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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9)

자치통감강목(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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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강목(1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冬十月 以汝南王悅 爲太尉하다
魏淸河王懌 汝南王悅 了無恨元叉之意하고 以桑落酒 候之하여 盡其私佞注+① 悅, 豫之同母弟. 齊民要術曰 “桑落酒法, 用九月九日作, 水․麴․米皆以三斗为準.” 又水經蒲阪下注 “郡民有劉白墮, 工釀, 採挹河流, 醞成芳酎, 熟於桑落之辰, 故酒因名焉. 王公庶人, 牽拂相招者, 每云索郎, 有願思同侶之語. 蓋索郎, 返語桑落耳.” 鄭印曰 “西羌桑落河, 出馬乳酒, 羌人兼葡萄壓之. 晉宣帝時, 嘗來獻, 故九日賜百寮飮焉.”하니 大喜하여 以悅 爲侍中太尉하다
十一月 立阿那瓌하여 爲蠕蠕王하다
柔然可汗阿那瓌將至어늘 魏主 使京兆王繼 侍中崔光等으로 迎之하고 賜勞甚厚하고 引見置宴할새 置阿那瓌位於親王之下하고 立爲朔方公蠕蠕王이러니
魏方彊盛하여 於洛水橋南御道東 作金陵燕然扶桑崦嵫四館하고 道西 立歸正歸德慕化慕義四里하여 以處四方降者注+① 四館皆因四方之地爲名, 金陵在江南, 燕然在漠北, 扶桑在東, 日所出, 崦嵫在西, 日所入. 十洲記曰 “扶桑在碧海中, 長數千丈, 一千餘圍, 兩幹根, 更相依倚, 是以名扶桑. 崦, 依兼․依檢二切. 嵫, 音玆. 崦嵫, 山名. 通鑑有自江南來降者, 處之金陵館, 三年之後, 賜宅於歸正里. 自北降者, 處燕然館, 賜宅於歸德里. 自東夷降者, 處扶桑館, 賜宅於慕化里. 自西夷降者, 處崦嵫館, 賜宅於慕義里.”러니 及阿那瓌入朝 以燕然舘處之러라
阿那瓌 屢求反國커늘 朝議異同不决이러니 以金百斤으로 賂元叉하여 遂聽北歸하다
以京兆王繼 爲司徒하다
◐ 魏 遣使如梁하다
魏梁 始復通好하다


【綱】 겨울 10월에 北魏가 汝南王 元悅을 太尉로 삼았다.
【目】 北魏 淸河王 元懌이 세상을 떠날 적에 汝南王 元悅이 元叉를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桑落酒로 원차를 대접하며 온갖 아양을 떨었다.注+① 元悅은 元豫의 同母弟이다. ≪齊民要術≫에 “桑落酒를 만드는 법에는 이를 9월 9일에 만드는데 물과 누룩․쌀을 모두 3斗를 기준으로 한다.” 하였다. 또 ≪水經≫ 蒲阪의 주석에 “郡民 가운데 劉白墮라는 사람이 있는데 술을 잘 빚었다. 흐르는 물을 길어와 맛 좋은 술을 빚는데 뽕나무 잎이 떨어질 무렵에 익는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王公과 庶人들이 상대의 옷깃을 잡아끌면서 초청하는 것을 매양 ‘索郎’이라고 하는데 벗을 그린다는 말뜻이 들어 있다. 대개 索郎은 桑落을 돌려 말한 것일 뿐이다.” 하였다. 鄭印이 말하기를 “西羌 桑落河에 馬乳酒가 나오는데 羌族들이 포도와 함께 압축한다. 晉 宣帝 때 와서 이것을 헌상했으므로, 9일에 백관들에게 하사해 마시게 하였다.” 하였다. 원차가 크게 기뻐하여 원열을 侍中 太尉로 삼았다.
【綱】 11월에 北魏가 郁久閭阿那瓌를 옹립하여 蠕蠕王으로 삼았다.
【目】 柔然의 可汗 郁久閭阿那瓌가 오려 할 때 魏主(元詡)가 京兆王 元繼와 侍中 崔光 등을 보내 그를 맞이하게 하고, 후한 하사품을 주어 위로하고, 접견하여 연회를 베풀 때 아나괴의 자리를 親王 아래 배치하고 朔方公 蠕蠕王에 임명하였다.
당시 강성하던 北魏가 洛水橋 남쪽과 御道 동쪽에 金陵ㆍ燕然ㆍ扶桑ㆍ崦嵫 네 館을 설치하고, 御道 서쪽에 歸正ㆍ歸德ㆍ慕化ㆍ慕義 네 거리를 설치하여 사방에서 투항해온 자들을 안치하였는데注+① 四館은 모두 四方의 지역을 가지고 그 이름으로 취한 것이니, 金陵은 江南에 있고 燕然은 漠北에 있고 扶桑은 동쪽에 있는데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고 崦嵫는 서쪽에 있는데 태양이 넘어가는 곳이다. ≪十洲記≫에 이르기를 “扶桑은 碧海 가운데 있는데 길이가 수천 丈이고 둘레가 1천여 圍이다. 두 개의 줄기가 하나의 뿌리에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 해서 扶桑이라 한 것이다. 崦은 依兼과 依檢의 두 개의 切이며, 嵫는 음이 玆이니, 崦嵫는 산 이름이다. ≪資治通鑑≫에 “江南에서 항복해온 이들은 金陵館에 머물게 하고 3년 뒤에 歸正里의 집을 하사하며, 북쪽에서 항복해온 이들은 燕然館에 머물게 하고 歸德里의 집을 하사하며, 東夷에서 항복해온 이들은 扶桑館에 머물게 하고 慕化里의 집을 하사하며, 西夷에서 항복해온 이들은 崦嵫館에 머물게 하고 慕義里의 집을 하사한다.” 하였다. 아나괴가 입조하자 燕然舘에 배치하였다.
아나괴가 여러 차례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을 요청하였는데 조정의 논의가 분분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이에 아나괴가 元叉에게 황금 백 근을 뇌물로 주자, 결국 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綱】 北魏가 京兆王 元繼를 司徒로 삼았다.
【綱】 北魏가 梁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目】 北魏와 梁나라가 비로소 우호 관계를 복원하였다.


역주
역주1 (固)[同] : 저본에는 ‘固’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同’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9) 책은 2022.11.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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