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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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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年(B.C. 120)
신유년(B.C. 120)
三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수元狩 3년이다.
有星孛于東方하다
봄에 패성孛星이 동쪽에 나타났다.
◑ 夏하다
[綱] 여름에 사면赦免하였다.
◑ 秋 匈奴入右北平, 定襄하다
[綱] 가을에 흉노匈奴우북평右北平정양定襄에 침입하였다.
[綱] 산동山東에 큰 홍수洪水가 났으므로 가난한 백성을 관서關西삭방朔方으로 이주시켰다.
山東被水하여 民多飢乏이라
[目] 산동山東 지방이 수해水害를 입어 굶주리고 궁핍한 백성이 많았다.
遣使하여 虛倉廩以振호되 猶不足하고 又募富人假貸호되 尙不能相救 乃徙貧民關西, 朔方, 新秦中七十餘萬口注+關西, 謂隴西ㆍ北地ㆍ西河ㆍ上郡也. 秦始皇遣蒙恬, 攘却匈奴, 得其河南造陽之北千里, 地甚好. 於是爲築城郭, 徙內郡貧民以充之, 名曰新秦.하여 皆仰給縣官하고 數歲 貸與産業하여 使者分護하니 費以億計注+使者, 部刺史也. 分, 扶問切. 護, 救視也.러라
사자使者를 보내어 창름倉廩을 비워서 구휼하였으나 식량이 부족하였고, 또 부자들을 모집하여 곡식과 재물을 빌려주게 하였으나 여전히 구원하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가난한 백성들을 관서關西삭방朔方, 신진중新秦中으로 70여만 명을注+관서關西농서隴西북지北地, 서하西河상군上郡을 이른다. 나라 시황제始皇帝몽념蒙恬(몽염)을 보내어 흉노匈奴를 물리쳐서 하남河南 조양造陽의 북쪽 천 리 땅을 얻으니, 토질이 매우 비옥하였다. 이에 성곽을 쌓고 내군內郡에 있는 가난한 백성들을 이주시켜 채우고는 신진新秦이라 이름하였다. 이주시켜 모두 현관縣官(국가國家)에서 공급하게 하고, 몇 년 동안 이들에게 산업産業(전지田地주택住宅)을 대여해주고서 사자使者(자사刺史)가 나누어 보살피니, 비용이 억만으로 헤아려졌다.注+사자使者자사刺史이다. (나누다)은 부문扶問이다. 는 구원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減隴西, 北地, 上郡戍卒之半하다
[綱] 농서隴西북지北地, 상군上郡의 변방을 수비하는 병력의 절반을 줄였다.
旣得渾邪王地하니 隴西, 北地, 上郡 益少胡寇
[目] 나라가 이미 혼사왕渾邪王의 땅을 얻으니, 농서隴西북지北地, 상군上郡에 오랑캐의 침입이 더욱 적어졌다.
詔減三郡戍卒之半하여 以寬天下之繇하다
이에 조령詔令을 내려 변방을 수비하는 세 의 병력의 절반을 줄여서 천하의 요역繇役을 경감하였다.
作昆明池하다
[綱] 곤명지昆明池를 만들었다.
將討昆明注+以其閉漢使故也.할새 以昆明有滇池하니 方三百里라하여 乃作昆明池하여 以習水戰注+滇池, 水源深廣, 而未更淺狹, 有似倒流, 故謂之滇池. 昆明池, 在長安西南, 周回四十里.하다
[目] 이 장차 곤명昆明을 토벌하려 할 적에,注+곤명昆明나라의 사신使臣을 못 오게 했기 때문이다. 곤명에 둘레가 3백 리인 전지滇池가 있으므로, 마침내 장안長安곤명지昆明池를 만들어서 수전水戰을 익히게 하였다.注+수원水源이 깊고 넓은데 얕고 좁은 곳을 지나가지 않아서 거꾸로 흐르는 듯하였으므로, 이름을 전지滇池라 하였다. 곤명지昆明池장안長安 서남쪽에 있으니, 둘레가 40리이다.
是時 法旣益嚴하여 吏多廢免하고 兵革數動하니 民多買復及五大夫하여 徵發之士 益鮮注+買復, 謂入財於官, 以取優復也. 五大夫, 舊爵二十等之第九級也. 漢法至此, 始免徭役.이라
이때에 이 더욱 엄격하여 관리들이 폐출되고 면직당한 자가 많았고 병혁兵革(전쟁)이 자주 일어나니, 백성들이 (신역身役 면제)과 오대부五大夫를 많이 사서 징발할 수 있는 병사가 더욱 적었다.注+매복買復”은 관청에 재물을 납부하고서 우대하는 (요역 면제)을 취하는 것이다. 오대부五大夫는 옛날 작위爵位로 20등 가운데 제9급이다. 나라 법에 이 오대부五大夫에 이르러야 비로소 요역徭役이 면제되었다.
於是 除千夫, 五大夫하여 爲吏호되 不欲者 出馬注+拜官曰除. 千夫, 武功爵第七級也, 爵秩出於五大夫.하고 以故吏弄法이면 皆謫令伐棘上林하여 穿昆明池注+故, 舊也. 謫, 責罰也. 以其父爲姦利也.하다
이에 를 관리로 제수하되 원치 않는 자는 말을 내게 하고,注+관직을 제수함을 라 한다. 천부千夫무공작武功爵으로 제7급이니, 작질爵秩오대부五大夫보다 낮다. 관리 중에 아비가 옛날에 법을 농간한 일이 있으면 모두 처벌해서, 그들로 하여금 상림원上林苑의 가시나무를 베어서 곤명지昆明池를 파게 하였다.注+는 옛날이고 은 책망하고 벌줌이니, 그 아버지가 부정하게 이익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得神馬於渥洼水中하다
[綱] 악와수渥洼水 가운데에서 신마神馬를 얻었다.
是歲 得神馬於渥洼水中注+渥, 音握. 洼, 於佳切. 李斐曰 “南陽新野, 有暴利長, 當武帝時, 遭刑, 屯田敦煌界. 數於此水旁, 見群野馬中有奇者, 與凡馬異, 來飮此水. 利長先作土人, 持勒靽於水旁, 後馬玩習. 久之, 代土人持勒靽, 收得其馬獻之, 欲神異此馬, 云從水中出.” 靽, 與絆同, 馬縶也.하니
[目] 이해에 악와수渥洼水 가운데에서 신마神馬를 얻었다.注+은 음이 이고 어가於佳이다. 이비李斐가 말하기를 “남양南陽신야新野폭리장暴利長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무제武帝 때에 형벌을 받고 돈황敦煌 경계에서 둔전屯田을 하였다. 그런데 이 물가에서 여러 야생마들 가운데 일반 말과는 다른 기이한 말이 물을 마시러 오는 것을 자주 보았다. 폭리장은 먼저 토우인土偶人(흙으로 만든 인형)을 만들어서 굴레와 말고삐[]를 가지고 물가에 세워두게 하니, 뒤에는 말들이 익숙해져서 토우인土偶人을 가까이하였다. 오랜 뒤에 토우인土偶人을 대신하여 진짜 사람이 굴레와 말고삐를 가지고 있다가 그 말을 붙잡아서 바쳤는데, 이 말을 신령하고 기이하게 하려고 ‘물 가운데서 나왔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과 같으니, 말의 고삐이다.
方立樂府하여 造爲詩賦하여 絃次以合八音之調러니 及得神馬 次以爲歌注+樂府, 有安世房中歌十七章, 郊祀歌十九章, 使童男女七十人歌之, 樂府之名, 蓋始於此. 調, 徒笑切. 次, 撰述也. 次以爲歌調, 次以爲太一之歌. 其曲曰 “貢兮天馬下, 霑赤汗兮沫流赭. 騁容與兮跇萬里, 今安匹兮龍與友.”하다
은 이때 악부樂府를 세워서 시부詩賦를 지어 현악기絃樂器로 엮어서 를 맞추려 하였는데, 신마神馬를 얻자 〈그 경위를〉 찬술撰述하여 노래를 만들었다.注+악부樂府안세방중가安世房中歌 17교사가郊祀歌 19이 있는데, 동남童男동녀童女 70명으로 하여금 이것을 노래하게 하니, 악부樂府라는 이름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 調(곡조)는 도소徒笑이다. 찬술撰述함이니, 엮어서 노래의 곡조를 만들고 엮어서 태일太一의 노래를 만들었다. 이 곡조에 “태일太一이 바쳐 천마天馬가 내려오니, 붉은 땀이 젖어 피처럼 붉게 흐르도다. 한가롭게 말을 달려 한달음에 만리萬里를 가니, 이제 무엇과 짝하겠는가. 과 짝한다.” 하였다.
汲黯曰
급암汲黯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凡王者作樂 上以承祖宗하고 下以化兆民하나니
“무릇 왕자王者가 음악을 지을 적에, 위로는 조종祖宗을 받들고 아래로는 억조億兆의 백성들을 교화시켰습니다.
今陛下得馬하사 詩以爲歌하여 協於宗廟하시니 先帝百姓 豈能知其音邪잇가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말을 얻으시고는 로써 노래를 지어 종묘에서 곡조曲調에 맞추어 연주하시니, 선제先帝와 백성들이 어찌 그 음악을 알겠습니까.”
默然不說注+曰音, 單出曰聲.이러라
이에 은 묵묵히 있으면서 기뻐하지 않았다.注+오성五聲이 배합되어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 것을 이라 하고, 한 가지 소리만 내는 것을 이라 한다.
◑ 上 招延士大夫하여 常如不足이라
[目] 사대부士大夫들을 초청하고 맞이하여 항상 부족한 듯이 하였다.
이나 性嚴峻하여 雖素所愛信者라도 小有犯法이면 輒按誅之하니 汲黯 諫曰
그러나 성품이 준엄하여 비록 평소 사랑하고 신임하는 자라도 조금만 법을 범하면 번번이 조사하여 죽이니, 급암汲黯이 다음과 같이 하였다.
陛下求賢甚勞하사 未盡其用 輒已殺之하사 以有限之士 恣無已之誅하시니 臣恐天下賢才將盡일까하노니
“폐하께서 현자賢者 구하기를 매우 수고롭게 하시어, 그 재용才用을 다 쓰기도 전에 번번이 죽이셔서 한정이 있는 선비들에게 끝없는 주벌誅罰을 행하시니, 천하天下에 어질고 재주 있는 자가 장차 다 없어질까 두렵습니다.
陛下誰與共爲治乎잇가
이렇게 되면 폐하께서 누구와 함께 정치를 하시겠습니까?”
言之甚怒한대 笑而諭之曰 何世無才리오 患人不能識之耳
급암이 이 말을 하며 매우 노여워하자, 이 웃으며 타이르기를 “어느 세상인들 인재가 없겠는가마는 사람들이 그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且才 猶有用之器也
또 재주는 유용한 그릇과 같다.
有才而不肯盡用이면 與無才同하니 不殺何施리오
재주가 있는데도 다 쓰려고 하지 않는다면 재주가 없는 것과 똑같으니, 죽이지 않고 무엇하겠는가.” 하였다.
黯曰 臣雖不能以言屈陛下 而心猶以爲非하노니
급암은 말하기를 “신이 비록 말로써 폐하를 굽히지는 못하나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폐하께서 잘못하신다고 생각합니다.
願陛下 自今改之하사 無以臣爲愚而不知理也하소서 居久之 坐法免하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지금부터 이것을 고치셔서 을 어리석어 이치를 알지 못한다고 여기지 마소서.” 하였는데, 급암은 오랜 뒤에 법에 걸려 면직되었다.
역주
역주1 山東……朔方 : “이것은 魏罃(梁 惠王)이 백성을 옮기고 곡식을 옮긴 옛날의 작은 지혜이다. 이 당시 해마다 흉노를 공격하고 西南夷와 통하여 紛紛하게 일이 많아 백성들의 재정이 고갈되었다. 한 번 기근이 들면 속수무책이어서 백성들을 진휼하고 구원하는 계책이 전혀 없었으니, 이것을 쓴 것은 또한 그 곤궁함을 나타낸 것이다.[此魏罃移民移粟之故智也 當是時 歲擊匈奴 通西南夷 紛紛多事 民財竭矣 一有饑歉 束手略無振救之策 書之 亦以見其窮爾]” 《發明》
역주2 千夫와 五大夫 : 武帝는 匈奴와의 전쟁으로 국가 재정이 부족하자 백성들에게 관작을 팔았는데, 이를 武功爵이라 한다. 千夫는 무공작 중 7급에 해당하는데, 이 이상은 요역을 면제받고 관직에 임명되었다. 五大夫는 공이 있는 사람에서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부여한 20等爵 중 9급에 해당한다. 오대부 이상은 역시 요역에 충당되지 않았다.
역주3 滇池 : 雲南省 昆明市 서남쪽에 있는 호수로, 동서 兩岸에 金馬山과 碧鷄山이 마주하고 있으며, 昆明湖‧昆明池‧滇南澤이라고도 불린다. 滇은 顚(거꾸러지다)과 음이 같으므로 ‘거꾸로’의 뜻을 취하여 滇池라 한 것이다.
역주4 八音의 곡조 : 여덟 가지 재료에 따른 악기의 소리로 金(징과 꽹과리), 石(編磬), 絲(현악기), 竹(관악기), 匏(생황), 土(질풍류), 革(북과 장구), 木(柷(축)과 敔(어))을 이른다.
역주5 太一 : 天神의 이름이다.
역주6 五聲雜比 : 五聲은 宮ㆍ商ㆍ角ㆍ徵(치)ㆍ羽의 다섯 가지 소리로, 이는 지금의 ‘도레미파솔라’와 같은 것이며, 雜比는 여러 가지 소리를 배합하여 조화롭게 하는 것이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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