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古之智者 以小事大하야 有以皮幣犬馬珠玉而不得免者면 至乃棄國而逃之어든 況一璧乎아
雖與之라도 可也어늘 相如計不出此하고 而欲以身死之하니 可謂失義而傷勇矣라
雖勿往이라도 可也어늘 相如가 爲國卿相하야 挾萬乘之君하야 以蹈危事호대
其智勇이 又不足重趙하야 使秦不敢惴焉하고 乃欲以頸血濺之하니 豈孔子所謂暴虎馮河死而無悔者歟아
使居平世라도 可謂大臣이라하니 則吾不知其說也로이다
目
樂毅圍二邑期年不剋
하야 乃令解圍
하야 去城九里而爲壘
注+壘者, 屯軍之壁.하고
令曰 城中民
이 出者
를 勿獲
하며 困者
를 賑之
하야 使卽舊業
注+毅欲懷綏二邑, 使之自服.이라호대 三年而猶未下
라
或이 䜛之於昭王曰 樂毅智謀가 過人하야 呼吸之間에 剋七十餘城하고 今不下者兩城耳니 非其力不能拔이라
所以三年不攻者는 欲久伏兵威하야 以服齊人하야 遂南面而王耳니라
先王이 不貪土地하야 而擧國以禮賢者러니 遭所傳이 德薄하야 不能堪命이라 國人이 不順이어늘
齊爲無道
하야 以害先王
注+所傳, 謂子之. 堪, 勝也, 任也. 不能堪命者, 言子之不能勝王噲所命, 而任燕國之事也.하니 寡人
이 統位
하야 痛之入骨
이라
故延群臣招賓客하야 以求報讐호니 有成功者면 尙欲與共燕國이라
今樂君
이 親爲寡人破齊
하야 夷其宗廟
하야 報塞先仇
注+爲, 去聲. 夷, 平也.하니 齊固樂君之有
라 非燕所得也
어늘
汝何敢言若此오하고 乃斬之하고 遣國相하야 立毅爲齊王한대
毅惶恐不受
하고 拜書
하야 以死自誓
注+拜書, 拜而上書也.하니
由是로 齊人이 服其義하고 諸侯畏其信하야 莫敢復有謀者러니
目
[目]
조趙나라 왕이 귀국하여
인상여藺相如를
상경上卿으로 삼으니 지위가
염파廉頗의 위였다.
注+① 진한秦漢 이전에는 오른쪽을 위로 삼았다.
염파가 말하기를 “나는 장수가 되어 성을 공격하고 야전에서 싸운 공로가 있다.
인상여는 본래 신분이 천하였는데 한낱 말재주로 지위가 나의 위에 올랐으니, 내가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겠다.” 하였다.
인상여가 이 말을 듣고는 그와 함께 만나려고 하지 않아 조회 때마다 항상 병을 핑계하였고, 외출하였을 때 멀리서 보면 바로 수레를 끌고 피하였다.
그의 사인舍人들이 모두 이러한 행동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인상여가 말하기를 “그대들이 보기에 염장군廉將軍의 위세가 진秦나라 왕과 비교하여 어떠한가?” 하니, “진秦나라 왕만 못합니다.” 하였다.
인상여가 말하기를 “저
진秦나라 왕의 위세 앞에서도 내가 그를 궁정에서 꾸짖었는데, 내가 비록 미련하나 유독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注+② 노駑는 음이 노奴이니, 평범한 말을 일컫는다.
다만 내가 생각건대, 진秦나라가 조趙나라에 감히 침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마리 호랑이가 함께 싸우면 그 형세가 둘 다 살지는 못할 것이니,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급함을 우선으로 삼고 사적인 원한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하였다.
염파가 이 말을 듣고 웃통을 벗은 채 가시나무를 지고 인상여의 집 문에 와서 사죄하였다.
마침내
를 맺었다.
注+③ 육단肉袒은 옷을 벗어 맨살을 노출하는 것이다. 형荊은 가시나무이니, 채찍을 만들 수 있다. 문刎은 무분無粉의 절切이니, 자른다는 뜻이다. 문경교刎頸交는 의기가 투합한 것이 깊고 중하여 비록 목을 자르더라도 후회함이 없다는 말이다.
目
[目] 처음에
연燕나라 사람들이
안평安平을 공격하자
注+① 《괄지지括地志》에 “안평성安平城은 청주靑州 임치현臨菑縣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임치臨菑의
시연市掾인
전단田單이 자신의
종인宗人으로 하여금 쇠로 만든 덮개를 수레의 굴대 끝에 부착하도록 하였다.
注+② 시연市掾은 시장을 관장하는 관속이다. 단單은 음이 단丹이다. 전단田單은 제齊나라 왕실의 먼 일가이다. 부傅는 음이 부附이다. 세轊는 음이 위衛이니, 수레 굴대의 머리이다. 부傅라는 것은 굴대를 잘라 바퀴통과 가지런하게 하고 쇠 덮개를 굴대의 끝에 부착한 다음, 쇠 덮개 가운데에 빗장을 걸어 바퀴통을 고정하는 것으로, 견고하고 쉽게 전진할 수 있다.
성이 함락될 때에 사람들이 다투어 성을 나가다가 모두 굴대가 부러져 사로잡혔는데, 전단의 종인宗人만이 모면하여 마침내 즉묵卽墨으로 달아났다.
당시에 제齊나라의 땅이 모두 이미 연燕나라에 점령되었고 거莒와 즉묵卽墨만이 함락되지 않았다.
악의樂毅가 군대를 모아 포위하였는데 즉묵의 대부大夫가 전사하였다.
즉묵의 사람들이 “안평安平의 전투에서 전단의 종인宗人이 쇠로 만든 덮개를 써서 온전할 수 있었으니 이는 지혜가 많고 군사에 익숙한 것이다.”라고 하고는 전단을 세워 장수로 삼았다.
目
[目]악의樂毅가 두 읍을 포위한 지 1년이 되었으나 이기지 못하자 결국 포위를 풀게 하고서 성에서 9리 떨어진 곳에 보루를 쌓고
명령하기를
注+① 누壘는 군대를 주둔시키는 벽이다. “성 안에서 탈출한 백성을 사로잡지 말고, 빈곤한 자는 구휼하여 그들로 하여금 옛일을 하게끔 하라.”
注+② 악의樂毅가 두 읍을 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게 하려 한 것이다. 하였는데 3년이 되도록 여전히 함락하지 못하였다.
누군가 악의를 소왕昭王에게 참소하기를 “악의의 지모가 남보다 뛰어나서 잠깐 만에 70여 성을 이겼고 지금 함락하지 못한 것이 두 성뿐이니, 그의 능력으로 볼 때 함락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3년을 공격하여 이기지 못하는 것은 오랫동안 군대의 위세에 의지하여 제齊나라 사람들을 복종시켜서 마침내 남면하고 왕 노릇을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하였다.
소왕이 이에 술자리를 마련하여 사람들을 크게 모으고, 말을 한 자를 끌어다 꾸짖기를
“선왕께서 토지를 탐하지 않으시고 온 나라로 현자를 예우하셨는데 왕위를 계승한 자가 덕이 부족하여 대명大命을 감당할 수가 없었으며, 나라의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제齊나라가 무도한 짓을 저질러 선왕을 해치니注+③ 계승한 자는 자지子之를 일컫는다. 감堪은 이긴다는 뜻이고, 감당한다는 뜻이다. “불능감명不能堪命(大命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은 자지子之가 연燕나라 왕 쾌噲가 명한 것을 이겨내어 연燕나라의 정사를 감당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 과인이 왕위를 계승하여 애통한 마음이 골수에 사무쳤다.
그래서 신하들을 맞이하고 빈객을 초빙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니, 성공하는 자가 있다면 그와 더불어 연燕나라도 함께 나누어 가지고자 하였다.
지금
악군樂君이 직접 과인을 위해
제齊나라를 깨뜨리고 그들의 종묘를 무너뜨려 선왕의 원한을 갚았으니
注+④ 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이夷는 평평하게 한다는 뜻이다.제齊나라는 본래 악군의 소유이지
연燕나라가 취득할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너는 어찌 감히 이렇게 말한단 말이냐?” 하고 바로 베어 죽이고 나라의 재상을 보내 악의를 세워 제齊나라 왕으로 삼았다.
악의가 황공하여 받지 않고 글을 올려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을 스스로 맹세하였다.
注+⑤ 배서拜書는 절을 하고 글을 올리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제齊나라 사람들이 그 의리에 감복하고 제후들이 그 신의를 두려워하여 감히 다시는 도모하는 자가 없었다.
目
[目]전단田單이 이에 성 안의 사람들로 하여금 식사 때에 반드시 뜰에서 선조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니, 날던 새가 모두 날다가 춤추듯이 내려앉았다.
연燕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전단이 이 일로 인하여 선포하기를
注+① 선언宣言은 그 말을 밖에 선포하는 것이다. “반드시
신사神師가 내려와 우리를 가르쳐주리라.” 하였는데, 얼마 후 갑자기 한 사졸이 “
신臣이 신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注+②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 아래에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전단田單이 일어나 데리고 돌아와 동쪽을 향해 앉히고 신사神師로 섬겼다. 사졸이 ‘신臣이 군주를 속였습니다.’라고 하니, 전단田單이 ‘그대는 말하지 말라.’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라고 하니, 전단이 마침내 그를 신사로 삼아 매번 군대를 신칙할 때에 반드시 신사의 뜻이라 말하였다.
注+③ 약속約束은 문서 없이 말로 결속하는 것이다. 전단田單이 대중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을까 두려웠으므로 신을 가탁하여 대중에게 명령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선포하기를 “나는 오직 연燕나라 사람들이 사로잡은 제齊나라 병사의 코를 베어 앞 열에 세울까 두렵다.
그러면
즉묵卽墨이 패할 것이다.”
注+④ 의劓는 어기魚器의 절切이니, 코를 벤다는 뜻이다. 행行(행렬)은 호랑戶郎의 절切이다.라고 하니,
연燕나라 사람들이 그 말대로 하였다.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노하여 굳게 성을 지키면서 사로잡힐까 두려워하였다.
전단이 다시 선포하기를 “나는 연燕나라 사람들이 나의 성 밖의 묘소를 파헤칠까 두렵다.
그러면 우리들을 낙담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연燕나라 군대가 묘소를 파헤쳐 불살랐다.
제齊나라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모두 나가서 싸우고자 하니 분노가 절로 열 배에 이르렀다.
目
[目]
전단田單이 일찍이 밖에 나갔다가 노인이
치수淄水를 건너고 추워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갖옷을 벗어 입혀주었다.
注+① 《수경水經》에 “치수淄水는 태산泰山 내무현萊蕪縣 원산原山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임치현臨淄縣을 지난다.”고 하였다.
양왕襄王이 그를 미워하여 말하기를 “전단이 이러한 일을 함으로써 내 나라를 취하고자 하는가?” 하였는데,
전폐殿陛 아래에서 구슬을 꿰던 자가 듣고는 왕에게 아뢰기를
注+② 암하巖下는 전암殿巖(殿陛) 아래이다. “왕께서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선행善行으로 삼는 것이 낫습니다.
영을 내리시기를 ‘과인이 백성이 굶주리는 것을 걱정하면 전단이 그들을 거두어 먹이고, 과인이 백성이 헐벗는 것을 걱정하면 전단이 그들을 거두어 입힌다.
과인이 백성의 노고를 걱정하면 전단도 걱정하여 과인의 뜻에 맞게 한다.’
注+③ 칭稱은 거성去聲이니, 만족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십시오.
전단에게 이러한 선행이 있어서 왕께서 칭찬하신다면 전단의 선행도 왕의 선행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좋다고 하고는 전단에게 소와 술을 하사하였다.
며칠 뒤에 구슬을 꿰던 자가 다시 왕을 만나 말하기를 “왕께서 조회가 있는 날에 전단을 불러 궁정에서 읍을 하시고 직접 치하한 뒤에 영을 반포하여 백성 가운데 굶주리고 헐벗는 자들을 찾아 거두어 기르소서.”
注+④ 조朝는 척요陟遙의 절切이니, 아침이고, 또 직요直遙의 절切이니, 신하들을 조회하는 날이다. 곡穀은 기른다는 뜻이다. 수곡收穀은 거두어 기른다는 뜻이다. 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민간의 여론을 들었는데 장부들이 서로들 하는 말을 들어보니 “전단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아! 바로 왕께서 가르치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目
[目] 왕에게 총애하는 신하 아홉이 있었는데, 왕에게 아뢰기를 “
안평군安平君이 왕과
군신君臣으로서의 차이도 없고, 안으로는 백성을 위무하고 밖으로는
융적戎狄을 회유하며 천하의 어진 선비를 예우하니, 그 뜻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注+① 〈그 뜻이 무엇인가 하고자 한다는 것은〉 반역함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다른 날에 왕이 “재상 전단田單을 불러오도록 하라.” 하였다.
전단이 추천했던
초발貂勃이 듣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왕에게 아뢰기를
注+② 임任은 여짐如鴆의 절切이니, 담보한다는 뜻이다. 바로 라고 할 때의 임任이다. 초貂는 음이 조凋이니 성이다.
“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을 얻고서
태공太公으로 삼았고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를 얻고서
중부仲父로 삼았는데
注+③ 여상呂尙은 본성이 강씨姜氏인데, 그 선조가 여呂에 봉해졌으므로 봉지를 따라 성姓을 여呂라고 하였다. 여상呂尙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때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그를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와 “우리 태공太公(父祖)께서 그대를 기다리신 지 오래입니다.”라고 하고는 그로 인해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불렀다. 제齊나라 공자 무지無知의 난에 관이오管夷吾가 공자公子 규糾를 받들고 환공桓公과 나라를 다투었다. 공자 규가 죽자 관중管仲이 옥에 갇혔는데 환공이 그의 죄를 용서하고 국정을 맡긴 뒤에 중부仲父라고 불렀다.,
지금 왕께서는 안평군을 얻고서 유독 ‘단單’이라고 부르시니, 어떻게 이러한 망국의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저 안평군은 위태로운
즉묵卽墨의 3리 되는 내성과 5리 되는 외성을 가지고
제齊나라 천 리 영토를 회복하였습니다.
注+④ 췌惴는 지수之睡의 절切이니,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때에 스스로 왕 노릇을 하였다면 천하에 그를 막을 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리에 맞추어보고 의리에 입각하여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을 설치하여
성양城陽에서 왕을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注+⑤ 잔棧은 사한士限의 절切이다. 험난한 곳에서 산의 바위를 옆에서 뚫고 나무를 걸어 길을 낸 것을 잔도棧道라고 한다. 양왕襄王이 민왕湣王을 따라 거莒로 도망갔는데,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거현莒縣은 성양국城陽國에 속한다.”고 하였다.
지금 나라가 이미 평정되고 백성이 이미 안정되었는데 왕께서 ‘단單’이라고 부르시니 어린아이의 생각으로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아홉 신하를 죽이고 안평군에게 만호를 더 봉하여 주었다.
目
[目]
전단田單이
적狄을 공격하려고 할 때에
을 찾아가 만났다.
注+①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적현狄縣은 천승군千乘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노魯는 성姓이다. 노중련魯仲連은 제齊나라 사람이다.
노중련이 말하기를 “장군이 적狄을 공격해도 함락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전단이 말하기를 “내가 즉묵卽墨의 남은 병사를 데리고도 연燕나라를 깨뜨리고 제齊나라를 회복하였는데, 지금 적狄을 공격해도 함락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갔다.
마침내 적을 공격하여 3개월이 지나도 이기지 못하였다.
전단이 이에 두려워져서 노중련에게 물으니, 노중련이 말하기를 “장군이 즉묵에서는 삼태기를 짜고 삽을 잡고서 사졸들의 창도가 되어 말하기를
注+② 궤蕢는 구위求位의 절切이니, 풀로 짠 용기이다. 장仗은 기대고 멘다는 뜻이다. 창倡(창도하다)은 창唱으로 읽는다. ‘갈 만한 곳이 없구나.
오늘은 그래도 희망이 있으니, 어느 부류로 귀착할 것인가.’
注+③ 상尙은 바란다는 뜻이다. 전단田單이 그때에 “오늘의 일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라고 했음을 말한 것이다. 당黨은 부류이다. 전쟁에는 승부가 있어서 죽지 않으면 항복해야 하는데, 장차 어느 부류로 귀착할 것인가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때에 장군은 죽으려는 마음이 있었고 사졸들은 살아야겠다는 기색이 없어 모두가 눈물을 훔치면서 팔을 휘두르며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연燕나라를 깨뜨릴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지금 장군은 동쪽으로
의
봉지封地에서 바치는 조세가 있고 서쪽으로
치수淄水 가에서 노니는 즐거움이 있으며
注+④ 이것은 대체로 안평安平의 식읍에 액읍夜邑을 더하여 받았음을 말한 것이다. 액읍은 안평의 동쪽에 있다. 치수는 안평의 서쪽에 있다. 액읍에서는 조세를 바침이 있고 치수 가에는 유람하는 즐거움이 있으므로 노중련魯仲連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황금 띠를 허리에 두르고
치수淄水와
승수澠水 사이에서 말을 타고 달려서
注+⑤ 승澠은 음이 승繩이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승수澠水는 익도益都 임치현臨淄縣에서 발원한다.”고 하였다., 사는 즐거움이 있고 죽으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전단이 다음 날 기운을 가다듬고 성을 순행하여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곳에 서서 북채를 당겨 북을 치니
적狄 사람들이 마침내 항복하였다.
注+⑥ 원援은 당긴다는 뜻이다. 포枹는 음이 부孚이니, 북을 치는 채이다.
目
[目]
조趙나라 왕이
악의樂毅와 함께
연燕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도모하려고 하였는데, 악의가 울며 말하기를 “신이 지난날
소왕昭王을 섬겼던 일은 오늘날 대왕을 섬기는 일과 같습니다.
注+① 주석疇昔은 전일前日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만약 다시 죄를 지어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평생토록 조趙나라의 노예조차 감히 해치지 않을 것인데, 더구나 자손이겠습니까.” 하였다.
조趙나라 왕이 이에 그만두고 악의를
관진觀津에 봉하고
망제군望諸君이라고 불러 존경하고 총애함으로써
연燕나라와
제齊나라를 각성시켰다.
注+② 관觀은 공환工喚의 절切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관진현觀津縣은 신도국信都國에 속한다.”고 하였다. 망제望諸는 늪지의 이름이다. 본래 제齊나라 땅이었는데, 나중에 조趙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악의樂毅가 제齊나라에서 조趙나라로 달아나 왔으므로 이것으로 그를 불러 그가 온 곳을 밝혔다.
연燕나라 혜왕惠王이 조趙나라가 악의를 기용하여 자신들이 피폐한 틈을 노릴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사람을 보내 악의를 꾸짖으면서 한편으로 사과하기를
“장군이 연燕나라를 버리고 조趙나라에 귀의하였으니, 스스로 계책을 세운 것은 괜찮지만, 선왕께서 장군을 대우했던 마음은 어떻게 갚겠는가?” 하니,
악의가 답서를 보내기를 “화를 면하고 공을 세워 선왕의 업적을 밝히는 것은 신의 가장 좋은 계책이고,
모욕적인 비방을 당해 선왕의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며
注+③ 이罹는 만난다는 뜻이다. 타墮는 화규火規의 절切이고, 휴隳와 같으니,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크나큰 죄를 짓고서 요행히 모면하는 것을 이롭다고 여기는 것은 의리상 감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注+④ 출出은 도피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크나큰 죄를 짓고서 만약 요행히 면하는 것을 이롭다고 여긴다면 목숨을 바치는 의리를 저버리는 것임을 말하였다.
옛 군자는 교유를 끊을 때에 나쁜 말을 하지 않고
注+⑤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않고 상대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충신은 나라를 떠날 때에 자신의 명성을 깨끗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注+⑥ 결絜은 결潔과 같다. 충신이 본국을 떠나면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깨끗이 하여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하지 않음을 말하였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자주 군자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였다.
연燕나라가 이에 다시 악의의 아들
악한樂間으로
창국군昌國君을 삼으니, 악의가 왕래하여
연燕나라와 다시 통하더니 결국
조趙나라에서
졸卒하였다.
注+⑦ 불녕不佞(재주 없다)은 부재不才와 같다. 삭數은 음이 삭朔이다. 군자君子는 현자를 말한다. 간間은 음이 한閑이다.
目
[目] 처음에 제齊나라 민왕湣王이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맹상군孟嘗君(田文)을 제거하려고 하자 맹상군이 위魏나라로 달아났다.
위魏나라가 그를 재상으로 삼아 제후들과 함께 제齊나라를 정벌하여 깨뜨렸다.
제齊나라 양왕襄王이 나라를 수복함에 맹상군이 제후들 가운데에서 중립中立을 지키고 누구에게 소속되지 않았다.
양왕이 두려워하여 그와 화친을 맺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였다.
여러 아들들이 왕위에 오르기를 다투자 제齊나라와 위魏나라가 함께 멸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