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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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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年(B.C. 123)
무오년(B.C. 123)
六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삭元朔 6년이다.
春二月 遣衛靑하여 率六將軍하여 擊匈奴하다
봄 2월에 위청衛靑을 보내어 여섯 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가서 흉노匈奴를 공격하게 하였다.
大將軍靑 出定襄할새 公孫敖, 公孫賀, 趙信, 蘇建, 李廣, 李沮咸屬하여 斬首數千級而還하다
[目] 대장군大將軍 위청衛靑정양定襄으로 출동할 적에 공손오公孫敖공손하公孫賀, 조신趙信소건蘇建, 이광李廣이저李沮(이조)가 모두 소속되어서 〈흉노匈奴를 공격하여〉 수천 명의 수급을 베고 돌아왔다.
하다
[綱] 사면赦免하였다.
◑ 夏四月 衛靑 復率六將軍하여 擊匈奴러니 前將軍趙信 敗降匈奴하다
[綱] 여름 4월에 위청衛靑이 다시 여섯 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가서 흉노匈奴를 공격하였는데, 전장군前將軍 조신趙信이 패하여 흉노匈奴에게 항복하였다.
復將六將軍하여 出定襄하여 擊匈奴하여 斬首虜萬餘人하다
[目] 위청衛靑이 다시 여섯 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정양定襄으로 출동하여 흉노匈奴를 공격해서 수급을 베고 포로로 잡은 자가 만여 명이었다.
右將軍建 前將軍信 幷軍이라가 逢單于兵하여 與戰一日餘 漢兵且盡이어늘
우장군右將軍 소건蘇建전장군前將軍 조신趙信이 군대를 연합하여 출전하였다가 선우單于의 군대를 만나 싸운 지 하루 남짓에 나라 군대가 장차 전멸하게 되었다.
將其餘騎하여 降匈奴하고 盡亡其軍하여 脫身亡自歸하다
조신은 남은 기병을 거느리고 흉노에게 항복하였고, 소건은 군대를 모두 잃고 몸만 빠져나와 도망쳐 자신만 돌아왔다.
議郞周霸曰注+議郞, 屬郞中令. 自大將軍出 未嘗斬裨將이러니 今建棄軍하니 可斬以明威니이다 靑曰 靑 幸得以肺腑 待罪行間하니 不患無威注+肺腑, 腹心也, 謂親屬也.
의랑議郞 주패周霸가 위청에게 건의하기를注+의랑議郞낭중령郞中令에 속하였다. 대장군大將軍께서 출전한 뒤로 비장裨將을 목 벤 적이 없었는데, 지금 소건이 군대를 버리고 도망쳐왔으니, 목을 베어 위엄을 밝혀야 합니다.” 하였으나, 위청은 말하기를 “내 다행히 황제의 폐부肺腑(친척)로서 항오行伍의 사이에서 직임을 맡고 있으니, 위엄이 없음을 걱정하지 않는다.注+폐부肺腑”는 복심腹心이란 뜻이니, 임금의 친속을 이른다.
職雖當斬將이나 然以臣之尊寵으로 而不敢自擅誅於境外하여 於以見爲人臣不敢專權 不亦可乎아하고
내 직책상 비록 마땅히 비장을 목 벨 수 있으나, 황제의 존중과 총애를 받는 신하로서 감히 국경 밖에서 멋대로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여, ‘신하된 자는 감히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함’을 보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고는
遂囚建하여 詣行在所하니 詔贖爲庶人注+天子或在京師, 或出巡狩, 不可豫定, 故言行在所.하다
마침내 소건을 가두어 행재소行在所로 나오니, 조령詔令을 내려 소건을 속죄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注+천자天子가 혹은 경사京師에 있고 혹은 순수巡狩에 나가 있어 미리 정할 수 없으므로 “행재소行在所”라 말한 것이다.
靑姊子霍去病 年十八 善騎射하여 爲票姚校尉注+初平陽縣吏霍仲孺, 給事平陽侯家, 與靑姊衛少兒私通, 生去病. 票, 頻妙切. 姚, 羊召切. 票姚, 勁疾之貌.러니 與輕勇騎八百으로 直棄大軍하고 數百里赴利하여 斬捕首虜過當注+赴, 奔趨也. 利, 便利也. 過當, 言計其所將人數, 則捕斬首爲多,過於所當也. 一曰 “漢軍失亡者少, 而殺獲匈奴數多, 故曰過當也.”하니 於是 封爲冠軍侯注+帝以去病功冠諸軍, 以南陽穰縣盧陽鄕‧宛縣臨駣聚, 爲冠軍侯國. 駣, 音桃.하고 校尉張騫 以知水草處하여 軍得不乏이라하여 封博望侯注+取其能廣博瞻望也. 班志 “博望侯國, 屬南陽郡.”하다
[目] 위청衛靑의 누이 아들인 곽거병霍去病은 나이 18세에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표요교위票姚校尉가 되었는데,注+처음에 평양현平陽縣의 아전인 곽중유霍仲孺평양후平陽侯의 집에서 집사 노릇을 하다가 위청衛靑의 누이인 위소아衛少兒사통私通하여 곽거병霍去病을 낳았다. 빈묘頻妙이고 양소羊召이니, “표요票姚”는 빠른 모양이다. 날쌔고 용맹한 기병 8백 명을 인솔하고는 곧바로 대군大軍을 두고서 수백 리나 멀리 유리한 곳으로 달려가서 적의 수급을 베고 포로를 잡은 것이 많으니,注+는 달려감이고, 는 편리함이다. “과당過當”은 그가 거느린 병력의 인원수를 계산해보면 포로로 잡고 수급을 벤 자가 많아서 해당하는 숫자를 넘은 것이다. 일설에 “나라 군대는 잃은 자가 적고 흉노를 죽이고 사로잡은 숫자가 많으므로 과당過當이라 한다.” 하였다. 이에 관군후冠軍侯로 봉하였고,注+황제는 곽거병霍去病이 여러 군대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남양군南陽郡양현穰縣 노양향盧陽鄕완현宛縣 임조취臨駣聚(임도취)를 관군후冠軍侯의 봉국으로 삼았다. 는 음이 이다. 교위校尉 장건張騫수초水草가 있는 곳을 알아 군대가 궁핍하지 않게 했다 하여 박망후博望侯로 봉하였다.注+〈“박망博望”은〉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뜻을 취한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박망후博望侯의 봉국은 남양군南陽郡에 속했다.” 하였다.
敎單于益北絶幕하여 以誘罷漢兵하여徼極而取之하고 毋近塞한대 單于從之注+益北, 向北也. 直度曰絶. 幕, 與漠同, 沙土曰漠. 陰山以北, 皆大漠, 不生草木, 匈奴之南界也. 罷, 讀曰疲. 徼, 要也. 誘令疲, 要其困極, 然後取之. 近‧塞, 竝去聲, 不近塞居, 所以疲勞漢兵也.하다
조신趙信선우單于로 하여금 더욱 북쪽으로 사막을 건너가 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피로하게 해서, 극도로 피로하기를 기다려 사로잡고 변방을 가까이하여 살지 말도록 권하자, 선우가 그의 말을 따랐다.注+익북益北”은 더욱 북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곧바로 건너가는 것을 이라 한다. 과 같으니, 모래흙을 이라 한다. 음산陰山 이북 지역은 모두 큰 사막으로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흉노匈奴의 남쪽 경계이다. (피로하다)는 로 읽는다. 는 기다림이니, 유인하여 피로하게 만들어서 그 피폐함이 지극하기를 기다린 뒤에 취하는 것이다. (가까이하다)과 (변방)는 모두 거성去聲이니, 변방에 가까이 살지 않음은 나라 군대를 피로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綱] 6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백성들이 관작을 사고 속죄할 수 있게 하고, 무공작武功爵을 설치하였다.
是時 比歲擊胡하니 斬捕首虜之士 受賜黃金 二十餘萬斤이요 而漢軍士馬死者 十餘萬이요 兵甲轉漕之費 不與焉이라
[目] 이때에 나라가 매년 흉노匈奴를 공격하니, 흉노의 수급을 베고 포로를 잡은 병사들이 하사받은 황금이 20여만 근이었고, 나라의 죽은 병사와 말이 10여 만이었으며, 무기를 수송하고 조운漕運하는 비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於是 大司農經用竭하여 不足以奉戰士注+經用竭, 謂常用之錢竭盡.
이에 대사농大司農경용經用(재정)이 고갈되어 전투하는 장병들의 비용을 충당할 수가 없었다.注+경용갈經用竭”은 경상經常으로 쓰는 돈이 고갈되어 다함을 말한다.
乃詔하여 令民得買爵贖罪하고 置賞官하고 名曰 武功爵이라하니 級十七萬注+武功爵十一級, 一造士, 二閑輿衛, 三良士, 四元戎士, 五官首, 六秉鐸, 七千夫, 八樂卿, 九執戎, 十政戾庶長, 十一軍衛也. 級十七萬者, 賣爵, 初一級爲錢十七萬, 至二級則三十四萬矣, 自以上, 每級而增.이라
이에 조령詔令을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관작을 사고 속죄할 수 있게 하고, 상관賞官을 설치하고 ‘무공작武功爵’이라 이름하니, 1계급에 17만 이었다.注+무공작武功爵은 모두 11등급이니, 1급은 조사造士, 2급은 한여위閑輿衛, 3급은 양사良士, 4급은 원융사元戎士, 5급은 관수官首, 6급은 병탁秉鐸, 7급은 천부千夫, 8급은 악경樂卿, 9급은 집융執戎, 10급은 정려서장政戾庶長, 11급은 군위軍衛이다. “급십칠만級十七萬”은 관작을 팔아서 처음 1급이 되면 17만 을 받고 2급에 이르면 34만 을 받은 것이니, 이로부터 위로 매 급마다 값을 더하였다.
買爵至千夫者 得先除爲吏注+千夫以上, 始免徭役, 故得先選以爲吏.하니 吏道雜而多端하여 官職 耗廢矣注+耗, 亂也.러라
관작을 사서 천부千夫에 이른 자는 맨 먼저 벼슬을 제수하여 관리로 삼으니,注+천부千夫 이상이라야 비로소 요역徭役을 면제받았다. 그러므로 맨 먼저 선발하여 관리로 삼게 한 것이다. 관리에 오르는 길이 혼잡하고 여러 갈래여서 관직이 혼란하고 황폐해졌다.注+는 혼란하다는 뜻이다.
역주
역주1 (兪)[愈] : 저본에는 ‘兪’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살펴 ‘愈’로 바로잡았다.
역주2 詔民……置武功爵 : “秦나라 때에 ‘백성들로 하여금 곡식을 바치게 하고 관작을 제수하였다.’고 쓴 뒤로 文帝에 이르러 ‘백성들을 불러 곡식을 바치게 하고는 관작을 제수하고 죄를 사면했다.’고 썼는데, 이때에 이르러 다시 보인다. 이 뒤에는 ‘株送徒로 하여금 재물을 바치게 하고 郞官에 補任하였다.’고 썼고, ‘죽을죄를 지은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바치고 贖罪하게 했다.’고 썼고, 明帝 때에 ‘조령을 내려 죄가 있어 망명한 자들에게 속죄를 허락하였다.’고 썼다. 兩漢의 세대에 속죄를 기록한 것이 다섯 번인데, 武帝 때에 세 번 기록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재정이 매우 급박했던 것이다.[自秦書令民納粟拜爵 及文帝 書召民入粟拜爵免罪 至是復見 後此書令株送徒入財補郞 書令死罪入贖 明帝書詔聽有罪亡命者贖 兩漢之世 書贖罪者五 帝三書焉 國亦急甚矣]” 《書法》
“관작은 나라의 공정한 기물이니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팔아먹었고, 형벌은 나라의 공정한 법이니 속죄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속죄하였다. 이로써 당시 用兵하여 비용이 많이 드는 폐해가 어떠한가를 볼 수 있다. ‘武功爵을 두었다.’고 말했으면, 經費가 軍功을 보상하기에 부족한 뜻을 또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爵者 國之公器 非可(買)[賣]也而(買)[賣]之 罪者 國之公法 非可贖也而贖之 於以見用兵煩費之患 爲如何哉 其曰置武功爵 則經費不足賞功之意 又自不言可見矣]” 《發明》 《御批資治通鑑綱目》에는 ‘買’로 되어 있으나, 文理를 살펴 ‘賣’로 바로잡았다.
역주3 (比)[此] : 저본에는 ‘比’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此’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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