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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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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年(B.C. 219)
임오년(B.C. 219)
二十八年이라
[綱] 나라 시황제始皇帝 28년이다.
帝東巡하야 上鄒嶧山하야 立石頌功業하고
황제가 동쪽으로 순시하여 에 올라 비석을 세워 공과 업적을 칭송하였다.
封泰山立石하고 下禪梁父하고 遂登琅邪하야 立石하고
태산泰山에 비석을 세워 하였고, 태산泰山에서 내려와서 에 이르러 하였으며, 드디어 낭야琅邪에 올라가 비석을 세웠다.
遣徐巿入海하야 求神僊하고 渡淮浮江하야 至南郡而還하다
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서 신선술神仙術을 구하게 하였고, 회수淮水를 건너고 양자강揚子江에서 배를 타고 가 남군南郡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始皇 東行郡縣하야 上鄒嶧山하야 立石頌功德注+行, 去聲. 班志 “魯國鄒縣, 嶧山在北.”할새
[目] 시황始皇이 동쪽으로 가 군현郡縣들을 순행하면서 추역산鄒嶧山에 올라가 비석을 세워 공덕을 칭송하였다.注+(순행)은 거성去聲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나라 추현鄒縣이 있으며, 역산嶧山이 그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동쪽으로 순행하는 진秦 시황제始皇帝동쪽으로 순행하는 진秦 시황제始皇帝
魯儒生 議封禪注+封, 增土也. 天高不可及, 負土於泰山上, 爲壇而祭之, 冀近神靈也. 禪, 除地也. 本作墠, 後改爲禪, 神之也.이러니 或曰 古者封禪 爲蒲車 惡傷山之土石草木注+蒲車, 以蒲草裹車輪.이요
그때 나라의 유생儒生봉선封禪에 대해서 의논하였는데,注+은 흙을 쌓는 것이다. 하늘은 높아서 닿을 수가 없으므로 태산 위로 흙을 져 날라서 을 만들어 제사한 것이니, 이는 신령과 가까워지기를 기대해서이다. 은 땅을 깎는 것이다. 본래 인데, 뒤에 으로 고쳤으니, 신령스럽게 여긴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옛날에 봉선封禪을 할 때 부들로 수레를 감싸서 산의 흙과 돌, 풀과 나무가 상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注+포거蒲車”는 부들로 수레바퀴를 싸는 것이다.
掃地而祭호대 席因葅稭注+葅, 本作蒩, 宗蘇切, 茅藉也. 稭, 通作秸, 訖黠切, 禾藁也. 葅, 所以爲薦. 稭, 所以爲席.이라하야 議各乖異하니
그리고 땅을 쓸고서 제사를 지내되, 띠풀과 짚으로 자리를 깔게 하였습니다.”注+는 본래 로, 종소宗蘇이니, 띠풀을 까는 것이다. 과 통용하여 쓰이며, 흘힐訖黠이니, 짚을 말한다. 천신薦新을 하기 위해서 까는 것이고, 은 사람이 앉기 위해서 까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의논이 각자 달라 일치되지 않았다.
始皇 以其難施用이라하야 遂絀儒生而除車道注+除, 開出也.하고
그러자 시황始皇이 그 의논을 쓰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드디어 유생들을 쫓아내고는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내었다.注+는 열고 나가는 것이다.
上自山陽至顚하야 立石頌德하고
[目] 그런 다음 태산泰山의 남쪽으로부터 산을 올라가 꼭대기에 이르러 비석을 세워 공덕을 칭송하였다.
從陰道下하야 禪於梁父注+山南曰陽, 山北曰陰. 顚, 頂也. 父, 音甫. 梁父, 泰山下小山名也.호대 封藏 皆秘之하니 世不得而記也注+凡封禪, 當用玉牒書藏方石, 有玉檢, 又用石檢十校, 列於石旁. 檢用金繩, 纏以五周, 以水銀和金爲泥, 封之, 印以受命之璽. 又有玉匱, 一長一尺二寸, 以藏上帝之冊. 金匱二, 以藏帝之冊.러라
그러고는 태산 북쪽의 길을 통하여 내려와서 양보梁父에서 을 행하였는데,注+산의 남쪽을 이라 하고, 산의 북쪽을 이라 한다. 은 꼭대기이다. 는 음이 이다. 양보梁父태산泰山 아래에 있는 작은 산의 이름이다.을 하면서 모든 것을 비밀스럽게 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이를 기록할 수가 없었다.注+무릇 봉선封禪을 함에 있어서는 의당 옥첩玉牒봉선서封禪書를 쓴 다음, 이를 네모난 돌 안에 보관하는데, 이 있고, 또 석검石檢 열 개를 돌의 모퉁이에 늘어놓는다. 옥검玉檢석검石檢금승金繩으로 다섯 번을 두르고, 수은水銀을 섞어서 금니金泥를 만들어 봉하고, 수명지새受命之璽의 도장으로 찍는다. 또 옥궤玉匱가 있는데, 한쪽 면의 크기가 1척 2촌이며, 여기에는 상제上帝옥책玉冊을 담아놓는다. 또 금궤金匱 두 개가 있는데, 황제의 옥책玉冊을 담아놓는다.
遂東遊海上하야 祠山川八神注+封禪書 “八神, 一曰天主, 祠天齊. 二曰地主, 祠泰山‧梁父. 三曰兵主, 祠蚩尤. 四曰陰主, 祠三山. 五曰陽主, 祠之罘. 六曰月主, 祠之萊. 七曰日主, 祠成山. 八曰四時主, 祠琅邪.” 注 “天齊, 泉名, 如天之腹齊也. 蚩尤冢在東平郡壽張縣. 三山, 東萊曲成參山, 非海中之三神山也.”하고 南登琅邪하야 作臺刻石注+正義 “琅邪山在密州諸城縣東南, 始皇立層臺於山上.”하다
그러고는 드디어 동쪽으로 바닷가까지 가서 산천山川에게 제사하고,注+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여덟 이 있는데, 첫 번째는 천주天主로, 에서 제사 지내고, 두 번째는 지주地主태산泰山양보梁父에서 제사 지내고, 세 번째는 병주兵主에서 제사 지내고, 네 번째는 음주陰主삼산三山에서 제사 지내고, 다섯 번째는 양주陽主에서 제사 지내고, 여섯 번째는 월주月主에서 제사 지내고, 일곱 번째는 일주日主성산成山에서 제사 지내고, 여덟 번째는 사시주四時主로, 낭야琅邪에서 제사 지낸다.”고 하였다. 그 주에 “천제天齊는 샘의 이름으로, 하늘의 배꼽과 같은 것이다. 치우총蚩尤冢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에 있다. 삼산三山동래東萊 곡성曲成참산參山으로, 바다 속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라가 층대를 만들고 돌에 새겼다.注+사기정의史記正義》에 “낭야산琅邪山밀주密州 제성현諸城縣의 동남쪽에 있으니, 시황始皇이 산 위에 층대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燕人宋毋忌羨門子高之徒 稱有仙道形解銷化之術注+宋毋忌‧羨門子高, 皆慕古人名, 效神仙者. 道經 “月中仙人宋毋忌.” 白澤圖云 “火之精曰宋毋忌.” 蓋其人火仙也. 張曰 “羨門子高, 仙人, 居碣石山上.” 形解, 尸解也, 言將登仙, 假托爲尸, 以解化也. 集仙錄曰 “有死而形如生人者, 有死而足不靑‧皮不皺‧目光不落者, 有死而更生者, 有未斂而失其尸者, 有髮脫而形飛者, 皆尸解也.”하니
사신을 보내 신선을 구하다사신을 보내 신선을 구하다
[目] 처음에 나라 사람 등의 무리가 선도仙道이 있다고 하였다.注+송무기宋毋忌선문자고羨門子高는 모두 옛 사람을 흠모한 사람의 이름으로, 신선을 본받은 사람들이다. 도경道經에는 “월중선인月中仙人이 송무기이다.”라고 하였고, 에는 “을 송무기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그 사람은 화선火仙이다. 장씨張氏가 말하기를 “선문자고라는 선인仙人갈석산碣石山 위에 산다.”라고 하였다.
형해形解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장차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하기 위하여 시신에 가탁하여 신체가 해체되는 것이다. 에 이르기를 “이미 죽었는데도 형체가 산 사람과 같은 경우도 있고, 이미 죽었는데도 발이 푸르게 변하지 않고 피부가 쭈글쭈글해지지 않고, 눈빛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있고, 염습殮襲을 하기 전에 시신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형신形神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모두 시해尸解이다.”라고 하였다.
自齊威宣燕昭王으로 皆信之注+威宣, 謂威王‧宣王也.하야 使人入海하야 求蓬萊方丈瀛洲하니
그러자 나라 위왕威王선왕宣王나라 소왕昭王 등이 모두 그것을 믿어,注+위선威宣나라 위왕威王선왕宣王을 말한다. 사람들을 시켜 바다를 건너가서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瀛洲를 찾게 하였다.
云此三神山 在渤海中하야 去人不遠이로대 患且至則風引船去
삼신산三神山을 찾으러 갔던 사람들이 이르기를, “이 삼신산三神山발해渤海의 바다 가운데 있어 사람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 그곳에 도착하면 바람이 일어나서 배를 끌어가 도착할 수 없는 것이 걱정이다.
嘗有至者하니 諸仙人不死藥 皆在焉이라하더니
일찍이 그곳에 도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여러 신선들과 불사약이 모두 있었다.”라고 하였다.
至是하야 方士徐巿等注+巿, 一作福. 上書言之호대 請得齋戒하야 與童男女 求之라한대
[目] 이때에 이르러서 방사方士 서불徐巿 등이 글을 올려,注+서불徐巿일본一本에는 서복徐福으로 되어 있다. “목욕재계하고서 아주 어린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삼신산三神山불사약不死藥을 찾겠습니다.”라고 하였다.
於是 遣巿하야 發童男女數千人하야 求之하니
이에 시황始皇이 서불을 보내어 아주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수천 명을 뽑아 데리고 가서 그것을 구하게 하였다.
船交海中하야 皆以風爲解注+皆自解說遇風不至也.曰 未能至 望見之焉이라하더라
이에 배가 바다를 오갔는데, 모두들 바람이 불어서 그곳에 도착할 수 없었다고 해명하면서 말하기를,注+모두 바람을 만나 삼신산三神山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능히 그곳에 다다르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始皇 還過彭城注+班志 “楚國有彭城縣, 古彭祖國.”하야 齋戒禱祠하고 欲出周鼎泗水하야 使千人으로 沒水求之弗得注+時人相傳以爲宋太丘社亡, 而周鼎沒於泗水中, 故祠泗水, 欲出周鼎.하다
鼎
[目] 시황始皇이 돌아오다가 팽성彭城을 지날 때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나라에 팽성현彭城縣이 있으니, 옛날에 팽조국彭祖國이 있던 곳이다.”고 하였다. 목욕재계하고 사당에 기도한 다음, 사수泗水에서 건져내고자 하여, 사람 1,000명을 시켜 물속으로 들어가서 찾아보게 하였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注+당시 사람들이 서로 전하기를, “나라의 태구太丘에서 지내는 제사가 없어져서 주정周鼎사수泗水 속으로 사라졌다.”라고 하였으므로, 사수泗水에 제사를 지내어 주정周鼎을 건져내고자 한 것이다.
乃西南渡淮浮江하야 至湘山祠注+詩集傳 “江水出永康軍岷山, 東流與漢水合, 東北入海.” 括地志 “黃陵廟在岳州湘陰縣北, 舜二妃之神. 二妃冢在湘陰縣靑草山上.” 盛弘之荊州記 “靑草湖, 南有靑草山.” 案湘山, 卽此山也. 山近湘水, 廟在山南, 故曰湘山祠.하야는 逢大風하야 幾不能渡하니
이에 다시 서남쪽으로 가 회수淮水를 건넌 다음 양자강揚子江에서 배를 타고 내려갔는데, 에 이르러注+시경집전詩經集傳》 〈주남周南 한광漢廣〉에 이르기를 “강수江水영강군永康軍 민산岷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한수漢水와 합해진 다음, 동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황릉묘黃陵廟악주岳州상음현湘陰縣 북쪽에 있는데, 임금의 두 의 신을 모신다. 두 의 무덤이 상음현湘陰縣 청초산靑草山 위에 있다.”라고 하였다. 의 《형주기荊州記》에 이르기를, “청초호靑草湖의 남쪽에 청초산靑草山이 있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상산湘山은 바로 이 산을 가리킨다. 산이 상수湘水에 가까이 있고, 황릉묘가 산의 남쪽에 있으므로 상산사湘山祠라고 한 것이다. 큰바람을 만나 거의 갈 수가 없게 되었다.
問湘君 何神注+上者, 尊位所在也. 但言上, 不敢言尊號耳. 博士對曰 堯女舜妻 葬此注+博士, 以儒學爲官, 掌通古今.니이다 始皇 大怒하야 伐赭其山注+赭, 音者, 赤色.하고
이에 상이 묻기를, “상군湘君은 어떤 신인가?”注+이란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는 곳이다. 단지 이라고만 말하고, 감히 존호를 칭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라고 하자, 박사博士가 대답하기를, “임금의 딸이고 임금의 아내인데, 이곳에 장사 지냈습니다.”注+박사博士유학儒學으로 관직에 임용된 사람이니, 고금의 일을 관장한다.라고 하니, 진 시황이 크게 노하여 그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게 하였다.注+는 음이 이며, 붉은색을 말한다.
遂自南郡으로 由武關歸하다
그러고는 드디어 남군南郡으로부터 무관武關을 경유하여 돌아왔다.
역주
역주1 鄒嶧山 : 鄒山이나 또는 嶧山이라고 한다.
역주2 :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은 禪이라고 한다.
역주3 梁父(양보) : 태산의 남쪽에 있는 작은 산 이름이다.
역주4 徐巿(서불) : 낭야 출신의 方士이며, 일명 徐福이라고도 한다.
역주5 封藏 :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 玉冊文 등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봉해놓는 것을 말한다.
역주6 여덟 神 : 天主, 地主, 兵主, 陰主, 陽主, 月主, 日主, 四時主를 말한다.
역주7 玉檢 : 옥으로 장식하여 만든 서류함을 말한다.
역주8 天齊 : 山東省 臨淄縣에 있는 샘의 이름이다.
역주9 蚩尤冢 : 東平郡 壽張縣 闞鄕城 안에 있는데 높이가 7丈이고, 백성들이 매년 10월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역주10 之罘山(지부산) : 芝罘山이라고도 한다.
역주11 之萊山 : 萊山이다.
역주12 宋毋忌 : 전국시대 때 燕나라의 方士로, 옛 仙人을 흠모했고, 귀신에 관한 일을 좋아했다. 火仙으로 알려져 있다.
역주13 羨門子高(선문자고) : 옛날의 신선 이름이다.
역주14 形解銷化의 術法 : 사람이 죽으면 형체는 분해되어 없어지고 정신은 날아가서 신선이 되는 것을 말한다.
역주15 白澤圖 :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책이다. 黃帝가 蚩尤를 멸망시킨 뒤 동해에 이르러 桓山에 머물고 있을 때 白澤이란 요괴가 나타나 11,520종이 넘는 고대의 精氣가 요괴로 변한 사실을 말해 주었는데, 黃帝가 白澤이 말한 내용을 기초로 하여 요괴의 형상을 그려 《백택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역주16 尸解 : 신선술의 하나로, 身體만 남겨두고 魂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즉 신선이 되어간 것을 의미한다.
역주17 集仙錄 : 唐나라 말기의 道士인 杜光庭이 저술한 《墉城集仙錄》을 말한다. 모두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주18 周鼎 : 禹임금이 九州의 쇠를 모아 만든 아홉 개의 솥을 말한다. 秦나라 昭襄王 52년(B.C. 255)에 西周를 공격하여 이 九鼎을 탈취하였는데, 하나가 泗水에 빠졌으므로 여덟 개만 秦나라로 들여왔다고 한다. 그 뒤에 秦 始皇이 사수의 周鼎을 꺼내려고 1천 명을 동원해서 물속을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역주19 湘山祠 : 湖南省 岳陽縣 동쪽의 洞庭湖 가운데 있는 산인 君山에 있는 사당으로, 舜임금의 두 妃인 娥皇과 女英을 제사 지냈다.
역주20 盛弘之 : 南朝 宋나라 때 사람으로, 貫籍과 생애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당대의 문장가인 鮑照와 친하게 지냈으며, 《荊州記》 3권을 편찬했는데, 전해지지 않는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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