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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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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年(B.C. 247)
갑인년(B.C. 247)
秦三 楚十六 燕八 魏三十 趙十九 韓二十六 齊十八年이라
나라 장양왕莊襄王 3년, 나라 고열왕考烈王 16년, 나라 왕 8년, 나라 안희왕安釐王 30년, 나라 효성왕孝成王 19년, 나라 환혜왕桓惠王 26년, 나라 왕 18년이다.
悉拔上黨諸城하고 置太原郡하다
[綱] 나라가 상당上黨의 모든 성을 함락시키고 태원군太原郡을 설치하였다.
◑ 秦 伐魏어늘 魏公子無忌率五國之師하야 敗之하고 追至函谷而還하다
[綱]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자 나라 공자 무기無忌가 다섯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물리치고 함곡관函谷關까지 추격하였다가 돌아왔다.
蒙驁伐魏하야 取高都汲注+驁, 牛刀‧五到二切. 武之父, 恬之祖也. 班志 “高都縣屬上黨郡, 汲縣屬河內郡.”이어늘
[目] 몽오蒙驁나라를 정벌하여 고도高都을 탈취하였다.注+우도牛刀오도五到이다. 몽오蒙驁몽무蒙武의 아버지이고, 몽념蒙恬의 할아버지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고도현高都縣상당군上黨郡에 속하고, 급현汲縣하내군河內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魏王 患之하야 使人請信陵君한대 信陵君 不肯還이러니
나라 왕이 근심하여 사람을 보내 신릉군信陵君(위무기魏無忌)에게 돌아오도록 청하였는데, 신릉군이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다.
其客毛公薛公 見曰注+毛公‧薛公, 趙之處士. 公子所以重於諸侯者 徒以魏也
그의 문객 이 신릉군을 만나 말하기를注+모공毛公설공薛公나라의 처사處士이다. “공자께서 제후에게 존중을 받는 것은 단지 나라 덕분입니다.
魏急而公子不恤하니 一旦 秦克大梁하야 夷先王之宗廟하면 公子當何面目으로 立天下乎리오
지금 나라가 위급한데 공자께서 걱정하지 않으시니, 하루아침에 나라가 대량大梁을 공격하여 선왕의 종묘를 무너뜨린다면 공자께서 무슨 면목으로 천하에 서겠습니까.” 하였다.
語未卒 信陵君 色變하야趣駕還魏注+趣, 讀曰促.어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릉군이 안색이 바뀌며 수레를 재촉하여 나라로 돌아갔다.注+(재촉하다)은 이라고 읽는다.
魏王 持信陵君而泣하고 以爲上將軍하야 求援於諸侯한대 諸侯聞之하고 皆遣兵救魏어늘
나라 왕이 신릉군을 붙들고 울고서 그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아 제후에게 구원을 청하게 하니, 제후들이 그 소식을 듣고 모두 군대를 파견하여 나라를 구원하였다.
信陵君遂率五國之師하야 敗蒙驁於河外하고 追至函谷關而還注+自春秋至戰國, 率以黃河之西爲河外.하다
신릉군이 마침내 다섯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몽오를 하외河外에서 무찌르고 함곡관까지 추격하였다가 돌아왔다.注+춘추에서 전국 때까지 대체로 황하黃河의 서쪽을 하외河外로 삼았다.
◯ 安陵人縮高之子仕於秦하야 守管注+後漢志 “汝南郡征羌縣有安陵亭.” 註云 “卽魏安陵君所封地.” 縮高, 姓名. 後漢志 “中牟縣有管城.”이러니
[目] 안릉安陵 사람 축고縮高의 아들이 나라에 벼슬하여 을 지켰다.注+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에 “여남군汝南郡 정강현征羌縣안릉정安陵亭이 있다.”라고 하였고, 그 주에 이르기를 “나라 안릉군安陵君이 봉해진 땅이다.”라고 하였다. 축고縮高는 성명이다. 《후한서》 〈군국지〉에 “중모현中牟縣관성管城이 있다.”고 하였다.
信陵君 攻之不下어늘 使人하야 將以爲五大夫執節尉하야 而使攻管注+五大夫, 爵名. 執節尉, 尉之持節者.한대
신릉군信陵君이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하자, 사람을 보내 축고를 불러와 오대부五大夫 집절위執節尉로 삼아 그로 하여금 을 공격케 하고자 하였다.注+오대부五大夫는 작위의 이름이다. 집절위執節尉군위軍尉로서 부절을 잡은 자이다.
高對曰 父攻子守하면 人之笑也 見臣而下하면 是倍主也
축고가 대답하기를 “아비가 자식이 지키는 곳을 공격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고, 아들놈이 신을 보고 항복하면 자신의 군주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父敎子倍 亦非君之所喜 敢辭하노라
아비가 자식에게 배반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군께서 좋아하는 일이 아닐 것이니, 감히 사양합니다.” 하였다.
信陵君하야 使謂安陵君호대 生束縮高而致之하라
신릉군이 노하여 사람을 보내 에게 이르기를 “축고를 산 채로 묶어 보내라.
不然이면 無忌將率十萬之師하야 以造城下호리라 安陵君 曰 吾先君成侯受詔襄王하야 以守此城也注+安陵, 本魏地, 魏襄王, 以封其弟. 手受太府之憲注+太府, 魏國藏圖籍之府. 憲, 法也.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장차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성 아래로 가리라.” 하니, 안릉군이 말하기를 “나의 선군 성후成侯께서 에게 조령詔令을 받아 이 성을 지킬 적에注+안릉安陵은 본래 나라 땅인데, 나라 양왕襄王이 자신의 동생을 봉하였다. 손수 태부太府의 법령을 받았다.注+태부太府나라에서 도서와 전적을 보관하던 부고이다. 은 법이다.
其上篇 曰 子弑父臣弑君이면 有常不赦 國雖大赦라도 降城亡子 不得與焉注+有常, 謂有常法也. 降城, 臣以城降敵. 亡子, 子倍父而逃亡. 與, 讀曰預.이라하니
상편上篇에 이르기를 ‘자식이 부친을 시해하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면 상법常法에 근거하여 용서하지 아니하고, 국가에서 비록 대사면을 내리더라도 성을 가지고 항복한 신하와 아비를 배반하고 도망한 자식은 대사면에 끼일 수 없다.’注+유상有常”은 상법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강성降城”은 신하가 성을 가지고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다. “망자亡子”는 자식이 아비를 배반하고 도망하는 것이다. (참여하다)는 로 읽는다. 하였다.
今縮高辭大位以全父子之義어늘 而君曰 必生致之라하니 使我負襄王之詔而廢太府之憲也注+負, 音佩.로다
지금 축고가 큰 벼슬을 사양하고 부자父子의 의리를 온전하게 하였는데, 그대가 반드시 산 채로 보내라고 하니, 이것은 나로 하여금 양왕襄王조령詔令을 저버리고 태부太府법령法令을 폐하게 하는 것이다.”注+. 하였다.
縮高聞之하고 曰 信陵君爲人 悍猛而自用하니 此辭反이면 必爲國禍注+此辭反, 謂使者以辭還報也. 爲國禍, 謂爲安陵之禍也.하리니
축고가 그 말을 듣고 말하기를 “신릉군의 사람됨이 사납고 독단적이니, 이 말을 가지고 돌아가 보고하면 반드시 나라에 재앙이 되리라.注+차사반此辭反”은 사자가 이 말을 가지고 돌아가 보고함을 말한 것이다. “위국화爲國禍”는 안릉安陵의 재앙이 됨을 말한 것이다.
吾已全己 無違人臣之義矣
내 이미 개인의 의리를 온전히 하였으니, 신하로서의 의리를 어기지 않으리라.
豈可使吾君으로 有魏患乎리오하고
어찌 나의 군주로 하여금 나라로 인한 근심을 갖게 할 수 있으랴.”
乃之使者舍하야 刎頸而死어늘
하고는 사신이 머무는 객사로 가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었다.
信陵君 聞之하고 縞素辟舍하고 而遣使謝安陵君注+縞, 古老切, 之精白者. 素衣縞冠, 凶服也. 辟, 讀曰避.하다
, 사신을 보내 안릉군에게 사죄하였다.注+고로古老이니, 명주 가운데 순백색인 것이다. 흰옷에 흰 관은 흉복이다. (피하다)는 로 읽는다.
五月 秦王커늘 子政하다
[綱] 5월에 나라 왕이 하자 아들 이 즉위하였다.
生十三年矣러라
[目] 이 태어난 지 13년이었다.
國事 皆委於文信侯하고 號仲父注+仲, 中也, 次父也. 蓋效齊桓公以管仲爲仲父.라하다
국사를 모두 문신후文信侯(여불위呂不韋)에게 위임하고 중뷰仲父라고 불렀다.注+은 가운데이니, 작은아버지이다. 아마도 나라 환공桓公관중管仲중부仲父로 삼았던 것을 본받은 듯하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孝文莊襄二王之死 蓋皆不韋之所爲也로다
효문왕孝文王장양왕莊襄王 두 왕의 죽음은 아마도 모두 여불위呂不韋가 한 짓일 것이다.”
역주
역주1 毛公과 薛公 : 趙나라의 隱士로 信陵君의 문객이 된 사람들이다. 《史記》 〈魏公子列傳〉에 “趙나라의 處士 가운데 毛公은 도박하는 무리에 숨어 살았고, 薛公은 술을 파는 집에 숨어 살았다.”라고 하였다.
역주2 安陵君 : 安陵은 魏나라 영역 안에 있던 小國이다. 縮高는 바로 안릉군의 백성이다. 《資治通鑑》에 보다 자세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3 襄王 : 魏나라 襄王 魏嗣를 가리킨다.
역주4 신릉군이……거처하였으며 : 관사를 떠나 거처함으로써 축고의 죽음을 슬퍼하여 감히 편안히 거처하지 못한다는 뜻을 표시한 것이다.
역주5 (名)[召] : 저본에는 ‘名’으로 되어 있으나, 《朱子全書》의 《資治通鑑綱目》과 문맥에 근거하여 ‘召’로 바로잡았다.
역주6 負는……佩이다 : 《資治通鑑》과 《史記》의 주석에는 “負는 音이 佩이다.”라고 하였으나, 현재는 ‘부’로 읽는다. 訓義의 音과 反切音의 경우 그 당시의 중국어 음을 표시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통용되는 한자음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역주7 (繕)[繒] : 저본에는 ‘繕’으로 되어 있으나, 思政殿訓義 《資治通鑑》에 ‘繒’으로 되어 있으며, 《小爾雅》에 “繒之精者曰縞”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繒’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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