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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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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年(B.C. 210)
신묘년(B.C. 210)
三十七年이라
[綱] 나라 시황제始皇帝 37년이다.
冬十月 帝東巡至雲夢하야 祀虞舜하고 上會稽하야 祭大禹하고 立石頌德하고
겨울 10월에 황제가 동쪽으로 순행하여 운몽雲夢에 이르러 우순虞舜에게 제사하고, 에 올라가 대우大禹에게 제사한 다음 비석을 세워 덕을 칭송하였다.
秋七月 至沙丘崩注+壽, 五十.하니
가을 7월에 사구沙丘에 이르러 시황始皇하였다.注+나이가 50세였다.
丞相李斯宦者趙高矯遺詔하야 立少子胡亥爲太子하고 殺扶蘇蒙恬하고
승상 이사李斯와 환관 조고趙高유조遺詔를 사칭하여 작은아들인 호해胡亥를 세워 태자로 삼고 부소扶蘇몽념蒙恬을 죽였다.
還至咸陽하야 胡亥襲位하고
그러고는 함양咸陽으로 돌아와 호해胡亥가 황제의 위를 이어받았다.
九月 葬驪山注+遺, 留也. 遺詔, 如所謂顧命也.하다
9월에 시황始皇여산驪山에 장사 지냈다.注+는 남겨두는 것이다. 유조遺詔는 이른바 고명顧命과 같은 것이다.
十月 始皇 東巡할새 少子胡亥 丞相李斯從注+從, 去聲.이러라
[目] 10월에 시황始皇이 동쪽으로 순행할 적에 작은아들인 호해胡亥와 승상 이사李斯가 따라갔다.注+(따르다)은 거성去聲이다.
至雲夢하야 望祀虞舜于九疑山注+雲夢, 楚澤名, 廣八九百里, 跨江南北. 別而言之, 則二澤也. 望, 望而祭也. 因爲祭名. 疑, 或作嶷, 亦音疑. 其山九峯相似, 故以疑名焉. 九峯, 一朱明, 二石城, 三石樓, 四娥皇, 五舜源, 六女英, 七簫韶, 八桂林, 九梓林. 舜陵在女英峯下. 括地志 “九疑山在永州唐興縣東南百里.”하고 浮江下하야 渡海渚하고 過丹陽注+括地志 “海渚在舒州同安縣東.” 班志 “丹陽縣, 秦屬鄣郡.”하야 至錢塘이라
운몽雲夢에 이르러서 에서 우순虞舜에게 하고,注+운몽雲夢 지방의 늪지 이름이다. 동서의 길이가 8, 9백 리나 되어 양자강揚子江의 남쪽과 북쪽에 걸쳐 있다. 이를 구별해서 말하면 운택雲澤몽택夢澤이다. 은 바라보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
으로, 그로 인해서 제사의 이름을 망제望祭라고 한 것이다. 는 어떤 데에는 로 되어 있는데, 음은 역시 이다. 그 산의 모습은 아홉 개 봉우리의 모양이 서로 비슷하므로, 로써 이름을 붙여 구의산九疑山이라 한 것이다. 9봉은 첫 번째는 주명朱明이고, 두 번째는 석성石城이고, 세 번째는 석루石樓이고, 네 번째는 아황娥皇이고, 다섯 번째는 순원舜源이고, 여섯 번째는 여영女英이고, 일곱 번째는 소소簫韶이고, 여덟 번째는 계림桂林이고, 아홉 번째는 재림梓林이다. 임금의 능은 여영봉女英峯 아래에 있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구의산은 영주永州당흥현唐興縣에서 동남쪽으로 100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하였다.
양자강揚子江에서 배를 타고 내려와 를 건넌 다음, 단양丹陽을 지나서注+괄지지括地志》에 “해저海渚서주舒州동안현同安縣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단양현丹陽縣나라 때에는 장군鄣郡에 속한다.”고 하였다.전당錢塘에 이르렀다.
渡浙江注+班志 “錢塘縣屬會稽郡.”하야 上會稽하야 祭大禹하고 望于南海하고 立石頌德注+班志 “會稽山在會稽郡山陰縣南, 有禹冢禹井.”하고
절강浙江을 건너서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전당현錢塘縣회계군會稽郡에 속한다.”고 하였다.회계산會稽山에 올라가 대우大禹에게 제사하고, 남해를 바라보고는 비석을 세워 덕을 칭송하였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회계산會稽山회계군會稽郡 산음현山陰縣 남쪽에 있는데, 우총禹冢우정禹井이 있다.”고 하였다.
北至琅邪之罘하고 西至平原津而病注+平原縣, 秦屬齊郡, 漢分置平原郡. 班志 “篤馬河, 至平原東北入海.” 此蓋津渡處.호대
북쪽으로 가서 낭야산琅邪山지부산之罘山에 이르렀으며, 다시 서쪽으로 가서 평원진平原津에 이르렀을 때 병이 났다.注+평원현平原縣나라 때에는 제군齊郡에 속하였고, 나라 때에는 나누어서 평원군平原郡을 두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독마하篤馬河평원平原 동북쪽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이곳은 대개 나루터가 있는 곳이다.
始皇 惡言死하니 群臣 莫敢言死事러니
[目] 시황始皇이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니, 여러 신하들이 죽은 뒤의 일에 대해서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病益甚이라 乃令中車府令行符璽事趙高 爲書賜扶蘇曰 與喪會咸陽而葬하라
병세가 더욱 심해지자 조고趙高로 하여금 새서璽書를 만들어 부소扶蘇에게 내리게 하였는데, 그 새서에 이르기를, “상사喪事에 참여하고 함양咸陽에 모여서 장사 지내라.”라고 하였다.
未付使者注+中車府令, 秦官, 主乘輿路車, 兼行符璽令事.러니
그러나 조고는 이를 사자에게 부치지 않았다.注+중거부영中車府令나라의 관직으로, 승여乘輿노거路車를 주관하는데, 부새령사符璽令事를 겸임하였다.
七月 始皇 崩於沙丘어늘
[目] 7월에 시황始皇사구沙丘에서 하였다.
秘不發喪하고 棺載轀涼車中하야 所至 上食奏事 如故하니
그러나 한 것을 비밀에 부쳐 발상發喪하지 않고는, 온량거轀涼車에 싣고 오면서 이르는 곳마다 식사를 올리고 일을 아뢰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獨胡亥趙高與幸宦者五六人 知之注+轀, 音溫. 涼, 一作輬, 音同. 轀涼, 臥車也. 有窓牖, 閉之則溫, 開之則涼, 故名焉. 後因載喪, 飾以柳翣, 遂爲喪車.러라
오직 호해胡亥조고趙高 및 가까이에서 모시던 환관 5, 6명만 시황이 죽은 것을 알았다.注+은 음이 이다. 일본一本에는 으로 되어 있는데, 음은 같다. 온량轀涼은 누워서 타는 수레이다. 창문이 있어서 이를 닫으면 따스해지고 이를 열면 시원해지므로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후대에는 상구喪柩를 싣고 으로 장식하여 드디어 상거喪車가 되었다.
진秦 시황始皇 황릉皇陵 부근에서 출토된 구리 수레진秦 시황始皇 황릉皇陵 부근에서 출토된 구리 수레
始皇 尊寵蒙氏하야 任外將하고 常居中參謀議하야 名爲忠信이러라
[目] 당초에 시황始皇들을 존중하고 총애하여, 몽념蒙恬은 바깥으로 나가 장수를 맡고, 몽의蒙毅는 항상 중앙에 있으면서 정사를 논하는 데 참여하였는데, 모두 충성스럽고 믿음직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趙高者生而隠宮注+高父犯宮刑, 妻子沒爲奴婢. 妻後野合所生子, 皆承趙姓, 竝宮之, 故云生而隱宮也.이러니 始皇 聞其彊力通獄法注+彊, 其良切, 有力也.하고 以爲中車府令하야
조고趙高라는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은궁隱宮의 형(궁형宮刑)을 받았는데,注+조고趙高의 아버지가 궁형宮刑을 범하여 처자식이 적몰되어 노비가 되었는데, 처가 뒤에 야합野合하여 낳은 자식들도 모두 조씨趙氏 을 이어받고서 궁형宮刑을 받았다. 그러므로 태어나면서 은궁隱宮을 당하였다고 한 것이다. 시황은 그가 힘이 세고 옥사에 관한 법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을 듣고注+기량其良이니, 힘이 있는 것이다.중거부영中車府令으로 삼았다.
使敎胡亥決獄이러니
그러고는 그로 하여금 호해胡亥에게 옥사를 결단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嘗有罪어늘 使毅治之한대 當死어늘 始皇 赦之注+當, 都郞切, 謂處其罪也.하다
조고가 일찍이 죄를 지어서 몽의로 하여금 치죄하게 하였는데, 사형에 해당되자, 시황이 이를 사면하였다.注+도랑都郞이니, 그 죄에 처하는 것을 이른다.
高旣雅得幸於胡亥注+雅, 素也. 又怨蒙氏하야
[目] 조고趙高는 이미 평소에 호해胡亥에게 총애를 받았으며,注+는 평소이다.몽씨蒙氏들을 원망하였다.
乃與胡亥謀하야 詐以始皇命으로 誅扶蘇而立胡亥爲太子한대
이에 호해와 더불어 모의하여, 시황始皇의 명을 사칭하여 부소扶蘇를 죽이고, 호해를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胡亥然之어늘 高曰 不與丞相謀 恐事不成이라하고
호해가 그렇게 하자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승상과 더불어 서로 모의하지 않으면, 아마도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乃見李斯曰 上賜長子書及符璽 皆在胡亥所하니 定太子 在君侯與高之口耳
그러고는 이사李斯를 만나서 말하기를, “상께서 큰아들(부소扶蘇)에게 내린 새서璽書부새符璽가 모두 호해胡亥의 처소에 있으니, 태자를 정하는 것은 군후君侯(이사李斯)와 조고趙高의 입에 달려 있소.
事將何如注+君侯, 通呼列侯之尊稱. 斯曰 安得亡國之言
장차 어떻게 하시겠소?”注+군후君侯열후列侯를 통틀어서 부르는 존칭이다.라고 하니, 이사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라를 망칠 말을 하신단 말이오.
此非人臣所當議也니라 高曰 君侯材能智慮 功高無怨長子信之 孰與蒙恬注+通鑑 “此五者, 皆孰與蒙恬.”
이는 신하된 자가 의논할 바가 아니오.”라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군후의 재능과 지려, 의 높음과 원망을 받지 않는 것과 황제의 큰아들에게 신임을 받는 것이 몽념蒙恬과 비교해볼 때 누가 더 낫소?”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 다섯 가지에 있어서 모두 몽념蒙恬과 비교해볼 때 어떻습니까?”라는 내용이 있다.라고 하였다.
斯曰 皆不及也니라 高曰 長子 卽位 必用恬爲丞相하리니 君侯終不懷通侯之印하야 歸鄕里明矣注+通侯, 漢曰徹侯, 亦曰列侯. 通, 亦徹也. 通者, 言功德通於王室也.
이사가 말하기를, “모두 내가 몽념만 못하오.”라고 하자, 조고가 말하기를, “황제의 큰아들이 즉위하면 반드시 몽념을 써서 승상으로 삼을 것이니, 군후께서는 끝내 통후通侯(열후列侯)의 인장을 품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임이 분명하오.注+통후通侯는, 나라에서는 철후徹侯라고 하였고 또 열후列侯라 하였다. 그러니 은 또한 의 뜻이다. 이란 것은 공덕이 왕실에 통함을 말한다.
胡亥慈仁篤厚하야 可以爲嗣 願君 審計而定之하라 斯以爲然하야 乃相與矯詔 立胡亥爲太子하고
호해가 인자하고 어질며 도탑고 온후하여, 황제의 위를 이을 만하니, 바라건대 당신께서는 잘 헤아려서 결정하시기 바라오.”라고 하니, 이사가 그럴 것이라고 여기고는, 이에 서로 더불어 조서詔書를 고쳐서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更爲書賜扶蘇注+更, 平聲.하야數以不能立功하고數上書誹謗怨望호대 而恬 不矯正이라하야 皆賜死注+上數, 所矩切. 下數, 音朔.한대
그러고는 다시 새서璽書를 만들어서 부소에게 내려,注+(다시)은 평성平聲이다. 공은 세우지 못하고 자주 글을 올려 비방하고 원망하였다는 내용으로 죄를 나열하였으며, 몽념에 대해서는 이를 바로잡지 못하였다는 내용으로 죄목을 만들어, 두 사람 모두를 사사하였다.注+위에 (죄목을 나열하여 책망하다)는 소구所矩이고, 아래 (자주)은 음이 이다.
扶蘇發書泣하고 欲自殺이어늘 恬曰 陛下 使臣으로 將三十萬衆守邊하고 公子爲監하니
[目] 부소扶蘇새서璽書를 열어보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살하고자 하자, 몽념蒙恬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신으로 하여금 3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변방을 지키게 하였으며, 공자께서 이를 감독하게 하시었습니다.
此天下重任也
이것은 천하의 중대한 임무입니다.
今一使者하니 安知其非詐리오
지금 한 명의 사자만 왔으니, 그것이 속임수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復請而死未暮也 扶蘇曰 父賜子死하니 尙安復請이리오 卽自殺하다
다시금 명을 청한 뒤에 죽더라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부소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자식에게 죽음을 명하였는데, 어찌 다시 명을 청한단 말입니까.”라고 하고는, 곧바로 자살하였다.
不肯死어늘 繫諸陽周注+班志 “陽周縣屬上郡.” 通鑑 “使者以屬吏繫諸陽周.”하고 更置李斯舍人爲護軍하고 還報注+護軍都尉, 秦官. 時恬已屬吏, 恐其軍有變, 故以李斯舍人爲護軍, 使之護諸將也.한대
몽념이 죽지 않으려고 하자, 양주陽周에 가두고는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양주현陽周縣상군上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사자가 관리를 시켜서 양주陽周에서 몽념蒙恬을 가두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다시 이사李斯사인舍人을 두어 으로 삼고 돌아와서 보고하였다.注+호군도위護軍都尉나라의 관직 이름이다. 당시에 몽념蒙恬을 이미 관리를 시켜 가두게 해놓고서도 몽념의 군사들이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웠으므로, 이사李斯사인舍人호군護軍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여러 장수들을 감시하게 한 것이다.
胡亥欲釋恬이러니 會毅出禱山川還이어늘
호해胡亥가 몽념을 석방해주려고 하였는데, 그때 마침 몽의蒙毅가 외방으로 나가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왔다.
高曰 先帝欲立太子久矣而毅以爲不可라한대 乃繫諸代注+據地理, 代距沙丘甚遠, 蓋毅還至代, 卽就繫之.하고
조고趙高가 말하기를, “선제께서 태자를 세우려고 한 지가 오래였으나, 몽의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이에 지역에 몽의를 가두었다.注+지리地理에 의거해보면, 땅은 사구沙丘와의 거리가 아주 멀다. 대개 몽의蒙毅가 돌아오다가 땅에 이르자, 곧바로 그곳에다가 가둔 것이다.
遂從井陘九原하야 直道至咸陽하야 發喪하고 胡亥襲位하니
그러고는 드디어 정형井陘구원九原을 통하여 직도直道함양咸陽에 이르러서 발상發喪한 다음, 호해가 황제의 위를 이어받았다.
是爲二世皇帝
이 사람이 바로 이세황제二世皇帝이다.
九月 葬始皇帝於驪山호대 下錮三泉注+錮, 音固, 冶銅鑄塞以爲固也. 三泉, 三重之泉也. 本紀, 作穿三泉下錮.하고 奇器珍怪 徙藏滿之注+藏, 自浪切. 謂徙府藏之物, 以充滿冢中也.하고
[目] 9월에 시황제始皇帝여산驪山에 장사 지냈는데, 무덤 아래에는 삼천三泉으로 견고하게 막고注+는 음이 이며, 구리를 녹여 부어넣어서 단단하게 한 것이다. 삼천三泉은 세 겹의 샘이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는 “삼천三泉을 뚫어서 아래를 단단하게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진기한 기물과 기이한 보배를 옮겨서 무덤 안을 채웠다.注+(창고)은 자랑自浪이다.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물품을 옮겨서 무덤 안에 가득 채운 것을 이른다.
令匠으로 作機弩하야 有穿近者 輒射之注+機, 弩括也. 主發, 謂之機.케하고
그러고는 공장으로 하여금 기노機弩를 만들어 설치하게 하여, 무덤을 뚫고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문득 발사되게 하였다.注+는 쇠뇌의 발사 장치이다. 발사를 맡고 있는 것을 라고 한다.
上具天文하고 下具地理하며
또 무덤 위에는 천문天文을 갖추어놓고, 아래에는 지리地理를 갖추어놓았다.
後宮無子者 皆令從死하고 工匠爲機者 皆閉之墓中注+從, 去聲. 秦法, 君葬以人從死.하다
또 후궁 가운데 아들을 낳지 못한 자들은 모두 따라서 죽게 하였으며, 공장 가운데 기노機弩를 만든 자들을 모두 묘 안에 가두어놓았다.注+(따르다)은 거성去聲이다. 나라의 에 임금을 장사 지낼 때에는 사람을 따라 죽게 하였다.
이산능驪山陵 부근에서 발굴된 병마용兵馬俑이산능驪山陵 부근에서 발굴된 병마용兵馬俑
二世欲遂殺蒙恬兄弟어늘 兄子子嬰 諫曰 蒙氏 秦之大臣謀士也
[目] 이세二世가 드디어 몽념蒙恬 형제를 죽이고자 하자, 부소扶蘇의 아들 자영子嬰이 간하기를, “몽씨蒙氏들은 나라의 대신이며 모사입니다.
一旦棄之而立無節行之人이면 使群臣으로 不相信而鬪士之意離也리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들을 버리고서 절조와 행실이 없는 사람을 대신 세운다면, 이것은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투사鬪士들의 뜻이 이반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弗聽하다
그러나 이세二世가 듣지 않았다.
恬曰 吾積功信於秦 三世矣注+恬祖驁父武及恬三世, 皆事秦有功.
몽념이 말하기를, “.注+몽념蒙恬의 할아버지 와 아버지 몽념蒙恬 3대가 모두 나라를 섬겨 공이 있었다.
今將兵三十餘萬하니 其勢足以倍畔이나
그리고 지금 군사를 30여만 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니 그 형세가 반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然自知必死而守義者 不敢辱先人之敎하야 以不忘先帝也라하고 乃吞藥自殺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감히 선인들께서 선제先帝를 잊지 말라고 한 가르침을 욕되게 하지는 못하겠다.”라고 하고는, 드디어 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司馬公曰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秦始皇 方毒天下而蒙恬 爲之使하니 其不仁 可知矣注+使, 如字.
시황始皇이 바야흐로 천하에 해독을 끼치고 있을 적에 몽념蒙恬이 그를 위하여 일을 하였으니, 몽념이 어질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注+使(부리다)는 본음대로 읽는다.
然明於爲人臣之義하야 雖無辠見誅 能守死不貳하니
그러나 신하가 된 자의 의리를 잘 알아서, 아무런 죄도 없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나, 능히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켜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
斯亦足稱也로다
이 점은 역시 칭찬할 만하다.”
역주
역주1 會稽山 : 浙江省 紹興縣 남동쪽에 있는 名山으로, 吳나라 왕 夫差가 越나라 왕 勾踐을 포위했던 곳이다.
역주2 九疑山 : 舜임금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산 이름은 아홉 개의 봉우리가 거의 같아서 이것인지 저것이지 의심스럽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역주3 望祀 : 望祭와 같은 말로, 멀리 산천을 우러르며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역주4 海渚 : 지금의 安徽省 桐城縣에 있는데, 이 지역은 揚子江의 중간 지점에 있으므로, ‘海’자는 ‘江’자의 오자인 듯하다.
역주5 中車府令 行 符璽事 : 中車府令은 궁문의 수위관에 해당하는 직책이고, 符璽事는 부절과 옥새를 관리하는 직책이다. 行은 임시관직을 뜻하는 말이다.
역주6 柳翣 : 出喪할 때 靈柩의 棺을 꾸미는 장식이다.
역주7 蒙氏 : 아래 보이는 蒙恬과 蒙毅는 형제로 그 조부는 蒙驁(몽오)이고 아비는 蒙武이다. 몽오는 齊나라 사람으로 秦나라에 와서 將軍이 되어 크게 활약하였으며, 몽무는 王剪과 함께 楚나라를 공격하여 項燕을 죽였다. 이렇듯 몽념의 집안은 秦 始皇 때 대표적 武家였다. 《史記 蒙恬列傳》
역주8 護軍 : 秦漢 시기의 護軍은 임시로 설치된 관직으로 護軍都尉 또는 護軍中尉라 하였다. 漢나라 高祖 때 陳平이 護軍中尉에 임명되기도 하였는데, 장수들을 감찰하는 직책이다.
역주9 우리……쌓았다 : 131쪽 蒙氏 역주 61) 참조.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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