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처음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이 출전할 적에
승상丞相 유굴리劉屈氂가
조도祖道(
노제路祭)를 지내주고 전송하러
위교渭橋에까지 이르렀는데,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조祖는 길을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는 제사이다. 황제黃帝의 아들 유조纍祖(누조)가 멀리 유람하기를 좋아하다가 도로에서 죽었으므로 후인後人들이 그의 영혼을 행신行神(노신路神)으로 삼아 길을 떠나는 자가 제사하였는데, 흙으로 한 보루堡壘를 만들어 그 위에 소와 양을 올려놓고 제사 지낸 다음, ‘수레로 그 위를 짓밟고 지나가면 먼 길을 감에 험난함이 없어진다.’ 하였다. 인하여 제사한 고기를 먹고 이것을 전餞이라 하였다. 이광리가 당부하기를 “원컨대
군후君侯께서는 속히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을
태자太子로 삼도록 청하십시오.
만일 창읍왕이 황제가 된다면 군후君侯는 영원히 무슨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유굴리가 허락하였다.
창읍왕은 이사장군의 여동생인 이부인李夫人의 아들이었는데, 이사장군의 딸이 유굴리의 며느리가 되었으므로 함께 창읍왕을 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이사장군이 변방으로 출동하여
흉노匈奴의 군대를
부양夫羊의
구산句山에서 격파하고, 승세를 타고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범부인성范夫人城에 이르렀다.
注+부양夫羊은 지명地名이다. 구句는 음이 구鉤이니, 구산句山은 서산西山이다. 범부인성范夫人城은 본래 한漢나라 장수가 이 성城을 쌓았는데, 장수가 도망하자 그 아내가 남은 병력을 거느리고 이 성을 완전히 지켰으므로 인하여 범부인范夫人을 성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이때 마침 승상丞相의 부인夫人이 상上을 저주하고 또 이사장군과 함께 기도하고 제사해서 창읍왕을 황제가 되게 하려고 했다고 고발한 자가 있었는데, 조사하여 죄가 대역무도大逆無道함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6월에 유굴리는 동쪽 시장에서 요참형腰斬刑을 당하고, 이사장군의 처자 또한 구속되었다.
이사장군은 이 말을 듣고 근심하고 두려워해서 마침내 깊이 적지에 쳐들어가 공功을 세워 속죄하려고 하였다.
이에 북쪽으로 질거수郅居水 물가에 이르러 흉노의 좌현왕左賢王과 좌대장左大將을 만나 하루 동안 회전會戰한 결과 흉노의 좌대장을 죽였고 오랑캐의 사상자가 매우 많이 발생하였다.
이사장군이 회군하여
연연산燕然山에 이르렀는데,
注+연燕은 음이 연煙이다. 연연산燕然山은 흉노匈奴의 속사오速邪烏 지역 가운데 있으니, 계락산稽落山의 북쪽이다.선우單于가 직접 5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이사장군을 가로막고 공격할 적에 밤중에
한漢나라 군대의 앞뒤로 몇 자[
척尺]의 참호를 파놓고 뒤에서 맹렬히 공격하니,
한漢나라 군대가 크게 혼란에 빠져 패해서 이사장군이 마침내 항복하였다.
선우가 이사장군에게 딸을 시집보내니, 이사장군의 집안이 마침내 멸족을 당하였다.
目
[目] 관리와 백성들 중에 무고巫蠱를 서로 고발한 자들을 조사하여 징험해보니, 사실이 아닌 것이 많았다.
상上은
태자太子가 황공해서 그런 것이고 딴마음이 없었음을 자못 알고 있었는데,
注+〈“파지태자황공무타의頗知太子皇恐無他意”는〉 태자太子가 강충江充에게 압박을 당해서 놀라고 두려워 스스로 밝힐 길이 없으므로 군대를 일으켜 강충을 죽인 것이지, 딴마음이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마침
고침랑高寢郞(
고조高祖의
능침陵寢의
낭관郎官)인
전천추田千秋가
급변急變을 올려 태자의 억울함을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였다.
注+고침랑高寢郞은 고묘高廟의 능침陵寢을 보호하는 낭관郞官이다. 상上(올리다)은 시장時掌의 절切이다. 고告하는 내용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므로 ‘급변急變’이라 한 것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병기를 가지고 희롱하면 죄가 태형笞刑에 해당하니, 천자天子의 아들이 과오로 사람을 죽이면 무슨 죄에 해당하겠습니까.
신臣이 일찍이 꿈속에서 한 백발노인을 만나보았는데, 신으로 하여금 이것을 황제께 말씀드리게 하였습니다.”
상上은 마침내 크게 감동하고 깨달아 전천추를 불러 이르기를 “부자간의 일은 남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인데, 공公이 홀로 그렇지 않음을 밝혔으니, 이는 고묘高廟의 신령이 공公으로 하여금 나를 가르쳐주게 한 것이다.
공公은 마땅히 마침내 나의 보좌가 되어야 한다.” 하고, 즉석에서 전천추를
대홍려大鴻臚로 제수하고
注+“입배立拜”는 서서 뵐 때에 즉시 제수한 것이니, 시간을 경과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강충江充의 집안을 멸족하였으며,
소문蘇文을
횡교橫橋(광교) 위에서 불태워 죽였다.
注+횡橫은 음이 광光이다. 장안성長安城 북면 서쪽 머리의 첫 번째 문을 횡문橫門이라 하고, 문門 밖에 다리가 있는데 이름을 횡교橫橋라 하니, 바로 위수渭水의 다리이다.
상上은
태자太子가 죄 없이 죽은 것을 가엾게 여겨 마침내
사자궁思子宮을 짓고
귀래망사대歸來望思臺를
호현湖縣에 지으니,
천하天下 사람들이 듣고 슬퍼하였다.
注+“귀래망사歸來望思”는 자기가 바라보고 생각하여 행여 태자太子의 영혼靈魂이 돌아오기를 바람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