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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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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酉年(73)
계유년癸酉年(73)
十六年이라 春二月 遣太僕祭肜及竇固等하여 伐北匈奴러니
나라 현종 효명황제顯宗 孝明皇帝 영평永平 16년이다. 봄 2월에 태복 제융太僕 祭肜두고竇固 등을 보내 북흉노北匈奴를 정벌하게 하였다.
두고는 이오로伊吾盧 지역을 점령하였고, 채융은 오랑캐를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하옥되었다가 면직되고 하였다.
遣肜하여 與度遼將軍吳棠으로 將河東, 西河羌胡及南單于兵萬一千騎하여 出髙闕塞注+高闕, 在朔方北.하고
제융祭肜을 보내 도료장군 오당度遼將軍 吳棠과 함께 하동河東서하西河강족羌族호족胡族, 남선우南單于의 기병 1만 1천을 징발해서 고궐새髙闕塞로 출동시키고注+고궐高闕삭방朔方의 북쪽에 있다.,
竇固, 耿忠 率酒泉, 敦煌, 張掖甲卒及盧水羌胡萬二千騎하여 出酒泉塞注+冉駹夷北, 有黃石ㆍ北地ㆍ盧水胡.하고
두고竇固경충耿忠주천酒泉, 돈황敦煌, 장액張掖갑졸甲卒노수盧水강족羌族호족胡族의 기병 1만 2천을 거느리고서 주천새酒泉塞로 출동시키고注+염방이冉駹夷(염방이) 북쪽에 황석黃石, 북지北地, 노수호盧水胡가 있다.,
耿秉, 秦彭 率武威, 隴西, 天水募士及羌, 胡萬騎하여 出張掖居延塞하고 騎都尉來苗 護烏桓校尉文穆
경병耿秉진팽秦彭무위武威, 농서隴西, 천수天水에서 모집한 병사와 강족羌族호족胡族의 기병 1만을 거느리고서 장액張掖거연새居延塞로 출동시키고, 기도위 내묘騎都尉 來苗호오환교위 문목護烏桓校尉 文穆
將太原, 雁門, 代郡, 上谷, 漁陽, 右北平, 定襄郡兵及烏桓, 鮮卑萬一千騎하여 出平城塞하여 伐北匈奴하다
태원太原, 안문雁門, 대군代郡,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정양군定襄郡의 군대와 오환烏桓, 선비鮮卑의 기병 1만 1천을 거느리고서 평성새平城塞로 출동시켜 북흉노北匈奴를 정벌하게 하였다.
竇固, 耿忠 至天山하여 擊呼衍王하여 斬首千餘級하고 追至蒲類海하여
두고竇固경충耿忠천산天山에 이르러 호연왕呼衍王을 공격해서 천여 명의 수급을 베고 포류해蒲類海에까지 추격하여
取伊吾盧地하여 置宜禾都尉하고 留吏士하여 屯田伊吾盧城注+天山, 卽白山. 蒲類海, 在敦煌北, 其地有蒲類澤. 宜禾, 本城名, 在隴西, 後置縣, 屬涼州.하다
이오로伊吾盧 지역을 점령해서 의화도위宜禾都尉를 설치하고 관리와 군사들을 이오로伊吾盧에 잔류시켜 둔전하게 하였다.注+천산天山은 바로 백산白山이다. 포류해蒲類海돈황敦煌 북쪽에 있으니, 이 지역에 포류택蒲類澤이 있다. 의화宜禾는 본래 의 이름으로 농서隴西에 있으니, 뒤에 을 설치하여 양주涼州에 소속시켰다.
耿秉, 秦彭 擊(匈)[句]林王하여 絶幕六百餘里하여 至三木樓山而還注+匈林, 恐當作句林. 建武時, 匈奴嘗遣句林王, 迎盧芳. 句, 古侯切. 三木樓山, 匈奴中山名.하고
경병耿秉진팽秦彭구림왕句林王을 공격하여 사막 600여 리를 넘어 삼목루산三木樓山에까지 갔다가 돌아왔고注+흉림匈林은 마땅히 구림句林이 되어야 할 것이다. 광무제 건무光武帝 建武 때에 흉노匈奴가 일찍이 구림왕句林王을 보내 노방盧芳을 맞이하였다. 고후古侯이다. 삼목루산三木樓山은 흉노에 있는 이름이다.,
來苗, 文穆 至匈河水上하니 虜皆奔走하여 無所獲注+據前書, 匈河水, 去令居數千里. 臣瓚曰 “去令居千里.”하고
내묘來苗문목文穆흉하수匈河水 가에 이르렀는데, 오랑캐들이 모두 달아나서 사로잡은 바가 없었다.注+한서漢書≫를 근거해보면 흉하수匈河水영거令居에서 수천 리 떨어져 있다. 신찬臣瓚이 말하기를 “영거令居와의 거리가 천 리이다.” 하였다.
祭肜 與南匈奴左賢王信으로 不相得하여 出髙闕塞九百餘里하여 得小山하니
제융祭肜남흉노南匈奴좌현왕 신左賢王 信과 서로 뜻이 맞지 못하여 고궐새髙闕塞에서 900여 리를 나가 작은 산을 보았는데,
妄以爲涿邪山이라한대 不見虜而還注+邪, 讀曰耶. 涿邪, 匈奴中山名, 在漠北.하다
좌현왕 신左賢王 信이 거짓말로 이곳을 탁야산涿邪山(탁야산)이라 하자, 오랑캐를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注+로 읽으니, 탁야涿邪흉노匈奴에 있는 산 이름으로 사막 북쪽에 있다.
肜與吳棠 坐逗留畏懦하여 下獄하여이러니 自恨無功하여 出獄數日 歐血死하다
제융祭肜오당吳棠은 머뭇거리고 두려워한 죄에 걸려 하옥되었다가 면직되었는데, 채융은 자신이 전공戰功을 세우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출옥한 지 며칠 만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帝雅重肜하여 方更任用이러니 聞之하고 大驚하여 嗟嘆良久하다
황제는 평소 채융을 소중하게 여겨서 다시 그를 임용하려 하였는데,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서 한동안 한탄하였다.
烏桓, 鮮卑 每朝賀京師할새 常過肜冢 拜謁하고 仰天號泣하며
오환烏桓선비鮮卑는 매번 경사京師로 조회 와서 하례할 적에 항상 채융의 무덤을 지나게 되면 배알하고 하늘을 우러러 슬피 울부짖었으며,
遼東吏民 爲立祠하여 四時奉祭焉注+肜先爲遼東太守, 威信行於烏桓ㆍ鮮卑.이러라 竇固獨有功하여 加位特進하다
요동遼東의 관리와 백성들은 채융을 위하여 사당을 세워서 사시四時로 제사를 받들었다.注+제융祭肜이 앞서 요동태수遼東太守가 되었을 적에, 위엄과 신의가 오환烏桓선비鮮卑에게 행해졌다. 두고竇固만 홀로 공이 있어서 의 지위를 더하였다.
西域諸國 遣子入侍하다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들이 아들을 보내 입시入侍하였다.
竇固使假司馬班超與從事郭恂으로 俱使西域注+超, 彪之子也.하다 超行到鄯善하니 鄯善王廣 奉超 禮敬甚備러니
두고竇固 반초班超종사 곽순從事 郭恂으로 하여금 함께 서역西域으로 사신 가게 하였다.注+반초班超반표班彪의 아들이다. 반초가 선선鄯善에 도착하니, 선선왕 광鄯善王 廣이 반초를 받들 적에 예의와 공경이 매우 극진하였는데, 뒤에 갑자기 다시 소홀하고 태만하였다.
忽更疎懈 超謂其官屬曰 寧覺廣禮意薄乎 官屬曰 胡人 不能常久하니 無他故也니이다
반초가 자신의 관속들에게 이르기를 “이 예우하는 마음이 박해짐을 어찌 깨닫지 못하는가?” 하니, 관속들이 말하기를 “호인胡人은 항상하고 오래하지 못하니, 다른 연고가 없습니다.” 하였다.
超曰 此必虜使來하여 狐疑하여 未知所從故也 明者 覩未萌하나니 況已著邪아하고
반초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흉노匈奴사자使者가 와서 이 의심을 품고 머뭇거리면서 따를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명한 자는 싹이 트기 전에 아니, 하물며 이미 드러남에 있어서이겠는가.” 하고는
乃召侍胡하여 詐之曰 匈奴使來數日이니 今安在乎注+侍胡, 鄯善所遣侍超者. 侍胡惶恐曰 到已三日이니 去此三十里니이다
마침내 시종하는 호인胡人을 불러서 짐짓 속여 말하기를 “흉노의 사자使者가 온 지가 며칠이 되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는가?”注+시호侍胡선선鄯善에서 반초班超를 모시라고 보낸 자이다. 하니, 시종하는 호인胡人이 황공해하며 말하기를 “도착한 지 이미 3일이니, 여기에서 30리쯤 떨어져 있습니다.” 하였다.
班超(≪古聖賢像傳略≫)班超(≪古聖賢像傳略≫)
超乃閉侍胡하고 悉會其吏士三十六人하여 與共飲하고 酒酣 因激怒之曰 卿曹與我俱在絶域이어늘
반초班超는 마침내 시종하는 호인胡人을 가두고, 관리와 군사 36명을 모두 모아서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는, 술이 취하자 그들을 격노시켜 말하기를 “들과 내가 함께 먼 지역에 와 있는데,
今虜使到裁數日 而王廣禮敬卽廢하니 如令鄯善 收吾屬하여 送匈奴하면 骸骨 長爲豺狼食矣리니 爲之奈何
지금 흉노匈奴사자使者가 이른 지 겨우 며칠 만에 선선왕 광鄯善王 廣이 예의와 공경을 즉시 폐하였다. 만일 선선鄯善에서 우리들을 체포하여 흉노로 보내면 우리들의 해골骸骨이 영원히 시랑豺狼의 밥이 될 것이니, 어찌한단 말인가?” 하였다.
官屬 皆曰 今在危亡之地하니 死生 從司馬호리이다 超曰 不入虎穴이면 不得虎子 當今之計 獨有因夜以火攻虜하여
관속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금 위태롭고 멸망할 처지에 빠져 있으니, 죽든 살든 사마司馬(반초)를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반초가 말하기를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잡지 못한다. 당금當今의 계책은 오직 밤을 틈타 불로 적진을 공격하는 것뿐이다.
使彼不知我多少하면 必大震怖하리니 可殄盡也 滅此虜 則鄯善破膽하여 功成事立矣리라 衆曰 當與從事議之니이다
이렇게 해서 저 흉노들이 우리 병력의 많고 적음을 모르게 되면 반드시 크게 놀라고 두려워할 것이니, 저들을 다 섬멸할 수 있다. 이 흉노의 사신을 섬멸하면 선선이 간담이 떨어져서 우리의 이 이루어지고 일이 성립될 것이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땅히 종사從事(곽순郭恂)와 의논해야 합니다.” 하니,
超怒曰 吉凶 决於今日하니 從事 文俗吏 聞此 必恐而謀泄하리니 死無所名이면 非壯士也니라 衆曰 善注+文俗吏, 謂郭恂也, 拘泥文法, 未脫流俗, 故曰文俗吏.타하다
반초가 노하여 말하기를 “길흉이 오늘 판가름 난다. 종사從事는 법조문에 얽매이는 속리俗吏로,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두려워하여 계책을 누설할 것이니,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면 장사壯士가 아니다.” 하니, 여럿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였다.注+문속리文俗吏”는 곽순郭恂을 이르니, 법조문에 얽매여 유속流俗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문속리文俗吏”라 한 것이다.
初夜 超遂將吏士하고 往犇虜營注+初夜, 甲夜也.하니 天大風이어늘 超令十人持鼓하여 藏虜舎後하고 約曰 見火然이어든 皆當鳴鼓大呼하라
】 초저녁에 반초班超가 마침내 관리와 병사를 거느리고 흉노匈奴의 진영으로 쳐들어가니注+초야初夜”는 초저녁이다., 마침 큰바람이 불었다. 반초는 10명으로 하여금 북을 갖고 오랑캐 막사 뒤에 숨게 하고 약속하기를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모두 북을 울리고 크게 고함치라.” 하였다.
餘人 悉持兵弩하여 夾門而伏하다 超乃順風縱火하고 前後鼓譟하니 虜衆 驚亂이어늘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병기와 쇠뇌를 잡고 문의 좌우에 매복시켰다. 반초가 마침내 바람을 따라 불을 놓고 앞뒤에서 북을 치고 고함을 치니, 오랑캐 무리가 놀라 소요하였다.
超手格殺三人하고 吏兵斬其使及從士三十餘級하고 餘衆百許人 悉燒死하다
반초가 손으로 직접 세 사람을 쳐 죽이고 반초의 관리와 병사들이 흉노 사신과 따라온 군사 30여 명의 수급을 베었다. 나머지 무리 백여 명은 모두 불에 타 죽었다.
明日 乃還하여 告郭恂한대 大驚이라가 旣而色動注+意欲分超功, 而不能自揜於外, 故色動.이어늘
】 다음 날 반초班超가 마침내 돌아와서 곽순郭恂에게 보고하니, 곽순이 크게 놀랐다가 이윽고 얼굴빛이 변하였다.注+곽순郭恂이〉 반초班超을 나누고자 하여 저절로 외모에 드러남을 가리지 못하였으므로 얼굴빛이 변한 것이다.
超知其意하고 擧手曰 掾雖不行이나 班超何心獨擅之乎아하니 乃悦注+掾, 從事掾也.하다
반초는 그의 의중을 알고 손을 들어 말하기를 “종사從事(곽순)의 이 비록 공격하러 가지 않았으나 내가 무슨 마음으로 홀로 을 차지하겠습니까.” 하니 곽순이 그제야 기뻐하였다.注+종사從事이다.
超於是 召鄯善王廣하여 以虜使首示之하니 一國 震怖
반초는 이에 선선왕 광鄯善王 廣을 불러 흉노 사자使者의 수급을 보여주니, 온 나라가 진동하고 두려워하였다.
超告以漢威德하고 自今以後 勿復與北虜通하라한대 叩頭願屬漢하여 無二志하고 遂納子爲하다
반초는 나라의 위엄과 덕을 말하고, 지금 이후로 다시는 북쪽 오랑캐와 통하지 말라고 하니, 이 머리를 땅에 두드리면서 나라에 소속하여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을 원하고, 마침내 아들을 인질로 들여보냈다.
還白竇固한대 固大喜하여 具上超功效하고 并求更選使使西域하다
반초班超가 돌아와 두고竇固에게 아뢰자, 두고가 크게 기뻐하여 반초의 공효功效를 자세히 보고해 올리고, 아울러 사자使者를 다시 선발하여 서역西域에 사신 보낼 것을 청하였다.
帝曰 吏如班超어늘 何故不遣하고 而更選乎 今以超爲軍司馬하여 令遂前功하라
황제가 말하기를 “반초와 같은 유능한 관리가 있는데, 무슨 이유로 그를 보내지 않고 다시 딴 사람을 뽑겠는가. 이제 반초를 군사마軍司馬로 삼아서 예전의 공을 이루게 하라.” 하였다.
固復使超使于窴할새 欲益其兵한대 超願但將本所從三十六人하고
두고가 다시 반초를 우전于窴에 사신으로 보낼 적에 병력을 더해주고자 하였으나, 반초는 본래 따르던 36명만 데리고 가겠다고 하며,
曰 于窴 國大而遠하니 今將數百人이면 無益於彊이요 如有不虞 多益爲累耳라하다
말하기를 “우전于窴은 나라가 크고 거리가 머니, 지금 수백 명을 거느리고 가더라도 우리를 강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지 못할 뿐더러, 만약 예상치 못한 근심이 있으면 더욱 누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是時 于窴王廣德 雄張南道하니 而匈奴遣使하여 監護其國注+張, 竹亮切. 張者, 自大之意. 自門陽關出西域, 有兩道, 從鄯善至莎車爲南道, 自車師至疏勒爲北道.이라 超旣至于窴 廣德禮意甚疎하고 且其俗信巫
】 이때 우전왕 광덕于窴王 廣德남도南道에서 세력을 키워 기세를 떨치니, 흉노匈奴사자使者를 보내 그의 나라를 감호監護하였다.注+죽량竹亮이니, 은 스스로 큰 체하는 뜻이다. 옥문관玉門關양관陽關에서 서역西域으로 나갈 적에 두 갈래의 길이 있으니, 반초班超우전于窴에 이르렀는데, 광덕의 예우하는 뜻이 매우 소홀하였고 또 그 나라의 풍속이 무당을 믿었다.
巫言호되 神怒하니 何故欲向漢 漢使有騧馬하니 急求取以祠我注+騧, 音瓜, 黃馬黑喙曰騧.하라하다
무당이 말하기를 “이 노여워하니, 무슨 연고로 나라에 귀향하려 하는가? 나라 사신에게 왜마騧馬(주둥이가 검은 누런색의 말)가 있으니, 급히 가져다가 나에게 제사하라.”注+는 음이 이니, 누런 말에 입이 검은 것을 라 한다. 하였다.
廣德 乃遣國相私來比하여 就超請馬한대 超密知其狀하고 報許之호되 而令巫自來取馬하다
광덕이 마침내 국상 사래비國相 私來比를 반초에게 보내 왜마騧馬를 달라고 요청하자, 반초는 은밀히 그 내용을 정탐해 알고는 주겠다고 답하였는데, 무당이 직접 와서 말을 가져가라고 하였다.
有頃 巫至어늘 超卽斬其首하고 收私來比하여 鞭笞數百하고 以巫首送廣德하고 因責讓之하다
조금 있다가 무당이 오자, 반초는 즉시 그의 머리를 베고 사래비를 체포하여 수백 대의 채찍질을 가하였으며, 무당의 머리를 광덕에게 보내고는 인하여 꾸짖었다.
廣德 素聞超在鄯善 誅滅虜使하고 大惶恐하여 卽殺匈奴使者而降이어늘 超重賜其王以下하고 因鎭撫焉하다
광덕은 평소 반초가 선선鄯善에 있을 적에 흉노의 사자를 주멸誅滅했단 말을 들었기 때문에 크게 황공해하여 즉시 흉노의 사자를 죽이고 항복하니, 반초가 이하에게 하사품을 크게 내리고 인하여 진무하였다.
於是 諸國 皆遣子入侍하니 西域 與漢絶六十五載러니 至是 乃復通焉注+王莽天鳳三年, 焉耆擊殺王駿, 西域遂絶, 至此五十八載耳. 此言與漢絶六十五載, 蓋自始建國元年數之, 謂莽簒漢, 而西域遂與漢絶也.하다
이에 여러 나라들이 모두 아들을 보내 입시入侍하게 하니, 서역西域나라와 왕래가 끊긴 지 65년이었는데, 이때 비로소 다시 통하게 되었다.注+왕망 천봉王莽 天鳳 3년(16)에 언기焉耆왕준王駿을 공격해 죽여서 서역西域과 마침내 끊겼으니, 이때까지 58년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나라와 끊긴 지 65년이라고 말한 것은 왕망王莽시건국始建國 원년(9)부터 따진 것이니, 왕망이 나라를 찬탈했을 적에 서역西域이 마침내 나라와 왕래를 단절하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夏五月 司徒穆 有罪하여 下獄死하다
】 여름 5월에 사도 형목司徒 邢穆이 죄를 짓고서 하옥되어 죽었다.
淮陽王延 性驕奢하고 而遇下嚴烈이라 有上書하여 告延與姫兄謝弇及姊壻韓光으로 招姦猾하여 作圖讖하여 祠祭祝詛注+光, 尙延姊館陶公主.라한대
회양왕 유연淮陽王 劉延은 성품이 교만하고 사치하며 아랫사람들을 대하기를 엄하고 혹독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상서上書하여 유연이 (애첩)의 오라비 사엄謝弇(사감)과 누이의 남편 한광韓光과 함께 간사하고 교활한 자들을 불러들여 도참설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황제를 저주한다고 고하자注+한광韓光유연劉延의 누이인 관도공주館陶公主에게 장가들었다.,
事下案驗하니 弇, 光及司徒邢穆 皆坐死하고 所連及徙死者甚衆이러라
이 사건을 회부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사감과 한광과 사도 형목司徒 邢穆은 모두 죄에 걸려 죽었으며, 이 사건에 연좌되어 귀양 가고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是月晦 日食하다
】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以王敏爲司徒하다
왕민王敏사도司徒로 삼았다.
◑秋七月 徙淮陽王延하여 爲阜陵王하다
】 가을 7월에 회양왕 유연淮陽王 劉延을 옮겨 부릉왕阜陵王으로 삼았다.
有司奏請誅淮陽王延한대 上以延罪薄於楚王英이라하여 徙延爲阜陵王하여 食二縣注+阜陵, 縣名, 屬九江郡.하다
유사有司회양왕 유연淮陽王 劉延을 주살할 것을 청하자, 은 유연의 죄가 초왕 유영楚王 劉英보다 적다 하여 유연을 옮겨 부릉왕阜陵王으로 삼고서 두 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注+부릉阜陵의 이름이니 구강군九江郡에 속하였다.
북흉노北匈奴운중雲中으로 크게 침입하였다.
北匈奴大入雲中이어늘 雲中太守廉范 拒之注+范, 丹之孫也.러니 吏以衆少라하여 欲移書傍郡求救한대 不許하다
북흉노北匈奴운중雲中으로 크게 침입하자 운중태수 염범雲中太守 廉范이 이들을 막았는데注+염범廉范염단廉丹의 손자이다., 관리가 병력이 적다 하여 옆 고을에 글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고자 하였으나 염범은 허락하지 않았다.
日暮어늘 令軍士 各交縛兩炬하여 三頭爇火하여 營中星列注+三頭爇火, 用兩炬交縛如十字, 爇其三頭, 手持一端, 使敵人望之, 疑兵士之多.하니 虜謂漢兵救至라하여 大驚하여 待旦將退
마침 날이 저물자 염범은 군사들로 하여금 각각 두 개의 횃불을 자 모양으로 묶어서 세 갈래의 끝에 불을 붙여 진영 안에 벌여놓게 하니注+삼두설화三頭爇火”는 두 횃불을 자 모양으로 서로 묶어서 세 갈래의 끝에 불을 붙이고 손으로 한 끝을 잡은 것이니, 적들로 하여금 이를 보아서 병사가 많다고 의심하게 한 것이다., 오랑캐들은 나라의 구원병이 왔다고 생각하여 크게 놀라서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장차 후퇴하려 하였다.
令軍中蓐食하고 晨往赴之하여 斬首數百級하니 虜自相轔藉하여 死者千餘人이라 由此 不敢向雲中注+轔, 音吝, 轢也, 或從足. 藉, 慈夜切, 踐也.이러라
염범은 군중에게 새벽밥을 먹이고 새벽에 달려가 적 수백 명의 수급을 베니, 오랑캐 중에 서로 밟히고 깔려서 죽은 자가 천여 명이었다. 이로부터 오랑캐들은 감히 운중雲中을 향하지 못하였다.注+은 음이 으로 짓밟힘이니, 혹 변을 따르기도 한다. 자야慈夜이니, 밟음이다.
역주
역주1 固……免卒 : “伊吾盧는 어떤 곳인가. 오랑캐의 요충지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쓴 것이다. 하옥되었는데 ‘卒’이라고 쓴 것은 옥에서 이미 나왔기 때문이다.[伊吾盧 何 虜要地也 故特筆書之 下獄書卒 旣出也]” ≪書法≫ “祭肜이 功이 없는 것은 左賢王 信에게 속아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융이 主將이 되어서 정탐을 철저히 하지 못하여 작은 산을 涿邪山이라 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무슨 말로 그 책임을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 ‘오랑캐를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라고 분명히 써서 그의 잘못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하옥되었다가 이미 면직되었는데 ‘死’라고 쓰지 않고 ‘卒’이라고 쓴 것은, 그의 죄가 하옥되어 면직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특별히 卒이라고 한 것이다. 억누르고 드날리고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하는 사이에 구차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肜之無功 爲左賢王信所誤爾 然肜爲主將 偵候不明 至以小山爲涿邪山 則何詞以逭其責 故綱目明書不見虜而還 以見其所坐 正在此也 若夫下獄旣免 不書死而書卒 則亦以其罪不至此 特卒之爾 抑揚輕重之間 其不苟也如此]” ≪發明≫
역주2 特進 : 관직의 명칭으로 前漢 말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列侯 중에 특수한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였으며, 그 지위는 三公의 아래였다. 後漢부터 南北朝 시대까지는 加官(本職 이외에 겸임하는 다른 官職)이고, 隋ㆍ唐 이후로는 散官(이름만 있고 일정한 직무가 없는 관직)이 되었다.
역주3 假司馬 : 大將軍의 營은 五部가 있고 部에는 軍司馬와 軍假司馬가 있는데, 군가사마는 군사마의 副이다.
역주4 (賀)[質] : 저본에는 ‘賀’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質’로 바로잡았다.
역주5 (王)[玉]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鄯善을……北道이다 : 실크로드의 길을 말한 것으로 南道는 보통 西域南路라 하는데 崑崙山脈의 북쪽 기슭의 길이며, 北道는 天山路라 하는데 天山山脈의 기슭 길을 말한다. 후대 천산로는 북쪽 기슭의 天山北路와 남쪽 기슭의 天山南路로 나뉜다. 여기서 北路는 바로 후대의 천산남로이다.
역주7 北匈奴大入雲中 : “中夏를 어지럽히면 ‘冦’라고 쓰는데, 여기에서 ‘入’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비판한 것이다. 어찌하여 비판하였는가. 병란의 단서가 우리 漢나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廉范이 오랑캐를 격파한 것을 쓰지 않은 것이다.[猾夏書冦 此其書入 何 譏也 曷爲譏之 兵端自我始也 故廉范破虜不書]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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