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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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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年(B.C. 141)
경자년(B.C. 141)
三年이라
[綱] 나라 효경황제孝景皇帝 3년이다.
冬十月 日月皆赤하다
겨울 10월에 해와 달이 모두 붉은색이 되었다.
凡五日이라
[目] 모두 5일 동안 붉은색이 되었다.
注+太微, 天帝南宮也. 太微宮垣十星, 在翼‧軫之地, 天子之宮, 玉帝之坐.하다
[綱] 12월에 우레가 치고 태양太陽이 자주색이 되었으며, 이 역행하여 태미원太微垣에 머물고 달이 천정天廷의 가운데를 관통하였다.注+태미太微천제天帝남궁南宮이다. 태미궁太微宮의 담장에 있는 10익수翼宿진수軫宿(진수)의 자리에 있으니, 천자天子의 궁궐이고 옥황상제[옥제玉帝]의 자리이다.
◑ 春正月 詔勸農桑하고 禁采黃金珠玉하다
[綱] 봄 정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고 황금黃金주옥珠玉을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詔曰
[目] 조령詔令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天下之本也 黃金珠玉 飢不可食이요 寒不可衣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니, 황금黃金주옥珠玉은 굶주려도 먹을 수가 없고 추워도 입을 수가 없다.
間歲或不登 意爲末者衆하고 農民寡也注+間, 猶言近間.라하노니
근간에 연사年事가 혹 풍년이 들지 않은 것은 짐작건대 상공업商工業에 종사하는 자가 많고 농민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注+근간近間이란 말과 같다.
其令郡國으로 務勸農桑하고 益種樹하면 可得衣食物이니 吏發民若取庸하여 采黃金珠玉者 坐贓爲盜注+發民, 用其民也. 取庸, 取其資以雇庸也. 坐贓爲盜, 謂坐受贓而得爲盜罪也.하고 二千石聽者 與同罪호리라
군국郡國으로 하여금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고 나무를 더욱 많이 심게 하면 입고 먹을 물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관리 중에 백성을 징발하거나 고용하여 황금과 주옥을 채취하는 자는 장물을 받고 도둑질한 죄로 다스리고,注+발민發民”은 백성을 동원하는 것이고, “취용取庸”은 재물을 가지고 고용하는 것이다. “좌장위도坐贓爲盜”는 장물을 받아 도둑질한 죄에 걸림을 말한다.이천석二千石(군수郡守국상國相 등)으로서 이 사실을 들어 알고도 〈적발하지 않은〉 자는 죄를 똑같이 다스리겠다.”
注+壽四十八.하다
孝武帝 劉徹孝武帝 劉徹
[綱] 황제가 하였다.注+향년享年이 48세였다.
太子徹 卽位하다
[綱] 태자太子 유철劉徹이 즉위하였다.
年十六이라
[目] 나이가 16세였다.
尊皇太后하여 爲太皇太后하고 皇后爲皇太后하고 二月 葬陽陵하다
[綱] 황태후皇太后를 높여 태황태후太皇太后라 하고, 황후皇后황태후皇太后라 하고, 2월에 양릉陽陵에 장례하였다.
班固曰
[目] 반고班固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孔子稱斯民也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라하시니 信哉
周秦之敝 罔密文峻이로되 而姦軌不勝注+罔密, 禁防如網之密. 文峻, 文法深峻也. 不勝, 不可勝.이러니
나라와 나라의 폐단은 법망이 치밀하고 법조문이 준엄한 것이었는데도 간사한 자들을 감당하지 못하였다.注+망밀罔密”은 금방禁防(금지함)이 그물처럼 빽빽한 것이고, “문준文峻”은 법조문이 각박하고 준엄한 것이다. “불승不勝”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漢興 掃除煩苛하여 與民休息하고 至于孝文하여는 加之以恭儉하고 孝景遵業하여
그런데 나라가 일어나자, 번거롭고 까다로운 법령을 깨끗이 제거하여 백성들과 함께 휴식하였고, 효문제孝文帝에 이르러서는 공손하고 검소함을 더하였으며, 효경제孝景帝기업基業을 잘 따랐다.
五六十載之間 至於移風易俗하여 黎民醇厚하여 周云成康하고 漢言文景하니 美矣
그리하여 5, 60년 사이에 풍속이 바뀌어 여민黎民(백성)들이 순후해져서 나라에서는 성왕成王강왕康王을 말하고 나라에서는 문제文帝경제景帝를 말하니, 아름답다.”
又曰
[目] 또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漢初 接秦之弊하여 作業劇而財匱注+劇, 奇昔切, 疾也.하니 自天子 不能具鈞駟注+天子駕駟馬, 其色宜齊同, 言當時國家貧, 天子不能具鈞色之駟馬也.하고 而將相 或乘牛車注+以牛駕車也.하며 齊民 無藏蓋注+齊民, 猶言平民, 齊等, 無有貴賤, 故謂之齊民. 無藏蓋, 無物可蓋藏也.
나라 초기에는 나라의 피폐함을 이어받아서 일은 급하고 재물은 궁핍하니,注+기석奇昔이니, 빠르다(급하다)는 뜻이다. 천자로부터 색깔이 같은 사마駟馬를 갖출 수 없었고注+천자가 사마駟馬를 멍에할 적에 그 말의 색깔이 마땅히 같아야 하는데, 당시에는 국가가 가난하여 천자가 색깔이 같은 사마駟馬를 갖추지 못하였음을 말한다. 장수와 정승들은 혹 소가 끄는 수레를 탔으며,注+소로써 수레를 멍에한 것이다. 평민들은 덮어 보관할 만한 물건이 없었다.注+제민齊民”은 평민平民이란 말과 같으니, 신분이 똑같아서 귀천이 없었기 때문에 제민齊民이라 이른 것이다. “무장개無藏蓋”는 덮어서 보관할 만한 물건이 없는 것이다.
天下已平 高祖乃令賈人으로 不得衣絲乘車하고 重租稅하여 以困辱之러니 孝惠, 高后時 爲天下初定이라하여 復弛商賈之律이라이나 市井之子孫 亦不得仕宦爲吏
천하가 이미 편안해지자 고조高祖가 마침내 장사꾼들로 하여금 비단옷을 입거나 수레를 타지 못하게 하였으며, 조세를 무겁게 징수하여 장사꾼들에게 곤욕困辱을 주었는데, 효혜황제孝惠皇帝고후高后 때에는 천하가 처음 안정되었다 하여 다시 상고商賈를 제재하는 법률을 풀어주었으나 시정市井(상인)의 자손들이 또한 벼슬하여 관리가 될 수 없었다.
量吏祿하고度官用하여 以賦於民하며 漕轉山東粟하여 以給中都官호되 歲不過數十萬石注+中都官, 京師諸官府也.이러라
관리들의 녹봉을 헤아리고 관청의 비용을 헤아려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였으며, 산동山東의 곡식을 조운漕運하고 수송하여 중도中都(서울)의 여러 관부官府에 주었으나 1년에 수십만 에 불과하였다.注+중도관中都官경사京師의 여러 관부官府이다.
繼以文景 淸淨恭儉하여 安養天下하니 七十餘年之間 國家無事하여 非遇水旱이면 則人給家足하여 都鄙廩庾皆滿하고 而府庫餘貲財하며 京師之錢 累鉅萬이라
[目] 뒤이어 문제文帝경제景帝는 청렴하고 공손하고 검소하여 천하를 편안히 길러주니, 70여 년 사이에 국가에 일이 없어서 수재水災한해旱害를 만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이 넉넉하고 집집마다 풍족하여 도성과 시골에 창고가 모두 가득 차고 부고府庫에 재물이 남아 있었으며, 경사京師의 돈이 여러 거만鉅萬이었다.
貫朽而不可校注+都鄙, 國都及邊鄙. 累者, 兼數, 非止一也. 鉅, 大也, 大萬, 謂萬萬也. 校, 謂計數也. 太倉之粟 陳陳相因하여 充溢露積於外하여 至腐敗不可食注+陳, 謂久舊也.하며 衆庶街巷有馬하여 乘字牝者 擯而不得聚會注+直曰街, 曲曰巷. 字牝, 畜母也, 皆乘父馬, 有牝馬間其間, 則相踶齧, 故斥出不得會同. 一說 “時富饒, 恥乘字牝, 不必以其踶齧也.”하고 守閭閻者食粱肉注+閻, 音鹽, 里中門也.하며 爲吏者長子孫注+時無事, 吏不數轉, 至於生長子孫而不轉職也.하고 居官者以爲姓號注+以官名爲姓氏, 如倉氏‧庫氏, 則倉庫吏之後也.
돈꿰미의 끈이 썩어서 돈이 얼마인지 셀 수가 없었고,注+도비都鄙국도國都와 변방 고을이다. 를 겸한 것이니,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는 큼이니, 는 헤아리고 셈함을 이른다.태창太倉의 곡식이 오래 묵어 서로 쌓여서 차고 넘쳐 밖에 노적을 쌓아두어 곡식이 부패해서 먹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으며,注+은 오래 묵음을 이른다. 평민들도 가항街巷에 말이 있어서 암말을 타는 자를 물리쳐 모임에 참여할 수 없게 하였고,注+길이 곧은 것을 라 하고, 굽은 것을 이라 한다. “자빈字牝”은 새끼를 기르는 어미 말이니 사람들이 모두 수말을 타는데, 암말이 그 사이에 끼어 있으면 수말이 서로 발로 차고 물기 때문에 〈암말을 탄 사람을〉 배척하여 내보내서 함께 모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일설에 “이 당시에 부유하여 암말을 타는 것을 부끄러워한 것이지, 굳이 발로 차고 물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였다.여염閭閻(여항의 문)을 지키는 자들도 고량膏粱과 고기를 먹었으며,注+은 음이 이니, 마을[] 가운데의 문이다. 관리가 된 자는 자손이 장성하도록 한 직임에 오래 근무하였고,注+당시에 일이 없어서 관리들이 자주 전직轉職하지 아니하여, 자손子孫을 낳아 성장함에 이르도록 전직轉職하지 않은 것이다. 관직에 있는 자는 관직의 명칭을 성씨姓氏의 칭호로 삼았다.注+〈“거관자이위성호居官者以爲姓號”는〉 관직의 명칭을 성씨姓氏로 삼은 것이니, 창씨倉氏고씨庫氏창고倉庫를 맡은 관리의 후손이다.
人人自愛而重犯法注+謂不肯輕易犯法也.하여 先行義而後絀辱焉注+行, 去聲. 謂以行義爲先, 黜辱爲後.이러라
그러므로 사람마다 자기 몸을 아껴 법을 범함을 어렵게 생각하여注+〈“중범법重犯法”은〉 가볍게 법을 범하려 하지 않음을 말한다. 훌륭한 행실을 우선하고 남을 내치거나 욕보이는 것을 뒤로 하였다.注+(행실)은 거성去聲이다. 훌륭한 행실을 우선으로 삼고, 남을 내치고 욕보이는 것을 뒤로 삼음을 말한다.
이나 網疏民富하여 役財驕溢하여 或至兼幷하고 豪黨之徒 以武斷於鄕曲하며 宗室有土 公卿以下 爭于奢侈하여 僭上無度하니 物盛而衰 固其變也注+役, 使也. 謂爲財所使而驕溢也. 鄕里曰曲. 鄕曲豪富, 無官位而以威勢主断曲直, 故曰武断. 宗室有土, 謂國之宗姓受封邑有土地者也. 于字, 疑誤. 一本, 作事.
그러나 법망이 엉성하고 백성들이 부유해져서 재물을 믿고는 교만하고 넘쳐서 혹은 강자가 약자를 겸병함에 이르고 호부豪富한 무리들이 향곡鄕曲에서 무력을 사용하여 위세를 부렸으며, 토지를 소유한 종실宗室공경公卿 이하가 다투어 사치를 일삼아서 윗사람보다 참람하여 한도가 없었으니, 물건이 성하면 쇠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변화이다.注+은 사역이다. 〈“역재교일役財驕溢”은〉 재물의 노예가 되어 교만하고 넘침을 이른다. 향리鄕里이라 한다. 향곡鄕曲부호富豪들은 관직과 지위가 없으면서 위세威勢로써 곡직曲直을 결단하므로 무단武断이라 한 것이다. “종실유토宗室有土”는 나라의 종성宗姓(종친宗親이나 동성同姓)으로 봉읍封邑을 받아서 토지를 소유한 자를 말한다. “쟁우사치爭于奢侈”의 는 오자인 듯하다. 일본一本에는 로 되어 있다.
自是之後 孝武內窮侈靡하고 外攘夷狄하여 天下蕭然하여 財力 耗矣注+攘, 却也.러라
이로부터 효무제孝武帝가 안으로는 사치함과 화려함을 다하고 밖으로는 이적夷狄을 물리쳐서 천하가 소란하여 재력財力이 소모되었다.”注+은 물리친다는 뜻이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文景養民 厚矣로되 稽諸仲尼之言하면 則亦富庶之而已 未有以敎之也
문제文帝경제景帝가 백성을 기른 것이 하였으나 을 가지고 상고해보면 또한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고 많게 했을 뿐이지, 가르침이 있지는 못하였다.
이나 文帝 寬厚長者 以徳化人하여 無事則謙抑如不能하고 有事則英氣奮發이러니
그러나 문제는 관후寬厚장자長者로서 으로 사람들을 교화해서, 일이 없으면 겸손하여 능하지 못한 듯이 하였고 일이 있으면 영기英氣를 떨쳤다.
景帝 刻薄任數하여 以詐力御下注+任, 用也. 數, 謂智數‧術數.하여 平居則誅賞肆行하고 緩急則惴慄失措하니 其大致懸絶如此
그런데 경제는 성질이 각박하고 권모술수를 사용하여 속임수와 무력으로 아랫사람들을 다스려서,注+은 쓴다는 뜻이다. 지수智數술수術數를 이른다. 평소에는 주벌과 상이 멋대로 행해지고 위급한 일이 있으면 벌벌 떨고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으니, 그 대의가 크게 차이 남이 이와 같았다.
而又以無寵으로 廢正后하여 而夫婦之道薄하고 以無罪 廢太子하여 而父子之恩睽注+睽, 乖也.하고 過愛梁王하여 輕許傳位하여 而兄弟之好不終하고 信讒用譖하여 絀申屠嘉, 戮鼂錯, 殺周亞夫하여 而君臣之道乖缺하니 其視文帝 益相遼矣注+遼, 遠也.
또 총애가 없다 하여 정후正后를 폐위해서 부부간의 가 박해졌고, 죄가 없이 태자太子를 폐위하여 부자간의 은혜가 어긋났으며,注+는 어긋난다는 뜻이다.양왕梁王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전위傳位를 가볍게 허락함으로써 형제간의 우애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고, 참소하는 말을 믿고 중상重傷하는 말을 따라서 신도가申屠嘉를 내치고 조조鼂錯를 죽이고 주아부周亞夫를 죽여서 군신간의 도리가 어긋나고 이지러졌으니, 문제에 비하면 서로의 격차가 더욱 멀다.注+는 멀다는 뜻이다.
獨節儉愛民一事 克遵前業耳 夫豈可與成康同得美稱哉리오
오직 근검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한 한 가지 일만이 능히 선대의 기업基業을 따랐을 뿐이니, 어찌 성왕成王강왕康王과 똑같이 아름다운 칭호를 얻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五星 : 水‧木‧金‧火‧土의 5대 行星으로, 東方의 歲星인 木星, 南方의 熒惑인 火星, 中央의 鎭星인 土星, 西方의 太白인 金星, 北方의 辰星인 水星을 이른다.
역주2 十二月……月貫天廷中 : “景帝가 3년(B.C. 154)에 吳‧楚 7國의 반란을 평정한 뒤로부터 이때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일식을 쓴 것이 7번이고, 지진을 쓴 것이 4번이고, 孛星과 蝗蟲을 쓴 것이 각각 2번이고, 우박이 내린 것과 겨울의 우레와 큰 장맛비와 큰 홍수와 봄의 함박눈과 東闕의 화재와 가을의 큰 가뭄을 쓴 것이 모두 한 번씩 보이는데, 이해에 해와 달이 붉게 된 것 등의 재변을 쓴 것이 더욱 두려워할 만하다. 황제가 그리 큰 失德이 있지 않았고, 다만 각박하고 시기하여 은혜가 적었기 때문이다. 鼂錯는 충성스런 계책을 건의하였다가 살해당하고, 황태자는 죄 없이 폐위되고, 丞相 周亞夫는 正道를 지키고 아첨하지 않다가 죽었으니, 이는 모두 작은 연고가 아니다. 上天의 재변과 괴이함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오직 앞뒤에 쓴 것을 모아 고찰하면 황제의 잘잘못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니, 군주들은 天道가 멀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景帝自三年平七國後 至此凡十二年間 書日食七 地震四 星孛蝗各二 雨雹 冬雷 大霖雨 大水 春雨雪 東闕災 秋大旱皆一見 是年所書日月皆赤等災 尤爲可畏 帝非有甚失德也 特以刻忌少恩故爾 鼂錯以忠謀殺 皇后太子以無罪廢 丞相亞夫以守正不阿死 此皆非小故也 上天變異 夫豈適然 惟合先後所書而考之 則帝之得失 粲然可知 人主其無曰天道遠云]” 《發明》
역주3 帝崩 : “賀善의 贊에 말하였다. ‘景帝의 자품은 평소 각박하고 까다롭다고 알려졌는데, 《資治通鑑綱目》에 쓴 것을 가지고 고찰해보면 鼂錯를 살해하고 薄后를 폐위하고 太子 劉榮을 살해하고 周亞夫를 하옥한 것은 모두 그 병통의 뿌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田叔의 말을 따라 梁王의 일을 不問에 부친 것을 보면 또한 거의 쉽게 깨닫는 자이다. 景帝 中5년(B.C. 145) 이후로 3년 동안 형벌을 삼가는 정사를 쓴 것이 3번이니, 그렇다면 군자가 심하게 끊지는 않은 것이다.’[賀善贊曰 景帝之資 素號刻深 以所書考之 殺鼂錯 廢薄后 殺太子榮 獄周亞夫 皆其病根之發見者也 然觀其從田叔之言 置梁事於不問 亦庶幾易悟者 中五年以後三年 而書恤刑之政三 則君子蓋未嘗深絶之]” 《書法》
역주4 孔子께서……자들이다 : 이 내용은 《論語》 〈衛靈公〉에 보이는데, 朱子의 《集註》에 “지금 이 사람들은 바로 三代時代에 善을 선하게 여기고 惡을 미워해서 私曲한 바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남을 헐뜯거나 과찬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역주5 大萬은……이른다 : 萬萬은 萬을 만 번한 것으로 億을 이른다. 옛날 億은 10만에서부터 100만, 1,000만, 10,000만에 이르렀다.
역주6 仲尼의 말씀 : 《論語》 〈子路〉에 “孔子께서 衛나라에 가실 적에 冉有가 수레를 몰았는데, 孔子께서 ‘백성들이 많구나.’ 하셨다. 염유가 ‘이미 백성들이 많으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富裕하게 하여야 한다.’ 하셨다. ‘이미 부유해지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가르쳐야 한다.’ 하셨다.[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라고 보인다.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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