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태산泰山의 산신령이 임방林放만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찌 72대代에 걸쳐 〈태산泰山에서 봉선한〉 기록을 더럽히겠는가.注+≪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관중管仲이 말하기를 ‘옛날 태산泰山에서 봉封하고 양보산梁父山(양보산)에서 선禪한 자가 72명이다.’ 하였는데, 이오夷吾(관중管仲)가 기록한 것은 12명뿐이니, 옛날 무회씨無懷氏, 복희伏羲, 신농神農, 염제炎帝,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와 제순帝舜, 우왕禹王과 탕왕湯王, 성왕成王이 모두 천명을 받은 뒤에 봉선封禪을 했다.” 하였다.
만약 군현郡縣에서 멀리 관리를 보내 축수祝壽하고 헛된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찬양하면 반드시 그를 머리 깎아서 둔전屯田을 시키겠다.” 하니, 이에 여러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綱
【강綱】 윤달에 〈노魯지역에서〉 환궁하였다.
綱
【강綱】 패성孛星이 자미궁紫微宮에 나타났다.
綱
【강綱】 여름에 홍수가 졌다.
綱
【강綱】 교동후 가복膠東侯 賈復이 졸卒하였다.
目
【목目】 가복賈復은 황제를 따라 정벌할 적에 일찍이 패전한 적이 없었고, 번번이 장수들과 포위망을 뚫어 위급함에서 벗어나곤 하였다.
황제는 가복이 용감하게 적진에 깊이 침투한다 해서 그로 하여금 원정遠征하게 하는 일이 드물었으나 그의 용맹과 충절을 장하게 여겨 항상 자신을 수행하게 하였으므로, 가복은 특정 지역[방면方面]에 대한 공功이 적었다.注+“상자종지常自從之”는 항상 가복賈復을 수행시킴을 이른다.
여러 장수들이 매번 공로를 논할 적에 가복은 일찍이 말하지 못하니, 황제가 번번이 말하기를 “가군賈君의 공功은 내 스스로 안다.” 하였다.
역주
역주1내……생각하는가 :
≪論語≫ 〈子罕〉에는 “孔子의 병환이 위독하자, 子路가 문인으로 하여금 家臣을 삼아 喪을 치르려 하였다. 공자의 병환이 조금 덜하자, 공자는 ‘오래되었구나, 子路가 거짓을 행함이여! 나는 가신이 없는데 가신을 두었으니, 내 누구를 속였는가? 하늘을 속였구나!’ 하셨다.[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病間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라고 하였으며, 〈八佾〉 4장에는 “林放이 禮의 근본을 묻자, 공자는 ‘훌륭하다, 너의 질문이여. 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하고, 喪은 형식적으로 잘 다스려지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라고 대답하셨다.[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하였고, 6장에는 “이때 마침 季氏가 참람하게 泰山에 旅 제사를 지내려 하자, 공자가 계씨의 가신인 冉有에게 ‘네가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느냐?’고 하시니, 염유는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공자는 ‘아, 일찍이 泰山의 신령이 임방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느냐.’ 하셨다.[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라고 하였는바, 황제가 ≪論語≫를 인용하여 참람되게 封禪을 행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