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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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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午年(106)
병오년丙午年(106)
孝殤皇帝延平元年이라 春正月 以張禹爲太傅하고 徐防爲太尉하여 參錄尙書事하다
나라 효상황제 연평孝殤皇帝 延平 원년이다. 봄 정월에 장우張禹태부太傅로 삼고 서방徐防태위太尉로 삼아서 녹상서사錄尙書事에 참여하게 하였다.
太后以帝在襁褓라하여 欲令重臣居禁内하여 乃詔禹舍宮中하여 五日一歸府하고 毎朝見 特贊하여 與三公絶席注+特贊者, 每朝見, 贊拜者先獨贊禹名, 旣乃贊太尉名以下, 禹不與三公同贊也. 絶席者, 朝位獨在百僚上, 不與三公聯席也.하다
태후太后는 황제가 어려서 포대기 안에 있다 하여 중신重臣금내禁内에 거처하게 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장우張禹에게 조령詔令을 내려 궁중宮中에 머물면서 5일에 한 번 에 돌아가게 하고, 매번 조회에서 알현할 적에 특찬特贊하여 삼공三公과 자리를 따로 하게 하였다.注+특찬特贊이란 매번 조회에서 알현할 적에 하는 자가 먼저 장우張禹의 이름만 부르고, 그 뒤에 비로소 태위太尉의 이름 이하를 불러서 장우가 삼공三公과 함께 같이 하지 않은 것이다. “절석絶席”은 조회하는 자리가 홀로 백료百僚의 위에 있어서 삼공三公과 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것이다.
封帝兄勝하여 爲平原王하다
】 황제의 형 유승劉勝을 봉하여 평원왕平原王으로 삼았다.
◑以梁鮪爲司徒하다
양유梁鮪(양유)를 사도司徒로 삼았다.
◑三月 葬愼陵注+陵, 在陽東南三十里.하다
】 3월에 화제和帝신릉愼陵에 장례하였다.注+신릉愼陵낙양雒陽 동남쪽 30리 지점에 있다.
胡氏曰 和帝幼冲 能誅竇憲하니 自是 威權不失하여 無大過擧하고 尊信儒術하며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화제和帝가 어릴 적에 두헌竇憲을 주벌하였는데, 이로부터 위엄과 권세를 잃지 아니하여 크게 잘못된 행실이 없고 유술儒術을 높이고 믿었으며
友愛兄弟하고 禮賢納諫하여 中國하니 方之章帝 實過之矣로다
형제간에 우애하고 어진 이를 예우하고 간언을 받아들여서 중국中國이 편안하게 다스려졌으니, 장제章帝와 비교해보면 훨씬 낫다.”
清河王慶 就國하니 特加殊禮注+殊, 異也, 其禮異於諸王也.하다
청하왕 유경清河王 劉慶봉국封國으로 나아가니, 특별히 별다른 를 가하였다.注+는 특이함이니, 여러 왕들에 비하여 별다르게 예우한 것이다.
慶子祜年十三이라 太后以帝幼弱이라하여 遠慮不虞하고 留祜하여 與嫡母耿姬 居清河邸하니 況孫也注+祜母, 犍爲左姬也.
유경劉慶의 아들 유호劉祜가 13살이었는데, 태후太后는 황제가 유약하다 하여 멀리 뜻밖의 일을 염려하고 유호를 〈봉국封國으로 내보내지 않고〉 남겨두어 경희耿姬와 함께 청하왕清河王의 저택에 거처하게 하니, 경희는 경황耿況의 손녀이다.注+유호劉祜의 어머니는 건위군犍爲郡 사람 좌희左姬이다.
夏四月 하다
】 여름 4월에 예전禮典에 없는 사관祀官을 파하였다.
太后雅不好淫祠러라
태후太后가 평소 음사淫祠를 좋아하지 않았다.
鮮卑寇漁陽하니 太守張顯 戰没하다
선비鮮卑어양漁陽을 침범하니, 태수 장현太守 張顯이 싸우다가 죽었다.
鮮卑入寇어늘 張顯 率數百人하여 出塞追之할새
선비鮮卑가 들어와 침략하자, 장현張顯이 수백 명을 거느리고 변방을 나가 추격하였다.
掾嚴授諫호되 不聽하고 進兵이라가 遇虜伏發하여 士卒 悉走하니 唯授力戰而死하다
이때 연리掾吏엄수嚴授가 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진군하였다가 오랑캐의 복병을 만나서 사졸들이 모두 달아나니, 엄수만 힘써 싸우다가 죽었다.
主簿衛福 功曹徐咸 皆自投赴顯하여 俱殁於陳하다
주부 위복主簿 衛福공조 서함功曹 徐咸은 모두 장현에게 달려가서 진영에서 함께 죽었다.
以鄧騭爲車騎將軍儀同三司注+三司, 三公也. 儀同三司之名, 始此.하다
등즐鄧騭(등즐)을 로 삼았다.注+삼사三司삼공三公이니, 의동삼사儀同三司란 이름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
◑司空寵하다
사공 진총司空 陳寵하였다.
◑五月 河東垣山注+賢曰 “垣縣, 今絳州縣也.”하다
】 5월에 하동河東에 산이 무너졌다.注+이현李賢이 말하기를 “원현垣縣은 지금의 강주현絳州縣이다.” 하였다.
◑以尹勤爲司空하다
윤근尹勤사공司空으로 삼았다.
◑雨水하다
】 큰비가 내렸다.
◑減用度하고 遣宮人하다
용도用度를 줄이고 궁인宮人을 내보냈다.
太后詔減太官, 導官, 尙方, 内署 諸服御, 珍膳, 靡麗難成之物注+太官, 典天子御膳. 導, 擇也. 導官, 掌擇御米. 尙方, 掌作御刀劍諸器物. 內署, 掌內府衣物. 珍膳, 謂八珍之饌.하고 自非陵廟 米不得導擇하고 朝夕 一肉飯而已
태후太后조령詔令을 내려 태관太官, 도관導官, 상방尙方, 내서内署에서 사용하는 여러 복식과 거마車馬와 진귀한 음식, 화려하여 만들기 어려운 물건을 줄이고注+태관太官천자天子의 음식을 관장하였다. 는 택함이니, 도관導官은 임금에게 올리는 쌀을 정선精選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상방尙方은 황제가 쓰는 도검刀劍과 여러 기물을 만드는 일을 관장하고, 내서內署내부內府의 의복과 물건을 관장하였다. 진선珍膳팔진미八珍味의 음식을 이른다., 만약 능묘陵廟에 올리는 것이 아니면 쌀을 정선精選하지 못하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한 그릇의 고기와 밥만 올리게 하였다.
郡國所貢 皆減過半하고 斥賣上林鷹犬注+斥, 棄也, 不用也. 斥賣, 謂不用而賣之. 東都亦有上林苑, 在雒陽西.하며 離宮, 别館 儲峙米炭 悉令省之하라
군국郡國에서 바치는 것은 모두 절반 이상을 줄이고 상림원上林苑에서 기르는 매와 사냥개를 내다 팔았으며注+은 버림이요 사용하지 않음이니, “척매斥賣”는 사용하지 않고 팖을 이른다. 동도東都(후한後漢)에도 상림원上林苑이 있었는데, 낙양雒陽 서쪽에 있었다., 이궁離宮별관别館에 저축되어 있는 쌀과 숯을 모두 줄이도록 하였다.
又詔免遣掖庭宮人及宗室没入者하여 皆爲庶民注+沒入者, 謂坐事沒入者.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액정掖庭(궁중宮中)의 궁인宮人종실宗室 중에 적몰籍沒된 자들을 방면하여 모두 서민庶民으로 삼았다.注+몰입沒入”은 일에 연좌되어 죄를 받아서 적몰된 자를 이른다.
秋七月 詔實覈傷害하여 除其田租하다
】 가을 7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백성들의 상해傷害를 사실대로 조사해서 전조田租를 면제하게 하였다.
詔曰 間者 水災害稼하니 朝廷憂懼어늘 而郡國 欲獲虛譽하여 遂多張墾田하고 競增戶口하고 掩匿盜賊이라
】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렸다. “근자에 수재水災로 농사에 폐해를 입으니 조정朝廷은 이를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군국郡國에서는 헛된 명예를 얻고자 해서 개간한 밭을 많이 부풀리고 호구 수를 다투어 늘리고 도적을 숨기고 있다.
貪苛慘毒하여 延及平民注+平民, 謂善人也.이로되 刺史垂頭塞耳하여 阿私下比하니 不畏于天하고 不愧于人注+阿黨爲比.
탐욕스럽고 가혹한 정사가 참혹해서 화가 평민에게까지 미치는데도注+평민平民선인善人을 이른다., 자사刺史는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고서 아당阿黨하여 비호하고 있으니, 하늘이 두렵지 않고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가.注+〈“아사하비阿私下比”는〉 아당阿黨하여 빌붙는 것이다.
自今以後 將糾其罰호리니 其各實覈所傷害하여 爲除田租注+實覈者, 審考其實也. 爲, 去聲.하라
지금으로부터 이후로는 장차 그 벌을 살펴서 바로잡을 것이니, 각각 폐해를 입는 것을 사실대로 조사해서 전조田租를 면제하도록 하라.”注+실핵實覈”은 그 실제를 살펴 상고하는 것이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八月 帝崩注+壽, 二歲.하니 注+猶者, 可止之辭.하다
】 8월에 황제가 하니注+향년이 2세였다., 태후太后청하왕清河王의 아들 유호劉祜를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다. 그런데도 태후는 여전히 임조臨朝하였다.注+는 그만둘 수 있다는 말이다.
后與兄騭 定策禁中하고 迎祜하여 拜長安侯하여 立以爲和帝嗣注+不卽立爲天子而封侯者, 不欲從微卽登皇位, 用立孝宣帝故事也.하다
태후太后는 오라비인 등즐鄧騭과 함께 금중禁中에서 계책을 정하고 유호劉祜를 맞이하여 장안후長安侯로 봉하고서 세워 화제和帝의 후사로 삼았다.注+즉시 천자天子로 세우지 않고 에 봉한 것은, 미천한 신분에서 곧바로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하고 싶지 아니하여 를 따른 것이다.
조령詔令을 내려 등씨鄧氏의 빈객을 조사하여 단속하게 하였다.
詔司隷校尉, 河南尹, 南陽太守하여 曰 毎覽前代호니 外戚賓客 濁亂奉公하여 爲民患苦하니
사례교위司隷校尉, 하남윤河南尹, 남양태수南陽太守에게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렸다. “매번 전대前代를 보건대, 외척들의 빈객이 공직公職을 받드는 사람들을 어지럽혀서 백성의 근심과 고통이 되었으니,
咎在執法怠懈하여 不輒行其罰故也注+濁亂奉公, 言其挾勢恣橫, 奉公之吏, 爲所濁亂也. 今宗門廣大하여 姻戚不少하고 賓客姦猾하여 多干禁憲하니
이 허물은 법을 집행하는 자가 태만하여 번번이 그 벌을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탁란봉공濁亂奉公”은 세력을 믿고 함부로 행동하여, 공직을 행하는 관리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지금 외척의 종문宗門(종족宗族)이 광대해서 인척들이 적지 않고 빈객들이 간활姦猾하여 국금國禁과 법령을 범하는 경우가 많으니,
其明加檢勅하여 勿相容護하라 自是 親屬 犯罪 無所假貸러라
분명하게 조사하여 단속해서 서로 용납하고 비호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로부터 친속들이 죄를 범하면 용서하지 않았다.
九月 大水하다
】 9월에 홍수가 졌다.
◑葬康陵注+康陵, 在愼陵塋中庚地. 或曰 “康當作庚.”하다
강릉康陵상제殤帝를 장례하였다.注+강릉康陵신릉愼陵 묘역의 경지庚地(서쪽 지역)에 있다. 혹자는 “자는 마땅히 자가 되어야 한다.” 하였다.
以連遭大憂하여 百姓苦役이라하여 方中秘藏及諸工作 減十之九注+連遭大憂, 謂和帝ㆍ殤帝崩也. 方中, 陵中也, 凡天子之葬, 掘地爲方壙, 謂之方中. 藏之中, 故言秘也.하다
국상國喪을 연달아 만나서 백성들이 부역에 괴롭다 하여, 안에 비장秘藏할 물건과 여러 공작물을 10분의 9를 줄였다.注+연조대우連遭大憂”는 화제和帝상제殤帝함을 이른다. “방중方中”은 안이다. 무릇 천자天子의 장례에는 땅을 파서 네모진 구덩이를 만드는데, 이것을 방중方中이라 한다. 무덤 안에 넣기 때문에 라고 말한 것이다.
隕石于陳留하다
진류陳留운석隕石(운석)이 떨어졌다.
◑冬十月 大水, 雨雹하다
】 겨울 10월에 홍수가 지고 우박이 쏟아졌다.
◑十二月 清河王慶하다
】 12월에 청하왕 유경清河王 劉慶(안제安帝생부生父)이 하였다.
의 놀이를 하였다.
◑詔擧隱逸하고 選博士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은일隱逸을 천거하고 박사博士를 선발하게 하였다.
樊準 上疏曰注+準, 宏之族曾孫也. 聞人君 不可以不學이니이다 光武皇帝 受命中興하사 不遑啟處 然猶投戈講藝하고 息馬論道注+藝, 六藝也.하시고
번준樊準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注+번준樊準번굉樊宏족증손族曾孫이다.이 듣건대, 인군人君은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광무황제光武皇帝는 천명을 받고 중흥中興하시어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었는데도 무기를 내려놓고 육예六藝(육경六經)를 강하고 말을 쉬면서 를 논하셨고注+육예六藝이다.,
孝明皇帝 庶政萬機 無不簡心注+簡, 閱也.이로되 而垂情古典하고 游意經藝하사 正坐自講 諸儒竝聽하여 化自聖躬하여 流及蠻荒하니이다
효명황제孝明皇帝는 여러 정사의 만기萬機를 마음에 두지 않음이 없으셨는데도注+은 하나하나 살핌이다. 고전古典에 마음을 드리우고 경예經藝에 뜻을 두시어 똑바로 앉아 직접 강론함에 여러 유자儒者들이 함께 들어서 교화가 성상聖上의 몸으로부터 시작되어 먼 오랑캐에게까지 미쳤습니다.
今學者益少하고 遠方尤甚하여 博士倚席不講하고 儒者競論浮麗注+倚席, 謂不施講坐也.하니 宜博求幽隱하고 寵進儒雅하여 以俟聖上講習之期注+時帝始年十三, 故請求儒雅, 以俟講習.니이다
그런데 지금은 배우는 자가 더욱 적고 먼 지방은 더욱 심하여 박사博士들이 자리에 기대어 강하지 않고 유자儒者들이 다투어 화려함을 논하니注+의석倚席”은 강론하는 자리를 설치하지 않음을 이른다., 마땅히 은둔한 선비들을 널리 구하고 고상한 유학자儒學者들을 총애하여 나아오게 해서 성상聖上이 강습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注+이때 황제가 비로소 나이가 13세가 되었으므로, 고상한 유학자를 구하여 강습講習을 기다릴 것을 청한 것이다.
太后深納其言하여 詔公, 卿, 中二千石하여 各擧隱士, 大儒호되 務取高行하여 以勸後進하고 妙簡博士하여 必得其人注+妙, 精也. 簡, 擇也.케하다
태후太后가 그의 말을 깊이 받아들여 , 중이천석中二千石에게 명해서 각각 은사隱士대유大儒를 천거하게 하되, 되도록 행실이 높은 자를 취하여 후진後進들을 권면하고, 박사博士하게 선발해서 반드시 적임자를 얻게 하였다.注+함이고, 은 선발함이다.
역주
역주1 贊拜 : 신하가 황제에게 절할 적에 相者가 옆에서 절하는 禮를 불러줌을 이른다. 相者는 贊者와 같은 말로 禮를 돕는 자를 이른다.
역주2 (維)[雒] : 저본에는 ‘維’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雒’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又)[乂] : 저본에는 ‘又’로 되어 있으나, ≪性理大全書≫에 의거하여 ‘乂’로 바로잡았다.
역주4 嫡母 : 庶子가 아버지의 嫡妻를 이르는 말이다.
역주5 罷祀官不在禮典者 : “淫祀(禮制에 맞지 않는 제사)를 파한 것이 成帝 때(建始 2년) ‘罷陳寶祠(陳寶의 사당을 파하다.)’라고 쓴 뒤에 이때 다시 보인다. 그러므로 ≪資治通鑑≫에는 쓰지 않았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 특별히 썼으니, 이는 太后를 어질게 여긴 것이다.[罷淫祀也 自成帝書罷陳寶祠 於是再見 故通鑑不書 綱目特書之 所以賢太后也]다” ≪書法≫
역주6 車騎將軍 : 前漢 文帝 때 처음 설치된 고위 장군의 관직으로 지위가 大將軍과 驃騎將軍의 다음이었다. 京師의 수비를 담당하여 궁궐의 호위를 관장하였다.
역주7 儀同三司 : 散官의 명칭이다. 三司는 곧 三公으로, 漢나라 때에는 太尉, 司徒, 司空을 三司라고 하였는바, 본래 三司는 아니지만 儀制를 그와 동등하게 맞추는 것을 이른다.
역주8 太后迎……猶臨朝 : “‘太后迎’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太后의 사욕을 드러낸 것이다. 殤帝에게는 형이 있고 병은 또 고질병이 아니었는데, 유독 오라비 鄧騭과 함께 禁中에서 계책을 정하여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어기고 劉祜를 세웠으니, 이것을 사욕이라고 여겨 특별히 ‘太后’라고 쓴 것이다. 殤帝의 초기에 太后가 臨朝하였는데, 여기에서 ‘猶臨朝’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太后를 나쁘게 여긴 것이다. 어찌하여 나쁘게 여겼는가. 安帝(劉祜)가 이때에 13세였는데도 여전히 臨朝하였으니, 특별히 ‘猶’라고 쓴 것은 정사를 돌려줄 수 있는데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書太后迎 何 太后私也 殤帝有兄 疾又非痼 獨與兄騭 定策禁中 違衆而立祜焉 以是爲私也 故特書太后 殤帝之初 太后臨朝矣 此其書猶臨朝 何 病太后也 曷爲病之 安帝於是亦十三年矣 而猶臨朝 特書曰猶 以爲可歸政而不歸也]” ≪書法≫ “≪春秋≫의 傳에 ‘猶는 그만둘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였다. 이때에 安帝의 春秋가 13세였으니, 만약 大臣이 보필하면 스스로 여러 정사를 직접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太后가 臨朝한 것을 ≪資治通鑑綱目≫에서는 ‘猶’라고 써서 비난한 것이다. 아, 鄧太后와 같이 어진 사람도 君子가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하물며 이보다 낮은 자에 있어서이겠는가.[春秋傳曰 猶者 可已之辭也 是時 安帝春秋十三 若輔以大臣 自可躬親庶政 故太后臨朝 綱目書猶以譏之爾 嗚呼 賢如鄧氏 君子猶不之予 況下於此者乎]“ ≪發明≫
역주9 孝宣帝를……故事 : 孝宣帝는 武帝의 증손이고 반역을 일으켰다가 죽은 戾太子의 손자로 이름이 病已였는데, 戾太子의 자손이 반역에 연루되어 모두 죽었으나, 병이만은 廷尉 丙吉의 주선으로 죽지 않을 수 있었다. 昭帝가 武帝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별세하자, 昌邑王 劉賀를 영립하여 대통을 잇게 하였으나, 荒淫無道하므로 병이를 옹립하였다. 이때 太后가 병이를 陽武侯로 봉하였다가 즉위시켰다.
역주10 詔檢勅鄧氏賓客 : “특별히 쓴 것이니, 太后가 이에 어질었다.[特筆也 太后於是賢矣]” ≪書法≫ “鄧氏는 어진 德이 있다고 자처하였으므로 친정 집안을 매우 엄하게 단속하였는데, 이것을 책에 썼으니 또한 그 아름다움을 다소나마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釋然히 정사를 돌려준 것만 못하다.[鄧氏以賢德自居 故檢勅其家 爲甚嚴 書之于冊 亦足少見其美 然未若釋然歸政之爲愈也]” ≪發明≫
역주11 (家)[冢] : 저본에는 ‘家’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冢’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2 魚龍과 曼延 : 모두 놀이의 이름으로, 어룡은 舍利(猞猁)라는 짐승의 모형을 만들어서 뜰의 끝에서 놀이를 하고, 이어 궁전 앞으로 들어와서 물을 격동시키면 比目魚로 변하여 뛰면서 물을 뿜어 안개를 만들어 태양을 가렸다가, 다시 8길[丈]의 黃龍으로 변해서 물에서 나와 뜰에서 마음껏 노는 놀이이다. 만연은 원래 짐승의 이름으로 100길[丈]을 뛰어넘는 놀이이다.
역주13 罷魚龍曼延戲 : “武帝 때에 ‘魚龍과 曼延의 놀이를 만들었다.’고 쓰고 이때 ‘罷했다.’고 썼으니, 이는 찬미한 것이다. 그러나 隋나라가 天下의 온갖 놀이를 찾았을 적에 魚龍의 놀이가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 기이하고 음탕한 습관이 사람들에게 깊이 침투한 것이다. ‘罷戲’라고 쓴 것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自武帝書作魚龍曼延 於是書罷 美之也 然隋徴天下散樂 而魚龍之戲尙存 則奇淫之習 入人者深矣 書罷戲 始此]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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