楚義帝心元과 西楚霸王項籍元과 漢王劉邦元과 韓三年이라
◑ 雍王章邯
과 塞王司馬欣
과 翟王董翳
와 西魏王豹
와 河南王申陽
과 殷王司馬卬
과 代王趙歇
과 常山王張耳
와 九江王英布
와 衡山王吳芮
와 臨江王共敖
注+共, 音龔, 姓也.와 遼東王韓廣
과 燕王臧荼
注+荼, 音徒.와 膠東王田市
과 齊王田都
와 濟北王田安元年
注+安, 故齊王建孫.이라
◑ 是歲에 秦亡하니 新舊大國이 三이요 小國이 十七이니 爲二十國이러니
而韓塞翟遼東膠東齊濟北七國
이 皆亡
하고 又韓王鄭昌
과 齊王田榮元年
이니 定十五國
注+昌, 故吳令.이라
綱
冬十月에 沛公이 至霸上하니 秦王子嬰이 奉璽符節하야 以降하다
目
沛公
이 至霸上
하니 秦王子嬰
이 素車白馬
로 係頸以組
注+素車‧白馬, 喪人之服. 組, 音祖, 綬也. 間次五采爲之, 所以帶璽也. 係頸者, 以示降服, 欲自殺也.하고 封皇帝璽符節
하야 降軹道旁
注+正義 “天子有六璽, 皇帝行璽‧皇帝之璽‧皇帝信璽‧天子行璽‧天子之璽‧天子信璽.” 虞喜志林 “傳國璽, 自在六璽之外.” 符註, 見周赧王二年. 節註, 見秦始皇二十六年. 括地志 “軹道在雍州萬年縣東北十六里苑中.”황제 印章의 예(대한제국 고종황제 勅命之寶,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어늘
諸將이 請誅之한대 沛公이 曰 始懷王이 遣我는 固以能寬容이요
且人이 已降이어든 殺之不祥이라하고 乃以屬吏하다
目
秦이 以區區之地로 致萬乘之權하야 招八州而朝同列百有餘年이라
然後以六合爲家
하고 殽函爲宮
注+招, 音超, 擧也. 九州之數, 秦有雍州, 餘八州, 皆諸侯之地. 朝同列, 謂六國諸侯嘗與秦爲列國, 皆使朝服也. 四方上下爲六合. 殽, 音爻. 殽, 謂殽山, 函, 謂函谷.이라가
一夫作難而七廟墮하고 身死人手하야 爲天下笑者는 何也오
仁義不施而攻守之勢
가 異也
注+記 “天子七廟, 三昭三穆與太祖之廟而七.” 墮, 讀曰隳, 廢也.일새니라
目
沛公이 西入咸陽하니 諸將이 皆爭取金帛財物호되 蕭何는
目
夫爲天下除殘賊
에 宜縞素爲資
注+資, 藉也. 欲令沛公反秦奢泰, 服儉素以爲藉也.어늘 今
에 始入秦
하야 卽安其樂
하니 此所謂助桀爲虐
이라
且忠言
이 逆耳
나 利於行
하고 毒藥
이 苦口
나 利於病
하나니 願聽噲言
注+行, 去聲. 下行鄕同.하소서
目
公이 乃還軍霸上하고 悉召父老豪傑하야 謂曰 父老苦秦苛法이 久矣라
與父老 約法三章耳로니 殺人者는 死하고 傷人及盜는 抵罪하고
餘悉除去
注+抵, 至也, 當也. 傷人有曲直, 盜贓有多少, 罪名不可預定. 凡言抵罪, 未知抵何罪也.하노라
目
乃使人與秦吏
로 行鄕縣邑
하야 告喩之
注+鄕縣邑, 通鑑作縣鄕邑. 秦制, 縣大率方百里, 十里一亭, 十亭一鄕, 所封食邑.하니 秦民
이 大喜
하야 爭持牛羊酒食
하야 獻饗軍士
어늘
公이 讓不受曰 倉粟多하니 不欲費民이라하니 民이 又益喜하야 唯恐沛公이 不爲秦王이러라
目
先是
에 諸侯吏卒
이 繇戍過秦中
注+山東人, 呼關中爲秦中.에 秦人
이 遇之多無狀
注+遇, 待也. 無狀, 謂待之多不以禮, 其狀無可寄言也.이라
及秦軍이 降楚에 諸侯吏卒이 乘勝折辱奴虜使之하니 秦吏卒이 多怨竊言이어늘
羽計衆心이 不服하니 至關必危하고 於是에 夜擊阬二十餘萬人新安城南하고
而獨與章邯及長史欣都尉翳
로 入秦
注+班志 “新安縣屬弘農郡.”하다
綱
沛公이 遣兵守函谷關이러니 項籍이 攻破之하고 遂屠咸陽殺子嬰하고 掘始皇帝冢하고 大掠而東하다
目
或
이 說沛公
호되 急遣兵守函谷關
하야 無內諸侯軍
注+內, 讀曰納.하라 沛公
이 從之
러니
時
에 羽兵四十萬
은 在鴻門
하고 沛公兵十萬
은 在霸上
注+鴻門, 地名, 在戲西.이러라
目
今入關에 財物을 無所取하며 婦女를 無所幸하니 此其志不在小라
目
夜馳告之
하고 欲與俱去
注+伯, 字, 名, 纏.어늘 良
이 曰 良
이 爲韓王送沛公
注+爲, 去聲.하니
今有急
이어든 亡去不義
라하고 因固要伯入見沛公
注+要, 平聲.한대
目
公
이 奉巵酒爲壽
注+巵, 章移切, 古字作觝, 酒禮器也. 古以角爲之受四升.하고 約爲婚姻曰 吾入關
에 秋毫
를 不敢有所近
하고 籍吏民封府庫
하야 而待將軍
注+秋毫, 毛至秋而末銳, 喩小. 籍, 在昔切, 籍記於薄.호니
目
去
하야 具以告羽
注+去, 謂項伯迴去也.하고 且曰 人有大功而擊之不義
니 不如因善遇之
니라
沛公이 旦日에 從百餘騎하야 來見羽謝한대 羽因留飮이러니
范增
이數目羽
하고 擧所佩玉玦
하야 示之者三
注+數目, 頻數動目以喩之. 玦, 音決, 玉佩也. 如環而有缺. 增擧以示羽, 蓋欲其決意, 殺沛公也.이로되 羽不應
이어늘
增
이 出
하야 使項莊入前爲壽
하고 請以劒舞
하야 因擊沛公殺之
注+莊, 羽之從弟也.어늘
莊이 入爲壽畢에 拔劒起舞한대 項伯이 亦拔劒起舞하야 常以身翼蔽沛公하니 莊이 不得擊하다
目
噲帶劒擁盾直入
注+盾, 食尹切, 通作楯, 所以扞身蔽目.하야 瞋目視羽
하니 頭髮
이 上指
하고 目眥
가 盡裂
注+瞋, 稱人切, 怒而張目也. 眥, 音恣, 目際也.하더라
羽曰 壯士
로다 賜斗巵酒一生彘肩
注+斗巵酒, 謂一斗四升也. 彘, 音滯, 豕也.한대
噲立飮啗之
注+以食與人曰啗, 徒濫切. 自食亦曰啗, 徒覽切.어늘 羽曰 能復飮乎
아
未有封爵之賞
이요 而將軍
이 聽細人之說
하야 欲誅有功之人
注+細, 微也, 纖也, 也. 細人, 言纖微小人也. 沛公左司馬曹無傷, 使人言羽曰 “沛公欲王關中.” 羽大怒.하니 此亡秦之續耳
라
目
沛公
이 遂起如厠
이라가 脫身獨騎
하야 噲等
이 步從趣霸上
注+趣, 讀曰趨.하고
羽問沛公이 安在오 良이 曰 聞將軍이 有意督過之하고 脫身獨去하야 已至軍矣라하고 因以白璧一雙으로 獻羽하고 玉斗一雙으로 與增한대
羽
는 受璧
하고 增
은 拔劒撞破玉斗曰 唉
注+撞, 丈江切, 擊也. 唉, 哀‧僖二音, 嘆恨之聲.라 豎子
는 不足與謀
이로다
目
居數日에 羽引兵西屠咸陽하고 殺秦降王子嬰하고 燒宮室하니 火三月不滅하더라
掘始皇帝冢하고 收貨寶婦女而東하니 秦民이 大失望이러라
目
韓生
이 說羽曰 關中
이 阻山帶河四塞之地
요 肥饒
하니 可都以霸
注+四塞, 東函谷, 南武關, 西散關, 北蕭關.리라
羽見秦殘破
하고 又思東歸曰 富貴不歸故鄕
이면 如衣繡夜行耳
注+夜, 去聲. 衣繡夜行, 言無人見之, 不榮顯.니라
韓生
이 退曰 人言楚人
은 沐猴而冠
이라하더니 果然
注+沐猴, 獼猴也. 言獼猴不任久著冠帶, 以喩楚人性躁暴也. 果然, 謂果如人之言.이로다
目
天下初發難時
注+難, 去聲, 謂兵初起時也.에 假立諸侯後
하야 以伐秦
이나
然被堅執銳
하야 暴露三年
에 滅秦定天下者
는 皆將相諸君與籍力也
注+被堅, 擐甲也. 銳, 利兵也.라
懷王
이 雖無功
이나 固當分地而王之
라하고 乃陽尊懷王爲義帝
注+陽, 發見於外, 陰, 蔽伏於中. 凡人之作事, 外爲是形而內無其實者, 皆陽爲之. 外若無所營而內潛經畫, 皆陰爲之.하고
又曰 古之帝者地方千里
요 必居上游
注+游, 卽流也, 言居水之上流.라하야 乃徙義帝於江南
하야 都郴
注+郴, 丑林切. 班志 “郴縣屬桂陽郡.”하다
綱
二月
에 項籍
이 自立爲西楚霸王
注+江陵爲南楚, 吳爲東楚, 彭城爲西楚. 義帝稱楚, 故羽稱西楚.하고
目
項羽與范增
이 疑沛公
注+疑沛公之有天下也.而業已講解
요 又惡負約
注+已然曰業, 言雖有疑心, 然事已和解也.하야
以巴蜀
이 道險
하고 秦之遷人
이 居之
라 乃曰巴蜀
도 亦關中也
라하고 立沛公爲漢王
하야 王巴蜀漢中
하야 都南鄭
注+巴‧蜀‧漢中, 秦所置三郡地也.하고
目
王咸陽以西
하야 都廢丘
注+廢丘, 周時太丘, 懿王所都. 秦欲廢之, 更名廢丘, 卽漢扶風槐里縣.하다
綱
司馬欣爲塞王
注+塞, 先代切, 取河華之固爲阨塞.하고
目
王咸陽以東하야 都櫟陽하니 以故嘗有德於項梁也러라
綱
董翳爲翟王
注+翟, 本上郡, 以北近戎翟, 因以名國.하고
目
王上郡
하야 都高奴
하니 以勸章邯降楚也
注+班志 “高奴縣屬上郡.”러라
目
都洛陽
하니 以先下河南迎楚也
注+先下, 竝去聲.러라
綱
英布爲九江王
注+秦滅楚, 置九江郡. 江水至潯陽, 分爲九江. 一曰烏江, 二曰蚌江, 三曰烏白江, 四曰嘉靡江, 五曰畎江, 六曰源江, 七曰稟江, 八曰提江, 九曰菌江, 因以名郡.하고
目
都六
하니 以爲楚將
하야 常冠軍也
注+冠, 去聲. 言其驍勇爲衆軍之最冠.러라
綱
吳芮爲衡山王
注+地理志 “安國六縣, 漢衡山國也.”하고
目
都邾
하니 以率百粤從入關也
注+班志 “邾縣屬江夏郡.”러라
目
都江陵
하니 以擊南郡功多也
注+臨江, 本南郡, 漢改爲臨江國. 江陵縣屬焉.러라
目
都無終
注+班志 “無終縣屬北平郡.” 非遼東郡界. 蓋羽令韓廣都於無終, 而令倂王遼東之地故也.하다
目
都博陽
하니 以下濟北
하고 引兵降楚也
注+濟北有博關, 博陽, 蓋在博關之南也. 濟北, 濟水以北之地, 聊城‧博陽諸城是也.러라
目
夫能絀於一人之下而信於萬乘之上者
는 湯武是也
注+絀, 通鑑作詘. 信, 古伸字.라
臣願大王
은 王漢中
하야 養其民以致賢人
하며 收用巴蜀
하야 還定三秦
하면 天下
를 可圖也
注+三秦, 卽雍‧塞‧翟.리이다
目
項王
이 使卒三萬人
으로 從漢王之國
하니 楚與諸侯之慕從者數萬人
注+本紀, 侯下有人字.이러라
張良
이 送至褒中
注+褒中, 言居褒谷之中. 地理志 “褒中縣屬漢中郡.”이어늘
王
이 遣良歸韓
한대 良
이 因說王
하야 燒絶所過棧道
하야 以備盜兵
하고 且示羽無東意
注+言令羽知漢王更無東出之意.하다
目
夫天之立君은 以爲民也요 君之求臣은 以行保民之政也요 臣之事君은 以行安民之術也라
故世主無養民之心이면 則天下之賢人君子不爲之用而上之所得者 莫非殘民害物之人이라
是以로 民心이 日離하며 君勢日孤하나니 亡秦之轍을 可以鑑矣라
蕭何有見乎此而高祖聞言卽悟하니 漢業之興이 不亦宜哉아
綱
五月에 齊田榮이 擊走齊王都하고 遂弑膠東王巿하고 自立爲齊王하야 秋七月에 使彭越로 擊殺濟北王安하고 又擊破西楚軍하다
目
田榮이 聞項羽徙田市而立田都爲齊王이라하고 大怒하야 距擊都走之하고
因留市하야 不令之膠東한대 市이 畏羽하야 竊亡之國이어늘
是時에 彭越이 在鉅野하야 有衆萬餘人호대 無所屬이라
榮
이 與越將軍印
하야 使擊田安殺之
하고 遂幷王三齊
注+三齊, 謂齊及濟北膠東也.하고 又使越
로 擊楚
하야 大破其軍
하다
目
項王이 以張良이 從漢王이라하야 廢韓王成而殺之한대 良이 遂間行歸漢하다
良
이 多病
하야 未嘗特將
이요 嘗爲畫策臣
하야 時時從漢王
注+特將, 獨將兵也.하더라
綱
八月에 還定三秦하니 雍王邯은 迎戰하야 敗走廢丘하고 塞王欣翟王翳는 降하다
目
初
에 淮陰人韓信
이 家貧無行
하야 不得推擇爲吏
注+班志 “武帝元狩六年置臨淮郡, 陰縣屬焉.” 無行, 謂無善行也. 推擇, 推擧選擇也.하고
又不能治生商賈
하야 釣於城下
러니 有漂母見其飢而飯之
注+漂, 匹妙切. 以水擊絮曰漂. 飯, 扶晩切, 飼之也.어늘
母怒曰 大丈夫不能自食
注+食, 如字.일새 吾哀王孫而進食
호니 豈望報乎
注+王孫, 如言公子也. 蓋尊稱之耳. 一說 “韓信釣於城下, 漂母必素識之. 信欲重報, 蓋非一飯. 其稱王孫, 安知非韓國之後耶.”아
淮陰少年
이 或衆辱之曰
注+衆辱, 於衆中辱之. 若
이 雖長大好帶刀劒
이나 中情
은 怯耳
注+若, 汝也. 下若亡同.라
於是
에 信
이 熟視之
하고 俛出袴下
하니 一市皆笑
注+俛, 卽俯字, 或音免, 亦通.하더라
目
及項梁
이 渡淮
에 信
이 杖劒從之
注+杖劒, 言直帶一劒, 更無餘資.러니
信
이 仰視適見滕公曰
注+滕公, 卽夏侯嬰. 初從高祖爲滕令, 故號滕公. 上
이 不欲就天下乎
아
滕公
이 奇其言壯其貌
하야 釋不斬
注+釋, 放也, 置也.하고
目
王
이 至南鄭
하얀 將士皆歌謳思歸
하야 多道亡者
注+謳, 謂齊聲而歌也. 齊, 衆也.러니
信이度何等이 已數言호대 王不我用하고 卽亡去어늘
目
居一二日에 何來謁이어늘 王이 罵曰 若亡은 何也오 曰 臣不敢亡이라
王이 復罵曰 諸將亡者以十數로대 公無所追러니 追信은 詐也로다
何曰 諸將
은 易得
이어니와 如信
은 國士無雙
注+言漢國之士, 僅有信一人, 他無與比也. 一云 “國土, 國家之奇土.”이니
王
이 必欲長王漢中
인대 無所事信
注+言無事用信.이어니와 必欲爭天下
인댄 非信
이면 無足與計事者
니
安能鬱鬱久居此乎이리오 何曰 計必東인대 能用信이면 信卽留어니와 不然이면 信終亡耳리이다
王曰 吾爲公
하야 以爲將
注+上爲, 去聲.호리라 何曰 信
이 不留也
리이다
目
必欲拜之
인댄 擇日齋戒
하고 設壇具禮
라야 乃可耳
注+築土而高曰壇.니이다 王
이 許之
하니
諸將이 皆喜하야 人人自以爲得大將이러니 至拜하얀 乃韓信也라
目
禮畢上坐
注+上, 時掌切. 坐, 徂臥切.어늘 王曰
大王
이 自料勇悍仁彊
이 孰與項王
注+料, 量也.이니잇고
目
信이 再拜賀曰 惟信도 亦以爲大王이 不如也라하노이다
項王
이 喑噁叱咤
에 千人
이 皆廢
하나 然不能任屬賢將
하니 此
는 匹夫之勇耳
注+喑, 於金‧於鶴二切. 噁, 烏故切. 喑噁, 懷怒氣也. 咤, 竹駕切, 或作吒. 叱咤, 發怒聲也. 廢, 偃也.요
見人慈愛
하야 言語嘔嘔
하나 至人有功當封爵者
하야는 印刓敝
호대 忍不能予
하니 此
는 婦人之仁也
注+嘔, 音吁, 悅言也. 刓, 烏丸切, 訛缺也. 敝, 刓敝也. 言封爵之印, 雖已刻而手弄角訛, 不忍授也.요
雖霸天下
나 不居關中
하고 而都彭城
하며 背約而以親愛
로 王諸侯不平
注+以親愛王諸侯, 言以所親所愛者, 皆封王.하고 逐義帝置江南
하고 所過殘滅
하야 民不親附
하니
目
今大王
이 誠能反其道
하사 任天下武勇
하시면 何所不誅
며 以天下城邑
으로 封功臣
하시면 何所不服
이며 以義兵
으로 從思東歸之士
하시면 何所不散
注+用東歸之兵, 擊東方之敵, 此敵無不散敗也. 一說 “散, 謂四散而立功也.”이리오
且三秦王이 將秦子弟數歲에 所殺亡이 不可勝計요 又欺其衆降諸侯라가 及項王이 阬秦卒에 唯此三人이 得脫하니 秦父兄이 怨之하야 痛入骨髓어늘
而楚彊以威王之
注+彊, 其兩切.하고 大王
은 入關
하사 秋毫無所害
하며 除秦苛法
하시고
於諸侯之約에 又當王關中이어늘 而失職入漢中하시니 秦民이 無不恨者니
今擧而東
하시면 三秦
을 可傳檄而定也
注+檄, 胡歷切. 以木簡爲書, 長尺二寸, 用徵召也. 有急則加以鳥羽挿之, 所以示急疾也. 可傳檄而定, 言不足用兵也.리이다
目
遂部署諸將
注+部署, 部分而署置之.하고 留蕭何
하야 收巴蜀租
하야 給軍糧食
하고
八月
에 從故道出
注+行道曰糧, 謂糒也. 止曰食, 謂米也. 班志 “故道縣屬武都郡.”한대 章邯
은 迎戰
하야 敗走廢丘
하고 王
이 至咸陽
하니 欣翳
는 皆降
하다
張良이 遺項王書曰 漢王이 失職하야 欲得關中如約이요
又以齊梁反書로 遺之하니 羽以故로 無西意而北擊齊하니라
目
陵은 沛人이니 聚黨居南陽이러니 至是하야 始以屬漢하니 楚執其母하야 欲以招之어늘
終得天下니 無以我故로 持二心하라하고 遂伏劒而死하다
초楚 원년,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 원년,
한왕漢王 유방劉邦 원년,
한왕韓王 한성韓成 3년이다.
옹왕雍王 장한章邯,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적왕翟王 동예董翳,
서위왕西魏王 위표魏豹,
하남왕河南王 신양申陽,
은왕殷王 사마앙司馬卬,
대왕代王 조헐趙歇,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
구강왕九江王 영포英布,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
임강왕臨江王 공오共敖,
注+공共은 음이 공龔이니 성이다.요동왕遼東王 한광韓廣,
연왕燕王 장도臧荼,
注+도荼는 음이 도徒이다.교동왕膠東王 전불田巿,
.
注+전안田安은 옛 제왕齊王 건建의 손자이다.
이해에 진秦나라가 망하니 새로 생긴 나라와 옛 나라 중에서 대국大國이 셋이고, 소국小國이 열일곱이니 모두 스무 나라이다.
한韓,
색塞,
적翟,
요동遼東,
교동膠東,
제齊,
제북濟北 등 일곱 나라가 모두 망하였고, 또
한왕韓王 정창鄭昌과
제왕齊王 전영田榮 원년이니 열다섯 나라가 정해졌다.
注+정창鄭昌은 옛 오현吳縣의 현령이었다.
綱
[綱] 겨울 10월에
패공沛公이
에 이르니
진秦나라
왕王이 옥새와 부절을 받들고 항복하다.
目
[目]
패공沛公이
패상霸上에 도달하니
진秦나라
왕王 자영子嬰이 흰말이 끄는 흰 수레를 타고 인끈을 목에 감고서
注+흰 수레와 흰말은 상喪을 당한 사람이 타는 것이다. 조組는 음이 조祖이니, 인끈이다. 오색의 실을 사이사이 섞어 짜서 옥새를 묶어서 허리에 띠는 것이다. “계경係頸(목에 묶다.)”은 항복을 하여 자살하고 싶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봉하여
의 옆에서 항복하였다.
注+《사기정의史記正義》에는 “천자는 6개의 옥새가 있는데, 황제행새皇帝行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신새皇帝信璽, 천자행새天子行璽, 천자지새天子之璽, 천자신새天子信璽이다.”라고 하였고, 에는 “는 본래 6개의 옥새 외에 따로 있다.”라고 하였다. . 《괄지지括地志》에 “지도軹道는 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동북쪽 16리의 원苑 안에 있다.”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죽이기를 청하자, 패공이 말하기를, “처음에 회왕懷王께서 나를 보낸 것은 진실로 내가 너끈히 관용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이 사람이 이미 항복을 했으니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고 바로 옥리에게 넘겼다.
目
[目]
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注+가의賈誼는 전한前漢시대 낙양洛陽 사람이다.
“
진秦나라가 보잘것없는
옹주雍州 땅을 가지고 천자의 권력을 이룩하여
를 점령하고
그런 후에
육합六合(
천하天下)을 집으로 삼고
효산殽山과
함곡관函谷關을
궁궐宮闕로 만들었다.
注+초招는 음이 초超이니 점령하다라는 뜻이다. 9주 중에 진秦나라는 옹주雍州를 가졌고, 나머지 8주는 모두 제후의 땅이다. “조동렬朝同列(지위가 같은 제후로부터 조회를 받았다.)”은, 일찍이 여섯 나라의 제후는 진秦나라와 함께 같은 제후국이었는데 진秦나라가 모두 조회하고 복종하게 한 것을 말한다. 상하사방이 육합六合이다. 효殽는 음이 효爻이다. 효殽는 효산을 말하고 함函은 함곡관을 말한다.
그러다가 한 필부가 난을 일으키니, 칠묘七廟가 무너지고 황제의 몸이 남의 손에 죽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아서였고,
공수攻守의 형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注+《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천자天子는 칠묘七廟인데 3개의 소昭와 3개의 목穆 그리고 태조太祖의 묘를 합하여 일곱이다.”라고 하였다. 휴墮는 휴隳로 읽는데 무너지다라는 뜻이다.
目
진秦나라가 거짓과 무력으로 천하를 얻었으니 어찌 능히 인의仁義를 베풀 이치가 있겠는가?”
綱
[綱] 패공沛公이 함양咸陽으로 들어가서 패상霸上으로 군사를 돌리고,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을 없애버렸다.
目
[目] 패공沛公이 서쪽으로 함양咸陽에 들어가니 여러 장수들은 모두 다투어 금은보화와 재물을 취했는데, 오직 소하蕭何만은
먼저 들어가서 승상부의 지도地圖와 문적文籍을 거두어서 잘 보관하였다.
이 때문에 천하의 요새와 호구의 많고 적음과 강하고 약한 곳을 모두 알게 되었다.
目
[目] 패공沛公이 진秦나라 궁실의 화려한 휘장과 금은보화와, 여자를 보고는 머물러 있고 싶어 하였다.
그러자 번쾌樊噲가 “무릇 이 사치스러운 물건들은 모두 진秦나라를 망하게 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빨리 패상霸上으로 돌아가시고 더 이상 이 궁중에 머물지 마십시오.”라고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무도하여 패공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무릇 천하를 위하여
잔적殘賊을 제거하려 한다면 마땅히 검소함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거늘,
注+자資는 바탕이다. 패공沛公으로 하여금 진秦나라의 사치와 반대로 하고 검소함을 실천하여 바탕으로 삼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제
진秦나라에 들어오자마자 안락에 빠지시니 이것이 이른바
걸桀의 학정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또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을 바로잡는 데는 좋고,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이 낫는 데는 이로우니, 원컨대 번쾌의 말을 들으소서.”
注+행行(행실)은 거성去聲이다. 아래 “행향行鄕”의 행行도 같다.라고 하였다.
目
[目] 패공沛公이 즉시 패상霸上으로 군사를 돌리면서 부로父老와 호걸豪傑들을 모두 불러 모아 말하기를, “부로父老들이 진秦나라의 학정과 악법에 시달린 지가 오래되었다.
제후들이 약속하기를 관중關中에 먼저 들어간 사람을 왕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니, 이제 내가 당연히 관중關中의 왕을 할 것이다.
부로와 함께 법法 삼장三章을 약속하니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도둑질한 자는 죄에 해당시킨다.
이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린다.
注+저抵는 이른다는 뜻이고, 해당한다는 뜻이다. 사람을 상해하는 것에는 시비是非가 있고, 도적질에는 많고 적음이 있으니, 죄명을 미리 정할 수가 없다. 죄에 해당시킨다고 포괄적으로 말한 것은 어떤 죄에 해당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릇 내가 온 이유는 부로를 위하여 해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니 조금도 침학하지 않을 것이다.
目
[目] 그리고 사람을 시켜서
진秦나라 관리와 함께
향鄕,
현縣,
읍邑으로 가게 하여 이런 사실을 알려주니,
注+“향현읍鄕縣邑”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현향읍縣鄕邑”으로 되어 있다. 진秦나라 제도에 현縣은 대략 사방이 100리이고, 10리가 1만구정亭이고 10만구정亭이 1향鄕이니 봉해진 식읍이다.진秦나라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여 서로 다투어 소와 양을 잡고 술과 밥을 가지고 군사들을 대접하였다.
유방劉邦이 함곡관函谷關에 들어와 법法 삼장三章을 선포하다
공이 사양하여 받지 않고 말하기를 “창고에 곡식이 많으니 백성들의 재물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라고 하니, 백성들이 더욱 기뻐하여 오직 패공沛公이 진秦나라의 왕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綱
[綱] 항적項籍이 진秦나라의 항복한 군사 20여만 명을 속여서 신안新安에서 생매장하였다.
目
[目] 항우項羽가 제후들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함곡관에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전에 제후의 관리와 군사들이
요역徭役과
둔수屯戍를 위해 관중을 거쳐갈 때에
注+산동山東 사람들은 관중關中을 진중秦中이라고 불렀다.진秦나라 사람들이 몹시 형편없게 대접하였다.
注+우遇는 대접한다는 뜻이다. “무상無狀”은 예로써 대접하지 않아서 그 정상이 말할 수 없이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秦나라 군사들이 초楚나라에 항복하자 제후의 관리와 군사들이 기세등등하여 모욕을 주며 노예처럼 부려먹으니, 진秦나라의 관리와 군사들이 많은 원망을 품고는 몰래 서로 수군거렸다.
항우가 ‘이 무리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니 관중關中에 이르면 반드시 위태롭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밤에 습격하여 20여만 명을 신안新安의 성 남쪽에 생매장하였다.
그리고
장한章邯 및
장사長史 사마흔司馬欣,
도위都尉 동예董翳만 데리고
진秦나라로 들어갔다.
注+《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신안현新安縣은 홍농군弘農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綱
[綱] 패공沛公이 군사를 보내어 함곡관을 지키게 하였는데 항적項籍이 공격하여 쳐부수고, 마침내 함양咸陽을 도륙하고 자영子嬰을 죽이고 시황제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쳤으며 크게 약탈하고는 동쪽으로 갔다.
目
[目] 어떤 사람이
패공沛公에게 “급히 군사를 보내어
함곡관函谷關을 지켜서 제후의 군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注+납內(들어오다)는 납納으로 읽는다.라고 설득하니, 패공이 따랐다.
이르러 크게 노하여 함곡관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희수戲水까지 진출하였다.
그러고는 사졸들을 배불리 먹이고 패공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당시에 항우의 병사는 40만으로
홍문鴻門에 주둔하였고, 패공의 병사는 10만으로
패상霸上에 있었다.
注+홍문鴻門은 지명으로서 희수戲水의 서쪽에 있다.
目
[目] 범증范增이 항우項羽에게 말하기를, “패공沛公이 산동山東에 있을 때는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함곡관에 들어가서는 재물을 취하지 않고 여자를 총애하지 않으니 이는 그 뜻이 작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급히 공격해서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항백項伯
目
밤에 달려가서 상황을 알려주고는 데려오려고 하였는데,
注+항백項伯은 백伯이 자字이고 이름은 전纏이다. 장량이 말하기를, “
.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지금 패공이 위급한데 도망가면 의롭지 않은 일입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항백에게 들어가 패공을 만나보기를 굳이 청하였다.
注+요要(구하다)는 평성平聲이다.
目
[目]
패공沛公이 술잔을 받들어 헌수하고
注+치巵(술잔)는 장이章移의 절切이고 고자古字는 저觝로 썼으니, 주례酒禮를 행할 때 쓰는 술잔이다. 옛날에 각角으로 만든 4되들이 술잔이다. 서로 사돈을 맺자고 약속하며 말하기를, “내가
관중關中에 들어와서 감히 추호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백성과 관리들을 모두 장부에 기록하였으며, 창고를 봉인하고서 장군(항우)을 기다렸습니다.
注+“추호秋毫”는 털이 가을이 되면 끝이 가늘어지는 것이니 작은 것을 비유한다. 적籍은 재석在昔의 절切이니,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다.
내가 함곡관을 지킨 이유는 다른 도적들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밤낮으로 장군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거늘 어찌 감히 배반하겠습니까?
원컨대 항백項伯께서는 신이 감히 배은망덕하지 않았다는 것을 갖추어 말씀드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항백이 승낙하며 말하기를, “내일 아침 일찍 직접 와서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目
[目]
항백項伯이 돌아가서 전후의 사정을 갖추어
항우項羽에게 알리고
注+거去는 항백項伯이 돌아간 것을 말한다. 이어서 “어떤 사람이 큰 공을 세웠는데 도리어 그를 치는 것은 불의한 일이니 잘 대우해주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패공沛公이 다음 날 아침에 기병 백여 명을 데리고 와서 항우項羽를 보고 사죄하자, 항우가 그대로 머물러서 술을 마시게 하였다.
범증范增이 여러 번 항우에게 눈짓을 하고 차고 있던
을 들어 보인 것이 세 차례였으나
注+“삭목數目”은 자주 눈길을 주어서 알린 것이다. 결玦은 음이 결決이니 패옥이다. 고리의 모양인데 한쪽이 터진 것이다. 범증范增이 이것을 들어서 항우項羽에게 보여준 것은 항우에게 패공을 죽이도록 결심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항우가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범증이 밖으로 나와서는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장막 안에 들어가서 항우의 앞에 나가서 헌수를 하고 칼춤을 추겠다고 청하여 그 틈을 타서 패공을 격살하라고 지시하였다.
注+항장項莊은 항우의 사촌동생이다.
항장이 들어가서 헌수를 마치고는 칼을 뽑아들고 춤을 추기 시작하자, 항백도 역시 칼을 뽑아 춤을 추면서 항상 자신의 몸으로 패공을 가려서 보호하니 항장이 내리칠 수가 없었다.
目
[目] 이때 장량張良이 나가서 번쾌樊噲를 보고 상황이 화급하다고 알렸다.
번쾌가 칼을 차고 방패를 든 채 그대로 들어가
注+순盾(방패)은 식윤食尹의 절切이며, 순楯과 통용하여 쓰이니 몸을 막고 눈을 가리는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항우項羽를 쳐다보니 머리털은 모조리 위로 치솟고 눈꼬리가 찢어질 듯하였다.
注+진瞋은 칭인稱人의 절切이니, 화가 나서 눈을 부라리는 것이다. 자眥는 음이 자恣이니 눈꼬리이다.
항우가 “장사로다.”라고 말하고, 술 1말과 생돼지의 어깻죽지 하나를 떼어주었다.
注+두치주斗巵酒는 1말 4되의 술을 말한다. 체彘는 음이 체滯이니 돼지이다.
번쾌가 그 즉시 술과 고기를 모두 먹어버리자,
注+음식을 먹으라고 주는 것을 담啗이라 하니, 도람徒濫의 절切이다. 음식을 스스로 먹는 것도 담啗이라고 하니, 도람徒覽의 절切이다. 항우가 “능히 더 마실 수가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번쾌가 말하기를, “신이 죽음도 피하지 않는데 말술쯤이야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진秦나라가 이리 같은 마음을 가지니 천하가 모두 반기를 들었습니다.
회왕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기를 ‘제일 먼저 함양咸陽에 들어가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패공沛公이 먼저 진秦나라를 깨고 함양에 들어갔으니 고생도 많았고 공도 높습니다.
그런데
봉작封爵하는 상은 내리지 않고 장군께서 소인들의 말을 듣고는 공이 있는 사람을 죽이고자 하시니,
注+세細는 가늘다는 뜻이고 잗달다는 뜻이고 작다는 뜻이다. 세인細人은 잗단 소인이라는 말이다. 패공沛公의 좌사마左司馬 조무상曹無傷이 사람을 시켜 항우項羽에게 말하기를, “패공이 관중의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라고 하자 항우가 크게 노하였다. 이는 망한
진秦나라의 연속일 뿐입니다.
삼가 장군을 위하여 그런 계책은 따르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항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앉으라고 명하였다.
번쾌樊噲
目
[目] 그러자
패공沛公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측간으로 가다가 몸을 빼내어 홀로 말을 타고 가고,
번쾌樊噲 등은 걸어서 그를 따라
패상霸上으로 갔다.
注+.
그리고 장량張良을 남겨두어 항우項羽에게 사례하도록 하였다.
항우가 패공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장량이 말하기를, “장군이 책임을 물어 벌을 내린다는 말을 듣고는 몸을 빼어 혼자 갔으며, 이미 군중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1쌍을 항우에게 올리고
1쌍을
범증范增에게 주었다.
항우는
백벽白璧을 받았지만, 범증은 칼을 빼서 옥두를 쳐서 깨트리고는 “에이,
注+당撞(치다)은 장강丈江의 절切이니 때린다는 뜻이다. 애唉는 애哀와 희僖의 두 가지 음이 있으니 한탄하는 소리이다. 애송이와는 일을 도모할 수가 없구나!
장군에게서 천하를 빼앗을 자는 필시 패공일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포로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目
[目] 며칠이 지난 후에 항우項羽가 병사를 끌고 서쪽으로 가서 함양咸陽을 도륙하고 진秦나라의 항복한 왕 자영子嬰을 죽이고, 또 진秦나라의 궁실을 불사르니 3개월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
진秦 시황제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고 보물과 부녀자를 거두어서 동쪽으로 가니 진秦나라 백성이 크게 실망하였다.
目
[目]
한생韓生이
항우項羽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
관중關中은 산으로 막혀 있고 강으로 둘러 있어서 사방이 천험의 요새이고 거기다 땅이 비옥하니 도읍으로 삼아서 천하를 얻을 만한 곳입니다.”
注+“사색四塞(사방의 요새)”는 동쪽의 함곡관函谷關, 남쪽의 무관武關, 서쪽의 산관散關, 북쪽의 소관蕭關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진秦나라의 궁실이 모두 타버려 황폐해진 것을 보고 또 동쪽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부귀해졌는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에 다니는 것과 같다.”
注+야夜(밤)는 거성去聲이다. “의수야행衣繡夜行(비단옷을 입고 밤에 다닌다.)”은 보는 사람들이 없으니 영화스럽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생이 물러나와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초楚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관을 씌운 꼴이라고 말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注+는 원숭이이다. 원숭이가 관대冠帶를 오래 착용하는 것을 견디지 못함을 말하여 초楚나라 사람의 성격이 조급하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과연果然”은 정말 사람들의 말과 같다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綱
[綱] 봄 정월에 항적項籍이 초楚나라 회왕懷王을 높여서 의제義帝로 삼았다.
目
[目] 항우項羽가 관중關中으로 들어간 다음에 회왕懷王에게 사람을 보내어 뜻을 전하였다.
그러자 회왕은 약속대로 하라고
注+〈“여약如約(약속대로 하라.)”은〉 패공沛公으로 하여금 관중關中의 왕이 되게 하라는 말이다. 하였다.
항우가 노하여 “회왕은 우리 집안에서 세웠을 뿐이다.
공적이 없으니 어찌 맹약을 독단할 수 있겠는가.
注+공을 쌓은 것을 벌伐이라고 한다.
천하가 거병했을 초기에
注+난難(난리)은 거성去聲이니,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를 말한다. 임시로 제후들의 후예를 세워서
진秦나라를 정벌하였다.
그러나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풍찬노숙風餐露宿한 지 3년 만에
진秦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안정시킨 것은 모두
장상將相인 여러분과 나
항적項籍의 힘이다.
注+“피견被堅”은 갑옷을 입은 것이다. 예銳는 날카로운 무기이다.
회왕은 비록 공이 없지만 진실로 땅을 나누어 왕으로 봉하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말하고 겉으로 회왕을 높이는 척하여
의제義帝로 삼았다.
注+양陽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음陰이란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다. 무릇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서 겉으로는 하는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실상이 없는 것은 모두 겉으로 하는 것이고,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몰래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은 모두 속으로 하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옛날의 제왕은 땅이 사방 천 리이고 반드시 상류에 살았다.”
注+유游는 바로 유流이니 상류에 거처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여 의제를
양자강揚子江의 남쪽으로 옮겨서
침郴에 도읍을 정하였다.
注+침郴은 축림丑林의 절切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침현郴縣은 계양군桂陽郡에 속해 있다.”고 하였다.
綱
[綱] 2월에
항적項籍이 스스로 서서
서초패왕西楚霸王이 되었고,
注+강릉江陵은 남초南楚이고 오吳는 동초東楚이며 팽성彭城은 서초西楚이다. 의제義帝가 초楚나라라고 칭했기 때문에 항우項羽가 서초西楚라고 칭한 것이다.
目
[目]
의 왕이 되어서
팽성彭城에 도읍하였다.
綱
[綱] 패공沛公을 세워서 한왕漢王으로 삼았다.
目
[目]
항우項羽와
범증范增이
패공沛公을 의심하였지만
注+패공沛公이 천하에 마음을 두고 있을까 의심한 것이다. 이미 화해하였고, 또 약속을 저버린다는 말도 싫어하였다.
注+이미 그렇게 된 것을 업業이라고 하니, 비록 의심은 가지만 일은 이미 화해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모의하기를
파巴‧
촉蜀은 길이 험하고 또
진秦나라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하고는 “
파巴와
촉蜀도
관중關中의 땅이다.”라고 하며, 패공을 세워서
한왕漢王으로 삼아 파‧촉과 한중의 왕이 되게 하고
남정南鄭에 도읍을 정하게 하였다.
注+파巴‧촉蜀과 한중漢中은 진秦나라가 3군郡을 설치한 곳이다.
그리고 관중을 셋으로 나누어 진秦나라의 항복한 장수들을 왕으로 삼아서 한漢나라가 나오는 길을 막도록 하였다.
目
[目]
함양咸陽 서쪽 지역의 왕이 되어
폐구廢丘에 도읍하였다.
注+폐구廢丘는 주周나라 때 태구太丘인데 이 도읍한 곳이다. 진秦나라가 폐지하고자 하여 폐구라고 이름을 고쳤으니 곧 한漢나라 부풍扶風 괴리현槐里縣이다.
綱
[綱]
사마흔司馬欣을
새왕塞王으로 삼고,
注+색塞(요새)는 선대先代의 절切이다. 황하黃河와 의 험고한 것을 취하여 요새로 삼았기에 색塞라고 이름한 것이다.
綱
[綱]
동예董翳를
적왕翟王으로 삼고,
注+은 본래 상군上郡인데 북쪽으로 융적戎翟과 가까웠기 때문에 인하여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目
[目]
상군上郡의 왕이 되어
고노高奴에 도읍하니,
장한章邯에게
초楚나라에 항복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고노현高奴縣은 상군上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綱
[綱]
를 옮겨서
서위왕西魏王으로 삼고,
注+신양申陽은 장이張耳의 총애하는 가신家臣이다.
目
[目] 하동河東의 왕이 되어 평양平陽에 도읍하니, 항적項籍이 본래 대량大梁 땅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綱
[綱] 신양申陽을 세워서 하남왕河南王으로 삼고,
目
[目]
낙양洛陽에 도읍하니, 먼저
하남河南을 평정하고
를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注+선先(앞서다)과 하下(함락하다)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目
[目] 하내河內의 왕이 되어 조가朝歌에 도읍하니, 하내를 평정한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綱
[綱]
장이張耳를 세워서
상산왕常山王으로 삼고,
注+진秦나라가 초楚나라를 멸망시키고 구강군九江郡을 두었다. 양자강揚子江이 심양潯陽에 이르러서 나뉘어 9개의 강이 되는데 첫 번째는 오강烏江이고, 두 번째는 방강蚌江이고, 세 번째는 오백강烏白江이고, 네 번째는 가미강嘉靡江이고, 다섯 번째는 견강畎江이고 여섯 번째는 원강源江이고 일곱 번째는 품강稟江이고 여덟 번째는 제강提江이고 아홉 번째는 균강菌江이다. 이로 인하여 군郡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目
[目] 조趙나라 지역의 왕이 되어 양국襄國에 도읍하니, 항우項羽를 따라서 함곡관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目
[目]
육六에 도읍하니,
초楚나라 장수가 되어서 항상 모든 군대의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注+관冠(으뜸)은 거성去聲이다. 그 용맹이 모든 군사 중에서 으뜸이라는 말이다.
綱
[綱]
오예吳芮를
형산왕衡山王으로 삼고,
注+《지리지地理志》에 “안국安國의 육현六縣으로서 한漢나라 형산국衡山國이다.”고 하였다.
目
[目]
주邾에 도읍하니,
백월百粤을 이끌고
항우項羽를 따라서 함곡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주현邾縣은 강하군江夏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目
[目]
강릉江陵에 도읍하니,
남군南郡을 공격하여 공이 많았기 때문이다.
注+임강臨江은 본래 남군南郡인데 한漢나라 때 임강국臨江國으로 고쳤다. 강릉현江陵縣에 속한다.
綱
[綱] 연왕燕王 한광韓廣을 옮겨서 요동왕遼東王으로 삼고,
目
[目]
무종無終에 도읍하였다.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무종현無終縣은 북평군北平郡에 속한다.”고 하였으니, 요동군遼東郡의 관내管內가 아니다. 대개 항우項羽가 한광韓廣으로 하여금 무종에 도읍을 정하게 하여 요동의 땅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綱
[綱] 연燕나라 장수 장도臧荼를 연왕燕王으로 삼고,
目
[目] 계薊에 도읍하니, 초楚나라를 따라서 조趙나라를 구원하고 함곡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綱
[綱]
제왕齊王을 옮겨서
교동왕膠東王으로 삼고,
綱
[綱] 제齊나라 장수 전도田都를 제왕齊王으로 삼고,
目
[目] 임치臨菑에 도읍하니, 초楚나라를 따라서 조趙나라를 구원하고 함곡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目
[目]
박양博陽에 도읍하니,
제북濟北을 평정하고 군대를 이끌어
초楚나라에 항복하였기 때문이다.
注+제북濟北에 박관博關이 있으니 박양博陽은 대개 박관의 남쪽이다. 제북濟北은 제수濟水 이북의 땅으로 요성聊城, 박양博陽 등 여러 성이 바로 이곳이다.
綱
[綱] 여름 4월에 제후들이 군대를 철수하여 각자의 봉국封國으로 갔다.
綱
[綱] 한漢나라가 소하蕭何를 승상으로 삼고 장량張良을 한韓나라로 돌려보냈다.
目
[目] 처음에 한왕漢王이, 항우項羽가 약속을 어겼다고 하여 화를 내며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소하蕭何가 “비록 악지惡地인 한중의 왕이 되었지만 오히려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무슨 말인가.”라고 물으니, 소하가 말하기를 “지금 무리들이 예전과 같지 않으니 백 번 싸우면 백 번 패하게 될 것입니다.
무릇 한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서
만승萬乘의 높은 자리에서 뜻을 펴는 것은
탕湯임금과
무왕武王이 바로 그렇습니다.
注+출絀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굴詘로 되어 있다. 신信은 신伸의 고자古字이다.
신은 원컨대 대왕께서 한중의 왕이 되어 백성을 잘 돌보아 어진 사람들이 오게 하며 그것으로써
파巴와
촉蜀을 거두고 다시
삼진三秦을 평정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注+삼진三秦은 곧 옹雍나라, 색塞나라, 적翟나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왕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하며 즉시 한중으로 들어가서 왕이 되었고, 소하를 승상으로 삼았다.
승상丞相 소하蕭何
目
[目]
항왕項王이 사졸 3만 명으로 하여금
한왕漢王을 따라서
한중漢中으로 가게 하니,
초楚나라와 제후의 군사들 가운데 흠모하여 따라가는 자가 수만 명에 달하였다.
注+《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에는 ‘후侯’ 아래에 ‘인人’자가 있다.
장량張良이 한왕을 전송하여
포중褒中에 이르렀다.
注+포중褒中이란 포곡褒谷 가운데 산다는 뜻이다. 《지리지地理志》에 “포중현褒中縣은 한중군漢中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왕이 장량을 보내어
한韓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는데, 장량이 한왕을 설득하여 지나온
잔도棧道를 모두 불살라 끊어버려서 도적과 군사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대비하고, 또
항우項羽에게 동쪽으로 진출할 뜻이 없다는 것을 보이라고 하였다.
장량張良이 잔도棧道를 불태우다 注+항우項羽로 하여금 한왕漢王이 더 이상 동쪽으로 진출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라는 말이다.
目
“모든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은 백성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상국蕭相國이 ‘백성을 잘 돌보아서 현인을 오게 하라.’라고 말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남들이 하는 말을 따라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무릇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해서이고, 임금이 신하를 구하는 것은 백성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려는 것이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시행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이 백성을 양육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천하의 현인군자가 쓰이지 않아 임금이 얻는 인재는 하나같이 백성과 만물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백성의 마음은 날로 떠나고 임금의 형세는 날로 고단해지니, 망한 진秦나라의 자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소하蕭何는 이 점을 보았고, 한漢 고조高祖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깨달았으니, 한漢나라 왕업王業이 흥기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아니한가.”
綱
[綱] 5월에 제齊나라 전영田榮이 제왕齊王 전도田都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드디어 교동왕膠東王 전불田巿을 시해한 후에 스스로 서서 제왕齊王이 되었고, 가을 7월에 팽월彭越을 시켜서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을 공격하여 죽이고 또 서초西楚의 군사를 쳐서 깨뜨렸다.
目
[目] 전영田榮이 항우項羽가 전시田市을 옮기고 전도田都를 세워서 제왕齊王으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노하여 항우를 거역하고 전도를 공격하여 패배시켰다.
이어서 전불을 억류하여 교동膠東으로 가지 못하게 하였는데, 전불이 항우를 두려워해서 몰래 도망하여 교동으로 가버렸다.
이때에 팽월彭越이 거야鉅野에 있었는데 무리가 만여 명이었지만 속한 곳이 없었다.
전영이 팽월에게 장군의
인수印綬를 주어서
전안田安을 공격하여 죽이도록 하고 드디어
삼제三齊를 병합하여 왕이 되고,
注+삼제三齊는 제齊나라와 제북濟北 그리고 교동膠東을 말한다. 또 팽월로
초楚나라(
서초西楚)를 공격하게 하여
초楚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綱
[綱] 서초西楚가 한왕韓王 한성韓成을 죽이니 장량張良이 다시 한漢나라로 돌아갔다.
目
[目] 장량張良이 한왕漢王을 따랐다고 하여 항왕項王이 한왕韓王 한성韓成을 폐위시키고 죽이자, 장량張良이 사잇길로 가서 한漢나라로 돌아갔다.
장량은 병이 많아서 독립적으로 군대를 통솔하지는 못하고 책략을 세우는 신하가 되어서 항상
한왕漢王을 따라 다녔다.
注+“특장特將”이란 독립적으로 병사를 거느리는 것이다.
綱
[綱] 한왕漢王이 한신韓信으로 대장大將을 삼고 소하蕭何를 남겨두어 군량을 보급하게 하였다.
8월에 돌아가 삼진三秦을 평정하니 옹왕雍王 장한章邯은 맞아 싸우다 패하여 폐구廢丘로 도망갔고,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과 적왕翟王 동예董翳는 항복하였다.
目
[目] 처음에
회음淮陰 사람
한신韓信이 집이 가난하고 뛰어난 행실이 없어서 천거를 받아서 관리에 뽑히지 못하였다.
注+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무제武帝 원수元狩 6년(B.C. 117) 임회군臨淮郡을 설치하고 음현陰縣을 귀속시켰다.”고 하였다. “무행無行”은 뛰어난 행실이 없다는 것이다. “추택推擇”은 천거를 받아서 뽑히는 것이다.
또 장사를 하여 생계를 꾸릴 능력도 없어 성의 아래에서 낚시를 하였는데, 빨래를 하던 아낙이 한신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는 밥을 주었다.
注+표漂는 필묘匹妙의 절切이다. 물에 솜을 치대어 빠는 것을 표漂라고 한다. 반飯은 부만扶晩의 절切이니, 먹인다는 뜻이다.
한신이 기뻐서 아낙에게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크게 보답을 하리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낙이 화를 내며 “대장부가 스스로 벌어먹지 못하기에
注+식食(먹다)은 본음대로 읽는다. 내가
왕손王孫으로 그러는 것이 불쌍하여 밥을 준 것이니 어찌 보답을 바랬겠소?”
注+왕손王孫은 공자公子라는 말과 같다. 대개 존칭한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한신韓信이 성의 아래에서 낚시를 하였으므로 빨래하는 아낙이 분명히 평소부터 안면이 있었을 것이다. 한신이 크게 보답하려고 하였으니 대개 여러 차례 밥을 준 것이다. 왕손王孫이라고 칭하였으니 어찌 한신이 한韓나라의 후예가 아닌 줄을 알겠는가.”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회음淮陰에 사는 한 젊은이가 여러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한신에게 모욕을 주며
注+“중욕衆辱”은 사람들 보는 가운데서 욕을 보인다는 말이다. “네가 비록 키는 크고 칼은 잘 차고 다닌다만 속으로는 겁쟁이일 뿐이지.
注+약若은 너라는 뜻이다. 아래 의 약若도 같다.
능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나를 칼로 찌르고, 죽음이 두렵거든 내 바짓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라.”라고 하였다.
이에 한신이 한참을 쳐다보더니 몸을 굽혀서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오니 저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비웃었다.
注+면俛(구부리다)은 바로 부俯자인데, 혹 음이 면免이니 또한 같은 의미이다.
目
[目]
항량項梁이
회수淮水를 건널 적에
한신韓信이 칼 한 자루를 차고서 그를 따랐다.
注+“장검杖劒”은 다만 칼 한 자루만을 차고 있고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후에 또 한신은 여러 번 항우項羽에게 계책을 써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써주지 않았다.
그러자 도망하여 한漢나라에 귀부歸附했으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느 날 법에 걸려서 목을 베이게 되었는데 그 무리들이 모두 목이 베이고 다음 차례는 한신이었다.
한신이 고개를 드니 때마침
등공滕公이 앞에 있었다. 한신이 말하기를,
注+등공滕公은 곧 하후영夏侯嬰이다. 처음에 고조高祖를 따라서 등령滕令이 되었던 까닭에 등공이라고 부른 것이다. “
주상主上께서는 천하를 통일할 마음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어찌하여
장사壯士를 참수한단 말입니까?”
注+상上은 한왕漢王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등공이 그 말이 기특하고 그 모습이 장하여 풀어주고 참수하지 않았다.
注+석釋은 풀어주는 뜻이고 놓아두는 뜻이다.
그리고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는 왕에게 말하였지만 왕은 한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한신이 여러 번 소하蕭何와 이야기를 하니 소하는 한신을 뛰어난 인물로 여겼다.
目
[目] 왕이
남정南鄭에 이르자 장수와 사졸들이 모두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하여 중도에 도망하는 자들이 많았다.
注+구謳는 많은 사람[제齊]이 소리 내어 노래하는 것이니 제齊는 많은 사람이다.
한신韓信은, 소하蕭何 등이 이미 여러 번 언급하였지만 왕이 자신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달아났다.
소하가 미처 그 소식을 왕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직접 한신을 뒤쫓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왕에게 승상 소하가 달아났다고 하였다.
目
[目] 하루 이틀이 지나서 소하蕭何가 돌아와 왕을 뵙자, 왕이 꾸짖으며 “네가 무슨 까닭으로 도망하였는가?”라고 하니, “제가 감히 도망을 치겠습니까?
도망한 자를 따라간 것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따라간 자가 누구냐?”라고 묻자, 소하가 “
한신韓信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소하蕭何가 달밤에 한신韓信을 쫓다
왕이 다시 꾸짖으며 “도망한 여러 장수들이 수십 명이로되 공이 따라간 경우가 없거늘 한신을 쫓아갔다고 하니 거짓말이로다.”라고 하였다.
소하는 “여러 장수들은 얻기가 쉽지만 한신 같은
국사國士는 둘도 없습니다.
注+한漢나라에서 국사國士는 겨우 한신韓信 한 사람이니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일설에 “국사는 나라의 뛰어난 선비이다.”라고 하였다.
왕께서 계속하여
한중漢中에서 왕 노릇을 하고자 하신다면 한신을 쓸 일이 없겠지만
注+〈“무소사신無所事信”은〉 한신韓信을 쓸 일이 없다는 말이다. 반드시 천하를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서는 족히 일을 꾸밀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는 왕께서 어느 쪽으로 계책을 결정하시겠습니까.”
注+고顧는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이 “나도 역시 동쪽으로 가고 싶을 뿐이오.
어찌 답답하게 이곳에 오래도록 있을 수 있겠소?”라고 하자, 소하는 “반드시 동쪽으로 진출할 계획이라면 한신을 등용해야 하니, 그를 제대로 등용한다면 그가 남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끝내 도망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공을 위하여 장수로 삼겠소.”
注+위에 “오위공吾爲公”의 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라고 하자, 소하는 “한신이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러면 대장으로 삼겠소.”라고 하자 “매우 다행입니다.”라고 하였다.
目
[目] 이때 왕이 한신韓信을 불러서 벼슬을 내리려고 하자, 소하蕭何가 말했다.
“왕께서 평소에 오만하여 예를 차리지 않습니다.
지금 대장에 제수하면서도 마치 아이들 부르듯 하니 이것이 바로 한신이 떠난 이유입니다.
반드시 벼슬을 주고자 한다면 날을 잡아 재계하고
단壇을 설치하여
예禮를 갖추셔야만 그나마 괜찮을 것입니다.”
注+흙을 쌓아서 높이 올린 것을 단壇이라고 한다. 그러자 왕이 허락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기뻐하여 모두들 자기가 대장大將이 될 줄로 생각했는데, 막상 대장이 된 이는 한신이었다.
目
[目] 예를 마치고 자리에 오르자
注+상上(오르다)은 시장時掌의 절切이고, 좌坐(자리)는 조와徂臥의 절切이다. 왕이 말했다.
장군은 무엇을 가지고 과인을 가르쳐주시겠소.”
“대왕께서는 스스로 생각해보실 때 용맹함, 사나움, 인자함, 강대함이
항왕項王과 비교하여 누가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注+요料는 헤아려보는 것이다.
왕이 묵묵히 한참을 있다가 “그만 못하오.”라고 하였다.
目
[目] 한신韓信이 두 번 절하여 경하를 드리고 말하기를 “저도 대왕께서 항왕項王(항우項羽)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일찍이 항왕을 섬겨보았으니 청컨대 항왕의 사람됨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왕이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 천 사람이 모두 기가 꺾여 엎어지지만 현명한 장수에게 책임을 맡기지 못하니 이는
필부匹夫의 용맹입니다.
注+음喑(머금다)은 어금於金의 절切과 어학於鶴의 절切이다. 오噁(미워하다)는 오고烏故의 절切이다. “음오喑噁”는 마음속에 화가 가득한 것이다. 타咤(꾸짖다)는 죽가竹駕의 절切이니 혹은 타吒라고 쓰인다. “질타叱咤”는 겉으로 화내는 소리이다. 폐廢는 엎어진다는 뜻이다.
사람에게 자애롭고 말씨는 따뜻하지만
공功을 세워
봉작封爵해야 할 사람이 있게 되면
인장印章이 닳도록 만지작거리며 차마 선뜻 내어주지 못하니 이는 아녀자의 인자함입니다.
注+구嘔는 음이 우吁이니 기껍게 하는 말이다. 완刓은 오환烏丸의 절切이니 닳아서 깨진다는 뜻이다. 폐敝는 닳아서 해진다는 뜻이다. 봉작해주는 인장을 이미 새겨두었으나 모서리가 닳도록 만지작거리며 차마 주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천하를 제패하였으나
관중關中에 머물지 않고
팽성彭城에 도읍하였으며, 약속을 어기고서 가깝고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제후를 왕으로 봉하여 공평하지 않았고,
注+“이친애왕제후以親愛王諸侯(친애함으로써 제후를 왕으로 삼았다.)”는 자기와 가깝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왕에 봉했다는 말이다.의제義帝를
강남江南으로 내쫓았으며, 지나가는 곳마다 죽이고 파괴하여 백성이 친히 여겨 따르지 않습니다.
비록 이름은 패주霸主이지만 실상은 천하의 인심을 잃었으니, 따라서 그 강대함은 약해지기 쉬운 것입니다.
目
[目] 이제 대왕께서 진실로 능히 그가 한 방법과 반대로 하시어, 천하에 용맹한 자들에게 맡긴다면 누구라도 주벌할 수 있고, 천하의
성읍城邑을 가지고
공신功臣을 봉해주면 누구라도 굴복시킬 수 있으며,
.
注+동쪽으로 돌아가려는 병사를 사용하여 동쪽의 적을 공격하니, 이는 적이 흩어져 패배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일설一說에 “흩어진다는 것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각각 공을 세운다는 뜻이다.”고 하였다.
또
이
진秦나라의 자제들을 거느린 지 수년 만에 죽거나 도망한 자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고, 또 그 무리를 속여서 제후에게 항복하였으며, 급기야는
항왕項王이
진秦나라 사졸을 생매장하여 죽일 때 오직 이 세 사람만 벗어날 수 있었으니,
진秦나라의 부형들이 원망해서 원통함이 골수에 사무쳤습니다.
그런데도
초楚나라(항우)는 억지로 위세에 의지하여 세 사람을 왕으로 삼았고,
注+강彊(강요하다)은 기량其兩의 절切이다. 대왕께서는
관중關中에 들어가시어 털끝만큼도 해악을 끼치지 않고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없애버렸습니다.
제후들과의 약속에 있어서도 또 마땅히 관중關中의 왕이 되어야 하는데 직책을 잃고 한중漢中으로 들어가셨으니 진秦나라 백성이 한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거병하여 동쪽으로 향하시면
삼진三秦은
격문檄文만 전해도 평정될 것입니다.”
注+격檄은 호력胡歷의 절切이니, 목간木簡에 글을 쓴 것인데 길이는 한 자 두 치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화급하면 새의 깃털을 꽂으니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가전격이정可傳檄而定(격문檄文만 전해도 평정이 된다.)”은 족히 군사를 쓸 것도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스스로 한신韓信을 얻은 것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였다.
目
[目] 드디어 장군들의 부대를 나누고 부서를 배정하고는,
注+“부서部署”는 부대를 편성하고 관서를 설치한 것이다. 소하를 남겨두어
파촉巴蜀의 조세를 걷어서 군량을 보급하게 하였다.
8월에
고도故道를 통하여 동쪽으로 나왔는데
注+행군할 때 먹는 식량을 양糧이라 하니 말린 밥이다. 주둔할 때 먹는 식량을 식食이라 하니 쌀을 말한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고도현故道縣은 무도군武都郡에 속한다.”고 하였다.장한章邯이 맞아 싸우다
폐구廢丘로 패퇴하고 왕이
함양咸陽에 이르니
사마흔司馬欣과
동예董翳가 모두 항복하였다.
장량張良이 항왕項王에게 편지를 보내어 “한왕漢王이 〈마땅히 얻어야 할〉 직책을 잃어서 약속대로 관중關中을 얻고자 합니다.
얻으면 즉시 그쳐서 감히 동쪽으로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의 편지를 보내니
항우項羽가 이 때문에 서쪽으로 진출할 뜻을 버리고 북쪽으로
제齊나라를 공격하였다.
綱
[綱] 서초西楚가 정창鄭昌을 세워서 한왕韓王으로 삼았다.
綱
[綱] 연왕燕王 장도臧荼가 요동왕遼東王 한광韓廣을 시해하였다.
綱
[綱] 왕릉王陵이 군사를 이끌고 한漢나라에 귀속하였다.
目
[目] 왕릉王陵은 패현沛縣 사람이니 패거리를 모아서 남양南陽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한漢나라에 귀속하니 초楚나라가 그 어미를 잡고서 불러들이려고 하였다.
그 어미가 사자를 통하여 왕릉에게 이야기하기를 “한왕漢王은 장자長者이다.
마침내 천하를 얻을 것이니 나 때문에 두 마음을 갖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고 마침내 칼에 엎어져서 스스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