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綱] 오환烏桓이 다시 변방을 침범하므로 범명우范明友를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공격하게 하였다.
綱
[綱] 겨울 11월에 양창楊敞을 승상丞相으로 삼았다.
역주
역주1築遼東玄菟城 :
“일반 城은 쓰지 않고, 반드시 중요한 관방[關要]인 뒤에야 썼다. 그러므로 內城이면 ‘京都’라고 쓰고 外城이면 ‘關塞’라고 쓴 것이다.[城不書 必關要而後書 故內城書京都 外城書關塞]” 《書法》
역주2以楊敞爲丞相 :
“元鳳 5년(B.C. 76)에 ‘丞相 王訢이 卒하였다.’고 쓴 뒤로부터 이때에 丞相이 지위를 비운 지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楊敞을 丞相으로 삼은 것’을 썼으니, 이는 霍光이 전횡한 것이다.[自五年書丞相訢卒 於是丞相虛位者一年 始書楊敞 光專也]” 《書法》 “지난해 겨울에 ‘丞相 王訢이 卒하였다.’고 썼는데, 금년 겨울에 이르러 비로소 ‘楊敞을 승상으로 삼았다.’고 썼으니, 이는 1년이 넘도록 정승[揆度]의 지위를 비워둔 것이니, 국가의 체통도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武帝가 加官을 더 둔 뒤로부터 승상은 인원만 채운 자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승상이 국가의 큰일에 모두 참여하여 듣지 못했으니, 국가의 큰일은 예컨대 顧命과 廢立과 같은 따위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쓴 것을 살펴보면 이것을 상상해 알 수 있으니, 군자가 어찌 세 번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去冬書丞相訢卒 至今冬 始書以楊敞爲丞相 則是曠年虛揆度之位 其於國體 從可知矣 爰自武帝增重加官 而丞相爲具員 是以國之大事 皆不與聞 如顧命廢立之類 觀之綱目所書 蓋可想見 君子安得不爲之三嘆也]” 《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