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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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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年(109)
三年이라 春正月 帝冠하다
◑京師大饑하니 하다
◑司徒恭하다
再在公位하여 選辟高第하여 至列卿郡守注+高第, 謂才優而品第高也, 此謂恭府掾屬之高第也.로되 而門下耆生 或不蒙薦擧하여 有怨望者注+耆生, 老書生也.러니
聞之하고 曰 學之不講 是吾憂也라하고 終不借之議論注+謂終不優假一語而薦擧之.하다 學者受業 必窮核問難하여 道成然後 謝遣之注+難, 去聲.하니라
夏四月 令吏民入錢穀하여 得拜官賜爵有差하다
從三公之請也
漢人韓琮 隨單于入朝注+漢人與匈奴錯居, 琮因事南單于. 琮, 祖宗切.러니 旣還 說云 關東水潦하고 人民饑餓死盡하니 可擊也라한대 單于遂反하다
秋九月 海賊張伯路 寇濱海九郡하다
◑烏桓, 鮮卑, 南匈奴 合兵寇五原하다
◑冬十一月 南匈奴圍中郎將耿种於美稷注+使匈奴中郞將也.이어늘 遣中郎將龎雄하여 將兵討之하다
◑十二月 地震하다
◑有星孛于天苑注+天苑, 十六星, 如環狀, 在昴畢南, 天子之苑囿, 養獸之所也.하다
◑雨水하다
◑詔饗遣衛士 勿設戲作樂하고 減逐疫侲子之半注+以陰陽不和, 軍旅數興也. 西都之制, 歲盡衛卒交代, 上臨饗罷遣之. 續漢志曰 “饗遣故衛士儀, 百官會位定, 謁者持節引故衛士, 入自端門, 衛司馬執幡鉦護行. 行定, 侍御史持節慰勞, 以詔恩問所疾苦, 受其章奏所欲言. 畢, 饗賜作樂, 觀以角抵, 樂闋罷遣, 勸以農桑.” 侲, 震ㆍ眞二音. 侲之言善也, 善童幼子也, 儺於禁中而逐疫. 續漢書曰 “大儺, 選中黃門子弟年十歲以上十二以下百二十人, 爲侲子, 皆赤幘皁製, 執大鞉.”하다


기유년己酉年(109)
나라 효안황제 영초孝安皇帝 永初 3년이다. 봄 정월에 황제가 관례를 행하였다.
경사京師에 큰 기근이 드니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사도 노공司徒 魯恭이 면직되었다.
노공魯恭삼공三公의 지위에 두 번이나 있으면서, 재주가 뛰어나고 등급이 높은 자들을 선발하여 열경列卿(구향九鄕)과 군수郡守에 등용하였다.注+고제高第”는 재주가 뛰어나고 등급이 높은 자를 이르니, 여기서는 노공魯恭연속掾屬(관속官屬) 중 고제高第를 말한 것이다. 문하의 늙은 생도 중에 혹 천거를 받지 못하고서 원망하는 자가 있었는데注+기생耆生”은 늙은 서생이다.,
노공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하고는 끝내 천거할 적에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注+〈“종불차지의론終不借之議論”은〉 끝내 한 말씀을 너그럽게 해주어서 천거하지 않음을 이른다. 또 배우는 자들이 수업을 받을 적에 반드시 끝까지 묻고 논란해서 가 이루어진 뒤에야 사례하여 보내었다.注+(논란하다)은 거성去聲이다.
】 여름 4월에 관리와 백성들로 하여금 돈과 곡식을 바쳐서 관직에 제수되고 작위를 하사받게 하였는데, 차등이 있게 하였다.
삼공三公의 요청을 따른 것이다.
남흉노南匈奴가 배반하였다.
나라 사람 한종韓琮선우單于를 따라 들어와 조회하였는데注+나라 사람이 흉노匈奴와 뒤섞여 사니, 한종韓琮은 인하여 남선우南單于를 섬겼다. 조종祖宗이다., 돌아가서 선우를 설득하기를 “관동關東 지역에 장마가 들고 백성들이 기근에 허덕여 모두 죽게 되었으니, 공격할 만합니다.” 하자, 선우가 마침내 배반하였다.
】 가을 9월에 해적 장백로海賊 張伯路가 바닷가에 있는 9개의 을 침략하였다.
오환烏桓, 선비鮮卑, 남흉노南匈奴가 병력을 연합하여 오원五原을 침략하였다.
】 겨울 11월에 남흉노南匈奴미직美稷에서 중낭장 경충中郎將 耿种(경충)을 포위하자注+중낭장中郎將은〉 사흉노중랑장使匈奴中郞將이다., 중낭장 방웅中郎將 龎雄을 파견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게 하였다.
】 12월에 지진이 있었다.
패성孛星천원성天苑星에 나타났다.注+천원성天苑星은 16개의 별이 고리 모양을 하고서 묘성昴星필성畢星의 남쪽에 있으니, 천자天子원유苑囿이고 짐승을 기르는 곳이다.
】 큰비가 내렸다.
병주幷州양주涼州에 큰 기근이 드니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조령詔令을 내려 위사衛士들을 연향하여 보낼 적에 놀이를 하거나 풍악을 울리지 말고, 축역逐疫하는 진자侲子의 절반을 줄이게 하였다.注+음양陰陽이 화합하지 못하고 군대를 자주 출동하였기 때문이다. 서도西都(전한前漢)의 제도에 연말에 위사衛士들을 교대할 적에 이 직접 왕림하여 연향을 베풀어 보냈다. ≪속한지續漢志≫에 “옛 위사들을 연향을 베풀어 보내는 의식은 백관이 모여 자리가 정해지면 알자謁者을 잡고 옛 위사를 인도해서 단문端門으로 들어오고 위사마衛司馬는 깃발과 징을 잡고서 행렬을 호위한다. 행렬이 정해지면 시어사侍御史을 잡고 위사들을 위로하고는 은혜로운 조칙으로 고통스러운 바를 묻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장주章奏를 받았다. 의식이 끝나면 연향을 베풀고 하사품을 내리고 풍악을 일으켜서 씨름놀이[각저角抵]를 구경한다. 음악이 끝나면 파하고 보내어서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였다.” 하였다. 두 음이니, 이란 이라는 뜻으로 한 어린아이를 말하니, 금중禁中에서 굿하여 역귀를 쫓는다. ≪속한서續漢書≫에 “큰 굿에는 중황문中黃門의 자제 중에 10세 이상 12세 이하 120명을 선발해서 진자侲子로 삼았는데, 모두 붉은 관에 검은 옷을 입고 큰 북을 잡는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民相食 : “백성이 서로 잡아먹으면 천하에 나라가 없는 것이 되는데, 이것이 京師에 나타났으니 지극히 큰 이변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民相食’이라고 쓴 것이 10번인데, 京師에 나타난 것은 이번 한 번뿐이다.[民相食 天下無邦矣 而見於京師 至大異也 綱目書民相食十 而見於京師一而已]다” ≪書法≫
역주2 학문을……근심이다 : 이 내용은 ≪論語≫ 〈述而〉에서 “德이 닦아지지 못함과 학문이 講習되지 못함과 義를 듣고 옮겨가지 못함과 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徒 不善不能改 是吾憂也]”라고 한 孔子의 말씀이다. 魯恭은 이 말을 통해서 늙은 생도에게 본인을 천거해주지 않는 자신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학문을 專心으로 강습하지 못한 생도 본인을 돌아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역주3 南匈奴反 : “匈奴에게 배반했다고 쓴 적이 없었는데, 이해에 ‘南匈奴가 배반했다.’고 쓴 것은, 흉노가 이미 漢나라에 신하 노릇 하여 창고의 곡식을 받았으니 다른 夷狄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그가 배반한 것을 쓰고 마침내 뒤에서 그를 토벌한 것으로 바로잡아 써서 書法이 이와 같으니, 진실로 中國을 구차하게 높이려고 한 것이 아니다.[匈奴未有反書 而此年書南匈奴反者 已臣於漢 受其稟給 則非其他夷狄比矣 旣書其反於前 遂正其討於後 書法若此 固非苟於尊中國也]” ≪發明≫
역주4 幷涼大饑人相食 : “봄에 ‘京師에 큰 기근이 드니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고 썼었는데, 이때 다시 幷州와 涼州를 썼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人相食’을 쓴 것이 10번인데, 황제(安帝)가 그중에 두 번을 차지하였고, 한 해에 ‘人相食’을 두 번 쓴 경우는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이때 한 번뿐이다.[春 書京師大饑 民相食矣 於是再書幷涼 終綱目 書人相食十 帝居其二焉 若其一歲再書 則終綱目一而已矣]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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