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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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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0권 중
漢 和帝 永元 2년(90)~漢 安帝 永初 3년(109)
庚寅年(90)
二年이라 春二月 日食하다
◑竇憲 遣兵하여 復取伊吾地하니 車師遣子入侍하다
◑月氏遣使奉獻하다
月氏求尙公主어늘 班超拒還其使 由是怨恨하여 遣其副王謝하여 將兵七萬攻超注+, 猶裨王也, 謝, 其名.하니 超衆少하여 皆大恐이어늘
超曰 月氏兵雖多 然數千里踰蔥嶺來하여 非有運輸하니 何足憂邪注+言糧盡自當降也.리오
但當收穀堅守 彼饑窮自降이니 不過數十日 决矣注+謂勝負决也.리라 謝攻不下하고 抄掠無所得이라
超度其必從龜玆求食하고 乃遣兵數百하여 於東界要之注+要, 遮也.러니
謝果遣騎賂龜玆어늘 伏兵 遮擊盡殺之하고 持其首示謝한대 謝大驚請罪하고 由是 歲奉貢獻하니라
封齊武王孫無忌하여 爲齊王하고 威爲北海王注+無忌, 縯四代孫也, 父曰晃. 威, 睦之庶子.하다
北海哀王 無後注+哀王, 名基, 縯之曾孫. 父曰敬王睦.하니 肅宗以齊武王首創大業이라하여 遺詔令復二國이러니 至是皆封하다
秋七月 竇憲 出屯涼州하다
◑九月 어늘 竇憲 遣使迎之러니 復遣兵襲擊破之하다
北單于遣使欵塞稱臣하고 欲入朝見이어늘 遣班固迎之러니
南單于求滅北庭이라 復遣中郎將耿譚하여 將騎出塞하여 襲擊北單于注+譚爲使匈奴中郞將.하니 單于被創하여 僅而得免하다
南部黨衆益盛하여 領戶三萬四千이요 勝兵 五萬注+勝, 音升. 勝兵者, 謂能操五兵而戰也.이러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0권 중
한 화제漢 和帝 영원永元 2년(90)~한 안제漢 安帝 영초永初 3년(109)
경인년庚寅年(90)
나라 효화황제 영원孝和皇帝 永元 2년이다. 봄 2월에 일식이 있었다.
두헌竇憲이 군대를 보내 다시 이오伊吾 지역을 점령하니, 거사車師에서 아들을 들여보내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월지月氏(월지)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받들어 올렸다.
】 처음에 월지月氏나라의 공주公主에게 장가들기를 청하였으나 반초班超가 그의 사자使者를 거절하여 되돌려 보냈다. 이 때문에 월지가 원한을 품어서 부왕 사副王 謝를 보내 7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반초를 공격하니注+부왕副王과 같다. 는 그의 이름이다., 반초의 군대는 병력이 적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반초가 말하기를 “월지의 병력이 비록 많으나 수천 리 멀리 총령蔥嶺을 지나와서 수송하는 물자가 있지 않으니, 어찌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注+〈“비유운수 하족우야非有運輸 何足憂邪”는〉 양식이 다하여 응당 항복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곡식을 거둬들이고 견고히 수비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면 저들이 굶주리고 곤궁하여 스스로 항복할 것이니, 수십 일이 지나지 않아서 승부가 결정될 것이다.”注+〈“결의决矣”는〉 승부가 결정됨을 이른다. 하였다. 가 공격하였으나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노략질하였으나 얻은 바가 없었다.
반초는 그들이 반드시 구자龜玆에게 식량을 요구하리라고 짐작하고는 수백 명의 병사를 보내 동쪽 경계에서 이들을 가로막았다.注+는 가로막음이다.
가 과연 기병을 보내 구자에 뇌물을 바치려 하자, 복병이 이들을 가로막고 공격하여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가져다가 에게 보였다. 는 크게 놀라 죄를 청하고 이로부터 해마다 공물을 받들어 올렸다.
제무왕齊武王(유연劉縯)의 후손인 유무기劉無忌를 봉하여 제왕齊王으로 삼고, 유위劉威북해왕北海王으로 삼았다.注+무기無忌유연劉縯의 4대손이니, 아버지는 유황劉晃이다. 유위劉威유목劉睦(유연劉縯의 손자)의 서자이다.
】 처음에 북해애왕北海哀王(유기劉基)이 후사가 없으니注+애왕哀王은 이름이 유기劉基이니 유연劉縯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경왕 유목敬王 劉睦이다., 숙종肅宗(장제章帝)은 제무왕齊武王이 맨 먼저 대업大業을 창도했다 하여 유명遺命을 내려 두 나라를 회복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두 봉하였다.
】 가을 7월에 두헌竇憲양주涼州로 나가 주둔하였다.
】 9월에 북흉노北匈奴가 변방에 와서 조회할 것을 청하였는데, 겨울에 두헌竇憲사자使者를 보내 맞이하고는 다시 군대를 보내 습격해서 흉노를 격파하였다.
북선우北單于사자使者를 보내 변방에 와서 을 칭하고 들어와 조회하고 황제를 뵙고자 하므로 두헌竇憲반고班固를 보내 맞이하게 하였다.
마침 남선우南單于북흉노北匈奴의 조정을 멸망시킬 것을 청하자, 두헌이 다시 중낭장 경담中郎將 耿譚을 보내 기병을 거느리고 변경으로 나가서 북선우를 습격하게 하니注+경담耿譚사흉노중랑장使匈奴中郞將으로 있었다., 북선우가 상처를 입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남부南部(남선우)의 무리가 더욱 번성하여 거느린 호구가 3만 4천이고 정예병[승병勝兵]이 5만이었다.注+은 음이 이니, “승병勝兵”은 다섯 가지 병기(세모진 창[], 갈래진 창[], 활[], 검[], 평두창[])를 잡고 싸울 수 있는 병사를 이른다.


역주
역주1 (士)[王] : 저본에는 ‘士’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綱目集覽≫에 의거하여 ‘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裨王 : 匈奴의 小王을 가리킨 말이다.
역주3 北匈奴……襲擊破之 : “조회하기를 청한 것은 순한 일이다. 그를 맞이하고 다시 공격하였다고 하여 그 일을 곧바로 썼으니, 폄하한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求朝 順節也 迎之 復擊之 直書其事 貶意自見矣]” ≪書法≫ “변방에 와서 조회하기를 청한 것은 夷狄들이 귀순하려는 것이다. ‘사신을 보내 맞이했다.’고 썼고 또 ‘군대를 보내 습격해서 격파했다.’고 썼으니, 그렇다면 거짓된 꾀가 더욱 심한 것이다. 竇憲이 병권을 전횡하여 행한 바가 이와 같으니, 漢나라 조정이 그러고도 나라를 제대로 세울 수 있겠는가.[欵塞求朝 夷狄之向化也 旣書遣使迎之 又書遣兵襲擊破之 則詐謀爲益甚矣 竇憲專兵 所爲如此 漢朝尙可立國乎]” ≪發明≫
역주4 (來)[求] : 저본에는 ‘來’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綱目≫(上海古籍出版社)에 의거하여 ‘求’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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