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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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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年(169)
기유년己酉年(169)
나라 효령황제 건녕孝靈皇帝 建寧 2년이다. 봄 정월에 신원귀인 동씨愼園貴人 董氏를 높여 효인황후孝仁皇后라 하고, 그 오라비의 아들 동중董重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으로 삼았다.
】 여름 4월에 황제가 앉는 자리 위에 푸른 뱀이 나타나고,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우레가 치고 우박이 내리니, 공경公卿에게 조령詔令을 내려서 정사를 말하게 하였다.
張奐 上疏曰 昔 周公 葬不如禮 天乃動威注+尙書大傳 “周公薨, 成王欲葬之於成周, 天乃雷雨以風, 禾卽盡偃, 大木斯拔, 國人大恐. 王葬周公於畢, 示不敢臣也.”하니이다 今武, 蕃忠貞 未被明宥하니 妖眚之來 皆爲此也注+爲, 去聲, 下急爲同.
장환張奐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옛날 주공周公의 장례를 에 맞지 않게 하자, 하늘이 마침내 노하여 위엄을 보였습니다.注+상서대전尙書大傳≫에 “주공周公하자 성왕成王이 그를 성주成周(낙양洛陽)에 장례하고자 하였는데, 하늘에서 우레가 치고 비가 내리면서 바람이 불어서 벼가 모두 다 쓰러지고 큰 나무가 뽑히니, 국인國人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이에 왕이 주공周公 땅에 장례하니, 감히 신하로 삼지 못함을 보인 것이다.” 하였다. 지금 충성스럽고 올곧은 두무竇武진번陳蕃이 밝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요망한 재앙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注+(때문이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 ‘급위急爲’의 도 같다.
宜急爲改葬하고 徙還家屬하며 其從坐禁錮 一切蠲除니이다 又皇太后 雖居南宮이나 而恩禮不接하니 宜思大義顧復之報니이다
마땅히 급히 이들을 위해 개장改葬을 하고 유배된 가속家屬들을 옮겨 돌아오게 하며, 연좌되어 금고禁錮된 자들을 모두 방면해주어야 합니다. 또 황태후皇太后가 비록 남궁南宮에 거처하고 계시나 황제의 은덕과 예우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니, 마땅히 대의大義에 따라 에 보답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深嘉其言이로되 而爲宦者所制하여 不得從也하다 又與尙書劉猛等으로 共薦王暢, 李膺 可參三公之選이라한대
은 그 말을 매우 가상하게 여겼으나 환관들에게 제재를 당하여 따르지 못하였다. 장환이 또다시 상서 유맹尙書 劉猛 등과 함께 왕창王暢이응李膺삼공三公의 선임에 참여할 만하다고 천거하자,
節等 疾其言하여 遂下詔切責之하니 皆自囚廷尉하여 數日得出하고 以俸贖罪하다
조절曹節 등은 그의 말을 미워해서 마침내 〈황제로 하여금〉 조령詔令을 내려 매우 꾸짖게 하였다. 이에 장환 등은 모두 스스로 정위廷尉의 옥에 갇혔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야 석방되고 봉급으로 속죄贖罪하였다.
郞中謝弼 上封事曰 皇太后幽隔空宮하니 如有霧露之疾이면 陛下當何面目以見天下리잇가
낭중 사필郞中 謝弼이 다음과 같이 봉사封事를 올렸다. “황태후皇太后가 빈 궁궐에 유폐되어 있으니, 만약 안개와 이슬로 인하여 병이 생기시면 폐하陛下께서 무슨 면목으로 천하 사람들을 보시겠습니까.
孝和皇帝不絶竇氏之恩하시니 前世以爲美談하니이다 爲人後者 爲之子
효화황제孝和皇帝가 자신을 양육해준 두씨竇氏(두태후)의 은혜를 끊지 않으니, 전대前代에 이것을 미담美談으로 여겼습니다. 에 남의 양자가 된 자는 그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今以桓帝爲父하시니 豈得不以太后爲母哉리오 台宰重器 國命所繫
지금 환제桓帝를 아버지로 삼으셨으니, 어찌 태후太后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태재台宰(재상宰相)의 지위를 맡은 중신重臣은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는 사람입니다.
今之四公 惟劉寵 斷斷守善注+四公, 謂太尉․司徒․司空․太傅也. 斷斷, 誠一之貌.하고 餘皆素餐致寇之人이니 必有折足覆餗之凶注+詩曰 “不素兮.” 易曰 “負且乘, 致寇至.” 又曰 “鼎折足, 覆公餗.”이라
지금 사공四公 중에 오직 유총劉寵만이 정성스럽고 한결같이 을 지키고注+사공四公”은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 태부太傅를 이른다. “단단斷斷”은 성실하고 한결같은 모양이다., 나머지는 모두 공밥만 먹고 도둑을 불러오는 사람이니, 반드시 이 있을 것입니다.注+시경詩經≫ 〈위풍 벌단魏風 伐檀〉에 이르기를 “공밥을 먹지 않는다.” 하였고, ≪주역周易 하였고, 또 정괘 구사효사鼎卦 九四爻辭에 이르기를 “솥이 발이 부러져 공상公上에게 바칠 음식을 뒤엎었다.” 하였다.
可因災異하여 幷皆罷黜하고 徵王暢, 李膺하여 幷居政事하면 庶災變可消 國祚惟永이리이다
이번의 재이災異를 빌미로 모두 파면하여 내치고, 왕창王暢이응李膺을 불러와서 함께 정사政事에 참여하게 하면, 거의 재변災變이 사라지고 국운國運이 영원할 것입니다.”
左右惡之하여 以他罪收弼하여 掠死于獄하다
좌우左右의 측근들이 그의 말을 미워하여, 다른 죄로 사필을 체포해서 고문하다가 옥중에서 죽게 하였다.
光祿勳楊賜曰 王者心有所想이면 雖未形顔色이나 而五星 以之推移하고 陰陽 爲其變度하니이다
광록훈 양사光祿勳 楊賜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자王者는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비록 얼굴빛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오성五星이 이 때문에 자리를 옮겨가고 음양陰陽이 그 도수度數를 바꿉니다.
夫皇極不建이면 則有龍蛇之孽이라 詩云 惟虺惟蛇 女子之祥注+龍蛇, 陰類也. 孽, 本作蠥, 禽獸蟲蝗之怪, 謂之蠥.이라하니 惟陛下 思乾剛之道하고 別內外之宜하며
황극皇極이 제대로 서지 못하면 용과 뱀의 재앙이 있습니다. ≪시경詩經≫ 〈소아 사간小雅 斯干〉에 이르기를 “구렁이와 뱀은 여자를 낳을 상서祥瑞이다.”注+용과 뱀은 이다. 은 본래 로 되어 있으니, 새와 짐승과 벌레의 괴이함을 이라 이른다. 하였으니, 폐하陛下께서는 건강乾剛를 생각하고 내외內外의 마땅함을 분별하시며,
抑皇甫之權하고 割艶妻之愛하시면 則蛇變可消 禎祥立應注+詩云 “皇甫卿士.” 又云 “豔妻煽方處.” 傳 “皇甫位卑而權重. 豔妻, 卽褒姒也. 言小人用事, 而嬖妾蠱惑王心, 以爲主之也.”하리이다 秉之子也
의 권세를 억제하고 처첩妻妾에 대한 사랑을 끊으시면, 뱀의 변고가 반드시 사라지고 좋은 상서가 당장 응할 것입니다.”注+시경詩經≫ 〈소아 시월지교小雅 十月之交〉에 이르기를 “황보皇甫경사卿士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염처豔妻(요염한 아내)가 치성하여 그대로 거처하고 있다.” 하였는데, ≪집전集傳≫에 “황보皇甫는 지위가 낮으면서 권력이 무거웠다. 이다. 소인小人이 권력을 행사하고 총애하는 첩이 왕의 마음을 고혹하여 주장이 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양사는 양병楊秉의 아들이다.
六月 以劉囂爲司空하다
】 6월에 유효劉囂(유효)를 사공司空으로 삼았다.
囂素附諸常侍 致位公輔하다
유효劉囂가 평소 상시常侍들에게 아부하였으므로 공보公輔의 지위에 올랐다.
秋七月 段熲 大破東羌平之하니 封熲爲新豐侯하다
】 가을 7월에 단경段熲동강東羌대파大破하여 평정하니, 단경을 신풍후新豐侯로 봉하였다.
詔遣謁者馮禪하여 說降漢陽散羌하니 段熲 以羌雖暫降이나 必復爲盜 不如乘虛放兵이니 勢必殄滅注+放兵, 謂縱兵擊羌也.이라하고
조령詔令을 내려 알자 풍선謁者 馮禪을 보내 한양漢陽에 흩어져 있는 강족羌族들을 설득하여 항복하게 하니, 단경段熲은 생각하기를 ‘강족羌族들이 비록 잠시 항복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도둑질을 할 것이다. 그들이 허약한 틈을 타서 군대를 풀어 공격하는 것만 못하니, 형세가 반드시 강족羌族을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注+방병放兵”은 군대를 풀어 강족羌族을 공격함을 이른다. 하고는,
於是 進營하여 去羌所屯四五十里하고 遣田晏, 夏育하여 將五千人하여 先進擊破之하다
이에 전진하여 강족이 주둔하고 있는 4, 50리 거리에 진영을 설치하고, 전안田晏하육夏育을 보내 5,0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동하여 적을 격파하게 하였다.
羌衆 東犇射虎谷하여 分兵守谷上下門注+射虎谷, 在西縣東北.이어늘 規一擧滅之하여 不欲復令散走하여
강족의 무리가 동쪽 사호곡射虎谷으로 도망하여 군대를 나누어 골짜기의 위아래 입구를 지키자注+사호곡射虎谷서현西縣의 동북쪽에 있다., 단경은 일거에 멸망시켜서 다시는 흩어져 달아나지 못하게 하고자 하였다.
遣千人於西縣하여 結木爲柵호되 廣二十步 長四十里하여 遮之注+西縣, 前漢屬隴西郡, 後漢屬漢陽郡.하고
그리하여 병사 1,000명을 서현西縣으로 보내 나무를 묶어 너비 20, 길이 40목책木柵을 만들어 강족을 막게 하였다.注+서현西縣전한前漢에는 농서군隴西郡에 속하였는데, 후한後漢에는 한양군漢陽郡에 속하였다.
分遣晏, 育等하여 將七千人하여 銜枚하고 夜上西山하여 結營穿塹호되 去虜一里許하고
그리고 전안과 하육 등을 나누어 보내 7,000명의 병력에게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밤에 서쪽 산으로 올라가서 진영을 만들고 참호를 파게 하였는데, 오랑캐 진영과 1리쯤 떨어지게 하였다.
又遣張愷하여 將三千人하여 上東山하니 虜乃覺之러라
장개張愷를 보내 3,0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서 동쪽 산으로 올라가게 하니, 오랑캐가 그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因與愷等으로 挾東西山하여 縱兵奮擊하고 追至谷上下門하여 窮山深谷之中 處處破之하고 斬其渠帥以下萬九千級하다
단경段熲이 인하여 장개張愷 등과 동쪽 산과 서쪽 산을 끼고서 군대를 풀어 맹공을 가하고 골짜기 위아래 입구까지 추격하여 궁벽한 산과 깊은 골짜기 곳곳마다 격파하고, 그 거수渠帥(수령首領) 이하 19,000명의 수급을 베었다.
馮禪等所招降四千人 分置安定, 漢陽, 隴西三郡하니 於是 東羌 悉平하다
풍선馮禪 등이 불러 항복시킨 4,000명을 안정安定, 한양漢陽, 농서隴西에 나누어 배치하니, 이에 동강東羌이 모두 평정되었다.
凡百八十戰 斬三萬八千餘級하고 獲雜畜四十二萬四千餘頭하니
단경段熲이 모두 180차례를 싸워 38,000여 명의 수급을 베고 여러 가축 42만 4천여 마리를 노획하였는데,
費用四十四億이요 軍士死者 四百餘人이러라 更封新豐縣侯하고 邑萬戶하다
여기에 소비된 비용이 44억 이고 병사 중에 죽은 자가 400여 명이었다. 이에 단경을 다시 신풍현후新豐縣侯로 봉하고 10,000식읍食邑을 더하였다.
司馬公曰 蠻夷戎狄 氣類雖殊 其就利避害하고 樂生惡死 亦與人同耳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만이蠻夷융적戎狄기류氣類가 비록 다르나, 이익에 나아가고 해로움을 피하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또한 보통 사람(나라 사람)과 똑같다.
御之得其道則附順服從하고 失其道則離叛侵擾 固其宜也
이들을 어거함에 옳은 방도를 얻으면 순히 귀의하여 복종하며, 옳은 방도를 잃으면 이반하고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진실로 당연하다.
是以 先王之政 叛則討之하고 服則懷之하여 處之四裔하여 不使亂禮義之邦而已
이 때문에 선왕先王의 정사에는 배반하면 토벌하고 복종하면 회유하여 사예四裔(네 변방)에 거처하게 해서 예의禮義의 나라를 어지럽히지 않게 했을 뿐이다.
若不分臧否하고 不辨去來하고 悉艾殺之하면 豈作民父母之意哉注+艾, 讀曰刈.리오
만약 을 구분하지 않으며 순종하여 오고 배반하여 가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서 모두 베어 죽인다면, 어찌 이것이 백성의 부모父母가 된 뜻이겠는가.注+(베다)는 로 읽는다.
且夫羌之所以叛者 爲郡縣所侵寃故也注+侵寃者, 爲所侵刻而銜寃. 叛而不卽誅者 將帥非其人故也
강족羌族들이 배반하는 이유는 군현郡縣에서 억울하게 침탈을 당했기 때문이요注+침원侵寃”은 침탈을 당하여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다., 배반을 하는데도 즉시 주벌하지 못하는 것은 장수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苟使良將 驅而出之塞外하고 擇良吏而牧之 則疆埸之臣也注+埸, 音亦, 疆埸, 邊境也. 豈得專以多殺爲快邪
만일 훌륭한 장수가 이들을 몰아 변방 밖으로 내보내고 어진 수령을 가려 이들을 다스렸다면, 이들 또한 강역疆埸(변방)의 신하가 되었을 것이니注+(변경)은 이니, 강역疆埸변경邊境이다., 어찌 오로지 많이 죽이는 것을 통쾌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夫御之不得其道 雖華夏之民이라도 亦將蠭起而爲寇리니 又可盡誅耶
어거함에 옳은 방도를 얻지 못하면 비록 화하華夏의 백성들이라도 장차 봉기하여 도둑질을 할 것이니, 또 어찌 다 죽일 수 있겠는가.
然則段紀明之爲將하여 雖克捷有功이나 君子所不與也注+紀明, 熲字.니라
그렇다면 단기명段紀明(단경段熲)이 장수가 되어서 비록 승리하여 공이 있었으나, 군자가 인정하지 않는 바이다.”注+기명紀明단경段熲이다.
九月 江夏蠻이어늘 州郡 討平之하다
】 9월에 강하江夏이 배반하자, 주군州郡이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丹陽山越이어늘 郡兵 擊破之注+山越, 本亦越人, 依阻山險, 不納王租, 故曰山越.하다
단양丹陽산월山越이 배반하자 의 군대가 격파하였다.注+산월山越 또한 본래 나라 사람인데, 산의 험함을 믿고서 (천자)의 조세를 바치지 않았으므로 산월山越이라 한 것이다.
】 겨울 10월에 다시 구당鉤黨(당여黨與를 끌어모은 것)을 한 자들을 다스려서 전 사례교위前 司隷校尉 이응李膺 등 100여 명을 죽였다.
李膺等 雖廢錮 天下士大夫 皆高尙其道而汙穢朝廷하고 更相標榜하여 爲之稱號注+汙穢朝廷, 謂以朝廷爲汙穢也. 立表以示人曰標, 揭書以示人曰榜. 標榜, 猶言表揭也.
】 처음에, 이응李膺 등이 비록 폐출되어 금고禁錮되었으나 천하의 사대부士大夫가 모두 그들의 를 고상하게 여기고 조정朝廷을 더럽게 여겼으며, 그들은 번갈아 서로 표방標榜해서 각자에게 칭호稱號를 부여하였다.注+오예조정汙穢朝廷은” 조정朝廷을 더럽다고 여기는 것을 이른다. 를 세워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라 하고, 글을 써 붙여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이라 하니, 표방標榜표게表揭라는 말과 같다.
以竇武, 陳蕃, 劉淑爲三君하니 君者 言一世之所宗也 李膺, 荀昱, 杜密, 王暢, 劉祐, 魏朗, 趙典, 朱㝢爲八俊하니
그리하여 두무竇武진번陳蕃, 유숙劉淑삼군三君이라 하였으니 은 한 세상이 높이는 자를 말한 것이요, 이응李膺, 순욱荀昱(순욱), 두밀杜密, 왕창王暢, 유우劉祐, 위랑魏朗, 조전趙典, 주우朱㝢팔준八俊이라 하였으니
俊者 言人之英也 郭泰, 范滂, 尹勳, 巴肅, 宗慈, 夏馥, 蔡衍, 羊陟爲八顧하니 顧者 言能以德行引人者也
은 사람 중에 영준英俊한 자를 말한 것이요, 곽태郭泰, 범방范滂, 윤훈尹勳, 파숙巴肅, 종자宗慈, 하복夏馥, 채연蔡衍, 양척羊陟팔고八顧라 하였으니 덕행德行으로 남을 인도할 수 있는 자를 말한 것이요,
張儉, 翟超, 岑晊, 苑康, 劉表, 陳翔, 孔昱, 檀敷爲八及하니 及者 言其能導人追宗者也注+表, 景帝子魯恭王之後也. 導, 引也. 宗, 謂所宗仰者.
장검張儉, 적초翟超, 잠질岑晊(잠질), 원강苑康, 유표劉表, 진상陳翔, 공욱孔昱(공욱), 단부檀敷팔급八及이라 하였으니 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현자賢者를〉 따르고 높이게 할 수 있는 자를 말한 것이요注+유표劉表경제景帝의 아들인 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이다. 는 인도함이다. 은 높이고 우러르는 자를 이른다.,
度尙, 張邈, 王孝, 劉儒, 胡毋班, 秦周, 蕃嚮, 王章爲八廚하니 廚者 言能以財救人者也注+毋, 音無. 胡毋, 複姓. 蕃, 音皮, 姓也.
도상度尙, 장막張邈, 왕효王孝, 유유劉儒, 호무반胡毋班, 진주秦周, 번향蕃嚮, 왕장王章팔주八廚라 하였으니 는 재물을 가지고 남을 구원할 수 있는 자를 말한 것이다.注+이니 호무胡毋복성複姓이다. 이니 이다.
及陳, 竇用事 復擧拔膺等이러니 陳, 竇誅 膺等 復廢하다
진번과 두무가 권력을 잡게 되자 다시 이응 등을 천거하여 선발하였는데, 진번과 두무가 죽임을 당하자 이응 등이 다시 폐출되었다.
宦官 疾惡膺等하여 每下詔書 輒申黨人之禁하고 侯覽 怨張儉尤甚이러니
】 환관들은 이응李膺 등을 몹시 미워하여, 매번 황제가 조서詔書를 내릴 때마다 번번이 당인黨人에 대한 금령禁令을 거듭하게 하였다. 후람侯覽장검張儉을 더욱 심하게 원망하였는데,
覽鄕人朱幷 上書告儉 與同鄕二十四人으로 別相署號하여 共爲部黨하여 圖危社稷이라한대 詔刊章捕儉等注+刊, 削也. 不欲宣露幷名, 故削除之, 而直捕儉等. 集覽 “刊章, 印行之文, 如今板榜.”하다
후람의 고향 사람인 주병朱幷이 글을 올려 “장검이 동향同鄕 사람 24명과 특별히 서로 칭호를 만들어 부르고 함께 부당部黨(붕당)을 해서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할 것을 도모한다.”라고 고발하였다. 이에 조령詔令을 내려 글에서 〈상서上書한 사람(주병)의〉 이름을 삭제하고서 장검 등을 체포하게 하였다.注+은 삭제함이니, 〈상서上書한 사람의〉 이름을 함께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삭제하고, 장검張儉 등만을 체포한 것이다. 에는 “간장刊章은 인쇄하여 돌리는 글이니, 지금의 판방板榜과 같다.” 하였다.
十月 曹節 諷有司하여 奏諸鉤黨者虞放, 李膺, 杜密, 朱㝢, 荀昱, 翟超, 劉儒, 范滂等하여 請下州郡考治하니
】 10월에 조절曹節유사有司에게 넌지시 말하여 우방虞放, 이응李膺, 두밀杜密, 주우朱㝢, 순욱荀昱, 적초翟超, 유유劉儒, 범방范滂구당鉤黨을 한 자들을 아뢰어 주군州郡에 내려 조사하여 치죄治罪할 것을 청하였다.
是時 上年十四 問節等曰 黨人 何用爲惡而欲誅之邪 對曰 相擧群輩하여 欲爲不軌니이다
이때 의 나이가 14세였는데, 조절 등에게 묻기를 “당인黨人들이 무슨 나쁜 짓을 하기에 죽이려 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그들은 서로 자기 무리들을 천거하여 불궤不軌를 하려고 합니다.” 하였다.
上曰 不軌欲如何 對曰 欲圖社稷이니이다 乃可其奏注+軌, 法度也. 君君臣臣, 所謂法也. 爲人臣而欲圖危社稷, 謂之不法, 誠是也, 而諸閹以此罪加之君子, 帝不之悟.하다
이 말하기를 “불궤不軌는 어찌 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사직社稷(황제)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니, 이 비로소 아뢴 대로 할 것을 허락하였다.注+법도法度이니, 임금은 임금 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 하는 것이 이른바 이라는 것이다. 신하가 되어서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할 것을 도모하려 하는 것을 불법不法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로 옳지만, 여러 환관들이 이 죄를 군자君子에게 덮어씌우는데도 황제가 깨닫지 못하였다.
謂李膺曰 可去矣로다 對曰 事不辭難하고 罪不逃刑 臣之節也注+左傳 “事君不辟難, 有罪不逃刑.”
】 혹자가 이응李膺에게 이르기를 “도망갈 만합니다.” 하자, 이응은 대답하기를 “군주를 섬길 적에 어려운 일을 사양하지 않고 죄가 있을 적에 형벌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의 절개이다.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3년에 “군주를 섬길 때에는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죄가 있을 때에는 형벌을 피하지 않는다.” 하였다.
吾年已六十이요 死生有命하니 去將安之리오하고 乃詣詔獄考死하니 門生故吏 幷被禁錮하다
내 나이가 이미 60이 되었고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려 있으니, 도망가면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조옥詔獄에 나아가 고문을 받다가 죽으니, 문생門生과 예전의 부하들이 모두 금고禁錮를 당하였다.
侍御史景毅子顧 爲膺門徒러니 未有錄牒하여 不及於譴注+錄, 記也. 牒, 籍也. 時聚徒敎授, 多者以千計, 各錄記其姓名於譜牒.이라
시어사 경의侍御史 景毅의 아들 경고景顧가 이응의 문도門徒였는데 문도를 기록한 보첩譜牒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아니하여 견책譴責을 받지 않았다.注+은 기록이고, 은 문서이다. 이때 문도를 모아 가르쳐서 많은 경우에는 1,000명으로 헤아려졌는데, 각각 그 성명을 보첩譜牒에 기록하였다.
毅慨然曰 本謂膺賢하여 遣子師之하니 豈可以漏脫名籍으로 苟安而已리오하고 遂自表免歸하다
경의는 서글퍼하며 말하기를 “본래 이응이 어질다고 생각해서 아들을 보내어 사사師事하게 하였는데, 어찌 명적名籍에서 빠져 있다 하여 구차히 편안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표문을 올려 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汝南督郵吳導 受詔捕范滂하여 至征羌하여 抱詔書하고 閉傳舍하여 伏牀而泣하니 一縣 不知所爲注+征羌縣, 屬汝南郡.러니
여남汝南독우督郵오도吳導범방范滂 등을 체포하라는 조서詔書를 받고 정강현征羌縣에 이르렀으나, 조서詔書를 안고 객사客舍의 문을 닫고는 에 엎드려 우니, 온 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注+정강현征羌縣여남군汝南郡에 속하였다.
聞之하고 曰 必爲我也라하고 卽自詣獄注+爲, 去聲, 下私爲同.하다 縣令郭揖 大驚하여 出解印綬하고 引與俱亡曰 天下大矣 子何爲在此
범방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반드시 나 때문일 것이다.” 하고는 즉시 스스로 옥에 나아갔다.注+(위하다, 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니, 아래 “사위私爲”의 도 같다. 현령 곽읍縣令 郭揖이 크게 놀라서 나와 자신의 인수印綬를 풀고 범방을 붙들고 함께 도망할 것을 권하여 말하기를 “천하가 큰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는가?” 하니,
滂曰 滂死則禍塞이니 何敢以罪累君하고 又令老母流離乎아하다
범방이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화가 끝날 것인데, 어찌 감히 나의 죄로 그대에게 누를 끼치며 또 노모老母로 하여금 유리流離하게 하겠는가.” 하였다.
其母就與之訣할새 曰 汝今得與李, 杜齊名하니 死亦何恨注+李杜, 謂李膺․杜密.이리오 跪受敎再拜而辭하다
범방의 어머니가 와서 범방과 영결할 적에 “네가 이제 이응李膺, 두밀杜密과 명성이 나란하니, 내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注+이두李杜”는 이응李膺두밀杜密을 이른다. 하니, 범방이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받고는 재배再拜하고 하직하였다.
凡黨人死者 百餘人이요 妻子皆徙邊하고 天下豪傑及儒學有行義者 宦官 一切指爲黨人하니
】 무릇 당인黨人으로서 죽은 자가 100여 명이고 처자식이 모두 변경으로 귀양 갔으며, 천하의 호걸豪傑과 훌륭한 행실이 있는 유학자儒學者를 환관들이 모두 지목하여 당인黨人이라고 하였다.
有怨隙者 因相陷害하여 睚眦之忿 濫入黨中하다 或有未嘗交關禍毒하여 其死徙廢禁者 又六七百人注+廢禁, 謂廢棄而禁錮.이러라
이에 원망과 틈이 있는 자들이 인하여 서로 모함하고 해쳐서 눈 한번 흘긴 데서 생긴 작은 원한이 지나쳐 당인黨人으로 몰아넣기도 하였다. 또 혹은 일찍이 이들과 사귄 적이 없는데도 화독禍毒에 걸려서 죽거나 귀양 가거나 폐출되어 금고禁錮된 자가 또 6, 7백 명이었다.注+폐금廢禁”은 폐기廢棄하여 금고禁錮함을 이른다.
郭泰聞之하고 私爲之慟曰 詩云 人之云亡 邦國 殄瘁라하니 漢室 滅矣로다
곽태郭泰가 〈당인黨人들이 화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내심 애통해하기를 “≪시경詩經≫ 〈대아 첨앙大雅 瞻卬(첨앙)〉에 ‘훌륭한 사람이 다 죽으니 나라가 병들도다.’ 하였으니,
但未知瞻烏爰止于誰之屋耳로다 泰雖好臧否而不爲危言覈論이라 能處濁世而怨禍不及焉注+覈, 謂深探其實也, 刻覈也.하다
다만 저 까마귀를 보건대 누구의 집에 앉을지를 알지 못할 뿐이다.” 하였다. 곽태는 비록 인물을 평하기를 좋아하였으나 강직한 말과 각박한 의논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혼탁한 세상에 처해서도 원망과 를 피할 수 있었다.注+은 그 실제를 깊이 탐구함을 이르니, 각박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張儉 亡命困迫하여 望門投止注+窘迫之中, 見門, 卽投歸而止宿, 求隱匿也.하니 莫不重其名行하여 破家相容注+寧破壞其家業, 而容隱張儉.이러라
장검張儉망명亡命할 적에 곤궁하고 급박하여 남의 집 문을 바라보고는 뛰어들어가 유숙留宿을 청하였는데注+〈“망문투지望門投止”는〉 곤궁하고 급박한 가운데 남의 집 문을 보고는 즉시 들어가 유숙하면서 숨겨주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명망과 행실을 소중히 여겨서 집안을 망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용납해주었다.注+〈“파가상용破家相容”은〉 차라리 가업家業을 망칠지언정 장검張儉을 용납하여 숨겨준 것이다.
流轉東萊라가 止李篤家하니 (外)黃令毛欽 操兵到門注+考兩漢志, 外黃縣屬東留郡, 黃縣屬東萊郡. 毛欽, 蓋爲黃縣令, 外字衍.이어늘
뒤에 동래東萊 지방을 떠돌다가 이독李篤의 집안에 유숙하였는데, 황령 모흠黃令 毛欽이 병기를 들고 문에 이르렀다.注+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의 〈군국지郡國志〉를 상고해보면, 외황현外黃縣동류군東留郡에 속하고, 황현黃縣동래군東萊郡에 속한다. 모흠毛欽은 아마도 황현령黃縣令이었던 듯하니 외자外字연자衍字이다.
引欽就席曰 張儉 負罪하니 豈得藏之리오 若審在此라도 此人 名士 明廷 寧宜執之乎注+明廷, 猶言明府也. 寧宜執之, 猶言豈肯執捕之.아하니
이독이 모흠을 데리고 자리로 나아가 말하기를 “장검이 죄를 졌으니, 내 어찌 숨겨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참으로 우리 집에 있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명사名士이니, 밝으신 현령縣令[명정明廷]께서 어찌 차마 그를 잡겠습니까.”注+명정明廷(현령縣令에 대한 경칭敬稱)은 명부明府(밝으신 태수太守)라는 말과 같다. “녕의집지寧宜執之”는 ‘어찌 그를 체포하려 하겠는가.’라는 말과 같다. 하였다.
因起撫篤曰 蘧伯玉 恥獨爲君子注+此語, 未詳所出, 蓋世人相傳之辭.하니 足下如何專取仁義
모흠이 이에 일어나 이독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거백옥蘧伯玉은 홀로 군자가 되기를 부끄러워했으니注+〈“거백옥 치독위군자蘧伯玉 恥獨爲君子”라는〉 이 말은 출전이 자세하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서로 전하는 말인 듯하다., 족하足下는 어이하여 혼자서만 인의仁義를 취하고자 하는가.” 하였다.
篤曰 今欲分之하노니 明廷 載半去矣注+言不執儉, 得分仁義之半去也.하라하니 歎息而去하다
이독이 말하기를 “내가 이제 인의仁義를 나누어 가지고자 하니, 밝으신 현령께서 반을 싣고 가십시오.”注+〈“명정 재반거의明廷 載半去矣”는〉 장검張儉을 잡지 아니하여 인의仁義의 절반을 나누어 가져갈 수 있게 됨을 말한 것이다. 하니, 모흠이 탄식하고 떠나갔다.
導儉出塞하니 其所經歷 伏重誅者 以十數 連引收考 徧天下러라
이독은 장검을 인도하여 변방을 나갔다. 그러나 장검이 지나가는 곳에 무거운 형벌을 받은 자가 열 명으로 헤아려지고 연좌되어 체포되고 고문을 당한 자가 천하에 가득하였다.
   孔融 孔融
與魯國孔褒 有舊 亡抵褒로되 不遇注+褒, 孔子二十世孫也. 抵, 至也.하니 褒弟融 年十六 匿之라가 事泄하여 亡走하다
장검張儉나라의 공포孔褒와 오랜 교분이 있었다. 도망하여 공포의 집에 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는데注+공포孔褒공자孔子의 22세손世孫이다. 는 이름(감)이다., 나이 16세인 공포의 아우 공융孔融이 장검을 숨겨주었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어 장검이 도망하였다.
國相 收褒, 融送獄하여 未知所坐 融曰 保納舍藏者 融也注+謂自保無它而納儉, 因舍止而藏匿之.라하고 褒曰 彼來求我하니 非弟之過라하다
국상國相이 공포와 공융을 체포하여 옥으로 보냈는데, 누구를 죄에 붙일지 알지 못하였다. 공융은 말하기를 “장검을 우리 집에 받아주어 보호하고 감춰준 사람은 나이다.”注+〈“보납사장保納舍藏”은〉 공융 자신이 별 문제가 없을 것임을 보장하여 장검張儉을 받아주어서 머물게 하고 감춰주었다는 말이다. 하였고, 공포는 말하기를 “저 장검은 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니, 아우의 죄가 아니다.” 하였다.
吏問其母한대 母曰 家事任長이니 妾當其辜注+任, 音壬. 長, 知兩切. 任長, 謂任從家之長也.라하여 一門 爭死하니
아전이 그 어머니에게 묻자, 어머니가 말하기를 “집안의 일은 어른이 책임지는 것이니, 내가 마땅히 그 죄를 받아야 한다.”注+(맡기다)은 이고, (우두머리)은 지량知兩이니, “임장任長”은 집안의 어른에게 맡겨 따름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그리하여 한 가문이 죽기를 다투니,
郡縣 疑不能決하여 乃上讞之한대 詔獨坐褒注+上, 奏也. 讞, 請也.러니 及黨禁解 乃還鄕里하다
군현郡縣이 머뭇거리고 결단하지 못해서 마침내 상주上奏하여 죄를 청하자, 조령詔令을 내려 공포만을 처벌하게 하였다.注+상주上奏함이요, 함이다. 당금黨禁이 풀리자 장검이 마침내 향리鄕里로 돌아왔다.
夏馥 聞儉亡命하고 歎曰 孽自己作이어늘 空汙良善이로다 一人逃死 禍及萬家하니 何以生爲리오하고
하복夏馥장검張儉망명亡命했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재앙이 자기로부터 일어났는데 공연히 선량한 사람이 연루되게 하는구나.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함에 가 만 명의 집에 이르니, 어찌 이렇게 살겠는가.” 하고는,
乃自翦須變形하고 入林慮山中注+須, 與鬚同. 林, 本作隆, 漢避殤帝諱, 故改曰林慮, 音廬.하여 隱姓名하고 爲冶家傭하여 親突煙炭하여 形貌毁瘁하니 積二三年 人無知者러라
마침내 직접 수염을 깎고 변장하고서 임려산林慮山 속에 들어가서注+와 같다. 은 본래 으로 되어 있었는데, 나라가 상제殤帝(유융劉隆)를 피하였으므로 〈융려隆慮를〉 임려林慮라고 고쳤는바, 〈는〉 이다. 성명姓名을 숨기고 대장간의 머슴이 되었다. 가마에서 친히 불을 때고 숯을 태워 모습이 초췌해지니, 2, 3년이 되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馥弟靜 載縑帛追餉之한대 不受曰 弟奈何載禍相餉乎아하니라
하복의 아우 하정夏靜이 비단을 싣고 뒤쫓아가서 음식을 먹이려 하자, 하복은 받지 않으며 말하기를 “아우는 어찌하여 화를 싣고 와서 내게 먹이는가.” 하였다.
中常侍張讓 父死 歸葬潁川하니 雖一郡 畢至 而名士無往者
】 처음에, 중상시 장양中常侍 張讓이 아버지가 죽자 영천潁川에 돌아가 장례하였는데, 비록 온 고을 사람이 다 왔으나 명사名士 중에는 조문을 온 자가 없었다.
恥之어늘 陳寔 獨弔焉이러니 及誅黨人 以寔故 多所全宥러라
장양이 이를 부끄러워하였는데, 진식이 홀로 조문하였다. 뒤에 당인黨人들을 주벌하게 되자, 진식 때문에 장양이 사면하여 목숨을 보전해준 사람이 많았다.
太尉袁安子敞 爲司空하고 孫湯 復爲太尉하고 湯三子成, 逢, 隗 成生紹하고 逢生術注+紹傳注 “紹, 司空逢之孽子, 出後伯父成.”이러니
】 처음에, 태위 원안太尉 袁安의 아들 원창袁敞사공司空을 지냈고 손자 원탕袁湯이 다시 태위太尉가 되었다. 원탕의 세 아들은 원성袁成, 원봉袁逢, 원외袁隗(원외)인데, 원성은 원소袁紹를 낳고 원봉은 원술袁術을 낳았다.注+후한서後漢書≫ 〈원소전袁紹傳에 “원소袁紹사공 원봉司空 袁逢서자庶子인데, 백부伯父원성袁成의 양자로 나갔다.” 하였다.
至是하여 逢爲司空하고 隗亦顯官하니 中常侍袁赦 以逢, 隗相家 與之同姓이라하여 推崇以爲外援이라
이때 원봉이 사공司空이 되고 원외 또한 높은 벼슬을 하니, 중상시 원사中常侍 袁赦는 원봉과 원외가 정승의 집안으로서 자기와 동성同姓이라 하여 특별히 높여 외부의 원조援助로 삼았다.
袁氏貴寵於世하고 富奢甚하여 不與他公族同이러라
그러므로 원씨袁氏는 세상에서 총애받는 권귀權貴가 되었으며 매우 부유하고 사치하여 다른 공족公族과 똑같지 않았다.
紹壯健有威容하고 愛士養名하니 賓客 輻湊注+輻湊者, 蓋以車輻皆內湊於轂爲諭. 三十輻, 共一轂. 轂者, 衆輻聚湊之所.하고 亦以俠氣聞注+謂俠氣之名, 見聞於人也.이러라
원소袁紹는 체격이 건장健壯하여 위엄스러운 용모가 있고 선비를 사랑하여 명성을 기르니, 빈객賓客들이 모여들었고注+복주輻湊”는 수레 바큇살이 모두 안으로 에 모여 있음을 가지고 비유한 것이다. 30개의 바큇살이 한 에 함께 모이니, 은 여러 바큇살이 모여드는 곳이다., 원술 또한 협기俠氣로 알려졌다.注+〈“이협기문以俠氣聞”은〉 협기俠氣가 있다는 명성이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말한 것이다.
從兄子閎 少有操行하여 以耕學爲業하니 逢, 隗數饋之호되 無所受
원봉袁逢종형從兄의 아들 원굉袁閎(원굉)은 젊어서부터 조행操行이 있어서 농사지으며 학문하는 것을 업으로 여겼는데, 원봉袁逢원외袁隗가 자주 선물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見時方險亂而家門富盛하고 常對兄弟歎曰 吾先公福祚 後世不能以德守之하고
원굉은 세상이 한창 험난한데 가문家門이 부유하고 흥성함을 보고는 항상 형제들을 마주하여 탄식하기를 “우리 선공先公의 복록을 후세後世가 덕으로 지켜내지 못하고,
而競爲驕奢하여 與亂世爭權하니 此卽晉之三郤矣注+先公, 謂袁安也. 三郤, 謂晉大夫郤錡, 郤犨, 郤至也. 郤氏世爲晉卿, 三子者憑藉世資, 驕奢侵權, 爲厲公所殺.로다 及黨事起 欲投迹深林호되
다투어 교만하고 사치하여 난세亂世의 사람들과 권력을 다투니, 이는 바로 나라의 삼극三郤이다.”注+선공先公원안袁安을 이른다. 삼극三郤은 춘추시대 나라 대부大夫극기郤錡(극의), 극주郤犨(극주), 극지郤至를 이른다. 극씨郤氏가 대대로 나라의 이 되어 세 사람이 대대로 이어온 권력을 믿고서 교만하고 사치하여 권력을 침범하다가 진 여공晉 厲公에게 살해되었다. 하였다. 당고黨錮의 일이 일어나자, 원굉은 깊은 산속으로 자취를 감추고자 하였다.
以母老 不忍去하여 乃築土室四周於庭호되 不爲戶하고 自牖納飮食이라
그러나 모친이 연로한 까닭에 차마 떠나가지 못하고서 마침내 뜰 가운데에 사방이 둘러싸인 토실土室을 쌓았는데 문을 내지 않고 창문으로 음식飮食을 받아먹었다.
母思閎이면 時往就視러니 母去 便自掩閉하니 兄弟妻子 莫得見也러라 潛身十八年 卒於土室하니라
노모老母가 원굉이 그리우면 때로 가서 만나보았는데, 어머니가 가면 곧 창문을 닫으니, 형제兄弟처자妻子도 그를 만나보지 못하였다. 몸을 숨긴 지 18년 만에 토실土室에서 별세하였다.
范滂等 非訐朝政하니 自公卿以下 皆折節下之하고 太學生 爭慕其風注+通鑑 “爭慕其風, 以爲文學將興, 處士復用.”호되
】 처음에 범방范滂 등이 조정의 정사를 비난하니, 공경公卿으로부터 이하가 모두 자신을 굽혀 그에게 낮추고 태학생太學生들이 다투어 그의 풍모를 사모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그 풍모를 다투어 사모해서 문학文學이 장차 일어나고 처사處士가 다시 등용될 것이라고 여겼다.” 하였다.
申屠蟠 獨歎曰 昔戰國之世 處士橫議하니 列國之王 至於擁篲先驅러니 卒有坑儒燒書之禍하니 今之謂矣注+史記, 鄒衍如燕, 昭王擁篲先驅, 請列弟子之座而受業, 築碣石宮, 身親往師之.라하고
그러나 신도반申屠蟠(신도반)은 홀로 탄식하기를 “옛날 전국戰國시대에 처사處士가 멋대로 의논하니, 열국列國이 심지어는 빗자루를 들고 길을 청소하여 선비를 앞에서 인도하였는데, 끝내 선비를 구덩이에 묻어죽이고 책을 불태우는 화가 있었으니, 지금과 같은 때를 말한 것이다.”注+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추연鄒衍나라에 가자, 소왕昭王이 빗자루를 들고 길을 청소하고서 먼저 앞에서 인도하였고, 제자弟子의 자리를 나열하고서 수업受業하기를 청하였으며, 갈석궁碣石宮을 짓고 몸소 친히 가서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하였다. 하고는,
乃絶迹於梁碭之間하여 因樹爲屋하여 自同傭人注+碭, 徒浪切, 又音唐. 梁國有碭縣.이러니 居二年 滂等 果罹黨錮之禍하니라
마침내 나라 탕현碭縣(탕현)의 사이에서 자취를 끊고서 나무를 집으로 삼고 스스로 품팔이하는 사람과 똑같이 생활하였다.注+도랑徒浪이고 또 이니, 나라에 탕현碭縣이 있다. 2년 만에 과연 범방 등이 당고黨錮의 화에 걸렸다.
司馬公 曰 天下有道 君子揚于王庭하여 以正小人之罪而莫敢不服하고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평하였다. “천하에 가 있을 때에는 군자君子가 왕의 조정에서 드날리면서 소인小人의 죄를 바로잡으면 감히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고,
天下無道 君子囊括不言하여 以避小人之禍而猶或不免이라
천하에 가 없을 때에는 군자가 주머니를 묶듯이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아서 소인의 화를 피하여도 혹 죽음을 면치 못한다.
黨人 生昏亂之世하여 不在其位어늘 四海橫流 而欲以口舌救之하여
당인黨人들은 혼란한 세상에 태어나서 지위에 있지 않았는데도 사해四海가 혼란해지자 구설口舌로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여,
以至身被淫刑하고 禍及朋友하여 士類殲滅而國隨以亡하니 不亦悲乎
자신은 혹독한 형벌을 받고 화가 붕우朋友에게까지 미쳐서 사류士類섬멸殲滅되고 나라가 따라 망하게 되었으니, 또한 슬프지 않은가.
夫惟郭泰 旣明且哲하여 以保其身하고 申屠蟠 見幾而作하여 不俟終日하니 卓乎其不可及已로다
是月晦 日食하다
】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鮮卑寇幷州하다
선비鮮卑병주幷州를 침략하였다.
역주
역주1 尊愼園貴人董氏……以其兄子重爲五官中郞將 : “오라비의 아들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사사로움을 비난한 것이다.[兄子 何 譏私也]” ≪書法≫ “이전에는 董氏를 높여 貴人이라 하였는데 이번에는 높여 皇后라 하였다. 貴人은 宮嬪의 직책이니 진실로 자식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관직을 내릴 수가 없고, 皇后는 천하의 어머니의 칭호이니 또한 그 실제가 없이 그 이름을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제멋대로 횡행하는 여러 소인들이 군주에게 환심을 얻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禮가 아닌 禮를 만들어 아첨했을 뿐이다. 이것을 곧바로 책에 썼으니, 그 잘못이 저절로 나타난다.[前此尊之爲貴人 今此尊之爲皇后 夫貴人乃宮嬪之職 固不可以子而職其母也 皇后乃母天下之號 亦不可無其實而居其名也 是時群小恣橫 無以取悅其君 故爲非禮之禮以媚之耳 直書于冊 其失自見]” ≪發明≫
역주2 靑蛇見(현)御座上……詔公卿言事 : “뱀이 황제가 앉는 자리에 나타난 것은 큰 이변이니,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1번 보일 뿐이다. ‘詔令을 내려 정사를 말하게 했다.’고 쓴 것이 이때 시작되었으니, ≪자치통감강목≫이 끝날 때까지 ‘詔令을 내려 일을 말하게 했다.’고 쓴 것이 4번이다.[蛇見御座 大異也 終綱目 一見而已 書詔言事始此 終綱目 書詔言事四]다” ≪書法≫
역주3 양육해준 은혜 : 원문의 ‘顧復’은 부모가 양육해준 은혜를 비유하는 말로, ≪詩經≫ 〈小雅 蓼莪〉에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네. 나를 다독이시고 나를 기르시며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키우셨네. 나를 돌아보시고 나를 다시 살피시며 출입할 땐 나를 품어주셨네. 이 은혜를 갚고자 하나 하늘 같아 한량이 없도다.[父兮生我 母兮鞠我 拊我畜我 長我育我 顧我復我 出入腹我 欲報之德 昊天罔極]”라고 보이는데, 이 중 ‘顧我復我’의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역주4 솥의……흉함 : 大臣의 지위에 거하여 천하의 임무를 담당하고서, 훌륭하지 못한 사람을 등용하여 국가의 일을 잘못되게 함을 비유한 것이다. ≪周易≫ 鼎卦 九四爻辭에 “솥이 발이 부러져서 公上에게 바칠 음식을 뒤엎었으니, 형벌이 무겁다. 흉하다.[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하였는데, 伊川 程頤의 ≪易傳≫에 “九四는 大臣의 지위이니 천하의 일을 맡은 자이다.……初六은 陰柔의 小人이니, 九四가 그를 등용하면 자신이 맡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해서 일을 실패함이, 마치 솥이 발이 부러져서 公上에게 바칠 음식을 뒤엎은 격이다.”라고 풀이하였다.
역주5 (粲)(餐) : 저본에는 ‘粲’으로 되어 있으나, 本文과 ≪詩經≫ 〈魏風 伐檀〉에 의거하여 ‘餐’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解卦 六三爻辭……한다 : ≪周易≫ 解卦 六三爻辭에 “짊어지고 있어야 하는데도 수레를 타고 있으므로 도둑이 빼앗으러 오게 하니, 바르게 얻었더라도 부끄럽다.[負且乘 致寇至 貞 吝]”라고 보이는데, 〈繫辭傳 上〉에 孔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주역≫을 지은 자는 도둑이 오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주역≫에 ‘짐을 짊어지고 있어야 하는데도 수레를 타고 있다. 도둑이 빼앗으러 오도록 만든다.’ 하였으니, 짐을 짊어지는 것은 小人의 일이요, 탈 것은 君子의 기물이니, 小人으로서 君子의 기물을 타고 있으면 도둑이 그것(탈 것)을 빼앗을 것을 생각한다.”라고 해석하였다.
역주7 皇甫 : 周나라 幽王 때 卿士를 지낸 사람으로, 흔히 총애를 받는 신하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卿士는 卿의 士라는 뜻으로, 六官을 겸하여 총괄하므로 지위는 낮지만 권력은 막강한 자리이다. 참고로 ≪詩經≫ 〈小雅 十月之交〉에는 ‘皇甫’가 ‘皇父’로 되어 있다.
역주8 豔妻는 바로 褒姒 : 豔妻는 요염한 아내이고 褒姒는 周 幽王의 총애하던 여인이다. 幽王은 원래 申后를 맞이하여 太子 宜臼를 낳았는데, 포사를 얻고는 그녀에게 빠져 신후를 내치고 태자 의구를 폐위하고 포사가 낳은 伯服을 태자로 세웠으며 향락에 빠져 있다가 결국 犬戎에게 살해당하였다. 제후들이 의구를 세우니, 이가 바로 平王인데 국력이 약화되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으므로 결국 洛邑으로 遷都하였다. 이후 周나라는 유명무실한 天子國이 되었다.
역주9 復治鉤黨 殺前司隷校尉李膺等百餘人 : “李膺이 이미 폐출되었는데 ‘前 司隷校尉’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죄로 폐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니, 죽인 것은 너무 심하다. 그렇다면 여러 군자들에게는 비판할 것이 없는가. 앞에서는 ‘部黨’이라고 쓰고 뒤이어 ‘黨人’이라고 쓰고 여기서는 ‘鉤黨’이라고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은 진실로 이것을 빌려 경계를 드리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膺已廢矣 書前司隷校尉 何 廢不以罪也 殺之甚矣 然則諸君子無譏歟 前書部黨 繼書黨人 此書鉤黨 綱目固不能不假此以垂戒矣]” ≪書法≫ “李膺이 이미 폐출되어 禁錮가 되었는데도 ‘前 司隷校尉’라고 쓴 것은 죄로 폐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출된 것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죽임에 있어서랴. 저 小人들이 남의 나라를 텅 비게 하고자 할 적에, 朋黨이라고 모함하지 않으면 賢人의 부류를 다 죽일 수가 없으니, 漢나라가 이에 이르러 진실로 이미 망한 것이다. 그러나 范滂과 張儉 등을 책에 나열하여 쓰지 않은 것은 이는 또 ≪資治通鑑綱目≫에서 諸賢들에게 불만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가 마땅히 깊이 상고하고 묵묵히 살펴야 하니, 이렇게 하면 그 本旨를 알게 될 것이다.[膺已廢錮 而猶書前司隷者 廢不以罪故也 廢猶不予 況殺之乎 彼小人欲空人之國 非誣以朋黨 則不足以盡賢人之類 漢室至是 固已亡矣 然范滂張儉等不得列書于冊者 此又綱目有不滿諸賢之意耳 學者要當深考而默察之 則得其旨矣]” ≪發明≫
역주10 集覽 : 元나라의 王幼學이 지은 것으로 현재 ≪御批資治通鑑綱目≫에 ≪書法≫․≪發明≫ 등과 함께 수록되었다.
역주11 : ≪資治通鑑≫ 註에 “離는 罹와 같으니 만난다는 뜻이다.[離 與羅同 遭也]”라고 하였다.
역주12 漢나라가……뿐이다 : ≪詩經≫ 〈小雅 正月〉에 “슬프다, 우리 사람들은 어디를 따라 복을 받을까. 저 까마귀가 앉는 곳을 보건대 누구의 지붕에 앉을까.[哀我人斯 于何從祿 瞻烏爰止 于誰之屋]”라고 하였다. 여기 朱子의 註에 “불행히도 나라가 장차 망할 때를 만나서 이 죄 없는 백성들과 함께 장차 모두 갇히고 포로가 되어 함께 臣僕이 될 것이니, 장차 다시 어느 사람을 따라 복을 받을지 모르겠다. 마치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매 장차 누구의 지붕에 앉을지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역주13 밝고……보전하였고 : 이 내용은 ≪詩經≫ 〈大雅 烝民〉에 보이는바 仲山甫를 찬미한 말이다.
역주14 기미를……떠나갔으니 : ≪周易≫ 豫卦 六二爻辭에 “절개가 돌과 같아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가니 바르고 길하다.[介于石 不終日 貞吉]” 하였는데, 〈繫辭傳 上〉에 이것을 해석하여 “군자가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떠나가서)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주역≫에 ‘절개가 돌과 같아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가니, 바르고 길하다.’ 하였다. 절개가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겠는가. 결단함을 알 수 있다.[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 易曰 介于石 不終日 貞吉 介如石焉 焉用終日 斷可識矣]”라고 하였다. ‘기미를 본다’는 것은 나쁜 조짐이나 낌새를 봄을 이른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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