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曹操討張繡하여 軍于淯水한대 繡擧衆降이러니 操納張濟之妻하니 繡恨之하여 襲擊操軍하고 殺操長子昂하니 操中流矢하여 敗走하다
諸軍이 大亂호되 平虜校尉于禁이 獨整衆而還이러니 道逢靑州兵이 劫掠人하고 禁이 數其罪而擊之하다
靑州兵이 走詣操하다 禁旣至하여 先立營壘하고 不時謁이러니 或이 謂禁호되 宜促詣公辨之하라한대
禁曰 今賊在後하니 追至無時라 不先爲備하면 何以待敵이리오하고 徐鑿塹安營訖에 乃入謁하고 具陳其狀하다
操曰 淯水之難
에 吾猶狼狽
어늘 將軍
이 在亂能整
하여 討暴堅壘
하니 有不可動之節
注+討暴, 謂擊劫掠者. 堅壘, 謂先鑿塹安營也.이라
雖古名將이라도 何以加之리오하고 於是에 封益壽亭侯하다
目
袁紹與操書에 辭語驕慢하니 操謂荀彧, 郭嘉曰 今將討不義而力不敵하니 何如오
對曰 劉, 項之不敵은 公所知也라 今紹有十敗하고 公有十勝하니 紹雖彊이나 無能爲也라
紹
는 繁禮多儀
하고 公
은 體任自然
하니 此
는 道勝也
니이다 紹
는 以逆動
하고 公
은 奉順以率天下
하니 此
는 義勝也
注+奉天子以率天下, 於理爲順.니이다
桓靈以來
로 政失於寬
이어늘 紹
는 以寬濟寬故
로 不攝
注+攝, 整也.하고 公
은 糾之以猛
하여 而上下知制
하니 此
는 治勝也
니이다
紹는 外寬內忌하고 用人而疑之하여 所任이 唯親戚子弟요 公은 外易簡而內機明하여 用人無疑하고 唯才所宜하여 不間遠近하니
此는 度勝也니이다 紹는 多謀少決하여 失在後事하고 公은 得策輒行하여 應變無窮하니 此는 謀勝也니이다
目
紹는 高議揖遜하여 以收名譽하니 士之好言飾外者 多歸之하고
公은 以至心待人하고 不爲虛美하여 士之忠正遠見而有實者 皆願爲用하니 此는 德勝也니이다
紹는 見人飢寒하면 恤念之하여 形於顔色이나 其所不見은 慮或不及하고
公은 於目前小事엔 時有所忽이나 至於大事하여는 與四海接하고
恩之所加에 皆過其望하며 雖所不見이라도 慮無不周하니 此는 仁勝也니이다
紹는 大臣爭權하여 讒言惑亂호되 公은 御下以道하여 浸潤不行하니 此는 明勝也니이다
紹는 是非不可知로되 公은 所是를 進之以禮하고 所不是를 正之以法하니 此는 文勝也니이다
紹는 好爲虛勢하여 不知兵要하고 公은 以少克衆하여 用兵如神하여 軍人恃之하고 敵人畏之하니 此는 武勝也니이다
目
操笑曰 如卿所言인댄 孤何德以堪之오 嘉又曰 紹方北擊公孫瓚하니 可因其遠征하여 東取呂布니
若紹爲寇하고 布爲之援이면 此深害也니이다 彧亦曰 不先取呂布면 河北을 未易圖也니이다
操曰 然하다 吾所惑者는 又恐紹侵擾關中하여 西亂羌, 胡하고 南誘蜀, 漢하면 是我獨以兗, 豫로 抗天下六分之五也니 爲將奈何오
彧曰 關中將帥以十數로되 莫能相一하고 唯韓遂, 馬騰이 最彊하니 今若撫以恩德하고 遣使連和하면
雖不能久安이나 比公安定山東엔 足以不動이라 侍中鍾繇有智謀하니 若屬以西事하면 公無憂矣리이다
操乃表繇以侍中守司隷校尉
하여 持節督關中諸軍
하고 特使不拘科制
注+使不拘泥科條制度, 得便宜從事.하다
繇至長安하여 移書騰, 遂等하여 爲陳禍福하니 騰, 遂各遣子入侍하다
目
孫策이 聞之하고 與術書曰 湯, 武雖有聖德이나 假使時無失道면 無由逼而取也라
今主上이 非有惡於天下요 徒以幼小로 脅於强臣하니 異於湯, 武之時니이다
且董卓이 貪淫驕陵하여 志無紀極이나 至於廢主自興하여는 亦猶未也로되 而天下同心疾之어든
況效尤而甚焉者乎
注+效, 學. 尤, 過也. 左傳 “尤而效之, 罪又甚焉.”잇가 忠言逆耳
요 駁議致憎
이나 苟有益於尊明
이면 無所敢辭
注+駮議致憎, 言以持異議致憎疾也.니이다
術이 始料策必與己合이러니 及得其書에 愁沮發疾이어늘 策이 遂絶之하다
目
【목目】 조조曹操가 장수張繡를 토벌할 적에 육수淯水에 군대를 주둔하였는데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항복하였다. 조조가 장제張濟의 처妻를 〈시침하는 희첩姬妾으로〉 맞아들이니, 장수가 원한을 품고서 조조의 군대를 습격하고 조조의 장자 조앙長子 曹昂을 죽이니, 조조는 유시流矢에 맞아 패하여 달아났다.
이때에 조조 휘하의 각 군軍이 크게 혼란하였는데, 평로교위 우금平虜校尉 于禁만이 홀로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왔다. 우금은 길에서 사람들을 겁박하고 약탈하는 청주병靑州兵을 만나 그 죄를 낱낱이 열거하고 공격하였다.
청주병이 달아나 조조에게 가서 이를 고자질하였다. 우금은 진영에 도착한 다음 먼저 영루營壘를 세우느라 제때에 조조를 배알하지 못하였다. 어떤 이가 우금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급히 조공曹公에게 가서 〈청주병을 공격한 일을〉 해명해야 합니다.” 하니,
우금이 말하기를 “지금 적들이 뒤에 있으니, 언제 추격해올지 모른다. 먼저 대비하지 않으면 어떻게 적들을 맞아 싸우겠는가.” 하고 서서히 참호塹壕를 파고 영루營壘를 안전하게 만든 뒤에 비로소 들어가 조조를 배알하고 전후의 상황을 갖추어 아뢰었다.
조조는 말하기를 “
육수淯水에서의 난리에 나도 오히려
낭패狼狽하였는데, 장군이 혼란한 와중에서도 군대를 제대로 정비하여 포학한 무리를 토벌하고
영루營壘를 안전하게 만들었으니, 동요시킬 수 없는
기절氣節이 있다.
注+“토포討暴”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약탈하는 청주병을 공격한 것을 이른다. “견루堅壘”는 먼저 참호塹壕를 파고 영루營壘를 안전하게 만든 것을 이른다.
비록 옛날의 명장名將이라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하고 이에 익수정후益壽亭侯에 봉하였다.
目
【목目】 원소袁紹가 조조曹操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언사가 거만하고 무례하였다. 조조가 순욱荀彧과 곽가郭嘉에게 이르기를 “지금 의롭지 못한 원소를 토벌하고자 하는데 힘이 대등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두 사람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힘이 대등하지 못하였던 것은 공公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지금 원소에게는 열 가지의 패배할 이유가 있고 공公에게는 열 가지의 이길 이유가 있으니, 원소가 비록 강하지만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원소는
예의禮儀가 번거로운데
공公은 자연에 맡기니, 이는
도道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도리를 거슬려 행하는데
공公은 순리를 받들어 천하를 통솔하니, 이는
의義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注+천자天子를 받들어 천하를 통솔함은 도리에 있어서 순順함이 되는 것이다.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이래로 정사가 너무 너그러워 잘못되었는데, 원소는 너그러움으로써 너그러움을 구제하기 때문에 정돈하지 못하는데
注+섭攝은 정제整齊함이다. 공公은 엄함으로써 바로잡아서
상하上下가 제재할 줄을 아니, 이는 다스림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겉으로는 너그러우나 속으로는 시기하고 사람을 쓰면서도 의심해서 임용한 자들은 오직 친척親戚과 자제子弟일 뿐인데, 공公은 겉으로는 너그럽고 소탈하면서도 속으로는 기지機智가 밝아서 사람을 씀에 의심함이 없고 오직 재주의 마땅함만을 살펴 원근遠近(친소親疏)을 따지지 않으니,
이는 도량度量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계책이 많으나 결단력이 부족하여 일을 뒤늦게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는데 공公은 계책을 얻으면 즉시 행하여 변화에 대응해서 다함이 없으니, 이는 지모智謀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目
【목目】 원소袁紹는 의논이 고명하고 읍양揖讓하여 명예를 거두니 선비들 중에 말을 좋아하고 외면을 꾸미는 자들이 그에게 많이 귀의하는데
공公은 지극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헛되이 찬미하지 않아서 충성스럽고 정직하며 원대한 식견과 실제 재주가 있는 선비들이 모두 쓰이기를 원하니, 이는 덕德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을 보면 가엾게 여기고 염려하여 이러한 생각이 낯빛에 나타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혹 미치지 못하는데
공公은 목전의 작은 일에 대해서는 때로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으나 큰일에 이르러서는 사해四海와 서로 접하고
은혜가 베풀어지는 바에 모두 그 소망을 넘으며 비록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생각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인仁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대신大臣들이 권력을 다투어서 참소하는 말로 미혹시키고 어지럽히는데 공公은 아랫사람을 도道로써 어거하여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가 행해지지 않으니, 이는 밝음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데 공公은 옳게 여기는 사람은 예禮로써 올려주고 옳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법法으로써 바로잡으니, 이는 문文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원소는 허장성세를 좋아하여 용병用兵의 요점을 알지 못하는데 공公은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이겨서 용병술用兵術이 신神과 같아 장수와 군사들이 믿고 의지하며 적들이 두려워하니, 이는 무武에 있어서 이긴 것입니다.”
目
【목目】 조조曹操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경卿이 말한 바와 같다면 내가 무슨 덕德으로 이를 감당하겠는가.” 하였다. 곽가郭嘉가 또 말하기를 “원소袁紹가 지금 북쪽으로 공손찬公孫瓚을 공격하고 있으니, 그가 원정遠征하는 틈을 타 동쪽으로 가서 여포呂布를 공격해 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원소가 우리를 침략하고 여포가 원소의 원조가 된다면 이는 큰 폐해가 될 것입니다.” 하자, 순욱荀彧이 또한 말하기를 “먼저 여포를 공격해 취하지 않으면 하북河北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의혹하는 바는 또 원소가 관중關中을 침범해 소요를 일으켜서 서쪽으로 강족羌族과 호족胡族과 연합해 난亂을 일으키고 남쪽으로 촉蜀과 한중漢中을 유인하여 결탁할까 두려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오직 연주兗州와 예주豫州만을 가지고 천하의 6분의 5에 대항하는 것이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 하니,
순욱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관중關中의 장수가 열 명으로 헤아려지는데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될 수 없고, 오직 한수韓遂와 마등馬騰이 가장 강성하니 지금 만약 은덕恩德으로 안무安撫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연합하면
비록 오랫동안 평안할 수는 없으나 공公이 산동山東을 안정시킬 때까지는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중 종요侍中 鍾繇가 지모智謀가 있으니, 만약 그에게 서쪽의 일을 맡기면 공公께서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조조가 이에
표문表文을 올려서 종요를
시중 수사예교위侍中 守司隷校尉로 삼게 하여
로
관중關中의 각
군軍을 감독하게 하고, 특별히
과제科制(법조문과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注+〈“특사불구과제特使不拘科制”는〉 종요鍾繇로 하여금 과조科條와 제도制度에 구애받지 않고 편의에 따라 종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종요가 장안長安에 이르러 마등馬騰과 한수韓遂 등에게 공문公文을 보내어 화복禍福(이해利害)을 말해주니, 마등과 한수가 각각 아들을 보내어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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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원술袁術이 처사 장범處士 張範을 초빙하자, 장범이 그 아우 장승張承을 보내어 사양하였다. 원술이 장승에게 이르기를 “내가 광대한 토지와 수많은 사민士民으로 재 환공齊 桓公의 복을 바라고 한 고조漢 高祖에게 자취를 견주고자 하니, 어떠한가?” 하자,
장승이 말하기를 “이는 덕德에 달려 있고 세력의 강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무릇 덕德으로써 천하 사람들이 바라는 바에 부응하면 비록 필부匹夫의 밑천을 가지고 패자霸者와 왕자王者의 공功을 일으키더라도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만약 분수에 넘치게 참람하여 시세時勢를 어기면서 동動하면 이는 사람들이 버리는 바이니, 어느 누가 그로 하여금 흥성하게 하겠습니까.” 하니, 원술이 기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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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손책孫策이 이 소식을 듣고 원술袁術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었다.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비록 성덕聖德이 있었지만 만약 당시에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이 도道를 잃음이 없었다면 걸왕과 주왕을 핍박하여 천하를 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주상主上께서는 천하에 악惡을 행함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나이가 어려 강한 신하들에게 협박을 받으실 뿐이니,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의 때와 다릅니다.
또한 동탁董卓이 탐욕스럽고 음탕하며 교만하고 흉포하여 뜻에 한도가 없었으나 천자를 폐위하고 스스로 천자가 되는 짓은 또한 오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천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하물며 그의 잘못을 본받으면서 그보다 더 심한 짓을 하는 자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注+효效는 배움이고 우尤는 허물(잘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4년(B.C.636) 조에 “〈남의 잘못을〉 허물로 여기면서 그 허물을 본받는다면 죄罪가 더욱 심한 것이다.” 하였다.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고 반박하는 의논은 증오를 초래하나 진실로
존명尊明께 유익함이 있으면 감히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注+“박의치증駁議致憎”은 남과 다른 의논을 제기하여 증오憎惡와 질시疾視를 초래함을 말한다.
원술이 처음에는 손책이 반드시 자기와 뜻이 부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손책의 편지를 받고는 근심하고 기운이 꺾여 병이 나니, 손책이 마침내 원술과 절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