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用之於身이면 則動靜有法而百行備焉하고 用之於家면 則尊卑有別而九族睦焉하고 用之於鄕이면 則長幼有倫而俗化美焉하고 用之於國이면 則君臣有敍而政治成焉하고 用之於天下면 則諸侯賓服而紀綱正焉하나니 豈直几席之上, 戶庭之間에 得之而不亂哉리오
夫以高祖之明達로 誠得大儒而佐之하여 與之以禮爲天下면 其功烈이 豈若是而止哉리오
徒竊禮之糠粃
하여 以諧俗取寵
하여 遂使先王之禮
로 淪沒不振
하여 以迄于今
하니 豈不痛甚矣哉
注+糠, 穀皮. 粃, 音比, 穀不熟爲粃. 糠粃, 以喩輕賤也.리오
曰 何如其大也오 曰 叔孫通이 欲制君臣之儀하여 召先生於魯할새 所不能致者二人이니라 曰
若是則仲尼之開迹諸侯也 非邪
注+開迹, 謂開布其迹於諸侯之國, 猶言歷聘也.아 曰 仲尼開迹
은 將以自用也
注+謂欲行己之道, 合於聖人之法.시니
如委己而從人이면 雖有規矩準繩이나 焉得而用之리오하니
夫大儒者 惡肯毁其規矩準繩하여 以趨一時之功哉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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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이것을 자기 몸에 사용하면 동動과 정靜이 법도가 있어서 온갖 행실이 구비되고, 집안에 사용하면 납內와 외外가 분별이 있어서 구족九族이 화목하게 되고, 향리鄕里에서 사용하면 어른과 어린이가 차례가 있어서 풍속의 교화가 아름답게 되고, 국가에 사용하면 군주와 신하가 차례가 있어서 정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천하에 사용하면 제후들이 잘 복종하여 기강이 바르게 되니, 어찌 다만 궤석几席의 위와 문호의 뜰 사이에서 예禮를 얻어 혼란하지 않게 될 뿐이겠는가.
고조高祖의 밝고 통달한 자품으로 참으로 큰 유학자를 얻어 보좌하게 해서 그와 더불어 예禮로써 천하를 다스렸다면, 그 공렬功烈이 어찌 이 정도에 그칠 뿐이겠는가.
한갓
예禮의 찌꺼기만을 도둑질해서 세속에 영합하여 은총을 취해 마침내
선왕先王의
예禮로 하여금 매몰되어 떨치지 못해서 지금에 이르게 하였으니, 어찌 매우 애통하지 않겠는가.
注+강糠은 곡식의 껍질이다. 비粃는 음이 비比이니, 곡식이 제대로 익지 않은 것을 비粃라고 한다. “강비糠粃”는 이것으로 가볍고 천함을 비유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자揚子(양웅揚雄)가 비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노魯나라에 덕德이 높은 신하가 있었는데 역사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혹자가 양자揚子에게 「어찌하여 덕德이 높다고 합니까?」라고 물으니, 「숙손통叔孫通이 군신君臣 간의 의례儀禮를 만들고자 하여 노魯나라에서 선생先生들을 불렀는데, 데려가지 못한 사람이 두 명 있었으니, 바로 이들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와 같다면
중니仲尼(
공자孔子)가 제후들을 두루 찾아다닌 것은 잘못한 것입니까?」
注+“개적開迹”은 제후국에 가서 자신의 포부를 펴서 보여줌을 말하니, “역빙歷聘”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물으니, 「
중니仲尼가 제후들을 찾아다닌 것은 장차 자신의
도道를 행하기 위해서였다.
注+〈“장이자용야將以自用也”는〉 자신의 도를 행해서 성인聖人의 법에 합치하려고 함을 말한다.
만일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른다면 비록
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저 대유大儒가 어찌 자신의 규구준승規矩準繩을 훼손하면서 일시적인 공리功利를 쫓아가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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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왕자王者는 인의仁義로 화려함을 삼고 도덕道德으로 위엄을 삼으니, 궁실을 가지고 천하를 제압하고 복종시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면 마땅히 사욕私欲을 이기고 비용을 절약하여 백성들에게 시급한 것을 힘썼어야 하는데 도리어 궁궐 짓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으니, 어찌 힘써야 할 것을 안다고 하겠는가.
옛날 우왕禹王은 궁궐을 낮게 지었는데 걸왕桀王은 옥으로 장식한 궁궐인 경궁傾宮을 지었으니, 창업創業하여 후세에 전통을 남겨주는 군주가 몸소 절약과 검소함을 실천하여 자손에게 가르치고 보여주더라도 나중에는 음탕하고 화려한 데로 들어가게 되는데, 하물며 사치함을 보여준단 말인가.
효무제孝武帝 때에 마침내 궁궐을 짓느라 천하를 피폐하게 하였으니, 이는 필시 찬후酇侯(소하蕭何)가 계도한 데에서 연유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