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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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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未年(B.C. 62)
기미년(B.C. 62)
四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원강元康 4년이다.
春正月 詔年八十以上 非誣告殺傷人이면 勿坐注+誣告人及殺傷人, 皆如舊法, 其餘則不論.하다
봄 정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나이 80세 이상은 무고하거나 남을 살상한 경우가 아니면 죄에 걸리지 않게 하였다.注+남을 무고하거나 남을 살상한 자는 모두 옛 법과 같이 다스리고, 그 나머지는 논죄하지 않은 것이다.
[綱] 우부풍태수右扶風太守 윤옹귀尹翁歸하였다.
翁歸卒 家無餘財
[目] 윤옹귀尹翁歸하였는데, 집에 남은 재물이 없었다.
詔曰 翁歸廉平鄕正하여 治民異等注+郷, 讀曰嚮.하니 其賜翁歸子黃金百斤하여 以奉祭祀하라
황제는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윤옹귀尹翁歸가 청렴하고 공평하고 정도正道를 향해서 백성들을 다스림에 치적이 뛰어났으니,注+(향하다)은 으로 읽는다. 윤옹귀의 아들에게 황금 1백 을 하사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라.” 하였다.
求高祖功臣子孫失侯者하여 하다
[綱] 고조高祖의 공신의 자손으로서 를 잃은 자를 찾아내어 황금을 하사하고, 집의 부역을 면제하였다.
凡三百十六人이러라
[目] 모두 316명이었다.
大司馬衛將軍富平侯張安世 卒하다
[綱] 대사마大司馬 위장군衛將軍 부평후富平侯 장안세張安世하였다.
諡曰敬이라하다
[目] 시호를 이라 하였다.
以韋玄成으로 爲河南太守하다
[綱] 위현성韋玄成하남태수河南太守로 삼았다.
扶陽節侯韋賢注+恩澤侯表 “扶陽侯, 食邑於沛郡蕭縣.” 長子弘 有罪繫獄注+弘爲太常, 坐宗廟事, 繫獄.이러니 家人 矯賢令하여 以次子玄成爲後하니 玄成 深知其非賢雅意하고 卽陽狂하여 不應召하다
[目] 이보다 앞서 부양절후扶陽節侯 위현韋賢이 죽었을 적에注+한서漢書》 〈외척은택후표外戚恩澤侯表〉에 “부양후扶陽侯패군沛郡 소현蕭縣을 식읍으로 하였다.” 하였다.장자長子 위홍韋弘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注+위홍韋弘태상太常의 지위로 종묘의 일에 연관되어 옥에 갇혀 있었다. 집안사람들이 위현의 유명遺命이라고 거짓말하여 차자次子위현성韋玄成을 후계자로 삼으니, 위현성은 이것이 부친의 평소 뜻이 아님을 깊이 알고는 즉시 거짓으로 미친 체하여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大鴻臚奏狀하여 章下丞相, 御史案驗이러니
대홍려大鴻臚가 이 사실을 아뢰어 글을 승상丞相어사御史에 내려 조사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게 하였는데,
玄成友人侍郞章 亦上疏言注+章, 名, 史失其姓.호되 聖王 貴以禮讓爲國하니 宜優養玄成하여 勿枉其志하여 使得自安衡門之下라호되
위현성의 친구인 시랑侍郞 또한 상소하여 말하기를注+은 이름이니, 사서史書에 그 이 전하지 않는다.성왕聖王와 겸양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마땅히 위현성을 우대하여 그의 뜻을 굽히지 말아서 형문衡門(오막살이)의 아래에서 스스로 편안히 살게 해주소서.” 하였으나,
而丞相, 御史 遂以玄成實不病으로 劾奏之注+枉, 屈也. 衡門, 橫木爲門, 貧者之所居也.
승상丞相어사御史는 마침내 위현성이 실제는 미치지 않았다고 탄핵해서 아뢰었다.注+은 굽힘이다. 형문衡門은 나무를 가로대어 문을 만든 것이니, 가난한 자가 사는 곳이다.
有詔勿劾하고 引拜하니 玄成 不得已受爵이라
황제는 조령詔令을 내려 “위현성을 탄핵하지 말라.” 하고, 위현성을 데려다가 관직을 제수하니, 위현성은 부득이하여 작위를 받았다.
帝高其節하여 以爲河南太守하다
황제는 그의 절개를 높이 여겨 하남태수河南太守로 삼았다.
遣光祿大夫義渠安國하여 行邊兵하다
[綱] 광록대부光祿大夫 의거안국義渠安國을 보내어 변방의 군대를 순행(순찰)하게 하였다.
武帝開河西四郡注+四郡, 武威ㆍ酒泉ㆍ張掖ㆍ燉煌.하여 隔絶羌與匈奴相通之路하고 斥逐諸羌하여 不使居湟中注+湟, 音皇. 湟中, 湟水左右地也. 其地肥美, 故斥逐諸羌, 不使居之. 地理志 “湟水出金城郡臨羌縣塞外, 至允吾, 東入河. 一名樂都水, 本小月氏胡所居.” 案允吾, 縣名, 屬金城郡. 允, 音鉛, 吾, 音牙.이러니 及帝卽位 義渠安國 使行諸羌注+義渠, 本西戎種名, 後因以爲姓. 安國, 名也. 使ㆍ行, 竝去聲, 下同. 使行諸羌, 奉使巡行諸羌之地也. 羌有百五十四種, 散處三河, 故曰諸羌.하다
[目] 이보다 앞서 무제武帝하서河西의 네 을 개척하여注+무위군武威郡주천군酒泉郡장액군張掖郡돈황군燉煌郡이다.강족羌族흉노匈奴와 서로 통하는 길을 끊고, 강족羌族들을 쫓아내어 황중湟中에 살지 못하게 하였는데,注+은 음이 이니, 황중湟中황수湟水 좌우에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좋으므로 여러 강족羌族들을 축출하여 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황수湟水금성군金城郡 임강현臨羌縣 변방 밖에서 발원하여 윤오允吾(연아)에 이르러 동쪽으로 황하로 들어간다. 일명 ‘악도수樂都水’이니, 본래 소월지小月氏 오랑캐가 거주하던 곳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윤오允吾는 현의 이름이니, 금성군金城郡에 속하였다. 은 음이 이고, 는 음이 이다. 황제가 즉위하자 의거안국義渠安國이 사명을 받들고 여러 강족 지방을 순행하였다.注+의거義渠는 본래 서융西戎의 종족 이름인데 뒤에 인하여 으로 삼았고, 안국安國은 그의 이름이다. 使(사신 가다)와 (순행하다)은 모두 거성去聲이니, 아래도 같다. “사행제강使行諸羌”은 사명使命을 받들고 여러 강족羌族의 땅을 순행한 것이다. 강족羌族은 154개의 종족이 있는데 삼하三河 지방에 흩어져 살았으므로 “제강諸羌”이라 한 것이다.
先零豪言호되 願時度湟水北하여 逐民所不田處畜牧注+先, 如字. 零, 音憐. 先零, 西羌種名. 豪, 長帥也. 羌依南山, 度湟水而北, 固欲與匈奴合, 而湟北則漢地, 所以隔絶羌與匈奴通之路 正在此.이라한대
선령先零토호土豪(추장)가 말하기를 “수시로 황수湟水를 건너 북쪽으로 가서 백성들이 농사짓지 않는 곳을 따라 가축을 기르기를 원한다.”注+(먼저)은 본음本音대로 읽고 은 음이 이니, 선령先零서강西羌의 종족 이름이다. 는 우두머리(추장)이다. 강족羌族남산南山을 의지하여 살았는데, 황수湟水를 건너 북쪽으로 간 것은 본래 흉노匈奴와 합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수 북쪽은 나라 땅이므로, 이 때문에 강족羌族흉노匈奴가 통하는 길을 여기에서 막고 끊은 것이다. 하였다.
安國以聞이어늘 後將軍趙充國 劾安國奉使不敬하니라
의거안국義渠安國이 이것을 보고하자,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은 의거안국이 사명使命을 받듦에 불경하였다고 탄핵하였다.
是後 羌人 旁緣前言하여 抵冒度湟水하니 郡縣 不能禁注+旁, 步浪切, 依也. 冒, 莫北切. 抵冒, 謂犯突而前也.이러라
그 뒤에 강족들은 예전에 의거안국이 한 말을 따라 막무가내로 충돌해 와서 황수를 건너니, 군현에서는 이것을 금지하지 못하였다.注+보랑步浪이니, 의지함이다. (무릅쓰다)은 막북莫北이다. “저모抵冒”은 돌아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나아감을 이른다.
旣而 先零 與諸羌解仇交質注+羌人無大君長, 而諸種豪遞相殺伐, 故每有仇讐, 往來相報. 今解仇交質者, 自相親結, 欲入漢爲寇也.이어늘
[目] 얼마 후 선령先零강족羌族들과 원한을 풀고 서로 인질을 교환하였다.注+강족羌族들은 큰 군장君長이 없고 여러 종족의 호수豪帥가 번갈아 서로 죽이고 정벌하였으므로 매번 원한이 있어서 왕래하며 서로 보복하였는데, 지금 원한을 풀고 서로 인질을 교환한 것은 자기들끼리 서로 화친을 맺어서 나라로 쳐들어와 침략하고자 한 것이다.
上以問充國한대 對曰 羌人所以易制者 以其種自有豪하여數相攻擊하여 勢不壹也
조충국趙充國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동안 강족들을 제재하기 쉬웠던 까닭은 그들의 종족이 본래 각자 토호가 있어서 자주 서로 공격하여 형세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往西羌反時 亦先解仇合約하니이다
지난번 서강西羌이 배반했을 적에도 저희들끼리 먼저 원한을 풀고 맹약을 맺었습니다.
이나 勢不能獨造注+合約, 共爲要契也. 通鑑, 造下有此計二字.
그러나 강족들은 형편상 이러한 계책을 홀로 세우지는 못합니다.注+합약合約은 함께 맹약한 것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자 아래에 ‘차계此計’ 두 글자가 있다.
比聞匈奴 數誘羌人하여 欲與之共擊張掖, 酒泉地라하니 疑其遣使至羌中하여 與相結하여 羌乃解仇作約이니
근래 듣자오니, 흉노가 자주 강족들을 유인해서 그들과 함께 장액張掖주천酒泉 지역을 공격하고자 한다고 하니, 흉노가 강족이 사는 지역에 사자를 보내어 서로 화친을 맺어, 강족이 마침내 흉노와 원한을 풀고 맹약할까 의심스럽습니다.
到秋馬肥하면 變必起矣리이다
가을에 말이 살찌게 되면 변란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宜遣使者하여 行邊兵하여 豫爲하고 視諸羌하여 毋令解仇하여 以發覺其謀注+視, 讀曰示, 示語之也.니이다
마땅히 사자를 보내어 변방에 있는 군대를 순행해서 미리 대비하게 하고, 강족들에게 이것을 보여주고 말하여 원한을 풀지 못하게 해서 그들의 은밀한 계책을 탄로시켜야 합니다.”注+로 읽으니, 보여주고 말하는 것이다.
於是 兩府復白遣安國注+兩府, 丞相‧御史府也.하니라
이에 승상부丞相府어사부御史府에서는 다시 아뢰어 의거안국義渠安國을 보내었다.注+승상부丞相府어사부御史府이다.
역주
역주1 右扶風尹翁歸卒 : “三輔를 맡은 자에 대하여 ‘卒’을 쓴 적이 있지 않았는데, ‘尹翁歸가 卒했다.’고 쓴 것은 어짊을 기록한 것이니, 韓延年과 趙廣漢과 다른 것이다.[三輔未有書卒者 卒翁歸 錄賢也 異韓趙矣]” 《書法》
역주2 賜金 復其家 : “黃金과 復을 하사했을 뿐인데, 어찌하여 이것을 썼는가? 功을 생각함을 아름답게 여긴 것이니, 功臣의 후손을 기록한 일을 쓴 것이 이때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功臣의 후손을 기록한 일을 쓴 것이 6번인데, 사당을 세워 화상을 그린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賜金與復耳 何以書 嘉念功也 書錄功臣後始此 終綱目 書錄功臣後六 立廟圖畫不與焉]” 《書法》
역주3 (偏)[備] : 저본에는 ‘偏’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備’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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