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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0)

자치통감강목(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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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年(202)
임오년壬午年(202)
七年이라 春正月 曹操復進軍官渡하다 夏五月하다
나라 효헌황제 건안孝獻皇帝 建安 7년이다. 봄 정월에 조조曹操가 다시 진군하여 관도官渡에 주둔하였다. 여름 5월에 원소袁紹하자, 어린 아들 원상袁尙이 그를 계승하여 의 일을 처리하고 장자 원담袁譚여양黎陽에 나가 주둔하였는데, 조조가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袁紹慙憤發病하여 嘔血薨하다 紹有三子하니 譚, 熙, 尙이니
원소袁紹가 부끄럽고 분하여 병이 나서 피를 토하고 하였다. 처음에 원소에게 세 아들이 있었으니, 원담袁譚원희袁熙원상袁尙이었다.
紹後妻劉氏愛尙이라 紹欲以爲後하여 乃以譚繼兄後하여 出爲靑州刺史注+紹, 本司空逢之孽子, 出後伯父成. 成蓋先有子, 死, 而紹後之. 紹欲廢譚立尙, 故以譚繼兄後.하니
원소의 후처 유씨劉氏가 원상을 총애하기에 원소가 그를 후사로 삼고자 하여, 마침내 원담을 출계出系시켜 형의 후사를 잇게 하고 청주자사靑州刺史로 나가게 하였다.注+원소袁紹는 본래 사공 원봉司空 袁逢얼자孽子(서자庶子)였는데, 백부 원성伯父 袁成의 양자로 들어가 후사를 이었다. 원성에게 이보다 앞서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죽었으므로 원소가 후사를 이은 것이다. 원소가 원담袁譚을 폐하고 원상袁尙을 후사로 세우고자 하였기 때문에 원담을 출계出系시켜 형의 후사를 잇게 한 것이다.
沮授諫曰 世稱萬人逐兔 一人獲之 貪者悉止 分定故也注+愼子曰 “兔走於, 百人逐之, 貪心俱存, 人莫之非者, 以兔爲未定分也. 積兔在市, 過而不顧, 非不欲兔也, 分定之後, 雖鄙不爭.” 分, 扶問切. 當爲嗣而斥使居外하니 禍其始此矣리이다
그러자 저수沮授가 간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일컫기를 ‘만 명의 사람이 토끼를 쫓되 한 사람이 이것을 잡으면 토끼를 탐하는 자들이 모두 그만둔다.’ 하였으니, 이는 분수(몫)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注+가 말하기를 하였다. (몫)은 부문扶問이다.장자長子인〉 원담이 마땅히 후사가 되어야 하는데 그를 배척하여 밖에 거처하게 하시니, 화난禍難이 이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紹曰 吾欲令諸子 各據一州하여 以視其能하노라 於是 以熙爲幽州刺史하고 甥高幹爲幷州刺史러니
원소가 말하기를 “내가 아들들에게 각자 한 를 맡게 하여서 그 능력을 보고자 한다.” 하였다. 이에 원희를 유주자사幽州刺史로 삼고, 생질 고간高幹병주자사幷州刺史로 삼았다.
(逄)[逢]紀, 審配 素爲譚所疾하고 辛評, 郭圖 皆附於譚而與配, 紀有隙이러라
봉기逢紀심배審配는 본래 원담에게 미움을 받았고, 신평辛評곽도郭圖는 모두 원담에게 귀부하여 심배 및 봉기와 틈이 있었다.
及紹薨 以譚長欲立之러니 配等 恐譚立而評等爲害하여 遂矯紹遺命하여 奉尙爲嗣하니
원소袁紹하자 여러 사람들은 원담袁譚이 장자라고 하여 그를 후사로 세우고자 하였는데, 심배審配 등은 원담이 후사로 서게 되면 신평辛評 등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원소의 유명遺命을 사칭하여 원상袁尙을 받들어 후사로 삼았다.
譚至 不得立하여 自稱車騎將軍하고 屯黎陽注+紹初起兵, 自稱車騎將軍, 故譚亦稱之.하다 少與之兵而使紀隨之한대 求益兵이어늘 配等 不與하니
원담이 도착하였으나 후사로 서지 못하고는 스스로 거기장군車騎將軍이라 칭하고 여양黎陽에 주둔하였다.注+원소袁紹가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적에 스스로 거기장군車騎將軍이라고 칭하였기 때문에 원담袁譚 또한 이렇게 칭한 것이다. 원상이 원담에게 적은 병력을 주고 아울러 봉기逢紀에게 따라가도록 하였는데 원담이 병력을 더 줄 것을 청하였으나 심배 등이 주지 않자,
怒殺紀하다 曹操攻譚이어늘 自將助之하여 與操相拒하니 譚, 尙 數敗하다
원담이 노하여 봉기를 죽였다. 조조曹操가 원담을 공격하자, 원상이 직접 군대를 거느려 원담을 도와 조조와 서로 대치하였는데, 원담과 원상이 자주 패하였다.
袁尙 遣郭援, 高幹하여 徇河東이어늘 鍾繇擊破之하고 斬援하다
원상袁尙곽원郭援고간高幹을 보내어 하동河東을 순행하게 하였는데, 종요鍾繇가 이들을 격파하고 곽원을 참살하였다.
遣其將郭援, 高幹하여 共攻河東注+通鑑 “尙遣所置河東太守郭援, 與高幹ㆍ匈奴南單于共攻河東.”하고 發使하여 與馬騰等連兵하니 所經城邑皆下러라
원상袁尙이 장수 곽원郭援고간高幹을 보내어 함께 하동河東을 공격하게 하고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원상袁尙이 자기가 설치한 하동태수 곽원河東太守 郭援을 보내어 고간高幹흉노 남선우匈奴 南單于와 함께 하동河東을 공격하게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사자使者를 보내어 마등馬騰 등과 병력을 연합하니, 곽원이 지나가는 곳의 성읍城邑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河東郡吏賈逵守絳注+絳縣, 屬河東郡.이어늘 攻之急한대 父老約援호되 不害逵 乃降호리라 許之러니
하동군河東郡의 관원 가규賈逵강현絳縣을 지키고 있었는데注+강현絳縣하동군河東郡에 속하였다. 곽원이 맹렬하게 공격하자, 강현絳縣부로父老들이 곽원에게 약속하기를 “가규를 해치지 않으면 바로 항복하겠다.” 하니, 곽원이 이를 허락하였다.
旣而 以兵刼之하여 欲使爲將이어늘 逵不動하니 左右使叩頭한대 逵叱之曰 安有國家長吏 爲賊叩頭注+逵, 郡吏, 非長吏也. 以守絳故, 自謂縣長吏. 爲, 去聲, 下爲言同.리오
이윽고 곽원이 무기로 가규를 위협하여 자신의 장수로 삼고자 하였으나 가규가 여기에 동요되지 않았다. 곽원의 좌우左右가 머리를 땅에 조아리게 하였는데 가규가 꾸짖으며 말하기를 “국가國家장리長吏가 도적을 위하여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注+가규賈逵군리郡吏이고 장리長吏가 아니었으나 강현絳縣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장리長吏라고 이른 것이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위언爲言”도 똑같다. 하였다.
하여 將斬之하니 或伏其上以救之하고 吏民 皆乘城呼曰 負約殺我賢君하니 寧俱死耳라하여늘
곽원이 노하여 가규를 참살하려고 하자, 어떤 이는 가규의 몸 위에 엎드려서 그를 구원하였고, 강현絳縣의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성에 올라가 소리치며 말하기를 “약속을 저버리고 우리의 어진 사군使君을 죽이려 하니, 차라리 모두 함께 죽는 것이 낫다.” 하였다.
乃囚之壺關이러니 有祝公道者 夜盗出之注+壺關縣, 屬上黨郡. 祝, 姓. 公道, 名.하다
곽원이 마침내 가규를 호관壺關에 가두었는데, 축공도祝公道라는 자가 밤에 몰래 그를 구출하였다.注+호관현壺關縣상당군上黨郡에 속하였다. 이고 공도公道는 이름이다.
操使鍾繇圍南單于於平陽이러니 未拔而援至注+平陽縣, 屬河東郡. 時南單于呼厨泉居之. 繇使張旣說馬騰하여 爲言利害한대
조조曹操종요鍾繇에게 평양현平陽縣에서 남선우南單于를 포위하게 하였는데 함락시키기 전에 곽원郭援의 군대가 이르렀다.注+평양현平陽縣하동군河東郡에 속하였다. 이때에 남선우 호주천南單于 呼厨泉이 여기에 거처하였다. 종요가 장기張旣에게 마등馬騰을 설득하여 이해득실에 대해 말해주도록 하였는데,
騰疑未決이러니 傅幹 說曰 智者 轉禍爲福하나니 今曹公 與袁氏相持하여 而高幹, 郭援 合攻河東하니
마등이 의심하여 결단하지 못하자 부간傅幹이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재앙과 화난을 바꾸어 오히려 복으로 만드는 법입니다. 지금 조공曹公원씨袁氏와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고간高幹곽원郭援이 군대를 연합하여 하동河東을 공격하니,
曹公 雖有萬全之計 不能禁河東之不危也 將軍 誠能引兵討援하여 內外擊之 其勢必擧注+內外擊之, 謂河東之兵擊之於內, 而馬騰之兵擊之於外也.
조공이 비록 만전을 기하는 계책이 있더라도 하동이 위태롭지 않도록 저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장군께서 진실로 군대를 이끌고 곽원을 토벌하여 안팎으로 공격하면 형세상 틀림없이 이길 것이니注+내외격지內外擊之”는 하동河東의 군대는 안에서 공격하고 마등馬騰의 군대는 밖에서 공격함을 이른다.,
是將軍一擧 斷袁氏之臂하고 解一方之急이라 曹公 必重德將軍하리니 將軍功名 無與比矣리라 乃遣子超하여 將兵與繇會하다
이는 장군이 한 번 움직임에 원씨의 팔을 자르고 하동 한 지역의 위급함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조공이 반드시 장군에 대해서 깊이 감사해 할 것이니, 장군의 공명功名은 더불어 견줄 자가 없게 될 것입니다.” 마등이 이에 아들 마초馬超를 보내어 군대를 거느려 종요와 연합하게 하였다.
諸將 以郭援衆盛이라하여 欲釋平陽去러니 繇曰
】 처음에 장수들은 곽원郭援의 병력이 강하다고 하여 평양현平陽縣의 포위를 풀고 떠나려고 하였는데, 종요鍾繇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袁氏方强하니 援之來 關中 陰與之通호되 所以未悉叛者 顧吾威名故耳
원씨袁氏의 세력이 한창 강성하니, 곽원이 진군해옴에 관중關中의 장수들이 은밀하게 그와 내통하지만 모두 다 배반하지 않는 것은 다만 우리의 위엄과 명성을 돌아보기 때문일 뿐이다.
若棄而去하여 示之以弱이면 所在之民 誰非寇讐리오 縱吾欲歸 其得至乎 此爲未戰 先自敗也注+言若退師避援, 則關中諸將必叛, 雖欲歸司隷治所, 亦不得而至也.
만약 우리가 평양현平陽縣을 버리고 떠나가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곳의 백성들 중에 어느 누가 우리와 원수가 되지 않겠는가. 비록 내가 사례司隷치소治所로 돌아가고자 하더라도 이를 수 있겠는가. 이는 싸우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싸움에서 패하는 것이 된다.注+〈“약기이거若棄而去……기득지호其得至乎”는〉 만약 군대를 퇴각하여 곽원郭援을 피하면 관중關中의 장수들이 반드시 배반할 것이니, 비록 사례司隷치소治所로 돌아가고자 하더라도 또한 이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且援 剛愎好勝하여 必易吾軍注+易, 輕也.이니 若渡汾爲營하여 及其未濟하여 擊之 可大克也注+水經註 “汾水南過平陽縣東.”니라
또한 곽원은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며 남과 겨루어 이기기를 좋아해서 틀림없이 우리 군대를 얕잡아볼 것이니注+는 얕잡아 봄이다., 만약 우리가 분수汾水를 건너 군영을 만들고서 저들이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하면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注+수경주水經注≫에 “분수汾水는 남쪽으로 흘러서 평양현平陽縣 동쪽을 지나간다.” 하였다.
果徑前渡汾이어늘 未半 繇擊破之하니 南單于亦降하다 繇之甥也
곽원의 군대가 이르러서 과연 곧장 전진하여 분수汾水를 건넜는데, 분수의 절반도 건너기 전에 종요가 공격해 격파하니, 남선우南單于도 항복하였다. 곽원은 종요의 생질이다.
校尉龎德 斬之하니 繇見其頭而哭한대 謝繇어늘 繇曰 援雖我甥이나 國賊也 何謝之有리오
교위 방덕校尉 龎德이 곽원을 참살하니, 종요가 그 머리를 보고서 통곡하였다. 이에 방덕이 종요에게 사죄하였는데, 종요가 말하기를 “곽원이 비록 나의 생질이지만 국가의 역적이니, 어찌 사죄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조조曹操손권孫權에게 인질을 보낼 것을 요구하였는데, 손권이 을 받지 않았다.
曹操下書하여 責孫權任子注+任子, 猶言質子也. 操蓋以此覘孫權, 而觀其所以應之.하니 召群僚會議한대 張昭等 猶豫不決이어늘
조조曹操가 편지를 보내어서 손권孫權에게 인질을 보낼 것을 요구하자注+임자任子”는 질자質子(인질)라는 말과 같다. 조조曹操가 이로써 손권孫權을 엿보고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살펴본 것이다. 손권이 군료群僚를 불러서 회의하였는데, 장소張昭 등이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引周瑜하여 詣吳夫人前定議注+吳夫人, 權母也.할새 瑜曰 昔 楚國初封 不滿百里로되
손권이 주유周瑜를 데리고서 오부인吳夫人의 앞에 나아가 의논을 결정할 적에注+오부인吳夫人손권孫權의 모친이다. 주유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나라가 처음으로 분봉分封을 받았을 적에 그 봉지封地가 사방 100리도 못 되었는데,
繼嗣賢能하여 廣土開境하여 遂據荊, 揚하여 至於南海하여 傳業延祚九百餘年注+周成王封熊繹於楚以子男之田, 國於丹陽. 其後浸強, 至若敖ㆍ蚡冒, 封畛於汝, 武王ㆍ文王奄有江漢之間, 莊王以後, 與中國爭盟, 威王破越, 至于南海, 及秦而滅, 凡九百餘年.이니이다
후대의 군주들이 현명하고 재간이 있어서 강토疆土를 확장하고 국경을 개척하여 마침내 형주荊州양주揚州를 차지하여 남해南海에까지 이르러서 왕업王業을 전하고 국조國祚를 이어간 것이 900여 년입니다.注+나라 성왕成王봉지封地웅역熊繹 지역에 하니, 단양丹陽에 국도를 세웠다. 그 뒤 점차 강성해져서 약오若敖분모蚡冒의 시대에 이르러 나라의 봉강封疆여수汝水까지 넓혔고, 무왕武王문왕文王장강長江한수漢水 일대를 모두 소유하였으며, 장왕莊王 이후로는 중국中國(중원中原)과 맹주盟主가 되기를 다투었고, 위왕威王나라를 격파하여 남해南海에까지 이르렀는데 나라에 미쳐 멸망하였으니, 모두 900여 년이다.
今將軍 承父兄餘資하고 兼六郡之衆注+父, 謂孫堅, 兄, 謂孫策. 六郡, 會稽ㆍ吳ㆍ丹陽ㆍ豫章ㆍ廬陵ㆍ廬江也.하여 兵精糧多하고 將士用命하며 鑄山煮海하여 境內富饒하니
지금 장군께서는 부형父兄이 물려주신 기업基業을 계승하고 여섯 의 넓은 토지와 많은 백성들을 겸하여注+손견孫堅을 이르고 손책孫策을 이른다. 여섯 회계會稽, , 단양丹陽, 예장豫章, 여릉廬陵, 여강廬江이다. 군대가 정예롭고 군량도 충분하고 장수와 사졸들이 명령을 따르며 산의 광석을 채굴하여 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어서 경내에 물자가 풍요로우니,
有何偪迫而欲送質注+質, 音致, 下同.이니잇가 質一入이면 不得不與曹氏相首尾 與相首尾 則命召 不得不往이라
무슨 핍박을 당하기에 인질을 보내고자 하십니까.注+(인질)는 음이 이니, 아래도 똑같다. 일단 한 번 인질을 보내면 조씨曹氏와 서로 수미首尾(밀접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으니, 그와 수미首尾가 되면 하여 부를 적에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如此 見制於人하여 極不過一侯印 僕從十餘人 車數乘, 馬數匹이리니 豈與南面稱孤同哉리잇가
이렇게 되면 남에게 제압을 당하면서 기껏해야 제후의 인장印章 한 개와 노복 10여 명과 수레 몇 대와 말 몇 필을 얻는 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남면南面하여 를 칭하는 것과 어찌 같겠습니까.
不如勿遣하고 徐觀其變이니 若曹氏能率義以正天下 將軍 事之未晩이요 若爲暴亂이면 彼自亡之不暇 焉能害人注+焉, 於虔切.이리오
볼모를 보내지 말고 서서히 사세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낫습니다. 만약 조씨가 를 행하여 천하를 바로잡을 수 있으면 장군께서 그를 섬겨도 늦지 않을 것이고, 만약 포학하고 혼란한 짓을 하면 저이가 스스로 망하는 것을 구제할 겨를도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注+어건於虔이다.
吳夫人曰 公瑾議是也注+公瑾, 周瑜字.로다 公瑾 與伯符同年이로되 小一月耳注+伯符, 孫策字. 我視之如子하니 汝其兄事之하라 遂不送質하다
이에 오부인吳夫人이 말하기를 “공근公瑾의 의논이 옳다.注+공근公瑾주유周瑜이다. 공근이 백부伯符(손책孫策)와 생년이 같은데 한 달이 늦을 뿐이다.注+백부伯符손책孫策이다. 나는 이 사람을 내 아들과 똑같이 여기니, 너는 형으로 섬겨라.” 하여, 마침내 인질을 보내지 않았다.
역주
역주1 袁紹卒……操攻敗之 : “袁紹가 이미 패망하여 애당초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이 州를 계승하고, 장자가 나가 주둔한 것을 썼으니, 이는 후세에 장자를 폐하고 어린 아들을 후사로 세우는 것에 대한 경계로 삼은 것이고, 또한 이로써 袁譚과 袁尙이 서로 공격한 이유를 보인 것일 뿐이다.[紹旣敗亡 初不足道 然必書幼子襲州 長子出屯者 所以爲後世廢長立幼之戒 且以見譚尙交攻之由耳]” ≪發明≫
역주2 (衛)[街] : 저본에는 ‘衛’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街’로 바로잡았다.
역주3 愼子 : 이름은 愼到로, 戰國時代 趙나라 사람이다. 黃老學을 배워서 法治를 주장하여 “백성은 군주에게 하나로 복종하고 國事는 법에 의해 결단되어야 하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大道이다.[民一於君 事斷於法 是國之大道也]”라고 하였다. 齊나라의 宣王과 湣王 때에 鄒衍, 淳于髡, 接予, 環淵 등과 함께 上大夫가 되었고, 齊나라 稷下의 學宮에서 講學하여 명성이 높았다. 저서로는 ≪愼子≫ 7편이 있다.
역주4 토끼……않는다 : 이 내용은 ≪愼子≫ 〈君人〉에 보인다.
역주5 曹操責孫權任子 權不受命 : “‘曹操가 요구하였다.[操責]’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漢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命을 받지 않았다.[不受命]’라고 쓴 것은 그를 인정한 것이다.[書操責 何 非爲漢也 書不受命 蓋予之]” ≪書法≫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고, 자기 몸에 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선을 요구하며, 자기 몸에 惡이 없은 뒤에 남의 악을 비난하는 것이다. 曹操가 天子를 위협해 遷都하여 王室을 손상시켜 찬탈하려는 형세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이에 長江과 漢水를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자 하니 어렵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조조가 孫權에게 인질을 보낼 것을 요구하였는데 손권이 命을 받지 않았다.’라고 쓴 것은 ≪春秋≫에서 ‘魯 宣公이 莒나라와 郯나라를 화해시키고자 하였으나, 莒人이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쓴 것과 일은 다르지만 뜻은 똑같으니, 이는 모두 강대한 자가 약소한 자에게 명령을 행하지 못한 경우이다. 書法이 이와 같은 것은 후인에게 마땅히 먼저 스스로 그 근본을 다스려야 함을 경계한 것이다. 이 때문에 행함에 얻지 못함이 있으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뿐이니, 조조 같은 자가 어찌 이것을 알 만하겠는가.[所惡(오)於上 無以使下 所惡(오)於下 無以事上 有諸己而後 可以求諸人 無諸己而後 可以非諸人 曹操刼遷天子 斲喪王室 簒勢已成 乃欲越江漢而責人 難矣 綱目書操責孫權任子 權不受命 其與春秋書宣公平莒及郯 莒人不肯 異事而同意 是皆以彊大不能行之於弱小者也 書法若此 所以戒後人當先自治其本 故行有不得者 反求諸己而已 若操 何足以知此]” ≪發明≫

자치통감강목(10)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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