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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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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巳年(B.C. 124)
정사년(B.C. 124)
五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삭元朔 5년이다.
冬十一月 丞相澤하니 以公孫弘爲丞相하여 封平津侯注+平津, 鄕名, 在勃海郡高城縣.하다
겨울 11월에 승상丞相 설택薛澤이 면직되니, 공손홍公孫弘승상丞相으로 삼아 평진후平津侯에 봉하였다.注+평진平津의 이름이니, 발해군勃海郡 고성현高城縣에 있다.
丞相封侯 自弘始注+漢初, 常以列侯爲丞相, 弘則旣相而後封侯.하다
[目] 승상丞相에 봉함이 공손홍公孫弘으로부터 시작되었다.注+나라 초기에는 항상 열후列侯승상丞相으로 삼았는데, 공손홍公孫弘은 이미 정승이 된 뒤에 에 봉해진 것이다.
方興功業이라
이때 이 한창 공업功業을 일으키려 하였다.
於是 開東閤以延賢人하여 與參謀議注+閤者, 小門也. 東向開之, 避當庭門而引賓客, 以別於掾史官屬也.하다
공손홍이 이에 동합東閤(동쪽 문)을 열어 현자賢者들을 맞이하여 모의에 참여하게 하였다.注+은 작은 문이다. 동쪽을 향하여 문을 연 것은 조정의 문을 마주하고서 빈객賓客들을 인도함을 피하여 연사掾史와 같은 관속官屬들과 구별한 것이다.
嘗奏言호되 十賊彍弩하면 百吏不敢前注+彍, 音郭, 引滿曰彍.하나니 請禁民毋得挾弓弩便注+挾, 藏也.하노이다
공손홍이 일찍이 아뢰기를 “열 명의 도적이 쇠뇌를 당기고 있으면 백 명의 관리가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注+은 음이 이니, 활을 가득히 당기는 것을 이라 한다. 청컨대 백성들이 활과 쇠뇌를 보관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것이 편리합니다.”注+은 보관한다는 뜻이다. 하였다.
下其議注+下, 去聲.한대 侍中吾丘壽王 對曰
[目] 이 이 의논을 내려 상의하게 하자,注+(내리다)는 거성去聲이다.시중侍中오구수왕吾丘壽王(우구수왕)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臣聞古者 作五兵 非以相害 以禁暴討邪也注+五兵, 謂矛ㆍ戟ㆍ弓ㆍ劍ㆍ戈.
“신이 듣건대 ‘옛날에 다섯 가지 병기를 만든 것은 서로 해치려 해서가 아니요, 포악한 자들을 막고 간악한 자들을 토벌하기 위한 것이다.’注+‘다섯 가지 병기’는 (창)‧(세 갈래 창)‧활‧검‧(평두창)를 이른다. 하였습니다.
安居則以制猛獸而備非常하고 有事則以設守衛而施行陳이러니 秦兼天下 銷甲兵하고 折鋒刃이라가 其後 民以耰鉏箠梃으로 相撻擊하여 犯法滋衆하여 卒以亂亡注+梃, 大鼎切, 大杖也.이라
그리하여 편안히 거처할 적에는 맹수를 제압하고 비상사태에 대비하며, 유사시에는 수위守衛에 사용하고 행진行陣에 시행하였는데, 나라가 천하를 겸병하자 갑옷과 병기를 녹이고 도검刀劍의 칼날을 꺾어버렸다가 그 뒤에 백성들이 곰방메와 호미, 채찍과 큰 몽둥이로 서로 치고 공격하여 법을 범하는 일이 더욱 많아져서 끝내 나라가 혼란하고 멸망하였습니다.注+대정大鼎이니, 큰 몽둥이이다.
聖王 務敎化而省禁防하니 知其不足恃也니이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은 교화를 힘쓰고 금지함을 줄였으니, 이는 금지함이 믿을 것이 못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且愚聞 聖王合射以明敎矣 未聞弓矢之爲禁也注+合射, 謂會合其民而講鄕射之禮.니이다
또 어리석은 은 ‘성왕聖王이 사람들을 모아 활쏘기를 행하여 가르침을 밝혔다.’는 말은 들었고, ‘활과 화살을 금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注+합사合射”는 백성들을 모아서 향사례鄕射禮를 익힘을 이른다.
且所爲禁者 爲盜賊之以攻奪也注+爲, 竝去聲. 攻奪之罪死 然而不止者 大姦之於重誅 固不避也
또 이것을 금하는 이유는 도적들이 공격하고 빼앗기 때문이니,注+(위하다)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공격하고 빼앗는 죄가 죽음에 해당하는데도 그치지 않는 것은 크게 간악한 자들이 무거운 형벌을 진실로 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臣恐邪人挾之而吏不能止하고 良民以自備而抵法禁注+抵, 觸也.하니
신은 간악한 자들이 병기를 보유하면 관리가 능히 막지 못하고, 양민良民들이 스스로 방비하기 위하여 〈활과 화살을 보유하였다가〉 법금法禁을 저촉할까 두렵습니다.注+는 저촉한다는 뜻이다.
擅賊威而奪民救也 竊以爲大不便이라하노이다
이는 도적에게는 위엄을 독점하게 하고 백성들에게서는 자신을 구원할 방도를 빼앗는 것이니, 저는 크게 불편하다고 생각합니다.”
上以難弘하니 詘服焉注+難, 乃旦切. 詘, 辭塞也.하니라
이 이것을 가지고 공손홍을 힐난하니, 공손홍은 말이 궁색해지자 굴복하였다.注+(힐란하다)은 내단乃旦이다. 은 말이 막히는 것이다.
外寬內深하여 諸嘗有隙 無近遠 雖陽與善이나 後竟報之注+內深, 言中心刻剝也.하니라
[目] 공손홍公孫弘은 겉은 너그러우나 속마음은 각박하여, 사람들 중에 일찍이 자신과 원한이 있었던 자는 친소에 관계없이 겉으로는 친한 척하였지만 뒤에는 끝내 보복하였다.注+내심內深”은 마음속이 각박함을 말한다.
汲黯 嘗面觸弘하니 欲誅之以事注+言以事致其罪而誅也.하여 乃言上曰 右內史界部中 多貴人宗室하여 難治하니 非素重臣이면 不能任이라
급암汲黯이 일찍이 면전에서 공손홍을 저촉한 적이 있었는데, 공손홍은 그를 일로써 죽이고자 하여,注+〈“주지이사誅之以事”는〉 일을 가지고 죄가 있는 것으로 얽어 죽임을 말한 것이다. 마침내 에게 아뢰기를 “우내사右內史의 경내에는 귀인貴人종실宗室이 많아서 다스리기 어려우니, 평소 중신重臣이 아니면 임무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請徙黯爲右內史하노이다 從之注+秦幷天下, 改立郡縣, 而京畿所統, 時號內史, 言在內, 以別於諸郡守也. 景帝分置左右.하다
급암을 옮겨 우내사右內史로 삼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니, 이 그의 말을 따랐다.注+나라가 천하를 겸병하자 군현제郡縣制로 바꾸었는데 경기京畿 지방을 통솔하는 관리를 당시 내사內史라 이름하였으니, 안에 있음을 말하여 지방의 여러 군수郡守와 구별한 것이다. 경제景帝좌내사左內史우내사右內史로 나누어 두었다.
大旱하다
[綱] 봄에 크게 가물었다.
◑ 匈奴寇朔方이어늘 遣衛靑하여 率六將軍擊之하다
[綱] 흉노匈奴삭방朔方을 침략하므로 위청衛靑을 보내어 여섯 명의 장군將軍을 거느리고 가서 공격하게 하였다.
以靑爲大將軍하다
돌아오자 위청衛靑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았다.
匈奴右賢王數侵擾朔方이어늘 天子令車騎將軍靑으로 將三萬騎하여 出高闕注+高闕, 山名, 一曰 “塞名.” 在朔方之北.하고 將軍蘇建, 李沮, 公孫賀, 李蔡 俱出朔方注+沮, 音俎. 蔡, 廣之從弟.하고 李息, 張次公 俱出右北平하니 凡十餘萬人이라 皆領屬靑하여 擊匈奴러니
[目] 흉노匈奴우현왕右賢王이 자주 삭방朔方을 침략하여 혼란하게 하자, 천자天子거기장군車騎將軍 위청衛靑은 3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고궐高闕로 출동하고,注+고궐高闕은 산 이름이다. 일설에 “요새 이름이다.”라고 하는데, 삭방朔方의 북쪽에 있다. 장군將軍 소건蘇建이저李沮(이조)‧공손하公孫賀이채李蔡는 모두 삭방朔方으로 출동하고注+는 음이 이다. 이채李蔡이광李廣종제從弟이다. 이식李息장차공張次公은 함께 우북평右北平으로 출동하게 하니, 병력이 10여만 명이었는데, 이들을 모두 위청에게 소속시켜 흉노를 공격하게 하였다.
右賢王 飮醉어늘 靑等 夜至圍之한대 右賢王하여 潰圍北去하니
우현왕右賢王이 술을 마셔 취하자 위청 등이 밤중에 도착하여 포위하니, 우현왕이 놀라 포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得裨王十餘人 衆萬五千餘人 畜數十百萬注+裨王, 小王也, 猶言裨將也.하다
나라에서는 흉노匈奴비왕裨王 10여 명과 병사 15,000여 명과 가축 수십만 내지 백만 마리를注+비왕裨王은 작은 왕이니, 비장裨將이란 말과 같다. 노획하였다.
於是 引兵還하니 天子使使者하여 持大將軍印하고 卽軍中하여 拜靑爲大將軍하여 諸將 皆屬하고 益封八千七百戶하며 封靑三子注+伉爲宜春侯, 不疑爲陰安侯, 登爲發干侯., 諸將, 校尉七人하여 爲列侯注+公孫敖爲合騎侯, 韓說爲龍頟侯, 公孫賀爲南窌侯, 李蔡爲樂安侯, 李朔爲涉軹侯, 趙不虞爲隨成侯, 公孫戎奴爲從平侯. 頟, 音洛. 窌, 孝切.하니 尊寵 於群臣 無二
이에 병력을 이끌고 돌아오니, 천자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대장군大將軍인수印綬를 가지고 군중軍中에 들어가서 위청을 대장군으로 제수하여 모든 장수들을 소속시키고 8,700호를 더 봉해주었으며, 위청의 세 아들과注+위항衛伉의춘후宜春侯, 위불의衛不疑음안후陰安侯, 위등衛登발간후發干侯가 되었다. 여러 장수와 교위校尉 7명을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으니,注+공손오公孫敖합기후合騎侯, 한열韓說용락후龍頟侯, 공손하公孫賀남표후南窌侯, 이채李蔡악안후樂安侯, 이삭李朔섭지후涉軹侯, 조불우趙不虞수성후隨成侯, 공손융노公孫戎奴종평후從平侯가 되었다. 은 음이 이다. 필효匹孝이다. 위청을 높이고 총애함이 여러 신하 중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하였다.
公卿以下 皆卑奉之호되 獨汲黯 與亢禮注+亢者, 當也, 言高下相當, 無所卑屈.러라
공경公卿 이하가 모두 몸을 낮추어 대장군(위청)을 받들었으나 오직 급암汲黯만이 그와 더불어 대등한 예를 행하였다.注+은 대등함이니, 높고 낮음이 서로 대등하여 낮추고 굽히는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人或說黯曰 自天子 欲群臣下大將軍注+下, 去聲, 謂禮下之.하니
[目] 어떤 사람이 급암汲黯을 설득하기를 “천자天子께서 여러 신하들이 대장군大將軍에게 몸을 낮추어 존경하기를 바라십니다.注+(낮추다)는 거성去聲이니, 예우하여 자신을 낮춤을 이른다.
大將軍 尊重이라 君不可以不拜니라
대장군은 신분이 높고 귀한 사람이니, 그대는 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였다.
黯曰 夫以大將軍으로 有揖客이면 反不重邪注+言能降貴以禮士, 最爲重也. 아하니
급암은 말하기를 “대장군으로서 하는 이 있으면 도리어 귀해지지 않겠는가.”注+유읍객有揖客 반부중사反不重邪는〉 능히 귀한 신분을 낮추어 선비에게 예우하는 것이 가장 존중함(귀함)이 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靑聞하고 愈賢黯하여數請問國家朝廷所疑하고 遇黯 加於平日이러라
위청衛靑은 이 말을 듣고 더욱 급암을 어질게 여겨서 자주 초청하여 국가國家조정朝廷의 의심스러운 일을 묻고 급암을 대우하기를 평소보다 더하였다.
靑雖貴 有時侍中 踞厠而視之注+侍中, 謂入侍禁中也. 厠, 溷也. 一說 “厠, 牀邊側也.” 古者, 見大臣, 則坐爲起. 然則踞厠者, 輕之也.하고 丞相弘 燕見 或時不冠注+燕, 安也, 謂閑燕之時. 見, 賢遍切, 下黯見同.호되
위청은 비록 신분이 존귀하나 때로 금중禁中에서 모실 적에 평장平狀에 걸터앉아 만나보았으며,注+시중侍中”은 금중禁中에 들어가 모심을 이른다. 은 측간이다. 일설에 “은 평상의 모서리이다.” 하였다. 옛날에 대신大臣을 만날 적에 자리에서 앉았다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무제武帝가〉 평상의 모서리에 걸터앉아 〈위청衛靑을〉 만나본 것이니, 이는 위청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승상丞相 공손홍公孫弘은 사사로이 알현할 적에 이 때로는 을 쓰지 않았다.注+은 편안함이니, 한가롭고 편안한 때를 이른다. (만나다)은 현편賢遍이다. 아래 “암견黯見”도 같다.
至如汲黯見하여는 不冠이면 不見也러라
그러나 급암이 알현할 적에는 을 쓰지 않았으면 만나보지 않았다.
嘗坐武帳中注+孟康曰 “今御武帳, 置兵, 䦨五兵於帳中也.”이러니 前奏事한대
이 일찍이 무장武帳 안에 앉아 있었는데,注+이 말하기를 “지금 임금이 무장武帳에 나오면 병사를 배치하여 다섯 가지 병기를 장막 안에 진열한다.” 하였다. 급암이 앞으로 나와 일을 아뢰려 하였다.
不冠이라가 望見黯하고 避帳中하여 使人可其奏하니 其見敬禮如此러라
을 쓰지 않고 있다가 급암을 멀리서 바라보고 장막 안으로 피하고는 사람을 시켜 그의 아룀을 허락하게 하였으니, 급암이 존경과 예우를 받음이 이와 같았다.
[綱] 여름 6월에 박사관博士官을 두어 제자 50명을 배치하였다.
詔曰
[目] 조령詔令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蓋聞導民以禮하고 風之以樂注+風, 敎也.이라하니 禮壞樂崩하니 朕甚閔焉하노니
“내 들으니, ‘백성을 로써 인도하고 으로써 가르친다.’注+은 가르친다는 뜻이다. 하였는데, 지금 가 무너지고 이 무너졌으니, 이 매우 안타깝게 여기노라.
其令禮官으로 勸學興禮하여 以爲天下先하라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학문을 권장하고 를 일으켜서 천하의 솔선이 되게 하라.”
於是 丞相弘等 奏請호되
이에 승상丞相 공손홍公孫弘 등이 주청하기를
爲博士官하여 置弟子五十人하여 復其身注+爲, 去聲.하고 第其高下하여 以補郞中, 文學掌故注+掌故, 治禮之官, 主故事者. 以有文學, 習禮儀者爲之, 故曰文學掌故. 漢儀云 “太常博士弟子, 試射策, 中甲科, 補郞, 中乙科, 補掌故.”하며
박사관博士官을 두어 제자 50명을 배치해서 신역身役을 면제하고,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높고 낮음을 차례하여 낭중郞中문학장고文學掌故에 보임하며,注+장고掌故를 다스리는 관원으로 고사故事를 주관하는 자이니, 문학文學을 잘하고 예의禮儀를 익힌 자로 제수하였으므로 문학장고文學掌故라 한 것이다. 《한의漢儀》에 “태상박사太常博士의 제자는 을 시험하여, 갑과甲科에 합격한 자는 낭중郞中에 보임하고 을과乙科에 합격한 자는 장고掌故에 보임한다.” 하였다.
卽有秀才異等이어든 輒以名聞하고 其不事學若下材 輒罷之하며
만일 출중한 수재秀才가 있으면 곧 이름을 아뢰게 하고, 학문을 일삼지 않거나 또는 재주가 낮으면 곧 파직시키며,
又吏通一藝以上者 請皆選擇하여 以補右職이니이다 從之注+一藝, 一經也. 言以上, 則又有不止通一經者. 右職, 高職也. 一說 “右, 用事之便, 謂樞要之官.”하니
경서經書 한 가지 이상을 통달한 관리는 모두 뽑아서 높은 직책에 보임할 것을 청합니다.” 하니, 이 그의 말을 따랐다.注+일예一藝”는 한 경서經書이니, “이상以上”이라고 말했으면 또 한 경서만을 통달함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우직右職”은 높은 직책이다. 일설에 “오른쪽은 일을 하기가 편하니, 추요樞要의 관직을 이른다.” 하였다.
自此 公卿, 大夫, 士, 吏 彬彬多文學之士矣注+彬彬, 文章貌.러라
이로부터 공경公卿대부大夫, 와 관리 중에 문학文學하는 선비가 매우 많아졌다.注+빈빈彬彬”은 문채가 밝게 드러난 모양이다.
匈奴入代하다
[綱] 가을에 흉노匈奴 땅에 침입하였다.
[綱] 회남淮南의 두 을 떼어내고 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에게 글을 내려 조회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淮南王安 好讀書屬文하여 喜立名譽注+屬, 音燭.하여 招致賓客方術之士數千人하니 多江淮間輕薄士
[目] 이전에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책을 읽고 문장을 지어 명예를 세우기를 좋아하여注+(짓다)은 음이 이다. 빈객賓客방술方術하는 선비 수천 명을 초치招致하니, 대부분 강회江淮 지방의 경박한 선비들이었다.
常以厲王遷死 感激安한대 乃治戰具하고 積金錢이러니
이들은 항상 을 가지고 유안을 충동질하였는데, 유안이 마침내 전쟁 도구를 정비하고 반란에 필요한 금전을 저축하였다.
郞中雷被 願奮擊匈奴어늘 斥免之注+斥, 音尺, 逐也. 言屛斥, 免其郞中官, 欲令後人不敢効. 通鑑 “郞中雷被, 獲罪於太子遷. 時有詔, 欲從軍者, 輒詣長安, 被卽願奮擊匈奴. 太子惡被於王, 斥免之, 欲以禁後.”하다
낭중郞中 뇌피雷被가 〈천자天子를 위해〉 분발하여 흉노를 공격할 것을 자원하자, 유안이 배척하여 면직시켰다.注+은 음이 이니, 쫓아낸다는 뜻이다. 물리치고 배척해서 낭중郞中의 관직을 면직시켜 후인後人들로 하여금 감히 본받지 못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낭중郞中 뇌피雷被가 회남왕의 태자太子 유천劉遷에게 죄를 얻었다. 이때 황제가 조령詔令을 내려서 종군從軍하려는 자가 있으면 곧 장안長安으로 나오게 하자, 뇌피가 즉시 흉노匈奴를 공격할 것을 자원하니, 태자가 뇌피를 왕에게 나쁘게 말하여 배척해서 면직시켜 후인後人을 금지하고자 한 것이다.” 하였다.
是歲 被亡之長安하여 上書自明한대 事下廷尉治注+謂章下廷尉, 治其事.러니 蹤跡連安이어늘
이해에 뇌피가 장안長安으로 도망가서 글을 올려 스스로 변명하자, 이 일을 정위廷尉에게 내려 다스리게 하였는데,注+〈“사하정위치事下廷尉治”는〉 글을 정위廷尉에 내려 그 사건을 다스리게 함을 이른다. 종적이 유안에게 연루되었다.
遣使卽訊注+卽, 就也. 訊, 問也, 言遣使者, 卽就淮南訊之.하니 太子遷 欲使人刺殺漢使라가 不果하다
사자使者를 보내어 회남왕淮南王에게 가서 신문하게 하니,注+은 나아감이고 은 신문함이니, 〈“견사즉신遣使卽訊”은〉 사자使者를 보내어 즉시 회남淮南에 가서 신문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회남왕의 태자太子 유천劉遷이 사람을 시켜 나라의 사자使者를 찔러 죽이려고 하다가 결행하지 못하였다.
公卿奏호되格明詔하니 當棄市注+格, 音閣, 謂閣止不行之.니이다 詔削二縣한대
공경公卿들이 아뢰기를 ‘유안이 밝은 조령詔令을 막았으니, 기시형棄市刑에 해당됩니다.’注+은 음이 이니, 중지하여 행하지 않음을 이른다. 하니, 조령을 내려 두 을 떼어내게 하였다.
恥之하여 爲反謀益甚이러라
유안은 이것을 부끄럽게 여겨 반란하려는 계책을 더욱 깊게 하였다.
與衡山王賜 相責望하여 禮節間 不相能注+不相能, 謂不相善也.이러니 賜聞安有反謀하고 恐爲所幷하여 亦結賓客爲反具하여 使陳喜, 枚赫으로 作輣車, 하고 刻天子璽, 將相, 軍吏印注+輣, 蒲庚切, 兵車也, 樓車也. (鍜)[鍛], 都玩切. (鍜)[鍛]矢, 謂冶鐵作矢鏃也.하니라
[目] 유안劉安은 아우인 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와 서로 책망하여 사소한 예절 간에도 관계가 좋지 못하였는데,注+불상능不相能”은 관계가 서로 좋지 못함을 이른다. 유사는 유안이 배반하려는 계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합병당할까 두려워하고, 또한 빈객과 결탁하여 반란에 필요한 전쟁 도구를 장만하고자 하여, 진희陳喜매혁枚赫으로 하여금 병거兵車를 만들고 화살촉을 주조하고 천자의 옥새와 장수와 정승, 군리軍吏을 위조하게 하였다.注+포경蒲庚이니, 병거兵車이고 누거樓車이다. (쇠를 불리다)은 도완都玩이니, “단시鍛矢”는 쇠를 주조하여 화살촉을 만듦을 이른다.
當入朝하여 過淮南할새 乃昆弟語하여 除前隙하고 約束反具注+謂爲相親愛之言, 釋除前之嫌隙, 共契約爲反具.하여
유사가 입조入朝할 때를 당하여 회남淮南을 지날 적에 마침내 형제간에 친애하는 말을 하여, 예전의 원한을 풀고 반란에 필요한 전쟁 도구를 장만하기로 약속하였다.注+〈“약속반구約束反具”는〉 서로 친애하는 말을 하여 예전의 혐의와 원한을 풀어 없애고 함께 반란의 도구를 장만하기로 약속함을 말한 것이다.
上書謝病한대 賜書不朝하다
유사有司가 글을 올려 병을 핑계로 입조하지 않자, 이 글을 내려 조회 오지 않도록 하였다.
역주
역주1 (四)[匹] : 저본에는 ‘四’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匹’로 바로잡았다.
역주2 (節)[御] : 저본에는 ‘節’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御’로 바로잡았다.
역주3 孟康 : 삼국시대 魏나라 사람으로 《漢書音義》를 지었다.
역주4 爲博士 置弟子 : “이것을 쓴 것은 經書를 높임을 아름답게 여긴 것이니, ‘博士 弟子를 두었다.’고 쓴 것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書 嘉尊經也 書置博士弟子始此]” 《書法》
역주5 射策 : 당시 국가의 어려운 일이나 의심스러운 내용을 물어 대답하게 하는 시험으로 후세의 對策文의 일종이다.
역주6 削淮南……書不朝 : “전에는 淮南王 劉安에게 일찍이 ‘几杖을 하사하고 조회하지 말라고 하였다.[賜几杖毋朝]’고 썼었는데, 여기에서는 ‘조회 오지 않아도 된다.[不朝]’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衡山王 劉賜의〉 나쁜 뜻을 주벌한 것이다. 형산왕 유사가 입조하면서, 淮南을 지나다가 마침내 병을 이유로 사양하고 입조하지 않으니, 이에 황제(武帝)가 조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글을 내렸다. ‘毋朝’의 ‘毋’는 황제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요, ‘不朝’의 ‘不’은 왕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니, ‘형산왕 유사에게 글을 내려 조회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라고 쓴 것은 그의 나쁜 뜻을 주벌한 것이다. 그렇다면 吳王 劉濞가 거짓으로 병을 칭탁했을 적에 文帝가 几杖을 하사하고 ‘年老하였으므로 조회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것을 쓰지 않았는가? 오왕의 일로써 문제에게 累를 끼치려 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에게 累를 끼치려 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태자가 바둑판으로 吳나라 태자를 죽인 유감을 漢나라(文帝)가 자초하였기 때문이니, 오왕의 경우는 淮南王 劉安과 衡山王 劉賜의 허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숨기고 쓰지 않은 것이다.[前淮南王安 嘗書賜几杖毋朝矣 此其書不朝 何 誅意也 賜當入朝 過淮南 乃謝病 於是帝賜書不朝 毋云者 自帝言之也 不云者 自王言之也 書曰賜衡山王賜書不朝 誅意也 然則吳王詐病 文帝賜几杖 老不朝 則何以不書 不以吳王累文帝也 其不以累文帝 何 博局之憾 漢有以召之矣 非安與賜比也 故諱之不書]” 《書法》
역주7 厲王이……일 : 厲王은 淮南王 劉長의 시호이다. 유장은 文帝의 아우인데, 성질이 난폭하고 교만 방자하며 반역을 도모하였으므로 문제가 그의 나쁜 버릇을 징계하기 위해 B.C. 174년 그를 蜀 땅으로 귀양 보냈다. 그러자 그가 화를 내고 단식하여 죽으니, 문제는 가엾게 여겨 그의 아들 네 명을 모두 列侯로 삼았다가 B.C. 165년 劉安을 淮南王, 劉勃을 衡山王, 劉賜를 濟南王으로 봉하였다.
역주8 (鍜)[鍛] : 저본에는 ‘鍜’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鍛’으로 바로잡았으며, 아래의 訓義 역시 모두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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