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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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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子年(B.C. 369)
임자년(B.C. 369)
七年이라
[綱]나라 열왕烈王 7년이다.
楚宣王良夫元年注+宣王, 肅王弟.이라
[目]나라 선왕宣王 양부良夫 원년이다.注+선왕宣王숙왕肅王의 동생이다.
日食하다
[綱] 일식이 있었다.
◑王하고 弟扁注+扁, 邊典切.하다
[綱]열왕烈王하고 동생 이 즉위하였다.注+변전邊典이다.
是爲顯王이라
[目] 이가 바로 현왕顯王이다.
韓趙伐魏하야 圍安邑하다
[綱]나라와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안읍安邑을 포위하였다.
韓公孫頎 謂懿侯曰 魏亂하니 可取也注+公孫, 姓也. 頎, 音祈.라한대 懿侯乃與趙成侯 合兵伐魏하야 大破其兵하고 遂圍安邑이러니
[目]나라 공손기公孫頎의후懿侯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어지러우니 빼앗을 수 있습니다.”注+공손公孫이다. 는 음이 이다.라고 하니, 의후가 마침내 나라의 성후成侯와 군사를 합해 나라를 정벌하여 그 군대를 크게 패배시키고 드디어 안읍安邑을 포위하였다.
成侯曰 殺罃立公中緩하고 割地而退하면 我二國之利也 懿侯曰 殺魏君 暴也 割地 貪也
성후가 말하기를 “을 죽이고 공중완公中緩을 세운 다음 땅을 나누어 가지고 물러나면 우리 두 나라가 이로울 것입니다.”라고 하니, 의후懿侯가 말하기를 “나라 임금을 죽이는 것은 포악한 것이고 땅을 나누어 가지는 것은 탐욕입니다.
不如兩分之 魏分爲兩이면 不彊於宋衛하리니 則我終無魏患矣리라
둘로 쪼개는 것만 같지 못하니, 나라를 나누어 둘로 만들면 나라와 나라보다 강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종당에 나라에 대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趙人 不聽하고 乃解而去하다
성후가 듣지 않고 마침내 포위를 풀고 떠나갔다.
太史公
[目]태사공太史公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注+나라 사마천司馬遷무제武帝태사령太史令이 되었고 《사기史記》를 지었으므로 자호自號태사공太史公이라 하였다.
注+漢司馬遷, 武帝時爲太史令, 作史記, 自號太史公.魏惠王之所以身不死國不分者 二國之謀不和也
나라 혜왕惠王이 자신도 죽지 않고 나라도 쪼개지지 않은 까닭은 두 나라의 모의가 불화하였기 때문이다.
若從一家之謀 魏必分矣리니
만일 어느 한쪽의 계획을 따랐다면 나라는 반드시 쪼개졌을 것이다.
故曰 君終無適子 其國 可破也注+適, 讀曰嫡.라하니라
그러므로 ‘임금이 죽고 적자適子가 없으면 그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注+(적자)은 으로 읽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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