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歲不用歲陽名, 只用甲子
注+依史記年表, 以從簡便..
大書於橫行之上, 甲字‧子字, 別之以朱, 其餘皆墨.
凡正統, 周自篇首, 秦‧漢‧晉‧隋‧唐自初幷天下, 皆大書於橫行之下, 朱書國號
注+如云周‧秦‧漢‧晉‧隋‧唐.‧ 諡號
注+如周云威烈王, 秦云始皇帝, 漢云太祖高皇帝, 世祖光武皇帝, 晉云世祖武皇帝, 隋云高祖文皇帝, 唐云高祖神堯皇帝.‧君名
注+如云午. ○惟篇首前無所承, 故立此例. 後有卽位在今年內者用之.‧年號
注+周‧秦‧漢初未有如晉卽云太康, 隋云開皇, 唐云武德., 墨書某年
注+如周云二十三年, 秦云二十六年, 漢云五年, 晉云元年, 隋云九年, 唐云七年.,
次年以後, 但於行下墨書某年
注+如威烈王云二十四年..
注+自“次年以後”至“墨書某年”, 舊本誤在後條“朱注列國”之下.
篇首周年之下, 朱注列國
注+如云秦‧晉‧楚‧齊‧燕‧魏‧韓‧趙., 墨注諡爵
注+如云簡公‧烈公之類. 惟三晉初爲侯而不改元, 故未書諡爵.‧君名
注+如止‧如當之類, 無則闕之.‧某年.
所注列國, 頗以興起先後爲次, 而於新舊之間, 以圈隔之.
其末又以圈隔, 下朱註總結統舊國若干, 新國若干, 凡若干國.
次年以後, 唯元年註之如前法
注+如燕僖公元年之類, 不結. 有增損者, 依例結之, 新舊竝如前結..
注+自“墨注諡爵”至“凡若干國”, 舊本誤在後條“其不成君 亦依正統已絶之例”下. “唯元年注之如前法”句上, 舊本又“列國”二字, 別爲一條. 今僭刪此二字, 依前後條之例, 增“次年以後”四字, 而屬於此.
凡天子繼世, 則但於行下朱書諡號
注+如安王‧二世皇帝之類. 不名者, 名已見. 其後有被廢無謚者, 但曰帝某, 而不用後人所貶之爵, 以其非有天下之號也.‧年號
注+如漢建元之類., 墨書元年
注+周則列國之元亦注其下..
建國‧僭國之大者, 則於年下朱書國名‧諡號‧姓名
注+如楚隱王陳勝‧魏文帝曹丕之類. 無諡者, 但云某王某.‧年號
注+如魏黃初之類., 墨注元年.
其簒賊于統, 而正統已絶, 無年可繫, 則朱注其國名, 墨注年號於行下
注+如漢之呂氏‧新莽之類..
正統雖絶, 而故君尙存, 則追繫正統之年, 而注其下
注+如唐之武氏, 用范氏唐鑑及胡氏補遺義例..
凡無統自更端處
注+如秦昭襄王五十二年, 楚‧漢元年, 吳黃武元年, 宋永初元年, 隋義寧元年, 梁開平元年., 卽於行下分注諸國之年, 大者紀年, 小者紀元, 朱書, 新舊首尾增損, 皆如前法.
무릇
세歲는
을 쓰지 않고 단지
갑자甲子를 쓴다.
注+① 《사기史記》 〈연표年表〉에 따라 간편함을 좇았다.
광곽匡郭의 가로줄 위에 ‘갑甲’자와 ‘자子’자를 크게 써서 붉은색으로 구분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검은색으로 쓴다.
무릇
정통正統은,
주周나라는
편수篇首부터,
진秦나라‧
한漢나라‧
진晉나라‧
수隋나라‧
당唐나라는 처음 천하를 통일한 때부터 모두
광곽匡郭의 가로줄 아래에 크게 쓰는데, 붉은색 글씨로
국호國號注+① 예를 들면 주周‧진秦‧한漢‧진晉‧수隋‧당唐이다.,
시호諡號注+② 예를 들면 주周나라는 위열왕威烈王, 진秦나라는 시황제始皇帝, 한漢나라는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세조광무황제世祖光武皇帝, 진晉나라는 세조무황제世祖武皇帝, 수隋나라는 고조문황제高祖文皇帝, 당唐나라는 고조신요황제高祖神堯皇帝이다.,
군명君名注+③ 예를 들면 이다. ○,
연호年號注+④ 주周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 초기에는 이를테면 진晉나라의 태강太康, 수隋나라의 개황開皇, 당唐나라의 무덕武德처럼 연호가 없었다.를 썼고, 검은색 글씨로
모년某年을 썼다.
注+⑤ 예를 들면 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해부터는 단지 가로줄 아래에 검은색 글씨로
모년某年注+⑥ 예를 들면 위열왕威烈王의 경우 24년이라 한 것이다.이라 썼다.
注+⑦ “차년이후次年以後”부터 “묵서모년墨書某年”까지는 구본舊本에 잘못되어 다음 조항의 “주주열국朱注列國”의 아래에 있었다.
편수篇首의
주周나라 몇 년의 아래에
열국列國을 붉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고
注+① 예를 들면 진秦나라, 진晉나라, 초楚나라, 제齊나라, 연燕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 조趙나라 등이다.,
시작諡爵注+② 예를 들면 간공簡公과 열공烈公의 경우이다. 삼진三晉은 처음으로 후侯가 되었고 개원改元을 하지 않았으므로 시작諡爵을 쓰지 않았다.과
군명君名注+③ 예를 들면 의 경우이다. 이름이 없으면 기록하지 않았다.과
모년某年을 검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았다.
주석으로 붙인 열국은 대개 나라가 생긴 선후로 차례를 삼았는데, 오래된 나라와 새로 생긴 나라의 사이에는 동그라미를 넣어 구분하였다.
그 끝에 다시 동그라미를 넣어 구분하고, 아래에 ‘건국한 지 오래된 나라 몇과 새로 건국한 나라 몇을 합하여 모두 몇 나라’로 총결總結하고 붉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았다.
그 다음 해부터는 오직
원년元年인 경우에만 앞의 방법대로
注+④ 예를 들면 열국列國에 증손增損이 있는 경우에는 범례대로 총결하였고, 오래된 나라와 새로 생긴 나라도 아울러 앞에서 총결한 방법대로 하였다. 주석을 달았다.
注+⑤ “묵주시작墨注諡爵”부터 “범약간국凡若干國”까지는 구본舊本에 잘못하여 다음 조항 “기불성군其不成君 역의정통이절지례亦依正統已絶之例”의 아래에 있었다. “유원년주지여전법唯元年注之如前法” 한 구절 위에는 구본舊本에 또 “열국列國” 두 글자가 있었고 따로 한 조항을 이루었다. 이제 이 두 글자를 잘라내고 전후 조항의 범례에 따라 “차년이후次年以後” 네 글자를 보태어 이 조항에 붙였다.
무릇
천자天子가 선왕을 계승하면 단지 광곽의 가로줄 아래에 붉은색 글씨로
시호諡號注+① 예를 들면 주周나라 안왕安王과 진秦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의 경우이다.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름을 이미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폐위廢位를 당하여 시호諡號가 없는 경우에는 단지 ‘제모帝某’라 하고, 후세 사람이 폄하한 작위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것이 천하를 소유한 호칭이 아니기 때문이다.와
연호年號注+② 예를 들면 한漢나라 건원建元의 경우이다.를 쓰고, 검은색 글씨로
원년元年을 썼다.
注+③ 주周나라는 열국列國의 원년元年도 그 아래에 주석을 달았다.
그 다음 해부터는 편수篇首의 다음 해에 사용한 방법대로 하였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후는 열국列國에 다시 주석을 달지 않았다.
◑建國과
참국僭國이 큰 경우에는
연조年條 아래에 붉은색 글씨로
국명國名과
시호諡號,
성명姓名注+① 예를 들면 초楚나라 은왕隱王 진승陳勝과 위魏나라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경우이다. 시호가 없으면 단지 ‘모왕모某王某’라고 한다.,
연호年號注+② 예를 들면 위魏나라 황초黃初(魏 문제文帝의 연호, 220~226)의 경우이다.를 쓰고, 원년은 검은색 글씨로 썼다.
다음 해부터는 국명國名을 붉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았고, 연호年號와 모년某年은 검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았다.
건국建國과 참국僭國이 작은 경우에는 주周나라 열국列國의 범례에 따랐다.
단 연호年號는 검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았고, 그동안 증손增損된 오래된 나라와 새로 생긴 나라도 또한 앞의 방법대로 하였다.
정통正統에서
찬적簒賊하였는데 정통이 이미 끊어져서 연계를 할
연조年條가 없으면,
광곽匡郭의 가로줄 아래에 그
국명國名을 붉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고
연호年號를 검은색 글씨로 주석을 달았다.
注+① 예를 들면 한漢나라 와 의 경우이다.
정통이 비록 끊어졌더라도 옛 임금이 생존해 있으면 정통의
연조年條를 좇아서 연계하고 그 아래에 주석을 달았다.
注+② 예를 들면 의 경우로 및 의 의례義例를 따랐다.
불성군不成君 또한
정통正統이 이미 끊어졌을 때의 범례에 따랐다.
注+① 예를 들면 의 경우이다.
무릇
무통無統은 별행 앞부분에서부터
注+① 예를 들면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 52년(B.C.255), 초楚나라와 한漢나라 원년(B.C.206), 오吳나라 황무黃武 원년(222), 송宋나라 영초永初 원년(420), 수隋나라 의녕義寧 원년(617), 양梁나라 개평開平 원년(907)이다. 바로 광곽의 가로줄 아래에
제국諸國의 연도를
분주分注하였는데, 큰 글자로
기년紀年을 작은 글자로
기원紀元을 붉은색 글씨로 썼고, 새로 생긴 나라와 오래된 나라가 그동안
증손增損된 것은 모두 앞의 방법대로 하였다.
단 흥폐興廢가 번다하면 세歲를 기준으로 총결總結하였다.
기년紀年을 하지 않은 경우는 또 그 국호國號를 차례로 나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