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遣肜
하여 與度遼將軍吳棠
으로 將河東, 西河羌胡及南單于兵萬一千騎
하여 出髙闕塞
注+高闕, 在朔方北.하고
竇固, 耿忠
은 率酒泉, 敦煌, 張掖甲卒及盧水羌胡萬二千騎
하여 出酒泉塞
注+冉駹夷北, 有黃石ㆍ北地ㆍ盧水胡.하고
耿秉, 秦彭은 率武威, 隴西, 天水募士及羌, 胡萬騎하여 出張掖居延塞하고 騎都尉來苗와 護烏桓校尉文穆은
將太原, 雁門, 代郡, 上谷, 漁陽, 右北平, 定襄郡兵及烏桓, 鮮卑萬一千騎하여 出平城塞하여 伐北匈奴하다
目
超乃閉侍胡하고 悉會其吏士三十六人하여 與共飲하고 酒酣에 因激怒之曰 卿曹與我俱在絶域이어늘
今虜使到裁數日에 而王廣禮敬卽廢하니 如令鄯善이 收吾屬하여 送匈奴하면 骸骨이 長爲豺狼食矣리니 爲之奈何오
官屬이 皆曰 今在危亡之地하니 死生을 從司馬호리이다 超曰 不入虎穴이면 不得虎子라 當今之計는 獨有因夜以火攻虜하여
使彼不知我多少하면 必大震怖하리니 可殄盡也라 滅此虜면 則鄯善破膽하여 功成事立矣리라 衆曰 當與從事議之니이다
超怒曰 吉凶
이 决於今日
하니 從事
는 文俗吏
라 聞此
면 必恐而謀泄
하리니 死無所名
이면 非壯士也
니라 衆曰 善
注+文俗吏, 謂郭恂也, 拘泥文法, 未脫流俗, 故曰文俗吏.타하다
目
【
목目】
제융祭肜을 보내
도료장군 오당度遼將軍 吳棠과 함께
하동河東과
서하西河의
강족羌族과
호족胡族,
남선우南單于의 기병 1만 1천을 징발해서
고궐새髙闕塞로 출동시키고
注+고궐高闕은 삭방朔方의 북쪽에 있다.,
두고竇固와
경충耿忠은
주천酒泉,
돈황敦煌,
장액張掖의
갑졸甲卒 및
노수盧水의
강족羌族과
호족胡族의 기병 1만 2천을 거느리고서
주천새酒泉塞로 출동시키고
注+염방이冉駹夷(염방이) 북쪽에 황석黃石, 북지北地, 노수호盧水胡가 있다.,
경병耿秉과 진팽秦彭은 무위武威, 농서隴西, 천수天水에서 모집한 병사와 강족羌族과 호족胡族의 기병 1만을 거느리고서 장액張掖의 거연새居延塞로 출동시키고, 기도위 내묘騎都尉 來苗와 호오환교위 문목護烏桓校尉 文穆은
태원太原, 안문雁門, 대군代郡,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정양군定襄郡의 군대와 오환烏桓, 선비鮮卑의 기병 1만 1천을 거느리고서 평성새平城塞로 출동시켜 북흉노北匈奴를 정벌하게 하였다.
目
【목目】 제융祭肜과 오당吳棠은 머뭇거리고 두려워한 죄에 걸려 하옥되었다가 면직되었는데, 채융은 자신이 전공戰功을 세우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출옥한 지 며칠 만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황제는 평소 채융을 소중하게 여겨서 다시 그를 임용하려 하였는데,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서 한동안 한탄하였다.
오환烏桓과 선비鮮卑는 매번 경사京師로 조회 와서 하례할 적에 항상 채융의 무덤을 지나게 되면 배알하고 하늘을 우러러 슬피 울부짖었으며,
요동遼東의 관리와 백성들은 채융을 위하여 사당을 세워서
사시四時로 제사를 받들었다.
注+제융祭肜이 앞서 요동태수遼東太守가 되었을 적에, 위엄과 신의가 오환烏桓과 선비鮮卑에게 행해졌다. 두고竇固만 홀로 공이 있어서
의 지위를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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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반초班超는 마침내 시종하는 호인胡人을 가두고, 관리와 군사 36명을 모두 모아서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는, 술이 취하자 그들을 격노시켜 말하기를 “경卿들과 내가 함께 먼 지역에 와 있는데,
지금 흉노匈奴의 사자使者가 이른 지 겨우 며칠 만에 선선왕 광鄯善王 廣이 예의와 공경을 즉시 폐하였다. 만일 선선鄯善에서 우리들을 체포하여 흉노로 보내면 우리들의 해골骸骨이 영원히 시랑豺狼의 밥이 될 것이니, 어찌한단 말인가?” 하였다.
관속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금 위태롭고 멸망할 처지에 빠져 있으니, 죽든 살든 사마司馬(반초)를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반초가 말하기를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잡지 못한다. 당금當今의 계책은 오직 밤을 틈타 불로 적진을 공격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해서 저 흉노들이 우리 병력의 많고 적음을 모르게 되면 반드시 크게 놀라고 두려워할 것이니, 저들을 다 섬멸할 수 있다. 이 흉노의 사신을 섬멸하면 선선이 간담이 떨어져서 우리의 공功이 이루어지고 일이 성립될 것이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땅히 종사從事(곽순郭恂)와 의논해야 합니다.” 하니,
반초가 노하여 말하기를 “길흉이 오늘 판가름 난다.
종사從事는 법조문에 얽매이는
속리俗吏로,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두려워하여 계책을 누설할 것이니,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면
장사壯士가 아니다.” 하니, 여럿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注+“문속리文俗吏”는 곽순郭恂을 이르니, 법조문에 얽매여 유속流俗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문속리文俗吏”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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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반초班超가 돌아와 두고竇固에게 아뢰자, 두고가 크게 기뻐하여 반초의 공효功效를 자세히 보고해 올리고, 아울러 사자使者를 다시 선발하여 서역西域에 사신 보낼 것을 청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반초와 같은 유능한 관리가 있는데, 무슨 이유로 그를 보내지 않고 다시 딴 사람을 뽑겠는가. 이제 반초를 군사마軍司馬로 삼아서 예전의 공을 이루게 하라.” 하였다.
두고가 다시 반초를 우전于窴에 사신으로 보낼 적에 병력을 더해주고자 하였으나, 반초는 본래 따르던 36명만 데리고 가겠다고 하며,
말하기를 “우전于窴은 나라가 크고 거리가 머니, 지금 수백 명을 거느리고 가더라도 우리를 강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지 못할 뿐더러, 만약 예상치 못한 근심이 있으면 더욱 누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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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目】 이때
우전왕 광덕于窴王 廣德이
남도南道에서 세력을 키워 기세를 떨치니,
흉노匈奴가
사자使者를 보내 그의 나라를
감호監護하였다.
注+장張은 죽량竹亮의 절切이니, 장張은 스스로 큰 체하는 뜻이다.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에서 서역西域으로 나갈 적에 두 갈래의 길이 있으니, 반초班超가
우전于窴에 이르렀는데, 광덕의 예우하는 뜻이 매우 소홀하였고 또 그 나라의 풍속이 무당을 믿었다.
무당이 말하기를 “
신神이 노여워하니, 무슨 연고로
한漢나라에 귀향하려 하는가?
한漢나라 사신에게
왜마騧馬(주둥이가 검은 누런색의 말)가 있으니, 급히 가져다가 나에게 제사하라.”
注+왜騧는 음이 과瓜이니, 누런 말에 입이 검은 것을 왜騧라 한다. 하였다.
광덕이 마침내 국상 사래비國相 私來比를 반초에게 보내 왜마騧馬를 달라고 요청하자, 반초는 은밀히 그 내용을 정탐해 알고는 주겠다고 답하였는데, 무당이 직접 와서 말을 가져가라고 하였다.
조금 있다가 무당이 오자, 반초는 즉시 그의 머리를 베고 사래비를 체포하여 수백 대의 채찍질을 가하였으며, 무당의 머리를 광덕에게 보내고는 인하여 꾸짖었다.
광덕은 평소 반초가 선선鄯善에 있을 적에 흉노의 사자를 주멸誅滅했단 말을 들었기 때문에 크게 황공해하여 즉시 흉노의 사자를 죽이고 항복하니, 반초가 왕王 이하에게 하사품을 크게 내리고 인하여 진무하였다.
이에 여러 나라들이 모두 아들을 보내
입시入侍하게 하니,
서역西域이
한漢나라와 왕래가 끊긴 지 65년이었는데, 이때 비로소 다시 통하게 되었다.
注+왕망 천봉王莽 天鳳 3년(16)에 언기焉耆가 왕준王駿을 공격해 죽여서 서역西域과 마침내 끊겼으니, 이때까지 58년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漢나라와 끊긴 지 65년이라고 말한 것은 왕망王莽의 시건국始建國 원년(9)부터 따진 것이니, 왕망이 한漢나라를 찬탈했을 적에 서역西域이 마침내 한漢나라와 왕래를 단절하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