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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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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戌年(A.D.14)
갑술년甲戌年(A.D.14)
天鳳元年이라
나라 왕망 천봉王莽 天鳳 원년이다.
春正月 遣其太傅平晏하여 之洛陽相宅하다
】 봄 정월에, 왕망王莽태부 평안太傅 平晏을 보내 낙양洛陽에 가서 도읍터를 살펴보게 하였다.
下詔하여 將以是歲 行巡狩禮하고 卽于土中하여 居洛陽之都러니
왕망王莽조령詔令을 내려 장차 이해에 순수례巡狩禮를 거행하고 국토의 중앙에 나아가 낙양洛陽의 도성에 거주하려 하였다.
旣而不行하고 先遣晏等相宅하여 圖起宗廟, 社稷, 郊兆云注+相, 視也. 宅, 居也. 壇域塋界, 皆曰兆.이러라
그러나 얼마 지나서 결행하지 않고 먼저 평안平晏 등을 보내 도읍터를 살펴보게 하여 종묘宗廟사직社稷, 교조郊兆 등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다.注+은 살펴봄이고, 은 거주함이다. 제단祭壇의 영역과 무덤의 경계를 모두 라 한다.
三月晦 日食하다
】 3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莽 策免其大司馬逯竝注+逯, 音錄, 姓也.하다
왕망王莽책서策書를 내려 대사마 녹병大司馬 逯竝(녹병)을 면직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이다.
莽自卽眞으로 尤備大臣하여 有言其過失者 輒拔擢注+通鑑 “尤備大臣, 抑奪其權.”하니 孔仁等 以敢擊大臣故 見信任하다
왕망王莽은 진정한 황제의 자리에 나아간 뒤로부터 대신들에 대해 더욱 방비하여, 대신들의 과실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번번이 발탁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왕망이 대신들에 대해 더욱 방비하여 그 권한을 억제하고 빼앗았다.” 하였다. 공인孔仁 등은 대신을 용감하게 공격하였으므로 신임을 받았다.
夏四月 隕霜하여 殺草木하다
】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려 초목이 죽었다.
◑六月 黃霧四塞하다
】 6월에 누런 안개가 사방에 가득하였다.
◑秋七月 大風雨雹하다
】 가을 7월에 거센 바람이 불고 우박이 내렸다.
風拔木하고 飛北闕瓦하고 雹殺牛羊하다
】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무가 뽑히고 북쪽 대궐의 기왓장이 날아갔으며, 큰 우박이 내려 소와 양이 죽었다.
置萬國하다
왕망王莽만국萬國을 설치하였다.
以周官, 王制之文으로 置卒正, 連率, 大尹, 州牧注+王制 “三十國爲卒, 卒有正, 十國爲連, 連有率.” 率, 與帥通.하고 分六鄕, 六尉, 六隊, 六郊, 六服하여 總爲萬國注+六鄕, 分長安城旁六鄕, 置帥各一人. 六尉, 分三輔, 爲京尉․師尉․翊尉․光尉․扶尉․烈尉. 隊, 音遂, 六隊, 南陽爲前隊, 河內爲後隊, 潁川爲左隊, 弘農爲右隊, 河東爲兆隊, 滎陽爲祈隊. 六郊, 益河南屬縣, 滿三十, 置六郊州長各一人. 六服, 倣古六服, 爲維城․維寧․維翰․維屛․維垣․維藩.이러니
왕망王莽은 ≪주관周官≫과 ≪예기禮記≫ 〈왕제王制〉의 글에 따라 졸정卒正연수連率(연수), 대윤大尹주목州牧을 두고注+예기禮記≫ 〈왕제王制〉에 “30개국을 이라 하니 에는 이 있고, 10개국을 이라 하니 에는 가 있다.” 하였으니, (장수)는 와 통한다. 육향六鄕육위六尉, 육수六隊(육수)와 육교六郊, 육복六服으로 나누어 모두 만국萬國으로 만들었다.注+육향六鄕장안성長安城 부근의 육향六鄕을 나누어 각각 한 명을 두었다. 육위六尉삼보三輔를 나누어 경위京尉, 사위師尉, 익위翊尉, 광위光尉, 부위扶尉, 열위烈尉로 만들었다. 는 음이 이니, 육수六隊남양南陽전수前隊, 하내河內후수後隊, 영천潁川좌수左隊, 홍농弘農우수右隊, 하동河東조수兆隊, 형양滎陽기수祈隊라 하였다. 육교六郊하남河南속현屬縣을 더하여 30개를 채워서 육교六郊에 각각 주장州長 한 명을 두었다.
歲復變更하여 一郡 至五易名而還復其故하니 吏民 不能紀하여 每下詔書 輒繫其故名云이러라
그런데 뒤에 해마다 다시 변경하여 한 이 심지어는 다섯 번이나 이름을 바꾸었다가 다시 예전대로 회복하니, 관리와 백성들이 새로운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여 매번 조서詔書를 내릴 때마다 번번이 그 옛 명칭을 달았다.
北邊 大饑하여 人相食하니 하다
】 북쪽 변방에 큰 기근이 들어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으니, 왕망王莽흉노匈奴와 화친하였다.
匈奴求和親이어늘 卽遣使하여 賀單于初立하고 紿言侍子登在라하고 因購求陳良, 終帶等하니
흉노匈奴가 화친을 요구하자, 왕망王莽은 즉시 사신을 보내 선우單于의 즉위를 축하하고는, 시자 등侍子 登이 살아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인하여 진량陳良종대終帶 등을 현상금을 걸고 찾았다.
單于聽命이어늘 燒殺之하다
선우가 명령을 따라 〈이들을 건네주자〉 왕망은 진량과 종대 등을 불태워 죽였다.
緣邊大饑하여 人相食이라 乃徵還諸將하고 罷屯兵하니
】 이때 마침 변방 지역에 큰 기근이 들어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으니, 왕망王莽은 마침내 장수들을 불러 돌아오게 하고 주둔병을 철수하였다.
單于實貪莽賂遺 外不失漢家故事 然內利寇掠하고 又使還 知子登前死하고 怨恨寇虜하여 從左地入不絶注+入爲寇而虜掠.이라
선우單于는 실제로 왕망의 뇌물을 탐하였으므로 겉으로는 나라와 예전부터 해오던 일을 잃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침략하고 노략질하는 것을 이롭게 여겼다. 게다가 또 사신이 돌아온 후에 아들 이 예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원한을 품고 좌지左地(흉노의 동쪽 지역)로부터 침입하여 끊임없이 약탈하고 노략질하였다.注+〈“입부절入不絶”은〉 내지內地로 들어와 침략하고 노략질한 것이다.
使者問單于하면 輒曰 烏桓 與匈奴黠民으로 共爲寇하니 譬如中國有盜賊耳
사자使者가 선우에게 〈추궁하여〉 물으면 번번이 말하기를 “오환烏桓이 우리 흉노匈奴의 간악한 백성들과 함께 침략하니, 비유하면 중국中國에 도적이 있는 것과 같다.
初立持國 威信尙淺이라 盡力禁止하고 不敢有二心이라하니 復發軍屯하다
내()가 이제 막 즉위하여 국정을 주관함에 위엄과 신의가 아직 부족하다. 그러므로 힘을 다해 금지하고 감히 두 마음을 품지 못한다.” 하니, 왕망이 다시 군대를 징발하여 주둔시켰다.
益州蠻夷殺其大尹이어늘 發兵擊之하다
익주益州만이蠻夷대윤大尹을 죽이자, 왕망王莽이 군대를 징발하여 공격하였다.
◑莽 改錢貨法하다
왕망王莽전화법錢貨法을 다시 바꾸었다.
復申下金銀龜貝之貨하여 頗增減其賈直하고 而罷大小錢注+賈, 讀曰價.하고 改作貨布, 貨泉하여 二品竝行注+貨布, 長二寸五分, 廣一寸, 首長八分有奇, 廣八分, 其圜好, 徑二分半, 足枝長八分, 間廣二分, 其文右曰貨, 左曰布, 重二十五銖, 直貨泉二十五. 貨泉, 徑一寸, 重五銖, 文右曰貨, 左曰泉. 枚直一. 古所謂泉布者, 其藏曰泉, 其行曰布, 取名於水泉, 其流行無不徧, 無不徧, 則布之義也. 莽以爲貨二品, 非古義.하니
왕망王莽, 의 화폐에 대한 명령을 다시 내려서 그 가치를 크게 가감하고, 대전大錢소전小錢을 폐지하고注+(값)는 로 읽는다. 다시 화포貨布화천貨泉을 만들어서 두 가지를 함께 유통시켰다.注+화포貨布는 길이가 2 5이고 너비가 1이다. 머리 부분은 길이가 8 남짓에 너비가 8이고, 그 가운데 둥근 구멍은 지름이 2 반이며, 또 두 갈래진 발은 길이가 8이고 사이의 너비가 2이다. 여기에 쓰인 글은 오른쪽은 이고 왼쪽은 이며, 무게는 25이고 가치는 25화천貨泉이다. 화천貨泉은 지름이 1이고 무게가 5이니 여기에 쓰인 글은 오른쪽은 이고 왼쪽은 이며, 한 개의 값은 1이다. 옛날에 이른바 천포泉布라는 것은, 보관했을 때는 이라 하고 유통될 때에는 라 하였으니, 수천水泉에서 이름을 취한 것이다. 수천水泉유행流行하여 두루 흐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두루 흐르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로 의 뜻이다. 그런데 왕망王莽이 화포와 화천을 화폐의 두 종류를 삼았으니, 옛날의 뜻이 아니다.
每一易錢 民用破業而大陷刑이러라
매번 화폐를 변경할 때마다 백성들이 파산하여 크게 죄를 범하였다.
역주
역주1 王莽은……달았다 : 본서 388쪽 지도2 ‘新나라 六尉, 六隊’ 참조.
역주2 六服은……하였다 : 六服은 周나라 여섯 종류의 제후국으로 侯服, 甸服, 男服, 采服, 衛服, 蠻服이다. ≪詩經≫ 〈大雅 板〉에 “价人이 울타리이며 大師가 담이며 大郡이 병풍이며 大宗이 담장의 기둥이며 덕으로 회유하는 것이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며 宗子가 城이니, 城이 무너지지 않게 해서 홀로 두려운 일을 당하지 말라.[价人維藩 大師維垣 大郡維屛 大宗維翰 懷德維寧 宗子維城 無俾城壞 無獨斯畏]”라고 보이는데, 여기의 維城, 維寧 등을 거꾸로 사용하여 여섯 종류의 제후국을 이름한 것이다. 价人은 大德의 사람이고 大師는 여러 백성이며 大郡은 큰 제후국이고 大宗은 강성한 宗族이다.
역주3 莽與匈奴和親 : “이때에 匈奴가 화친을 구하였는데, ‘구했다.’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구했다.’고 쓰지 않은 것은 王莽을 미워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망이 흉노와 더불어’라고 쓴 것이다.[於是 匈奴求和親 其不書求 何 不書求 惡莽也 故書莽與]” ≪書法≫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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