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巳年(93)
五年이라 春正月 太傅彪卒하다
◑隴西 地震하다
이어늘 遣兵追斬하고 滅之하다
竇憲 旣立於除鞬하여 爲北單于하고 欲輔歸北庭이러니 會憲誅而止하니 於除鞬 自畔還北이어늘 詔討斬之하고 破滅其衆하다
鮮卑徙據北匈奴地하다
鮮卑旣據匈奴故地注+拓拔氏自北荒南徙, 蓋此時也. 匈奴餘種十餘萬落 皆自號鮮卑注+落, 居也, 人所聚居.하니 鮮卑由此漸盛하다
冬十月 太尉睦하니 以張酺爲太尉하다
酺與尙書張敏等奏호되 曹褒制漢禮하여 亂聖術하니 宜加刑誅니이다 帝寢其奏而漢禮遂不行하다
梁王暢 有罪하니 詔削二縣注+暢初封汝南王, 章帝建初二年, 徙爲梁王.하다
與從官卞忌 祠祭求福이러니 忌云 神言王當爲天子라하다 有司奏請徵詣詔獄한대 帝不許하고 但削二縣注+二縣, 成武ㆍ單父也.하니
上疏하여 深自刻責하고 請還爵土어늘 優詔不聽하다
護羌校尉貫友 攻迷唐하여 走之하다
貫友攻迷唐於大小榆谷하고 夾逢留大河하여 築城塢하고 作大航하여 造河橋하여 欲以度兵注+此大河, 卽黃河, 河水至此, 有逢留之名, 在二楡谷北. 航, 寒剛切, 方舟也. 造舟爲梁, 則河橋之謂也.하니 迷唐 遠徙하여 依賜支河曲注+賜支, 禹貢所謂析支者也, 在河關西千餘里. 河水屈而東北流, 逕於析支之地, 是爲河曲.하다
南匈奴單于屯屠何 死하니 單于宣弟安國하다
安國 初爲左賢王하여 無稱譽러니 及爲單于 左谷蠡王師子 以次轉爲左賢王注+師子, 其名.하다
師子素勇黠多知注+知, 讀曰智.하여 數將兵擊北庭하여 受賞賜하니 國中 盡敬師子而不附安國이라
安國 欲殺之러니 諸新降胡 初在塞外하여 數爲師子所驅掠하여 多怨之注+在塞外, 謂先屬北部時.
安國 因是하여 與同謀議하니 師子覺其謀하고 乃别居五原界하다


계사년癸巳年(93)
나라 효화황제 영원孝和皇帝 永元 5년이다. 봄 정월에 태부 등표太傅 鄧彪(등표)가 하였다.
농서隴西에 지진이 있었다.
북선우北單于가 배반하였으므로 군대를 보내 쫓아가 참수하고 멸망시켰다.
두헌竇憲어제건於除鞬을 세워 북선우北單于로 삼고는 북정北庭으로 돌아가도록 돕고자 하였는데, 마침 두헌이 주벌을 받아 중지되니, 어제건이 스스로 배반하여 북쪽으로 돌아갔다. 이에 조령詔令을 내려 토벌해서 참수하고 그 무리를 격파하여 멸망시켰다.
선비鮮卑가 옮겨 북흉노北匈奴의 땅을 점거하였다.
선비鮮卑흉노匈奴의 옛 땅을 점거하자注+탁발씨拓拔氏가 북쪽 변방에서 남쪽으로 옮겨온 것은 아마도 이때일 것이다. 흉노의 남은 종족 10여만 부락이 모두 스스로 선비라 일컬으니注+혜락은 거처이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선비가 이로부터 점점 강성해졌다.
】 겨울 10월에 태위 윤목太尉 尹睦하니, 장포張酺태위太尉로 삼았다.
장포張酺상서 장민尙書 張敏 등과 아뢰기를 “ 마땅히 법에 따라 주살해야 합니다.” 하였다. 황제가 그들의 상주上奏를 회의에 회부하지 않으나, 조포가 만든 나라 가 끝내 시행되지 못하였다.
양왕 유창梁王 劉暢이 죄를 지으니, 조령詔令을 내려 식읍食邑을 삭감하였다.注+유창劉暢은 처음에 여남왕汝南王에 봉해졌었는데, 장제 건초章帝 建初 2년(77)에 옮겨 양왕梁王이 되었다.
유창劉暢종관 변기從官 卞忌와 함께 제사하여 복을 기원하였는데, 변기가 말하기를 “이 왕께서 마땅히 천자天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유사有司가 유창을 조옥詔獄으로 불러들일 것을 주청하였으나 황제가 허락하지 않고 다만 식읍食邑을 삭감하였다.注+이현二縣”은 성무成武선보單父(선보)이다.
유창이 상소上疏하여 깊이 스스로를 책망하고 관작과 봉지를 돌려드릴 것을 청하였는데, 은 우대하는 조서詔書를 내리고 허락하지 않았다.
호강교위 관우護羌校尉 貫友미당迷唐을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관우貫友대유곡大榆谷소유곡小榆谷에서 미당迷唐을 공격하고, 봉류대하逢留大河를 끼고서 를 구축한 다음 큰 배를 만들어 하교河橋를 설치하고 군대를 거느리고 하수河水를 건너려고 하니注+여기의 대하大河는 바로 황하黃河로, 하수河水가 여기에 이르면 봉류하逢留河로 불리니, 두 유곡楡谷의 북쪽에 있다. 한강寒剛이니 배 두 척을 연결한 배이다. 배를 만들어 교량을 설치한 것은 바로 하교河橋를 말한 것이다., 미당이 멀리 옮겨가서 사지하곡賜支河曲에 의지하였다.注+사지賜支는 ≪서경書經≫ 〈하서 우공夏書 禹貢〉에 이른바 ‘석지析支’란 곳이니, 하관河關 서쪽 천여 리 지점에 있다. 하수河水가 굽이져 동북쪽으로 흘러서 석지析支의 지역을 통과하니, 이것이 하곡河曲이다.
안국安國이 처음에 좌현왕左賢王이 되어서는 칭찬하는 명성이 없었는데 선우單于가 되니, 좌녹려왕左谷蠡王(좌곡려왕) 사자師子가 차례에 따라 좌현왕左賢王이 되었다.注+사자師子좌녹려왕左谷蠡王의 이름이다.
사자는 평소 용맹하고 약삭빠르고 지혜가 많아서注+(지혜)는 로 읽는다. 여러 번 군대를 거느리고 북흉노北匈奴의 왕정을 공격하여 상을 받으니, 국중國中에서 모두 사자를 공경하고 안국을 따르지 않았다.
안국이 사자를 죽이려 하였는데, 막 항복한 여러 호족胡族들이 전에 변방 밖에서 여러 번 사자에게 쫓기고 노략질을 당한 까닭에 그를 많이 원망하였다.注+재새외在塞外”는 먼저 북부北部(북흉노北匈奴)에 소속되었을 때를 이른다.
안국이 이를 이용해 함께 사자를 죽이려고 모의하니, 사자가 그 계책을 알고는 마침내 따로 오원五原의 경계에 거주하였다.


역주
역주1 北單于畔 : “單于에게는 ‘畔(배반했다.)’이라고 쓴 적이 없는데, 여기에서 ‘畔’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漢나라가 세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北單于는 漢나라가 세웠으므로 ‘畔’이라고 쓰고, 南匈奴는 漢나라에게 臣이라고 칭하였으므로 ‘討’라고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의 명분이 엄격하다.[單于未有書畔者 此其書畔 何 漢所立也 是故北單于爲漢所立 則書畔 南匈奴稱臣於漢 則書討 綱目之名分 嚴矣]” ≪書法≫
역주2 曹褒가……어지럽혔으니 : 曹褒가 漢나라의 禮를 정할 것을 청하고 이를 撰한 것은 본서 181쪽, 184쪽에 보인다.
역주3 南匈奴單于……즉위하였다 : 屯屠何는 남흉노 8대 선우이고, 宣은 7대 선우이다. 둔도하는 胡邪尸逐侯鞮單于, 宣은 伊屠於閭鞮單于로 불린다. 둔도하와 선․안국은 사촌간이다. 아래 師子는 둔도하의 조카이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