 出孟津이어늘 楊彪以爲河道險難이라하여 乃使樂夜渡具船하고 擧火爲應하니
이락李樂이 두려워하여 거가車駕를 배에 태워 지주砥柱를 지나 맹진孟津으로 나가 〈육지에 오르고자 하였는데,〉 양표楊彪황하黃河수로水路가 험난하다고 하여 이에 이락에게 밤에 황하를 건너 배를 준비하고 불을 피워서 신호로 삼게 하였다.
上與公卿 步出營하고 皇后兄伏德 扶后하여 御船하니 同濟者 楊彪以下纔數十人注+其宮女及吏民不得渡者, 皆爲兵所掠奪.이러라
공경公卿과 함께 도보로 군영을 나섰고 황후皇后의 오라비 복덕伏德이 황후를 부축하여 배에 오르니, 함께 황하를 건넌 사람은 양표楊彪 이하 겨우 수십 명뿐이었다.注+〈“동제자 양표이하재수십인同濟者 楊彪以下纔數十人”은〉 그 궁녀宮女이민吏民 중에 황하黃河를 건너지 못한 자들은 모두 군사들에게 약탈을 당한 것이다.
到大陽하여 幸李樂營注+大陽縣, 屬河東郡.하니 河內太守張楊 使數千人으로 負米貢餉注+餉, 饋也.하다
】 황제가 대양大陽에 이르러 이락李樂의 군영으로 거둥하자注+대양현大陽縣하동군河東郡에 속하였다., 하내태수 장양河內太守 張楊이 수천 명의 사람을 시켜 쌀을 짊어지고 오게 하여 황제에게 바쳤다.注+은 보냄이다.
御牛車하여 幸安邑하니 河東太守王邑 奉獻綿帛이어늘 悉賦公卿以下注+賦, 給與也, 分畀也.하다
우거牛車를 타고 안읍安邑에 거둥하자, 하동태수 왕읍河東太守 王邑을 받들어 바쳤는데, 황제는 이것을 모두 다 공경公卿 이하의 관원들에게 하사하였다.注+는 지급함이고 나누어줌이다.
群帥競求拜職하니 刻印不給하여 至乃以錐畫之하다 乘輿居棘籬中하니 門戶無關閉
왕읍王邑 등의 장수들이 서로 다투어 관직에 임명해줄 것을 요구하니, 각인刻印(인장印章)이 부족하여 심지어는 송곳으로 새겨서 만들어주기까지 하였다. 승여乘輿(황제)가 가시나무로 만든 울타리 안에 머무니, 문호門戶에 닫아걸 빗장도 없었다.
帝又遣太僕韓融하여 與傕, 汜等連和注+融, 韶之子也.하니 乃放百官하고 歸宮人하다
】 황제가 또 태복 한융太僕 韓融을 보내어 이각李傕곽사郭汜 등과 강화講和하게 하니注+한융韓融한소韓韶의 아들이다., 이각이 이에 백관百官을 풀어주고 궁인宮人을 돌려보냈다.
已而 糧盡이라 張楊 來朝하고 謀以乘輿還雒陽하니 諸將 不聽하다
얼마 후 식량이 다하였다. 장양張楊이 〈야왕현野王縣에서〉 찾아와 황제를 조현朝見하고 승여乘輿낙양洛陽으로 돌아가게 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장수들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
是時 長安城空 四十餘日이라 强者四散하고 羸者相食하니 二三年間 關中 無復人跡이러라
이때 장안성長安城 안이 텅 비어서 사람이 없은 지 40여 일이나 되었다. 건장한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떠나갔고 병약한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으니, 2, 3년 사이에 관중關中 지역에는 사람의 자취를 다시 볼 수 없었다.
沮授說袁紹曰 將軍 累葉台輔하여 世濟忠義러니 今州域粗定하고 兵强士附注+州域, 謂冀州之域也.하니
저수沮授원소袁紹를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장군의 집안은 몇 에 걸쳐 태보台輔를 지내어 대대로 충의忠義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기주冀州의 경내가 대체로 안정되었으며 병력이 강하고 사졸이 따르니注+주역州域기주冀州의 지역을 이른다.,
西迎大駕하여 卽宮鄴都하여 挾天子而令諸侯하고 畜士馬以討不庭하면 誰能禦之注+卽, 就也. 不庭, 謂不朝者. 下之事上, 皆成禮於庭中. 一說 “庭, 直也. 不庭, 謂不直者.”리오
서쪽으로 가서 대가大駕를 맞이하여 업도鄴都(업성鄴城)에 나아가 궁궐을 옮겨서 천자天子를 끼고 제후諸侯를 호령하며 병사와 군마를 비축하여 왕정王庭조현朝見(조현)하지 않는 자들을 토벌하면 어느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注+은 나아감이다. “부정不庭”은 조현朝見하지 않는 자를 이르니, 일설에 “은 정직함이니, 부정不庭은 정직하지 않은 자를 이른다.” 하였다.
郭圖, 淳于瓊曰 漢室陵遲 爲日久矣 今欲興之 不亦難乎注+陵遲, 言若丘陵之漸逶遲.잇가 且英雄竝起 先得者王하나니
그러나 곽도郭圖순우경淳于瓊은 다음과 같이 반대하였다. “나라 황실이 쇠미하여 몰락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부흥시키고자 하면 어렵지 않겠습니까.注+능지陵遲구릉丘陵이 점점 낮아지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게다가 영웅英雄들이 모두 일어났을 때에는 먼저 천하天下를 얻는 자가 노릇을 하는 법입니다.
今迎天子自近하여 動輒表聞이면 從之則權輕이요 違之則拒命이니 非計之善者也니이다
지금 천자天子를 맞이해 가까운 곳에 옮겨서 일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표문表文을 올려 보고하면, 따를 경우에는 장군의 권세가 약해지고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천자의 에 항거하는 것이 되니, 이는 훌륭한 계책이 아닙니다.”
授曰 今迎朝廷 於義爲得이요 於時爲宜 若不早定이면 必有先之者矣리이다 紹不從注+先, 悉薦切.하다
이에 저수가 말하기를 “지금 조정朝廷(황제)을 맞이하는 것이 의리에 있어서 옳고 시기에 있어서 마땅하니, 만약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먼저 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원소가 따르지 않았다.注+(앞섬)은 실천悉薦이다.
孫策 擊劉繇於曲阿하여 破走之하다
손책孫策곡아曲阿에서 유요劉繇를 격파하여 패주시켰다.
孫堅 舊將丹陽朱治 見袁術政德不立하고 勸孫策歸取江東이어늘
손견孫堅의 옛 장수인 단양丹陽 사람 주치朱治원술袁術정사政事덕행德行이 확립되지 못한 것을 보고 손책孫策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강동江東 지역을 취하도록 권하였다.
說術曰 家有舊恩在東하니 願助舅討橫江注+舅, 卽吳景.하여 橫江拔 因投本土召募하면 可得三萬兵하리니 以佐明使君定天下注+策, 本江東人, 故謂之本土.호리이다
손책이 원술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저희 집안은 강동 지역의 백성들에게 옛 은혜가 있으니, 원컨대 제 외숙 오경吳景을 도와서 횡강橫江을 토벌하여注+(외숙外叔)는 바로 오경吳景이다. 횡강을 함락시킨 뒤에 그대로 제 고향인 강동으로 돌아가 군대를 불러 모으면 3만 명의 병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로써 현명하신 사군使君께서 천하를 평정하시는 것을 돕겠습니다.”注+손책孫策은 본래 강동江東 사람이기 때문에 강동을 일러 본토本土라고 한 것이다.
知其恨이나 而以劉繇據曲阿하고 王朗在會稽하니 謂策未必能定이라하여 乃許之注+知其恨, 謂許以九江ㆍ廬江而不用也.하고 表策爲折衝校尉하다
원술은 손책이 자기를 원망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유요劉繇곡아曲阿를 점거하고 왕랑王朗회계會稽에 있으니, 손책이 반드시 그들을 평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서 이에 허락하고注+지기한知其恨”은 원술袁術손책孫策구강태수九江太守여강태수廬江太守로 삼을 것을 허락하였다가 임용하지 않은 것을 이른다. 표문表文을 올려 손책을 절충교위折衝校尉로 삼았다.
將兵千餘人, 騎數十匹하고 行收兵하니 比至歷陽 五六千이라 周瑜自丹陽으로 將兵迎之하고 助以資糧注+時瑜從父尙爲丹陽守, 瑜往省之. 會策到歷陽, 馳書報瑜, 瑜將兵迎策.하다
손책이 보병步兵 천여 명과 기병騎兵 수십 명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군사들을 모집하니, 역양歷陽에 이르렀을 때에는 군사들의 수가 5, 6천 명이나 되었다. 주유周瑜단양丹陽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손책을 맞이하고 물자와 군량軍糧마초馬草를 원조하였다.注+당시에 주유周瑜종부 주상從父 周尙단양태수丹陽太守가 되었는데 주유가 가서 문안하였다. 이때 마침 손책孫策역양歷陽에 이르러 급히 편지를 보내어서 주유에게 알리자, 주유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손책을 맞이하였다.
進攻橫江하여 拔之하고 渡江轉鬪하니 所向皆破하여 莫敢當其鋒者러라 百姓 聞孫郞至하고 皆失魂魄注+策年少, 雖有位號, 而吳人皆謂之孫郞.이러니
손책孫策이 진군하여 횡강橫江을 공격해 함락하고는 장강長江을 건너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싸우니, 향하는 곳마다 모두 격파해서 감히 그의 예봉을 당해 내는 자가 없었다. 백성들은 손랑孫郞(손책孫策)이 온다는 말을 듣고 모두 혼비백산魂飛魄散하였는데注+손책孫策연소年少하여 비록 위호位號(관직의 칭호)가 있었으나 지역 사람들이 모두 그를 일러 손랑孫郞이라고 하였다.,
及策至 軍士奉令하여 不敢虜略하여 鷄犬菜茹 一無所犯注+茹, 亦菜也.하니 民乃大悦하여 競以牛酒勞軍하니라
손책이 이르자 군사들이 명령을 잘 받들고 감히 노략질하지 아니하여 닭과 개와 채소를 하나도 범하는 바가 없으니注+ 또한 (채소)이다., 백성들이 이에 크게 기뻐하여 다투어 쇠고기와 술을 가지고 와서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策爲人 美姿顔하고 能笑語하며 性闊達聽受하여 善用人하니 是以 士民見者 莫不盡心하여 樂爲致死注+爲, 去聲, 下非爲同.하니라
손책은 사람됨이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담소談笑를 잘하였으며, 성품이 활달하여 남의 말을 잘 받아들여서 사람을 쓰기를 잘하였다. 이 때문에 선비와 백성 중에 그를 만나 본 자들은 마음을 다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그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注+〈“악위치사樂爲致死”의〉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에 “비위非爲”의 도 똑같다.
攻劉繇於曲阿하니 繇使太史慈 偵視輕重注+太史, 複姓. 慈, 名也.이러니 獨與一騎 卒遇策於神亭注+卒, 讀曰猝. 神亭, 地名. 胡三省曰 “神亭, 在今鎭江府丹陽縣界.”하니 從騎十三이라
손책孫策곡아曲阿에서 유요劉繇를 공격하니, 유요가 태사자太史慈에게 손책 군의 동정動靜을 정탐하게 하였다.注+태사太史복성複姓이고, 는 이름이다. 태사자太史慈가 오직 기병 한 명만을 데리고 나왔다가 신정神亭에서 갑작스럽게 손책과 조우遭遇하였는데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신정神亭지명地名이다. 호삼성胡三省에 “신정神亭은 지금 진강부 단양현鎭江府 丹陽縣의 경계에 있다.” 하였다., 손책은 기병 13명이 수행하고 있었다.
慈便前鬪하여 正與策對하니 擥得慈手戟하고 慈亦得策兜鍪注+擥, 與攬同.러니 兩家兵騎來赴하니 於是 解散하다
태사자가 곧장 나아가 싸워서 곧바로 손책과 상대하여 손책은 태사자의 수극手戟을 손으로 잡아채고 태사자 또한 손책의 투구를 빼앗았는데注+(손으로 잡다)은 과 같다., 마침 양편의 군사와 기병들이 이르러서 이에 흩어졌다.
繇兵敗走하니 入曲阿하여 勞賜將士하며 發恩布令하여 告諭諸縣호되 樂從軍者 一身行 復除門戶하고 不樂者 不强注+復, 方目切. 一人以身行, 除其門戶賦役也.이라하니
유요劉繇의 군대가 패하여 달아나자 손책이 곡아曲阿에 들어가서 장병들을 위로하고 상을 내리며 은혜로운 명령을 반포하여 각 고유告諭하기를 “종군하기를 원하는 자는 한 집에서 한 사람이 나오면 그 집의 부역賦役을 면제해주고, 종군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강요하지 않겠다.”注+(부역을 면제함)은 방목方目이니, 〈“일신행 복제문호一身行 復除門戶”〉 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써 종군從軍하면 그 집의 부역賦役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하였다.
旬日之間 四面 雲集하여 得見兵二萬餘人 馬千餘匹하니 威振江東注+見, 賢遍切.이러라
그러자 열흘 사이에 〈모집에 응한 자들이〉 사방에서 운집하여 이때에 병력 2만여 명과 말 천여 을 얻으니, 위엄이 강동江東 지방에 떨쳐졌다.注+〈“견병見兵”의〉 (현재)은 현편賢遍이다.
表策行殄寇將軍注+殄寇將軍號, 蓋始於此.하다 策將呂範 言於策曰 今將軍 事業日大하고 士衆日盛이어늘 而紀綱猶有不整者하니
원술袁術표문表文을 올려 손책孫策진구장군殄寇將軍의 일을 대리하게 하였다.注+진구장군殄寇將軍이라는 호칭이 아마도 이때에 시작된 듯하다. 손책의 장수 여범呂範이 손책에게 말하기를 “지금 장군께서는 사업事業이 날로 커지고 군사들이 날로 많아지는데 기강에 있어서는 여전히 정돈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願暫領都督하여 佐將軍部分之注+分, 扶問切.하노이다 策曰 子衡 旣士大夫 加手下已有大衆하니 豈宜復屈小職하여 知軍中細事乎注+子衡, 範字.
저 여범이 잠시 영도독領都督이 되어서 장군을 보좌하여 다스리고자 합니다.”注+(부곡部曲)은 부문扶問이다. 하였다. 이에 손책이 말하기를 “자형子衡은 이미 사대부士大夫이고 게다가 수하手下에 벌써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 다시 몸을 굽혀서 이러한 낮은 관직을 담당하여 군중軍中의 잗다란 일들을 관리하는 것이 어찌 마땅하겠는가.”注+자형子衡여범呂範이다. 하니,
範曰 不然하니이다 今捨本土而託將軍者 非爲妻子也 欲濟世務也注+範, 汝南人.
이에 여범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고향을 버리고 장군께 의탁한 것은 처자식 때문이 아니요 세상의 일을 이루고자 해서입니다.注+여범呂範여남汝南 사람이다.
譬猶同舟涉海 一事不牢 卽俱受其敗 此亦範計 非但將軍也니이다어늘
비유하자면 함께 한 배에 타고서 바다를 건널 적에 한가지 일이라도 견실堅實하지 못하면 곧바로 모두 함께 위난危難을 당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저 여범을 위한 계책이요 그저 장군을 위한 것일 뿐만은 아닙니다.” 손책은 이 말을 듣고 웃기만 하였는데,
하여 便釋褠하여 著袴褶하고 執鞭하여 詣閤下啓事하고 自稱領都督注+釋, 解也. 褠, 音溝, 單衣也. 著, 陟略切. 褶, 音習. 袴褶, 騎服也.이라하니 自是 軍中 肅睦하여 威禁大行하니라
여범이 밖으로 나가 곧바로 홑 소창옷을 벗고 고습袴褶(군복軍服)을 착용하고 채찍을 잡고서 합하閤下에 이르러 일을 아뢰고 스스로 영도독領都督이라고 칭하니注+〈“석구釋褠”의〉 은 풂이고 는 음이 이니, 홑옷이다. (입다)은 척략陟略이다. (바지)은 음이 이니, 고습袴褶은 말을 탈 때 입는 군복軍服이다., 이로부터 군중軍中이 엄숙하고 공경하여 금령禁令이 크게 행해졌다.
以張紘爲正義校尉하고 彭城張昭爲長史注+正議校尉, 策私所署置.하여 常令一人居守하고 一人從征討하다
손책孫策장굉張紘정의교위正義校尉로 삼고 팽성彭城 사람 장소張昭장사長史로 삼아서注+정의교위正議校尉손책孫策이 사사로이 부서部署를 만들어 설치한 것이다. 항상 한 사람은 남아서 지키도록 하고 한 사람은 토벌하는 데 종군從軍하도록 하였다.
待昭以師友之禮하여 文武之事 一以委之러니 每得北方士大夫書 專歸美於昭
손책이 사우師友로써 장소를 대우하여 문사文事무사武事를 한결같이 그에게 맡겨서 처리하였다. 장소가 북방北方에 있는 사대부士大夫들의 편지를 받아볼 때마다 치적治績의 훌륭함을 모두 장소에게 돌렸다.
歡笑曰 昔 管子相齊 一則仲父 二則仲父하여 而桓公 爲霸者宗注+新序曰 “有司於齊桓公, 公曰 ‘以告仲父.’ 有司又請, 公曰 ‘以告仲父.’ 在側者曰 ‘一則告仲父, 二則告仲父, 易哉爲君.’ 公曰 ‘吾未得仲父則難, 已得仲父, 曷爲其不易.’ 故王者勞於求賢, 佚於得人.”이라
손책이 〈이를 듣고〉 기뻐서 웃으며 말하기를 “옛적에 관자管子(관중管仲)가 나라의 정승이 되었을 적에 첫 번째도 중부仲父(관중管仲에 대한 경칭)에게 고하라 하고 두 번째도 중부에게 고하라 하여 환공桓公패자霸者의 으뜸이 되었다.注+〈“일즉중부 이즉중부一則仲父 二則仲父”는〉 ≪신서新序≫ 권4 〈잡사雜事〉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사有司재 환공齊 桓公에게 일을 처리할 것을 청하니, 환공이 말하기를 ‘중부仲父에게 고하라.’ 하였다. 유사有司가 또다시 청하자 환공이 말하기를 ‘중부에게 고하라.’ 하였다. 곁에 있는 자가 말하기를 ‘첫 번째도 중부에게 고하고 두 번째도 중부에게 고하게 하시니, 군주 노릇 하기가 쉽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환공이 말하기를 ‘내가 중부를 얻기 전에는 어려웠는데 이미 중부를 얻었으니, 어찌하여 쉽지 않겠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왕자王者는 현능한 자를 구하는 데에 수고롭고 인재를 얻음에 편안하다.”
今子布賢이어늘 我能用之하니 其功名 獨不在我乎注+子布, 昭字.
지금 자포子布(장소張昭)가 현능한데 내가 능히 그를 임용하였으니, 환공桓公과 같은 공적과 명성이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注+자포子布장소張昭이다. 하였다.
劉繇將奔會稽어늘 許劭曰 會稽富實하니 策之所貪이요 且窮在海隅하니 不可往也 不如豫章 北連豫壤하고 西接荊州注+豫壤, 豫州之境壤.
유요劉繇회계會稽로 달아나려고 하였는데, 허소許劭가 말하기를 “회계會稽는 재물이 부유하고 풍족하니 손책이 탐내는 곳이고, 또한 궁벽하게 멀리 바닷가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북쪽으로 예양豫壤(예주豫州의 경계)과 잇닿아 있고 서쪽으로 형주荊州와 접하고 있는 예장豫章만 못합니다.注+예양豫壤예주豫州의 경계이다.
若收合吏民하고 遣使貢獻이면 足下受王命일새 孟德, 景升 必相救濟라한대 繇從之注+孟德, 曹操字. 景升, 劉表字.하다
만약 관리와 백성들을 수합하고 조정에 사자를 보내어 공물을 바치면 족하足下는 황제의 명령을 받을 것이니, 맹덕孟德(조조曹操)과 경승景升(유표劉表)이 반드시 구제해줄 것입니다.” 하자, 유요가 이 말을 따랐다.注+맹덕孟德조조曹操이고, 경승景升유표劉表이다.
劉繇攻豫章하니 笮融 走死어늘 以華歆爲太守하다
유요劉繇예장豫章을 공격하자, 착융笮融(착융)이 패주하여 죽었으므로 화흠華歆태수太守로 삼았다.
陶謙 以笮融爲下邳相注+笮, 側格切, 姓也.하여 使督廣陵, 下邳, 彭城糧運이러니 遂斷以自入注+斷, 音短, 猶截也. 言以所督三城之糧, 斷而入己也.하고
】 처음에 도겸陶謙착융笮融하비상下邳相으로 삼아서注+측격側格이니, 이다. 광릉廣陵하비下邳팽성彭城의 식량 운송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착융이 마침내 바쳐야 할 식량을 떼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注+(자르다, 떼다)은 음이 이니, 과 같다. 〈“단이자입斷以自入”은〉 감독한 세 의 식량을 떼어 자기 것으로 만듦을 말한 것이다.,
大起浮屠祠하여 課人讀佛經하고 招致旁郡好佛者하니 至五千餘戶 毎浴佛 設食하여 布席數十里하니 費以巨億計注+釋氏謂佛以四月八日生. 事佛者, 以是日爲浴佛會.러라
부도浮屠사당祠堂(사찰寺刹)을 크게 축조하여 사람들에게 불경佛經을 읽도록 하였으며 이웃 의 불교를 신봉하는 자들을 초치하니 그 수가 오천여 에 이르렀다. 욕불일浴佛日(석가탄신일)마다 음식을 마련하여 〈길가에〉 자리를 펴고 늘어놓은 것이 수십 리나 되니, 비용과 물자가 거억巨億으로 헤아릴 정도로 많았다.注+석씨釋氏가 이르기를 “부처가 4월 초파일에 태어났다.” 하니, 부처를 섬기는 자들이 이날에 욕불회浴佛會를 열었다.
及曹操擊破陶謙 乃將男女萬口하고 走廣陵하니 太守趙昱 待以賓禮
조조曹操도겸陶謙을 격파하자, 착융이 이에 남녀 만 명을 거느리고 광릉廣陵으로 달아나니, 광릉태수 조욱廣陵太守 趙昱빈객賓客로 그를 접대하였다.
利廣陵資貨하여 遂乘酒酣하여 殺昱하고 放兵大掠하고 走依彭城相薛禮於秣陵이러니
착융은 광릉의 재화財貨를 탐내어 마침내 주연酒宴에서 술에 취한 때를 틈타서 조욱을 죽이고 군사들을 풀어놓아 크게 노략질하고, 달아나 말릉秣陵에 있는 팽성상 설례彭城相 薛禮에게 의탁하였는데,
復殺禮注+春秋楚威王埋金以鎭土氣, 故名金陵. 漢改曰秣陵. 先是, 禮爲陶謙所逼, 屯秣陵.하고 又詐殺豫章大守朱皓而領其郡하다 劉繇討之하니 敗走死어늘 詔以華歆爲太守하다
또다시 설례를 죽이고注+춘추시대에 나라 위왕威王을 묻어 토기土氣를 진압하였기 때문에 금릉金陵이라고 명명하였는데, 나라 때에 말릉秣陵으로 고쳤다. 이보다 앞서 설례薛禮도겸陶謙에게 핍박을 받아 말릉에 주둔하였다., 또 예장태수 주호豫章大守 朱皓를 속여서 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을 다스렸다. 유요劉繇가 토벌하자, 착융이 패주하여 죽었으므로 황제가 조령詔令을 내려 화흠華歆태수太守로 삼았다.
孫策 遣其將朱治하여 據吳郡하다
손책孫策이 그 장수 주치朱治를 보내어 오군吳郡을 점거하였다.
丹陽都尉朱治 逐吳郡太守許貢하고 而據其郡하니 南依山賊嚴白虎러니 皆擊殺之注+白虎有衆萬餘人, 阻山屯聚, 在吳郡之南.하다
단양도위 주치丹陽都尉 朱治오군태수 허공吳郡太守 許貢을 쫓아내고 그 을 점거하자 허공許貢이 남쪽으로 가서 산적 엄백호山賊 嚴白虎에게 의지하였는데, 뒤에 손책孫策이 모두 공격하여 죽였다.注+엄백호嚴白虎가 만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험한 산세를 의지해 한데 모여 주둔하여 오군吳郡의 남쪽에 있었다.
雍丘潰하니 張超自殺하다 하다
옹구雍丘가 크게 패하니, 장초張超자살自殺하였다. 원소袁紹동군東郡을 포위하여 태수 장홍太守 臧洪을 붙잡아 죽였다.
張超在雍丘러니 曹操圍之急한대 超曰 惟臧洪 當來救吾注+洪, 廣陵人. 超先爲廣陵太守, 請洪爲功曹, 委之以政.하리라
장초張超옹구雍丘를 지키고 있었는데 조조曹操가 급박하게 포위해 공격하자, 장초가 말하기를 “오직 장홍臧洪이 와서 나를 구원할 것이다.”注+장홍臧洪광릉廣陵 사람이다. 장초張超가 이보다 앞서 광릉태수廣陵太守가 되어서 장홍을 초청하여 로 삼아 그에게 정사를 맡겼다. 하였다.
衆曰 袁, 曹方睦하고 爲袁所表用하니 必不敗好以招禍注+洪爲超使劉虞, 路梗, 因寓於袁紹, 紹表爲東郡太守, 治東武陽.리이다
좌우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원소袁紹조조曹操가 현재 화목하고 장홍은 원소가 표문表文을 올려서 등용된 사람이니, 반드시 우호友好를 무너뜨려 를 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注+장홍臧洪장초張超를 위하여 유우劉虞에게 사자使者로 갔었는데 길이 막히자 이로 인하여 원소袁紹에게 의탁하니, 원소가 표문表文을 올려 동군태수東郡太守로 삼아서 동무양東武陽치소治所를 두도록 하였다. 하였다.
超曰 子源 天下義士 終不背本注+子源, 洪字.이로되 但恐見制强力하여 不相及耳注+强力, 謂强有力也.니라
그러자 장초가 말하기를 “자원子源(장홍臧洪)은 천하天下의사義士이니, 끝내 근본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注+자원子源장홍臧洪이다. 다만 강하여 힘이 센 원소에게 제재를 당해 제때에 이르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注+강력强力”은 강하여 힘이 셈을 이른다. 하였다.
時爲東郡太守러니 徒跣號泣하여 從紹請兵하여 將赴其難이로되 紹不與하고
장홍은 당시 동군태수東郡太守로 있었는데 〈장초의 형세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맨발로 달려와 목 놓아 큰 소리로 울면서 원소에게 군대를 출동시켜 줄 것을 청하여 장초에게 가서 그의 위난危難을 구제하려고 하였으나 원소가 군대를 내어주지 않았다.
請自率所領以行이로되 亦不許하여 雍丘遂潰하니 超自殺하다
그러자 장홍이 자기가 거느린 병력만을 인솔하여 가게 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원소가 또한 허락하지 않았다. 옹구雍丘가 마침내 무너져 패하니, 장초가 자살하였다.
由是怨紹하여 絶不與通이라 紹興兵圍之하여 歷年不下러니 令陳琳으로 以書喩之注+琳, 洪邑人.한대
장홍臧洪이 이로 말미암아 원소袁紹를 원망하여 모든 관계를 끊고 그와 통교通交하지 않았다. 원소가 군대를 일으켜 장홍을 포위 공격하였는데 한 해가 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진림陳琳에게 명하여 장홍에게 편지를 써서 타이르도록 하였다.注+진림陳琳장홍臧洪동읍同邑(동향同鄕) 사람이다.
復書曰 僕 小人也 中因行役하여 蒙主人傾蓋하여 遂竊大州注+洪甞寓於紹, 故謂之主人也. 傾蓋者, 道行相遇, 輧車對語, 兩蓋相切小欹之義也. 一說 “傾者, 却不御也, 所以尊禮也.”하니 自謂究竟大事하고 共尊王室이러니
이에 장홍이 답장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도중에 행역行役(사자使者의 일)을 말미암아 주인主人(원소袁紹)의 지우知遇를 입어서 마침내 외람되게도 큰 를 맡았으니注+장홍臧洪이 일찍이 원소袁紹에게 의탁하였기 때문에 그를 일러 주인主人이라고 한 것이다. “경개傾蓋”는 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 병거輧車(휘장이 있는 수레)를 가까이 대고 말할 적에 두 수레의 산개傘蓋(일산)가 서로 맞닿아서 조금 기운다는 뜻이다. 일설에 “은 물러나 수레를 몰지 않음이니, 존경하여 예우하는 것이다.” 하였다., 스스로 대사大事를 완수하고 함께 황실皇室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豈悟本州被侵하고 郡將遘厄注+郡將, 謂張超也. 遘, 遇也.하여 請師見拒하고 辭行被拘하여 使洪故君으로 遂至淪沒하여 區區微節 無所獲申이리오
본주本州(광릉廣陵)가 침범당하고 군장郡將(장초張超)이 액난을 만나서注+군장郡將장초張超를 이른다. 는 만남이다. 군대를 출동시켜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하직하고 길을 떠나려 하였으나 구애받아서 나의 옛 주군으로 하여금 마침내 패멸敗滅에 이르게 하여 구구區區한 나의 미절微節을 펼 수 없게 될 줄을 어찌 생각했겠는가.
斯所以忍悲揮戈하여 收淚告絶者也 行矣어다 孔璋注+行矣, 猶言好去也. 孔璋, 琳字. 足下 徼利於境外하고 臧洪 投命於君親하며
이것이 내가 슬픔을 참고 창을 휘둘러 눈물을 거두고 절교를 고한 까닭이니, 떠나가라. 공장孔璋(진림陳琳)이여!注+행의行矣”는 호거好去(잘 가라)라고 말한 것과 같다. 공장孔璋진림陳琳이다. 족하足下경외境外에서 이익을 구하고 나 장홍은 군친君親에게 목숨을 바치며,
吾子 託身於盟主하고 臧洪 策名於長安注+盟主, 謂袁紹也. 策名, 謂名書於所臣之策. 時帝在長安.이니 子謂余身死而名滅이나 僕亦笑子生而無聞焉하노라
그대는 맹주盟主(원소袁紹)에게 몸을 의탁하고 나 장홍은 황제가 계신 장안長安에서 임판任版에 이름을 올렸으니注+맹주盟主원소袁紹를 이른다. “책명策名”은 이름을 신하의 명부名簿에 올림을 이른다. 당시에 황제가 장안長安에 있었다., 그대는 내가 죽으면 이름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나 역시 그대가 살아 있으나 이름이 알려지지 못함을 비웃는 바이다.”
紹遂增兵急攻하니 城中糧穀已盡이라 呼將吏士民하여 謂曰 洪 於大義 不得不死어니와 諸君 無事
원소袁紹가 마침내 병력을 늘려 맹공을 가하니, 성안에 양곡糧穀이 이미 다하였다. 장홍이 장수와 관원 및 사민士民을 불러서 이르기를 “나 장홍은 대의大義로 볼 때 죽지 않을 수 없지만 그대들은 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可先城未敗하여 將妻子出注+先, 悉薦切.하라하니 皆垂泣曰 明府與袁氏 本無怨隙이러니 今爲本朝郡將之故 自致殘困하니
성이 함락되기 전에 처자식을 데리고 성을 나가는 것이 좋겠다.”注+(앞섬)은 실천悉薦이다. 하니, 모두 눈물을 떨구며 말하기를 “밝으신 태수太守께서는 원씨袁氏와 본래 혐극嫌隙(원한)이 없었는데 지금 본조本朝군장郡將(장초張超) 때문에 스스로 잔패殘敗와 곤궁을 초래하였으니,
吏民 何忍當舍明府去也리오 尙掘鼠, 煮筋角이러니 後無可復食者
관리와 백성들이 어찌 차마 밝으신 태수太守를 버려두고 떠나갈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쥐를 잡아먹고 활 따위의 힘줄과 뿔을 삶아 먹었는데, 뒤에는 더 이상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內廚 有米三升이어늘 以爲薄糜하여 徧班士衆注+ 洪傳作三斗.하고 又殺其愛妾以食之注+食, 讀曰하니
주방廚房에 쌀이 3되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묽은 죽을 쑤어 군사들에게 두루 나누어 주고注+삼승三升”은 ≪후한서後漢書≫ 〈장홍전臧洪傳〉에는 “삼두三斗”로 되어 있다. 또 그 애첩愛妾을 죽여서 먹이니注+(먹이다)는 로 읽는다.,
將士流涕하여 無能仰視 男女七八千人 相枕而死호되 莫有離叛者러라
장수와 사졸들이 눈물을 흘려서 차마 얼굴을 들고 바라보는 자가 없었다. 남녀 7, 8천 명이 서로 잇달아 죽었지만 떠나가 배반하는 자가 없었다.
城陷 生執洪하여 謂曰 今日服未 據地瞋目曰 諸袁 事漢하여 四世五公하니 可謂受恩이어늘
】 성이 함락되었을 적에 원소袁紹장홍臧洪을 사로잡고 그에게 이르기를 “오늘에 항복하겠는가?” 하자, 장홍이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눈을 부릅뜨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씨袁氏들이 나라를 섬겨서 4대에 걸쳐 5명의 삼공三公이 배출되었으니, 나라의 큰 은혜를 받았다고 이를 만하다.
今王室衰弱호되 無扶翼之意하고 欲因際會하여 希冀非望하고 多殺忠良하여 以立姦威
지금 황실皇室이 쇠약한데도 그대는 황실을 보호해 도울 뜻은 없고 기회를 이용하여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고 충량忠良한 사람들을 많이 죽여서 간악한 위세를 세우려 한다.
惜洪力劣하여 不能推刃爲天下報仇하니 何謂服乎아하니 紹殺之注+劣, 弱也. 推, 吐雷切.하다
나 장홍이 힘이 약하여 천하를 위해 원수를 갚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우니, 어찌 항복을 말하는가.” 원소가 그를 죽였다.注+은 약함이다. (밀다)는 토뢰吐雷이다.
洪邑人陳容 少親慕洪이러니 時在紹坐라가 起謂紹曰 將軍 擧大事 欲爲天下除暴어늘 而先誅忠義하니 豈合天意리오하니
장홍臧洪동읍同邑(동향同鄕) 사람 진용陳容이 젊어서부터 장홍과 친하게 지내고 그를 사모하였는데, 당시에 원소袁紹와 함께 그 자리에 있다가 일어나서 원소에게 이르기를 “장군이 대사大事를 거행함은 천하 백성을 위하여 포학한 자를 제거하고자 한 것인데 먼저 충의忠義의 선비를 주살하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뜻에 부합하겠습니까.” 하였다.
紹慙하여 使人牽出하여 謂曰 汝非臧洪儔어늘 空復爾爲注+爾爲, 猶如此也. 顧曰 仁義豈有常리오
원소가 부끄러워하여 사람을 시켜 끌어내게 하고 이르기를 “너는 장홍의 무리도 아닌데 공연히 다시 이처럼 행동한단 말인가.”注+이위爾爲”는 여차如此(이와 같다)와 같다. 하니, 진용이 돌아보며 말하기를 “인의仁義에 어찌 일정한 것이 있겠습니까.
蹈之則君子 背之則小人이니 今日 寧爲臧洪同日而死언정 不與將軍同日而生也注+寧爲, 通鑑作寧與.라하여 遂復見殺하니
인의를 그대로 행하면 군자君子이고 인의를 어기면 소인小人이니, 오늘에 차라리 장홍을 위해 날을 같이하여 죽을지언정 장군과 함께 날을 같이하여 살지는 않겠습니다.”注+녕위寧爲”는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녕여寧與”로 되어 있다. 하여 마침내 또다시 죽임을 당하였다.
在坐無不歎息하고 竊相謂曰 如何一日殺二烈士오하니라
함께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속으로 서로 말하기를 “어찌 하루에 두 명의 열사烈士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유우劉虞의 옛 속리屬吏선우보鮮于輔유우劉虞의 아들 유화劉和를 맞이하여 공손찬公孫瓚을 공격해 격파하였다.
公孫瓚 旣殺劉虞하고 盡有幽州하니 恃其才力하고 不恤百姓하며 記過忘善하고 睚眥必報
공손찬公孫瓚이 이미 유우劉虞를 죽이고 유주幽州를 전부 차지하니,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믿고서 백성을 돌보지 않았으며, 남의 허물만 기억하고 좋은 점은 잊어버리고, 흘겨보는 정도의 사소한 원한에도 반드시 보복하였다.
衣冠善士, 有材秀者 必抑困하여 使在窮苦之地하다 問其故한대
의관衣冠을 갖춘 선사善士와 출중한 재능을 지닌 자들을 반드시 억누르고 곤란하게 하여 궁고窮苦한 상황에 처하게 하였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瓚曰 衣冠 皆自以職分當貴라하여 不謝人惠라하니 故所寵愛 類多商販, 庸兒 所在侵暴하니 百姓 怨之하니라
공손찬이 말하기를 “의관衣冠을 갖춘 사대부士大夫들은 모두 자신은 직분職分상 당연히 존귀해야 한다고 여겨서 다른 사람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해 하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총애한 사람들은 대부분 장사치 따위의 용렬한 자들이어서 있는 곳마다 침탈과 포학함을 자행하니,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劉虞從事鮮于輔等注+鮮于, 複姓. 以燕國閻柔 素有恩信이라하여 推爲烏桓司馬하고
유우劉虞종사 선우보從事 鮮于輔 등이注+선우鮮于복성複姓이다. 연국燕國 사람 염유閻柔가 평소 은혜와 신의가 있다고 하여 그를 추대하여 오환사마烏桓司馬로 삼았다.
招誘胡, 漢數萬人하여 與瓚所置漁陽太守鄒丹으로하여 斬之注+柔, 廣陽人. 少沒烏桓ㆍ鮮卑中, 爲其種人所歸信. 護烏桓校尉, 有司馬二人, 秩六百石.하고
염유가 호족胡族한족漢族 수만 명을 초유招誘하여 공손찬公孫瓚이 설치한 어양태수 추단漁陽太守 鄒丹과 싸워서 참살하였다.注+염유閻柔광양廣陽 사람으로, 젊었을 적에 오환烏桓선비鮮卑에 포로로 잡혀가서 그 부족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신임을 받았다.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사마司馬 두 명을 두니, 〈사마司馬의〉 육백석六百石이다.
烏桓峭王 亦率種人及鮮卑七千餘騎하여 隨輔하여 南迎虞子和하여
오환烏桓초왕峭王 역시 자기 부족 사람들과 선비족鮮卑族 등 도합 7천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선우보鮮于輔를 따라 남쪽으로 와서 유우劉虞의 아들 유화劉和를 맞이하여
與袁紹將麴義 合兵十萬하여 共攻瓚하여 破瓚於鮑丘하고 斬首二萬餘級注+鮑丘, 水名. 水經注 “鮑丘水從塞外來, 南過漁陽縣東. 和等破瓚處也. 又南過潞縣西.”하다
원소袁紹의 장수 국의麴義와 연합해서 도합 10만의 병력으로 함께 공손찬을 공격하여 포구鮑丘에서 공손찬을 격파하고 수급首級 2만여 급을 베었다.注+포구鮑丘는 물의 이름이다. ≪수경주水經注≫에 “포구수鮑丘水새외塞外로부터 흘러와서 남쪽으로 어양현漁陽縣의 동쪽을 지나가니, 유화劉和 등이 공손찬公孫瓚을 격파한 곳이다. 또 남쪽으로 노현潞縣의 서쪽을 지나간다.” 하였다.
於是 代郡, 廣陽, 上谷, 右北平 各殺瓚所置長吏하니 瓚軍 屢敗하다
이에 대군代郡, 광양廣陽, 상곡上谷, 우북평右北平 등의 지역이 각각 공손찬이 설치한 장리長吏를 죽이니, 공손찬의 군대가 여러 번 패하였다.
先是 有童謠曰 燕南垂, 趙北際 中央不合大如礪하니 唯有此中可避世注+如礪, 言其小也, 猶泰山若礪之意.라하니
】 이보다 앞서 동요童謠에 “연국燕國의 남쪽 경계와 조국趙國의 북쪽 경계에 중간中間이 합쳐지지 않은 곳이 크기가 숫돌만 한데, 오직 이 가운데에서만 난을 피할 수 있다.”注+여려如礪”는 그 크기가 〈숫돌만 하여〉 작음을 말하니, 태산泰山이 닳고 닳아서 숫돌만 해진다는 뜻과 같다. 하였다.
自謂易地當之注+易, 羊益切. 前書, 易縣屬涿郡. 續漢志, 屬河間.라하여 遂徙鎭易하고 爲圍塹十重하고 築京高十丈하고 爲樓其上호되 以鐵爲門注+說文 “京, 人所爲絶高丘也.” 水經註 “易京, 易城西四五里, 易水逕其南.”하다
공손찬公孫瓚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역현易縣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注+양익羊益이다. ≪한서漢書≫에는 “역현易縣탁군涿郡에 속하였다.” 하고, ≪속한지續漢志≫에는 “하간河間에 속하였다.” 하였다. 하여 마침내 역현易縣으로 진영鎭營을 옮기고 성루城壘를 에워싸는 참호塹壕를 열 겹으로 만들고 참호 안에 높이가 10인 큰 구릉丘陵을 쌓고서 그 위에 (망루望樓)를 만들되 로 문을 만들었다.注+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은 사람이 만든 매우 높고 큰 구릉丘陵이다.” 하였다. ≪수경주水經注≫에 “역경易京역성易城의 서쪽 4, 5리 지점에 있으니, 역수易水가 그 남쪽을 지나간다.” 하였다.
專與姬妾居하고 疏遠賓客하여 無所親信하니 謀臣, 猛將 稍稍乖散이러라
그러고는 오로지 자신의 희첩姬妾과만 거주하고 빈객賓客들을 소원하게 대하여 가까이 신임하는 사람이 없으니, 모신謀臣맹장猛將들이 차츰 배반하여 이산離散하였다.
自此之後 希復攻戰이어늘 或問其故한대 瓚曰 我昔謂天下 指麾可定이러니
공손찬은 이후로 다시 공격하여 싸우는 일이 드물어졌는데,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옛적에는 천하를 지휘指麾하여 평정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至於今日하여 兵革方始하니 觀此컨대 非我所決이니 不如休兵力耕하여 以救凶年이라
오늘날에 이르러 전쟁이 막 시작되고 있으니, 이것을 보건대 이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사들을 쉬게 하여 경작에 힘써서 흉년凶年을 구제하는 것만 못하다.
兵法 百樓不攻이라하니 今吾諸營樓樐數十重이요 積穀 三百萬斛이니 食盡此穀이면 足以待天下之事矣注+樐, 與櫓通, 城上守禦望樓也. 上無覆屋.라하니라
병법兵法에 ‘는 공격하지 못한다.’ 하였는데, 지금 나의 각 군영에는 누로樓樐(누로)가 수십 겹이고 비축한 양곡이 3백만 이니, 이 양곡을 다 먹으면 천하의 일이 판가름 나는 것을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注+와 통하니, 위에 수어守禦하는 망루望樓로 그 위에는 지붕이 없다.
역주
역주1 卽拜袁紹爲右將軍 : “三公이 아니면 ‘卽拜(현지에 나아가 임명하다.)’라고 쓴 경우가 있지 않았는데 (張溫과 劉虞가 모두 太尉와 大司馬인 것에 근거한 것이다.) 右將軍에 대해서 곧바로 ‘卽拜’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비판한 것이다. 袁紹가 勤王하지 않았는데 漢나라 조정에서 鄴城에 나아가 그를 임명하였으니, 卽拜라고 쓴 것은 원소를 부끄럽게 하기 위한 것이다.[非三公 未有書卽拜者(據張溫劉虞皆太尉大司馬) 右將軍直書卽拜 何 譏也 紹不勤王而漢就拜之 書卽拜 所以媿紹也]다” ≪書法≫
역주2 將軍張濟 迎帝東歸 : “‘劫帝’, ‘遷帝’라고 쓴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迎帝’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본래 황제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張濟에 대해 ‘將軍’이라고 쓸 수 있었다. 〈뒤에 장제가 李傕과 郭汜와 연합하여〉 황제를 뒤쫓아 陝縣에 이르러서는 叛逆이니, 다시 장제에 대해서 장군의 칭호를 삭제하고 이각과 곽사에 대해 성을 쓰지 않았다.[書劫帝遷帝有之矣 此其書迎帝 何 本帝意也 故張濟得書將軍 及追帝至陝則逆矣 復削稱張濟而傕汜不書姓]” ≪書法≫
역주3 封賞 : 상으로 관작․재물․토지 등을 봉해주는 것을 이른다.
역주4 後漢書……있다 : ≪後漢書≫ 권102 〈董卓列傳〉에 “郭汜가 마침내 다시 황제를 협박하여 郿縣으로 거둥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楊定과 楊奉과 董承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汜遂復欲脅帝幸郿 定奉承不聽]”라고 보인다.
역주5 帝渡河 入李樂營 : “‘李樂의 군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썼으니, 그렇다면 ‘겁박하여 옮겼다.’라고 쓴 것과는 다르다.[書入李樂營 則與書劫遷者異矣]” ≪書法≫
역주6 綿帛 : 솜, 명주, 비단의 총칭이다.
역주7 아랫사람이……이루어진다 : 이는 본래 ≪春秋左氏傳≫에 대한 杜預의 注로, 隱公 10년(B.C.713) 조에 보인다.
역주8 (木)[太] : 저본에는 ‘木’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太’로 바로잡았다.
역주9 請吏 : “請吏”의 吏자는 事의 古字이며, ≪呂氏春秋≫ 권17 〈任數〉에는 “請事”로 되어 있다.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지시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의미로, 여기에서는 이 뜻을 취하여 번역하였음을 밝혀두는 바이다.(≪新序校釋≫ 〈雜事〉, ≪新序今註今譯≫ 〈雜事〉, ≪新序全譯≫ 〈雜事〉)
역주10 袁紹圍東郡……殺之 : “≪資治通鑑綱目≫을 살펴보면 이해 정월에 ‘현지에서 袁紹를 右將軍에 임명하였다.’라고 쓰고, 2월에 ‘李傕이 황제를 겁박하여 그의 군영으로 들어오게 하였다.’라고 쓰고, 4월에 ‘이각이 황제를 北塢로 옮겼다.’라고 쓰고, 12월에 ‘이각이 황제를 뒤쫓아 陝縣에 이르렀는데, 황제가 黃河를 건너 李樂의 군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썼다. 이때를 당하여 乘輿가 播遷하여 가시덤불 속에서 분주하였다. 그런데 원소의 집안은 몇 代에 걸쳐 台輔를 지냈고 자기는 이제 막 上將의 임명을 받아서 손에 강력한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大駕를 받들어 맞이하지 못하고, 마침내 沮授의 바른 의논을 물리치고 郭圖의 간사한 말을 두려워하여 朝廷이 傾覆되는 것을 坐視하고 조금도 돌아보지 않았다. 게다가 또 東郡을 포위 공격하여 자기의 私慾을 채우고자 하였으며, 일찍이 달려가 황제에게 문안하고 관직을 수행하려는 뜻이 없었다. 臧洪은 원소와 본래 嫌隙이 없었고 다만 郡將(郡守) 張超에게 충절을 다함으로써 뜻을 지켜 굽히지 않았을 뿐이다. 장홍이 눈을 부릅뜨고 원소의 죄를 낱낱이 열거한 말을 보면 그의 罪狀에 적중하였는데 원소가 스스로 반성할 줄을 알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東郡을 포위하여 태수 장홍을 붙잡아 죽였다.’라고 썼으니, 원소가 병력의 많음을 믿고 힘에 의지하여 守臣(지방관)을 잡아 죽이고, 장홍이 예상치 못하게 흉포한 자의 禍에 걸렸으나 官守를 잃지 않고 힘이 다하여 害를 당한 뜻을 볼 수 있으니, 이것이 모두 삼엄하게 書法의 사이에 드러난다. 그렇다면 원소의 죄를 이루 다 주벌할 수 있겠는가.[考之綱目 是年正月書卽拜袁紹爲右將軍 二月書李傕劫帝入其營 四月書傕遷帝北塢 十二月書傕追帝至陝 帝渡河入李樂營 方是時也 乘輿播越 奔走荊棘中 袁紹累葉台輔 新受上將之命 手握彊兵 不能奉迎大駕 而乃却沮授之正議 怵郭圖之邪說 坐視朝廷傾覆 略弗之顧 方且攻圍東郡 求逞己私 曾無奔問官守之意 臧洪與紹本無怨隙 徒以盡節郡將 守志不屈而已 觀其瞋目數紹之語 深中其罪 而紹不知自反 何哉 書圍東郡執太守臧洪殺之 所以見其怙衆憑力 執殺守臣 而臧洪橫罹桀逆 不失官守 力屈見害之意 皆森然著見(현)於書法之間 然則袁紹之罪 可勝誅哉]” ≪發明≫
역주11 功曹 : 본서 49쪽 역주 54) 참조.
역주12 (幷)[升] : 저본에는 ‘幷’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升’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3 (飮)[飤] : 저본에는 ‘飮’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飤’로 바로잡았다.
역주14 칼을 뽑아 : 원문의 “推刃”은 원래 “칼날을 밀친다.”는 뜻이다. ≪春秋公羊傳≫ 定公 4년 조에 “아버지가 죄를 지어 주벌을 받고 죽은 경우가 아니면 아들이 복수하는 것이 옳지만, 아버지가 죄를 지어 주벌을 받고 죽었는데 아들이 복수하는 것은 칼날을 밀치는 道이다.[父不受誅 子復讎 可也 父受誅 子復讐 推刃之道也]”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何休의 注에 “한 번 가고 한 번 옴을 ‘칼날을 밀침’이라고 한다.[一往一來曰推刃]”라고 하였다. 이는 본래 아버지가 죄를 지어 주벌을 받아 마땅한데 자식이 원수를 갚으면, 원수의 아들 역시 반드시 보복할 것인바, 이렇게 되면 복수가 복수를 불러 복수를 반복하게 됨을 말한다. 여기서는 引伸하여 刀劍으로 다른 사람을 찔러 죽이거나 혹은 원수를 갚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역주15 劉虞故吏鮮于輔……破之 : “‘故吏’를 쓴 것은 어째서인가. 의로움을 허여한 것이다. 이 때문에 鮮于輔에 대해 ‘劉虞의 故吏’라고 썼고 陳安에 대해 ‘晉王 司馬保의 故將’이라고 썼고 麻秋와 張賀度에 대해 ‘故趙將(옛 後趙의 장수)’이라고 썼고 劉黑闥에 대해 ‘竇建德의 故將’이라고 썼고 鞏廷美에 대해 ‘湘陰의 故將’이라고 썼으니, 이는 모두 허여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故吏’라고 쓴 것이 1번이고 ‘故將’이라고 쓴 것이 7번인데, 오직 옛 楚나라 장수[故楚將] 利幾에 대해 反자를 썼고 成都의 故將 公師藩에 대해 寇자를 썼다. 이는 죄주는 말이 되니, 逆賊의 黨이기 때문이다.[書故吏何 予義也 是故鮮于輔以劉虞故吏書 陳安以晉王保故將書 麻秋張賀度以故趙將書 劉黑闥以竇建德故將書 鞏廷美以湘陰故將書 皆予之也 終綱目 書故吏一 故將七 唯故楚將利幾書反 成都故將公師藩書寇 爲罪辭 逆黨也]” ≪書法≫ “‘故吏’라고 쓴 것은, 한편으로는 劉虞의 은덕이 사람들에게 남아 있어서 사라지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고, 한편으로는 鮮于輔 등이 옛 주인을 잊지 않는 의리를 나타낸 것이니, 아마도 이는 모두 忠臣과 義士를 권면함이 될 것이다.[故吏之書 一以見虞之恩德在人未泯 一則見輔等不忘故主之義 皆所以爲忠臣義士之勸也歟]” ≪發明≫
역주16 百樓 : 敵情을 관찰하는 높은 누대로, 百은 ‘백 층 높이’인바, 樓臺가 매우 높음을 뜻한다.
역주17 (有)[在] : 저본에는 ‘有’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在’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0)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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