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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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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亥年(B.C. 298)
계해년(B.C. 298)
十七年이라
[綱]나라 난왕赧王 17년이다.
楚頃襄王橫 趙惠文王何元年이라
[目]나라 경양왕頃襄王 나라 혜문왕惠文王 원년이다.
田文 自秦逃歸하다
[綱]전문田文나라에서 도망하여 돌아갔다.
謂秦王曰 文 相秦하니 必先齊而後秦하리니 秦其危哉인저 囚文欲殺之어늘
[目]혹인或人나라 에게 말하기를 “전문田文나라의 승상이 되었으니, 반드시 나라를 우선시하고 나라를 나중으로 하여 나라가 위태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전문을 가두어 죽이려고 하였다.
使人求解於王之幸姬하니 姬欲得其狐白裘로대 而文 先以獻於秦王矣注+狐白裘, 集狐腋之白毛爲裘, 美而難得者.
전문이 사람을 시켜 왕의 행희幸姬에게 풀어줄 것을 요구하니, 행희가 전문의 호백구狐白裘를 달라고 하였는데, 전문은 이미 그것을 나라 왕에게 바치고 없었다.注+호백구狐白裘는 여우의 겨드랑이 흰 털을 모아 만든 가죽옷으로 아름답고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文客 有善爲狗盜者盜裘以獻하니 姬言於王而遣之러니
전문의 문객門客 중에 개처럼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있어 호백구를 훔쳐 바치니 행희가 왕에게 말하여 보내게 하였다.
後悔하야 使追之한대
왕이 후회後悔하여 그를 뒤쫓게 하였다.
至關하니 關法 鷄鳴乃出客이라 時尙蚤 追者將至러니
전문이 관문關門에 도착하니, 관법關法에 닭이 울어야 을 내보내게 되어 있었는데, 때는 아직 이르고 추격하는 자는 장차 이르게 되었다.
客有善爲鷄鳴者 野鷄皆應之하니 乃得脫歸하다
문객 중에 닭 울음을 잘 내는 자가 있어 흉내를 내니 들의 닭들이 모두 울었으므로, 전문이 마침내 탈출하여 돌아올 수 있었다.
伐楚하야 取十六城하다
[綱]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열여섯 개를 빼앗았다.
楚人 告于秦曰 賴社稷神靈하야 國有王矣라하니 秦王 怒伐之하야 取十六城하다
[目]나라 사람이 나라에 고하기를 “사직社稷신령神靈함에 힘입어 나라에 왕이 있습니다.”라고 하니, 나라 이 화를 내고 정벌하여 열여섯 개를 빼앗았다.
齊韓魏伐秦하야 敗其軍於函谷關하니 河渭絶一日이러니
[綱]나라, 나라,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함곡관函谷關에서 나라 군대를 패배시키니 하수河水위수渭水가 하루 동안 끊어졌다.
割河東三城하야 以和하니 三國 乃退하다
나라가 하동河東의 세 을 떼어주고 화친을 하니 세 나라가 마침내 물러났다.
孟嘗君 怨秦하야 與韓魏攻之하야 入函谷關하니 秦昭王 謂丞相樓緩公子池曰注+昭王, 卽昭襄王. 三國之兵 深矣
[目]맹상군孟嘗君나라를 원망하여 나라와 나라와 함께 공격하여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가니 나라 소왕昭王승상丞相 누완樓緩공자公子 에게 말하기를注+소왕昭王은 바로 소양왕昭襄王이다. “세 나라의 군대가 깊이 쳐들어왔다.
寡人 欲割河東而講注+河東, 大河之東, 非郡名. 講, 古項切, 和解也.하노라 對曰 講亦悔 不講亦悔리이다
과인寡人하동河東을 떼어주고 강화講和하고자 한다.”注+하동河東대하大河의 동쪽이지 군명郡名이 아니다. 고항古項이니 화해和解함이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강화를 해도 후회하고, 강화를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王曰 何也 對曰 王 割河東而講하시면 三國 雖去 王必曰 惜矣
이 말하기를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왕이 하동을 떼어주고 강화하면 세 나라가 비록 가더라도 은 반드시 ‘아깝다.
三國 且去어늘 吾特以三城從之라하시리니 講之悔也
세 나라가 어차피 갈 것인데 내가 괜히 세 으로 따라주었다.’라고 하실 것이니, 이는 강화하고 하는 후회입니다.
不講하시면 三國 入函谷하야 咸陽 必危
왕이 강화하지 않으면 세 나라가 함곡관에 들어와 함양咸陽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입니다.
又曰 惜矣
그러면 왕은 또 말하기를 ‘아깝다.
吾愛三城而不講이라하시리니 不講之悔也니이다
내가 세 을 아껴 강화하지 않았구나.’라고 하실 것이니, 이는 강화하지 않고 하는 후회입니다.”라고 하였다.
王曰 鈞吾悔也 寧亡三城而悔언정 無危咸陽而悔也라하고 乃使公子池 以三城講於三國하다
왕이 말하기를 “모두 나의 후회이니 차라리 세 을 잃고 후회할지언정 함양을 위태롭게 하는 후회는 않겠다.”라고 하고, 마침내 공자公子 로 하여금 세 으로 세 나라에 강화를 하였다.
孟嘗君 欲借兵食於西周한대 蘇代爲西周하야 謂孟嘗君曰 君 攻楚九年注+九字誤, 當云六或五. 取宛葉以北하야 以彊韓魏注+宛, 音鴛. 葉, 式涉切. 班志 “二縣屬南陽郡.”하고 今復攻秦以益之하니
[目] 처음에 맹상군孟嘗君서주西周에서 군사와 식량을 빌리려고 하였는데, 소대蘇代서주西周를 위하여 맹상군에게 말하기를 “나라를 공격한 지 9년注+구자九字는 잘못되었으니, 이나 가 되어야 한다.이북以北을 빼앗아 나라와 나라를 강하게 하였고注+은 음이 이다. 식섭式涉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두 남양군南陽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지금 다시 나라를 공격하여 그들을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韓魏南無楚憂하고 西無秦患이면 則齊危矣리니
나라와 나라는 남쪽으로 나라에 대한 근심이 없고 서쪽으로 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으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君不如令敝邑深合於秦注+敝邑, 周也.하고 而君無攻하고 又無借兵食注+無攻, 俱出兵臨秦, 不用攻也. 無借兵食, 勿示秦以弱.하고
폐읍敝邑(西周)으로 하여금 나라와 깊게 화합하게 하면서注+폐읍敝邑나라이다.이 공격하지 않고 또 군사와 식량을 빌리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注+④ 공격하지 않는 것은 모두 출병하여 나라에 가서는 공격하지 않음이다. 군사와 식량을 빌리지 않는 것은 나라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이다.
臨函谷而無攻注+臨, 言以兵至其地.하고 令敝邑以君之情으로 謂秦王曰 薛公 必不破秦以彊韓魏
이 함곡관에 도착하여 공격하지 않고注+은 군대가 그 지역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폐읍으로 하여금 의 뜻으로 나라 에게 말하기를 ‘설공薛公은 반드시 나라를 깨트려서 나라와 나라를 강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其攻秦也 欲王之令楚王割東國以與齊注+東國, 卽下東國.하고 而秦 出楚王以爲和
그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왕이 나라 왕으로 하여금 동국東國을 떼어 나라에 주게 하고注+동국東國은 바로 이다., 나라도 ’라고 하게 하십시오.
秦得無破而以東國自免也라하면 秦必欲之리니
나라는 군대가 패배하지 않고 동국으로 스스로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면 나라는 반드시 하려고 할 것입니다.
楚王 得出이면 必德齊 齊得東國이면 益彊하리니 而薛 世世無患矣리라
나라 왕이 풀려나오면 반드시 나라에 고마워할 것이고, 나라는 동국을 얻으면 더욱 강해질 것이니, 이 대대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孟嘗君 從其計러니 會公子池來講解하니 遂罷兵하고 而秦 卒不出楚懷王하다
맹상군이 그 계책을 따르려고 하니, 마침 공자公子 가 와서 강화하여 드디어 군대를 철수하였는데, 나라가 끝내 나라 회왕懷王을 풀어주지 않았다.
蘇氏曰注+蘇氏, 名轍, 宋眉山人.
[目]소씨蘇氏(蘇轍)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注+소씨蘇氏는 이름이 이고 나라 미산眉山 사람이다.
戰國 以詐力相侵伐 二百餘年 兵出未嘗有名이라
“戰國시대에 속임수와 무력으로 서로 침략하고 정벌한 것이 200여 년 동안 출병出兵을 한 것이 일찍이 명분이 있은 적이 없었다.
秦昭王 欺楚懷王而囚之하야 要之割地호대 諸侯熟視하고 無敢以一言問秦者어늘
秦나라 昭王이 楚나라 懷王을 속여서 가두고 그에게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諸侯들은 익히 보기만 할 뿐 감히 한마디도 秦나라에 따지는 자가 없었다.
惟田文 免相於秦하야 幾不得脫하고 歸而怨之하야 借楚爲名하야 兵至函谷하니
오직 田文이 秦나라에서 정승을 그만두고 거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하다가 돌아와 원망하면서 楚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韓나라와 魏나라의 병사와 함곡관에 이르렀다.
秦人 震恐하야 割地講解하야 僅乃得免하니 自山東難秦으로 未有若此其壯者也注+難, 去聲, 猶難疑答問之難, 謂以文告之辭責之也.
秦나라 사람들이 놀랍고 두려워서 땅을 떼어 주고 講和하여 겨우 위험을 벗어났으니, 山東의 나라들이 秦나라를 어렵게 여긴 이래로 이처럼 씩씩하였던 일이 없었다.注+거성去聲이니, 의문을 설명하고 물음에 답한다고 할 때의 과 같다. 문고文告(文德으로 고유告諭)의 말로 따지는 것을 이른다.
夫兵 直爲壯 曲爲老 有名之兵 誰能禦之리오
使田文能奮其威 則是役也 齊可以霸어늘 惜其聽蘇代之計하야 臨函谷而無攻하야 以求楚東國하니 而出師之名 索然以盡이라
전문으로 하여금 그 위엄을 떨치게 하였으면, 이 전쟁에서 齊나라는 霸者가 되었을 것인데, 아깝게도 蘇代의 계책을 들어서 함곡관에 가서도 공격하지 않고 楚나라에 東國을 요구하였으니 군사를 출동시킨 명분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東國 旣不可得이요 而懷王 卒死於秦하니
동국을 이미 얻을 수 없었고 회왕이 끝내 秦나라에서 죽었다.
由此觀之컨대 秦惟不遇桓文이라 是以橫行而莫之制耳
이로 말미암아 살피건대 秦나라는 오직 齊나라 桓公과 晉나라 文公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秦나라가 橫行하는데도 막지 못했던 것이다.
世豈有大義而屈於不義哉리오
趙君 封弟勝爲平原君하다
[綱]나라 임금이 동생 을 책봉하여 평원군平原君으로 삼았다.
平原君 好士하니 食客常數千人注+ 勝封於東武城. 號平原君, 非封於平原也. 東武城屬淸河郡.이라
[目]평원군平原君이 선비를 좋아하여 식객食客이 항상 수천 명이었다.注+①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평원현平原縣평원군平原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동무성東武城에 봉해져서 평원군平原君이라 하였고 평원平原에 봉해진 것은 아니다. 동무성東武城청하군淸河郡에 속한다.
有公孫龍者善爲堅白同異之辯하니 平原君 客之注+荀子修身篇曰 “夫堅白同異之察, 非不察也.” 楊倞註云 “此言公孫龍曲說不可爲法. 其論曰 ‘視石, 但見白, 不知其堅. 觸石則知其堅而不知其白.’ 是堅白終不可合爲一也. 司馬彪曰 ‘同異, 謂使異者同, 同者異.’”러니
공손룡公孫龍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견백堅白동이同異의 변론을 잘하니 평원군이 그를 으로 대우하였다.注+② 《순자荀子》 〈수신편修身篇〉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다. 양경楊倞의 주석에 “이것은 공손룡公孫龍의 왜곡된 말은 올바른 법이 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공손룡의 의론에 ‘눈으로 돌을 보면 흰색만 볼 뿐 그 단단함은 모르고, 손으로 돌을 만지면 단단함만 알 뿐 그 흰색은 모른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단단함과 흰색은 결국 합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마표司馬彪가 말하기를 ‘동이同異는 다른 것을 같게 하고 같은 것을 다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했다.” 하였다.
孔子之玄孫穿 自魯適趙하야 與龍論臧三耳注+, 古通用. 三, 謂堅白石. 耳, 語辭. 公孫龍子堅白論篇云 “天下無白, 不可以視石. 天下無堅, 不可以謂石. 堅‧白‧石, 不相外, 臧可乎.” 一說 “臧, 臧獲之臧. 耳, 主聽. 兩耳, 形也. 兼聽而言可得爲三.”할새 甚辯析이어늘
공자孔子현손玄孫 穿나라에서 나라로 가서 공손룡과 함께 “장삼이臧三耳”의 명제를 가지고 논변하였는데注+은 옛날에 통용하였다. 이 별개인 것과 같이 말한 것이다. 어사語辭이다. 《공손용자公孫龍子》 〈견백론편堅白論篇〉에 이르기를 “천하天下에 흰색이 없으면 돌을 볼 수 없고, 천하天下에 단단함이 없으면 돌이라 할 수 없다. 은 서로 한계를 구분하지 않으니 두 개를 감추는 것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장획臧獲(사내종과 계집종)의 이고, 는 청각을 주관한다. 실재하는 두 귀는 귀의 형체를 가지고 말한 것이고, 여기에다 청각의 기능을 하는 귀를 합치면 셋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공손룡이 분석을 매우 잘하였다.
穿 弗應한대 平原君 問之하니 穿 曰 幾能令臧三耳矣注+幾令, 竝平聲.로다
穿이 대응하지 않았는데, 평원군이 그 까닭을 물으니 穿이 말하기를 “하마터면 노비는 귀가 셋이라고 할 뻔하였습니다.注+(하마터면)와 (하여금)은 모두 평성平聲이다.
然謂三耳甚難而實非也 謂兩耳甚易而實是也注+易, 去聲.
그러나 노비가 귀가 셋이라고 하면 매우 어렵고 실제로 잘못이며, 노비가 귀가 둘이라고 하면 매우 쉽고 실제로 사실입니다.注+(쉽다)는 거성去聲이다.
不知君 將從易而是者乎 其亦從難而非者乎
이 장차 쉽고 옳은 것을 따를 것인지, 또는 어렵고 잘못된 것을 따를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平原君 謂龍曰 公 無復與孔子高辯事也注+子高, 孔穿字.하라
평원군이 공손룡에게 이르기를 “은 다시는 공자고孔子高(孔穿)과 함께 일을 변론하지 마시오.注+자고子高공천孔穿이다.
其人 理勝於辭하고 辭勝於理하니
공자고는 이치가 말솜씨보다 뛰어나고, 공은 말솜씨가 이치보다 뛰어납니다.
辭勝於理하면 終必受詘注+詘, 辭塞也.이니라
말솜씨가 이치보다 뛰어나면 끝내는 반드시 굴복할 것입니다.”注+은 말이 막힘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下東國 : 303쪽 訓義 ② 참조.
역주2 楚나라 왕을……것입니다 : 楚 懷王이 秦나라에 억류된 사건은 赧王 16년조 참조.
역주3 전쟁은……쇠퇴하니 :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晉나라의 子犯이 “師直爲壯 曲爲老”라고 하였다.
역주4 戰國시대에……굽히겠는가 : 蘇轍의 〈古史論〉 중 孟嘗君에 대한 평론에 보인다.
역주5 무릇……것이다 : 《荀子》에는 이 문장 뒤에 “그러자 군자가 논변하지 않는 것은 그칠 곳을 알기 때문이다.[君子不辨 止之也]”라 하였다.
역주6 (縣屬平原班志平原郡)[班志平原縣屬平原郡] : 저본에는 ‘縣屬平原班志平原郡’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班志平原縣屬平原郡’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는데 《公孫龍子》 〈堅白論〉에는 ‘三’으로 되어 있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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