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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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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戌年(A.D.26)
병술년丙戌年(A.D.26)
二年이라 春正月朔 日食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2년이다. 봄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劉恭 知赤眉必敗하고 密敎弟盆子하여 歸璽綬하고 習爲辭讓之言이러니
유공劉恭적미赤眉가 반드시 패할 줄을 알고, 은밀히 아우 유분자劉盆子에게 지시하여 옥새와 인끈을 돌려주고 사양하는 말을 익히게 하였다.
及是日大會 盆子下牀하여 解璽綬하고 叩頭曰 今 設置縣官而爲賊如故 四方 怨恨하여 不復信向하니
이날(정월 초하루) 크게 사람들이 모이자, 유분자가 용상에서 내려와 옥새와 인끈을 풀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이번에 현관縣官(천자天子)을 설치하였으나, 예전처럼 도둑질을 하고 있다. 이에 사방이 원망하고 한탄하여 다시는 우리를 믿고 귀의하지 않으니,
此皆立非其人所致 願乞骸骨하여 避賢聖路注+謙言退避, 以讓賢聖.하노니 必欲殺盆子以塞責者인대 無所離死라하고 因涕泣噓唏注+離, 避也.하다
이는 모두 적임자가 아닌 나를 황제로 삼은 소치所致이다. 나는 원컨대 지위를 내놓아서 성현聖賢에게 길을 양보하려 하니注+〈“원걸해골 피현성로願乞骸骨 避賢聖路”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현성賢聖에게 양보하겠다고 겸사로 말한 것이다., 반드시 나를 죽여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면 죽음을 피하지 않겠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서글피 탄식하였다.注+는 피함이다.
崇等 憐之하여 避席頓首曰 臣無狀하여 負陛下하니 請後不敢注+通鑑 “請自今已後, 不敢復放縱.”호리이다하고 因共抱持盆子하여 帶以璽綬하니
번숭樊崇 등은 그를 가엾게 여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이 형편없어서 폐하陛下를 저버렸으니, 청컨대 이후로는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않겠습니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청컨대 지금으로부터 이후는 감히 다시 방종하지 않겠습니다.”라 하였다. 하고는 함께 유분자를 안고서 옥새와 인끈을 채워주니,
盆子號呼不得已러라 旣罷出 各閉營自守하니 三輔翕然하여 稱天子聰明하고
유분자가 울부짖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모임을 파하고 나오자 각기 영문營門을 닫고 스스로 지키니, 삼보三輔 지역이 모두 한결같이 천자天子가 총명하다고 칭찬하고,
百姓 爭還長安하여 市里且滿이러니 後二十餘日 復出하여 大掠如故하니라
백성들이 다투어 장안長安으로 돌아와서 시장 거리가 거의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20여 일이 지나자, 다시 나와서 예전처럼 크게 노략질을 하였다.
遣吳漢等하여 破檀鄕賊於鄴東하다
오한吳漢 등을 보내 의 동쪽에서 단향적檀鄕賊을 격파하였다.
刁子都爲其部曲所殺하니 餘黨 與諸賊會檀鄕하여 號檀鄕賊이라하고 寇魏郡, 淸河注+檀鄕, 在山陽郡瑕縣東北.하니 魏郡大吏李熊弟陸 謀反城迎之注+反, 音幡, 覆也.하다
조자도刁子都(조자도)가 자기 부곡部曲에게 살해당하였는데, 남은 무리가 여러 적과 단향檀鄕에 모여서 단향적檀鄕賊이라 칭하고는 위군魏郡청하淸河에서 도둑질하니注+단향檀鄕산양군 하구현山陽郡 瑕丘縣 동북쪽에 있었다., 위군魏郡의 높은 관리인 이웅李熊의 아우 이륙李陸을 바치고 적을 맞이할 것을 모의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전복시킴이다.
以告太守銚期注+銚, 音姚, 姓也.한대 期召問熊하니 熊首服注+首, 音狩.이라 期曰 爲吏儻不若爲賊樂者인대 可往就之注+必以在城中爲吏, 不如爲賊之樂, 卽任往就弟.라하고
혹자가 이 사실을 태수 요기太守 銚期(요기)에게 고하자注+는 음이 이니 이다., 요기가 이웅을 불러 물으니, 이웅이 자백하였다.注+(자수하다)는 음이 이다. 요기가 말하기를 “관리가 된 것이 진실로 도적이 된 즐거움만 못하다면 그대의 아우에게 가도 좋다.”注+〈“위리당불약위적락자 가왕취지爲吏儻不若爲賊樂者 可往就之”는〉 만일 성안에 있으면서 관리가 된 것이 도적이 된 즐거움만 못하다고 여긴다면, 즉시 마음대로 아우에게로 가라고 한 것이다. 하고
使吏送出城하니 行求得陸하여 將詣城門注+將, 한대 不勝愧感하여 自殺以謝期어늘
관리를 시켜서 호송하여 성을 나가게 하니, 이웅이 돌아다니며 이륙을 찾아 성문으로 데리고 왔다.注+(가지다)은 본음대로 읽는다. 이륙이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요기에게 사죄하자,
期以禮葬之하고 而還熊故職하니 於是 郡中 服其威信이러라
요기는 그를 예에 맞게 장례하고 이웅을 옛 관직에 그대로 임용하였다. 이에 위군魏郡의 사람들이 그의 위엄과 신의에 탄복하였다.
帝遣吳漢하여 率九將軍하여 擊檀鄕破之하니 十餘萬衆 皆降이라 諸營保悉平하니 邊路流通하니라
】 황제가 오한吳漢을 보내 아홉 명의 장군을 인솔하고 단향檀鄕을 공격해서 격파하니, 십여 만의 무리가 모두 항복하였다. 여러 영보營堡가 모두 평정되니, 변방의 길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悉封諸功臣하여 爲列侯하다
공신功臣들을 모두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았다.
梁侯鄧禹 廣平侯吳漢 皆食四縣注+禹始封酇, 是年改封梁侯. 地理志 “梁縣, 屬河南郡.” 賢曰 “廣平縣, 屬廣平郡.”한대 博士丁恭 議曰 古者封諸侯不過百里하니
양후 등우梁侯 鄧禹광평후 오한廣平侯 吳漢이 모두 네 개의 을 식읍으로 하였다.注+등우鄧禹가 처음 찬후酇侯에 봉해졌다가 이해에 양후梁侯로 바꾸어 봉해졌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양현梁縣하남군河南郡에 속했다.” 하였다. 이현李賢이 말하기를 “광평현廣平縣광평군廣平郡에 속했다.” 하였다. 박사 정공博士 丁恭이 의논하기를 “옛날 제후諸侯를 봉할 적에는 100리를 넘지 않았으니,
今封四縣 不合法制니이다 帝曰 古之亡國 皆以無道 未嘗聞功臣地多而滅亡者也로라
지금 네 개의 을 봉해준 것은 옛 법제法制에 부합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황제가 말하기를 “옛날에 나라를 망친 것은 모두 무도無道하였기 때문이었고, 공신功臣의 봉지가 많아서 멸망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였다.
陰鄕侯陰識 貴人之兄也 以軍功當增封注+帝納新野陰氏之女麗華爲貴人. 西都後宮之號十四等, 未有貴人, 帝中斲琱爲樸, 六宮稱號, 惟有皇后․貴人, 貴人位次皇后, 金印紫綬.이러니 識曰 臣 託屬掖庭하니
음향후 음지陰鄕侯 陰識(음지)는 음귀인陰貴人의 오라비이다. 군공軍功에 따라 마땅히 더 봉해주게 되었는데注+황제가 신야 음씨新野 陰氏의 딸 여화麗華를 들여 귀인貴人으로 삼았다. 서도西都(전한前漢)는 후궁後宮의 칭호 14등급에 귀인貴人이 있지 않았는데, 황제가 중흥하자 화려함을 제거하고 질박함을 숭상해서, 육궁六宮의 칭호 중에 오직 황후皇后귀인貴人이 있었으니, 귀인貴人황후皇后 다음에 자리하여 금인金印자색紫色의 인끈을 찼다., 음지가 말하기를 “액정掖庭에 친속을 의탁하고 있으니,
仍加爵邑이면 此爲親戚受賞이요 國人計功也注+戰國公孫龍, 告平原君之辭.니이다 帝從之하다
이대로 작읍爵邑을 더하면 이는 친척으로서 상을 받고 국인國人으로서 을 따지는 것입니다.”注+〈“친척수상 국인계공親戚受賞 國人計功”은〉 하니,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使郞中魏郡馮勤으로 典諸侯封事한대 差量功次輕重 國土遠近 地勢豐薄하여 不相踰越하니 莫不厭服焉注+地勢豐薄, 猶言地利肥瘠也. 厭, 於艶切.이라
낭중郞中위군魏郡 사람 풍근馮勤으로 하여금 제후諸侯들을 봉하는 일을 주관하게 하였는데, 풍근이 공로功勞의 경중과 국토國土의 원근, 지세地勢의 비옥하고 척박함을 차등하여 헤아려서 서로 넘지 않게 하니, 만족하고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注+지세풍박地勢豐薄”은 지리地利의 비옥함과 척박함이라는 말과 같다. (만족하다)은 어염於艶이다.
帝以爲能이라하여 尙書衆事 皆令總錄之하다 故事 尙書郞 以令史久次補러니 帝始用孝廉爲之注+百官志 “尙書令十八人, 秩二百石, 侍郞三十六人, 秩四百石, 主作文書起草.” 蔡質漢儀曰 “尙書郞, 初從三署詣臺試, 初上臺, 稱守尙書郞中, 歲滿, 稱尙書郞, 三年, 稱侍郞.”하다
황제는 그가 재능이 있다 하여 상서尙書의 여러 일들을 모두 총괄하게 하였다. 고사故事상서랑尙書郞영사令史의 재직 연수에 따라 보임하였었는데, 황제가 처음으로 효렴孝廉 출신을 임용하였다.注+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상서尙書영사令史는 18명이니 이백석二百石이고, 시랑侍郞은 36명이니 사백석四百石인데, 문서文書를 만들어 기초起草하는 일을 주관했다.” 하였다. 채질蔡質의 ≪한의漢儀≫에 “상서랑尙書郞은 처음 로부터 상서대尙書臺에 나아가 시험하여 등용되었는데, 처음 상서대尙書臺에 오르면 수상서랑중守尙書郞中이라 하고 1년이 차면 상서랑尙書郞이라 하고 3년이 되면 시랑侍郞이라 칭하였다.
立宗廟, 郊, 社于洛陽하다
종묘宗廟교조郊兆사직社稷낙양洛陽에 세웠다.
起高廟于洛陽하여 四時合祀高祖, 太宗, 世宗하고 建社稷于宗廟之右하고 立郊兆于城南하다
낙양洛陽고묘高廟를 세워서 사시四時고조高祖태종太宗, 세종世宗합사合祀하고, 사직社稷종묘宗廟의 오른편에 세우고 교조郊兆의 남쪽에 세웠다.
赤眉大掠長安하고 西入安定, 北地하다
적미赤眉장안長安을 크게 노략질하고 서쪽으로 안정安定북지北地에 침입하였다.
長安城中 糧盡이라 赤眉收珍寶하고 燒宮室하고 恣殺掠하니 城中 無復人行이라
장안성長安城 안에 양식이 다하자, 적미赤眉가 진귀한 보물을 거두고는 궁실宮室을 불태우고 멋대로 사람을 죽이고 노략질하니, 성안에 다시는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乃引兵하여 號百萬이라하고 轉掠而西하여 遂入安定, 北地하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백만百萬이라 칭하고는 전전하여 노략질하면서 서쪽으로 가서, 마침내 안정安定북지北地에 침입하였다.
鄧禹入長安하다
등우鄧禹장안長安에 들어갔다.
禹入長安하여 謁高廟하고 收神主하여 送洛陽하고 行園陵하여 置吏士奉守注+神主, 謂高․惠․文․景․武․昭․宣․元․成․哀․平十一帝神主也. 行, 去聲. 園, 謂塋域. 陵, 謂山墳.하다
등우鄧禹장안長安에 들어가서 고묘高廟에 배알하고 신주神主를 거두어 낙양洛陽으로 보내고 원릉園陵을 순행하고서 관리와 병사를 원릉에 배치하여 받들어 지키게 하였다.注+신주神主고조高祖혜제惠帝, 문제文帝, 경제景帝, 무제武帝, 소제昭帝, 선제宣帝, 원제元帝, 성제成帝, 애제哀帝, 평제平帝 11명의 황제의 신주를 이른다. (순행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영역塋域(영역)을 이르고 은 산의 봉분을 이른다.
眞定王楊 謀反伏誅하다
진정왕 유양眞定王 劉楊이 반란을 도모하다가 주살당하였다.
◑鮑永 來降하다
포영鮑永이 와서 항복하였다.
鮑永, 馮衍 審知更始已亡 乃發喪하고 出儲大伯等하고 封上印綬하고 悉罷兵하고 幅巾詣河內注+幅巾, 不加冠幘, 但以一幅飾首而已.하다
포영鮑永풍연馮衍경시更始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는, 을 발표하고 저태백儲大伯 등을 내보내고 인수印綬를 황제에게 받들어 올리고 군대를 모두 해산한 다음, 복건幅巾을 쓰고 하내河內로 왔다.注+복건幅巾을 쓰지 않고 다만 한 의 천으로 머리를 꾸밀 뿐이다.
帝見永하고 問曰 卿衆 安在 離席叩頭曰 臣 事更始 不能令全하니 誠慙以其衆幸富貴 悉罷之注+幸, 希也.하니이다
황제가 포영을 보고 묻기를 “의 병사들이 어디에 있는가?” 하니, 포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이 경시를 섬길 적에 온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그 병력을 가지고 부귀富貴를 바라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하여 군대를 모두 해산하였습니다.”注+은 바람이다. 하였다.
帝曰 卿言大라호되 而意不悅注+帝雖謂永言大, 而以其降晩, 意懷不悅也.이러라 旣而 以立功見用注+
王梁(≪雲臺三十二將圖≫)王梁(≪雲臺三十二將圖≫)
按永傳 “時董憲裨將屯魯, 侵害百姓, 乃拜永爲魯郡太守, 永到, 討擊大破之. 唯別帥彭豐․虞休․皮常等各千餘人, 稱將軍, 不肯下, 永以計誘, 手格殺豐等, 禽破黨與, 以功封關內侯, 遷揚州牧.”
하고 遂廢棄하다
황제는 “의 말이 훌륭하다.” 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기뻐하지 않았다.注+황제가 비록 포영鮑永의 말이 훌륭하다고 말했으나, 그가 늦게 항복하여 마음에 기뻐하지 않는 뜻을 품은 것이다. 얼마 있다가 포영은 을 세워 등용되었고注+살펴보건대, ≪후한서後漢書≫ 〈포영전鮑永傳〉에 “이때 동헌董憲비장裨將 지역에 주둔하여 백성들을 침해하자 포영을 노군태수魯郡太守로 임명하였는데, 포영은 부임하는 즉시 이들을 토벌하여 대파하였다. 별수 팽풍別帥 彭豐우휴虞休, 피상皮常 등 각각 천여 명이 장군將軍이라 칭하고 항복하려 하지 않자, 포영은 이들을 계책으로 유인해서 팽풍 등을 손으로 쳐서 죽이고 그의 당여黨與들을 사로잡아 깨뜨렸는데, 그 으로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지고 양주목揚州牧으로 승진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풍연은 끝내 등용되지 못하였다.
謂衍曰 昔 高祖賞季布之罪하고 誅丁固之功하니 今遭明主 亦何憂哉注+丁固, 卽丁公.리오
포영이 풍연에게 이르기를 “ 지금 현명한 군주를 만남에 또한 어찌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注+정고丁固는 바로 정공丁公이다. 하니,
衍曰 天命 難知 人道 易守 守道而已 何患死亡이리오
풍연이 말하기를 “천명天命은 알기가 어렵고 인도人道는 지키기가 쉬우니, 를 지킬 뿐이다. 어찌 죽고 망함을 근심하겠는가.” 하였다.
大司空梁罷하고 以宋弘爲大司空하다
대사공 왕량大司空 王梁이 파직되고, 송홍宋弘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王梁 屢違詔命注+梁與吳漢俱擊檀鄕, 詔軍事一屬漢, 而梁輒發野王兵. 帝以其不奉詔, 勅令止在所縣, 而梁復以便宜進軍, 是屢違詔命也.하니 帝怒하여 欲誅之러니 旣而 赦之하고 以爲中郞將하여 北守箕關注+水經注 “濝水, 出河東垣縣王屋西山濝溪, 夾山東南流, 逕故城東, 卽濝關也.”하고 以宋弘爲大司空하다
왕량王梁이 여러 번 조명詔命을 어기니注+왕량王梁오한吳漢이 함께 단향檀鄕을 공격하였는데, 조명詔命을 내려 군사軍事를 일체 오한에게 맡겼으나, 왕량은 번번이 야왕野王의 병력을 징발하였다. 황제가 그가 조명詔命을 받들지 않는다 하여 칙령勅令을 내려서 소재한 에 중지하게 하였으나, 왕량이 또다시 편의에 따라 진군하니, 이는 여러 번 조명을 어긴 것이다., 황제가 노하여 그를 주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얼마 있다가 사면하고 중랑장中郞將으로 삼아 북쪽으로 기관箕關을 지키게 하고는注+수경주水經注≫에 “기수濝水하동군 원현河東郡 垣縣 왕옥王屋서산 기계西山 濝溪에서 발원하여 을 끼고 동남쪽으로 흘러 옛 의 동쪽으로 지나가니, 바로 기관濝關이다.” 하였다. 송홍宋弘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薦桓譚爲議郞하여 給事中이러니 帝令譚鼓琴하고 愛其繁聲이라
송홍이 환담桓譚의랑議郞으로 천거하여 급사중給事中을 시켰는데, 황제가 환담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타게 하고 그의 요염하고 화려한 음악을 좋아하였다.
聞之不悅하여 伺譚出하여 朝服坐府上하고 遣吏召之하여 譚至 不與席而讓之하니 頓首辭謝한대 良久 乃遣之하다
송홍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환담이 나올 때를 기다려서 조복朝服을 입고 에 앉아서는 관리를 보내 그를 불러오게 하였다. 환담이 오자 송홍은 자리를 내주지 않고 꾸짖었는데, 환담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니, 한참 뒤에야 비로소 보내주었다.
大會群臣할새 帝使譚鼓琴한대 見弘하고 失其常度어늘 帝怪而問之하니
뒤에 여러 신하들이 크게 모였을 적에, 황제가 환담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타게 하였는데, 환담은 송홍을 보고 평상시의 태도를 잃었다. 황제가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묻자,
乃離席免冠謝曰 臣所以薦譚者 望能以忠正導主어늘 而令朝廷耽悅鄭聲하니 臣之罪也로소이다 帝改容謝之하다
송홍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을 벗고 사죄하기를 “이 환담을 천거했던 이유는 충성과 정직함으로써 군주를 잘 인도하기를 바라서였는데, 조정으로 하여금 을 기뻐하게 하였으니, 이는 의 죄입니다.” 하니, 황제는 용모를 고치고 사례하였다.
湖陽公主新寡러니 帝與共論朝臣하여 微觀其意注+湖陽公主, 帝姊也.한대 主曰 宋公 威容德器 群臣莫及이니이다
호양공주湖陽公主가 막 과부가 되어 있었는데, 황제가 그녀와 함께 조정의 신하를 논하면서 은밀히 그녀의 뜻을 떠보니注+호양공주湖陽公主는 황제의 누님이다., 공주가 말하기를 “송공宋公(송홍宋弘)의 위엄 있는 몸가짐과 덕스러운 기국器局은 여러 신하들이 미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被引見注+見, 賢遍切.하니 帝令主坐屛風後하고 因謂弘曰 諺 言貴易交하고 富易妻라하니 人情乎
뒤에 송홍이 인도引導를 받아 입현入見하였는데注+(알현하다)은 현편賢遍이다., 황제가 공주를 병풍 뒤에 앉히고는 송홍에게 이르기를 “속담에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 하니, 이것이 인정人情인가?” 하니,
弘曰 臣聞貧賤之知 不可忘이요 糟糠之妻 不下堂이라하니이다 帝顧謂主曰 事不諧矣라하니라
송홍이 대답하기를 “이 듣건대 빈천貧賤할 때에 사귄 친구는 잊을 수가 없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함께 고생한 아내는 아래로 내려보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공주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다.” 하였다.
漁陽太守彭寵하다
어양태수 팽총漁陽太守 彭寵이 배반하였다.
帝之討王郞也 彭寵 發突騎하고 轉糧食하여 前後不絶하다
】 황제가 왕랑王郞을 토벌할 적에 팽총彭寵돌기突騎를 징발하고 군량을 수송하여 전후로 끊이지 않게 하였다.
及帝追銅馬至薊 自負其功하여 意望甚高로되 帝接之不能滿注+滿, 謂滿其意也.이러니 及吳漢, 王梁 爲三公 愈怏怏注+通鑑 “及卽位, 吳漢․王梁, 寵之所遣, 竝爲三公, 而寵獨無所加, 愈怏怏不得志.”이러라
황제가 동마銅馬를 추격하여 에 이르렀을 적에, 팽총은 자신의 공을 자부하여 내심 바라는 바가 매우 높았으나, 황제가 그를 대접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였다.注+滿은 자기의 뜻에 만족스러움을 이른다. 그러다가 오한吳漢왕량王梁삼공三公이 되자, 팽총이 더욱 앙앙불락怏怏不樂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황제가 즉위하자, 오한吳漢왕량王梁팽총彭寵이 보낸 사람이었는데 함께 삼공三公이 되었으나, 팽총만 홀로 관작이 더해진 것이 없으니, 더욱 앙앙怏怏하여 뜻을 얻지 못하였다.” 하였다.
幽州牧朱浮 年少有俊才 欲厲風迹하고 收士心하여 多所辟召하고 發諸郡倉穀廩贍之注+風迹, 風化之迹也. 辟, 徵召也.하다
유주목 주부幽州牧 朱浮는 나이가 젊고 준걸스러운 재주가 있었다. 풍화風化의 자취를 장려하고 선비들의 마음을 거두고자 해서 명망 있는 선비들을 많이 불러오고 여러 의 창고에 쌓여 있는 곡식을 꺼내어 그들에게 제공하였다.注+풍적風迹”은 풍화風化의 자취이다. 은 불러옴이다.
以爲 師旅方起하니 不宜多置官屬以損軍實이라하니 浮數譖寵이어늘
그러나 팽총彭寵은 “군대를 막 동원할 것이니, 관속을 많이 두어서 군용물자를 덜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이에 주부가 여러 번 팽총을 참소하였는데,
輒漏泄하여 令寵聞하여 以脅恐之하다 至是 徵寵한대 益自疑하니 其妻固勸無受徵이라
은 그때마다 이것을 누설하여 팽총으로 하여금 듣게 해서 위협하고 두렵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황제가 팽총을 부르자 팽총이 더욱 스스로 의심하니, 그의 아내는 황제의 부르는 명을 받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하였다.
帝遣寵從弟子后蘭卿하여 喻之한대 遂發兵反하여 攻浮於薊하고 又數遣使하여 要誘耿況이어늘 斬其使하다
황제가 팽총의 종제從弟의 아들인 후란경后蘭卿을 보내 타이르자, 팽총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모반해서 주부를 에서 공격하였다. 또 여러 사자使者를 보내서 경황耿況을 유인하려 하였는데, 경황이 그 사자를 참수하였다.
延岑하여 據漢中하니 公孫述 擊取之하다
연잠延岑이 배반하여 한중漢中을 점거하니, 공손술公孫述이 공격하여 한중漢中을 점령하였다.
延岑 復反하니 漢中王嘉敗走注+通鑑, 復反下, 有圍南鄭三字.어늘 遂據漢中이라가 爲更始將李寶所破하여 走天水하다
연잠延岑이 다시 배반하니, 한중왕 유가漢中王 劉嘉가 패주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부반復反” 아래에 “위남정圍南鄭(남정南鄭을 포위하다.)” 세 글자가 있다. 이에 연잠이 한중漢中을 점거하였다가 경시更始의 장수 이보李寶에게 격파당하고 천수天水로 도망하였다.
公孫述 遂取南鄭이어늘 嘉擊之不利러니 引北入散關한대 嘉追擊破之注+賢曰 “散關故城, 在今陳倉縣南十里, 有散谷水, 因取名焉.”하다
공손술公孫述이 마침내 남정南鄭을 함락시키자, 유가가 그를 공격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였다. 연잠이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산관散關에 들어가니, 유가가 추격하여 그를 격파하였다.注+이현李賢이 말하기를 “산관散關의 옛 은 지금 진창현陳倉縣 남쪽 10리 지점에 있었으니, 산곡수散谷水가 있어서 그 이름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遣將하여 從閬中하여 下江州하여 東據扞關하니 於是 盡有益州之地注+閬中․江州, 皆縣名, 竝屬巴郡. 扞關, 在巴郡. 漢益州, 部漢中․巴郡․廣漢․蜀郡․犍爲․牂柯․越巂․益州等郡.하다
공손술이 장수를 보내 낭중閬中에서 강주江州로 내려가 동쪽으로 한관扞關을 점거하니, 이에 익주益州 지역을 모두 점령하였다.注+낭중閬中강주江州는 다 의 이름이니, 모두 파군巴郡에 속하였다. 한관扞關파군巴郡에 있다. 나라의 익주益州한중漢中파군巴郡, 광한廣漢촉군蜀郡, 건위犍爲장가牂柯, 월수越巂(월수)와 익주益州 등의 을 관할하였다.
遣執金吾賈復하여 擊郾破之하다
집금오 가복執金吾 賈復을 보내 (언)을 격파하였다.
更始諸大將在南方未降者尙多 帝召諸將하여 議曰 郾最彊하고 宛爲次하니 誰當擊之
경시更始의 여러 대장 중에 남방南方에 있으면서 아직 항복하지 않은 자가 많았다. 황제가 장수들을 불러 의논하기를 “이 가장 강하고 이 그 다음이니, 누가 마땅히 공격해야 하겠는가?” 하니,
賈復 率然對曰 臣請擊郾注+率然, 輕遽之貌.호리이다 帝笑曰 執金吾擊郾이면 吾復何憂리오 大司馬當擊宛이라하고
가복賈復이 가벼이 대답하기를 “을 공격하겠습니다.”注+솔연率然”은 가볍고 급한 모양이다. 하였다. 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집금오執金吾을 공격한다면 내 다시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대사마大司馬(오한吳漢)는 마땅히 을 공격해야 한다.” 하고
遂遣復하여 擊郾破之하니 尹尊注+淮陽王, 封尊爲郾王.하다
마침내 가복을 보내 을 격파하니, 윤존尹尊이 항복하였다.注+회양왕淮陽王(유현劉玄)이 윤존尹尊을 봉하여 언왕郾王으로 삼았다.
夏四月 遣將軍蓋延等하여 하여 圍睢陽하다
】 여름 4월에 장군 갑연蓋延(갑연) 등을 보내 유영劉永을 공격해서 수양睢陽(수양)을 포위하였다.
◑遣吳漢하여 擊宛하니 宛王賜降하다
오한吳漢을 보내 을 격파하니, 완왕 유사宛王 劉賜가 항복하였다.
賜奉更始妻子來降이어늘 封侯注+封爲愼侯.하다
유사劉賜경시更始(유현劉玄)의 처자妻子를 받들고 와서 항복하자, 에 봉하였다.注+봉하여 신후愼侯로 삼았다.
封兄縯子章爲太原王하고 興爲魯王하고 淮陽王子三人 爲列侯注+求爲襄邑侯, 歆爲穀孰侯, 鯉爲壽光侯.하다
】 황제의 형 유연劉縯의 아들 유장劉章을 봉하여 태원왕太原王으로 삼고, 유흥劉興노왕魯王으로 삼았으며, 회양왕淮陽王(유현劉玄)의 세 아들을 열후列侯로 삼았다.注+유구劉求양읍후襄邑侯, 유흠劉歆곡숙후穀孰侯, 유리劉鯉수광후壽光侯로 삼았다.
◑六月 하고 子彊爲皇太子하다
】 6월에 귀인 곽씨貴人 郭氏황후皇后로 세우고, 아들 유강劉彊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帝以貴人陰麗華雅性寬仁이라하여 欲立以爲后한대 貴人 以郭貴人有子라하여 終不肯當하니 乃立郭后하다
】 황제는 귀인 음려화貴人 陰麗華가 평소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다 하여 황후皇后로 세우고자 하였는데, 음귀인陰貴人곽귀인郭貴人이 자식을 두었다 하여 끝내 황후의 자리에 나아가려 하지 않으니, 마침내 곽후郭后를 세웠다.
賈復 擊召陵, 新息하여 皆平之하다
】 가을에 가복賈復소릉召陵신식新息을 공격하여 모두 평정하였다.
賈復 部將 殺人於潁川이어늘 太守寇恂 戮之注+部將, 謂軍部之下小將也.하니 以爲恥하여 欲殺恂이라
가복賈復부장部將영천潁川에서 사람을 죽이자, 영천태수 구순潁川太守 寇恂이 그를 죽였는데注+부장部將군부軍部에 소속된 지위가 낮은 장수를 이른다., 가복은 이를 치욕으로 여겨서 구순을 죽이고자 하였다.
知之하고 不欲與相見한대 姊子谷崇曰 崇 將也 得帶劍侍側이라가 有變이면 足以相當이니이다
구순이 이것을 알고 가복과 서로 만나려 하지 않으니, 누님의 아들인 곡숭谷崇이 말하기를 “저는 장수입니다. 검을 차고 옆에서 모시다가 변고가 있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하니,
恂曰 不然하다 藺相如不畏秦王而屈於廉頗者 爲國也라하고
구순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옛날에 은 나라를 위해서였다.” 하였다.
乃勅屬縣하여 盛供具하고 儲酒醪하여 執金吾軍入界 一人皆兼二人之饌注+醪, 魯刀切, 兼汁酒.하다 出迎於道라가 稱疾而還하니
구순은 마침내 속현屬縣에 명하여 음식을 성대히 장만하고 술과 막걸리를 쌓아두고서 집금오執金吾(가복賈復)의 군대가 경내로 들어오면 군사 한 명에 모두 두 사람 분의 음식을 주게 하고는注+노도魯刀이니, 과 찌꺼기가 섞여 있는 술이다., 자신은 길에 나가 이들을 영접하다가 병을 칭탁하고 돌아왔다.
勒兵欲追之 而吏士皆醉 遂過去하다
가복이 군대를 무장하여 구순을 추격하고자 하였으나, 관리와 군사가 모두 취했으므로 그대로 지나갔다.
遣谷崇하여 以狀聞한대 帝乃徵恂하다하여 引見時 先在坐러니 欲起避之어늘
구순寇恂곡숭谷崇을 보내 이러한 내용의 글을 올려 황제에게 아뢰자, 황제가 마침내 구순을 불렀다. 구순이 도착하여 인견引見할 때에, 가복賈復이 먼저 자리에 있었는데 가복이 일어나 피하려 하자,
帝曰 天下未定하니 兩虎安得私鬪리오 今日 朕分之注+分, 猶解也.호리라 於是 竝坐極歡하고 遂共車同出하여 結友而去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두 호랑이가 어찌 사사로이 싸운단 말인가. 오늘 이 원한을 풀어주겠다.”注+(풀다)은 와 같다. 하였다. 이에 함께 앉아 지극히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수레를 함께 타고 나와서 우호를 다지고 떠나갔다.
八月 帝自將征五校하여 降之注+五校賊帥, 高扈.하다
】 8월에 황제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오교五校를 정벌하여 항복을 받았다.注+오교五校적수賊帥고호高扈이다.
◑遣將軍鄧隆하여 討彭寵이러니 不克하다
】 장군 등융鄧隆을 보내 팽총彭寵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기지 못하였다.
帝遣鄧隆하여 助朱浮하여 討彭寵이러니 軍潞南하고 軍雍奴하고 遣吏奏狀注+潞․雍奴二縣, 皆屬漁陽郡.한대
】 황제가 등융鄧隆을 보내 주부朱浮를 도와 팽총彭寵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등융은 의 남쪽에 군대를 주둔하고 주부는 옹노雍奴에 주둔하고는 관리를 보내 이런 내용을 아뢰었다.注+옹노雍奴은 모두 어양군漁陽郡에 속하였다.
帝曰 營相去百里 其勢不相及이니 比若還이면 北軍必敗矣注+比, 及也. 若, 汝也.리라 果遣輕兵하여 擊隆軍하여 大破之하니 浮不能救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두 진영이 서로 100리쯤 떨어져 있으면 그 형세가 서로 미칠 수가 없으니, 그대(관리)가 되돌아갔을 즈음에는 북군北軍(등융의 군대)이 반드시 패하였을 것이다.”注+는 미침이다. 은 너이다. 하였다. 팽총이 과연 경무장한 군대를 보내 등융의 군대를 공격해서 대파하니, 주부가 구원하지 못하였다.
蓋延 克睢陽하니 劉永 走湖陵하다
갑연蓋延수양睢陽(수양)을 함락시키니, 유영劉永호릉湖陵으로 달아났다.
蓋延 圍睢陽數月 克之하니 劉永 犇譙注+譙, 音樵. 地理志 “譙縣, 屬沛郡.”하다 蘇茂, 佼彊, 周建 合軍三萬餘人하여 救永이어늘 與戰大破之하다
갑연蓋延수양睢陽을 포위한 지 수개월 만에 함락시키니, 유영劉永초현譙縣(초현)으로 달아났다.注+는 음이 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초현譙縣패군沛郡에 속했다.” 하였다. 소무蘇茂교강佼彊, 주건周建이 병력 3만여 명을 모아 유영을 구원하자, 갑연이 이들과 싸워 대파하였다.
走保湖陵注+地理志 “湖陵縣, 屬山陽郡.”하니 遂定沛, 楚, 臨淮注+沛․楚․臨淮, 三郡也.하다
유영이 도망하여 호릉湖陵을 지키니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호릉현湖陵縣산양군山陽郡에 속했다.” 하였다., 갑연이 마침내 , 임회臨淮를 평정하였다.注+, , 임회臨淮는 세 이다.
靑, 徐群盜張步等하다
군도群盜장보張步 등이 항복하였다.
帝使伏隆으로 持節하여 使靑, 徐二州注+隆, 湛之子也.하니 群盜聞劉永破敗하고 皆惶怖請降하고 張步 遣其掾하여 隨隆詣闕하다
】 황제가 복륭伏隆으로 하여금 부절符節을 잡고 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注+복륭伏隆복담伏湛의 아들이다. 도둑들은 유영劉永이 격파되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항복을 청하였고, 장보張步는 자신의 관리를 보내 복융을 따라 대궐에 들어가게 하였다.
將軍鄧奉하다
】 장군 등봉鄧奉이 배반하였다.
吳漢 徇南陽 多侵暴 將軍鄧奉 謁歸新野러니 怒漢掠其鄕里하여 遂反하여 擊破漢軍하고 與諸賊合從注+奉, 晨之兄子也. 謁歸, 謁告而歸也.하다
오한吳漢남양南陽을 순행할 적에 백성들을 침해하여 포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장군 등봉鄧奉이 휴가를 받아 신야新野로 돌아가 있었는데, 오한이 자기 향리鄕里를 약탈한 것에 노해서 마침내 배반하여 오한의 군대를 격파하고 여러 도적과 합종하였다.注+등봉鄧奉등신鄧晨의 형의 아들이다. “알귀謁歸”는 휴가를 받고 돌아간 것이다.
九月 赤眉發掘諸陵하고 復入長安하니 鄧禹戰不利하여 走雲陽하고 延岑 屯杜陵하다
】 9월에 적미赤眉가 여러 을 도굴하고 다시 장안長安으로 쳐들어오니, 등우鄧禹가 싸워 승리하지 못하고서 운양雲陽으로 달아났고 연잠延岑두릉杜陵에 주둔하였다.
赤眉引兵欲上隴이어늘 隗囂遣將하여 迎擊破之한대 赤眉乃復還하여 發掘諸陵하여 取其寶貨하니 凡有玉匣殮者 率皆如生이라
적미赤眉가 군대를 이끌고 농서隴西로 올라가려 하자, 외효隗囂가 장수를 보내 이들을 맞아 싸워 격파하였다. 적미가 마침내 다시 장안長安으로 돌아와 여러 을 도굴하여 무덤에 있는 보화를 취하였는데, 옥갑玉匣에 염습을 한 시신은 모두 살아 있는 듯하였다.
遂汙辱呂后屍注+殮, 力驗切. 呂后合葬長陵, 高祖陵在西, 呂后陵在東.하다 鄧禹擊之라가 反爲所敗하고 禹乃出하여 之雲陽注+之, 往也.하니 赤眉復入長安하다
적들은 여후呂后의 시신을 능욕하여 더럽혔다.注+(염습하다)은 역험力驗이다. 여후呂后장릉長陵에 합장하였는데, 고조高祖은 서쪽에 있고 여후呂后은 동쪽에 있었다. 등우鄧禹가 이들을 공격하다가 도리어 패하고 마침내 나와 운양雲陽으로 가니注+〈“지운양之雲陽”의〉 는 감이다., 적미가 다시 장안長安으로 쳐들어왔다.
延岑 屯杜陵이러니 赤眉將逄安 擊之注+逄, 音龐.어늘 大破安軍하니 死者十餘萬人이러라
연잠延岑두릉杜陵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적미의 장수 방안逄安(방안)이 연잠을 공격하였다.注+은 음이 이다. 그러나 연잠이 방안의 군대를 대파하니, 죽은 자가 10여만 명이었다.
遣將軍岑彭, 王常等하여 討鄧奉하다
】 겨울에 장군 잠팽岑彭왕상王常 등을 보내 등봉鄧奉을 토벌하였다.
帝於大會中 指王常하여 謂群臣曰 此家率下江諸軍하여 輔翼漢室하여 心如金石하니 眞忠臣也注+此家, 猶言此人也.라하고
】 황제는 큰 모임 가운데에서 신하들에게 왕상王常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강下江의 여러 군대를 인솔하고 나라 황실을 보익하여 마음이 금석처럼 견고하니, 참으로 충신忠臣이다.”注+차가此家”는 이 사람[차인此人]이라는 말과 같다. 하고는,
卽日 拜漢忠將軍하여 使與岑彭으로 率七將軍하여 討鄧奉하다
당일에 한충장군漢忠將軍으로 제수하여 잠팽岑彭과 함께 일곱 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등봉鄧奉을 토벌하게 하였다.
遣將軍馮異하여 入關하고 徵鄧禹하여 還京師하다
】 장군 풍이馮異를 보내 관중關中(장안長安)에 들어가게 하고, 등우鄧禹를 불러 경사京師(낙양洛陽)로 돌아오게 하였다.
鄧禹自馮愔叛後 威名 稍損하고 又乏糧食하여 戰數不利하니 歸附者日益離散이라
등우鄧禹풍암馮愔(풍암)이 배반한 뒤로부터 위엄과 명성이 차츰 깎이고 또 식량이 부족하여 여러 번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니, 귀순하여 따르던 자들이 날로 더욱 이산하였다.
帝乃遣偏將軍馮異하여 代禹할새 送至河南注+地理志 “河南縣, 屬河南郡.”하여 勅異曰 三輔遭王莽, 更始之亂하고 重以赤眉, 延岑之醜하니
황제는 마침내 편장군 풍이偏將軍 馮異를 보내 등우를 대신하게 하였는데, 황제는 이때 하남河南에 가서 풍이를 전송하며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남현河南縣하남군河南郡에 속했다.” 하였다. 다음과 같이 칙명을 내렸다. “삼보三輔 지역이 왕망王莽경시更始의 난리를 만나고 게다가 적미赤眉연잠延岑의 추행을 겪으니,
元元塗炭하여 無所依訴注+重, 直用切, 加也. 依訴, 謂依倚訴告也. 將軍 今奉辭하여 討諸不軌하니 營堡降者 遣其渠帥하여 詣京師注+堡, 小城也.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서 의지하고 하소연할 곳이 없다.注+〈“중이적미重以赤眉”의〉 직용直用이니 더함이다. “의소依訴”는 의지하고 하소연함을 이른다. 장군이 이제 황제의 명을 받들어 여러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을 토벌하니, 영보營堡 중에 항복하는 자는 그들의 괴수를 경사京師로 보내고注+는 작은 이다.,
散其小民하여 令就農桑하고 壞其營壁하여 無使復聚하라 征伐 非必略地屠城이요 要在平定安集之耳
백성들을 해산하여 농사짓고 누에치게 하고, 진영과 성벽을 파괴하여 다시는 모이지 못하게 하라. 정벌은 굳이 땅을 경략하고 을 도륙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은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있을 뿐이다.
諸將 非不健鬪 然好虜掠이라 本能御吏士하니 念自修勅하여 無爲郡縣所苦하라
장수들이 용감하게 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은 본래 관리와 군사들을 잘 통제하니, 스스로 몸을 닦고 삼갈 것을 생각하여 군현郡縣에 고통을 주지 말라.”
異頓首受命하고 引而西하여 所至 布威信하니 群盜多降이러라
풍이가 머리를 조아리고 명령을 받고는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이르는 곳마다 위엄과 신의를 펴니, 여러 도둑들이 대부분 항복하였다.
司馬公曰 周頌曰 鋪時繹思하여 我徂惟求定이라하니 光武之所以取關中 用是道也 豈不美哉
사마공司馬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시경詩經≫ 〈주송周頌〉에 하였다. 광무제光武帝관중關中을 점령한 것이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又詔徵鄧禹還하여 曰 愼毋與窮寇爭鋒注+窮寇者, 言其勢已窮, 勢必致死也.하라 赤眉無穀하니 自當來東이라
】 황제는 또 조령詔令을 내려 등우鄧禹를 불러 돌아오게 하고 말하기를 “부디 궁지에 몰린 적과 예봉을 다투지 말라.注+궁구窮寇”는 그 형세가 이미 곤궁해서 형세상 반드시 사력을 다해 싸울 적을 말한다. 적미赤眉는 식량이 없으니, 저절로 마땅히 동쪽으로 올 것이다.
吾以飽待飢하고 以逸待勞 折箠笞之리니 非諸將憂也 無得復妄進兵注+箠, 杖也. 折杖笞之, 言易也.하라
내가 배부른 군대로 굶주린 적을 상대하고 편안한 군대로 수고로운 적을 상대하면 말채찍을 꺾고도 매질할 수 있을 것이니, 장수들이 근심할 바가 아니다. 다시는 함부로 진군하지 말라.”注+는 채찍[]이니, “절장태지折杖笞之”는 쉬움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遣光祿大夫伏隆하여 拜張步爲東萊太守하다
광록대부 복륭光祿大夫 伏隆을 보내 장보張步동래태수東萊太守로 임명하였다.
◑十二月 詔復宗室列侯爲莽所絶者注+復, 謂復故國也.하다
】 12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종실宗室열후列侯 중에 왕망王莽에 의해 관작이 끊긴 자들을 다시 회복시켜주었다.注+은 옛 나라를 회복함을 이른다.
◑三輔大饑하니 赤眉東出이어늘 馮異與戰破之하다
삼보三輔 지역에 큰 기근이 들자 적미赤眉가 동쪽으로 나오므로 풍이馮異가 이들과 싸워 격파하였다.
三輔大飢하여 城郭皆空하고 遺民 往往聚爲營堡하여 各堅壁淸野하니 赤眉虜掠無所得이라 乃引而東하니 衆尙二十餘萬이러라
삼보三輔 지역에 큰 기근이 들어 성곽이 모두 비고, 유민들이 도처에 모여 진영과 성보를 만들어서 각각 성벽을 굳게 지키고 들의 곡식 등을 깨끗이 비웠다. 적미赤眉가 노략질하여도 얻을 것이 없자 이에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는데, 병력이 아직도 20여만 명이 되었다.
帝 遣侯進屯新安하고 耿弇屯宜陽하고 勅曰 賊若東走어든 可引宜陽兵하여 會新安하고 南走어든 可引新安兵하여 會宜陽하라
황제가 후진侯進을 보내 신안新安에 주둔시키고 경감耿弇의양宜陽에 주둔시키고, 칙명을 내리기를 “적이 만약 동쪽으로 달아나면 의양宜陽의 군대를 데리고 신안新安에 모이고, 남쪽으로 달아나면 신안新安의 군대를 데리고 의양宜陽에 모이도록 하라.” 하였다.
馮異與赤眉遇於華陰하여 戰數十合 降五千餘人하다
풍이馮異화음華陰에서 적미와 만나 수십 합을 싸운 뒤에 5천여 명을 항복시켰다.
역주
역주1 (兵)[丘] : 저본에는 ‘兵’으로 되어 있으나, ≪御批資治通鑑綱目≫의 ≪正誤≫에 의거하여 ‘丘’로 바로잡았다.
역주2 如字 : 하나의 글자에 두 개 이상의 讀音이 있는 경우 본래의 음대로 읽는 것을 가리킨다.
역주3 (與)[興] : 저본에는 ‘與’로 되어 있으나, ≪後漢書≫에 의거하여 ‘興’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戰國時代에……말이다 : 公孫龍은 전국시대 名家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秦나라 昭王이 趙나라 수도 邯鄲을 포위하자, 趙나라 平原君이 魏나라의 公子인 信陵君 無忌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魏나라는 秦나라를 두려워하여 장수 晉鄙에게 전장을 관망만 하도록 하였다. 이에 신릉군이 如姬를 통해 궁중의 병부를 훔쳐서 진비의 군대를 빼앗아 趙나라를 구원하였다. 虞卿은 邯鄲을 보존하게 된 것이 평원군 때문이라고 하여 평원군을 봉할 것을 조정에 청하였다. 공손룡이 이 소문을 듣고 밤중에 수레를 몰고 가서 평원군에게 “지금 신릉군이 邯鄲을 보존시켰는데, 君께서 신릉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고 하여서 封邑을 청하는 것은 친척으로서 성을 받고 國人으로서 功을 따지는 것이니, 이것은 정말 옳지 않습니다.[今信陵君存邯鄲而請封 是親戚受城 而國人計功也 此甚不可]”라고 설득하자 평원군은 마침내 봉읍을 거절하였다. ≪史記 卷76 平原君虞卿列傳≫
역주5 (吏)[史] : 저본에는 ‘吏’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史’로 바로잡았다.
역주6 三署 : 漢나라 때에 五官署, 左署, 右署의 합칭이다. ≪後漢書≫ 권4 〈和殤帝本紀〉에 “삼서의 郎을 이끌어서 금중에서 소견하였다.[引三署郞 召見禁中]”라고 하였는데, 李賢의 注에 “≪漢官儀≫에 ‘삼서는 오관서와 좌서와 우서를 이른다. 각각 중랑장을 두어서 맡게 하고 군국에서 효렴을 천거하여서 삼서의 낭을 보임하게 하는데, 나이가 50세 이상인 경우는 오관서에 소속시키고, 그 다음은 나누어서 좌서와 우서에 소속시켰다.[三署謂五官署也 左右署也 各置中郞將以司之 郡國擧孝廉以補三署郞 年五十以上屬五官 其次分在左右署]’라고 했다.” 하였다.
역주7 옛날……주벌하였으니 : 季布는 項羽의 장수로 漢 高祖 劉邦을 누차 곤궁하게 하고 욕보였다. 항우가 멸망하자 유방은 계포에게 현상금으로 걸고 수배령을 내렸는데, 계포는 머리를 깎고 노예가 되어서 스스로 魯 지역의 朱家에 팔려갔다. 주가는 계포를 알아보고 직접 洛陽에 가서 滕公(夏侯嬰)에게 “계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신하가 각각 군주를 위하여 쓰이는 것은 당연한 직분입니다. 項氏의 신하들을 어찌 다 주벌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上께서 처음으로 천하를 얻고서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한 사람을 찾으시니, 어찌 도량이 넓지 못함을 보이신단 말입니까. 또한 계포의 현능함 때문에 漢나라가 그를 급하게 찾으니, 이 사람이 북쪽의 胡로 달아나지 않으면 남쪽의 越나라로 달아날 뿐입니다. 무릇 壯士를 미워하여 적국을 이롭게 하는 것은 바로 伍子胥가 楚 平王의 묘를 파내어 그 시신에 채찍질을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君께서는 어찌하여 차근차근 上께 말씀드리지 않습니까.[季布何罪 臣各爲其主用 職耳 項氏臣豈可盡誅邪 今上始得天下 而以私怨求一人 何示不廣也 且以季布之賢 漢求之急 此不北走胡 南走越耳 夫忌壯士以資敵國 此伍子胥所以鞭荊平之墓也 君何不從容為上言之]”라고 설득하였다. 이에 등공이 주가가 지시한 대로 한가한 틈을 타서 고조에게 아뢰자 마침내 계포를 사면하고 불러서 郞中을 제수하였다. ≪史記 卷100 季布欒布列傳≫ 丁公은 계포의 母弟로, 항우의 장수가 되어 유방을 彭城 서쪽에서 추격하여 短兵으로 접전하였다. 수세에 몰린 유방이 정공을 향해 “두 훌륭한 인물이 어찌 서로 곤궁하게 하는가.[兩賢豈相厄哉]”라고 말하자, 정공은 그대로 군대를 돌려 돌아갔다. 항우가 죽고 유방이 漢나라를 건국하자 정공이 유방을 찾아갔는데, 유방은 그를 軍中에 돌려 보이며 “정공이 項王의 신하가 되어 불충해서 항왕으로 하여금 천하를 잃게 하였다.[丁公爲項王臣不忠 使項王失天下]”라고 하고, 마침내 그의 목을 베고서 “후세의 人臣이 된 자로 하여금 정공을 본받지 말게 하려는 것이다.[使後爲人臣 無傚丁公也]”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卷11 漢紀 太祖高皇帝≫
역주8 鄭나라의……음악 : ‘鄭聲’은 춘추시대 鄭나라의 음악을 가리키는바, 그 내용과 곡조가 음란하므로 淫樂이라고도 한다. 孔子가 지향했던 雅樂과는 달랐기 때문에 儒家의 배척을 받았다. ≪論語≫ 〈衛靈公〉에 “顔淵이 나라 다스리는 법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夏나라의 冊曆을 행하며, 殷나라의 수레를 타며, 周나라의 冕旒冠을 쓰며, 음악은 舜임금의 韶舞를 취하고 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추방하며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해야 하니, 鄭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은 위태롭다.[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보인다.
역주9 擊劉永 : “앞에서는 ‘梁王 劉永’이라고 썼는데, 여기에서 ‘劉永’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황제를 칭했기 때문에 梁王의 칭호를 삭제한 것이다. 어찌하여 삭제하였는가. 一統을 크게 여긴 것이다.[前書梁王永矣 此其曰劉永 何 稱帝也 故削之 曷爲削之 大一統也]” ≪書法≫
역주10 立貴人郭氏爲皇后 : “東漢의 皇后가 모두 貴人으로부터 皇后의 자리에 나아간 것은 순서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立貴人某氏(귀인 某氏를 세웠다.)’라 쓴 것이다. 東漢의 세대가 끝날 때까지 ‘立貴人某氏爲皇后(귀인 모씨를 황후로 세웠다.)’라고 쓴 것이 14번인데, 오직 桓帝의 후비인 梁氏만 귀인이라고 쓰지 않았으니, 이는 순서를 잃었으므로 그 글을 달리 한 것이다.[東漢皇后 皆自貴人進立 序也 故悉書立貴人某氏 終東漢之世 書立貴人某氏爲皇后者 十四 惟桓后梁氏不書貴人 失序也 故異其文]” ≪書法≫
역주11 藺相如(인상여)가……것 : 藺相如와 廉頗는 戰國時代 趙나라 사람이다. 河外의 澠池에서 秦王과 趙王이 會盟할 적에 인상여가 진왕의 무례함을 叱責하여 굴복시킨 공로로 上卿이 되어 지위가 염파보다 위에 있자, 염파는 인상여를 욕보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상여는 병을 핑계 대고 조회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집을 나서다가 멀리서 염파가 보이면 번번이 수레를 돌려서 숨었다. 舍人들이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자, 인상여는 “진왕의 위엄에도 내가 조정에서 그를 꾸짖고 여러 신하들을 모욕하였는데, 내가 비록 노둔하나 유독 廉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다만 내가 생각건대 강한 秦나라가 감히 우리 趙나라에 침략을 가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두 마리 호랑이가 함께 싸우면 그 형세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니,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국가의 위급함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원수를 뒤로 하는 것이다.[夫以秦王之威 而相如廷叱之 辱其群臣 相如雖駑 獨畏廉將軍哉 顧吾念之 彊秦之所以不敢加兵於趙者 徒以吾兩人在也 今兩虎共鬪 其勢不俱生 吾所以爲此者 先國家之急而後私讐也]”라고 말하였다. 염파가 이 말을 듣고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지고 찾아가 사죄하고 마침내 刎頸之交(문경지교)를 맺었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문경지교’란 절친한 벗을 위하여 목을 찔러 죽는 것도 사양하지 않음을 이른다.
역주12 (泮)[滓] : 저본에는 ‘泮’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滓’로 바로잡았다.
역주13 이 찾아……구한다 : 이 내용은 ≪詩經≫ 〈周頌 賚〉의 “文王이 이미 근로하셨는데 내 응하여 받으니, 이 찾아 생각할 것을 펴서 내가 가서 안정을 구함이니라. 이 周나라의 命이시니, 아! 찾아 생각할지어다.[文王旣勤止 我應受之 敷時繹思 我徂維求定 時周之命 於繹思]”라고 한 데에 보인다. 이에 대해 朱子의 ≪詩經集傳≫에 “이 문왕의 功德이 사람들에게 기억되어 있어서 찾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펴서 功이 있는 이에게 주어 天下의 안정을 가서 구하는 것이다.[布此文王功德之在人而可繹思者 以賚有功 而往求天下之安定]”라고 설명하였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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