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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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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年(B.C. 279)
三十六年이라
秦白起伐楚하야 取鄢鄧西陵注+括地志 “故鄢城在襄州.” 西陵, 卽夷陵. 班志 “夷陵縣屬南郡.”하다
◑秦趙會于澠池하다
秦王 告趙王하야 願爲好會於河外澠池注+好會, 乘車之會.어늘
廉頗藺相如曰注+頗, 普和切. 不行하시면 示趙弱且怯也라한대 趙王 乃行할새 相如從注+從, 才用切.이러니
頗送至境하야 與王訣曰注+訣, 音決, 別也. 王行 道里會遇之禮畢 不過三十日注+度, 大各切. 諸侯未及期相見曰遇.이니
過此不還인대 則請立太子하야 以絶秦望하야지이다 許之하다
及會飮酒 秦王 請趙王鼓瑟한대 趙王 鼓之注+瑟, 二十五絃, 伏羲所作. 趙人善瑟, 故秦請鼓之.하고
相如請秦王擊缶한대 秦王 不肯注+缶, 俯九切, 盛酒瓦器. 秦俗, 擊之以節樂.이어늘
相如曰 五步之內 請得以頸血 濺大王矣注+五步之內, 蓋言至近也. 濺, 箭贊二音, 汚灑也. 言將殺秦王也.리이다 左右欲刃相如어늘
相如張目叱之한대 左右皆靡注+靡, 音美, 委靡不振之貌.
秦王 乃一擊缶하고 罷酒하니
終不能有加於趙하고 趙人 亦盛爲之備하니 不敢動이러라
藺相如가 秦나라를 두 번 굴복시키다藺相如가 秦나라를 두 번 굴복시키다
趙王하야 以相如爲上卿하니 位在廉頗右注+秦漢以前, 用右爲上.
頗曰 我爲將하야 有攻城野戰之功이어니와
相如 素賤이라 徒以口舌 而位加我上하니 我見 必辱之호리이다
相如聞之하고 不肯與會하야 每朝 常稱病하고 出而望見 輒引車避匿하니
其舍人 皆以爲恥한대
相如曰 子視廉將軍 孰與秦王 曰 不若이니라
相如曰 夫以秦王之威 而相如廷叱之호니 相如雖駑 獨畏廉將軍哉注+駑, 音奴, 凡馬之稱.
顧吾念之호니 秦所以不敢加兵於趙 徒以吾兩人 在也
今兩虎共鬪 其勢不俱生이니 吾所以爲此者 先國家之急이요 而後私讐也니라
頗聞之하고 肉袒負荊하야 至門謝罪하고
遂爲刎頸交注+肉袒者, 袒衣而露肉也. 荊, 楚也, 可以爲鞭. 刎, 無粉切, 斷也. 刎頸交, 言托契深重, 雖斷頭, 無所顧也.하다
楊氏曰注+楊氏, 名時, 宋延平人.
古之智者 以小事大하야 有以皮幣犬馬珠玉而不得免者 至乃棄國而逃之어든 況一璧乎
雖與之라도 可也어늘 相如計不出此하고 而欲以身死之하니 可謂失義而傷勇矣
及其完璧而歸 於趙亦何益哉리오
至於澠池之會하야 則其危又甚矣
雖勿往이라도 可也어늘 相如 爲國卿相하야 挾萬乘之君하야 以蹈危事호대
其智勇 又不足重趙하야 使秦不敢惴焉하고 乃欲以頸血濺之하니 豈孔子所謂暴虎馮河死而無悔者歟
而或者謂相如非戰國之士
使居平世라도 可謂大臣이라하니 則吾不知其說也로이다
燕君平하니 樂毅奔趙어늘
齊田單 襲破燕軍하고 盡復齊地한대 齊君 入臨菑하야 封單爲安平君하다
趙封樂毅爲望諸君하다
燕人 攻安平注+括地志 “安平城在靑州臨菑縣東.”이어늘 臨菑市掾田單 使其宗人으로 以鐵籠으로 傅車轊注+市掾, 掌市官屬也. 單, 音丹. 田單, 齊疎屬也. 傅, 音附. 轊, 音衛, 車軸頭也. 傅者, 截其軸與轂齊, 以鐵鍱傅軸末, 施轄於鐵中以制轂, 堅而易進也.러니
及城潰 爭門出이라가 皆以軸折 被擒호대 獨單宗人 得免하야 遂奔卽墨하다
齊地皆已屬燕호대 獨莒卽墨 未下어늘
樂毅幷軍圍之한대 卽墨大夫戰死하다
卽墨人曰 安平之戰 田單宗人 以鐵籠得全하니 多智習兵이라하고 立以爲將하다
樂毅圍二邑期年不剋하야 乃令解圍하야 去城九里而爲壘注+壘者, 屯軍之壁.하고
令曰 城中民 出者 勿獲하며 困者 賑之하야 使卽舊業注+毅欲懷綏二邑, 使之自服.이라호대 三年而猶未下
䜛之於昭王曰 樂毅智謀 過人하야 呼吸之間 剋七十餘城하고 今不下者兩城耳 非其力不能拔이라
所以三年不攻者 欲久伏兵威하야 以服齊人하야 遂南面而王耳니라
昭王 於是 置酒大會하고 引言者하야 讓之曰
先王 不貪土地하야 而擧國以禮賢者러니 遭所傳 德薄하야 不能堪命이라 國人 不順이어늘
齊爲無道하야 以害先王注+所傳, 謂子之. 堪, 勝也, 任也. 不能堪命者, 言子之不能勝王噲所命, 而任燕國之事也.하니 寡人 統位하야 痛之入骨이라
故延群臣招賓客하야 以求報讐호니 有成功者 尙欲與共燕國이라
今樂君 親爲寡人破齊하야 夷其宗廟하야 報塞先仇注+爲, 去聲. 夷, 平也.하니 齊固樂君之有 非燕所得也어늘
汝何敢言若此오하고 乃斬之하고 遣國相하야 立毅爲齊王한대
毅惶恐不受하고 拜書하야 以死自誓注+拜書, 拜而上書也.하니
由是 齊人 服其義하고 諸侯畏其信하야 莫敢復有謀者러니
頃之 昭王注+頃之, 言無幾何時.하니
惠王 自爲太子時 不快於樂毅
田單 乃縱反間曰注+間, 去聲. 孫子 “反間者, 因其敵間而用之.” 註 “敵有間, 來窺我之得失, 我厚賂之, 而令彼反爲我間也.” 樂毅與燕新王有隙하야 畏誅하야 欲連兵王齊호대 齊人 未附
故且緩攻卽墨하야 以待其事하나니
齊人所懼 惟恐他將之來 卽墨 殘矣니라
惠王 聞之하고 卽使騎劫代將注+騎, 奇寄切, 姓也. 一說 “騎劫, 時以能而將. 騎, 以官稱, 非姓也.”한대
毅遂奔趙하니 將士由是憤惋不和注+憤, 房刎切, 懣也. 惋, 音腕, 驚嘆也.하더라
田單 乃令城中人으로 食必祭先祖於庭하니 飛鳥 皆翔舞而下
燕人 怪之러라
因宣言曰注+宣言, 宣布其言於外也. 當有神師 下敎라하더니 俄有一卒 曰 臣 可以爲師乎注+通鑑, 此下云 “因反走. 田單起引還, 坐東鄕, 師事之. 卒曰 ‘臣欺君.’ 田單曰 ‘子勿言也.’” 遂師之하야 每有約束 必稱神師注+約束, 無文書, 以言語要結. 單恐衆心未一, 故假神以令其衆.하고
又宣言曰 吾惟懼燕人 劓所得齊卒하야 置之前行하면
卽墨 敗矣注+劓, 魚器切, 割鼻也. 行, 戶郎切.리라 燕人 如其言한대
城中 皆怒堅守하야 唯恐見得이러니
又言吾懼燕人 掘吾城外冢墓
可爲寒心이니라 燕軍 掘燒之한대
齊人 望見하고 皆涕泣하야 共欲出戰하야 怒自十倍어늘
知其可用하고 乃身操版鍤하야 與士卒分功注+版, 牆版, 障土者也. 鍤, 初洽切, 鍬也.하고 妻妾 編於行伍之間注+二十五人爲行.하고 盡散飮食하야 饗士하고
令甲卒皆伏하고 使老弱女子乘城注+乘, 登也, 登城而守也.하고 遣使約降한대 燕軍 益懈러라
收城中하야 得牛千餘하야 爲絳繒衣하야 畫以五采龍文注+絳繒, 赤色帛也. 畫, 去聲.하고 束兵刃於其角하고 灌脂束葦於其尾注+葦, 于鬼切, 葭也.하고
鑿城數十穴하야 夜縱牛할새 燒葦端하고 壯士五千人 隨之한대
牛熱하야 怒犇燕軍注+犇, 古奔字.하니 所觸 盡死傷이라
燕軍 大驚이어늘 而城中 鼓譟從之注+譟, 先到切, 群呼也.한대
燕軍 敗走어늘 齊人 殺騎劫하고 追亡逐하야 至河上注+追亡逐北者, 追之. 河上, 齊之地界, 近河東.하니 七十餘城 皆復爲齊하다
乃迎王하야 自莒入臨菑한대
以太史敫之女 爲后하니 是爲君王后
生太子建注+以其姓后, 不可稱后后, 故曰君王后.하다
以單爲相하야 封安平君注+齊以單安國平難, 又嘗保安平, 故因以安平封之.하다
太史敫曰 女不取媒하고 因自嫁하니 汚吾世라하여 終身不見君王后하고 君王后 亦不以不見故 失人子之禮러라
◑田單 嘗出이라가 見老人 涉淄而寒不能行하고 解裘衣之注+水經 “淄水出泰山萊蕪縣原山東北, 過臨淄縣.”한대
襄王 惡之曰 單 將欲以是 取吾國乎 巖下 有貫珠者 聞之하고 言於王曰注+巖下, 殿巖之下也. 不如因以爲己善이니
下令曰 寡人 憂民之飢也어늘 收而하고 寡人 憂民之寒也어늘 收而衣之하고
寡人 憂勞百姓이어늘 而單 亦憂之하야 稱寡人之意注+稱, 去聲, 愜也.라하소서
單有是善이어든 而王 嘉之하시면 單之善 亦王之善也리이다
王曰 善타하고 乃賜單牛酒하다
後數日 貫珠者 復見王曰 王 朝日 宜召田單而揖之於庭하사 口勞之하시고 乃布令하야 求百姓之飢寒者하야 收穀之注+朝, 陟遙切, 旦日, 又直遙切, 朝群臣之日也. 穀, 養也. 收穀, 收而養之也.하소서
乃使人聽於閭里하야 聞丈夫之相與言하니 曰 田單之愛人 嗟乃王之敎也랏다하더라
王有所幸臣九人 語王曰 安平君 與王으로 君臣無異 而內撫百姓하며 外懷戎翟하고 禮天下之賢士하니 其志 欲有爲也注+謂反也.니이다
異日 王曰 召相單來하라
所任貂勃 聞之하고 稽首於王曰注+任, 如鴆切, 保也, 卽任子之任. 貂, 音凋, 姓也.
周文王 得呂尙하야 以爲太公하시고 齊桓公 得管夷吾하야 以爲仲父注+呂尙, 本姓姜氏. 其先祖封於呂, 故從其封, 姓曰呂. 呂尙釣於渭濱, 周文王出獵, 載與俱歸, 曰 “吾太公望子久矣.” 因號曰太公望. 齊公子無知之亂, 管夷吾奉公子糾, 與桓公爭國. 子糾死, 管仲囚, 桓公釋其罪, 任之以政, 號曰仲父.어늘
今王 得安平君하사 而獨曰單이라하시니 安得此亡國之言乎잇고
夫安平君 以惴惴卽墨三里之城五里之郭으로 而反千里之齊注+惴, 之睡切, 憂懼也.하니
當是時하야 而自王이면 天下莫之能止로대
然計之於道하고 歸之於義하야 以爲不可 故棧道木閣而迎王於城陽注+棧, 士限切. 絶險之處, 傍鑿山巖, 架木通路曰棧道. 襄王, 從湣王走莒. 班志 “莒縣, 屬城陽國.”이러니
今國已定民已安矣어늘 王乃曰單이라하시니 嬰兒之計 不爲此也리이다
王乃殺九人하고 而益封安平君萬戶하다
◑田單 將攻狄할새 往見魯仲連注+班志 “狄縣, 屬千乘郡.” 魯, 姓也. 魯仲連, 齊人也.한대
仲連 曰 將軍 攻狄不能下也리라 單曰 單 以卽墨餘卒 破燕復齊호니 今攻狄而不下 何也 弗謝而去하야
遂攻狄하야 三月不剋이라
乃懼하야 問仲連한대 仲連 曰 將軍 在卽墨 織蕢仗鍤하야 爲士卒倡하야注+蕢, 求位切, 草器也. 仗, 憑荷也. 倡, 讀曰唱. 無可往矣
宗廟亡矣
今日尙矣 歸於何黨矣注+尙, 庶幾也. 言單於其時, 蓋言曰 “今日之事, 尙庶幾焉.” 黨, 類也. 言戰有勝負, 不死則降, 將歸於何類也.오하니
當此之時하야 將軍 有死之心이요 士卒 無生之氣하야 莫不揮泣하야 奮臂而欲戰하니
此所以破燕也어니와
將軍 東有夜邑之奉하며 西有淄上之娛注+此蓋言安平封邑, 益之以夜邑. 夜邑在安平東. 淄水在安平西. 夜邑有租賦之奉, 淄上有遊觀之樂, 故仲連云然.하고 黃金橫帶하야 騁乎淄之間注+澠, 音繩. 集覽 “澠水出益都臨淄縣.”하야 有生之樂이요 無死之心이라
所以不勝也니라
明日 厲氣循城하야 立於矢石之所하야 援枹鼓之한대 狄人乃下注+援, 引也. 枹, 音孚, 擊鼓杖也.하니라
◑趙王 欲與樂毅 謀伐燕이어늘 毅泣曰 臣 疇昔之事昭王 猶今日之事大王也注+疇昔, 猶言前日也.
若復得罪하야 在他國이라도 終身不敢謀趙之奴隷어든 況子孫乎잇가
趙王 乃止하고 而封毅於觀津하야 號望諸君이라하야 尊寵之하야 以警動於燕齊注+觀, 工喚切. 班志 “觀津縣, 屬信都國.” 望諸, 澤名. 本齊地, 後爲趙所有. 毅自齊奔趙, 以此號之, 示其所從也.러라
燕惠王 恐趙用之以乘其敝하야 乃使人讓毅하고 且謝之曰
將軍 捐燕歸趙하니 自爲計則可矣어니와 而何以報先王所以遇將軍之意乎리오
毅報書曰 免身立功하야 以明先王之迹 臣之上計也
罹毁辱之謗하야 先王之名 臣之所大恐也注+罹, 遭也. 墮, 火規切, 與隳同, 壞也.
臨不測之罪하야 以幸爲利 義之所不敢出也注+出, 謂逃避. 言旣臨不測之罪, 若以幸免爲利, 則失授命之義矣.
古之君子交絶 不出惡聲注+不說己長而談彼短.하고 忠臣 去國 不絜其名注+絜, 與潔同. 言忠臣去離本國, 不自素其名云己無罪.하나니
臣雖不佞이나 奉敎於君子矣로이다
乃復以毅子으로 爲昌國君하니 而毅 往來復通燕이러니 竟卒於趙注+不佞, 猶不才也. 數, 音朔. 君子, 謂賢者. 間, 音閑.하다
薛公田文하다
齊湣王 旣滅宋하고 欲去孟嘗君이어늘 孟嘗君 奔魏한대
魏以爲相하야 與諸侯共伐破齊러니
襄王 復國 而孟嘗君 中立爲諸侯하야 無所屬이어늘
襄王 畏之하야 與連和러니 至是卒하니
諸子爭立이어늘 齊魏共滅之하니라


임오년(B.C. 279)
[綱]나라 난왕赧王 36년이다.
나라 백기白起나라를 정벌하여 , , 서릉西陵을 취하였다.注+① 《괄지지括地志》에 “옛 언성鄢城양주襄州에 있다.”고 하였다. 서릉西陵은 곧 이릉夷陵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이릉현夷陵縣남군南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綱]나라와 나라가 민지澠池에서 회합하였다.
[目]나라 왕이 나라 왕에게 하수河水의 바깥에 있는 민지澠池에서 우호의 회합을 하자고 알렸다.注+① 우호의 회합은 이다.
염파廉頗인상여藺相如가 말하기를注+보화普和이다. “왕께서 가지 않으시면 나라가 나약하고 겁을 낸다고 비치게 됩니다.” 하니, 나라 왕이 비로소 길을 나섰는데 인상여가 수행하였다.注+(따르다)은 재용才用이다.
염파가 배웅하면서 국경에 이르러 왕과 작별하기를注+은 음이 이니, 작별한다는 뜻이다. “왕이 가심에 여정과 회합의 예를 마치는 시간을 헤아려 보니 불과 30일입니다.注+(헤아리다)은 대각大各이다. 제후가 약속한 시기가 되기 전에 서로 만나는 것을 라고 한다.
이 기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태자를 왕으로 세워 나라가 바라는 일을 끊어버리고자 합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目] 회합하여 술을 마실 적에 나라 왕이 나라 왕에게 비파를 탈 것을 청하자 나라 왕이 비파를 탔다.注+① 비파는 25개의 줄이 있는데, 복희씨伏羲氏가 만든 것이다. 나라 사람들이 비파를 잘 탔으므로 나라 왕이 연주하기를 청한 것이다.
인상여藺相如나라 왕에게 질장구를 칠 것을 청하였는데 나라 왕이 치려고 하지 않았다.注+부구俯九이니, 술을 담는 질그릇이다. 나라 풍속에 그것을 쳐서 음악의 가락을 맞춘다.
인상여가 말하기를 “다섯 발자국 안에서 신이 목의 피로써 대왕에게 뿌리겠습니다.”注+③ 다섯 발자국 안은 매우 가깝다는 말이다. 은 음이 두 가지이고, 더럽히도록 뿌리는 것이니, 나라 왕을 죽이겠다는 말이다. 하니, 나라 왕 주위의 신하들이 인상여를 찌르려고 하였다.
인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주위의 신하들이 모두 물러났다.注+는 음이 이니, 움츠려 떨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라 왕이 결국 한 번 질장구를 치고 술자리를 파하였다.
나라는 끝내 나라에 능욕을 가할 수 없었고 나라 사람들도 충분히 대비를 하니, 나라가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目]나라 왕이 귀국하여 인상여藺相如상경上卿으로 삼으니 지위가 염파廉頗의 위였다.注+진한秦漢 이전에는 오른쪽을 위로 삼았다.
염파가 말하기를 “나는 장수가 되어 성을 공격하고 야전에서 싸운 공로가 있다.
인상여는 본래 신분이 천하였는데 한낱 말재주로 지위가 나의 위에 올랐으니, 내가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겠다.” 하였다.
인상여가 이 말을 듣고는 그와 함께 만나려고 하지 않아 조회 때마다 항상 병을 핑계하였고, 외출하였을 때 멀리서 보면 바로 수레를 끌고 피하였다.
그의 사인舍人들이 모두 이러한 행동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인상여가 말하기를 “그대들이 보기에 염장군廉將軍의 위세가 나라 왕과 비교하여 어떠한가?” 하니, “나라 왕만 못합니다.” 하였다.
인상여가 말하기를 “저 나라 왕의 위세 앞에서도 내가 그를 궁정에서 꾸짖었는데, 내가 비록 미련하나 유독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注+는 음이 이니, 평범한 말을 일컫는다.
다만 내가 생각건대, 나라가 나라에 감히 침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마리 호랑이가 함께 싸우면 그 형세가 둘 다 살지는 못할 것이니,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급함을 우선으로 삼고 사적인 원한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하였다.
염파가 이 말을 듣고 웃통을 벗은 채 가시나무를 지고 인상여의 집 문에 와서 사죄하였다.
마침내 를 맺었다.注+육단肉袒은 옷을 벗어 맨살을 노출하는 것이다. 은 가시나무이니, 채찍을 만들 수 있다. 무분無粉이니, 자른다는 뜻이다. 문경교刎頸交는 의기가 투합한 것이 깊고 중하여 비록 목을 자르더라도 후회함이 없다는 말이다.
[目]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注+양씨楊氏는 이름이 로, 나라 연평延平 사람이다.
비록 벽옥을 줘버리더라도 괜찮았거늘 인상여藺相如는 이러한 계책을 내놓지 않고서 몸을 바쳐 죽으려고 하였으니
그가 벽옥을 온전히 가지고 귀국한 것이 나라에 또한 무슨 이익이었겠는가.
민지澠池의 회합에 이르러서는 위태로움이 더욱 심하였다.
비록 가지 않더라도 괜찮았는데, 인상여가 나라의 경상卿相의 지위에 있으면서 만승의 군주를 끼고 위험한 일을 감행하고자 하였다.
그의 지혜와 용기 또한 나라가 존중을 받게 하기에 부족하여 나라로 하여금 감히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결국 목의 피를 뿌리고자 하였으니, 어찌
혹자는 ‘인상여는 전국시대의 일개 선비가 아니었다.
[綱]나라 군주 하니 악의樂毅나라로 달아났다.
나라 전단田單나라 군대를 습격하여 격파하고 나라 땅을 모두 회복하자, 나라 군주가 임치臨菑에 들어가 전단을 봉하여 안평군安平君으로 삼았다.
나라가 악의를 봉하여 망제군望諸君으로 삼았다.
[目] 처음에 나라 사람들이 안평安平을 공격하자注+① 《괄지지括地志》에 “안평성安平城청주靑州 임치현臨菑縣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임치臨菑시연市掾전단田單이 자신의 종인宗人으로 하여금 쇠로 만든 덮개를 수레의 굴대 끝에 부착하도록 하였다.注+시연市掾은 시장을 관장하는 관속이다. 은 음이 이다. 전단田單나라 왕실의 먼 일가이다. 는 음이 이다. 는 음이 이니, 수레 굴대의 머리이다. 라는 것은 굴대를 잘라 바퀴통과 가지런하게 하고 쇠 덮개를 굴대의 끝에 부착한 다음, 쇠 덮개 가운데에 빗장을 걸어 바퀴통을 고정하는 것으로, 견고하고 쉽게 전진할 수 있다.
성이 함락될 때에 사람들이 다투어 성을 나가다가 모두 굴대가 부러져 사로잡혔는데, 전단의 종인宗人만이 모면하여 마침내 즉묵卽墨으로 달아났다.
당시에 나라의 땅이 모두 이미 나라에 점령되었고 즉묵卽墨만이 함락되지 않았다.
악의樂毅가 군대를 모아 포위하였는데 즉묵의 대부大夫가 전사하였다.
즉묵의 사람들이 “안평安平의 전투에서 전단의 종인宗人이 쇠로 만든 덮개를 써서 온전할 수 있었으니 이는 지혜가 많고 군사에 익숙한 것이다.”라고 하고는 전단을 세워 장수로 삼았다.
[目]악의樂毅가 두 읍을 포위한 지 1년이 되었으나 이기지 못하자 결국 포위를 풀게 하고서 성에서 9리 떨어진 곳에 보루를 쌓고
명령하기를注+는 군대를 주둔시키는 벽이다. “성 안에서 탈출한 백성을 사로잡지 말고, 빈곤한 자는 구휼하여 그들로 하여금 옛일을 하게끔 하라.”注+악의樂毅가 두 읍을 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게 하려 한 것이다. 하였는데 3년이 되도록 여전히 함락하지 못하였다.
누군가 악의를 소왕昭王에게 참소하기를 “악의의 지모가 남보다 뛰어나서 잠깐 만에 70여 성을 이겼고 지금 함락하지 못한 것이 두 성뿐이니, 그의 능력으로 볼 때 함락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3년을 공격하여 이기지 못하는 것은 오랫동안 군대의 위세에 의지하여 나라 사람들을 복종시켜서 마침내 남면하고 왕 노릇을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하였다.
소왕이 이에 술자리를 마련하여 사람들을 크게 모으고, 말을 한 자를 끌어다 꾸짖기를
“선왕께서 토지를 탐하지 않으시고 온 나라로 현자를 예우하셨는데 왕위를 계승한 자가 덕이 부족하여 대명大命을 감당할 수가 없었으며, 나라의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나라가 무도한 짓을 저질러 선왕을 해치니注+③ 계승한 자는 자지子之를 일컫는다. 은 이긴다는 뜻이고, 감당한다는 뜻이다. “불능감명不能堪命(大命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은 자지子之나라 왕 가 명한 것을 이겨내어 나라의 정사를 감당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 과인이 왕위를 계승하여 애통한 마음이 골수에 사무쳤다.
그래서 신하들을 맞이하고 빈객을 초빙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니, 성공하는 자가 있다면 그와 더불어 나라도 함께 나누어 가지고자 하였다.
지금 악군樂君이 직접 과인을 위해 나라를 깨뜨리고 그들의 종묘를 무너뜨려 선왕의 원한을 갚았으니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는 평평하게 한다는 뜻이다.나라는 본래 악군의 소유이지 나라가 취득할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너는 어찌 감히 이렇게 말한단 말이냐?” 하고 바로 베어 죽이고 나라의 재상을 보내 악의를 세워 나라 왕으로 삼았다.
악의가 황공하여 받지 않고 글을 올려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을 스스로 맹세하였다.注+배서拜書는 절을 하고 글을 올리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 의리에 감복하고 제후들이 그 신의를 두려워하여 감히 다시는 도모하는 자가 없었다.
[目] 얼마 뒤에 소왕昭王이 죽었다.注+경지頃之는 오래지 않은 시간을 말한다.
혜왕惠王은 태자였을 때부터 악의樂毅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전단田單이 이에 반간을 놓아 말하기를注+(첩자)은 거성去聲이다. 《손자孫子》에 “반간反間이라는 것은 적의 첩자를 이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적이 첩자를 두어 우리의 득실을 와서 살피면 우리가 많은 뇌물을 주어 그로 하여금 도리어 우리의 첩자가 되게 한다.”라고 하였다. “악의가 나라의 새 왕과 틈이 있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군대를 연합하여 나라에서 왕 노릇하려고 하는데, 나라 사람들이 아직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 즉묵卽墨을 느슨하게 공격하여 일이 성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만 다른 장수가 오게 되면 즉묵이 장차 해를 입게 되리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혜왕이 그 말을 듣고 즉시 기겁騎劫으로 하여금 대신 장수가 되게 하였다.注+기기奇寄이니, 이다. 일설에, “기겁騎劫이 당시에 재능으로 장수가 되었으니, 는 관직의 이름이지 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악의가 마침내 나라로 달아나니 나라의 장병들이 이 일로 인해 분개하며 불화하였다.注+방문房刎이니, 성낸다는 뜻이다. 은 음이 이니, 놀라 탄식한다는 뜻이다.
[目]전단田單이 이에 성 안의 사람들로 하여금 식사 때에 반드시 뜰에서 선조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니, 날던 새가 모두 날다가 춤추듯이 내려앉았다.
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전단이 이 일로 인하여 선포하기를注+선언宣言은 그 말을 밖에 선포하는 것이다. “반드시 신사神師가 내려와 우리를 가르쳐주리라.” 하였는데, 얼마 후 갑자기 한 사졸이 “이 신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注+②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 아래에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전단田單이 일어나 데리고 돌아와 동쪽을 향해 앉히고 신사神師로 섬겼다. 사졸이 ‘이 군주를 속였습니다.’라고 하니, 전단田單이 ‘그대는 말하지 말라.’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라고 하니, 전단이 마침내 그를 신사로 삼아 매번 군대를 신칙할 때에 반드시 신사의 뜻이라 말하였다.注+약속約束은 문서 없이 말로 결속하는 것이다. 전단田單이 대중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을까 두려웠으므로 신을 가탁하여 대중에게 명령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선포하기를 “나는 오직 나라 사람들이 사로잡은 나라 병사의 코를 베어 앞 열에 세울까 두렵다.
그러면 즉묵卽墨이 패할 것이다.”注+어기魚器이니, 코를 벤다는 뜻이다. (행렬)은 호랑戶郎이다.라고 하니, 나라 사람들이 그 말대로 하였다.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노하여 굳게 성을 지키면서 사로잡힐까 두려워하였다.
전단이 다시 선포하기를 “나는 나라 사람들이 나의 성 밖의 묘소를 파헤칠까 두렵다.
그러면 우리들을 낙담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나라 군대가 묘소를 파헤쳐 불살랐다.
나라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모두 나가서 싸우고자 하니 분노가 절로 열 배에 이르렀다.
[目]전단田單이 그들이 쓸 만하다는 것을 알고서 마침내 몸소 판자와 삽을 잡고 사졸들과 일을 나누고注+장판牆版이니, 흙을 막는 것이다. 초흡初洽이니, 가래이다. 처첩을 군대의 조직에 편입시키고注+② 25인이 이다. 음식을 모두 풀어서 병사들을 먹였다.
갑옷 입은 병사로 하여금 매복하게 하고 노인과 어린아이와 여자로 하여금 성에 올라가 지키게 하고注+은 오른다는 뜻이니, 성에 올라 지킨다는 뜻이다. 사자를 보내 항복하겠다고 약속하자, 나라 군대가 더욱 해이해졌다.
전단이 성 안에서 징집하여 소 천여 마리를 마련한 뒤에 붉은 비단옷을 입혀서 다섯 빛깔의 용무늬를 그려 넣고注+강증絳繒은 붉은색 비단이다. (그리다)는 거성去聲이다., 그 소의 뿔에는 칼날을 묶고 꼬리에는 기름을 부은 갈대를 묶었다.注+우귀于鬼이니, 갈대이다.
그리고 성벽에다 수십 개의 구멍을 뚫고서 밤에 소를 풀어놓을 때 갈대의 끝에 불을 붙이고 장사 5천 명이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소 꼬리가 뜨거워지자 성이 나서 나라 군사에게 달려가니注+고자古字이다. 소에게 받힌 자들이 모두 죽거나 다쳤다.
나라 군대가 크게 놀라자 성 안의 사람들이 북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따랐다.注+선도先到이니, 무리가 환호한다는 뜻이다.
나라 군대가 패주하자 나라 사람들이 기겁騎劫을 죽이고 도망하는 나라 군대를 추격하여 하수河水 가에 이르니注+⑧ “추망축북追亡逐北(도망하는 자를 추격하고 패주하는 자를 쫓는다.)”는 추격한다는 뜻이다. 하상河上나라의 변경으로, 하동河東에 가깝다. 70여 성이 모두 다시 나라 땅이 되었다.
이에 왕을 영접하여 에서 임치臨菑로 들어갔다.
왕이 태사교太史敫의 딸로 왕후를 삼으니 이 사람이 군왕후君王后이다.
태자 을 낳았다.注+⑨ 성이 여서 후후后后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에 군왕후君王后라고 하였다.
전단을 재상으로 삼아 안평군安平君에 봉하였다.注+나라는 전단田單이 나라를 안정시키고 난을 평정하였으며, 또 일찍이 안평安平을 보호하였다고 하여 인하여 안평安平에 봉하였다.
태사목이 “딸이 중매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시집을 갔으니 나의 가문을 더럽혔다.”라고 하여 평생토록 군왕후를 만나보지 않았고, 군왕후도 부친이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식의 예를 저버리지 않았다.
范睢가 죽은 체하여 秦나라로 도망가다范睢가 죽은 체하여 秦나라로 도망가다
[目]전단田單이 일찍이 밖에 나갔다가 노인이 치수淄水를 건너고 추워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갖옷을 벗어 입혀주었다.注+① 《수경水經》에 “치수淄水태산泰山 내무현萊蕪縣 원산原山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임치현臨淄縣을 지난다.”고 하였다.
양왕襄王이 그를 미워하여 말하기를 “전단이 이러한 일을 함으로써 내 나라를 취하고자 하는가?” 하였는데, 전폐殿陛 아래에서 구슬을 꿰던 자가 듣고는 왕에게 아뢰기를注+암하巖下전암殿巖(殿陛) 아래이다. “왕께서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선행善行으로 삼는 것이 낫습니다.
영을 내리시기를 ‘과인이 백성이 굶주리는 것을 걱정하면 전단이 그들을 거두어 먹이고, 과인이 백성이 헐벗는 것을 걱정하면 전단이 그들을 거두어 입힌다.
과인이 백성의 노고를 걱정하면 전단도 걱정하여 과인의 뜻에 맞게 한다.’注+거성去聲이니, 만족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십시오.
전단에게 이러한 선행이 있어서 왕께서 칭찬하신다면 전단의 선행도 왕의 선행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좋다고 하고는 전단에게 소와 술을 하사하였다.
며칠 뒤에 구슬을 꿰던 자가 다시 왕을 만나 말하기를 “왕께서 조회가 있는 날에 전단을 불러 궁정에서 읍을 하시고 직접 치하한 뒤에 영을 반포하여 백성 가운데 굶주리고 헐벗는 자들을 찾아 거두어 기르소서.”注+척요陟遙이니, 아침이고, 또 직요直遙이니, 신하들을 조회하는 날이다. 은 기른다는 뜻이다. 수곡收穀은 거두어 기른다는 뜻이다. 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민간의 여론을 들었는데 장부들이 서로들 하는 말을 들어보니 “전단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아! 바로 왕께서 가르치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目] 왕에게 총애하는 신하 아홉이 있었는데, 왕에게 아뢰기를 “안평군安平君이 왕과 군신君臣으로서의 차이도 없고, 안으로는 백성을 위무하고 밖으로는 융적戎狄을 회유하며 천하의 어진 선비를 예우하니, 그 뜻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注+① 〈그 뜻이 무엇인가 하고자 한다는 것은〉 반역함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다른 날에 왕이 “재상 전단田單을 불러오도록 하라.” 하였다.
전단이 추천했던 초발貂勃이 듣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왕에게 아뢰기를注+여짐如鴆이니, 담보한다는 뜻이다. 바로 라고 할 때의 이다. 는 음이 이니 성이다.
나라 문왕文王을 얻고서 태공太公으로 삼았고 나라 환공桓公를 얻고서 중부仲父로 삼았는데注+여상呂尙은 본성이 강씨姜氏인데, 그 선조가 에 봉해졌으므로 봉지를 따라 라고 하였다. 여상呂尙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때에 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그를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와 “우리 태공太公(父祖)께서 그대를 기다리신 지 오래입니다.”라고 하고는 그로 인해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불렀다. 나라 공자 무지無知의 난에 관이오管夷吾공자公子 를 받들고 환공桓公과 나라를 다투었다. 공자 규가 죽자 관중管仲이 옥에 갇혔는데 환공이 그의 죄를 용서하고 국정을 맡긴 뒤에 중부仲父라고 불렀다.,
지금 왕께서는 안평군을 얻고서 유독 ‘’이라고 부르시니, 어떻게 이러한 망국의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저 안평군은 위태로운 즉묵卽墨의 3리 되는 내성과 5리 되는 외성을 가지고 나라 천 리 영토를 회복하였습니다.注+지수之睡이니,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때에 스스로 왕 노릇을 하였다면 천하에 그를 막을 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리에 맞추어보고 의리에 입각하여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을 설치하여 성양城陽에서 왕을 영접하였던 것입니다.注+사한士限이다. 험난한 곳에서 산의 바위를 옆에서 뚫고 나무를 걸어 길을 낸 것을 잔도棧道라고 한다. 양왕襄王민왕湣王을 따라 로 도망갔는데,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거현莒縣성양국城陽國에 속한다.”고 하였다.
지금 나라가 이미 평정되고 백성이 이미 안정되었는데 왕께서 ‘’이라고 부르시니 어린아이의 생각으로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아홉 신하를 죽이고 안평군에게 만호를 더 봉하여 주었다.
[目]전단田單을 공격하려고 할 때에 을 찾아가 만났다.注+①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적현狄縣천승군千乘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다. 노중련魯仲連나라 사람이다.
노중련이 말하기를 “장군이 을 공격해도 함락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전단이 말하기를 “내가 즉묵卽墨의 남은 병사를 데리고도 나라를 깨뜨리고 나라를 회복하였는데, 지금 을 공격해도 함락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갔다.
마침내 적을 공격하여 3개월이 지나도 이기지 못하였다.
전단이 이에 두려워져서 노중련에게 물으니, 노중련이 말하기를 “장군이 즉묵에서는 삼태기를 짜고 삽을 잡고서 사졸들의 창도가 되어 말하기를注+구위求位이니, 풀로 짠 용기이다. 은 기대고 멘다는 뜻이다. (창도하다)은 으로 읽는다. ‘갈 만한 곳이 없구나.
종묘가 망하였도다.
오늘은 그래도 희망이 있으니, 어느 부류로 귀착할 것인가.’注+은 바란다는 뜻이다. 전단田單이 그때에 “오늘의 일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라고 했음을 말한 것이다. 은 부류이다. 전쟁에는 승부가 있어서 죽지 않으면 항복해야 하는데, 장차 어느 부류로 귀착할 것인가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때에 장군은 죽으려는 마음이 있었고 사졸들은 살아야겠다는 기색이 없어 모두가 눈물을 훔치면서 팔을 휘두르며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나라를 깨뜨릴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지금 장군은 동쪽으로 봉지封地에서 바치는 조세가 있고 서쪽으로 치수淄水 가에서 노니는 즐거움이 있으며注+④ 이것은 대체로 안평安平의 식읍에 액읍夜邑을 더하여 받았음을 말한 것이다. 액읍은 안평의 동쪽에 있다. 치수는 안평의 서쪽에 있다. 액읍에서는 조세를 바침이 있고 치수 가에는 유람하는 즐거움이 있으므로 노중련魯仲連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황금 띠를 허리에 두르고 치수淄水승수澠水 사이에서 말을 타고 달려서注+은 음이 이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승수澠水익도益都 임치현臨淄縣에서 발원한다.”고 하였다., 사는 즐거움이 있고 죽으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기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전단이 다음 날 기운을 가다듬고 성을 순행하여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곳에 서서 북채를 당겨 북을 치니 사람들이 마침내 항복하였다.注+은 당긴다는 뜻이다. 는 음이 이니, 북을 치는 채이다.
[目]나라 왕이 악의樂毅와 함께 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도모하려고 하였는데, 악의가 울며 말하기를 “신이 지난날 소왕昭王을 섬겼던 일은 오늘날 대왕을 섬기는 일과 같습니다.注+주석疇昔전일前日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만약 다시 죄를 지어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평생토록 나라의 노예조차 감히 해치지 않을 것인데, 더구나 자손이겠습니까.” 하였다.
나라 왕이 이에 그만두고 악의를 관진觀津에 봉하고 망제군望諸君이라고 불러 존경하고 총애함으로써 나라와 나라를 각성시켰다.注+공환工喚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관진현觀津縣신도국信都國에 속한다.”고 하였다. 망제望諸는 늪지의 이름이다. 본래 나라 땅이었는데, 나중에 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악의樂毅나라에서 나라로 달아나 왔으므로 이것으로 그를 불러 그가 온 곳을 밝혔다.
나라 혜왕惠王나라가 악의를 기용하여 자신들이 피폐한 틈을 노릴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사람을 보내 악의를 꾸짖으면서 한편으로 사과하기를
“장군이 나라를 버리고 나라에 귀의하였으니, 스스로 계책을 세운 것은 괜찮지만, 선왕께서 장군을 대우했던 마음은 어떻게 갚겠는가?” 하니,
악의가 답서를 보내기를 “화를 면하고 공을 세워 선왕의 업적을 밝히는 것은 신의 가장 좋은 계책이고,
모욕적인 비방을 당해 선왕의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며注+는 만난다는 뜻이다. 화규火規이고, 와 같으니,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크나큰 죄를 짓고서 요행히 모면하는 것을 이롭다고 여기는 것은 의리상 감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注+은 도피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크나큰 죄를 짓고서 만약 요행히 면하는 것을 이롭다고 여긴다면 목숨을 바치는 의리를 저버리는 것임을 말하였다.
옛 군자는 교유를 끊을 때에 나쁜 말을 하지 않고注+⑤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않고 상대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충신은 나라를 떠날 때에 자신의 명성을 깨끗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注+과 같다. 충신이 본국을 떠나면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깨끗이 하여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하지 않음을 말하였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자주 군자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였다.
나라가 이에 다시 악의의 아들 악한樂間으로 창국군昌國君을 삼으니, 악의가 왕래하여 나라와 다시 통하더니 결국 나라에서 하였다.注+불녕不佞(재주 없다)은 부재不才와 같다. 은 음이 이다. 군자君子는 현자를 말한다. 은 음이 이다.
[綱]설공薛公 전문田文하였다.
[目] 처음에 나라 민왕湣王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맹상군孟嘗君(田文)을 제거하려고 하자 맹상군이 나라로 달아났다.
나라가 그를 재상으로 삼아 제후들과 함께 나라를 정벌하여 깨뜨렸다.
나라 양왕襄王이 나라를 수복함에 맹상군이 제후들 가운데에서 중립中立을 지키고 누구에게 소속되지 않았다.
양왕이 두려워하여 그와 화친을 맺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하였다.
여러 아들들이 왕위에 오르기를 다투자 나라와 나라가 함께 멸망시켰다.


역주
역주1 승거의 회합 : 乘車는 평상시에 타는 수레로, 제후가 우호의 회합 때에 타는 수레이다. ‘衣裳之會’라고도 한다. 이와 대칭되는 것으로 ‘병거의 회합[兵車之會]’이 있는데, 병거는 전쟁에 타는 수레로, 제후가 정벌하는 일로 회합할 때에 타는 수레이다.
역주2 : 탁
역주3 刎頸之交 : 생사를 함께하여 목이 잘려도 여한이 없는 친밀한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역주4 楊氏 : 北宋 때의 학자인 楊時(1053~1135)이다. 자는 中立, 호는 龜山, 시호는 文靖이다. 벼슬이 龍圖閣直學士에 이르렀다. 程子의 문인이다.
역주5 옛날……이르렀는데 : 周나라 太王이 일찍이 豳에 살 때에 狄人들이 침범하자, 幣帛과 犬馬와 珠玉을 가지고 그들을 섬겼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으므로, 끝내 豳을 버리고 岐山 아래로 가서 정착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 下》
역주6 의로움을……있다 : 의로운 일도 아니었고 진정한 용기라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孟子》 〈離婁 下〉에 “얼핏 보면 죽을 만하고, 자세히 보면 죽지 말아야 할 경우에 죽으면 용기를 해친다.[可以死 可以無死 死傷勇]” 하였다.
역주7 孔子가……아니겠는가 : 무모한 용기를 일컫는 말이다. 孔子가 子路에게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자와는 내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앞에 두었을 때 두려워할 줄을 알고 계획을 잘 세워서 일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라고 충고한 말이 있다. 《論語 述而》
역주8 혹자는……하였는데 : 蘇轍(1039~1112)의 〈藺相如廉頗李牧論〉에 “인상여는 전국시대의 일개 선비가 아니었다. 죽음으로써 의를 실천하여 강한 秦나라에 굴복하지 않았고, 예로써 나라를 다스려 염파와 비교하지 않았다. 그가 剛柔와 進退에 대처할 때에 道를 배운 사람 같았으니, 태평한 세상에 살았더라도 대신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국시대의 일개 선비가 아니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역주9 그런데……해치니 : 先王은 燕나라 왕 噲를 가리킨다. 연나라 왕 쾌 즉위 5년(B.C. 316)에 堯를 본받아 재상인 子之에게 나라를 禪讓하고 개혁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2년 뒤에 太子 平이 반란을 일으켜 일대 혼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틈탄 齊나라가 燕나라를 침입하여 쾌와 자지를 살해하였다.
역주10 : 배
역주11 : 사
역주12 任子 : 漢나라 때에 父兄의 공적에 따라 그 子弟를 관직에 추천하던 제도이다.
역주13 呂尙 : 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이다. 文王이 渭水 가에서 처음 만나 그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뒤에 武王을 도와 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하였다. 太公望 혹은 姜太公이라고도 부른다.
역주14 管夷吾 : 춘추시대 齊나라의 재상인 管仲이다. 齊나라 桓公을 도와서 富國强兵을 이루어 霸者가 되게 하였다.
역주15 棧道木閣 : 깎아지른 벼랑에 구멍을 뚫고 나무를 걸쳐서 길을 만든 것이다.
역주16 魯仲連 : 齊나라의 高士이다. 그가 趙나라에 가 있을 때 秦나라 군대가 趙나라의 수도인 邯鄲을 포위하였다, 이때 魏나라가 장군 新垣衍을 보내 秦나라 임금을 帝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이 “秦나라가 방자하게 帝를 칭한다면 나는 동해를 밟고 빠져 죽겠다.”라고 하니, 秦나라 장군이 이 말을 듣고 군사를 50리 뒤로 물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권83 魯仲連列傳》
역주17 夜邑(액읍) : 掖邑이라고도 한다. 齊나라 襄王이 전단에게 萬戶를 더해 준 封地가 바로 액읍이다.
역주18 : 승
역주19 : 휴
역주20 : 삭
역주21 : 한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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