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의논하는 자들이 모두 이것을 편하게 여겼으나, 변방의 일에 익숙한 낭중郞中 후응侯應은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상上이 그 이유를 묻자, 후응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臣이 들으니, 북쪽 변방은 요동에 이르기까지 밖에 음산陰山이 있어서 산맥이 동서로 천여 리에 이어져 있는데, 초목이 무성하고 새와 짐승이 많으니, 본래 묵특冒頓이 이곳의 험함을 믿고서 활과 화살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효무제孝武帝 때에 영토를 개척해 이곳을 빼앗아서 묵특을 사막의 북쪽으로 물리치고는 요새를 세우고
정수亭隧를 일으키며
외성外城을 쌓고
둔수屯戍를 설치하여 지키니, 그런 뒤에
변경邊境이 다소 편안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注+척斥은 개척함이고, 양攘은 물리친다는 뜻이다.
目
[目]
막북幕北은 지형이 평평하여 초목이 적고 모래벌판이 많으니,
흉노匈奴가 침략해올 경우 그들이 은폐할 곳이 적고, 변경의 요새
이남以南부터는 길이 깊은 산골짜기여서 왕래하기가 어렵습니다.
注+“대사大沙”는 이른바 큰 모래벌판[대적大磧]이다.
변방 장로들의 말에 ‘흉노가 음산陰山을 잃은 뒤로 이곳을 지나게 되면 일찍이 통곡하지 않은 적이 없다.’라 하니, 만약 변방을 수비하는 병졸을 파하면 오랑캐에게 큰 이익을 보여주는 것이니, 이것이 허락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오랑캐들의 실정은 곤궁하면 자신을 낮추어 순종하고, 강하면 교만하여 반역합니다.
예전에 이미 외성外城을 파하고 정수亭隧를 줄였습니다.
편안하여도 위태로움을 잊어서는 안 되니, 다시 파해서는 안 되는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중국中國에는
예의禮義의 가르침과
형벌刑罰의 주벌이 있는데도 어리석은 백성들이 오히려
금령禁令을 범하는데, 더구나
선우單于가 어찌 자신의 부하들이 약속을 범하지 않을 것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注+필必은 지극히 보장한다는 뜻이니, 확고히 보장하는 것이다.
중국中國에서도 관문과 교량을 세우고 변방의 요새를 설치하며 주둔병을 배치함은 단지 흉노 때문만이 아니요, 또한 여러 속국의 항복한 백성들이 옛 나라를 생각하고 도망할까 염려해서이니, 이것이 네 번째 이유입니다.
注+관량關梁은 수로와 육로의 중요한 곳에 설치하니, 산의 좁은 곳을 이용하여 요새를 만들어서 육로로 가는 자를 기찰하는 것을 관문關門이라 하고, 돌을 세우거나 나무를 걸쳐놓거나 배를 연결하여 물을 건너가게 해서 배로 다니는 자를 기찰하는 것을 교량橋梁이라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중국中國에서도 관문과 교량을 만들어 제후를 통제함은 신하들의 나쁜 기도企圖를 사전에 끊는 것이다.” 하였다. 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서강西羌과 가까운 보루와 요새에
한漢나라 관리와 백성들이 이익을 탐하여 오랑캐들의 가축과 처자식을 침략해 도둑질하니, 이 때문에 저들이 원망하여 군대를 일으켜 배반하였는데, 지금 요새에 올라가 지키고 있는 병사를 파하면 우리 병사들을 업신여겨 분쟁하는 조짐이 생길 것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 이유입니다.
注+“승새乘塞”는 성城에 올라가 지키는 것이다. “만역嫚易”는 업신여김[기모欺侮]과 같다.
目
[目] 지난번 종군從軍했던 병사들이 전몰하여 돌아오지 않은 자가 많은데 그 자손들이 도망하여 성城을 나가 이들을 따를 것이니, 이것이 여섯 번째 이유입니다.
변방 사람의 노비들은 생활이 시름겹고 괴로워서 흉노가 살기 좋다는 말을 들으면 도망하려는 자가 많을 것이니, 이것이 일곱 번째 이유입니다.
중국의 도적들이 교활하여 도망해 흉노로 달아나 북쪽으로 나갈 것이니, 이것이 여덟 번째 이유입니다.
요새를 만든 이래로 백여 년 동안 모두 흙으로 담장을 친 것이 아닙니다.
혹은 산의 바위와 돌과 나무, 계곡과 수문을 이용하여 차츰차츰 다져서 축조한 것이니, 병졸과
역도役徒들이 요새를 쌓고 수리하느라 들인 오랜 공력과 비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注+무제武帝가 요새를 만들 때로부터 이때까지 백여 년이다.
의논하는 자들이 그 시작에서 완성까지의 어려움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요새를 허물었다가 갑자기 다른 변고가 생기면 마땅히 다시 수리하여야 할 터인데, 여러 대에 이룩한
공功을 갑자기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아홉 번째 이유입니다.
注+졸卒(갑자기)은 모두 졸猝로 읽는다.
선우單于는 스스로 요새를 지키고 수비하고 방어한다는 이유로 끝없이 청구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저들의 요구를 따라주지 않으면 저들의 시비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오랑캐와 분쟁의 단서를 열고 중국의 견고함을 훼손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열 번째 이유입니다.”
目
[目]
후응侯應이 대답하여 아뢰자,
천자天子가
거기장군車騎將軍 허가許嘉를 시켜 직접
선우單于를 다음과 같이 타이르게 하였다.
注+가嘉는 바로 허가許嘉이니, 허광한許廣漢의 동모제同母弟의 아들이다. 유諭는 깨우쳐 알림을 이른다.
“선우가 글을 올려 예의禮義를 동경하여 사모한다 하니, 백성들을 위하여 계책함이 매우 지극하다.
짐은 매우 가상히 여기노라.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 “위선우爲單于”도 같다.
중국의 사방에 모두 관문과 교량, 성과 요새를 설치한 것은 단지 변방 밖의 침입을 수비하려는 것만이 아니요, 또한 중국의 간사한 자들이 변경을 나가 도둑질하고 해침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도를 밝혀서 사람들의 마음을 전일하게 한 것이니, 공경히 선우의 뜻을 깨우쳐 짐은 조금도 의심함이 없음을 알리노라.
注+〈“경유선우지의敬諭單于之意”는〉 이미 그 뜻을 깨달아 알았다는 말이다.
선우가 변방 수비를 파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길까 염려되므로 허가로 하여금 선우를 타이르게 하노라.”
注+효曉는 알아듣도록 잘 타일러주는 것이다.
선우가 사례하기를 “어리석은 제가 큰 계책을 알지 못했는데, 천자께서 다행히 대신大臣을 시켜 말씀해주시니, 매우 고맙습니다.” 하였다.
선우는 돌아가
왕소군王昭君을
영호연지寧胡閼氏라 이름하였다.
注+〈“영호寧胡”는〉 오랑캐가 그녀를 얻어 나라가 안녕安寧하다는 말이다.
目
[目]
유향劉向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注+향向은 본명이 갱생更生(경생)이니 이때에 개명하였다.
“
질지선우郅支單于가
한漢나라의
사자使者를 가두어 죽이고 외국에 폭로하여 천자국의 막중한 위엄을 손상하고 훼손하니,
注+“훼중毁重”은 장중한 위엄을 훼손함을 이른다. 천자께서 크게 노하고 토벌하고자 하여 마음에 잊으신 적이 없으셨는데,
도호都護 감연수甘延壽와
부교위副校尉 진탕陳湯이 성상의 뜻을 받들고 조상의 신령에 의지하여 백 번 죽을 계책을 내고 먼 지역으로 쳐들어가서, 마침내
강거康居 나라를 지나고
삼중三重의
질지성郅支城을 점령하여 질지선우의 수급을 베고
곡길谷吉의 치욕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注+마음이 향하는 바를 지指라 한다. 질지성郅支城은 목성木城이 이중으로 되었고 여기에 토성土城을 아울러서 삼중三重이었다.
또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로 하여금 기뻐하고 두려워하여 머리를 조아려 손님으로 와서 북쪽 변방을 수비해서 대대로 신하라고 칭할 것을 원하게 하였으니, 공로가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큰 공을 논하는 자는 작은 허물을 기록하지 않고, 큰 아름다움을 거론하는 자는 작은 하자를 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注+자疵는 병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사마법司馬法》에 ‘군대의 상賞을 한 달을 넘기지 않음은 백성들이 선善을 행한 이로움을 빨리 얻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광리李廣利는 5만의 군대를 버리고 억만 냥의 비용을 허비하고 4년의 노력을 들여서 겨우
준마駿馬 30
필匹을 얻었으니,
注+미靡는 음이 미微이니 흩는다는 뜻이다. 비록
대완국大宛國의
왕王을 목 베었으나, 사사로운 죄악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효무제孝武帝께서는 ‘만 리를 정벌했다.’ 하여 그의 허물을 기록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두 명의 후侯를 봉하고 삼경三卿과 이천석二千石을 제수한 자가 백여 명이었습니다.
目
[目] 그 뒤에 중산애왕中山哀王이 훙薨하자 태자太子가 가서 조문하였다.
왕王은 황제의 어린 아우로
태자太子(황제)와 함께 놀고 강학하면서 장성한 사이였다.
注+유游는 편안히 놂을 이르고 학學은 강학함을 이른다. “상장대相長大”는 함께 거처하며 자라서 장대해짐을 이른다.
그리하여 상上은 슬픔을 그치지 못하였으나 태자는 슬퍼하지 않았다.
상上이 크게 원망하며 말하기를 “어찌 인자하지 못한 사람이 종묘를 받들고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겠는가?” 하고는 사단史丹을 책망하였다.
사단이 관을 벗고 사죄하기를 “신臣은 폐하께서 서글퍼하여 신기神氣를 손상함을 보고, 태자太子에게 눈물을 보여 폐하를 서글프게 하지 말라고 크게 경계하였으니, 신의 죄가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하였다.
이에
상上의 마음이 마침내 풀렸다.
注+“감손感損”은 슬픈 감회가 들어서 신기神氣가 이 때문에 손상됨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