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조고趙高는 이미 평소에
호해胡亥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注+아雅는 평소이다. 또
몽씨蒙氏들을 원망하였다.
이에 호해와 더불어 모의하여, 시황始皇의 명을 사칭하여 부소扶蘇를 죽이고, 호해를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호해가 그렇게 하자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승상과 더불어 서로 모의하지 않으면, 아마도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이사李斯를 만나서 말하기를, “상께서 큰아들(부소扶蘇)에게 내린 새서璽書와 부새符璽가 모두 호해胡亥의 처소에 있으니, 태자를 정하는 것은 군후君侯(이사李斯)와 조고趙高의 입에 달려 있소.
장차 어떻게 하시겠소?”
注+군후君侯는 열후列侯를 통틀어서 부르는 존칭이다.라고 하니, 이사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라를 망칠 말을 하신단 말이오.
이는 신하된 자가 의논할 바가 아니오.”라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군후의 재능과 지려,
공功의 높음과 원망을 받지 않는 것과 황제의 큰아들에게 신임을 받는 것이
몽념蒙恬과 비교해볼 때 누가 더 낫소?”
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 다섯 가지에 있어서 모두 몽념蒙恬과 비교해볼 때 어떻습니까?”라는 내용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사가 말하기를, “모두 내가 몽념만 못하오.”라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황제의 큰아들이 즉위하면 반드시 몽념을 써서 승상으로 삼을 것이니, 군후께서는 끝내
통후通侯(
열후列侯)의 인장을 품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임이 분명하오.
注+통후通侯는, 한漢나라에서는 철후徹侯라고 하였고 또 열후列侯라 하였다. 그러니 통通은 또한 철徹의 뜻이다. 통通이란 것은 공덕이 왕실에 통함을 말한다.
호해가 인자하고 어질며 도탑고 온후하여, 황제의 위를 이을 만하니, 바라건대 당신께서는 잘 헤아려서 결정하시기 바라오.”라고 하니, 이사가 그럴 것이라고 여기고는, 이에 서로 더불어 조서詔書를 고쳐서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그러고는 다시
새서璽書를 만들어서 부소에게 내려,
注+경更(다시)은 평성平聲이다. 공은 세우지 못하고 자주 글을 올려 비방하고 원망하였다는 내용으로 죄를 나열하였으며, 몽념에 대해서는 이를 바로잡지 못하였다는 내용으로 죄목을 만들어, 두 사람 모두를 사사하였다.
注+위에 수數(죄목을 나열하여 책망하다)는 소구所矩의 절切이고, 아래 삭數(자주)은 음이 삭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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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부소扶蘇가 새서璽書를 열어보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살하고자 하자, 몽념蒙恬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신으로 하여금 3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변방을 지키게 하였으며, 공자께서 이를 감독하게 하시었습니다.
지금 한 명의 사자만 왔으니, 그것이 속임수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시금 명을 청한 뒤에 죽더라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부소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자식에게 죽음을 명하였는데, 어찌 다시 명을 청한단 말입니까.”라고 하고는, 곧바로 자살하였다.
몽념이 죽지 않으려고 하자,
양주陽周에 가두고는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양주현陽周縣은 상군上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사자가 관리를 시켜서 양주陽周에서 몽념蒙恬을 가두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다시
이사李斯의
사인舍人을 두어
으로 삼고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注+호군도위護軍都尉는 진秦나라의 관직 이름이다. 당시에 몽념蒙恬을 이미 관리를 시켜 가두게 해놓고서도 몽념의 군사들이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웠으므로, 이사李斯의 사인舍人을 호군護軍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여러 장수들을 감시하게 한 것이다.
호해胡亥가 몽념을 석방해주려고 하였는데, 그때 마침 몽의蒙毅가 외방으로 나가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왔다.
조고趙高가 말하기를, “선제께서 태자를 세우려고 한 지가 오래였으나, 몽의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이에
대代 지역에 몽의를 가두었다.
注+지리地理에 의거해보면, 대代 땅은 사구沙丘와의 거리가 아주 멀다. 대개 몽의蒙毅가 돌아오다가 대代 땅에 이르자, 곧바로 그곳에다가 가둔 것이다.
그러고는 드디어 정형井陘과 구원九原을 통하여 직도直道로 함양咸陽에 이르러서 발상發喪한 다음, 호해가 황제의 위를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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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이세二世가 드디어 몽념蒙恬 형제를 죽이고자 하자, 부소扶蘇의 아들 자영子嬰이 간하기를, “몽씨蒙氏들은 진秦나라의 대신이며 모사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들을 버리고서 절조와 행실이 없는 사람을 대신 세운다면, 이것은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투사鬪士들의 뜻이 이반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몽념이 말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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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몽념蒙恬의 할아버지 오驁와 아버지 무武 및 몽념蒙恬 3대가 모두 진秦나라를 섬겨 공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군사를 30여만 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니 그 형세가 반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감히 선인들께서 선제先帝를 잊지 말라고 한 가르침을 욕되게 하지는 못하겠다.”라고 하고는, 드디어 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