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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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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申年(B.C. 109)
임신년(B.C. 109)
二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봉元封 2년이다.
冬十月 帝祠五畤하고할새 祠泰一하여 以拜德星하다
겨울 10월에 황제가 오치五畤에 제사하고 돌아오면서 태일泰一에 제사하여 덕성德星에 절하였다.
◑ 春 如東萊하다
[綱] 봄에 황제가 동래東萊에 갔다.
公孫卿 言見神人東萊山하니 若云欲見天子라하여늘
[目] 공손경公孫卿이 말하기를 “동래산東萊山에서 신인神人을 만났는데, 마치 천자를 뵙고 싶다고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하였다.
於是 幸東萊하여宿留數日호되 無所見注+宿留, 音秀溜, 謂有所須待也.이라
이에 황제가 동래산東萊山에 가서 며칠 동안 머물며 기다렸으나 보이는 바가 없었다.注+숙류宿留”는 음이 수류秀溜이니, 기다리는 바가 있음을 이른다.
復遣方士하여 求神怪하고 采芝藥 以千數러라
다시 방사方士를 보내어 신괴神怪함을 구하고 영지靈芝의 약을 채취하게 한 것이 천여 명으로 헤아려졌다.
歲旱이라 天子旣出無名하니 乃禱萬里沙하고할새 過祠泰山注+萬里沙, 神祠也, 在東萊曲城縣, 沙徑三百餘里.하다
때마침 이해에 가뭄이 들어서 천자가 출행할 명분이 없어지니, 마침내 만리사萬里沙에서 기도하고 지나오는 길에 태산泰山에 제사하였다.注+만리사萬里沙의 사당이니, 동래東萊 곡성현曲城縣에 있는데 백사장의 길이 300여 리이다.
할새 臨塞決河하고 築宣防宮하다
[綱] 여름에 황제가 돌아올 적에 직접 왕림하여 터져 있던 황하를 막고 선방궁宣防宮을 지었다.
河決瓠子하여 二十餘歲不塞하니 梁楚尤被其害
[目] 처음에 황하가 호자瓠子에서 터져서 20여 년 동안 막지 못하니, , 지방에서 더욱 심하게 폐해를 입었다.
是歲 發卒數萬人하여 塞之러니 自泰山還할새 自臨決河하여 沈白馬玉하고 令群臣負薪하여 卒塡決河하여 築宮其上하고 名曰宣防注+塡, 大千切. 宣防, 義取宣導防壅也.이라하고
이해에 수만 명의 병졸을 동원하여 이를 막았는데, 황제가 태산泰山에서 돌아올 적에 직접 황하가 터진 곳에 왕림하여 백마白馬옥벽玉璧을 황하에 던져 에게 를 올렸으며, 신하들로 하여금 나무 섶을 지고 오게 하여 마침내 터진 황하에 흙을 메꾸어 막고는 그 위에 궁궐을 짓고 이름을 선방궁宣防宮이라 하였다.注+(메우다)은 대천大千이다. 선방宣防은 뜻이 물길을 인도하고 범람함을 막음을 취한 것이다.
導河北行二渠하여 復禹舊迹注+二渠, 河東渠, 龍首渠也. 河渠書 “禹厮二渠, 以引其河.” 註 “厮, 分也. 二渠, 一出貝丘西南, 南折者也, 一則漯川也.” 復, 音服, 還也.하다
또 〈황하의 물길을〉 황하의 북쪽으로 흐르는 두 구거溝渠로 인도해서 우왕禹王의 옛 자취를 회복하였다.注+이거二渠(두 구거溝渠)”는 하동거河東渠용수거龍首渠이다. 《사기史記에 “우왕禹王이 두 구거溝渠를 나누어서 황하를 인도했다.” 하였는데, 에 “는 나눔이다. 두 구거는 하나는 패구貝丘의 서남쪽에서 발원하니 남으로 꺾어 흐르고, 하나는 탑천漯川이다.” 하였다. 은 음이 이니, 회복함이다.
至長安하여 立越祠하다
[綱] 황제가 장안長安에 이르러 나라의 사당을 세웠다.
越人勇之言注+勇之, 名也, 越巫.호되 越俗 皆見鬼有效注+謂越土之俗, 凡祠祭, 必見鬼而有驗.하고 東甌王 敬鬼得壽라하니 乃令立越祠하고 亦祠天神, 上帝, 百鬼而用鷄卜注+越俗, 用鷄卜. 正義曰 “鷄卜, 法用鷄一狗一, 生祝願訖, 卽殺鷄狗, 煮熟又祭, 獨取鷄兩眼骨, 上自有孔, 裂似人物形則吉, 不足則凶.”하다
[目] 나라 사람 용지勇之가 아뢰기를注+용지勇之는 이름이니, 나라의 무당이다. 나라의 풍속은 제사를 지내면 모두 귀신을 보아 효험이 있고,注+〈“월속越俗 개견귀유효皆見鬼有效”는〉 나라 지방의 풍속은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귀신을 보고 영험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동구東甌은 귀신을 공경하여 장수합니다.” 하니, 황제가 이에 명하여 나라의 사당을 세우고, 천신天神상제上帝와 여러 귀신에게도 제사하면서 닭을 사용하여 점을 치게 하였다.注+나라의 풍속은 닭을 사용하여 점을 친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닭으로 점치는 방법은 닭 한 마리와 개 한 마리를 사용하는데, 산 채로 축원을 마친 다음 즉시 닭과 개를 잡아서 삶아 또다시 제사하고, 제물 중에 오직 닭의 두 눈 주위의 뼈만 채취한다. 이때 뼈 위에 저절로 구멍이 생기는데, 찢어진 것이 사람과 물건의 형태와 비슷하면 길하고, 찢어진 것이 부족하면 흉하다.” 하였다.
注+蜚廉, 神禽也, 能致風氣. 身如鹿, 頭如雀, 有角而蛇尾, 文如豹文. 帝以銅鑄像, 置觀上, 因以爲名. 觀, 音貫, 桂觀, 卽桂宮. 蜚廉‧桂觀, 俱在長安城中, 近北宮. 莖, 音行. 漢書, 無莖字, 疑衍. 臺, 在甘泉宮, 高百餘丈, 若與天通, 故名通天. 臺上, 有承露盤, 仙人掌, 擎玉杯, 以承雲表之露.하다
[綱] 비렴관蜚廉觀, 계관桂觀, 통천경대通天莖臺(통천행대)를 만들었다.注+비렴蜚廉신금神禽(신조神鳥)이니, 바람과 구름을 불러올 수 있다 한다. 신금神禽의 몸은 사슴과 같고 머리는 참새와 같고 뿔이 있으며, 뱀의 꼬리이고 문채는 표범 무늬와 같다 한다. 황제(무제)가 구리로 비렴蜚廉의 상을 주조해서 의 위에 두고 인하여 비렴관蜚廉觀이라고 이름하였다. (누각)은 음이 이니, 계관桂觀은 바로 계궁桂宮이다. 비렴관蜚廉觀계관桂觀은 모두 장안성長安城 안에 있었으니, 북궁北宮과 가까웠다. 은 음이 이다. 《한서漢書》에는 자가 없으니, 의심컨대 연자衍字인 듯하다. 통천경대通天莖臺감천궁甘泉宮에 있었으니, 높이가 백여 길[]이어서 마치 하늘에 닿을 듯하였으므로, 이름을 통천通天이라 한 것이다. 위에 승로반承露盤선인장仙人掌이 있는데, 옥잔을 받들어 구름 위에 있는 이슬을 받게 하였다.
公孫卿 言仙人好樓居라하니 於是 令長安甘泉 作諸臺觀하고 使卿으로 持節設具而候神人하여 益廣諸宮室하다
[目] 공손경公孫卿이 말하기를 “신선(선인仙人)은 누대樓臺에서 살기를 좋아합니다.” 하니, 이에 장안長安감천甘泉에 여러 대관臺觀을 짓게 하고, 공손경公孫卿으로 하여금 을 잡고 도구들을 진설하고 신인神人을 기다리게 하고는, 여러 궁실을 더욱 넓혔다.
朝鮮 襲殺遼東都尉하다
[綱] 조선朝鮮이 습격하여 요동도위遼東都尉를 죽였다.
全燕之世 嘗略屬眞番, 朝鮮하여 爲置吏築障塞注+全燕之世, 謂六國之際, 燕方全盛時也. 略屬, 謂略二國以屬己也. 番, 普安切, 眞番, 東夷國名, 與燕相接. 朝鮮, 亦東夷國名. 朝, 音潮, 鮮, 音仙, 其地有仙水. 故名, 卽武王封箕子之地. 一說 “居東表日出之地, 故名.” 爲, 去聲, 下爲其同.러니 秦滅燕 屬遼東外徼하다
[目] 처음 전국戰國시대 나라의 전성기에 일찍이 나라가 진번眞番조선朝鮮을 경략하여 복속시켜 관리를 두고 성과 요새를 구축했었는데,注+전연지세全燕之世”는 의 때에 나라가 전성할 때를 이른다. “약속略屬”은 진번眞番조선朝鮮 두 나라를 점령하여 자기의 영지로 복속시킴을 이른다. 보안普安이니 진번眞番동이국東夷國의 이름인데, 나라와 서로 접경하고 있었다. 조선朝鮮 또한 동이국東夷國의 이름이다. 는 음이 이고 은 음이 이다. 이 지역에 신선神仙의 물이 있으므로 조선朝鮮이라 이름하였으니, 바로 무왕武王기자箕子를 봉한 지역이다. 일설에 “동쪽 끝의 해가 나오는 지역에 있으므로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하였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위기爲其”도 같다. 나라가 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은〉 요동遼東의 바깥 변방에 소속되었다.
漢興 爲其遠難守라하여 復修遼東故塞하여 至浿水爲界注+浿, 滂沛切. 班志 “浿水, 出遼東塞外, 西南至樂浪縣, 西入海.”러니
그러다가 나라가 일어나자, 거리가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다시 요동遼東의 옛 변방 요새(장성長城)를 수축하여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로 삼았다.注+浿방패滂沛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패수浿水요동遼東 변방 밖에서 발원하니, 서남쪽으로 악랑현樂浪縣에 이르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燕人衛滿 亡命聚黨하여椎髻夷服하고 東走出塞하여 渡浿水하여 居秦故空地하고 役屬眞番朝鮮蠻夷及燕亡命者하여 王之하고 都王險注+王險, 卽平壤城. 臣瓉曰 王險, 在樂浪郡浿水之東.하다
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무리를 모아서 퇴계椎髻(상투)를 하고 오랑캐 복식을 입고는 동쪽으로 달아나 변방을 나가서 패수浿水를 건너 나라의 옛 공한지空閑地에 거주하였으며, 진번‧조선과 이 지역에 있는 오랑캐 및 나라에서 망명한 자들을 복속시켜 왕 노릇 하면서 왕험성王險城(평양성)에 도읍하였다.注+왕험王險은 바로 평양성平壤城이다. 신찬臣瓉은 “왕험王險낙랑군樂浪郡 패수浿水의 동쪽에 있다.” 하였다.
孝惠, 高后時 遼東太守約滿爲外臣하여 保塞外蠻夷하고 無使盜邊하고 欲入見者 勿得禁止注+見, 賢遍切, 下同.
[目] 효혜황제孝惠皇帝고후高后(여후呂后) 때에 요동태수遼東太守위만衛滿외조外朝의 신하로 삼을 것을 약속해서, 변방 밖에 있는 만이蠻夷들을 보호하게 하고 변방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나라에 들어와 뵙고자 하는 자들을 금지하지 못하게 하였다.注+(뵙다)은 현편賢遍이니, 아래도 같다.
以故 滿 得侵降其旁小邑하여 方數千里러니
이 때문에 위만이 그 부근에 있는 작은 고을들을 침략하고 항복시켜 영토의 넓이가 수천 리에 이르렀다.
傳子至孫右渠하여 所誘漢亡人滋多하고 未嘗入見注+右渠, 其孫名也. 滋, 益也.이요 辰國 欲上書見天子호되 又雍閼不通注+辰國, 卽辰韓之國, 在朝鮮箕番之東ㆍ穢貉之南. 雍閼, 讀與壅遏同.이라
위만이 아들에게 전하고 손자인 위우거衛右渠에 이르러는, 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을 유인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고 한 번도 들어와 천자를 알현하지 않았으며,注+우거右渠위만衛滿의 손자 이름이다. 는 더욱이다. 진한국辰韓國에서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하였으나 또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注+진국辰國은 바로 진한辰韓의 나라 이름이니, 조선朝鮮 기번箕番의 동쪽, 예맥穢貊의 남쪽에 있었다. “옹알雍閼”은 옹알壅遏과 같이 읽는다.
是歲 漢使涉何譙諭호되 右渠終不肯奉詔注+涉, 姓也. 譙, 才笑切, 責讓也.하니
이해에 나라가 섭하涉何로 하여금 위우거를 꾸짖고 타이르게 하였으나, 위우거는 끝내 조령詔令을 받들려 하지 않았다.注+이다. 재소才笑이니, 꾸짖음이다.
何去至浿水하여 刺殺送者하고 歸報한대 拜遼東東部都尉러니 朝鮮 襲殺之注+遼東東部都尉, 治武次縣.하다
섭하가 떠나 패수浿水에 이르러서 전송하는 사자를 찔러 죽이고 돌아와 복명하자, 요동동부도위遼東東部都尉를 제수했었는데, 조선朝鮮에서 습격하여 그를 죽였다.注+요동동부도위遼東東部都尉무차현武次縣치소治所가 있었다.
甘泉房中 注+時, 芝産於甘泉齋房, 九莖連葉. 論衡 “芝生於土, 土氣和則芝草生.” 瑞命記 “王者慈仁則芝草生.”하다
[綱] 감천甘泉의 재계하는 방에 아홉 줄기의 잎이 이어진 지초芝草가 나왔으므로 사면赦免하였다.注+이때 지초芝草감천甘泉의 재계하는 방에서 나왔는데, 아홉 줄기의 잎이 이어져 있었다. 에 “지초芝草는 땅에서 나오니, 땅의 기운이 화합하면 지초芝草가 나온다.” 하였고, 에 “왕자王者가 인자하면 지초芝草가 나온다.” 하였다.
하다
[綱] 가물었다.
上以旱爲憂하니 公孫卿曰 黃帝時 封則天旱하여 乾封三年注+乾, 音干. 言三歲不雨, 暴所封之土, 令乾也.이라한대 乃下詔曰 天旱 意乾封乎인저
[目] 이 가뭄을 근심하자, 공손경公孫卿이 아뢰기를 “황제黃帝 때에 태산泰山하면 하늘이 가물어서 봉한 흙을 3년 동안 말렸습니다.”注+(마르다)은 음이 이니,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봉한 흙에 햇볕을 쬐어 마르게 하는 것이다. 하니, 은 마침내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날씨가 가문 것은 짐작컨대 봉한 흙을 말리려는 것일 것이다.” 하였다.
하다
[綱] 가을에 문수汶水 가에 명당明堂을 지었다.
欲作明堂호되 未曉其制度러니 濟南公玉帶 上明堂圖하니 有殿無壁이요 茅蓋通水하고 上有樓注+公玉, 複姓, 帶, 名也. 明堂圖中, 有一殿, 四面無壁, 取其通達, 以茅覆蓋, 取其精潔. 爲溝通水, 以圜遶宮垣.어늘
[目] 명당明堂을 짓고자 하였으나 그 제도를 알지 못하였는데, 제남濟南공옥대公玉帶명당도明堂圖를 그려 올렸는바, 궁전은 있고 벽이 없으며 띠풀로 지붕을 덮고 물을 통하게 하였으며 위에 누대가 있었다.注+공옥公玉복성複姓이고 는 이름이다. 명당도明堂圖 가운데 한 궁전이 있는데, 사면에 벽이 없음은 통달함을 취한 것이고, 띠풀로 지붕을 덮음은 정결함을 취한 것이다. 도랑을 만들어 물을 통하게 해서 궁의 담장을 둘러쌌다.
乃令作明堂奉高汶上하여 如其圖注+汶, 音問, 班志 “泰山郡萊蕪縣. 禹貢, ‘汶水出西南入濟.’”하다
이에 명당明堂을 이 그림과 똑같이 봉고현奉高縣 문수汶水 가에 짓게 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태산군泰山郡 내무현萊蕪縣이니, 《상서尙書》 〈우공禹貢〉에 ‘문수汶水가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제수濟水로 들어간다.’ 하였다.” 하였다.
遣將軍楊僕, 荀彘하여 하다
[綱] 장군 양복楊僕순체荀彘를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조선朝鮮을 정벌하게 하였다.
◑ 遣將軍郭昌하여 發兵擊滇하니 滇王降이어늘 置益州郡하다
[綱] 장군 곽창郭昌을 보내 군대를 징발해서 전국滇國을 공격하게 하자, 전왕滇王이 항복하므로 익주군益州郡을 설치하였다.
遣將軍郭昌하여 發巴蜀兵하여 擊滅勞深, 靡莫하고 以兵臨滇注+勞深, 靡莫, 西南夷二小國名.한대 滇王降이어늘
[目] 장군 곽창郭昌을 보내 의 군대를 징발해서 노심勞深미막靡莫 두 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다음 군대를 거느리고 전국滇國에 이르니,注+노심勞深미막靡莫서남이西南夷의 두 작은 나라 이름이다. 전왕滇王이 항복하였다.
以其地爲益州郡하고 賜滇王玉印하여 復長其民注+玉印, 通鑑作王印. 長, 丁丈切.하다
이에 이 지역을 익주군益州郡으로 만들고, 전왕에게 옥인玉印을 하사해서 다시 백성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다스리게 하였다.注+옥인玉印”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왕인王印”으로 되어 있다. (우두머리)은 정장丁丈이다.
是時 漢滅兩越하고 平西南夷하여 置初郡十七注+初郡, 初置之郡也, 謂南海‧蒼梧‧鬱林‧合浦‧交趾‧九眞‧日南‧珠厓‧儋耳‧武都‧牂柯‧越嶲‧沈黎‧汶山‧犍爲‧零陵‧益州郡.하고 且以其故俗治하고 毋賦稅하다
[目] 이때에 나라가 두 (남월南越동월東越)을 멸망시키고 서남쪽의 오랑캐들을 평정하여 처음으로 17개의 을 설치하였으며,注+초군初郡”은 처음 설치한 이니, 남해군南海郡, 창오군蒼梧郡, 울림군鬱林郡, 합포군合浦郡, 교지군交趾郡, 구진군九眞郡, 일남군日南郡, 주애군珠厓郡, 담이군儋耳郡, 무도군武都郡, 장가군牂柯郡, 월수군越嶲郡, 침려군沈黎郡, 문산군汶山郡, 건위군犍爲郡, 영릉군零陵郡, 익주군益州郡을 이른다. 또 옛 풍속을 따라 다스리고 세금을 걷지 않았다.
南陽, 漢中以往郡 各以地比 給初郡注+比, 音鼻. 地比, 謂依其次第, 自近及遠也.호되 而初郡 時時小反殺吏어늘 發卒誅之하니 歲萬餘人이러라
남양南陽한중漢中 이후에 설치한 은 각각 거리에 따라 처음 설치한 에 재정을 공급하였으나,注+(비례하다)는 음이 이니, “지비地比”는 그 차례에 따라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처음 설치한 이 때때로 차츰 배반하여 나라에서 배치한 관리를 죽였으므로 군대를 내어 이들을 주벌하니, 해마다 만여 명에 이르렀다.
大農 以均輸調鹽鐵助賦 故能贍之
대농大農균수법均輸法에 따라 소금과 을 조달하여 부세를 도왔으므로, 능히 경비를 보충할 수 있었다.
이나 所過訾給毋乏而已 不敢言擅賦法矣注+所過, 兵所過縣也. 訾, 讀曰資. 帝初擊胡, 大司農賦稅, 專以奉戰士, 故有擅賦之法. 擅, 一作經. 經, 常也, 唯取用足耳, 不暇顧經常法則矣.러라
그러나 군대가 지나가는 곳에 물자를 공급하여 궁핍함이 없게 할 뿐, 감히 천부擅賦의 법을 말하지는 못하였다.注+소과所過”는 군대가 지나가는 이다. (물자)는 로 읽는다. 황제가 처음 오랑캐를 공격할 적에 대사농大司農의 부세를 오로지 전투하는 장병들에게 공급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천부擅賦(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함)의 법이 있었다. 일본一本에는 으로 되어 있으니, 정상적正常的인 것으로, 오직 취하여 풍족하게 쓸 뿐 경상적經常的인 법칙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以杜周爲廷尉하다
[綱] 두주杜周정위廷尉로 삼았다.
周外寬호되 內深次骨하여 其治大放張湯注+內深次骨, 言其用法深刻至骨也. 大放張湯, 言大抵依放張湯也.이라
[目] 두주杜周는 외면은 너그러웠으나 내심은 법을 각박하게 적용하여 골수에 이르러서, 다스림이 장탕張湯을 대체로 모방하였다.注+내심차골內深次骨”은 법을 심각하게 적용하여 골수에까지 이름을 말한 것이다. “대방장탕大放張湯(장탕張湯과 대체로 유사하였다.)”은 대체로 장탕을 모방함을 말한 것이다.
詔獄益多하여 一歲 至千餘章注+章者, 諸獄告劾之書, 上之廷尉者也.하니 逮至六七萬人이요 吏所增加 十萬餘人注+吏又於此外, 以文致之, 更增加也.이러라
이때 조옥詔獄이 더욱 많아져서 1년에 천여 에 이르니,注+은 여러 옥사獄事의 고발하고 탄핵한 글로, 정위廷尉에게 올린 것이다. 체포한 죄인이 6, 7만 명에 이르고 〈이 밖에 관리가 법조문을 농락하여 죄를 얽어서〉 더 늘어난 것이 10만여 명에 이르렀다.注+〈“이소증가吏所增加”는〉 옥리獄吏가 또 이 밖에 법조문으로 옭아매어서 다시 더 보탠 것이다.
역주
역주1 (壁)[璧] : 저본에는 ‘壁’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璧’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河渠書 : 《史記》의 편명으로 황하를 다스린 工程과 小利 등의 일을 기재하였다.
역주3 作蜚廉……通天莖臺 : “이것을 쓴 것은 비판한 것이니, ‘觀’을 쓴 것이 이때에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觀’을 쓴 것이 일곱 번인데, 聽訟觀과 總明觀과 通道觀 외에는 모두 비판한 것이다.[書 譏也 書觀始此 終綱目 書觀七 自聽訟總明通道之外 皆譏也]” 《書法》
“武帝가 신선을 구하기 위하여 宮室을 수리하였으니, 柏梁臺를 짓고 承露盤을 만들고 太乙壇과 越나라의 사당을 세운 것과 같은 따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때에 이르러 또다시 蜚廉觀과 桂觀, 通天莖臺를 만들었고, 얼마 안 있다가 다시 明堂과 建章宮, 明光宮 등 여러 宮을 만들었다. 《자치통감강목》에 이것을 모두 책에 쓴 것은 武帝의 잘못을 드러내어 神仙을 구하는 자들의 경계로 삼으려 했을 뿐이니, 어찌 번거로운 글을 쓰기 좋아해서이겠는가. 아, 만일 신선이 과연 있더라도 어찌 구할 수 있겠는가. 만일 구할 수 있었다면 무제가 얻었을 것이다.[武帝爲求仙而修宮室 如建柏梁臺 作承露盤 立太乙壇越祠之類 不一而足 至此又作蜚廉桂觀通天莖臺 未幾 復有明堂建章明光諸宮之作 綱目皆書于冊 所以著武帝之失 爲求神仙者之戒爾 夫豈好爲是繁文哉 嗚呼 使神仙果有 豈可求耶 使其可求 則武帝得之矣]” 《發明》
역주4 六國 : 戰國時代에 가장 강성했던 秦ㆍ楚ㆍ燕ㆍ齊ㆍ韓ㆍ魏ㆍ趙를 ‘七雄’이라 칭하였는데, 이 가운데 秦나라를 제외한 여섯 나라를 가리킨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六國은 망하고 秦나라는 天子國이 되었으므로, 天子國인 秦나라를 제외하여 六國이 되었다 하며, 일설에는 秦나라는 無道하여 적군의 머리(首級)를 가져오는 것을 최상의 功으로 여겼기 때문에 秦나라를 제외한 것이라 한다.
역주5 産芝九莖 赦 : “한 마리의 짐승과 한 필의 말과 한 포기의 芝草는 모두 하찮은 물건인데, 《資治通鑑綱目》에서 대서특필한 것은 어째서인가? 짐승으로써 紀元을 하고 말로써 노래를 짓고 芝草로써 사면을 해서 널리 전파하여 세상에 알려서 지나치게 과장하고 도에 넘치게 빛나게 하였으니, 비록 이것을 쓰지 않고자 하나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찬미한 것이 아니요, 바로 그 괴이하고 허탄한 잘못을 드러낸 것이다.[一獸一馬一芝 皆微物也 大書特書 何哉 獸以之紀元 馬以之作歌 芝以之肆赦 播告之修 夸張而侈耀之 雖欲不書 可乎 非美之也 所以見其怪誕之失云爾]” 《發明》
역주6 論衡 : 後漢의 王充이 지은 책으로, 30권으로 되어 있다.
역주7 瑞命記 : 상서로운 징험을 기록한 책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역주8 : “이것을 쓴 것은 비판한 것이다. 위에서는 ‘芝草가 나왔다.’고 쓰고 아래에는 ‘가물었다.’고 썼으니, 지초가 상서가 되지 않음이 분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武帝 때에 ‘甘泉에서 지초가 나왔다.’고 쓰고서, 아래에는 ‘가물었다.’고 썼고, 安帝 때에 ‘豫章에서 지초가 나왔다.’고 쓰고서, 위에서 개기일식과 지진이 일어난 것을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의 뜻이 은미하다.[書 譏也 上書産芝 下書旱 芝不爲瑞 明矣 是故武帝書甘泉産芝 而下書旱 安帝書豫章芝草生 而上書日食旣地震 綱目之意微矣]” 《書法》
역주9 作明堂於汶上 : “‘汶水 가에 세웠다.[於汶上]’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비판한 것이다. 禮에 맞으려면 國都의 남쪽에 세워야 하니, 문수 가에 세운 것은 올바른 장소가 아니다.[於汶上 何 譏也 禮在國陽 於汶上 非地矣]” 《書法》
역주10 將兵伐朝鮮 : “武帝가 用兵을 할 적에 모두 ‘擊’이라고 썼는데, 여기에서는 ‘伐’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朝鮮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조선에게 죄를 물었는가? 遼東東部都尉를 습격하여 죽였으니, 이것이 죄이다.[武帝用兵 皆書擊 此其書伐 何 朝鮮罪也 曷爲罪之 襲殺都尉 其罪矣]” 《書法》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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