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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0)

자치통감강목(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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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丑年(197)
정축년丁丑年(197)
二年이라 春正月 曹操擊張繡하여 降之러니 繡叛하여 襲操하여 殺其子昂하다
나라 효헌황제 건안孝獻皇帝 建安 2년이다. 봄 정월에 조조曹操장수張繡를 공격하여 항복시켰는데, 장수가 배반하여 조조를 습격해 그 아들 조앙曹昂을 죽였다.
曹操討張繡하여 軍于淯水한대 繡擧衆降이러니 操納張濟之妻하니 繡恨之하여 襲擊操軍하고 殺操長子昂하니 操中流矢하여 敗走하다
조조曹操장수張繡를 토벌할 적에 육수淯水에 군대를 주둔하였는데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항복하였다. 조조가 장제張濟를 〈시침하는 희첩姬妾으로〉 맞아들이니, 장수가 원한을 품고서 조조의 군대를 습격하고 조조의 장자 조앙長子 曹昂을 죽이니, 조조는 유시流矢에 맞아 패하여 달아났다.
諸軍 大亂호되 平虜校尉于禁 獨整衆而還이러니 道逢靑州兵 劫掠人하고 數其罪而擊之하다
이때에 조조 휘하의 각 이 크게 혼란하였는데, 평로교위 우금平虜校尉 于禁만이 홀로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왔다. 우금은 길에서 사람들을 겁박하고 약탈하는 청주병靑州兵을 만나 그 죄를 낱낱이 열거하고 공격하였다.
靑州兵 走詣操하다 禁旣至하여 先立營壘하고 不時謁이러니 謂禁호되 宜促詣公辨之하라한대
청주병이 달아나 조조에게 가서 이를 고자질하였다. 우금은 진영에 도착한 다음 먼저 영루營壘를 세우느라 제때에 조조를 배알하지 못하였다. 어떤 이가 우금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급히 조공曹公에게 가서 〈청주병을 공격한 일을〉 해명해야 합니다.” 하니,
禁曰 今賊在後하니 追至無時 不先爲備하면 何以待敵이리오하고 徐鑿塹安營訖 乃入謁하고 具陳其狀하다
우금이 말하기를 “지금 적들이 뒤에 있으니, 언제 추격해올지 모른다. 먼저 대비하지 않으면 어떻게 적들을 맞아 싸우겠는가.” 하고 서서히 참호塹壕를 파고 영루營壘를 안전하게 만든 뒤에 비로소 들어가 조조를 배알하고 전후의 상황을 갖추어 아뢰었다.
操曰 淯水之難 吾猶狼狽어늘 將軍 在亂能整하여 討暴堅壘하니 有不可動之節注+討暴, 謂擊劫掠者. 堅壘, 謂先鑿塹安營也.이라
조조는 말하기를 “육수淯水에서의 난리에 나도 오히려 낭패狼狽하였는데, 장군이 혼란한 와중에서도 군대를 제대로 정비하여 포학한 무리를 토벌하고 영루營壘를 안전하게 만들었으니, 동요시킬 수 없는 기절氣節이 있다.注+토폭討暴”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약탈하는 청주병을 공격한 것을 이른다. “견루堅壘”는 먼저 참호塹壕를 파고 영루營壘를 안전하게 만든 것을 이른다.
雖古名將이라도 何以加之리오하고 於是 封益壽亭侯하다
비록 옛날의 명장名將이라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하고 이에 익수정후益壽亭侯에 봉하였다.
以鍾繇爲司隷校尉하여 督關中諸軍하다
종요鍾繇사례교위司隷校尉로 삼아서 관중關中의 각 을 감독하게 하였다.
袁紹與操書 辭語驕慢하니 操謂荀彧, 郭嘉曰 今將討不義而力不敵하니 何如
원소袁紹조조曹操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언사가 거만하고 무례하였다. 조조가 순욱荀彧곽가郭嘉에게 이르기를 “지금 의롭지 못한 원소를 토벌하고자 하는데 힘이 대등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對曰 劉, 項之不敵 公所知也 今紹有十敗하고 公有十勝하니 紹雖彊이나 無能爲也
두 사람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유방劉邦항우項羽의 힘이 대등하지 못하였던 것은 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지금 원소에게는 열 가지의 패배할 이유가 있고 에게는 열 가지의 이길 이유가 있으니, 원소가 비록 강하지만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繁禮多儀하고 體任自然하니 道勝也니이다 以逆動하고 奉順以率天下하니 義勝也注+奉天子以率天下, 於理爲順.니이다
원소는 예의禮儀가 번거로운데 은 자연에 맡기니, 이는 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도리를 거슬려 행하는데 은 순리를 받들어 천하를 통솔하니, 이는 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注+천자天子를 받들어 천하를 통솔함은 도리에 있어서 함이 되는 것이다.
桓靈以來 政失於寬이어늘 以寬濟寬故 不攝注+攝, 整也.하고 糾之以猛하여 而上下知制하니 治勝也니이다
환제桓帝영제靈帝 이래로 정사가 너무 너그러워 잘못되었는데, 원소는 너그러움으로써 너그러움을 구제하기 때문에 정돈하지 못하는데注+정제整齊함이다. 은 엄함으로써 바로잡아서 상하上下가 제재할 줄을 아니, 이는 다스림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外寬內忌하고 用人而疑之하여 所任 唯親戚子弟 外易簡而內機明하여 用人無疑하고 唯才所宜하여 不間遠近하니
원소는 겉으로는 너그러우나 속으로는 시기하고 사람을 쓰면서도 의심해서 임용한 자들은 오직 친척親戚자제子弟일 뿐인데, 은 겉으로는 너그럽고 소탈하면서도 속으로는 기지機智가 밝아서 사람을 씀에 의심함이 없고 오직 재주의 마땅함만을 살펴 원근遠近(친소親疏)을 따지지 않으니,
度勝也니이다 多謀少決하여 失在後事하고 得策輒行하여 應變無窮하니 謀勝也니이다
이는 도량度量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계책이 많으나 결단력이 부족하여 일을 뒤늦게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는데 은 계책을 얻으면 즉시 행하여 변화에 대응해서 다함이 없으니, 이는 지모智謀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高議揖遜하여 以收名譽하니 士之好言飾外者 多歸之하고
원소袁紹는 의논이 고명하고 읍양揖讓하여 명예를 거두니 선비들 중에 말을 좋아하고 외면을 꾸미는 자들이 그에게 많이 귀의하는데
以至心待人하고 不爲虛美하여 士之忠正遠見而有實者 皆願爲用하니 德勝也니이다
은 지극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헛되이 찬미하지 않아서 충성스럽고 정직하며 원대한 식견과 실제 재주가 있는 선비들이 모두 쓰이기를 원하니, 이는 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見人飢寒하면 恤念之하여 形於顔色이나 其所不見 慮或不及하고
원소는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을 보면 가엾게 여기고 염려하여 이러한 생각이 낯빛에 나타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혹 미치지 못하는데
於目前小事 時有所忽이나 至於大事하여는 與四海接하고
은 목전의 작은 일에 대해서는 때로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으나 큰일에 이르러서는 사해四海와 서로 접하고
恩之所加 皆過其望하며 雖所不見이라도 慮無不周하니 仁勝也니이다
은혜가 베풀어지는 바에 모두 그 소망을 넘으며 비록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생각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大臣爭權하여 讒言惑亂호되 御下以道하여 浸潤不行하니 明勝也니이다
원소는 대신大臣들이 권력을 다투어서 참소하는 말로 미혹시키고 어지럽히는데 은 아랫사람을 로써 어거하여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가 행해지지 않으니, 이는 밝음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是非不可知로되 所是 進之以禮하고 所不是 正之以法하니 文勝也니이다
원소는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데 은 옳게 여기는 사람은 로써 올려주고 옳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으로써 바로잡으니, 이는 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好爲虛勢하여 不知兵要하고 以少克衆하여 用兵如神하여 軍人恃之하고 敵人畏之하니 武勝也니이다
원소는 허장성세를 좋아하여 용병用兵의 요점을 알지 못하는데 은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이겨서 용병술用兵術과 같아 장수와 군사들이 믿고 의지하며 적들이 두려워하니, 이는 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操笑曰 如卿所言인댄 孤何德以堪之 嘉又曰 紹方北擊公孫瓚하니 可因其遠征하여 東取呂布
조조曹操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 말한 바와 같다면 내가 무슨 으로 이를 감당하겠는가.” 하였다. 곽가郭嘉가 또 말하기를 “원소袁紹가 지금 북쪽으로 공손찬公孫瓚을 공격하고 있으니, 그가 원정遠征하는 틈을 타 동쪽으로 가서 여포呂布를 공격해 취할 수 있습니다.
若紹爲寇하고 布爲之援이면 此深害也니이다 彧亦曰 不先取呂布 河北 未易圖也니이다
만약 원소가 우리를 침략하고 여포가 원소의 원조가 된다면 이는 큰 폐해가 될 것입니다.” 하자, 순욱荀彧이 또한 말하기를 “먼저 여포를 공격해 취하지 않으면 하북河北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操曰 然하다 吾所惑者 又恐紹侵擾關中하여 西亂羌, 胡하고 南誘蜀, 漢하면 是我獨以兗, 豫 抗天下六分之五也 爲將奈何
조조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의혹하는 바는 또 원소가 관중關中을 침범해 소요를 일으켜서 서쪽으로 강족羌族호족胡族과 연합해 을 일으키고 남쪽으로 한중漢中을 유인하여 결탁할까 두려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오직 연주兗州예주豫州만을 가지고 천하의 6분의 5에 대항하는 것이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 하니,
彧曰 關中將帥以十數로되 莫能相一하고 唯韓遂, 馬騰 最彊하니 今若撫以恩德하고 遣使連和하면
순욱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관중關中의 장수가 열 명으로 헤아려지는데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될 수 없고, 오직 한수韓遂마등馬騰이 가장 강성하니 지금 만약 은덕恩德으로 안무安撫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연합하면
雖不能久安이나 比公安定山東 足以不動이라 侍中鍾繇有智謀하니 若屬以西事하면 公無憂矣리이다
비록 오랫동안 평안할 수는 없으나 산동山東을 안정시킬 때까지는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중 종요侍中 鍾繇지모智謀가 있으니, 만약 그에게 서쪽의 일을 맡기면 께서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操乃表繇以侍中守司隷校尉하여 持節督關中諸軍하고 特使不拘科制注+使不拘泥科條制度, 得便宜從事.하다
조조가 이에 표문表文을 올려서 종요를 시중 수사예교위侍中 守司隷校尉로 삼게 하여 관중關中의 각 을 감독하게 하고, 특별히 과제科制(법조문과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注+〈“특사불구과제特使不拘科制”는〉 종요鍾繇로 하여금 과조科條제도制度에 구애받지 않고 편의에 따라 종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繇至長安하여 移書騰, 遂等하여 爲陳禍福하니 騰, 遂各遣子入侍하다
종요가 장안長安에 이르러 마등馬騰한수韓遂 등에게 공문公文을 보내어 화복禍福(이해利害)을 말해주니, 마등과 한수가 각각 아들을 보내어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원술袁術칭제稱帝하고 전 연주자사前 兗州刺史였던 김상金尙을 죽였다.
袁術 以讖言 代漢者 當塗高라하니 自云名字應之注+當塗高, 乃曹魏之讖. 周禮 “象魏, 闕名.” 蓋闕中通門爲道, 其上懸法象, 其狀巍然高大, 故謂之象魏. 術字公路, 術亦邑中道, 近於當塗之義, 故誤認爲己兆也.라하고 又以袁氏出陳하여 爲舜後하니
원술袁術참언讖言에 “나라를 대신할 자는 이다.” 하니,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명자名字()가 여기에 응한다.”注+당도고當塗高는 바로 조위曹魏에 대한 참언讖言이다. ≪주례周禮≫ 〈천관 태재天官 太宰〉에 “상위象魏(궁문 양쪽에 세워 교령敎令을 게시하던 한 쌍의 높은 )는 의 이름이다.” 하였으니, 가운데에 을 통하게 하여 길을 만들고 그 위에 법상法象(정교政敎법령法令)을 게시하였는바, 그 모습이 높고 크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상위象魏라고 한 것이다. 원술袁術공로公路이고 ‘’자 또한 가운데의 길이어서 당도當塗의 뜻에 가깝기 때문에 이를 자기에 대한 조짐으로 오인한 것이다. 하고, 또 원씨袁氏나라에서 나와서 임금의 후예가 되니,
以黄代赤 德運之次注+陳大夫轅濤塗, 袁氏其後也. 黃, 土色, 赤, 火色. 德運, 五德之運也. 五行, 火生土. 術自謂本舜之後, 舜有土德, 今我以土代漢火, 五運之次敍也.라하여 遂有僭逆之謀러라 聞孫堅 得傳國璽하고 拘堅妻而奪之하여 議稱尊號하니
(토덕土德)으로 (화덕火德)을 대신함이 오덕五德(오행五行)이 운행하는 차서라고 하여注+춘추시대 나라 대부 원도도大夫 轅濤塗가 있었으니, 원씨袁氏는 그 후예이다. 의 색이고 의 색이다. 원술袁術이 스스로 이르기를 “자신은 본래 임금의 후예로 임금은 토덕土德을 소유하였다. 지금 내가 로써 나라의 를 대신하는 것은 오덕이 운행하는 차서이다.” 한 것이다. 마침내 참역僭逆의 계획을 품었다. 원술은 손견孫堅전국새傳國璽를 얻었다는 말을 듣고는 손견의 를 붙잡아 전국새傳國璽를 빼앗고 존호尊號를 칭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였는데,
主簿閻象 進曰 昔 周自后稷으로 至于文王 積德累功하여 三分天下 有其二호되 猶服事殷하니이다
주부 염상主簿 閻象이 나와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적에 나라는 후직后稷으로부터 문왕文王에 이르기까지 을 쌓아서 문왕文王천하天下를 셋으로 나누어 그 둘을 소유하고도 나라를 복종하여 섬기셨습니다.
明公 雖奕世克昌이나 未若有周之盛注+奕, 猶重也.하고 漢室雖微 未若殷紂之暴也니이다 默然하다
명공明公이 비록 누대에 걸쳐 번창하였으나 나라의 성대함만은 못하고注+(거듭)과 같다., 나라 황실이 비록 미약하나 나라 주왕紂王의 포학함과는 같지 않습니다.” 원술이 묵묵히 아무런 말도 못 하였다.
聘處士張範하니 使其弟承으로 謝之한대 謂曰 孤以土地之廣 士民之衆으로 欲徼福齊桓하고 擬迹高祖하니 何如
원술袁術처사 장범處士 張範을 초빙하자, 장범이 그 아우 장승張承을 보내어 사양하였다. 원술이 장승에게 이르기를 “내가 광대한 토지와 수많은 사민士民으로 재 환공齊 桓公의 복을 바라고 한 고조漢 高祖에게 자취를 견주고자 하니, 어떠한가?” 하자,
承曰 在德이요 不在强이니이다 夫用德以同天下之欲이면 雖由匹夫之資하여 而興霸王之功이라도 不足爲難이어니와
장승이 말하기를 “이는 에 달려 있고 세력의 강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무릇 으로써 천하 사람들이 바라는 바에 부응하면 비록 필부匹夫의 밑천을 가지고 패자霸者왕자王者을 일으키더라도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若苟欲僭擬하여 干時而動이면 衆之所棄 誰能興之리오하니 不悦하다
만약 분수에 넘치게 참람하여 시세時勢를 어기면서 하면 이는 사람들이 버리는 바이니, 어느 누가 그로 하여금 흥성하게 하겠습니까.” 하니, 원술이 기뻐하지 않았다.
孫策 聞之하고 與術書曰 湯, 武雖有聖德이나 假使時無失道 無由逼而取也
손책孫策이 이 소식을 듣고 원술袁術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었다. “탕왕湯王무왕武王이 비록 성덕聖德이 있었지만 만약 당시에 걸왕桀王주왕紂王를 잃음이 없었다면 걸왕과 주왕을 핍박하여 천하를 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今主上 非有惡於天下 徒以幼小 脅於强臣하니 異於湯, 武之時니이다
지금 주상主上께서는 천하에 을 행함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나이가 어려 강한 신하들에게 협박을 받으실 뿐이니, 탕왕湯王무왕武王의 때와 다릅니다.
且董卓 貪淫驕陵하여 志無紀極이나 至於廢主自興하여는 亦猶未也로되 而天下同心疾之어든
또한 동탁董卓이 탐욕스럽고 음탕하며 교만하고 흉포하여 뜻에 한도가 없었으나 천자를 폐위하고 스스로 천자가 되는 짓은 또한 오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천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況效尤而甚焉者乎注+效, 學. 尤, 過也. 左傳 “尤而效之, 罪又甚焉.”잇가 忠言逆耳 駁議致憎이나 苟有益於尊明이면 無所敢辭注+駮議致憎, 言以持異議致憎疾也.니이다
하물며 그의 잘못을 본받으면서 그보다 더 심한 짓을 하는 자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注+는 배움이고 는 허물(잘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24년(B.C.636) 조에 “〈남의 잘못을〉 허물로 여기면서 그 허물을 본받는다면 가 더욱 심한 것이다.” 하였다.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고 반박하는 의논은 증오를 초래하나 진실로 존명尊明께 유익함이 있으면 감히 사양하지 않겠습니다.”注+박의치증駁議致憎”은 남과 다른 의논을 제기하여 증오憎惡질시疾視를 초래함을 말한다.
始料策必與己合이러니 及得其書 愁沮發疾이어늘 遂絶之하다
원술이 처음에는 손책이 반드시 자기와 뜻이 부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손책의 편지를 받고는 근심하고 기운이 꺾여 병이 나니, 손책이 마침내 원술과 절교하였다.
至是 僭號於壽春하여 自稱仲家라하고 置百官하며 郊祀天地注+號其國曰仲.하다
】 이때에 이르러 원술袁術수춘壽春에서 참람하게 칭제稱帝하여 스스로 국호國號중가仲家라 칭하고 백관百官을 설치하고 천지天地교사郊祀를 지냈다.注+원술袁術이 그 나라를 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沛相陳珪 少與術遊注+珪, 球弟子也.러니 質其子而以書召之하니
패국상 진규沛國相 陳珪가 젊었을 적에 원술과 교유했었는데注+진규陳珪진구陳球의 아우의 아들이다. 원술이 그 아들을 볼모로 삼고 편지로 그를 부르니,
珪答書曰 足下陰謀不軌하여 以身試禍하니 欲吾營私阿附인대 有死不能也로라
진규陳珪가 답서를 보내기를 “족하足下가 은밀히 반역을 도모하여 자신으로써 를 시험하니, 나로 하여금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여 그대에게 아부하기를 바란다면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따르지 않겠다.” 하였다.
欲以金尙爲太尉러니 尙不許而逃去어늘 殺之하다
원술이 김상金尙태위太尉로 삼고자 하였는데 김상이 허락하지 않고 도망가자, 원술이 그를 죽였다.
】 3월에 원소袁紹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아 기주冀州청주靑州유주幽州병주幷州의 네 를 겸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持節 : 漢나라 말엽과 魏晉南北朝 시기에 지방의 軍政을 관장한 관리에게 종종 이와 유사한 칭호를 붙이기도 하였는바, 使持節은 中級 이하의 관리를 주살할 수 있고, 持節은 관직이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있고, 假節은 軍令을 어긴 자를 죽일 수 있었다.
역주2 袁術……殺故兗州刺史金尙 : “이보다 앞서 詔令을 내려 金尙을 兗州刺史로 삼았는데 曹操가 맞아 공격해서 패주시켰으니, 그렇다면 上任(부임)하지 못한 것인데 옛 관직을 쓴 것은 어째서인가. 충절을 인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金尙이 비록 상임하지 못하였으나 죽임을 당함에 ‘故刺史’라고 썼고, 呂範이 비록 印綬가 내려지지 않았으나 卒함에 ‘大司馬’라고 썼으니, 모두 어짊을 인정한 것이다.[先是詔以尙刺兗州 操逆擊走之 則未上也 書故官 何 予節也 是故金尙雖未上 而見殺書故刺史 呂範雖印綬未下 而卒書大司馬 皆予賢也]” ≪書法≫ “袁術이 僭逆하였을 적에 金尙이 몸을 더럽히지 않았기 때문에 원술이 稱帝한 아래에 ‘殺’자를 쓰고 김상의 관직을 썼으니, 이는 김상이 충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것을 인정한 것이다.[袁術僭逆 金尙能不爲所汙 故書殺書官於術稱帝之下 所以予其死節也]” ≪發明≫
역주3 當塗高 : 길을 당하여 높고 크다는 뜻으로 魏闕을 가리킨다. 魏闕은 古代 宮門 밖 양쪽에 높이 솟은 樓觀인데 이 누관 아래에는 항상 法令이나 敎令을 걸어놓은 장소로 삼았는바 높다 하여 魏闕이라 명칭하였다. 이는 곧 魏나라가 漢나라를 뒤이을 讖言이라 한다.
역주4 德運은……낳는다 : 五德은 五行의 德으로 오덕의 운행은 木이 火를 낳고 火가 土를 낳고 土가 金을 낳고 金이 水를 낳고 水가 木을 낳음을 이른다. 古代의 王朝는 오행 중에 한 가지를 들어 그 왕조의 상징으로 삼고, 그 오행에 배당된 색과 수를 사용하였는바, 木德의 색은 靑色이고 수는 三과 八이며, 火德의 색은 赤色이고 수는 二와 七이며, 土德의 색은 黃色이고 수는 五와 十이며, 金德의 색은 白色이고 수는 四와 九이며, 水德의 색은 黑色이고 수는 一과 六이었다. 漢나라는 火德이며 火는 土를 낳으므로 袁術이 土德으로 왕(황제) 노릇을 하려고 한 것이다.
역주5 以袁紹爲大將軍……幷四州 : “앞에서 ‘현지에 나아가 袁紹를 右將軍에 임명하였다.’라고 쓰고 이어서 ‘원소를 太尉로 삼았다.’라고 썼는데, 여기에서 또 ‘원소를 大將軍으로 삼아 冀州․靑州․幽州․幷州의 네 州를 겸하여 감독하게 하였다.’라고 썼으니, ‘自爲’라고 쓴 것과는 또한 다르다. 그렇다면 원소를 인정한 것인가. 이는 비판한 것이다. 비판함은 어째서인가. 원소가 勤王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資治通鑑綱目≫에서 그 恩數(조정에서 내린 관작의 등급)를 낱낱이 쓴 것은 그를 부끄럽게 하기 위한 것이다.[前書卽拜紹爲右將軍 繼書以紹爲太尉 於是又書以紹爲大將軍 兼督冀靑幽幷四州 與書自爲者亦異矣 然則予之歟 譏也 其譏 何 紹不勤王 綱目歷書其恩數 所以愧之也]” ≪書法≫

자치통감강목(10)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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