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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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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年(A.D.15)
을해년乙亥年(A.D.15)
二年이라
나라 왕망 천봉王莽 天鳳 2년이다.
訛言黃龍死하다
】 봄에 백성들이 황룡黃龍이 죽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訛言黃龍 墮死黃山宮中注+黃山宮, 在京兆興平縣西.이라하니 走觀者萬數 捕繫之注+莽, 自謂黃德, 故有此妖.하다
】 백성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황룡黃龍황산궁黃山宮 안에 떨어져 죽었다.”注+황산궁黃山宮경조京兆흥평현興平縣 서쪽에 있었다.라고 하니, 달려가 구경하는 자들이 1만 명이나 되었다. 왕망王莽은 이들을 체포하였다.注+왕망王莽이 스스로 황덕黃德이라 하였으므로 이런 요망한 유언비어가 있었던 것이다.
改匈奴單于曰恭奴善于라하다
왕망王莽흉노선우匈奴單于의 칭호를 바꾸어 공노선우恭奴善于라 하였다.
改單于號하니 單于貪莽金幣하여 曲聽之 然寇盜如故하니라
왕망王莽선우單于의 칭호를 고치니, 선우가 왕망의 금과 폐백을 탐하여 겉으로 따르기는 하였으나, 침략하여 도둑질하는 것은 예전과 똑같았다.
五原, 代郡兵하다
오원五原대군代郡에서 반란군이 일어났다.
意以爲制定이면 則天下自平이라 銳思於地理하고 制禮作樂하여 講合六經之說注+思, 去聲.이라
왕망王莽은 제도가 정해지면 천하가 자연히 평정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지리地理에 온 생각을 다 쏟고, 를 제정하고 음악을 만들어서 육경六經의 글에 부합하려 하였다.注+(생각)는 거성去聲이다.
公卿 旦入暮出이로되 論議連年不決하니 不暇省獄訟寃結民之急務注+省, 悉幷切.
공경公卿들이 아침에 조정에 들어가면 저녁에 나왔으나 의논이 1년이 지나도록 결정되지 못하니, 억울한 백성들의 급선무인 옥송獄訟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注+(살피다)은 실병悉幷이다.
縣宰缺者 數年守兼하여 一切貪殘日甚注+莽改縣令長曰宰. 守兼, 謂縣宰缺久, 不除補, 他官權守兼攝也. 一切, 屬下句.하고 繡衣, 執法在郡國者 竝乘權勢하여 傳相擧奏
현재縣宰가 결원이 된 경우에는 몇 년 동안 〈다른 관원이〉 수겸守兼(임시로 겸직함)을 하여 일체의 탐욕스러움과 잔학함이 날로 심해지고,注+왕망王莽현령縣令현장縣長을 고쳐 라 하였다. 수겸守兼현재縣宰가 오랫동안 결원이 되었으나 다시 제수하여 보임補任하지 않아서 다른 관원官員이 임시로 겸직하여 대리하는 것이다. “일체一切”는 아래 에 속한다. 군국郡國에 있는 이 모두 권세를 잡아서 돌려가며 자기들끼리 서로 죄를 거론하여 아뢰었다.
하여 勸農桑하고 班時令하고 按諸章하여 冠蓋相望하여 交錯道路하여 召會吏民하고 逮捕證左注+漢公府, 各有掾屬, 莽改掾曰士. 按諸章, 謂按問諸章奏也. 左, 子我切, 證左, 言當時在其左右, 見此事者也. 一說 “左, 子賀切, 證也.”하며
공사公士가 여러 곳에 분포하여 농상農桑을 권장하고 시령時令을 반포하며 여러 아뢴 글을 살피느라 사자使者들의 거개車蓋(수레 위에 치는 휘장)가 서로 이어져서 도로에 뒤섞여 관리와 백성들을 불러 모아놓고 증인들을 체포하였다.注+나라 공부公府에는 각각 (아전)의 등속이 있었는데, 왕망王莽을 바꾸어 라 하였다. “안제장按諸章”은 여러 아뢴 글을 조사하여 살핌을 이른다. 자아子我이니, “증좌證左”는 당시에 그의 좌우에 있으면서 그 일을 살펴본 자를 말한다. 일설一說에 “자하子賀이니 증거이다.” 하였다.
郡縣賦斂 遞相賕賂하여 白黑紛然하니 守闕告訴者多注+賕, 音求, 以財相貨也. 白黑紛然, 言淸濁不分也. 一說 “白黑, 色之易別者, 且紛然, 不能分, 可謂繆亂之甚.”하니라
군현郡縣에서 부역을 시키고 세금을 거둘 적에는 번갈아 서로 뇌물을 바쳐서 옳고 그름이 뒤바뀌니 대궐 문을 지키면서 고통을 하소연하는 자가 많았다.注+는 음이 이니, 재물을 가지고 뇌물을 주는 것이다. “백흑분연白黑紛然”은 청탁淸濁이 구분되지 못함을 말한다. 일설에 “백흑白黑은 색깔 중에 구분하기 쉬운 것인데도 분분하여 능히 구분하지 못하니, 혼란함이 심하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自見前顓權以得漢政이라 務自覽衆事하고 又好變改制度하여 政令煩多
왕망王莽은 예전에 권력을 독점하여 나라의 정권을 얻었던 일을 직접 경험하였으므로 직접 여러 가지 일을 총괄함에 힘썼고, 게다가 또 제도를 변경하기를 좋아해서 정사와 명령이 번잡하였다.
當奉行者輒質問하여 乃以從事하니 前後相乘하여 憒眊不渫注+質, 正也. 從事, 謂行事也. 前者省決未了而後者復來, 謂之相乘. 憒眊, 不明也. 渫, 音世, 淸也.러라
그리하여 마땅히 받들어 시행해야 할 일을 번번이 질정하고서야 비로소 시행하니,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일이 뒤섞여서 분명하고 깔끔하게 구분되지 못하였다.注+은 질정함이다. “종사從事”는 일을 행함을 이른다. 예전의 일을 살피고 결정하기도 전에 뒤의 일이 다시 도래한 것을 “상승相乘”이라 이른다. “궤모憒眊”는 밝지 못한 것이다. 는 음이 이니 깨끗함이다.
常御燈火하여 至明호되 猶不能勝하니 尙書因是爲姦寢事注+姦, 詐僞也. 寢, 停滯也, 謂上書者, 尙書不以聞, 而竊寢其事也.
왕망은 항상 등불을 켜고서 날이 밝도록 일을 하였는데도 일을 다 감당하지 못하니, 상서尙書에서 이를 빌미로 간악한 짓을 자행하여 일을 정체시켰다.注+은 속임수와 거짓이다. 은 정체시킴이니, 상서上書한 것을 상서尙書가 보고하지 아니하여 그 일을 은밀히 정체시킴을 이른다.
上書待報者 連年不得去하고 拘繫郡縣者 逢赦而後出하고 衛卒不交代者 至三歲하고
그리하여 글을 올리고 회보를 기다리는 자가 1년이 지나도록 〈도성을〉 떠나가지 못하였고, 군현郡縣에 구속되어 있는 자가 사면을 만난 뒤에야 나왔으며, 호위병이 3년이 되도록 교대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穀糴常貴하여 邊兵二十餘萬人 仰衣食縣官호되
곡식을 사들이는 값이 항상 비싸서 변방의 병사 20여만 명이 옷과 음식을 현관縣官(관부官府)에 의뢰하여 해결하였다.
五原, 代郡 尤被其毒하니 起爲盜賊하여 數千人爲輩하여 轉入旁郡이라 遣兵擊하여 歲餘乃定하다
오원五原대군代郡이 더욱 그 해독을 심하게 입으니, 이에 일어나 도적이 되어서 수천 명이 무리를 지어 전전하다가 부근의 으로 침입하였다. 왕망이 군대를 보내 이들을 공격하여 1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평정하였다.
邯鄲以北 大雨하여 水出하다
한단邯鄲(한단)의 북쪽에 큰비가 내려 물이 넘쳐흘렀다.
水深者數丈하여 流殺數千人하다
】 수심이 몇 길이나 되어 수천 명이 익사하였다.
역주
역주1 繡衣御史(암행어사)와 執法들 : 繡衣執法을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新 王莽 始建國 3년의 訓義에는 繡衣와 執法을 나누어 보았다. 다만 ≪後漢書≫ 〈伏湛傳〉에 漢 武帝 때 繡衣御史를 왕망 때 繡衣執法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역주2 公士分布 : ≪資治通鑑≫에는 “十一公士”로 되어 있다. “十一公”은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新나라 始建國 元年(A.D.9)에 四輔, 三公, 四將을 삼았는데 모두 11公이었다 하였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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