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封建也者는 帝王所以順天理承天心公天下之大端大本也요 郡縣也者는 霸世暴主之所以縱人慾悖天道私一身之大孽大賊也라
於是
에 有百里七十里五十里不能五十里邦國之制焉
注+記王制 “公侯田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不能五十里者, 不合於天子, 附於諸侯曰附庸.”하며 於是
에 有君朝卿大聘大夫小聘王巡守侯述職之禮樂法度焉
注+公羊傳注 “諸侯卽位, 比年使大夫小聘, 三年使上卿大聘, 四年又使大夫小聘, 五年一朝, 因助祭以述職.” 記王制 “天子五年一巡守.”하며 於是
에 有千雉百雉三之一五之一高城深池焉
注+左傳 “大都不過參國之一, 中五之一, 小九之一.” 註 “方丈曰堵, 三堵曰雉. 一雉, 長三丈高一丈. 天子千雉, 侯‧伯三百雉. 大都三分國城之一, 不過百雉, 中都五分之一, 不過六十雉, 小都九分之一, 不過三十三雉.”하며 於是
에 有井邑丘甸縣都之夫數焉
注+禮地官小司徒 “九夫爲井, 四井爲邑, 四邑爲丘, 四丘爲甸, 四甸爲縣, 四縣爲都, 以任地事而令貢賦, 凡稅斂之事.” 群書考索曰 “周禮所謂夫家之數者, 一夫受田百畝, 家出一夫而巳. 其合居者, 亦惟計其丁壯而用之, 與別居者無異.”하며 於是
에 有十乘百乘千乘萬乘之車數焉
注+禮地官小司徒註 “司馬法曰 ‘畝百爲夫, 夫三爲屋, 屋三爲井, 井十爲通, 通十爲成, 革車一乘. 十成爲終, 革車十乘. 十終爲同, 革車百乘.’” 諸侯大國, 一封三百六十六里, 兵車千乘. 天子畿內方千里, 兵車萬乘.하며 於是
에 有伍兩卒旅師軍之制焉
注+禮地官小司徒 “五人爲伍, 五伍爲兩, 四兩爲卒, 五卒爲旅, 五旅爲師, 五師爲軍. 以起軍旅, 以作田役.”하며 於是
에 有鄕大夫司徒樂正取士之法焉
注+禮 “鄕大夫受敎法于司徒, 退而頒之于其鄕吏. 三年則大比, 考其德行道藝, 而興賢者能者.” 記王制 “命鄕論秀士, 升之司徒曰選士. 司徒論選士之秀者, 升之學曰俊士. 樂正順先王詩書禮樂以造士.”하니라
邦國之制廢而郡縣之制作矣요 郡縣之制作而世襲之制亡矣요 世襲之制亡而數易之弊生矣요 數易之弊生而民無定志矣니라
巡守述職之禮廢則上下之情이 不通하야 考文案而不究事實하며 信文案而不信仁賢이라 其弊有不可勝言者矣요
城池之制廢而禁禦暴客威服四夷之法이 亡矣요 夫家之法이 廢而民數를 不可詳矣요 民數를 不可詳而車乘을 不可出矣요 車乘을 不可出而軍師不隱於農矣요 軍師不隱於農하야 坐食者衆而公私困窮矣니라
世儒不知王政之本하야 反以亡秦爲可法이라하고 所謂明君良臣者도 亦未免以天下自私하야 無意於裁成輔相하야 使萬物各得其所하니 所以歷千五百餘歲로대 未有能復之者也니라
聖人制四海之命하사 法天而不私하며 盡制而不曲防하야 分天下之地以爲萬國하야 而擧英才共焉하시니
非後世擅天下者以大制小하며 以彊制弱之謀也라 誠盡制而已矣니라
是以로 虞夏商周傳於長久를 皆千餘載하니 論興廢則均有焉이로대 語絶滅則至暴秦郡縣天下然後極也니라
自秦滅先王之制로 海內蕩然하야 無有根本之固하니 有今世王天下而繼世無置錐之地者하며 有今年貴爲天子而明年欲爲匹夫不可得者하니
物有其根則常而靜하고 安而久니 常靜安久則理得其終하며 物遂其性하나니
理之易治하고 亂之難亡하며 扶之易興하고 亡之難滅하나니
目
[目]
제齊나라 왕이 장차
진秦나라로 조회하러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옹문雍門 사마司馬가 왕에게 나아가 아뢰기를
注+옹雍(가려 막다)은 어용於用의 절切이다. 옹문雍門은 제齊나라 성문城門이다. 사마司馬는 군사軍事를 주관한다. 사마문司馬門은 궁궐 담장 안의 위병衛兵이 있는 곳이니, 궁궐의 사면에 모두 사마司馬가 있다. “왕을 세우는 것은 사직을 위해서입니까?”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아래도 같다. 하니, 왕이 “사직을 위해서이다.”라고 답하였다.
사마가 아뢰기를 “사직을 위해서 왕을 세웠는데, 왕께서는 어찌 사직을 버리고 진秦나라로 들어가십니까?” 하니, 왕이 이에 돌아왔다.
즉묵대부卽墨大夫가 그 소식을 듣고 왕을 만나 아뢰기를 “제齊나라는 영토가 사방 수천 리이고 군사가 수백만입니다.
지금
삼진三晉의
대부大夫로서
진秦나라를 마땅하게 여기지 않아
아阿와
견鄄 사이에 와서 있는 자가 백여 명이니, 왕께서 그들을 거두어 보살피고 그들에게 수만의 군사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삼진三晉의 옛 땅을 수복하게 하신다면 바로
임진관臨晉關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注+삼진三晉의 병사를 수합하여 하동河東으로부터 진秦나라를 공격하면 임진관臨晉關으로 들어간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임진관臨晉關은 바로 포진관蒲津關이다.”라고 하였는데, 풍익馮翊 임진현臨晉縣에 있으며, 이로 인해 명칭을 삼았다.
언영鄢郢의
대부大夫로서
진秦나라의 신하가 되고 싶지 않아
남성南城의 아래에 와서 있는 자가 백여 명이니,
注+. 왕께서 그들을 거두어 보살피고 그들에게 수만의 군사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초楚나라의 옛 땅을 수복하게 하신다면 바로
무관武關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注+초楚나라가 진秦나라를 공격할 때에 남양南陽으로부터 무관武關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제齊나라의 위엄을 세울 수 있을 것이고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국가를 보전할 수 있을 뿐이겠습니까.” 하였는데, 왕이 말을 듣지 않았다.
目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합종과 연횡의 설이 비록 변화가 매우 많았지만, 합종하는 것이 여섯 나라에게 이익이었다.
만약 여섯 나라가 신의로써 서로 결집하였더라면, 진秦나라가 비록 강포하였지만 어떻게 여섯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
대개
삼진三晉으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를 공격하게 한 것은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잘라버리는 짓이었고,
注+저柢는 음이 제帝이니, 또한 뿌리이다.제齊나라와
초楚나라로
삼진三晉을 공격하게 한 것은 자신의 울타리를 스스로 철거하는 짓이었다.
注+철撤은 음이 철轍이니, 제거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자신의 울타리를 철거하여 도적에게 아양을 떨면서 ‘도적이 나를 사랑해서 공격하지 않을 거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目
“옛 성인은 시세에 맞게 호칭하였으니, 제帝가 황皇보다 못한 것이 아니고 왕王이 제帝보다 못한 것이 아니었다.
후세에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황제皇帝로 자처하고 왕王으로 신하를 봉하였으니, 매우 잘못한 일이다.
왕王이라는 명칭은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본래 이러한데, 신하로 하여금 왕을 칭하게 할 수 있겠는가.
공자孔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시며 주周나라를 높여 호칭을 제정하여 왕王을 천天에다 붙여서 〈천왕天王이라〉 쓰셨으니, 그 예법이 성대한 것이었다.
천하를 소유한 자가 이것으로 법을 삼아 작위를 나눔에 공公으로부터 〈후侯‧백伯‧자子‧남男으로〉 내려가게 하면 명칭이 바르고 말이 이치에 맞게 되어 백세 이후에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혹하지 않을 것이다.”
目
[目] 승상
왕관王綰 등이 아뢰기를 “
연燕나라,
제齊나라,
형荊나라(
초楚나라)는 거리가 머니, 아들들을 왕으로 세워 진무하소서.”
注+관綰은 오판烏板의 절切이다. 관綰은 성이 왕王이다. 전塡(진정하다)은 진鎭과 통용하여 쓰인다. 하니, 시황이 이 일을 논의에 부쳤다.
정위廷尉 이사李斯가 아뢰기를
注+정위廷尉는 관직명이다. 옥사獄事를 다스릴 때에 반드시 조정에 물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스린다. 군사軍事와 옥사獄事는 제도를 함께하므로 정위廷尉라 부른다. 일설에 “정廷은 공평하다는 뜻이니, 옥사를 다스림에 공평함을 귀하게 여기므로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한다. 사斯는 이사李斯이다. “
주周나라가 봉한
자제子弟와
동성同姓들이 매우 많았으나, 후대의 친속이 소원해져서 서로 원수처럼 공격하였는데, 천자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사해 안이 폐하의 신령스러움에 힘입어 통일되어 모두 군현郡縣이 되었습니다.
아들과 공신에게 공가公家의 부세賦稅로 후하게 상을 하사하시면 매우 풍족해지고 제어하기 쉬울 것이며, 천하 사람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게 되면, 이것이 편안할 수 있는 방책입니다.
시황始皇이 말하기를 “천하가 함께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고통을 겪었던 것은 후왕侯王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묘의 보우에 힘입어 천하가 처음 평정되었는데, 다시 제후의 나라를 세우면 이것은 전란을 야기하는 것이니, 편안히 쉬기를 바라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느냐.
정위廷尉의 의론이 옳다.”
注+수樹는 세운다는 뜻이다. 하고는
천하를 나누어 36개
군郡으로 만들고
군郡마다
수守,
위尉,
감監을 두었고,
注+삼천군, 하동군, 남양군, 남군, 구강군, 장군, 회계군, 영천군, 탕군, 사수군, 설군, 동군, 낭야군, 제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대군, 거록군, 한단군, 상당군, 태원군, 운중군, 구원군, 안문군, 상군, 농서군, 북지군, 한중군, 파군, 촉군, 검중군, 장사군이니 모두 35개 군이고, 와 더불어 36개 군郡이다. 수守, 위尉, 감監은 모두 관직명이다. 군수郡守는 해당 군을 다스리는 일을 맡는다. 군위郡尉는 군수를 도와 무관武官과 병사兵士를 담당하는 일을 맡는다. 감어사監御史는 군을 감시하는 일을 맡는다. 위감尉監의 감監(관직명)은 거성去聲이고, 감군監郡의 감監(감시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녹여 종과 종을 매다는 틀,
금인金人을 만들어 궁정 가운데 두었고,
注+거鐻는 음이 거巨이니, 거虡와 통용하여 쓰인다. 종을 거는 것이니, 가로로 된 틀을 순筍이라 하고 세로로 된 틀을 거虡라고 한다. 이해에 거인巨人 12명이 임조臨洮에 나타났는데, 신장이 5장丈이고 발이 6척尺이었으며, 모두 오랑캐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시황始皇이 길조로 여겨 이에 병기를 녹여 금인金人을 주조하여 그 모양을 본떴다. 각각의 무게가 천 석이고, 앉은 높이가 2장丈이었는데, 옹중翁仲이라고 불렀다.
을 통일하였으며,
注+120근斤이 1석石이고, 10척尺이 1장丈이며, 10촌寸이 1척尺이다. 천하의 호걸 12만 호를
함양咸陽으로 이주시켰다.
注+호걸豪桀은 세력과 돈이 있고 사나우면서 교활한 사람을 말한다.
目
[目]
호씨胡氏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注+.
“성인聖人이 천하를 다스림에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찾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
봉건封建이라는 것은 제왕帝王이 천리天理를 따르고 천심天心을 받들어서 천하를 공평하게 하는 큰 단서요 큰 근본이고, 군현郡縣이라는 것은 세상을 제패한 포악한 군주가 인욕人慾을 부리고 천리天理를 어겨서 일신만을 이롭게 하는 큰 재앙이고 큰 도적이다.
천하를 나누어 덕德이 있고 공功이 있는 자에게 땅을 주어야지, 감히 천하를 개인의 소유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100리, 70리, 50리, 50리가 못 되는
방국邦國의 제도가 있으며,
注+《예기禮記》 〈왕제王制〉에 “공公과 후侯는 녹전祿田이 사방 100리이고, 백伯은 70리이고, 자子와 남男은 50리이다. 50리가 못 되는 자는 천자에 직접 소속되지 않고 제후에 소속되는데, 부용附庸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임금은 조회하고
경卿은
대빙大聘하고
대부大夫가
소빙小聘하고
왕王은
하고
제후諸侯는
하는 예악과 법도가 있으며,
注+《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주注에 “제후가 즉위하여 매년 대부大夫를 천자에게 보내 소빙小聘을 하고, 3년마다 상경上卿을 보내 대빙大聘을 하고, 4년마다 다시 대부大夫를 보내 소빙小聘하고, 5년마다 1번 조회하는데, 제사를 돕는 일을 통해 술직述職한다.”고 하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천자는 5년에 한 번 순수巡守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1,000
치雉, 100
치雉, 도성 1/3, 1/5 높이의 높은 성곽과 깊은 해자가 있으며,
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대도大都의 성城은 국도國都의 3분의 1, 중도中都는 국도國都의 5분의 1, 소도小都는 국도國都의 9분의 1을 넘지 못한다.”고 하였고, 그 주에 “사방 1장丈을 도堵라 하고, 3도를 치雉라 하는데, 1치는 길이가 3장이고 높이가 1장이다. 천자의 성은 1,000치이고, 후와 백의 성은 300치이다. 대도大都는 국성國城의 3분의 1이니 100치를 넘을 수 없고, 중도中都는 국성國城의 5분의 1이니 60치를 넘을 수 없고, 소도小都는 9분의 1이니 33치를 넘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정井,
읍邑,
구丘,
전甸,
현縣,
도都의
부수夫數(세대수)가 있으며,
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9부夫가 1정井이 되고, 4정이 1읍邑이 되고, 4읍이 1구丘가 되고, 4구가 1전甸이 되고, 4전이 1현縣이 되고, 4현이 1도都가 되는데, 농사를 맡겨 공물과 부역을 내게 하고 모든 세금과 관련된 일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에 “《주례周禮》에서 말한 부가夫家의 수라는 것은 1부夫가 100묘畝의 토지를 받으니, 한 집에서 1부夫를 낼 뿐이다. 같이 사는 경우에는 또한 단지 장정壯丁의 수를 계산하여 쓰니, 따로 사는 경우와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십승十乘,
백승百乘,
천승千乘,
만승萬乘의
거수車數가 있으며,
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의 주에 “《사마법司馬法》에 이르기를 ‘100묘畝가 1부夫가 되고 3부가 1옥屋이 되고, 3옥이 1정井이 되고, 10정이 1통通이 된다. 10통이 1성成이 되는데, 1성에는 혁거革車 1승乘이 난다. 10성이 1종終이 되는데, 혁거 10승이 난다. 10종이 1동同이 되는데, 혁거 100승이 난다.’ 하였다.”고 하였다. 제후로서 큰 나라는 하나의 봉지가 366리이니, 병거 1,000승이 난다. 천자의 기내는 사방 1,000리이니, 병거 10,000승이 난다. 그러므로
오伍,
양兩,
졸卒,
여旅,
사師,
군軍의 제도가 있으며,
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5인人이 1오伍가 되고, 5오가 1양兩이 되고, 4냥이 1졸卒이 되고, 5졸이 1여旅가 되고, 5려가 1사師가 되고, 5사가 1군軍이 된다. 이들로써 군대를 일으키고, 이들로써 사냥 때에 부역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향대부鄕大夫,
사도司徒,
악정樂正이 선비를 취하는 법이 있는 것이다.
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향대부鄕大夫는 사도司徒에게 교법을 받고 물러나와 그 향리에게 반포한다. 3년이 되면 시험을 시행하여 덕행과 학문을 살펴 어진 자와 재능이 있는 자를 추천한다.”고 하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향관鄕官에게 우수한 선비를 논하여 사도司徒에게 올리게 하니 이를 선사選士라고 부른다. 사도는 선사 가운데 우수한 자를 시험하여 국학國學에 올리게 하니 이를 준사俊士라고 부른다. 악정樂正은 선왕의 시詩, 서書, 예禮, 악樂에 따라 선비를 성취시킨다.”고 하였다.
방국邦國의 제도가 폐지되자 군현郡縣의 제도가 만들어졌고, 군현의 제도가 만들어지자 세습世襲의 제도가 없어졌으며, 세습의 제도가 없어지자 수령守令을 자주 바꾸는 폐단이 발생했고, 수령을 자주 바꾸는 폐단이 발생하자 백성들에게 안정된 마음이 없어졌다.
순수巡守와 술직述職의 예가 없어지니, 윗사람과 아래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않게 되어 문서만 살필 뿐 사실을 구명하지 않게 되었으며, 문서만 믿을 뿐 어진 사람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 폐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성곽과 해자의 제도가 없어지자 사나운 도적을 막고 사방의 오랑캐를 굴복시킬 방법이 없어졌고,
부가夫家의 법이 없어지자 백성의 수를 자세히 알 수 없어졌고, 백성의 수를 자세히 알 수 없게 되자
병거兵車를 낼 수 없게 되었고, 병거를 낼 수 없게 되자
, 군사가 농사에 숨어 있을 수 없게 되자 일하지 않고 먹는 자가 많아져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곤궁해졌다.
세상의 선비들은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근본을 몰라서 도리어 망한
진秦나라를 본받을 만한 것으로 여기고, 이른바 명철한 군주와 어진 신하도 천하를 개인의 소유로 만드는 것을 면치 못하여,
하여 만물로 하여금 각기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에는 뜻을 두지 않으니, 1,500여 년 동안에 이것을 회복한 자가 있지 않았다.
성인聖人이 사해의 명을 제어하여 하늘을 본받고 사사롭게 하지 못하게 하며, 제도를 다하고
천하의 땅을 만 개의 제후국으로 나누어
영재英才를 등용하여 함께 다스렸다.
이는 후세에 천하를 독점한 자가 큼으로써 작음을 제어하고 강함으로써 약함을 제어하는 계책이 아니라, 진실로 제도를 다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虞나라, 하夏나라, 상商나라, 주周나라가 장구하게 왕위를 전하여 모두 천여 년을 누렸으니, 성쇠盛衰를 논한다면 모두 논할 만한 점이 있으나, 끊어져 없어진 것으로 말한다면 포악한 진秦나라가 천하를 군현郡縣으로 만든 뒤에 극에 달하였던 것이다.
진秦나라가 선왕先王의 제도를 없앤 이후로 사해 안에 근본의 견고함이 깡그리 없어졌으니, 당대에는 천하에서 왕 노릇을 하다가 다음 세대에는 송곳을 꽂을 땅조차 없는 자가 있었으며, 당년에는 천자天子가 되었다가 다음 해에는 필부匹夫가 되고자 해도 될 수 없었던 자가 있었다.
천자도 오히려 그러한데,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은 어떠하겠는가.
사물은 근본이 있으면 꾸준하고 조용하며 편안하고 오래가니, 꾸준하고 조용하며 편안하고 오래가면 이치는 규명되고 사물은 본성에 순응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하가 분별되고 백성의 마음이 안정되며, 교화가 행해지고 풍속이 아름다워진다.
다스리면 쉽게 다스려지고 혼란시켜도 망하기 어려우며, 도와주면 쉽게 일어나고 없애려 해도 없애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