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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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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年(B.C. 60)
신유년(B.C. 60)
二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신작神爵 2년이다.
春二月 鳳皇, 甘露降集京師하니하다
봄 2월에 경사京師에 봉황새가 내려앉고 감로甘露가 내리니, 사면赦免하였다.
◑ 夏五月 趙充國 하니 羌斬楊玉以降이어늘 置金城屬國以處之하다
[綱] 여름 5월에 조충국趙充國이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왔는데, 가을에 강족羌族양옥楊玉참수斬首하고 항복하자, 금성속국金城屬國을 설치하여 거처하게 하였다.
趙充國 奏言호되 本可五萬人이라 除斬降溺饑死하면 定計遺脫 不過四千人이요
[目] 조충국趙充國상주上奏하기를, “강족羌族은 본래 5만 명쯤 되는데, 참수된 자와 항복한 자, 물에 빠져 죽은 자와 굶어 죽은 자를 제외하면, 정수定數로 계산할 적에 살아남은 자가 4천 명에 불과합니다.
羌靡忘等 自詭必得이라하니 請罷屯兵하노이다
그리고 강족인 미망靡忘 등이 스스로 책임지고 반드시 이들 4천 명을 잡아 나라로 데려오겠다고 하였으니, 둔전병屯田兵을 파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奏可注+定計, 以定數計算也. 詭, 責也, 自以爲憂責, 言此四千人必可得歸漢.하니 充國 振旅而還하다
상주한 것을 허락하니,注+정계定計는 일정한 숫자로 계산하는 것이다. 는 책임지는 것으로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니, 이 4천 명을 반드시 잡아서 나라로 데려오겠다고 말한 것이다. 조충국이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왔다.
所善浩星賜 迎說曰注+浩星, 複姓. 賜, 名也. 衆人
[目] 이때 조충국趙充國과 친하던 호성사浩星賜가 조충국을 맞이하여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注+호성浩星복성複姓이고, 는 이름이다.
皆以破羌彊弩出擊하여 虜以破壞
“보통 사람들은 모두 ‘파강장군破羌將軍(신무현辛武賢)과 강노장군彊弩將軍(허연수許延壽)이 출격하여 오랑캐들이 파괴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나 有識者以爲虜勢窮困하니 兵雖不出이나 必自服矣라하나니
그러나 식견이 있는 자들은 ‘오랑캐의 형세가 곤궁하니, 두 장군의 군대를 비록 출동시키지 않았더라도 반드시 오랑캐들이 스스로 복종했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將軍卽見인대 宜歸功於二將軍하라
장군께서 황제를 뵙거든 마땅히 두 장군에게 을 돌리십시오.
如此 計未失也注+卽見, 謂朝見時.리이다
이와 같이 하면 계책이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注+즉견卽見”은 조회朝會하여 황제를 뵐 때를 이른다.
充國曰
이에 조충국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吾年老矣 爵位已極하니 豈嫌伐一時事하여 以欺明主哉注+言一時用兵之事, 當以實敷奏, 豈可以自矜伐爲嫌. 리오
“나는 나이가 늙었고 관작官爵과 지위가 이미 지극하니, 어찌 한때의 일을 자랑함을 혐의해서 현명한 군주를 속이겠는가.注+〈“기혐벌일시사豈嫌伐一時事 이기명주재以欺明主哉”는〉 한때 용병用兵하는 일은 마땅히 실제대로 아뢰어야 하니, 어찌 자기 공로를 자랑함을 혐의하겠는가라는 말이다.
兵勢 國之大事 當爲後法이니
군대의 형세는 국가의 큰일이니, 마땅히 후일의 이 되어야 한다.
老臣 不以餘命壹爲陛下明言兵之利害注+不以餘命, 言不惜餘殘之命. 壹, 壹切也. 爲, 去聲. 하고 卒死 誰當復言之者注+卒, 讀曰猝.리오하고 卒以其意對하니라
노신老臣이 남은 목숨을 가지고 폐하를 위해 군대의 이해利害를 일체 분명하게 말씀드리지 않고注+불이여명不以餘命”은 남은 목숨을 아끼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은 일체이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갑자기 죽는다면, 누가 마땅히 다시 말하겠는가.”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하고는, 마침내 자신의 생각대로 대답하였다.
然其計하여 罷遣辛武賢하여 歸酒泉하고 充國 復爲後將軍하다
은 그의 계책을 옳다고 여겨 신무현辛武賢을 파하여 주천酒泉으로 돌아가게 하고, 조충국을 다시 후장군後將軍으로 삼았다.
羌若零等 共斬楊玉首하고 帥四千餘人降이어늘 初置金城屬國하여 以處降羌하다
가을에 강족羌族선령先零 등이 함께 양옥楊玉을 참수하고 4천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자, 처음으로 금성속국金城屬國을 설치하여 항복한 강족들을 거처하게 하였다.
秋九月 司隷校尉蓋寬饒 注+蓋, 古盍切, 姓也.하다
[綱] 가을 9월에 사례교위司隷校尉 합관요蓋寬饒가 북쪽 대궐 아래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注+고합古盍이니, 이다.
寬饒爲衛司馬注+衛司馬, 卽衛尉, 八屯之衛司馬. 하니 故事 衛司馬見衛尉 拜謁하고 常爲衛官하여 繇使市買注+繇, 與徭同.러니
[目] 처음에 합관요蓋寬饒위사마衛司馬가 되었는데,注+위사마衛司馬는 바로 위위衛尉이니, 위사마衛司馬이다. 고사故事에 위사마는 위위衛尉를 뵐 적에 배알하였고, 항상 위관衛官을 위하여 심부름을 하고 물건을 사오곤 하였다.注+(노역)는 와 같다.
寬饒案舊令하여 揖官屬하고 不受私使注+蓋寬饒傳 “寬饒視事, 案舊令, 遂揖官屬以下行衛者. 衛尉私使寬饒出, 寬饒以令詣官府門上謁辭, 尙書責問衛尉. 由是衛官不復私使候ㆍ司馬.” 하고 躬行士卒廬舍하여 視其起居飮食하고 病者 拊循臨問하여 甚有恩이라
합관요는 옛날 법령法令을 조사하여 관속官屬(직속상관)에게 만 하고 사사로운 심부름은 받지 않았으며,注+한서漢書》 〈합관요전蓋寬饒傳〉에 “합관요蓋寬饒가 공무를 볼 적에 옛 법령을 살펴보고는, 관속 이하 호위하는 자에게 읍만 하였다. 위위衛尉가 개인적인 일로 합관요를 내보내어 심부름을 시키자, 합관요는 법령에 따라 관부官府(상서성尙書省)의 에 나아가 이것을 말하니, 상서尙書위위衛尉를 문책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위관衛官들이 다시는 개인적인 일로 위후衛候위사마衛司馬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못하였다.” 하였다. 몸소 사졸들의 여막에 가서 그들의 거동과 마시고 먹는 것을 살펴보고, 병든 자에게는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찾아가서 위문하여, 매우 은혜를 베풀었다.
及歲代 數千人 請復留一年하여 以報寬饒厚德注+歲代, 歲盡交代也. 이어늘 嘉之하여 擢司隷校尉注+以掌徒隷而巡察, 故云司隷. 武帝征和四年, 初置.하다
임기가 다하여 교대하게 되자, 부하 수천 명이 다시 1년을 더 유임시켜서 그의 후한 은덕에 보답하게 해주기를 청하므로,注+세대歲代”는 임기가 다하여 교대하는 것이다.은 그를 가상히 여겨서 사례교위司隷校尉로 발탁하였다.注+하인들을 관장하여 순찰하기 때문에 사례司隷라 한 것이다. 무제武帝 정화征和 4년(B.C. 89)에 처음 설치하였다.
寬饒剛直公淸하여 刺擧無所避
[目] 합관요蓋寬饒는 성품이 강직하고 공정하고 깨끗해서 거침없이 남의 잘못을 풍자하여 들춰내었다.
이나 深刻好刺譏하여 數犯上意注+剌, 七賜切, 訊也. 擧, 劾也. 러니
그러나 성품이 각박하고 풍자와 비난을 좋아하여 의 뜻을 자주 범하기도 하였다.注+칠사七賜이니 남의 잘못을 묻는 것이고, 는 남의 죄악을 들춰내는 것이다.
方用刑法하여 任中書官注+武帝游宴後庭, 用宦者, 爲中書官, 帝因之. 이라
이때 형법刑法을 사용하여 중서관中書官(환관)을 신임하였는데,注+무제武帝후정後庭에서 놀며 잔치할 적에 환자宦者(환관)를 등용하여 중서관中書官을 삼았는데, 선제宣帝가 그대로 인습하였다.
寬饒奏封事曰 方今聖道浸微하고 儒術不行하여 以刑餘爲周召注+宦官, 刀鋸之餘也. 言使奄人當權軸也. 하고 以法律爲詩書注+言以刑法成敎化也. 라하고
합관요가 봉사封事를 올려 “지금 성인聖人가 점점 쇠약해지고 유학儒學이 행해지지 못해서 형벌 받은 사람(환관)을 주공周公, 소공召公으로 여기고,注+환관宦官은 칼과 톱의 형벌을 받고 살아남은 자이니, 〈“이형여위주소以刑餘爲周召(형벌 받은 사람(환관)을 주공周公, 소공召公으로 여기다.)”는〉 엄인奄人(내시)으로 하여금 권력을 담당하게 함을 말한다. 법률法律을 《시경詩經》, 《서경書經》으로 여깁니다.”注+〈“법률위시서法律爲詩書(법률法律을 《시경詩經》, 《서경書經》으로 여기다.)”는〉 형법刑法을 가지고 교화를 이룸을 말한다. 하였고,
又引易傳하여 言五帝官天下하고 三王家天下하니 家以傳子孫이요 官以傳賢聖이라하다
書奏 上以爲寬饒怨謗이라하여 下其書하니 執金吾議하여 以爲寬饒旨意欲求禪하니 大逆不道注+言欲使天子禪位於己.라하다
글을 아뢰자, 은 합관요가 원망하여 비방한다 해서 그가 봉사封事한 글을 회부하니, 집금오執金吾가 의논하여 아뢰기를 “합관요의 뜻은 자신에게 천자天子의 자리를 선양禪讓할 것을 바란 것이니, 대역무도합니다.”注+〈“욕구선欲求禪”은〉 천자天子로 하여금 자신에게 선위禪位하게 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하였다.
諫大夫鄭昌 上書하여 訟寬饒曰注+訟者, 訟其寃也.
[目] 간대부諫大夫 정창鄭昌이 상소하여 합관요蓋寬饒의 억울함을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였다.注+은 그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聞山有猛獸藜藿爲之不採 國有忠言이면 姦邪爲之不起注+藜藿, 草名. 爲, 去聲. 라하니
이 듣건대 산에 맹수가 있으면 사람들이 맹수를 두려워하여 명아주와 콩잎도 함부로 채취하지 못하고, 나라에 충성스런 신하의 직언이 있으면 간사한 자들이 이 때문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注+(명아주)와 (콩잎)은 풀이름이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寬饒居不求安하고 食不求飽하며 進有憂國之心하고 退有死節之義하여
합관요는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고 음식을 먹을 적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았으며, 조정에 나아가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고 물러나면 충절에 죽으려는 의리가 있습니다.
上無許史之屬하고 下無金張之託注+屬, 讀如本字. 許, 帝后族. 史, 帝外家. 金, 金日磾之族. 張, 張安世之族. 許氏ㆍ史氏, 有外屬之恩. 金氏ㆍ張氏, 自託於近侍也. 하여 直道而行하여 多仇少與注+與, 黨與也.하니이다
위로는 허씨許氏사씨史氏와 같은 외척이 없고 아래로는 김씨金氏장씨張氏처럼 근신近臣으로 가탁하는 바가注+(가속)은 본음本音대로 읽는다. 허씨許氏는 황제의 후비后妃의 집안이고, 사씨史氏는 황제의 외가外家이며, 김씨金氏김일제金日磾의 집안이고, 장안세張安世의 집안이니, 허씨許氏사씨史氏는 외척의 은혜가 있고 김씨金氏장씨張氏는 스스로 황제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로 스스로 가탁하였다.정도正道를 행하여, 원수는 많고 친한 무리가 적었습니다.注+당여黨與이다.
上書陳事 有司劾以大辟하니 幸得從大夫之後하여 官以諫爲名일새 不敢不言하노이다
글을 올려 일을 아룀에 유사有司들이 그를 대벽大辟(사형)으로 탄핵하니, 은 다행히 대부大夫의 말석을 따라 관직이 간관諫官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므로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竟下寬饒吏한대 寬饒引佩刀하여 自剄北闕下하니 衆庶莫不憐之하니라
이 끝내 합관요를 옥리獄吏에게 회부하자, 합관요가 차고 있던 패도佩刀를 끌어다가 북쪽 대궐 아래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니, 사람들이 불쌍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匈奴虛閭權渠單于死어늘 握衍朐鞮單于立하니
[綱] 흉노匈奴허려권거선우虛閭權渠單于가 죽자, 악연구제선우握衍朐鞮單于(흉노의 제13대 선우)가 즉위하였다.
日逐王先賢撣 來降이어늘 以鄭吉爲西域都護하다
일축왕日逐王 선현전先賢撣이 항복해 오므로 정길鄭吉서역도호西域都護로 삼았다.
匈奴虛閭權渠單于始立 黜顓渠閼氏한대 閼氏卽與右賢王屠耆堂私通注+屠耆堂, 右賢王之名也.이러니
[目] 흉노匈奴허려권거선우虛閭權渠單于가 처음 즉위했을 적에 아내인 전거연지顓渠閼氏를 내치니, 전거연지는 즉시 우현왕右賢王 도기당屠耆堂과 은밀히 간통하였다.注+도기당屠耆堂우현왕右賢王의 이름이다.
單于死 閼氏立右賢王하여 爲握衍朐鞮單于注+朐, 音劬. 握衍朐鞮, 單于之號.하다
선우가 죽자, 전거연지가 우현왕右賢王을 세워 악연구제선우握衍朐鞮單于라 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악연구제握衍朐鞮선우單于의 이름이다.
虛閭權渠子稽侯狦 旣不得立이라 亡歸妻父烏禪幕注+狦, 先安ㆍ所姦二切. 禪, 音蟬. 烏禪幕者, 本烏孫ㆍ康居間小國, 數見侵暴, 率其衆數千人, 降匈奴. 狐鹿姑單于, 以其弟子日逐王姊妻之, 使長其衆, 居右地. 하니
허려권거虛閭權渠의 아들 계후산稽侯狦이 즉위하지 못하고는 도망하여 처부妻父오선막烏禪幕에게 귀의하였다.注+선안先安, 소간所姦의 두 가지 이다. 은 음이 이다. 오선막烏禪幕은 본래 오손烏孫강거康居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인데, 자주 침략과 포학暴虐을 당하였으므로 부하 수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흉노匈奴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흉노의 호록고선우狐鹿姑單于가 아우의 아들인 일축왕日逐王의 누이를 그에게 시집보내고 그 무리를 통솔하여 에 거주하게 하였다.
日逐王先賢撣 素與握衍朐鞮有隙注+日逐王, 居匈奴西邊, 以日入於西, 故以爲名. 撣, 音田. 先賢撣, 日逐王名. 이라 卽率其衆降漢하여 使人至渠黎하여 與鄭吉相聞이어늘
일축왕日逐王 선현전先賢撣이 평소 악연구제와 원한이 있던 터라注+일축왕日逐王흉노匈奴의 서쪽 변방에 거주하니, 해가 서쪽으로 들어가므로 일축왕日逐王이라 이름한 것이다. 은 음이 이니, 선현전先賢撣일축왕日逐王의 이름이다. 즉시 자기 부하 병력을 거느리고 나라에 항복하고는, 사람을 거려渠黎로 보내와서 정길鄭吉과 서로 소식을 전하였다.
發諸國五萬人迎之하여 將詣京師注+將, 如字, 領也ㆍ挾也. 하니 威震西域이라
정길이 여러 나라의 병력 5만 명을 동원해서 이들을 맞이하여 장차 경사京師로 오게 하니,注+본음本音대로 읽으니, 거느리고 또 끼고 있다는 뜻이다. 정길의 위엄이 서역西域을 진동하였다.
遂幷護車師以西北道故 號都護라하니 都護之置 自吉始注+竝護南北二道, 故謂之都. 都, 猶大也, 摠也.하니라
정길은 마침내 거사車師의 서쪽과 북쪽 지역을 함께 감호監護하였으므로 도호都護라 이름하니, 도호의 설치가 정길로부터 시작되었다.注+남쪽과 북쪽 두 지역을 함께 감호監護하였으므로 라고 말하였으니, 는 뜻이 와 같고 과 같다.
於是 中西域而立幕府하여 治烏壘城注+中, 如字. 中西域者, 言最處諸國之中, 遠近均也.하니 去陽關二千七百餘里
이에 서역西域 한 가운데에 막부幕府를 세워서 오루성烏壘城을 다스리니,注+(가운데)은 본음本音대로 읽으니, “중서역中西域”이란 서역 여러 나라의 가장 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멀고 가까운 정도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양관陽關에서 2,700여 리의 거리였다.
督察烏孫康居等三十六國하여 動靜有變 以聞하니 漢之號令 班西域矣注+班, 布也.러라
정길은 오손烏孫강거康居 등 36개국을 감독하고 살펴서 동정動靜에 변화가 있을 적에 조정에 아뢰니, 나라의 호령號令서역西域에 널리 반포되었다.注+은 반포함이다.
烏孫昆彌翁歸靡死어늘 狂王泥靡立하다
[綱] 오손烏孫곤미昆彌옹귀미翁歸靡가 죽자, 광왕狂王 이미泥靡가 즉위하였다.
翁歸靡 願以漢外孫元貴靡爲嗣하고 復尙主注+翁歸靡尙解憂公主, 生三男, 長曰元貴靡. 어늘 詔下其議한대 蕭望之以爲 烏孫絶域이라 變故難保하니 不可許라호되
[目] 처음에 옹귀미翁歸靡나라의 외손外孫원귀미元貴靡후사後嗣로 삼고 다시 상부공주相夫公主에게 장가들 것을 원하므로,注+옹귀미翁歸靡해우공주解憂公主에게 장가들어 세 아들을 낳으니, 장자長子원귀미元貴靡이다. 명하여 이것을 의논하게 하니, 소망지蕭望之가 아뢰기를 “오손烏孫은 멀리 떨어져 있어 변고를 보장하기 어려우니,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天子重絶故業하여 許之하고 使常惠送公主注+重, 難也. 故業, 謂先與烏孫婚親也. 公主, 解憂弟相夫也.
그러나 천자天子는 전에 이미 허락한 일을 끊는 것을 어렵게 여겨서 그의 청원을 허락하고는, 상혜常惠로 하여금 공주를 전송하게 하였다.注+은 어렵게 여김이다. “고업故業”은 전에 오손烏孫인척姻戚이 된 일을 이른다. 공주公主해우공주解憂公主의 여동생인 상부공주相夫公主이다.
未出塞 翁歸靡死하니 其兄子泥靡自立하다
상혜가 변방을 나가기 전에 옹귀미翁歸靡가 죽으니, 그 의 아들 이미泥靡가 스스로 즉위하였다.
惠上書하여 願留少主燉煌注+少主, 卽相夫也.하고 自至烏孫하여 責讓不立元貴靡하고 還迎少主하다
상혜常惠가 글을 올려 ‘어린 공주公主(상부공주相夫公主)를 돈황燉煌에 머물게 하고,注+소주少主(어린 공주)는 바로 상부공주相夫公主이다. 자신이 직접 오손국烏孫國에 가서 원귀미元貴靡를 세우지 않은 일을 꾸짖고 어린 공주를 맞이해 돌아올 것’을 원하였다.
事下公卿하니 望之復以爲 烏孫持兩端하여 無堅約이라
이 일을 공경公卿들에게 회부하여 의논하게 하니, 소망지蕭望之가 다시 아뢰기를 “오손烏孫이 이럴까 저럴까 두 마음을 품어 견고한 약속이 없습니다.
今少主以元貴靡不立而還이라도 信無負於四夷어니와
지금 원귀미元貴靡를 세우지 않았다 하여 어린 공주를 그대로 맞이해 돌아오더라도, 사방 오랑캐들에게 신의를 저버림은 없습니다.
少主不止 繇役將興호리이다 天子從之하다
그러나 어린 공주가 머물러 있지 않으면 장차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니, 천자天子가 그의 말을 따랐다.
역주
역주1 振旅而還 : “‘군대가 돌아왔다.[軍還]’고 쓴 경우는 많으나 ‘군대를 정돈하여[振旅] 돌아왔다.’고 쓴 적이 있지 않았는데,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왔다.’고 쓴 것은 특별히 쓴 것이다. 특별히 쓴 것은 어째서인가? 군대를 온전히 보존함을 가상하게 여긴 것이다. 先零이 배반했을 적에 䍐羌이 도왔는데, 辛武賢은 먼저 䍐羌을 공격할 것을 청하였고, 趙充國은 위엄과 신의로 항복시킬 것을 청하였다. 선령이 이미 패주하자, 조충국은 군대를 출동시켜 오랑캐들을 서서히 몰아가니, 항복한 자들이 매우 많았다. 그런 뒤에 騎兵을 파하고 屯田하여 오랑캐가 피폐하기를 기다릴 것을 청해서 모두 3번 上奏하여 끝내 청원한 것을 이루었는데, 이때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옴에 화살촉 하나도 잃지 않았고 끝내 靡忘이 楊玉을 斬首하고 항복하였으니, 참으로 이른바 ‘萬全의 군대’라는 것이다.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왔다.’고 특별히 쓴 것은 조충국을 매우 가상하게 여긴 것이니,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1번 썼을 뿐이다.[書軍還多矣 未有書振旅而還者 書振旅而還 特筆也 其特筆 何 嘉全師也 先零之叛 䍐羌助之 武賢請先擊䍐羌 充國則請降以威信 先零旣走 充國徐行驅之 降者旣多 然後請罷騎兵 屯田以待其敝 凡三上奏 卒得所請 及是還師 不亡一鏃 而靡忘竟斬楊玉以降 眞所謂萬全之師矣 特書振旅而還 所以深嘉充國也 終綱目 一書而已矣]” 《書法》
“앞에서는 ‘군대를 해산하고 둔전하였다.[罷兵屯田]’라고 쓰고, 여기서는 ‘정돈하여 돌아왔다.’고 썼으니, 이는 西羌이 평정된 것이 끝까지 추격하고 남김없이 토벌한 공이 아님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 趙充國의 장수됨이 이와 같았으니, 老成하고 厚重한 자가 아니면 가능하겠는가?[前書罷兵屯田 此書振旅而還 則見西羌之平 非窮追極討之功明矣 充國之爲將如此 非老成厚重者 能之乎]” 《發明》
역주2 自剄北闕下 : “이에 上이 蓋寬饒를 獄吏에게 회부하자 합관요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는데, ‘獄吏에게 회부하였다.’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합관요를 심하게 여긴 것이다. 어찌하여 그를 심하게 여겼는가? 합관요가 ‘형벌을 받은 사람(환관)을 周公과 召公으로 여긴다.’고 비판함은 옳으나, ‘천하를 관청(공적인 것)으로 여겼다.’고 말한 것은 마땅히 말해야 할 바가 아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 자살하였으니, 죄가 전적으로 上에게만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趙廣漢과 韓延壽, 楊惲은 모두 ‘죽였다.’고 썼는데, 합관요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自剄]’고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에서 판단함이 자세하다.[於是上下寬饒吏 寬饒自剄 其不書下之吏 何 甚寬饒也 曷爲甚之 寬饒謂刑餘爲周召可也 而語及官天下 則非所宜言矣 若是而自殺焉 罪不專在上也 故趙韓楊皆書殺 而寬饒書自剄 綱目之權衡審矣]” 《書法》
역주3 八屯 : 宮苑 사방에 설치한 8개의 호위 지역을 이른다.
역주4 《易傳》을……하였다 : 《易傳》은 《周易》을 부연한 글로 보이나 정확히 어떤 책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五帝는 일반적으로 少昊ㆍ顓頊ㆍ帝嚳ㆍ帝堯ㆍ帝舜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특별히 帝堯와 帝舜을 든 것이며, 三王은 夏의 禹王, 商의 湯王, 周의 文王과 武王을 이른다. 帝堯는 帝舜에게, 帝舜은 禹王에게 天子의 자리를 선양하였는데, 賢者에게 선양한 帝堯와 帝舜과 달리 禹王 이하는 賢者에게 선양하지 않고 아들에게 傳位하여 天子의 지위를 세습하였다. 家는 天子의 자리를 자기 집안의 소유물로 인식하여 자손에게 물려주고, 官은 天子의 자리를 관청의 관직으로 인식하여 賢者에게 물려줌을 이른다.
역주5 右地 : 흉노의 오른쪽 지방으로 右方이라고도 한다. 흉노와 같은 북방 유목민족은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곳을 기준으로 하므로 흉노의 서부 지역을 가리킨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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