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是歲에 趙代九江三國亡하니 二大國幷衡山臨江燕齊韓五小國 凡七國이라
綱
冬十月
에 韓信
이 大破趙軍
하고 禽王歇
하고 斬代王餘
하고 遣使下燕
하다
目
韓信張耳擊趙
한대 趙聚兵井陘口
하야 號
를 二十萬
注+宋白續通典 “鎭州石邑縣有井陘口, 甚險固.” 號二十萬, 兵家之法, 不言實數, 皆增之.이러라
廣武君李左車謂陳餘曰 信耳乘勝遠鬪하니 其鋒을 不可當이라
今井陘之道 車不得方軌하며 騎不得成列하니 其勢糧食이 必在後라
彼前不得鬪하고 退不得還하고 野無所掠이라 不十日而兩將之頭를 可致麾下니
目
不用左車策
注+史漢韓信傳, 嘗, 作常.이어늘 信
이 間視知之
하고 大喜
하야 乃敢遂下
하야
未至井陘口止舍
하고 夜半傳發
注+間視知之, 間諜窺視而得知也. 止舍, 止軍而舍息也. 傳發, 傳令軍中使發兵.하야 選輕騎二千人
호대 人持一赤幟
하야 從間道
하야萆山而望趙軍
注+人馬不帶甲曰輕騎. 萆, 音蔽, 依山以自覆蔽也.하고
令裨將傳餐曰 今日
에 破趙會食
注+餐, 千安切. 小飯曰餐. 謂立駐傳餐, 待破趙後, 當共飽食.이라하고 乃使萬人
으로 先行出背水陳
注+正義 “綿蔓水, 自幷州北流入井陘縣界.” 卽信背水陳處. 陳, 讀曰陣.하니 趙望見
하고 皆大笑
하더라
目
平旦에 信이 建大將旗鼓하고 鼓行出井陘口한대 趙開壁擊之하야
大戰良久러니 於是에 信耳佯棄鼓旗하고 走水上軍하니 趙果空壁逐之어늘
水上軍
이 皆殊死戰
注+殊, 絶也. 殊死, 謂決意必死.하니
趙軍이 已失信等하고 欲歸壁이라가 見幟大驚하야 遂亂遁走어늘 漢兵이 夾擊大破之하야 斬陳餘하고 禽趙王歇하다
兵法에 右倍山陵이요 前左水澤이어늘 今背水而勝은 何也오
陷之死地而後生
하고 置之亡地而後存乎
注+孫子九地 “疾戰則存, 不戰則亡爲死地.” 註曰 “前有高山, 後有大水, 進不得, 退有礙者.”아
且信
이 非得素拊循士大夫也
注+拊, 通作撫. 士大夫, 謂諸軍也.라 所謂驅市人而戰之
注+言如忽入市廛, 驅其人以赴戰, 非素所習練者也.니
非置死地하야 使人自爲戰이면 彼將皆走하리니 尙可得而用之乎아
目
信
이 以千金
으로 募生得李左車者
하야 解其縛
하고 東鄕坐師事之
注+古者以東鄕之位爲尊.하고
問曰 僕
이 欲北攻燕
하고 東伐齊
하노니 何若而有功
注+何若, 猶言何如也.고 左車謝曰 臣
은 敗亡之虜
라
信曰 誠令成安君
으로 聽足下計
면 信
이 亦已禽矣
注+成安君, 卽陳餘也. 地理志 “成安縣在潁川郡, 屬豫州.”라
目
左車曰 將軍이 虜魏王禽夏說하고 不終朝而破趙二十萬衆하야
燕若不服이면 齊必自彊하리니 此는 將軍之所短也니
爲將軍計
컨대 莫若按甲休兵
하야 北首燕路
注+首, 式救切. 頭之所向曰首.하고 而遣辯士
하야 奉書於燕
하야 暴其所長
하면
燕已從而東臨齊하면 雖有智者라도 不知爲齊計矣리라
信
이 從其策
하니 燕
이 從風而靡
注+靡, 音美, 偃也. 東風則草靡而西, 西風則草靡而東, 在風所由而草爲之靡.어늘 遣使報漢
하고 請以張耳
로 王趙
한대 漢王
이 許之
하다
綱
是月晦
에 日食
하다隨何가 英布를 설득하다
目
隨何至九江
하야 說黥布曰 漢王
이 使臣
으로 敬進書大王御者
注+御者, 侍御之人, 猶言執事者.하나니 竊怪大王
이 與楚何親也
오 布曰 寡人
이 北鄕而臣事之
하노라
目
何曰 大王이 與楚로 俱爲諸侯而北鄕臣事之者는 必以楚爲彊하야 可託國也나
項王
이 伐齊
에 身負版築
하야 爲士卒先
注+築, 杵也.하니 大王
이 宜悉衆自將
하야 爲楚前鋒
이어늘 乃發四千人
하야 以助楚
하고
漢入彭城하고 項王이 未出齊也에 大王이 宜悉兵渡淮하야 日夜會戰彭城下어늘 乃無一人渡淮者하고 垂拱而觀其孰勝하니 夫託國於人者도 固若是乎아
大王이 提空名以鄕楚而欲厚自託하니 臣이 竊爲大王不取也하노라
夫楚雖彊
이나 天下負之以不義之名
하니 以其背盟約而殺義帝也
注+負, 猶被也.라
今漢王이 收諸侯守滎陽하니 下蜀漢之粟하야 堅守而不動하고
楚人
은 深入敵國
하야 老弱
이 轉糧
하야 進不得攻
하고 退不得解
하니 楚不如漢
을 其勢亦易見矣
注+自彭城至滎陽成皐, 中間有梁地間之. 彭越時反梁地, 是楚之敵國也.라
大王이 不與萬全之漢而自託於危亡之楚하니 臣이 竊爲大王不取也하노라
目
楚使者在傳舍하야 方急責布發兵이어늘 何直入曰 九江王이 已歸漢하니 楚何以得發兵이리오 因說布하야 殺楚使而攻楚한대
十二月에 至漢이어늘 漢王이 方踞牀洗足하고 召布入見한대 布悔怒欲自殺이러니
布又大喜過望
注+帳御, 謂帷帳及凡服御之具也. 漢王以布先久爲王, 恐其意自尊大, 故峻其禮, 令布折服. 已而美其帷帳, 厚其飮食, 多其從官, 以悅其心, 此權道也.하더라
目
酈食其曰 昔에 湯이 放桀하시고 武王伐紂하사 皆封其後러시니
秦伐諸侯에 滅其社稷하니 今에 誠能立六國後하시면 其君臣百姓이 必皆戴德慕義하야 願爲臣妾하리니
大王
이 南鄕稱霸
하시면 楚必斂衽而朝
注+衽, 衣襟也.하리이다
趣刻印
하야 先生
이 因行佩之矣
注+佩之, 謂授與六國, 使帶也.라
目
未行에 張良이 來謁이어늘 王이 方食이라가 具以告良한대
良曰 臣
이 請借前箸
하야 爲大王籌之
注+求借所食之箸, 就用指畫也.호리이다
休馬放牛
하야 示不復用
하시니 今大王
이 能之乎
注+革者, 兵車也. 軒者, 朱軒‧皮軒也. 謂廢兵車而用乘車, 偃武備而治禮樂也.아
且天下游士離親戚棄墳墓
하고 從大王遊者
는 徒欲望咫尺之地
注+咫, 音紙. 八寸曰咫.어늘 今復立六國後
하시면 游士各歸事其主
하리니 大王
이 誰與取天下乎
시리잇고
且夫楚惟無彊
이니 六國
이 復橈而從之
注+撓, 弱也. 唯當使楚無彊, 彊則六國弱而從之. 一說 “當今唯楚大, 無有彊之者, 若復立六國, 六國皆橈而從之.”면 大王
이 焉得而臣之
시리잇고
漢王
이 輟食吐哺罵曰 豎儒幾敗而公事
랏다 令趣銷印
注+輟, 止也. 哺, 音步, 口中所含食也. 而, 汝也. 而公, 蓋漢王自尊辭.하다
目
夫立策決勝之術이 有三하니 一曰形이요 二曰勢요 三曰情이니
形者는 言其大體得失之數也요 勢者는 言其臨時進退之宜也요 情者는 言其心志可否之實也니
故立六國於陳涉
은 所謂多己之黨而益秦之敵
이니 取非其有而予人
하야 行虛惠而獲實福也
注+初張耳‧陳餘說陳涉, 以復六國, 自爲樹黨.요 立六國於漢王
은 所謂割己之有
하야 以資敵
이니 設虛名而受實禍也
라
故耳餘食其所說同而得失異하니 此는 同事而異形者也요
戰國
이 相持
에 無臨時之急
하니 一戰勝敗未必存亡故
로 累力待時
하야 承敵之斃
하니 此卞莊刺虎之說也
注+史記陳軫傳 “卞莊子欲刺虎, 館豎子止之曰 ‘兩虎方且食牛, 食甘必爭, 爭則必鬪, 鬪則大者傷, 小者死, 從傷而刺之, 一擧必有雙虎之名.’ 卞莊子以爲然, 立須之有頃, 兩虎果鬪, 大者傷, 小者死. 莊子從傷者而刺之, 一擧果有雙虎之功.”라
楚趙與秦이 勢不竝立하야 安危之機呼吸成變而宋義欲待秦趙之斃하니 此는 同事而異勢者也요
伐趙之役
에 韓信泜上孤軍
이 必死無二而趙以內顧之士
로 攻之
注+泜, 音祗, 又丁計‧丁禮二切. 水經註 “泜水卽井陘山水, 世謂之鹿泉水. 東北流, 屈逕陳餘壘, 又東注綿蔓水.”하고
彭城之難에 項羽喪其國都하고 士卒이 憤激而漢이 以怠惰之卒로 應之
故로 俱在水上而勝敗不同하니 此는 同事而異情者也라
故曰 權不可預議요 變不可先圖이니 與時遷移하야 應物變化 此設策之機也니라
綱
夏四月에 楚圍漢王於滎陽이러니 亞父范增이 死하다
目
漢王
이 謂陳平曰 天下紛紛
하니 何時定乎
아 平曰 項王骨鯁之臣
은 亞父鍾離
之屬不過數人耳
注+鯁, 古否切, 魚骨也. 又骨不下咽爲鯁, 以其謇諤難受, 如魚骨之咈咽也. 亞, 次也. 羽尊之次於父, 猶管仲爲仲父. 鍾離, 複姓, (眛)[昩], 音秣, 名也.라
項王爲人이 意忌信讒하니 誠能捐金行間하야 以疑其心하면 破楚必矣리이다
平이 多縱反間하야 言(眜)[昩]等이 功多로대 不得裂地하니 欲與漢滅楚而分其地라한대
目
羽使至漢이어늘 陳平이 爲太牢具하야 擧進이라가 而佯驚曰 吾以爲亞父使也라하고
乃持去而更以惡草具
로 進
注+牛‧羊‧豕具爲太牢. 擧進, 謂擧鼎俎而來也. 更, 平聲. 惡, 麤惡. 草, 草率也.한대
亞父欲急攻下滎陽호대 羽不聽이어늘 亞父怒曰 天下事大定矣니 君王은 自爲之하라
綱
彭越이 擊楚한대 楚還兵擊之어늘 漢王이 復軍成皐하다
目
楚圍滎陽益急
이어늘 漢將軍紀信
이 曰 事急矣
라紀信이 楚나라 군대를 속이다
臣請誑楚
호리라 乃乘王車
하고 出東門曰 食盡
하니 漢王
이 降楚
라한대 楚皆之城東觀
注+之, 往也.이어늘
王이 乃令周苛로 守滎陽而與數十騎로 出西門去하니 羽燒殺信하다
王
이 入關收兵
하야 欲復東
이어늘 轅生
이 曰
注+轅, 姓也. 願君王
은 出武關
하라
羽必南走하리니 王이 深壁勿戰하야 令滎陽成皐間으로 且得休息하고
而韓信等이 亦得安輯趙地하야 連燕齊어든 王이 乃復還滎陽하면 則楚備多而力分하리니
會彭越이 破楚軍殺薛公한대 羽東擊越이어늘 漢王이 復軍成皐하다
綱
六月에 楚가 破彭越하고 還拔滎陽及成皐하니 漢王이 走渡河하야 奪韓信軍하고 遣信擊齊하다
目
項羽旣破彭越
하고 還拔滎陽
하야 烹周苛
하고 遂圍成皐
어늘 漢王
이 逃去
하야 北渡河
하야 宿小脩武
注+逃, 走也. 民逃其上曰潰. 在上曰逃. 晉灼曰 “小脩武在大脩武城東.”하고
晨에 自稱漢使하야 馳入趙壁하니 張耳韓信이 未起어늘 卽臥內하야 奪其印符하고 以麾召諸將하야 易置之하고
目
楚遂拔成皐
하고 欲西
어늘 王
이 欲捐成皐以東而屯鞏洛
하야 以距楚
注+班志 “鞏縣屬河南郡, 卽東周君所居.”러니
酈生이 曰 王者는 以民爲天이니 而民以食爲天하나니
楚拔滎陽에 不堅守敖倉하고 乃引而東하니 此는 天所以資漢也라
願急進兵하야 收取滎陽하야 據敖倉之粟하고 塞成皐之險하며 杜太行之道하고 距蜚狐之口하며 守白馬之津하야
王
이 乃復謀取敖倉
注+蜚, 古飛字. 如淳曰 “蜚狐在代郡西南.” 形制, 謂因地形而據之以制敵.하다
目
韓信之軍이 禁防疏闊이 如此하니 使敵人으로 投間竊發이면 則信을 可得而虜矣리니
豈古所謂有制之兵
은 信亦有所未逮與
인저大角
綱
秋七月
에 有星孛于大角
注+孛, 步內‧蒲沒二切, 彗類. 偏指曰彗. 芒氣四出曰孛. 孛者, 孛孛然, 非常惡氣之所生也. 內不有大亂, 必有大兵. 天下合謀, 暗蔽不明, 有所傷害. 大角, 天王帝坐廷.하다
綱
◑ 八月에 漢王이 軍小脩武하고 遣人燒楚積聚하다
目
引兵臨河
라가 南鄕
注+鄕, 讀曰嚮.하야 欲復與楚戰
이어늘 鄭忠
이 說止
하니
王
이 乃使劉賈盧綰
으로 白馬津入楚地
하야 佐彭越燒楚積聚
하야 以破其業
注+賈, 漢王從父兄也. 積, 子賜切. 聚, 才喩切. 積聚, 所畜軍糧芻藁之屬也.하다
目
彭越이 下梁地十七城하니 項羽聞之하고 使曹咎守成皐하고 戒曰 卽漢이 欲戰이라도 愼勿與戰하라하고 而自引兵東하야 擊越所下城할새
圍外黃數日
에 乃降
注+班志 “外黃縣屬陳留郡.” 張晏曰 “魏郡有內黃, 故加外.”하니 羽欲盡阬之
어늘
外黃令舍人兒年十三
이라 說羽曰
注+舍人, 私屬官號. 稱兒者, 以其幼弱, 故系其父. 彭越
이 彊劫外黃
하니 外黃
이 恐故且降
하야 以待大王
이어늘 今又阬之
면 百姓
이 安所歸心哉
리오
目
諸田이 宗强하고 近楚多詐하니 雖遣數萬之師나 未可以歲月破也니
臣이 請得奉明詔하야 說齊王하야 使爲東藩호리이다 王曰 善타
目
酈生이 乃說齊王曰 王이 知天下之所歸乎아 王曰 不知也로니
生曰 漢王
은 先入咸陽
하고 收天下兵
하야 以責義帝之處
注+羽弑義帝於江中, 不知處所, 故漢王責之.하고
立諸侯之後하야 與天下同其利하니 天下賢才樂爲之用하고
項王
은 有倍約之名
하고 有殺義帝之負
注+背恩忘德曰負.하며 記人之罪
하고 忘人之功
하니 賢才怨之
하야 莫爲之用
하나니
今又已據敖倉하고 塞成皐守白馬距蜚狐하니 天下後服者先亡矣리라
日與生
으로 縱酒爲樂
注+先是, 齊聞韓信且東兵, 使將重兵屯歷下 以距漢.하더라
目
韓信
이 欲東兵
이라가 聞之而止
어늘 蒯徹
이 說曰 將軍
이 受詔擊齊而漢
이 獨發間使下之
하니 寧有詔止將軍乎
注+間使, 謂使人伺間隙而單行.아
且酈生
은 一士
로대 伏軾掉三寸舌
하야 下齊七十餘城
注+伏, 憑也. 軾, 通作式. 掉, 徒釣切, 搖也. 舌, 長三寸, 象斗玉衡.이어늘 將軍
은 以數萬衆
으로 歲餘
에 乃下趙五十城耳
라
이해에 조趙, 대代, 구강九江 세 나라가 망하니, 두 대국大國과 형산衡山, 임강臨江, 연燕, 제齊, 한韓 다섯 소국小國을 합하여 모두 일곱 나라이다.
綱
[綱] 겨울 10월에 한신韓信이 조趙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고 왕 조헐趙歇을 사로잡았으며, 대왕代王 진여陳餘를 목 베고 사신을 보내어 연燕나라를 항복시켰다.
目
[目]
한신韓信과
장이張耳가
조趙나라를 쳤는데
조趙나라가 병사를
정형구井陘口에 모아놓고 호언하기를 20만 대군이라 하였다.
注+에 “진주鎭州 석읍현石邑縣에 정형구井陘口가 있는데 매우 험고하다.”고 하였다. “호이십만號二十萬(20만 대군이라고 호언했다.)”은 병법에서는 실제의 숫자를 말하지 않고 모두 늘려서 말한 것이다.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진여陳餘에게 말하기를 “한신과 장이가 승기를 타고 멀리 와서 싸우니 그 예봉에 맞서서는 안 됩니다.
지금 정형구의 길이 좁아서 수레 두 대가 함께 지나갈 수 없고, 기병이 대오를 이룰 수가 없으니, 형세로 보아 식량을 보급하는 부대는 반드시 후미에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저에게 기병奇兵 3만 명을 빌려주시어 사잇길을 따라가서 보급로를 끊어버리겠습니다.
족하는 해자를 깊이 파고 성채를 높이 쌓아 저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그러면 저들은 앞으로 나아가 싸우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나 돌아가지도 못하며 들에는 노략질할 것이 없으니, 열흘이 되기도 전에 두 장수의 목을 족하의 깃발 아래에 가져다 놓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두 놈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目
[目] 진여陳餘는 일찍이 스스로 의병義兵이라고 칭하며 속임수나 기이한 계책을 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좌거李左車의 계책을 채용하지 않으니,
注+《사기史記》와 《한서漢書》의 〈한신전韓信傳〉에는 상嘗이 상常으로 되어 있다.한신韓信이 정탐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고는 크게 기뻐하여 그대로 과감하게
정형구井陘口로 진군하였다.
정형구에 못 미쳐서 군대를 주둔시키고는 한밤중에 명령을 내려서 공격을 하게 하되
注+“간시지지間視知之”는 간첩이 몰래 엿보아서 안 것이다. “지사止舍”는 군대를 멈추고 머물러 쉬는 것이다. “전발傳發”은 군중에 명령을 전달하여 공격하게 하는 것이다. 날랜 기병 2,000명을 뽑아서 사람마다 붉은 깃발 한 개씩을 가지게 하고 사잇길을 따라가서 산그늘에 몸을 숨기고
조趙나라 군사를 멀리서 살펴보도록 하였다.
注+사람과 말이 갑옷을 착용하지 않은 것을 경기輕騎라고 한다. 폐萆는 음이 폐蔽이니, 산에 의지하여 스스로 엄폐하는 것이다.
“조趙나라의 군사가 성벽을 비우고 우리를 쫓거든 즉시 조趙나라의 성으로 빨리 들어가서 조趙나라의 깃발을 뽑아버리고 가지고 간 깃발로 바꾸라.”
그리고
비장裨將들에게 명하여 간단한 식사를 날라다 군사들을 먹이면서 “오늘
조趙나라를 격파하고 모여서 회식하자.”
注+찬餐은 천안千安의 절切이니, 간단한 식사를 찬餐이라고 한다. 출전하기에 앞서 거마를 세워둔 채로 음식을 보낸 것이니, 조趙나라를 깨뜨리기를 기다린 뒤에 마땅히 함께 포식하자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고는 1만 명의 군사로 하여금 먼저 행군하여 나가서
배수진背水陣을 치게 하니,
注+《사기정의史記正義》에 “면만수綿蔓水는 병주幷州에서 북쪽으로 흘러서 정형현井陘縣의 경계로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즉 한신韓信이 배수진背水陣을 친 곳이다. 진陳은 진陣으로 읽는다.조趙나라가 멀리서 바라보고는 모두 크게 웃었다.
目
[目] 날이 샐 무렵에 한신韓信이 대장大將의 깃발과 북을 세우고 북을 치면서 정형구井陘口로 진출하였는데 조趙나라 군사가 성문을 열고 공격하였다.
큰 싸움이 오래 이어졌는데 이때에 한신韓信과 장이張耳가 거짓으로 북과 깃발을 버리고 강가에 배수진背水陣을 친 곳으로 달아나니, 조趙나라가 과연 성벽을 비우고 따라왔다.
이때 한신이 보낸 기병들이 재빨리 조趙나라의 성으로 들어가서 조趙나라의 깃발을 뽑고 한漢나라의 깃발을 꽂았다.
강가에 배수진을 친 부대는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으므로 죽을 각오로 싸웠다.
注+수殊는 절대로라는 뜻이다. 수사殊死는 반드시 죽기를 각오함을 이른다.
조趙나라 군사는 이미 한신 등을 놓치고, 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한漢나라 깃발이 꽂힌 것을 보고는 대경실색하여 어지럽게 도망가니, 한漢나라 군사가 좌우에서 협공하여 크게 깨뜨렸으며 진여陳餘를 참수하고 조왕趙王 조헐趙歇을 사로잡았다.
, 오늘 강을 등지고 진을 치고도 이긴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죽을 곳에 빠뜨린 뒤에야 살고 망할 곳에 둔 뒤에야 보존하게 된다고.
注+《손자孫子》 〈구지九地〉에 “급히 싸우면 살아남고 싸우지 않으면 죽어서 그 자리가 사지死地가 된다.”라고 하였다. 그 주석에 “앞에는 높은 산이 있고 뒤에는 큰 물이 있어서 앞으로 나갈 수 없고 물러남에 장애가 있는 경우이다.”라고 하였다.
또 내가 평소에 훈련시킨 군사들을 얻은 것이 아니라,
注+부拊(어루만지다)는 무撫와 통용하여 쓰인다. 사대부士大夫란 여러 군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저잣거리의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운다는 것이다.
注+갑자기 저잣거리에 들어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몰아다가 전쟁에 내보낸 것이니 평소에 훈련시킨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죽을 곳에 두어 스스로 싸우게 하지 않았다면 저들이 장차 모두 도망하였을 것이니, 그러고도 내가 그들을 쓸 수가 있었겠는가?”
目
[目]
한신韓信이 천금을 걸고
이좌거李左車를 사로잡게 하였는데, 그를 잡아오자 포박을 풀어주고 동쪽으로 향한 자리에 앉게 하여 스승으로 모셨다.
注+옛날에 동쪽으로 향한 자리를 높은 자리로 삼았다.
한신이 묻기를 “제가 북쪽으로
연燕나라를 공격하고 동쪽으로
제齊나라를 정벌하고자 하니, 어떻게 하면 공을 세우겠습니까?”
注+“하약何若(어찌)”은 하여何如와 같은 말이다.라고 하니, 이좌거가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저는 싸움에 진 포로입니다.
어떻게 큰일을 가늠할 만하겠습니까?”
注+저울이라는 것은 물건을 달아서 무게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신은 “가령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이
족하足下의 계책을 따랐더라면 제가 또한 이미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注+성안군成安君은 바로 진여陳餘이다. 《지리지地理志》에 “성안현成安縣은 영천군潁川郡에 있으며 예주豫州에 속한다.”고 하였다.
지금 제가 마음을 기울여 그 계책을 따르려고 하니 족하께서는 사양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目
[目] 이좌거李左車가 말하기를 “장군은 위왕魏王을 포로로 삼고 하열夏說을 사로잡고 점심도 되기 전에 조趙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였습니다.
그 위세가 천하를 진동하니 이는 장군의 강점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수고롭고 사졸들은 피곤하니 실제로는 쓰기 어렵습니다.
만약 연燕나라가 항복하지 않으면 제齊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강고하게 할 것이니, 이는 장군의 약점입니다.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적의 강점을 치지 않으며, 자신의 강점을 가지고 적의 약점을 칩니다.
이제 장군의 위하여 계책을 내자면, 갑옷을 벗고 무기를 내려놓아
,
注+수首는 식구式救의 절切이니, 머리가 향하는 곳을 수首라고 한다. 말 잘하는 사람을 보내어
국서國書를 받들고
연燕나라로 가서 장군의 강점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연燕나라는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연燕나라가 이미 따르거든 그때 동쪽으로 제齊나라를 압박하면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제齊나라를 위한 계책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싸움이란 먼저 아군의 성세聲勢를 과시하고 뒤에 실력으로 제압한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신이 그 계책을 따르니
연燕나라가 풍문을 듣고서 따르거늘,
注+미靡는 음이 미美이니, 눕는다는 뜻이다. 동풍이 불면 풀이 서쪽으로 눕고, 서풍이 불면 풀이 동쪽으로 누우니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따라 풀이 눕는 것이다. 사신을 파견하여
한漢나라에 보고하고
장이張耳를
조왕趙王으로 삼기를 청하니 한왕이 허락하였다.
綱
[綱] 12월에 수하隨何가 구강왕九江王 경포黥布를 한漢나라에 귀부시켰다.
目
[目]
수하隨何가
구강九江에 이르러서
경포黥布를 설득하기를 “
한왕漢王께서 저를 시켜서 공경히 대왕(
경포黥布)의
어자御者에게 서찰을 올리게 한 것은
注+어자御者는 옆에서 모시는 사람이니 집사執事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마도 대왕이 어떻게
초楚나라와 친한지 괴이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니, 경포가 말하기를, “과인이 북향하여 신하로써
초楚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目
[目] 수하隨何가 말하기를, “대왕大王께서 초楚나라와 함께 제후가 되었으면서도 북향하여 신하로서 섬기는 것은, 분명 초楚나라가 강하여 나라를 의탁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왕項王이
제齊나라를 정벌하였을 때 몸소
을 짊어지고 사졸에 앞장섰으니,
注+축築은 절굿공이이다. 대왕께서 마땅히 모든 사람을 다 동원해서 스스로 장수가 되어
초楚나라의 선봉이 되셨어야 하는데 단지 4,000명을 동원하여
초楚나라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한漢나라가 팽성彭城에 들어가고 항왕이 미처 제齊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을 때, 대왕께서 마땅히 모든 병사를 동원하여 회수淮水를 건너가 밤낮으로 팽성의 아래에서 싸우셨어야 하는데 도리어 한 사람도 회수를 건너지 않고 팔짱을 끼고서 누가 이기는지를 관망하고 있었으니, 무릇 나라를 남에게 의탁한 사람도 정말로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까?
대왕께서 신하라는 헛된 이름을 걸고 초楚나라를 섬기며 스스로 두터이 의탁하고자 하시니, 저는 삼가 대왕을 위하여 그런 계책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초楚나라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한漢나라가 약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저
초楚나라가 비록 강하지만 천하가
초楚나라에게
불의不義하다는 이름을 붙인 것은 맹약을 저버리고
의제義帝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注+부負(씌우다)는 피被와 같다.
이제 한왕漢王께서 제후들을 거두고 형양滎陽을 지켜서, 촉蜀과 한중漢中의 곡식을 내려보내어 굳게 지키며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楚나라 사람은 깊이 적국으로 들어가 늙은이와 어린애까지 양식을 운반하고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도 공격할 수 없고 뒤로 물러나도 벗어날 수 없으니,
초楚나라가
한漢나라만 같지 못한 것을 그 형세상 쉽게 알 수 있습니다.
注+초楚나라 지역은 팽성彭城으로부터 형양滎陽과 성고成皐에 이르렀는데, 그 사이에 양梁 땅이 끼어 있었다. 이는 초楚나라의 적국인 것이다.
대왕께서 매우 안전한 한漢나라와 함께하지 않고 위급하여 망할 초楚나라에 스스로 의탁하니, 저는 삼가 대왕을 위하여 그런 계책은 따르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目
[目] 경포黥布가 속으로 허락하고 감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때 초楚나라 사자가 객사에 머물고 있으면서 바야흐로 경포에게 군사를 출동하기를 급하게 독촉하였는데, 수하隨何가 그대로 들어가서 말하기를, “구강왕九江王이 이미 한漢나라에 귀부하였으니 초楚나라가 어떻게 구강九江의 군사를 출동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고, 이어 경포를 설득하여 초楚나라 사신을 죽이고 초楚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12월에 한漢나라에 도착하니 한왕漢王이 한창 침상에 걸터앉아서 발을 씻다가 경포를 불러서 들어와 보게 하니, 경포가 온 것을 후회하여 분을 참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나와서 객사로 가니 거처, 거마, 음식, 시종이 모두 한왕의 거처와 동일하였다.
경포는 또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
注+“장어帳御”는 휘장 및 모든 입고 쓰는 것들을 말한다. 한왕漢王은 경포黥布가 일찍부터 오랫동안 왕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높은 체하고 큰 체할까 봐 염려하였으므로 예를 엄격히 하여 경포로 하여금 기세를 꺾고 굴복하도록 하였으며, 잠시 뒤에 거처를 화려하게 해주고 음식을 후하게 하며 따르는 관리를 많이 주어서 그 마음을 기껍게 해주었으니 이것은 권도權道이다.
한漢나라가 경포에게 병사를 더해주어 함께
성고成皐에 주둔하였다.
한왕漢王이 침상에 걸터앉아 발을 씻다
綱
[綱] 한漢나라가 역이기酈食其를 보내 육국六國의 후예를 세우려 하다 시행하기 전에 폐기하였다.
目
[目] 초楚나라가 자주 한漢나라의 용도甬道를 침탈하니 한漢나라 군사가 식량이 모자랐다.
역이기酈食其가 말하기를 “옛날에 탕湯임금은 걸桀을 내쫓고 무왕武王은 주紂를 정벌하여 모두 그 후예를 봉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진秦나라가 제후를 정벌하고 사직을 없애버렸으니, 이제 진실로 능히 육국六國의 후예를 세우시면 그 나라의 군신과 백성들이 반드시 덕 있는 대왕을 받들고 의로운 대왕을 흠모하여 모두 폐하의 신첩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남면을 하고
패자霸者를 칭하시면
초楚나라가 반드시 옷깃을 여미고 조회를 할 것입니다.”
注+임衽은 옷깃이다.라고 하였다.
조속히 인장을 새기고 선생이 인하여 가서
육국六國의 후예에게 주어 차게 하도록 하라.”
注+“패지佩之”는 육국六國의 후예에게 주어서 인장을 차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目
[目] 아직 출발하지 않았는데 장량張良이 와서 알현하거늘, 왕이 한창 밥을 먹다가 전후의 내용을 장량한테 말하였다.
장량이 말하기를 “제가 청컨대 앞의 젓가락을 빌려서 대왕을 위하여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注+식사에 쓰고 있는 젓가락을 빌려서 손가락으로 가리켜 뜻을 설명할 때 쓸 것을 요청한 것이다.
옛날에 탕湯임금과 무왕武王이 걸桀과 주紂의 후예를 봉한 것은 능히 그들의 생사生死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왕이 능히 항적項籍의 생사를 제어할 수 있습니까?
무왕이 은殷나라에 들어가서 곡식을 내고 돈을 풀었으며, 전차를 세우고 수레를 탔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동원하는 소와 말들을 방목하여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는데 지금 대왕께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注+혁革은 전차이고, 헌軒은 주헌朱軒이나 피헌皮軒이다. 〈“언혁위헌偃革爲軒(전차를 세우고 수레를 탔다.)”은〉 전쟁에 쓰는 수레를 폐지하고 평시에 타는 수레를 사용하며 무장을 해제하고 예악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천하의 유세하는 선비들이 자신의 친척을 떠나고 조상의 분묘를 버리면서 대왕을 따르는 것은 한갓 한 뼘의 땅이라도 받으려는 기대 때문인데,
注+지咫는 음이 지紙인데 8치를 지咫라고 한다. 지금 다시
육국六國의 후예를 세우시면 유세하는 선비들이 각각 돌아가 자기 나라 임금을 섬길 것이니, 대왕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천하를 취하시겠습니까?
저
초楚나라를 오직 강성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초楚나라가 강성해지면
육국六國이 다시 약해져서
초楚나라를 따르게 될 것이니,
注+요撓는 약하다는 뜻이다. 오직 마땅히 초楚나라로 하여금 강성하지 못하게 해야 하니, 초楚나라가 강성해지면 육국六國이 약해져서 초楚나라를 따르게 된다. 일설에는 “현재 오직 초楚나라가 강대하고 강한 나라가 없으니, 만약 육국六國을 다시 세운다면 육국六國이 모두 약해져서 초나라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대왕께서 어떻게 그들을 신하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의 계책을 채용하신다면 대사가 틀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왕漢王이 식사를 하다가 말고 입속에 든 음식을 뱉고 말하기를 “못난 선비가 하마터면 너의 어른의 일(내 일)을 망쳐먹을 뻔했구나.”라고 하며, 빨리 인장을 녹여버리라고 명하였다.
注+철輟은 그친다는 뜻이다. 포哺는 음이 보步이니 입속에 머금고 있는 음식이다. 이而는 너이다. “이공而公(너의 어른)”은 한왕漢王이 스스로를 높여서 한 말이다.
目
[目]
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注+순열荀悅은 후한後漢의 영천潁川 영음潁陰 사람으로 《한기漢紀》를 저술하였다.
“책략을 세우고 승리를 결정하는 방법이 세 가지 있으니, 첫 번째는 형形이고 두 번째는 세勢이며 세 번째는 정情이다.
형이라는 것은 형세가 어느 정도 유리한지를 말하는 것이고, 세라는 것은 상황에 따른 진퇴의 적정함을 말하는 것이며, 정이라는 것은 마음과 뜻이 옳은지 그른지의 실상을 말하는 것이다.
책략이 동일하고 상황이 같은데도 공이 다른 것은 이 세 가지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뿐이다.
따라서
진섭陳涉에게 있어서
육국六國을 세우는 것은 이른바 나의
당여黨與을 불려서
진秦나라의 적을 보태는 것이니,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져다가 남에게 주어서 명목뿐인 은혜를 베풀어서 실질적인 복록을 얻는 것이고,
注+.한왕漢王에게 있어서
육국六國을 세우는 것은 이른바 내 것을 잘라다가 적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니 헛된 이름을 세워서 실질적인 재앙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장이張耳와 진여陳餘, 역이기酈食其의 주장이 내용은 동일하지만 득실得失은 다르니, 이것은 상황이 동일한데도 형세가 다른 것이다.
전쟁 중인 나라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에는 시각을 다투는 급함은 없으니, 한 번의 싸움에서 승패가 존망에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힘을 비축하고 때를 기다려서 적이 무너지는 것을 받아서 취하니 이것이 바로
가 호랑이 잡듯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注+《사기史記》 〈진진전陳軫傳〉에 “변장자卞莊子가 호랑이를 창으로 찌르려고 하니, 그때 머물던 여관의 심부름하던 아이가 말리면서 말하기를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그 맛을 보면 반드시 혼자서 먹으려고 다툴 것입니다. 다투면 반드시 싸울 것이고, 싸우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입니다. 이때 다친 놈을 찌르면 한 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다는 이름을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변장자가 그럴듯하게 여기고는 서서 잠시 기다리니 정말로 호랑이 두 마리가 싸워서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었다. 이때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서 죽이니, 과연 한 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초楚나라와 조趙나라가 진秦나라와 더불어 세력이 병립할 수 없어서 평안함과 위태로움의 기틀이 호흡하는 사이에 변화가 생기므로 송의宋義가 진秦나라와 조趙나라의 무너짐을 기다리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상황이 동일한데도 세력이 다른 것이다.
조趙나라를 정벌하는 싸움에서
지수泜水를 등지고 있던
한신韓信의 고단한 군대는 죽을 각오로 싸웠으나
조趙나라는 뒤돌아보며 주저하는 군사로 공격하였으며,
注+지泜는 음이 지祗이고 또 정계丁計의 절切과 정례丁禮의 절切이다. 《수경주水經註》에 “지수泜水는 바로 정형산井陘山의 강이니, 세상에서 녹천수鹿泉水라고 부르는 것이다. 동북쪽으로 흘러 진여루陳餘壘를 휘감아 돌아서 다시 동쪽의 면만수綿蔓水로 흘러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팽성彭城의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항우는 자신의 국도國都를 잃고 사졸士卒은 분격憤激하였으나 한漢나라는 나태해진 군사로 대응하였다.
그러므로 두 경우 모두 물가에 있었지만 승패가 같지 않았으니, 이것은 상황이 동일한데도 정情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권도權道는 미리 의논할 수 없고 변화變化는 먼저 도모할 수 없으니, 때에 따라 바뀌어서 사물에 대응하여 변하는 것이 계책을 만드는 기틀이다.’라고 한 것이다.”
綱
[綱] 여름 4월에 초楚나라가 한왕漢王을 형양滎陽에서 포위하였는데, 아보亞父 범증范增이 죽었다.
目
[目]
한왕漢王이
진평陳平에게 말하기를, “천하가 어지러운데 어느 때나 안정이 되겠는가?”라고 하니, 진평이 말하기를, “
항왕項王의 강직한 신하는
아보亞父와
종리말鍾離昩 정도로 몇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注+경鯁은 고행古杏의 절切이니, 생선 가시이다. 또는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것을 경鯁이라고 하는데, 곧고 강직하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마치 생선 가시를 목으로 넘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亞는 버금이다. 항우가 아버지 다음으로 존중한다는 것이니, 관중을 중부仲父라 한 것과 같다. 종리鍾離는 복성複姓이고 말昩은 음이 말秣이니 이름이다.
항왕은 사람됨이 의심이 많고 남의 참소를 잘 믿으니 진실로 황금을 내어 반간反間을 써서 그 마음에 의심이 들게 하면 틀림없이 초楚나라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진평陳平에게 황금 4만 근을 주고 그 돈의 용처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진평이 반간을 많이 풀어서 ‘종리말 등이 공은 많은데 땅을 갈라 가지지 못해서 한漢나라와 더불어 초楚나라를 없애버리고 그 땅을 나누려고 한다.’는 소문을 내게 하였다.
그러자 항우項羽가 과연 종리말 등을 의심하였다.
目
[目] 초楚나라가 급박하게 형양滎陽을 포위하자 한왕漢王이 화해를 청하였다.
이때 항우項羽의 사자들이 한漢나라에 왔는데, 진평陳平이 태뢰太牢의 음식을 갖추어서 들고 들어오다가 거짓으로 놀라며 말하기를 “나는 아보亞父의 사자라고 생각하였다.”라고 하고 그대로 가지고 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쁜 음식을 대강 차려서 올렸다.
注+소, 양, 돼지를 모두 갖춘 것이 태뢰太牢이다. “거진擧進”이란 솥과 도마를 들고서 왔다는 말이다. 경更(다시)은 평성平聲이다. 악惡은 매우 나쁜 것이고, 초草는 엉성하여 볼품이 없는 것이다.
사자가 돌아가 보고하자 항우가 아부를 크게 의심하였다.
아부가 형양을 급히 공격하여 함락하려고 하였지만 항우가 따르지 않자, 아부가 화가 나서 말하기를 “천하의 일이 크게 결정되었으니 왕께서는 스스로 하소서.
원컨대 해골骸骨을 청하여 돌아가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아부가 돌아가다가 팽성彭城에 이르기도 전에 등창이 나서 죽었다.
綱
[綱] 5월에 한왕漢王이 무관武關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팽월彭越이 초楚나라를 공격하자 초楚나라가 군사를 돌려서 공격하거늘 한왕이 다시 성고成皐에 군사를 주둔하였다.
目
[目] 초楚나라가 형양滎陽을 더욱 급박하게 포위하자, 한漢나라 장군 기신紀信이 말하기를 “사세가 급박합니다.
청컨대 제가
초楚나라를 속이겠습니다.”라고 하고, 그대로 왕의 수레를 타고
동문東門으로 나가서 말하기를 “식량이 떨어져서
한왕漢王이
초楚나라에 항복한다.”라고 하니,
초楚나라 군사가 모두 성의 동쪽으로 가서 구경하였다.
注+지之는 간다는 것이다.
왕이 주가周苛를 시켜서 형양을 지키게 하고는 수십의 기병과 함께 서문西門으로 나가 달아나니 항우項羽가 기신을 불태워 죽여버렸다.
왕이
관중關中에 들어가서 병사를 수습하여 다시 동쪽으로 나가려 하자,
원생轅生이
注+원轅은 성이다. “원컨대 왕은
무관武關으로 나가소서.
항우가 반드시 남쪽으로 달려갈 것이니, 이때 왕은 성벽을 높이 쌓고 싸우지 말아서, 형양과 성고의 사이에서 군사들로 하여금 우선 휴식을 하게 하십시오.
한신韓信 등이 또한 조趙나라 땅을 안정시켜서 연燕나라와 제齊나라를 연합하거든, 왕이 곧바로 형양을 회복하시면, 초楚나라는 대비할 대상이 많아서 힘이 분산될 것입니다.
그때 다시 항우와 싸운다면 반드시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대로 따르니 항우가 과연 남쪽으로 내려가자 왕이 더불어 싸우지 않았다.
그때 마침 팽월彭越이 초楚나라 군사를 깨트리고 설공薛公을 죽였는데, 항우가 동쪽으로 팽월을 공격하였으므로 한왕이 다시 성고成皐에 군사를 주둔하였다.
綱
[綱] 6월에 초楚나라가 팽월彭越을 격파하고 돌아와서 형양滎陽과 성고成皐를 함락시키니, 한왕漢王이 도망가서 하수河水를 건너 한신韓信의 군사를 빼앗고 한신을 보내 제齊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目
[目]
항우項羽가 이미
팽월彭越을 격파하고 돌아와서
형양滎陽을 함락시켜
주가周苛를 팽하고 마침내
성고成皐를 포위하자,
한왕漢王이 도망가서 북쪽으로
황하黃河를 건너
소수무小脩武에 묵었다.
注+도逃는 달아난다는 말이다. 백성이 그들의 임금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을 궤潰라고 하고, 임금이 달아나는 것을 도逃라고 한다. 이 말하기를, “소수무小脩武는 대수무성大脩武城의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새벽에 스스로 한漢나라의 사신이라고 칭하고 조趙나라의 성루로 달려 들어가니, 장이張耳와 한신韓信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늘 곧바로 침실로 가서 인신印信과 병부兵符를 빼앗고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서 교체하여 배치하였다.
그리고 장이는 조趙나라를 지키게 하고, 한신은 조趙나라의 병사 중에서 징발하지 않는 자들을 거두어서
目
[目]
초楚나라가 드디어
성고成皐를 함락하고 서쪽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왕이 성고의 동쪽을 포기하고
공락鞏洛에 주둔하여
초楚나라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공현鞏縣은 하남군河南郡에 속해 있으니 곧 동주군東周君이 머물던 곳이다.”고 하였다.
그러자 역이기酈食其가 말하기를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삼습니다.
저 오창敖倉은 천하의 식량이 모이는 곳이 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들으니 그곳에 보관된 곡식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楚나라가 형양滎陽을 함락했으면서도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그대로 병사를 데리고 동쪽으로 향하니, 이는 하늘이 한漢나라에게 주신 것입니다.
원컨대 급히 병사를 진격시켜 형양을 거두어 오창의 곡식을 움켜쥐고 험난한 성고를 요새로 삼으며, 태행太行의 길을 막고 비호蜚狐의 입구에 걸터앉아 백마白馬의 나루를 지켜서,
지리적인 형세로써 천하를 제압할 수 있는 형세를 제후들에게 보여준다면 천하가 돌아갈 곳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다시 오창을 취할 계책을 논의하였다.
注+비蜚는 비飛의 고자古字이다. 이 말하기를, “비호蜚狐는 대군代郡의 서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형제形制”는 지형을 따라서 점거하여 적을 제압한다는 말이다.
目
“한신韓信의 군대가 이처럼 방비를 소홀히 하니, 적으로 하여금 기회를 엿보아 습격하게 하면 한신을 포로로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옛날에 이른바 절도가 있는 군사는 한신도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것인가.”
綱
[綱] 가을 7월에
패성孛星이
에 있었다.
注+패孛는 보내步內의 절切과 포몰蒲沒의 절切이니, 혜성의 종류이다. 불꼬리가 한쪽을 가리키면 혜성彗星이라고 하고, 사방으로 뻗치면 패孛라고 한다. 패라는 것은 비상한 나쁜 기운이 왕성하게 나오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 큰 난리가 없으면 반드시 큰 병란이 있을 것이고, 천하가 함께 모의하니 임금이 어리석어 해를 입을 것이다. 대각大角이란 천자의 조정을 상징한다.
綱
[綱] 8월에 한왕漢王이 소수무小脩武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사람을 보내어 초楚나라의 군량을 불태웠다.
目
[目] 한왕漢王이 한신韓信의 군대를 얻어서 그 위세를 다시 크게 떨쳤다.
병사를 이끌고
황하黃河까지 갔다가, 남쪽으로 가서
注+향鄕(나아가다)은 향嚮이라고 읽는다. 다시
초楚나라와 싸우고자 하거늘,
정충鄭忠이 유세하여 중지하게 하였다.
그러자 왕이
유가劉賈와
노관盧綰으로 하여금
백마진白馬津을 건너
초楚나라 땅으로 들어가도록 하고
팽월彭越을 도와서
초楚나라에서 비축한 군량과 말꼴을 소각하여
초楚나라의 기업을 파괴하도록 하였다.
注+유가劉賈는 한왕漢王의 사촌 형이다. 적積(쌓다)은 자사子賜의 절切이고, 취聚(모으다)는 재유才喩의 절切이다. “적취積聚”는 비축해놓은 군량과 말꼴 따위이다.
綱
[綱] 팽월彭越이 양梁 땅의 17개 성을 함락시켰는데, 초楚나라가 다시 공격하여 빼앗았다.
目
[目] 팽월彭越이 양梁 땅의 17개 성을 함락하니, 항우項羽가 그 소식을 듣고서 조구曹咎에게 성고成皐를 지키게 하고 당부하기를, “한漢나라가 싸우려고 해도 절대 그들과 싸우지 말라.”라고 하고, 스스로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팽월이 함락시켰던 성을 공격하였다.
외황현外黃縣을 포위한 지 며칠 만에야 비로소 항복하니,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외황현外黃縣은 진류군陳留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장안張晏이 이르기를, “위군魏郡에 내황현內黃縣이 있는 까닭에 외황현을 더 설치하였다.” 하고 하였다. 항우가 모조리 묻어 죽이려고 하였다.
외황현
수령守令 사인舍人의 아들이 나이가
였는데 항우를 설득하기를,
注+사인舍人은 사적으로 속해 있는 관리의 호칭이다. 아兒라고 호칭한 것은 어리고 약하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관호官號에 붙인 것이다. “팽월이 외황 사람들을 겁박하니 두려운 까닭에 우선 항복하고서 대왕을 기다렸는데, 이제 또 모두 산 채로 묻어버린다면 백성의 마음이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렇게 하신다면 외황의 동쪽 10여 성을 모두 함락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항우가 그 말을 따르니 양梁 지방이 다시 초楚나라에 붙었다.
綱
[綱] 한왕漢王이 역이기酈食其를 보내어 제齊나라를 설득하여 항복하게 하였다.
目
[目] 역이기酈食其가 한왕漢王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지금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는 이미 평정되었지만, 오직 제齊나라만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여러 전씨田氏들은 종족이 강성하고 초楚나라에 가까우며 속임수가 많으니, 비록 수만의 군사를 보낸다 하더라도 한두 달이나 1년 이내에 격파하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신이 밝으신 임금의 조서를 받들어 제왕齊王을 설득하여 우리의 동쪽 울타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좋다고 허락하였다.
目
[目] 역이기酈食其가 제왕齊王에게 가서 유세하기를, “왕께서는 천하가 어디로 돌아갈지 아십니까?”라고 하자, 왕이 말하기를 “모르겠습니다.
청컨대 어디로 돌아갈지를 묻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역이기가 말하기를 “한漢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다.
역이기가 말하기를 “
한왕漢王은 먼저
함양咸陽에 들어가서 천하의 병사를 거두어들였으며,
의제義帝가 어디에 있는지
항왕項王에게 책망하였습니다.
注+항우項羽가 강 가운데에서 의제義帝를 시해하였는데, 그 시신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므로 한왕漢王이 힐문한 것이다.
그리하여 제후의 후사를 세우고 천하와 그 이익을 함께하니, 천하의 어진 인재들이 한왕에게 쓰이는 것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왕은 약속을 배신했다는 이름과 의제를 죽였다는 배은망덕함을 얻게 되었으며,
注+배은망덕을 부負라고 한다. 남의 죄는 기억해도 남의 공은 잊어버리니 어진 인재들이 그를 원망하여 그에게 쓰이지 않습니다.
이러니 천하의 일이 한왕에게 돌아가리라는 것은 앉아서도 따져볼 수 있습니다.
지금 또 이미 오창敖倉을 점거하고 성고成皐를 요새로 삼아서 백마白馬를 지키고 비호蜚狐를 장악하니, 천하에서 가장 나중에 복속하는 자는 가장 먼저 망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제왕이 그 말을 받아들여 드디어 한漢나라와 화평을 하고 수비하던 병사를 철수시켰다.
그리고 날마다 역이기와 함께 마음껏 술을 마시며 즐겼다.
注+이에 앞서서 제齊나라는 한신韓信이 또 동쪽으로 병력을 움직인다는 소식을 듣고, 장수로 하여금 역하歷下에 주력부대를 주둔하게 하여 한漢나라를 막았다.
目
[目]
한신韓信이 동쪽으로 진군하려다가 그 소식을 듣고는 멈추니,
괴철蒯徹이 설득하기를 “장군이
한왕漢王의 조서를 받고
제齊나라를 공격하는데,
한漢나라가 단독으로
간사間使(
밀사密使)를 보내어
제齊나라를 항복시켰으니 어찌 조서를 내려 장군의 공격을 중지시킨 일이 있었습니까?
注+“간사間使”는 사람을 시켜서 남의 틈을 엿보게 하여 혼자 보내는 것을 말한다.
또 역이기는 일개 선비로되 수레에 기대어 세 치 혀를 놀려서
제齊나라 70여 성을 항복시켰는데,
注+복伏은 기대는 것이고, 식軾(수레의 횡목)은 식式과 통용하여 쓰인다. 도掉는 도조徒釣의 절切인데 흔든다는 뜻이다. 혀는 길이가 3치인데 북두칠성의 자루를 상징한 것이다. 장군은 수만 명의 무리를 가지고 1년여 동안에
조趙나라의 50여 성을 함락시켰을 뿐입니다.
장군이 된 지 몇 년이 되었건만 도리어 일개 풋내기 유자儒者의 공만도 못하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