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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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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年(B.C. 153)
무자년(B.C. 153)
四年이라
[綱] 나라 효경황후孝景皇后 4년이다.
復置關하여 用傳出入注+文帝十二年, 除關, 無用傳, 今復置用之, 以七國新反, 備非常也.하다
봄에 다시 관문을 설치하고서 (통행증)을 사용하여 출입하게 하였다.注+문제文帝 12년(B.C. 268)에 관문을 제거하고 을 사용하지 않게 하였는데. 지금 다시 관문을 설치하고 을 사용하게 한 것은, 의 7이 새로 반란을 일으켜 비상사태에 대비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 夏四月 立子榮爲皇太子하고 徹爲膠東王하다
[綱] 여름 4월에 아들 유영劉榮을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고, 유철劉徹교동왕膠東王으로 삼았다.
◑ 赦하다
[綱] 사면赦免하였다.
日食注+按太初以前, 皆以冬十月, 爲歲首, 此年, 先書春夏, 錯簡也.하다
[綱] 겨울 10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注+살펴보건대 무제武帝태초太初 이전에는 모두 겨울 10월을 정월[세수歲首]로 삼았는데, 이해에 먼저 봄과 여름을 쓴 것은 착간錯簡이다.
◑ 徙衡山王勃爲濟北王하고 廬江王賜爲衡山王하다
[綱] 형산왕衡山王 유발劉勃을 옮겨 제북왕濟北王으로 삼고, 여강왕廬江王 유사劉賜형산왕衡山王으로 삼았다.
七國反할새 吳使者至衡山하니 衡山王 堅守無二心이라
[目] 처음에 의 7이 반란을 일으켰을 적에 나라 사자使者형산衡山에 이르렀는데, 형산왕衡山王이 굳게 수비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上以爲貞信이라하여 徙王於濟北하여 以褒之하고 廬江王 以邊越數通使라하여 徙王衡山注+邊越者, 邊界與越相接也.하다
은 형산왕이 바르고 신의를 지켰다고 하여 제북왕濟北王으로 옮겨 봉하여 표창하고, 여강왕廬江王나라와 접경이 되어 자주 사신을 통한다 하여 형산왕으로 옮겼다.注+변월邊越”은 변방의 경계가 나라와 서로 접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冬十月 : “漢나라는 武帝 太初 元年(B.C. 104) 이전에는 모두 建亥月(10월)을 정월로 삼았다. 이해와 中元 4년(B.C. 146)에 먼저 봄과 여름을 쓰고 뒤에 겨울을 썼으니, 班固의 《漢書》에도 모두 같다. 《史記》에 이해는 같고 中元 4년에는 겨울을 먼저 썼으나, 後元 2년(B.C. 142)에는 또한 먼저 정월을 쓰고 뒤에 10월을 썼다.[漢自太初以前 皆建亥也 是年及中四年 先書春夏 後書冬 班史竝同 史記是年同 中四年先冬 後二亦先書正月 後書十月]” 《書法》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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