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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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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丑年(B.C. 128)
계축년(B.C. 128)
元朔元年注+朔, 猶始也. 言更爲初始也.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삭元朔 원년이다.注+와 같으니,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定二千石不擧孝廉罪法하다
[綱] 겨울에 이천석二千石이 효성스럽거나 청렴한 자를 천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詔曰
[目] 조령詔令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深詔執事하여 興廉擧孝하여 庶幾成風하여 紹休聖緖注+休, 美也. 緖, 業也. 言紹先聖之休緖也.하노니
집사執事들에게 간곡히 명하여 청렴과 효도를 일으켜서 행여 좋은 풍속을 이루어 선대先代 성왕聖王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려고 하였다.注+는 아름다움이요 공업功業이니, 〈“소휴성서紹休聖緖”는〉 선대 성왕聖王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함을 말한 것이다.
夫十室之邑 必有忠信이요 三人竝行 厥有我師注+竝, 古並字.어늘 今或至闔郡而不薦一人注+闔, 音盍, 閉也. 摠一郡之中, 故云闔郡.하니 化不下究하여 而積行之君子 壅於上聞也注+究, 竟也. 行, 去聲. 壅於上聞, 言見壅遏, 不得聞達於天子也.
注+고자古字이다. 지금 혹 을 통틀어서 한 사람도 천거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으니,注+은 음이 이니, 문을 닫는다는 뜻이다. 온 안을 통틀었기 때문에 “합군闔郡”이라 한 것이다, 이는 교화가 아래까지 다 이르지 못하여, 품행을 쌓은 군자가 가로막혀 위에 알려지지 못한 것이다.注+는 다함이다. (품행)은 거성去聲이다. “옹어상문壅於上聞”은 가로막혀서 천자에게 알려지지 못함을 말한다.
且進賢 受上賞하고 蔽賢 蒙顯戮 古之道也 其議二千石不擧者罪하라
또한 현능賢能한 이를 천거하는 자는 큰 상을 받고, 현능한 이를 은폐하는 자는 공개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옛 이니, 이천석二千石 중에 효도하고 청렴한 사람을 천거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을 논의하라.”
有司奏호되 不擧孝 不奉詔 當以不敬論이요 不察廉 不勝任也 當免이니이다한대 奏可注+不敬論, 謂其不勤求士報國. 勝, 音升. 二千石, 當率身化下, 令親宰牧, 而無賢人, 爲不勝任也. 孝與廉, 待之有輕重, 故法有輕重. 免, 罷其職也.하다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효성스런 이를 천거하지 않는 자는 조칙을 받들지 않은 것이니 불경죄에 해당하고, 청렴한 이를 찾지 않는 자는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니 면직에 해당합니다.” 하자, 상주한 것을 허락하였다.注+불경론不敬論”은 선비를 찾아 경사京師에 보고하는 데 힘쓰지 않음을 이른다. (감당하다)은 음이 이다. 이천석二千石이 응당 솔선하여 아랫사람들을 교화해서 재목宰牧(읍재邑宰목사牧使)과 친근하게 해야 하는데, 어진 사람을 잘 살피지 못하였으니 이는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효성스러운 사람과 청렴한 사람은 대우하는 데 경중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법에 경중의 차이를 둔 것이다. 은 그 직책을 파면하는 것이다.
이어늘
[綱] 황자皇子 유거劉據가 태어났다.
春三月 立夫人衛氏爲皇后하고하다
봄 3월에 부인夫人 위씨衛氏를 세워 황후로 삼고 〈천하에〉 사면하였다.
◑ 秋 匈奴入寇어늘 以李廣爲右北平太守하다
[綱] 가을에 흉노匈奴가 침입하자 이광李廣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로 삼았다.
匈奴號廣曰漢之飛將軍이라하고 避之하여 數歲不敢入右北平하니라
[目] 흉노匈奴이광李廣을 ‘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피하여, 수년간 감히 우북평을 침입하지 못하였다.
東夷薉君降이어늘 置蒼海郡하다
[綱] 동이東夷 예맥薉貊의 군주가 항복하자, 이곳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하였다.
東夷濊君南閭等二十八萬人이어늘 爲蒼海郡注+薉, 與薉通, 音穢. 服虔曰 “薉貊, 在辰韓之北, 高句麗, 沃沮之南, 東窮于大海. 南閭, 薉君名.하니 人徒之費 擬於南夷 燕齊之間 靡然騷動注+騷, 擾也.하니라
[目] 동이東夷 예맥薉貊의 군주인 남려南閭 등 28만 명이 항복하자, 이곳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하였는데,注+와 통용하니, 음이 이다. 이 말하기를 “예맥薉貊진한辰韓의 북쪽과 고구려高句麗옥저沃沮의 남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대해大海에 닿아 있다.” 하였다. 남려南閭예맥薉貊의 군주 이름이다. 사람을 이주시키는 비용이 남이南夷를 정벌한 비용에 비견되니, 사이의 지역이 크게 동요하였다.注+는 소요함이다.
以主父偃, 嚴安, 徐樂爲郞中하다
[綱] 주보언主父偃, 엄안嚴安, 서락徐樂낭중郞中으로 삼았다.
臨菑人主父偃 始遊齊燕趙할새 皆莫能厚遇하여 諸生 相與排擯不容하고 假貸無所得注+父, 音甫, 主父, 複姓.이라
[目] 임치臨菑 사람 주보언主父偃이 처음 , , 지방을 돌아다닐 때, 잘 대우해주는 사람들이 없었고, 유생들은 서로 배척하여 용납하지 않았으며, 〈집이 가난하여 남에게〉 물건을 빌리려 해도 빌릴 수가 없었다.注+는 음이 이니, 주보主父복성複姓이다.
乃西入關하여 上書闕下러니 朝奏 暮召入하니 所言九事 其八事 爲律令이요 一事 諫伐匈奴
이에 서쪽으로 가서 관중關中(장안長安)에 들어가 대궐 아래에서 글을 올렸는데, 아침에 글을 올리자 저녁에 즉시 부름을 받았으니, 그가 말한 아홉 가지 일 중에 여덟 가지는 율령을 제정하는 것이었고 한 가지는 흉노匈奴를 공격함을 간하는 것이었다.
其辭曰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司馬法注+齊威王, 使大夫追論古者司馬兵法, 而附穰苴於其中, 因號司馬穰苴兵法. 國雖大 好戰必亡이요 天下雖平이나 忘戰必危라하니이다
“《사마법司馬法》에 이르기를注+〈“사마법司馬法”은〉 나라 위왕威王대부大夫로 하여금 옛날 사마司馬병법兵法추론追論하게 하였는데, 이 가운데에 사마양저司馬穰苴의 병법을 붙이고 인하여 《사마양저병법司馬穰苴兵法》이라 하였다. ‘국가가 비록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비록 태평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하였습니다.
夫怒者 逆德也 兵者 凶器也 爭者 末節也 夫務戰勝하고 窮武事者 未有不悔者也니이다
노여워함은 패역하는 덕이고 병기는 흉포한 기물이고 다툼은 하찮은 일이니, 전쟁에 승리하기를 힘쓰고 군대의 일을 끝까지 추구하는 자는 뒤에 후회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秦吞戰國하고 務勝不休하여 使蒙恬으로 將兵攻胡하여 辟地千里注+辟, 開廣也.하니 地皆沮澤鹹鹵하여 不生五穀注+沮, 將預‧子余二切, 漸濕也. 鹹, 音咸.이라
[目] 옛날에 나라가 전국戰國(6국)을 병탄하고 이기기만을 힘쓰고 휴식하지 않아서 몽념蒙恬(몽염)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흉노匈奴를 공격하여 천 리의 땅을 개척하게 하였는데,注+은 열어서 넓힘이다. 땅이 모두 습지와 염지鹽地여서 오곡이 자라지 못하였습니다.注+장예將預자여子余의 두 가지 이니, 물이 스며들어 저습한 것이다. (소금기)은 음이 이다.
乃使天下蜚芻輓粟하여 起於負海하여 轉輸北河하여 率三十鍾而致一石注+運載芻稿, 令其疾至, 故曰蜚芻. 輓, 謂引車船也. 負海, 猶言背海也. 河水逕安定‧北地‧朔方界, 皆北流, 至高闕, 始屈而東流, 過雲中楨陵縣, 又屈而南流, 故朔方‧雲中之北, 謂之北河. 言自東萊及琅邪, 緣海諸郡, 皆令轉輸至北河也. 六斛四斗爲鍾. 計其道路所費, 凡用一百九十二斛, 乃得一石至.하니
이에 천하로 하여금 말의 꼴과 양식을 운반하게 하여, 바다를 등지고 있는 지역에서 시작하여 북하北河까지 수송해서 거의 30을 써야 1이 도착하였습니다.注+꼴과 볏짚을 운송하는데 이것이 빨리 이르도록 했기 때문에 “비추蜚芻”라 한 것이다. 은 수레와 배를 끄는 것이다. “부해負海”는 바다를 등졌다[배해背海]는 말과 같다. 하수河水(황하黃河)는 안정安定, 북지北地, 삭방朔方의 경계를 지나 모두 북쪽으로 흐르고 고궐高闕에 이르러 비로소 굽어 동쪽으로 흘러서 운중雲中정릉현楨陵縣을 지나고, 또 굽어 남쪽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삭방朔方운중雲中의 북쪽을 북하北河라 한다. 〈“기어부해起於負海 전수북하轉輸北河”는〉 동래東萊로부터 낭야琅邪까지 해안을 끼고 있는 들이 모두 꼴과 식량을 운송하여 북하北河에 도달하도록 했다는 말이다. 6 4를 1이라 하니, 그 길에서 허비되는 비용을 계산하면 모두 192을 사용하여야 1이 도달된다.
男子疾耕 不足於糧餉하고 女子紡績 不足於帷幕注+紡, 妃兩切, 絲也, 績, 則力切, 緝麻也.이라
그리하여 남자들이 열심히 농사를 짓는데도 양식을 대기에 부족하고 여자들이 길쌈을 하는데도 천막을 만들기에 부족하였습니다.注+비량妃兩이니 생사生絲를 짜는 것이고, 즉력則力이니 삼을 잇는 것이다.
百姓靡敝하여 不能相養하니 蓋天下始畔秦也注+靡, 音縻, 散也.니이다
백성들이 쓰러지고 피폐하여 서로 봉양하지 못하니, 이에 천하가 비로소 나라를 배반하게 되었습니다.注+는 음이 이니, 흩어진다는 뜻이다.
夫匈奴難得而制 非一世也
[目] 흉노匈奴를 제어하기 어려워한 것은 한 세대만의 일이 아닙니다.
行盜侵驅 所以爲業이니 天性固然注+侵驅, 來侵邊境而驅略人畜也.이라
저들은 도적질을 하고 침입하여 약탈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니, 저들의 천성이 본래 그렇습니다.注+침구侵驅”는 변경을 침입하여 사람을 약탈하고 가축을 몰고 가는 것이다.
虞‧夏‧商‧周 固弗程督하여 禽獸畜之하고 不屬爲人注+程, 課也. 督, 視責也. 不屬爲人, 謂不以人類屬之. 이니이다
, , , 에서는 진실로 흉노에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독책督責하고 감독하지 않아서 금수로만 기르고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注+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은 살피고 따지는 것이다. “불속위인不屬爲人”은 사람의 부류에 소속시키지 않음을 이른다.
上不觀虞‧夏‧殷‧周之統하고 而下循近世之失하시니 此臣之所大憂 百姓之所疾苦也니이다
지금 위로는 , , , 의 통치를 살피지 않고 아래로는 근세의 실수를 따르니, 이것이 신이 크게 우려하는 것이고 백성들이 고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同郡嚴安 亦上書曰
[目] 주보언主父偃과 같은 출신인 엄안嚴安 또한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今人 用財侈靡하여 車馬衣裘宮室聲色滋味 皆競修飾하여 以觀欲於天下注+觀, 去聲, 言顯示之, 使其慕欲也 하니 侈而無節이면 則不可贍하여 民離本而徼末注+贍, 足也. 離, 力智切. 本, 謂農. 徼, 要求也. 末, 謂工商.이니이다
“지금 사람들은 재물을 쓰는 것이 사치스러워 수레와 말, 옷과 갖옷과 궁실, 음악과 여색, 맛있는 음식을 모두 다투어 꾸며서 천하에 드러내 보여 사람들이 바라게 하니,注+거성去聲이니, 드러내 보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모하고 바라게 하는 것이다. 사치하기만 하고 절제함이 없으면 재물이 넉넉하지 못하여 백성들이 본업本業(농업農業)을 버리고 말업末業(상공업商工業)을 추구합니다.注+은 넉넉함이다. 역지力智이다. 농업農業을 이른다. 는 요구함이다. 공상업工商業을 이른다.
末不可徒得注+徒, 空也.이라 搢紳者不憚爲詐注+搢, 揷也. 紳, 大帶也. 搢紳, 謂搢笏而垂紳也. 하고 帶劍者夸殺人以矯奪이어늘
말업도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서注+은 한갓이다. 띠에 홀을 꽂은 관리들이 남을 속이는 것을 꺼리지 않고注+은 꽂음이고 은 큰 띠이니, “진신搢紳”은 홀을 꽂고 큰 띠를 드리우는 것이다. 칼을 찬 무인들이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는 것을 뽐냅니다.
而世不知愧注+夸, 大也, 競也. 矯, 僞也. 是以 逐利無已하여 犯法者衆하니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니,注+은 과장하고 뽐낸다는 뜻이다. 은 속임이다, 이 때문에 이익을 쫓는 것이 그침이 없어서 법을 범하는 자가 많은 것입니다.
願爲民制度하여 以防其淫하고 使貧富不相燿以和其心注+燿, 弋照切.이니 心志定이면 則盜賊消하고 刑罰少하고 陰陽和하고 萬物蕃也리이다
신은 원컨대 백성들을 제어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그 음란함(분수에 넘치는 것)을 막고,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들로 하여금 서로 과시하지 않아 그 마음을 온화하게 하고자 하니,注+(빛나다)는 익조弋照이다. 마음과 뜻이 안정되면 도적이 사라지고 형벌이 적어지고 음양이 조화롭게 되어 만물이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秦王 意廣心逸하여 欲威海內하여 北攻胡하고 南攻越하여 宿兵於無用之地 十有餘年注+宿, 留也.하니 丁男被甲하고 丁女轉輸하여 苦不聊生하여 自經於道樹者相望注+不聊生, 言無聊賴以相保養. 經, 縊也.이러니
[目] 옛날에 나라 왕이 의욕이 많고 마음이 방종하여 해내海內에 위엄을 떨치고 싶어 북쪽으로 흉노匈奴를 공격하고 남쪽으로 나라를 공격해서 쓸모없는 땅에 군대를 주둔한 것이 10여 년이었습니다,注+宿은 머문다는 뜻이다. 정남丁男은 갑옷을 입고 〈출전하고〉 정녀丁女는 물자를 운반하느라 고통스러워서, 서로 의지하여 살지 못하고 길거리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자가 즐비하였습니다.注+불료생不聊生”은 의지하여 서로 보호하고 길러주지 못함을 말한다. 은 목을 매는 것이다.
及秦皇帝崩 天下大畔하여 滅世絶祀하니 窮兵之禍也
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죽자 천하가 크게 반란을 일으켜서 후세가 멸족되고 제사가 끊겼으니, 이는 전쟁을 그치지 않고 계속한 화입니다.
周失之弱하고 秦失之彊 不變之患也니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약한 데에서 잘못되었고 나라는 강한 데에서 잘못되었으니, 이는 변화하지 못해서 생긴 환난입니다.
今徇南夷하고 朝夜郞하고 降羌僰하고 略薉州하여 建城邑하고 深入匈奴하여 燔其龍城이어늘 議者美之하니 人臣之利 非天下之長策也注+僰, 蒲北切. 羌與僰, 竝西南夷. 索隱 “羌, 三苗, 姜姓之別裔.” 釋文 “僰, 侯國, 在馬胡江.” 龍城, 匈奴單于祭天, 大會諸部處.니이다
지금 남이南夷 지방을 순행하고, 야랑夜郞을 조회 오게 하고, 을 항복시키고, 예주薉州(예맥)를 경략하여 성읍을 세우고, 깊이 흉노匈奴로 쳐들어가서 그들의 을 불태우려고 하자, 논의하는 자들이 이것을 찬미하니, 이는 신하들의 이익이지 천하를 위한 장구한 계책은 아닙니다.”注+포북蒲北이니, 은 모두 서남이西南夷이다. 에 “삼묘三苗이니 강성姜姓별예別裔이다.” 하였고, 에 “후국侯國이니 마호강馬胡江에 있다.” 하였다. 용성龍城흉노匈奴선우單于가 하늘에 제사 지낼 적에 여러 부락이 크게 모이는 곳이다.
無終徐樂 上書曰注+樂, 音岳.
[目] 무종無終 사람 서락徐樂(서악)은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注+은 음이 이다.
臣聞 天下之患 在於土崩이요 不在瓦解라하니이다
“신이 듣건대 천하의 우환은 토붕土崩에 있고 와해瓦解에 있지 않다 하였습니다.
陳涉 起窮巷하여 奮棘矜하여 偏袒大呼 天下從風하니 其故注+棘, 與戟同. 矜, 巨巾切, 與𥎊同, 戟之杷也. 杷, 柄也. 時秦消兵器, 故但有戟之杷耳.何也
진섭陳涉이 궁벽한 시골에서 일어나 창 자루만 휘두르면서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크게 소리치자 천하가 바람에 쓸리듯이 일어났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注+과 같다. 거건巨巾로 𥎊과 같으니, 창의 자루[]이다. 는 자루이다. 당시에 나라가 병기를 녹여 없앴기 때문에 창의 자루만 남은 것이다.
由民困而主不恤하고 下怨而上不知하고 俗已亂而政不修하니
백성들이 곤궁한데도 군주가 구휼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이 원망하는데도 위에서 알지 못하고, 풍속이 이미 어지러워졌는데도 정사가 닦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此三者 涉之所以爲資也 此之謂土崩이니이다
이 세 가지는 진섭陳涉이 반란하는 밑천으로 삼은 것이니, 이를 토붕土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吳楚七國 號皆萬乘이라 威足以嚴其境內하고 財足以勸其士民이로되
7국이 모두 천자를 칭하여, 위엄은 그 경내를 두렵게 할 수 있었고 재물은 그 백성들을 권면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나 不能西攘尺寸之地하고 而身爲禽者 此其故何也注+攘, 謂侵取漢地.
그러나 서쪽(장안長安)으로 쳐들어가서 한 치의 땅도 빼앗지 못하고 포로 신세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注+나라의 땅을 침범하여 점령함을 이른다.
當是之時하여 先帝之德 未衰하여 而安土樂俗之民이라 諸侯無境外之助하니 此之謂瓦解注+無境外之助, 謂七國反叛, 隣境無同惡相濟者爲助也.이니이다
이때를 당하여 선황제先皇帝(문제文帝)의 덕이 쇠하지 않아 자신의 고향 땅에 편안히 살고 풍속을 즐거워하는 백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제후들이 국경 밖에서 도와줌이 없었으니, 이를 와해瓦解라 하는 것입니다.注+무경외지조無境外之助(국경 밖에서 도와줌이 없다.)”는 의 7국이 서로 배반하여 이웃 나라 중에 악을 함께하여 서로 구원하기로 한 나라가 도와주지 않음을 이른다.
此二體者 安危之明要 賢主之所宜留意而深察也니이다
이 두 가지는 안위安危의 분명한 관건이니, 현명한 군주가 유념하고 깊이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間者關東 穀數不登하여 年歲未復하여 民多窮困하고 重之以邊境之事注+數, 音朔. 復, 扶目切. 重, 去聲, 猶加也.하니 推數循理而觀之컨대 民宜有不安其處者矣니이다
[目] 근래에 관동關東 지방이 곡식이 자주 성숙하지 못하여 연사年事가 아직 회복되지 못해서 백성들 중에 곤궁한 자가 많은데 여기에 변경의 일이 가중되니,注+은 음이 이다. 부목扶目이다. (가중하다)은 거성去聲이니, (더하다)와 같다. 이치를 따라 살펴보건대 백성들 중에는 의당 그 거처를 편안하지 않게 여기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不安故 易動하니 易動者 土崩之勢也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동요되기 쉬운 것이니, 동요되기 쉬운 것은 토붕土崩의 형세입니다.
賢主 獨觀萬化之原하고 明於安危之機하여 修之廟堂之上而銷未形之患하나니 其要 期使天下 無土崩之勢而已矣니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홀로 만 가지 변화의 근원을 살피고 안위의 관건을 밝게 알아 묘당廟堂의 위에서 다스려서 드러나지 않은 우환을 미리 사라지게 하니, 그 요체는 반드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토붕의 형세가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書奏 召見하고 謂曰 公等 皆安在완대 何相見之晩也오하고 皆拜爲郞中하다
[目] 글을 올리자, 이 불러 보고 이르기를 “들은 다 어디에 있었기에 어째서 서로 만난 것이 이처럼 늦단 말인가?” 하고, 모두 낭중郞中에 임명하였다.
尤親幸하여 一歲中 凡四遷하여 爲中大夫하니 大臣 畏其口하여 賂遺累千金이라
주보언主父偃을 더욱 총애하여 1년 안에 모두 네 번이나 승진시켜 중대부中大夫로 삼으니, 대신大臣들이 그의 입을 두려워하여 뇌물을 보낸 것이 여러 천금千金이었다.
或謂偃曰 太橫矣注+橫, 胡孟切.로다 偃曰 吾生不五鼎食이면 死卽五鼎烹耳注+五鼎食, 謂牛羊豕魚麋也, 諸侯五, 卿大夫三. 五鼎烹, 謂被鑊烹之誅.라하니라
어떤 사람이 주보언에게 말하기를 “너무 멋대로 행동한다.”注+(멋대로 하다)은 호맹胡孟이다. 하니, 주보언이 말하기를 “내가 살아서 오정五鼎의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을 적에는 오정五鼎에 삶겨 죽을 뿐이다.”注+오정식五鼎食은 소, 양, 돼지, 물고기, 사슴이니, 제후는 5가지이고 경대부卿大夫는 3가지이다. “오정팽五鼎烹”은 가마솥에 삶기는 형벌을 당함을 이른다. 하였다.
역주
역주1 열……있는데 : 그 내용이 《論語》 〈公冶長〉과 〈述而〉에 각각 보인다.
역주2 [察] : 저본에는 ‘察’이 없으나, 《通鑑要解》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皇子據生 : “皇子가 태어난 것을 쓰지 않는데,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썼는가? 亂의 시초를 쓴 것이다. 이때에 衛靑이 匈奴를 공격하였는데, 武帝의 夫人 衛氏가 皇子 劉據를 낳았다. 그러므로 ‘太子’라고 말하여 병란으로 처음[始]과 끝[終]을 삼은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皇子가 태어난 것을 쓴 것이 5번인데, 모두 연고가 있는 자이다. 이 때문에 유거가 반란으로 끝마쳤으면 태어난 것을 썼고, 劉弗陵이 嫡子를 위태롭게 하였으면 태어난 것을 썼으며, 宋劭가 元凶이면 태어난 것을 썼고, 魏主 元恂이 아비를 배반하였으면 태어난 것을 썼으며, 魏主 元詡는 胡太后의 패역 때문에 태어난 것을 썼다.[子生不書 此何以書 志亂始也 於是衛靑擊匈奴 而夫人衛氏生皇子據 故曰太子 以兵始終焉 終綱目 書子生五 皆有故者也 是故據以反終則書生 弗陵以危嫡則書生 宋劭以元凶則書生 魏恂以叛父則書生 魏詡以太后之悖則書生]” 《書法》
역주4 服虔 : 後漢 滎陽 사람으로 字는 子愼이다. 孝廉으로 천거되어 九江太守를 지냈다. 古文經學을 숭상하였으며, 《春秋左氏傳解》를 지었다.
역주5 《司馬法》에……하였습니다 : 이는 《司馬法》 〈仁本〉에 보인다.
역주6 (綱)[紡] : 저본에는 ‘綱’으로 되어 있으나, 《說文解字》의 段玉裁 註에 의거하여 ‘紡’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龍城 : 單于가 머무는 곳으로 祭天儀式을 거행한 곳이다. 여러 부족이 모여 종교적 행사를 행하고 동시에 정치적 회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용성에 대해서는 나무로 만든 제단, 오보(Ovoo), 성채라는 설이 있다. 용성은 籠城, 蘢城, 單于庭, 龍庭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역주8 史記索隱 : 《史記》의 주석서로 唐나라의 司馬貞이 지었는데, 모두 30권으로 되어 있다.
역주9 釋文 : 글자의 訓과 音을 기록한 책으로 원래 唐나라의 陸德明이 지은 《經典釋文》의 代表이다. 여기서는 《資治通鑑》을 해석한 釋文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通鑑節要》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 있으나 著者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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