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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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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年(B.C. 112)
기사년(B.C. 112)
五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정元鼎 5년이다.
冬十月 帝祠五畤하고 하여 以勒邊兵하다
겨울 10월에 황제가 오치五畤에 제사하고 마침내 신진新秦 가운데에서 사냥하여 변방의 군대를 무장하였다.
祠五畤於雍하고 遂踰隴注+隴, 隴阺阪也. 在天水郡隴縣, 其阪九曲. 阺, 丁禮切.하여 西登崆峒注+崆峒, 山名. 唐地理志 “崆峒, 在岷州溢樂縣西, 岷州, 漢臨洮之地.”하고 出蕭關하여 從數萬騎하고 獵新秦中하여 以勒邊兵而歸러니
[目] 땅에서 오치五畤에 제사하고 마침내 농저판隴阺阪(농제판)을 넘어가注+농저판隴阺阪이다. 천수군天水郡 농현隴縣에 있으니, 산비탈이 아홉 번 굽이돈다. 정례丁禮이다. 서쪽으로 공동산崆峒山에 오르고注+공동崆峒은 산 이름이다. 《당서唐書》 〈지리지地理志〉에 “공동산崆峒山민주岷州 일악현溢樂縣 서쪽에 있다. 민주는 나라 임조臨洮의 땅이다.” 하였다. 소관蕭關을 나와 수만 명의 기병을 따르게 하고 신진新秦 가운데에서 사냥하여 변방의 군대를 무장하고 돌아왔다.
新秦中 或千里無亭徼注+旣無亭候, 又不徼循, 無衛邊之備也.어늘 於是 誅北地太守以下하다
신진 지역은 혹 천 리에 걸쳐 정후亭候(적을 정탐하는 곳)와 순찰하는 자가 없었으므로注+정후亭候도 없고 또 변방을 순찰하지 않아서, 변방을 호위하는 대비가 없는 것이다. 이에 북지태수北地太守 이하 등을 처형하였다.
立泰一及五帝祠壇於甘泉하고 十一月朔冬至 親郊見하다
[綱] 태일泰一오제五帝를 제사하는 사단祠壇감천궁甘泉宮에 세우고, 11월 초하루 동지冬至이 친히 교제郊祭에서 알현하였다.
是爲泰畤
[目] 이것을 태치泰畤라 하였다.
自是 三歲 天子一郊見하니라
이로부터 3년마다 천자가 한 번 교제에서 알현하였다.
南越相呂嘉 하고 更立建德爲王하고 發兵反하다
[綱] 남월南越의 정승인 여가呂嘉나라의 사자와 남월왕南越王 조흥趙興을 죽이고, 다시 조건덕趙建德을 세워 으로 삼고 군대를 징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南越王, 王太后 治裝入朝할새 呂嘉數諫弗聽하고 稱病不見漢使者
[目] 남월왕南越王태후太后가 행장을 챙겨 나라로 들어와 조회하려 할 적에 여가呂嘉가 자주 간하여 만류하였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여가는 병을 칭탁하고 나라 사자使者를 만나보지 않았다.
太后欲誅之하여 乃置酒請使者하니 大臣 皆侍坐飮하고 嘉弟爲將하여 將卒居宮外러니
태후가 그를 죽이고자 하여 마침내 술자리를 베풀고 사자를 청하니, 대신들은 모두 모시고 앉아 술을 마셨고, 여가의 아우는 장수가 되어서 병졸을 거느리고 밖에 있었다.
酒行 太后謂嘉曰 南越內屬 國之利也어늘 而相君 苦不便者 何也오하여 以激怒使者로되 使者狐疑相杖하여 遂莫敢發注+杖, 持也, 倚任也. 言使者怯而無決, 故曰狐疑相杖.이라
술이 몇 순배 돌자 태후가 여가에게 “남월南越이 중국에 내속內屬(국내國內의 제후처럼 소속됨)함은 국가의 이익인데, 상군相君이 굳이 불편하게 여김은 어째서인가?”라고 추궁하여 나라 사자使者를 격노하게 하였으나, 사자使者가 겁을 먹고 머뭇거려 서로 바라보기만 하고 끝내 감히 발동하지 못하였다.注+은 지킴이고 의지함이다. 사자使者가 겁을 먹고 결단하지 못하였으므로, “머뭇거려 서로 지켰다.(바라보기만 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嘉見耳目非是하고 卽起而出注+耳目非是, 異於常也, 謂太后與使者耳目, 皆注意於嘉也.이어늘 太后怒하여 欲鏦嘉以矛러니 止太后注+鏦, 楚江切, 以矛戟撞殺之.하니
여가가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심상치 않음을 보고는 즉시 일어나 나가자,注+이목비시耳目非是(이목耳目이 심상치 않다.)”는 평상시와 다른 것이니, 태후太后사자使者이목耳目이 모두 여가呂嘉에게 집중됨을 말한 것이다.태후太后가 노하여 여가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자 하였는데, 이 태후를 만류하였다.注+초강楚江이니, 창으로 쳐서 죽이는 것이다.
嘉遂出하여 介其弟兵하고 就舍稱病하여 陰與大臣謀作亂注+介, 甲也, 謂被甲以自衛也.이러라
여가는 마침내 밖으로 나가서 아우의 군대에 갑옷을 입혀(무장하여) 호위하게 하고, 집으로 가서 병을 칭탁하고는 은밀히 대신과 함께 반란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였다.注+는 갑옷이니, 갑옷을 입혀 스스로 호위함을 이른다.
使壯士韓千秋與太后弟樛樂으로 將二千人하고 往入境注+將二千人往者, 以王‧王太后已附漢, 獨呂嘉爲亂, 不足以興兵也.이러니
[目] 나라에서는 장사壯士 한천추韓千秋로 하여금 태후太后의 아우 규악樛樂(구락)과 함께 2,000명을 거느리고 가서 남월南越의 국경으로 쳐들어가게 하였다.注+병력을 겨우 2천 명을 거느리고 간 것은 태후太后가 이미 나라에 귀부歸附하였고, 오직 여가呂嘉가 반란하였으므로 굳이 군대를 많이 일으킬 것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嘉等 遂反하여 下令國中曰 王 年少하고 太后 中國人也 又與使者亂하여 無顧趙氏社稷하여 爲萬世慮計之意라하여
이에 여가呂嘉 등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고 국중國中에 명령을 내리기를 “은 나이가 어리고, 태후太后는 중국 사람인데다 또 사자使者와 간음하여, 조씨趙氏사직社稷을 돌아보아 만세萬世를 위해 염려하고 계책하는 뜻이 없다.” 하고,
乃攻殺王, 王太后及漢使者하고 立明王長男越妻子建德爲王注+越妻長男名.하다
마침내 (조흥趙興)과 태후太后나라 사자使者를 공격하여 죽이고 명왕明王의 장남으로 나라 아내의 아들인 조건덕趙建德을 세워 으로 삼았다.注+조건덕趙建德은〉 나라 출신의 아내가 낳은 장남長男의 이름이다.
千秋兵하여 破數小邑하니 開道給食注+縱之, 令深入也.이러니
한천추의 군대가 쳐들어가서 몇 개의 작은 성읍城邑을 격파하니, 나라에서 길을 열어주고 양식을 공급하였다.注+〈“개도開道(길을 열어주었다.)”는〉 풀어놓아 깊이 들어오게 한 것이다.
未至番禺四十里 擊滅之하고 函封漢使者節하여 置塞上하고 好爲謾辭謝罪하고 發兵守要害處注+按南康記 “大庾嶺, 名塞上.” 謾辭, 欺詐之謂也.하다
그러나 여가는 나라 군대가 번우番禺(반우)에 도착하기 전 40리 지점에서 이들을 공격하여 궤멸시켰으며, 나라 사자의 을 봉함하여 새상塞上(변경인 대유령大庾嶺 위)에 두고 거짓으로 좋은 말을 하여 사죄하고는 군대를 징발하여 요해처를 지켰다.注+살펴보건대, 에 “대유령大庾嶺새상塞上이라 이른다.” 하였다. “만사謾辭”는 속여서 하는 말(거짓말)을 이른다.
夏四月하다
[綱] 여름 4월에 사면赦免하였다.
◑ 是月晦 日食하다
[綱]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 秋 遣將軍路博德等하여 將兵擊南越하다
[綱] 가을에 장군將軍 노박덕路博德 등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남월南越을 공격하게 하였다.
遣伏波將軍路博德하여 出桂陽注+伏波將軍者, 船涉江海, 欲使波濤伏息也. 班志 “桂陽縣, 屬桂陽郡.”하고 樓船將軍楊僕 出豫章注+時欲擊越, 非水不至, 故作大船, 船上施樓, 號曰樓船.하고 戈船將軍嚴 出零陵注+戈船, 以載干戈名焉. 嚴, 越人, 史失其姓. 零陵, 本屬桂陽, 帝分置郡.하고將軍甲 下蒼梧注+瀨, 音賴, 湍也. 吳越謂之瀨, 中國謂之磧. 甲, 越人, 史失其姓. 蒼梧, 本越地, 帝始置郡.하고 越馳義侯遺 發夜郞兵하여 下䍧柯江注+遺, 越人也, 史失其姓.하여 咸會番禺하다
[目] 복파장군伏波將軍 노박덕路博德을 보내 계양桂陽에서 출동하고,注+복파장군伏波將軍이란 명칭은 배로 강과 바다를 건너갈 적에 파도가 그쳐 잔잔하기를 바란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계양현桂陽縣계양군桂陽郡에 속했다.” 하였다.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예장豫章에서 출동하고,注+이때 남월南越을 공격하고자 하면 수로水路가 아니면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큰 배를 만들고 배 위에 를 설치하고서 이름을 누선樓船이라 하였다.과선장군戈船將軍 영릉零陵에서 출동하고,注+과선戈船은 배에 창과 방패를 장착했다 하여 이름한 것이다. 나라 사람이니, 사서史書에 그의 이 전하지 않는다. 영릉零陵은 본래 계양桂陽에 속하였는데, 무제武帝가 나누어 을 설치하였다.하뢰장군下瀨將軍 창오蒼梧로 내려가고,注+는 음이 이니, 여울이다. 지방에서는 여울을 라 하고, 중국中國에서는 이라 한다. 나라 사람이니, 사서史書에 그의 이 전하지 않는다. 창오蒼梧는 본래 나라 땅인데, 무제武帝가 처음으로 을 설치하였다.나라의 치의후馳義侯 야랑夜郞의 군대를 징발하여 장가강䍧柯江으로 내려가서注+나라 사람이니, 사서史書에 그의 이 전하지 않는다. 모두 번우番禺에서 만나게 하였다.
賜卜式爵關內侯하다
[綱] 복식卜式에게 관내후關內侯관작官爵을 하사하였다.
齊相卜式 上書하여 請父子與齊習船者 往死南越이어늘 詔褒美式하고 賜爵關內侯하고 布告天下호되 天下莫應이러라
[目] 나라의 정승인 복식卜式이 글을 올려 자신의 부자父子가 배를 익숙히 다루는 나라 사람들과 함께 남월南越에 가서 결사적으로 싸울 것을 청하므로, 조령詔令을 내려 복식을 칭찬하고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하사하고 천하에 포고하였으나, 천하에 호응하는 자가 없었다.
[綱] 9월에 (소주燒酒)를 맛볼 적에 열후列侯 106명이 모두 관작을 빼앗기고 승상丞相 조주趙周는 하옥되자 자살하였다.
列侯以百數로되 皆莫求從軍擊越이라
[目] 이때 열후列侯가 100명으로 헤아려졌는데, 종군하여 나라를 공격하겠다고 자청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會九月 嘗酎祭宗廟할새 列侯以令獻金助祭注+酎, 音宙, 正月朝作酒, 八月成, 名曰酎, 酎之言, 醇也. 三重釀之, 味厚, 故以八月薦宗廟而嘗之, 因會諸侯于廟中. 諸侯出金助祭, 所謂酎金也. 令, 律也.러니 少府省金하니 金有輕及色惡者注+省, 視也. 輕, 謂金少, 不如斤兩也.어늘
마침 9월에 종묘宗廟에 제사를 올리고 술(소주)을 맛볼 적에 열후列侯들에게 율령律令에 따라 을 바쳐 제사를 돕게 했는데,注+는 음이 이니, 정월 초하루 아침에 술을 빚어서 8월에 숙성된 것을 라 하는바, (진국)이라는 뜻이다. 삼중三重으로 빚어서 맛이 진하므로 여름인 8월에 종묘宗廟에 올리고서 맛보고, 인하여 제후諸侯들을 종묘 안에 모은 것이다. 제후諸侯을 내어 제사를 돕는 것이 이른바 주금酎金이다. 은 율령이다.소부少府에서 을 살펴보니 의 무게가 가볍거나 색깔이 나쁜 것이 있었다.注+은 살펴본다는 뜻이다. 이 적어서 본래의 근량斤兩과 같지 않음을 말한다.
皆令劾以不敬하여 奪爵者百六人이라
은 이들을 모두 불경죄로 탄핵하게 하여 관작을 빼앗긴 자가 106명이었다.
丞相趙周 坐知列侯酎金輕하여 下獄自殺하다
승상丞相 조주趙周열후列侯들의 주금酎金이 가벼운 것을 알고도 탄핵하지 않은 죄에 걸려 하옥되자 자살하였다.
以石慶爲丞相하다
[綱] 석경石慶승상丞相으로 삼았다.
國家多事 桑弘羊等 致利하고 王溫舒之屬 峻法하고 而兒寬等 推文學하여 皆爲九卿하여更進用事하니 事不關決於丞相이라
[目] 이때 국가國家에 일이 많아서 상홍양桑弘羊 등은 이익을 전담하고 왕온서王溫舒 등은 을 준엄하게 적용하였고, 아관兒寬 등은 문학文學으로 추앙받아 모두 구경九卿이 되어 번갈아 나아가 정사를 하니, 승상丞相에게 일을 아뢰어 결단하지 않았다.
醇謹而已러라
그러므로 석경石慶순후醇厚하고 삼갈 뿐이었다.
[綱] 난대欒大복주伏誅되었다.
大裝爲注+句.하고 入海하여 求其師하고 乃之泰山注+之, 往也. 通鑑 “旣而不敢入海, 之泰山祠.”이어늘 使人隨驗하니 無所見이로되
[目] 난대欒大가 행장을 챙기고注+여기서 를 뗀다. 스승을 찾으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마침내 태산泰山에 갔는데,注+는 간다는 뜻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윽고 감히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태산泰山의 사당으로 갔다.” 하였다.이 사람을 시켜 따라가 징험하게 하니, 〈실제로 신선을〉 만난 바가 없었다.
而大妄言見其師하고 又多不售 坐誣罔하여 腰斬注+售, 音壽, 應當也. 不售者, 無驗也.하다
그러나 난대는 자기 스승을 만나보았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또 방술이 대부분 효험이 없으므로, 군주를 기망한 에 걸려 요참형腰斬刑을 당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응험이 합당한 것이다. “불수不售”란 효험이 없는 것이다.
西羌하다
[綱] 서강西羌이 배반하였다.
역주
역주1 遂獵新秦中 : “‘마침내 사냥하였다.[遂獵]’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올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니, 사냥을 쓴 것이 이때 시작되었다.[書遂獵 何 非事也 書獵始此]” 《書法》
역주2 殺使者及其王興 : “이때 呂嘉가 王과 王의 太后를 공격하여 죽인 뒤에 漢나라 使者까지 죽였는데, 여기에서는 먼저 ‘使者를 죽였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諸侯를 천자국 관원[王人]의 위에 올려놓지 않으려 한 것이니, 《資治通鑑綱目》을 편수한 목적은 명분을 바로잡기 위한 것일 뿐이다.[於是嘉攻殺王王太后 然後及漢使 此其先書殺使者 何 不以諸侯加王人也 綱目之修 名分而已矣]” 《書法》
역주3 南康記 : 南康은 江西省의 地名으로 《南康記》는 이 지역에 대한 地理志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역주4 (賴)[瀨] : 저본에는 ‘賴’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瀨’로 바로잡았다.
역주5 嘗酎……下獄自殺 : “‘南越에게 들어와 조회하도록 타일렀다.’고 쓴 뒤로부터 이에 ‘呂嘉의 반란’을 썼고, 이에 ‘路博德의 공격하는 군대’를 썼고, 이에 ‘卜式을 侯에 봉함’을 썼고, 이에 ‘106명이 관작을 빼앗겼다.’고 썼으니, 武帝의 마음이 더욱 소란스러웠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이것을 자세히 쓴 것은 領土를 확장시키려 멀리 경략함을 경계한 것이다.[自書諭南越入朝 於是書呂嘉之反 於是書路博德之兵 於是書卜式之侯 於是書百有六人之奪爵 帝心益擾擾矣 綱目歷書之 所以戒遠略也]” 《書法》
“列侯로서 하루아침에 관작을 빼앗긴 자가 106명이었으니, 어쩌면 그리도 법을 범한 자가 많았단 말인가. 이때 여러 방면으로 財利를 취하여 자기 고을 사람들을 착취해서 빼앗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그 죄가 있음을 쓰지 않았겠는가?[列侯一旦奪爵者 百有六人 何其犯法之衆邪 是時多方取財利 其邑人獵而奪之耳 不然 何以不書其有罪哉]” 《發明》
역주6 欒大伏誅 : “欒大는 간사한 소인이었는데, 이미 將軍을 제수하고 또 공주를 시집보냈으니, 또한 매우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다. 또 그가 말한 것이 효험이 없자 비로소 주벌하였으니, 너무 늦지 않은가. 난대와 같은 소인은 굳이 말할 것이 없지만 공주를 어찌한단 말인가. 《資治通鑑綱目》에 ‘伏誅’라고 쓴 것은 武帝의 잘못을 나타낸 것이요, 무제가 죄가 있는 자를 주벌했다고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제가 方士에 대해 처음에는 비록 그들에게 기망을 당했으나, 그들의 말한 바가 징험이 없게 되면 또한 往往 잡아서 죽였다. 예컨대 文成將軍 少翁과 같은 무리는 모두 죄가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있었고, 또 무제가 밝게 결단하였다. 아, 이것이 무제라 높여 칭하는 이유일 것이다.[欒大姦僞小人 旣拜爲將軍 又妻以公主 蓋亦可愧之甚矣 又其所言不售 乃始誅之 不亦晩乎 夫小人不足道也 其如公主何哉 書曰伏誅 所以著武帝之失 而非予其能誅有罪也 然帝於方士 始雖爲其所罔 及所言不驗 則亦往往取而戮之 如文成少翁之類 皆在所不赦 而又帝之明斷也 嗚呼 玆其所以稱武帝也歟]” 《發明》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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