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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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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酉年(133)
계유년癸酉年(133)
二年이라 春正月 徵郞顗하여 以爲郞中이러니 不就하다
나라 효순황제 양가孝順皇帝 陽嘉 2년이다. 봄 정월正月낭의郞顗(낭의)를 불러 낭중郞中을 삼았는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召郞顗하여 問以災異注+郞, 姓也. 顗, 魚豈切.한대 顗上章曰 上應台階하고 下同元首하니 政失其道하면 則寒陰反節注+春秋元命包曰 “魁下六星兩兩而比曰三台.” 又黃帝泰階六符經曰 “泰階者, 天之三階也, 上階爲天子, 中階爲諸侯公卿大夫, 下階爲士庶人. 三階平則陰陽和, 風雨時.” 書曰 “君爲元首, 臣作股肱.” 言三公上象天之台階, 下與人君同體也.이니이다
낭의郞顗를 불러 재이災異에 대해 묻자注+이다. 어기魚豈이다., 낭의가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삼공三公은 위로 태계台階에 응하고 아래로 원수元首(군주)와 함께하니, 정사政事가 그 도리를 잃으면 춥고 음산함이 시절과 반대가 됩니다.注+춘추원명포春秋元命包≫에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첫 번째 별) 아래 여섯 별이 둘씩 서로 나란히 있는 것을 삼태三台라 한다.” 하고, 또 ≪황제태계육부경黃帝泰階六符經≫에 “태계泰階는 하늘의 삼계三階이니, 상계上階천자天子가 되고 중계中階제후諸侯대부大夫가 되고 하계下階사서인士庶人이 된다. 삼계三階가 고르면 음양陰陽이 조화롭고 풍우風雨가 제때에 내린다.” 하였고, ≪서경書經≫에 “군주는 원수元首가 되고 신하는 고굉股肱이 된다.” 하였으니, 〈“상응태계 하동원수上應台階 下同元首”는〉 삼공三公은 위로 하늘의 태계台階를 형상하고 아래로 인군人君과 더불어 를 함께함을 말한 것이다.
今之在位 競托高虛하여 納累鍾之奉이나 亡天下之憂하여 棲遲偃仰하고 寢疾自逸注+六斛四斗曰鍾. 奉, 與俸同. 亡, 古無字.이라가
지금 지위에 있는 자들이 고원함과 허황함에 다투어 의탁해서 많은 녹봉을 받지만 천하를 근심하는 마음이 없어서 한가로이 노닐고 편안하게 쉬면서 신병身病을 조리한다는 이유로 안일하게 지내다가注+〈“누종累鍾”에서〉 6 4이라 한다. (녹봉)은 과 같다. (무)는 고자古字이다.,
被策文하고 得賜錢하면 卽復起矣 何疾之易而愈之速 以此消伏災眚하고 致升平이면 其可得乎잇가
책문策文을 받고 하사하는 돈을 얻으면 곧바로 다시 나와서 벼슬하니, 어쩌면 이리도 쉽게 병들고 신속하게 낫는단 말입니까.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서 재이災異를 사라지게 하고 태평성세를 이루려고 하면, 어찌 될 수 있겠습니까.
今選牧守 委任三府注+三府, 三公也.로되 長吏不良하면 旣咎州郡하니 州郡有失이면 豈得不歸責擧者리오마는
지금 주목州牧군수郡守를 선발할 적엔 삼부三府위임委任하나注+삼부三府삼공三公이다. 장리長吏(영장令長)들이 선량하지 못하면 주군州郡을 허물하니, 주군州郡에 잘못이 있으면 어찌 이들을 천거한 자(삼공三公)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而陛下崇之彌優하시니 自下慢事愈甚이라 所謂大網疏하고 小網數也注+數, 趨玉切, 密也. 謂緩於三公, 切於州郡也.로이다
그런데도 폐하陛下께서는 이들을 높여 더욱 우대하시니, 아래에서는 더욱 일을 태만히 할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큰 그물은 엉성하고 작은 그물은 촘촘하다는 것입니다.注+추옥趨玉이니 촘촘함이다. 〈“대망소 소망수大網疏 小網數”은〉 삼공三公에게는 느슨하고 주군州郡에는 박절함을 이른다.
因條便宜七事하니 園陵火災 宜念百姓之勞하여 罷繕修之役이니이다
】 이어서 편의便宜에 따라 7가지 일을 조목조목 아뢰겠습니다. 첫 번째는 능원陵園화재火災이니, 마땅히 백성百姓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해서 능원陵園을 수리하는 부역을 파해야 합니다.
立春以後 陰寒失節하니 宜采納良臣하여 以助聖化니이다
두 번째는 입춘立春 이후에 날씨가 음산하고 추워 기후가 절기에 맞지 않으니, 마땅히 훌륭한 신하를 채납采納하여 성상聖上의 교화를 돕게 해야 합니다.
今年少陽이라 春旱夏水리니 宜務節約注+通鑑 “今年, 少陽之歲, 春當旱, 夏必有水.”이니이다 去年八月 熒惑 出入軒轅하니 宜簡出宮女注+晉書天文志 “軒轅十七星, 黃帝之神, 黃龍之體也, 后妃之主女職也.”니이다
세 번째는 금년今年소양少陽이라서 봄에는 가물고 여름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니, 마땅히 절약節約을 힘써야 합니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금년今年소양少陽의 해이니, 봄에는 반드시 가물고 여름에는 반드시 홍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네 번째는 지난해 8월에 형혹성熒惑星헌원軒轅출입出入하였으니 마땅히 궁녀宮女들을 선발하여 내보내야 합니다.注+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헌원軒轅 17황제黃帝이고 황룡黃龍이니, 후비后妃궁녀宮女의 직분을 주관하는 것이다.” 하였다.
去冬 有白氣從西方天苑하여 趨參左足하여 入玉井하니 恐有羌寇 宜爲備禦注+晉書天文志 “天苑十六星, 在昴․畢南, 天子之苑囿養獸之所也. 參十星, 白虎之體, 其中三星橫列, 三將也. 東北曰左肩, 主左將, 西北曰右肩, 主右將, 東南曰左足, 主後將軍, 西南曰右足, 主偏將軍. 玉井四星, 在參左足下, 主水漿以給廚.”니이다
다섯 번째는 지난겨울에 흰 기운(구름)이 서방西方천원天苑으로부터 삼수參宿의 왼발로 몰려와서 옥정玉井으로 들어갔으니, 강족羌族의 침략이 있을 듯한바 마땅히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注+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천원天苑 16묘수昴宿필수畢宿의 남쪽에 있는데, 천자天子의 동산으로 짐승을 기르는 곳이다. 삼수參宿 10백호白虎인데, 그 가운데 세 별이 가로로 나열되어 있으니, 세 장수이다. 동북쪽을 왼쪽 어깨라 하는데 좌장군左將軍을 주장하고, 서북쪽을 오른쪽 어깨라 하는데 우장군右將軍을 주장하고, 동남쪽을 왼발이라 하는데 후장군後將軍을 주장하고, 서남쪽을 오른발이라 하는데 편장군偏將軍을 주장한다. 옥정玉井의 네 별은 삼수參宿 왼발 아래에 있는데 물과 漿을 주관하여 부엌에 공급한다.” 하였다.
近者 白虹貫日하니 宜令中外官司 幷須立秋然後考事注+凡白虹者, 百殃之本, 衆亂所基. 貫日中者, 侵太陽也. 考, 劾也.니이다
여섯 번째는 근래에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였으니 마땅히 안팎의 관사官司로 하여금 모두 입추立秋가 지난 뒤에 일을 탄핵하게 해야 합니다.注+무릇 흰 무지개는 온갖 재앙의 근본으로, 뭇 혼란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흰 무지개가 해의 중앙을 꿰뚫었다는 것은 태양太陽을 침범한 것이다. 는 탄핵함이다.
漢興以來三百三十九歲三朞 宜大蠲法令하여 有所變更注+顗傳三朞下云 “高祖起亥仲二年, 今在戌仲十年.” 賢曰 “謂以三朞之法推之也. 詩氾歷樞曰 ‘凡推其數, 皆從亥之仲起, 此天地所定位. 陰陽氣周而復始, 萬物死而復蘇, 大統之始, 故王命一節, 爲之十歲也.’”이니이다
일곱 번째는 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339년이 되었습니다. 시기상 가 되었으니, 마땅히 크게 법령法令을 줄여서 변경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注+후한서後漢書≫ 〈낭의전郞顗傳〉에 ‘삼기三朞’의 아래에 “하였는데, 이현李賢이 말하기를 “삼기三朞으로 추측한 것이다. 에 말하기를 ‘무릇 그 수를 미룰 때에는 모두 으로부터 시작하니, 이는 하늘과 땅이 정해진 위치이다. 의 기운이 두루 순환하여 다시 시작하고 만물萬物이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니, 대통大統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왕명王命 1이 10년이 된다.’ 했다.” 하였다.
王者之法 譬猶江河하니 當使易避而難犯이니이다
왕자王者은 비유하면 강하江河와 같으니, 마땅히 피하기 쉽고 하기 어렵게 해야 합니다.”
復上書하여 薦黃瓊, 李固하고 又言 自冬涉春 訖無嘉澤하니 朝廷 勞心하여 廣爲禱祈니이다
좌웅左雄은 다시 글을 올려서 황경黃瓊이고李固를 천거하고,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겨울부터 봄에 이르기까지 내내 비가 흡족하게 내리지 않으니, 조정(황제)이 노심초사하여 널리 기도하고 있습니다.
臣聞 皇天感物호되 不爲僞動하고 災變應人호되 要在責己注+爲, 去聲.라하니
이 듣건대 ‘황천皇天은 물건에 감동하되 거짓에 감동하지 않고, 재변災變은 사람에 따라 응하되 요점은 군주가 자기 몸을 책함에 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하였으니,
若令雨可請降이요 水可禳止 則歲無隔幷하여 太平可待注+隔, 否隔也, 幷, 頻幷也. 書曰 “一極備凶, 一極無凶.”리이다
만약 비를 청하여 내리게 할 수 있고 홍수를 기도하여 그치게 할 수 있다면, 해마다 가뭄이나 홍수가 없어서 천하가 곧 태평해질 것입니다.注+은 막힘이요, 은 자주함이다. ≪서경書經≫ 〈주서 홍범周書 洪範〉에 이르기를 “〈비와 햇볕과 따뜻함과 추위와 바람의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가 지극히 구비되어도 하고, 한 가지가 지극히 없어도 하다.” 하였다.
然而災害不息者 患不在此也注+謂不在祈禱.니이다 書奏 特拜郞中하니 辭病不就하다
그러나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지금〉 재해災害가 그치지 않는 것은 근심이 여기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注+〈“환부재차야患不在此也”는〉 재앙의 유무有無기도祈禱에 달려 있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글을 아뢰자 특별히 낭중郞中을 제수하였는데, 병으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유모 송아乳母 宋娥하여 산양군山陽君으로 삼았다.
帝之立也 娥與其謀 封之하고 又封梁商子冀하여 爲襄邑侯注+襄邑縣, 屬陳留郡.한대
】 황제가 즉위할 적에 송아宋娥가 그 계책에 참여하였으므로 그녀를 〈산양군山陽君에〉 봉하고, 또 양상梁商의 아들 양기梁冀를 봉하여 양읍후襄邑侯로 삼았다.注+양읍현襄邑縣진류군陳留郡에 속하였다.
左雄 上封事曰 高皇帝約 非有功이면 不侯하니 不宜追錄小恩하여 虧失大典이니이다 帝不聽하다
좌웅左雄봉사封事를 올려 말하기를 “고황제高皇帝의 약속에 이 있는 자가 아니면 를 삼지 않는다 하였으니, 작은 은혜를 추록追錄하여 큰 법전을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으나, 황제가 듣지 않았다.
復諫曰 臣聞人君 莫不好忠正而惡讒諛 然而歷世之患 莫不以忠正得罪하고 讒諛蒙幸者 蓋聽忠難하고 從諛易일새니이다
좌웅左雄이 다시 다음과 같이 하였다. “이 들으니, 인군人君이라면 누구나 다 충성스럽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대歷代의 환란이 충성스럽고 정직함으로써 를 얻고 참소하고 아첨함으로써 총애를 입지 않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충성스러운 자의 말은 따르기 어렵고 아첨하는 자의 말은 따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夫刑罪 人情之所甚惡 貴寵 人情之所甚欲이니 是以 時俗 爲忠者少하고 而習諛者多
형벌은 인정人情에 매우 싫어하는 바이고 총애는 인정人情에 매우 바라는 바이니, 이 때문에 시속時俗에 충성스러운 자가 적고 아첨을 잘하는 자가 많은 것입니다.
令人主數聞其美하고 稀知其過하여 迷而不悟하여 以至於危亡이니이다
그러므로 군주로 하여금 자신의 좋은 점을 자주 듣고 자신의 과오를 아는 것이 드물어서, 미혹되어 깨닫지 못하여 결국 위태로움과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臣案尙書故事 無乳母爵邑之制注+漢故事, 皆尙書主之.하고 惟先帝時 王聖 爲野王君이러니
이 살펴보건대, 상서尙書고사故事유모乳母에게 작읍爵邑을 내리는 제도가 없고注+나라의 고사故事는 모두 상서尙書가 주관하였다., 오직
造生讒賊廢立之禍하여 生爲天下所咀嚼하고 死爲海內所懽快注+咀, 在呂切. 咀嚼, 含味而噬嚙也.하니이다
그런데 왕성은 남을 참소하여 해쳤으며 군주를 하고 세우는 를 만들어서, 살아서는 천하天下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았고 죽어서는 해내海內가 기뻐하였습니다.注+(씹다)는 재려在呂이니, “저작咀嚼”은 맛을 음미하며 씹는 것이다.
今阿母躬蹈儉約하여 以身率下어늘 而與聖同爵號하니 懼違本操
지금 아모阿母는 몸소 검약儉約함을 실천하여 자신이 아랫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데 왕성과 같이 작호爵號를 받았으니, 본래의 지조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乞如前議하여 歲以千萬으로 給俸阿母하시면 可不爲吏民所怪注+乞如前議, 蓋雄先已有此議, 令乞行之也.
바라건대 예전의 의논과 같이하여, 해마다 천만 아모阿母에게 녹봉으로 지급하면 관리와 백성들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注+걸여전의乞如前議”는 좌웅左雄이 예전에 이미 이러한 의논을 올렸었기 때문에 황제로 하여금 행하기를 청한 것이다.
梁冀之封 事非機急이니 宜過災戹之運然後 平議可否니이다 於是 讓還冀封하다
양기梁冀를 봉하는 것은 긴급을 요하는 일이 아니니, 마땅히 재액災戹이 지나간 뒤에 가부可否를 공평히 의논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양상梁商이 양기의 봉작封爵(양읍후襄邑侯)을 사양하고 되돌려주었다.
夏四月 京師地震이어늘 詔公卿直言하고 擧敦樸之士하다
】 여름 4월에 경사京師지진地震이 있자, 공경公卿들에게 조령詔令을 내려서 직언直言을 하게 하고 돈후하고 질박한 선비를 천거하게 하였다.
左雄 復上疏曰 先帝封野王君 漢陽 地震注+安帝延光二年, 封王聖, 是歲, 京師及郡國三地震, 漢陽, 蓋其一也.이러니 今封山陽君 而京城復震하니 專政在陰이면 其災尤大
좌웅左雄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선제先帝(안제安帝)가 왕성王聖야왕군野王君으로 봉하자 한양漢陽지진地震이 있었는데注+안제 연광安帝 延光 2년(123)에 왕성王聖을 봉하였는데, 이해에 경사京師군국郡國의 세 곳에 지진地震이 있었으니, 한양漢陽은 그중의 하나이다., 지금 아모阿母산양군山陽君으로 봉하자 경성京城에 다시 지진地震이 있으니, 정사政事를 마음대로 하는 권력이 (여자)에게 있으면 그 재앙이 더욱 큰 것입니다.
前後瞽言封爵至重이러니 今冀已高讓하니 山陽君 亦宜崇其本節이니이다
전후前後을 올려 봉작封爵이 너무 중하다고 하였는데 지금 양기梁冀가 이미 높이 공수拱手하고 사양하였으니, 산양군山陽君 또한 마땅히 자신의 본래의 절조節操를 높여야 합니다.”
雄言 切至하니 娥亦畏懼辭讓이나 而帝卒封之하다
좌웅의 말이 간절하고 지극하니 송아宋娥 또한 두려워하여 사양하였으나, 황제가 끝내 봉하였다.
是時 大司農劉據 以職事被譴하여 召詣尙書할새 傳呼促步하고 加以捶撲注+促步, 催使速行也. 捶撲, 以杖擊也.이어늘
】 이때에 대사농 유거大司農 劉據가 관직의 일로 견책을 당하여 상서尙書로 불려 올 적에, 전호傳呼(돌려가며 큰소리로 호령함)하여 걸음을 재촉하고 게다가 몽둥이로 치기까지 하였다.注+촉보促步”는 재촉하여 빨리 걸어가게 하는 것이다. “추박捶撲”은 몽둥이로 치는 것이다.
上言호되 九卿大臣 行有佩玉之節注+九卿, 位亞三事, 班在大臣. 佩, 以玉爲之, 貫以組綬. 記曰 “古之君子, 必佩玉, 趨以采薺, 行以肆夏, 進則揖之, 退則揚之, 然後玉鏘鳴也.”이러니 孝明皇帝 始有撲罰하시니 非古典也니이다 帝納之하다
좌웅左雄상언上言하기를 “구경九卿대신大臣은 길을 감에 패옥佩玉의 절도가 있었는데注+구경九卿은 지위가 삼사三事(삼공三公) 다음이고 대신大臣의 반열에 있다. 패물佩物으로 만드니 인끈으로 꿰었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옛날 군자君子들은 반드시 을 차서, 종종걸음으로 나아갈 때에는 〈채제采薺〉의 가락에 맞추고 걸어갈 때에는 〈사하肆夏〉의 가락에 맞췄으며, 나아가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면 고개를 들었으니, 그런 뒤에 소리가 쟁쟁히 울렸다.” 하였다., 효명황제孝明皇帝가 처음 때리는 벌을 두셨으니, 이는 옛 법이 아닙니다.” 하자, 황제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경사京師에 땅이 갈라지니, 조령詔令을 내려서 돈후하고 질박한 선비를 데려다가 대책對策하게 하였다.
洛陽宣德亭 地拆八十五丈注+宣德亭, 蓋在平城門外.이어늘 帝引公卿所擧敦樸士對策한대
낙양洛陽 지역 선덕정宣德亭의 땅이 85이 갈라지자注+선덕정宣德亭평성문平城門 밖에 있다., 황제가 공경公卿들이 천거한 돈후하고 질박한 선비를 인견하여 대책對策하게 하였는데,
李固對曰 漢興以來三百餘年 賢聖相繼 十有八主注+高ㆍ惠ㆍ文ㆍ景ㆍ武ㆍ昭ㆍ宣ㆍ元ㆍ成ㆍ哀ㆍ平ㆍ光ㆍ明ㆍ章ㆍ和ㆍ殤ㆍ安, 至帝凡十八主. 豈無阿乳之恩이며 豈無貴爵之寵이리오
이고李固가 다음과 같이 대책對策하였다. “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300여 년에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서로 이어져 18명의 군주가 있었으니注+고제高帝, 혜제惠帝, 문제文帝, 경제景帝, 무제武帝, 소제昭帝, 선제宣帝, 원제元帝, 성제成帝, 애제哀帝. 평제平帝, 광무제光武帝, 명제明帝, 장제章帝, 화제和帝, 상제殤帝, 안제安帝로부터 황제(순제順帝)에 이르기까지 모두 18명의 군주이다., 어찌 아모阿母(유모)의 은혜가 없을 것이며 어찌 귀한 작위의 은총이 없었겠습니까.
이나 上畏天威하고 俯案經典하여 知義不可故 不封也하시니이다
그러나 위로는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경전經典을 상고하여 의리義理불가不可함을 알았기 때문에 작위를 봉하지 않은 것입니다.
今宋阿母 雖有功勤이나 但加賞賜라도 足酬其勞 裂土開國 實乖舊典이라
지금 송아모宋阿母(송아宋娥)가 비록 공로가 있으나, 상사賞賜만 더하더라도 충분히 그 공로에 보답할 수 있으니, 땅을 나누어 나라를 열어주는 것은 실로 옛 법에 어긋납니다.
聞阿母體性謙虛라하니 必有遜讓이니 陛下宜許其辭國之高하사 使成萬安之福이니이다
듣건대 아모가 본성이 겸허謙虛하다 하니, 반드시 겸손하여 사양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폐하陛下께서는 마땅히 아모가 나라를 사양하는 높은 절개를 허여하시어 만 번 편안한 복을 누리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夫妃后之家 所以少完全者 豈天性當然이리오 但以爵位尊顯하여 顓總權柄하여 天道惡盈이어늘 不知自損故 至顚仆注+顓, 與專同.니이다
역대 후비后妃의 집안에 완전完全한 자가 적은 이유는 어찌 천성天性당연當然해서이겠습니까. 다만 작위爵位가 높고 현달하여 권세의 자루를 자기 마음대로 총괄해서, 천도天道가 가득함을 미워하는데도 스스로 덜어낼 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복顚覆됨에 이른 것입니다.注+(오로지)은 과 같다.
今梁氏子弟群從 榮顯兼加注+從, 才用切.하니 永平, 建初故事 殆不如此 宜令還居黃門之官하여 使權去外戚하고 政歸國家니이다
지금 〈황후皇后종족宗族인〉 양씨梁氏자제子弟와 여러 종형제從兄弟들에게 영화와 현달을 아울러 베푸시니注+(동종의 친척)은 재용才用이다., 고사故事는 자못 이와 같지 않습니다. 마땅히 그들을 으로 돌려보내서 권세가 외척外戚의 손에서 떠나고 정권이 국가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又詔書所以禁侍中, 尙書, 中臣子弟 不得爲吏, 察孝廉者 以其秉威權하여 容請託故也
】 또 옛날 조서詔書시중侍中, 상서尙書중신中臣자제子弟를 관리가 되지 못하고 효렴孝廉에 천거되지 못하게 금지한 이유는, 이들이 위엄과 권세를 쥐고 있어서 청탁請託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而中常侍在日月之側하여 聲勢震天下하여 子弟祿任 曾無限極이라
그런데 중상시中常侍는 해와 달(황제와 황후)의 곁에 있으면서 명성과 권세가 천하天下를 진동하여 이들 자제子弟의 녹봉과 임용이 일찍이 끝이 없었습니다.
諂僞之徒 望風進擧注+謂州郡阿私宦官, 進擧其子弟也.하니 今可爲設常禁하여 同之中臣注+爲, 去聲. 此中臣, 謂中朝臣也.이니이다
아첨하고 거짓된 무리들이 권세를 보고서 그의 자제들을 등용하고 천거하니注+〈“망풍진거望風進擧”는〉 주군州郡들이 환관宦官에게 아첨하고 사사로이 하여 환관의 자제子弟를 등용하고 천거함을 이른다., 이제 일정한 법금法禁을 만들어서 와 똑같게 하여야 합니다.注+〈“가위설상금可爲設常禁”의〉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여기(동지중신同之中臣)의 중신中臣중조中朝의 신하를 이른다.
長水司馬武宣 開陽城門候羊廸 無他功德이로되 初拜便眞注+長水校尉, 其屬有司馬, 掌長水胡騎. 雒陽城十二門, 每門, 候一人, 開陽門, 位在巳. 除官曰拜, 謂初除, 便得眞命, 不試守也. 漢制, 初拜官稱守, 滿歲爲眞.하니 此雖小失이나 而漸壞舊章이라
장수사마 무선長水司馬 武宣개양성문후 양적開陽城門候 羊廸(양적)은 다른 공덕功德이 없는데도 처음 벼슬에 임명됨에 〈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이 되었으니注+장수교위長水校尉는 그 관속에 사마司馬가 있어서 장수호기長水胡騎를 관장하였다. 낙양성雒陽城은 12개의 문이 있는데 문마다 를 한 명씩 두었는바, 개양문開陽門사방巳方에 위치하였다. 관직을 제수하는 것을 라 하니, 처음 제수되었을 때 곧바로 의 명을 얻어서 를 거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나라 제도에 처음 관직에 제수되면 라고 하고, 1년이 되어야 이 되었다., 이는 비록 작은 잘못이지만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점점 옛 법을 파괴하게 됩니다.
先聖法度 所宜堅守 政敎一跌이면 百年不復이니이다
선성先聖법도法度는 마땅히 굳게 지켜야 하니, 정교政敎가 한 번 잘못되면 100년이 되어도 회복하지 못합니다.
陛下之有尙書 猶天之有北斗 斗爲天喉舌이요 尙書亦爲陛下喉舌이니
폐하陛下에게 상서尙書가 있는 것은 하늘에 북두성北斗星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북두성은 하늘의 후설喉舌(목구멍과 혀)이 되고 상서 또한 폐하陛下의 후설이 되니,
斗斟酌元氣하여 運平四時注+天文志曰 “斗爲帝車, 運乎中央, 臨制四方.” 分陰陽, 建四時, 均五行, 移節度, 定諸紀, 皆繫於斗.하고 尙書出納王命하여 賦政四海하나니
북두성은 원기元氣를 가늠하여 사시四時를 고르게 운행하고注+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북두성은 황제의 수레가 되어 중앙을 운행하고 사방을 굽어보며 통제한다.” 하였으니, 음양陰陽을 나누고 사시四時를 세우고 오행五行을 고르게 하고 절도節度를 옮기고 여러 기강을 정하는 것이 모두 북두성에 관계되어 있다. 상서는 왕명王命을 출납하여 사해四海에 정치를 폅니다.
權尊勢重하여 責之所歸 宜擇其人하여 以毗聖政注+毗, 輔也.이니이다
그 권세가 높고 중하여 모든 책임이 귀결되는 자리이니, 마땅히 적임자를 택하여 성상聖上의 정사를 보좌하게 해야 합니다.注+(비)는 도움이다.
今與陛下共天下者 外則公, 卿, 尙書 內則常侍, 黃門이니 譬猶一門之內 一家之事 安則共其福慶하고 危則通其禍敗니이다
지금 폐하陛下와 더불어 천하를 함께 다스리는 자는 밖으로 공경公卿상서尙書이고 안으로 상시常侍황문黃門이니, 비유하자면 한 가문의 안에 한 집안의 일이 편안하면 그 과 경사를 함께하고 위태로우면 그 와 실패를 함께하는 것과 같습니다.
刺史, 二千石 外統職事하고 內受法則하니이다 夫表曲者 影必邪하고 源淸者 流必潔하나니 猶叩樹木하면 百枝皆動也
자사刺史이천석二千石은 밖으로는 직무를 통괄하고 안으로는 조정의 법칙法則(지시)을 받습니다. 겉이 굽은 것은 그림자도 반드시 기울고, 근원이 깨끗한 물은 흐르는 물도 반드시 깨끗한 법이니, 나무를 두드리면 온갖 가지가 다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由此言之컨대 本朝號令 豈可蹉跌注+蹉跌, 足失措貌.이리잇가
이로 말미암아 말씀드리건대 본조本朝(조정)의 호령號令을 어찌 차질蹉跌이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注+차질蹉跌은 발을 잘못 디딘 모양이다.
夫人君之有政 猶水之有隄防이니 隄防完全하면 雖遭霖潦 不能爲變이요 政敎一立이면 暫遭凶年이나 不足爲憂니이다
인군人君에게 정사가 있는 것은 물에 제방이 있는 것과 같으니, 제방이 완전하면 비록 장마를 만나더라도 변고變故가 되지 못하고, 정교政敎가 한 번 확립되면 잠시 흉년凶年을 만나더라도 근심이 될 수 없습니다.
今隄防雖堅이나 漸有孔穴注+諭嬖倖之門也. 當此之時, 不可以言漸矣, 固特婉其辭耳.하니 譬之一人之身컨대 本朝者 心腹也 州郡者 四支也
지금 제방이 비록 견고하나 점점 구멍이 뚫리고 있습니다.注+〈“공혈孔穴”은〉 군주가 총애하는 을 비유한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점점)이라고 말할 수 없었으나, 다만 그 말을 완곡히 했을 뿐이다. 한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본조本朝심복心腹이요 주군州郡사지四肢이니,
心腹痛則四支不擧 臣之所憂 在心腹之疾이요 非四支之患也니이다
심복이 아프면 사지를 제대로 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염려하는 것은 심복의 병에 있고, 사지의 병이 아닙니다.
苟堅隄防하고 務政敎하여 先安心腹하고 整理本朝하면 雖有寇賊水旱之變이나 不足介意 不然則雖無水旱之災 天下固可憂矣니이다
만일 제방을 견고히 하고 정교政敎를 힘써서 먼저 심복을 편안히 하고 본조本朝를 정돈하여 다스린다면, 비록 도적과 수해水害한해旱害의 변고가 있더라도 개의介意할 것이 못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록 수해와 한해의 재앙이 없더라도 천하가 진실로 근심할 만합니다.”
又宜罷退宦官하여 去其權重하고 裁置호되 常侍二人方直有德者 省事左右하고
】 또 마땅히 환관宦官들을 하여 물리쳐서 그 막중한 권세를 제거하고 인원을 줄이되, 방직方直하고 이 있는 상시常侍 두 사람은 군주의 좌우에서 일을 살펴보게 하고,
小黃門五人才智閑雅者 給事殿中이니 如此 則論者厭塞하여 升平可致也注+厭, 益涉切, 伏也.리이다
재주와 지혜가 있으며 침착하고 고상한 소황문小黃門 다섯 사람은 궁중에서 일을 보게 하여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비난하는 자들이 굴복하여 태평성세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注+익섭益涉이니 굴복함이다.
扶風功曹馬融 對曰注+融, 嚴之子也. 今科條品制 四時禁令 所以承天順民者 備矣悉矣 不可加矣니이다
부풍扶風공조功曹마융馬融은 다음과 같이 대책對策하였다.注+마융馬融마엄馬嚴의 아들이다. “지금 과조科條(법조문)의 품제品制(등급과 규정)와 사시四時금령禁令은 하늘의 뜻을 받들고 백성들의 마음을 순응하는 것이 완비되고 자세하니, 이보다 더할 수가 없습니다.
然而天猶有不平之效하고 民猶有咨嗟之怨者 百姓 屢聞恩澤之聲而未見惠和之實也일새니이다
그런데도 하늘에 화평하지 못한 징험이 있고 백성들에게 한탄하는 원망이 있는 것은, 백성들이 국가에서 은택을 내린다는 소리는 자주 들으나 은혜롭고 온화한 실제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古之足民者 非能家贍而人足之 量其財用하여 爲之制度 嫁娶之禮儉이면 則婚者以時矣
옛날에 백성을 풍족하게 한 자는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한 것이 아니요, 재용財用을 헤아려서 제도制度를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딸을 시집보내고 아들을 장가보내는 가 검소하면 혼인하는 자가 제때에 혼인을 하고,
喪制之禮約이면 則終者掩藏矣 不奪其時 則農夫利矣 夫妻子以累其心하고 産業以重其志하면 舍此而爲非者 必不多矣注+累, 力瑞切.리이다
상제喪制가 간소하면 죽은 자가 잘 묻히고,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면 농부가 이롭게 됩니다. 처자妻子로 그 마음을 묶어두고 산업産業(생업)으로 그 뜻을 (견고)하게 하면, 이것을 버리고서 비행非行을 하는 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注+(묶다)는 역서力瑞이다.
太史令張衡 對曰 自初擧孝廉으로 迄今二百歲 皆先孝行하고 行有餘力이라야 始學文法注+武帝元光元年, 初擧孝廉, 至是凡二百七年.이러니
태사령 장형太史令 張衡은 다음과 같이 대책對策하였다. “처음 효렴孝廉을 천거한 뒤로부터 지금까지 200년 동안은 모두 효행孝行을 먼저 하였으며 이 효행을 행하고서 여력餘力이 있어야 비로소 문법文法(법조문)을 배웠습니다.注+무제 원광武帝 元光 원년(B.C.134)에 처음 효렴孝廉을 천거하였으니, 이때까지 모두 207년이다.
辛卯詔書 以能章句奏案爲限하여 雖有至孝 猶不應科하니 棄本而取末也注+辛卯詔書, 去年冬十一月辛卯詔書也.
그런데 신묘일 조서辛卯日 詔書에는 장구章句주안奏案(주청하는 문안文案)을 잘하는 것으로 한정하여, 아무리 지극한 효행이 있더라도 효렴과孝廉科하지 못하게 하니,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취하는 것입니다.注+신묘조서辛卯詔書”는 지난해(132) 겨울 11월 신묘일辛卯日조서詔書이다.
曾子長於孝 然實魯鈍하여 文學 不若游, 夏하고 政事不若冉, 季어늘 今欲使一人兼之하시니 苟外有可觀이면 內必有闕矣리이다
증자曾子가 효행에는 뛰어났으나 실로 노둔魯鈍하여, 문학文學자유子游자하子夏만 못하였고 정사政事염유冉有계로季路만 못하였는데, 지금 한 사람에게 이것을 다 겸비하게 하시니, 만일 밖에 볼만한 것이 있으면 안에 반드시 부족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覽衆對하고 以李固爲第一하여 卽時出阿母還舍한대 諸常侍悉叩頭謝罪하니 朝廷 肅然하니라
이 여러 사람의 대책對策을 보고 이고李固제일第一로 뽑아서 즉시 아모阿母를 내보내 집으로 돌려보내자, 여러 상시常侍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니, 조정이 숙연해졌다.
以固爲議郞하니 而阿母, 宦者 皆疾之하여 詐爲飛章하여 以陷其罪
이고를 의랑議郞으로 삼으니, 아모와 환관들이 모두 그를 미워하여 익명의 글을 날조하여 그를 에 빠뜨렸다.
事從中下注+飛章, 卽飛書也. 從中下者, 不經尙書.하니 大司農黃尙 僕射黃瓊 救之호되 久乃得釋하여 出爲洛令이라가 棄官居漢中注+洛, 當作雒. 雒縣, 屬廣漢郡.하다
이 사건이 상서尙書를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궁중에서 회부되니注+비장飛章”은 바로 비서飛書(익명의 글)이다. ‘종중하從中下’는 상서尙書를 경유하지 않은 것이다., 대사농 황상大司農 黃尙복야 황경僕射 黃瓊이 그를 구원하였으나, 오랜 뒤에야 풀려나서 외직으로 나가 낙령雒令이 되었다가 관직을 버리고 한중漢中에 거주하였다.注+이 되어야 하니, 낙현雒縣광한군廣漢郡에 속하였다.
才高於世而無驕尙之情注+驕者, 以才驕人也. 尙者, 以才尙人也.하여 通貫六藝하고 尤致思於天文陰陽歷算하여 作渾天儀하고 著靈憲注+致, 極也. 思, 相吏切. 天之形狀, 似鳥卵, 地居其中, 天包地外, 猶卵之裏黃, 圓如彈丸. 故曰渾天, 言其形體渾渾然也. 著, 陟慮切, 紀述也. 靈憲序曰 “昔在先王, 將步天路, 用定靈軌, 尋緖本元, 先準之于渾體, 是謂正儀, 故靈憲作興.”하다
장형張衡당세當世에 재주가 뛰어났으나 남에게 교만하고 우월해하는 마음이 없었으며注+는 재주를 믿고 남에게 교만한 것이요, 은 재주를 믿고 남에게 우월해하는 것이다., 관통貫通하고 특히 천문天文음양陰陽, 역법과 산수에 생각을 지극히 하여 혼천의渾天儀를 만들고 을 저술하였다.注+는 지극히 함이다. (생각하다)는 상리相吏이다. 하늘의 형상形狀은 새의 알과 같아서 땅이 그 가운데에 있고 하늘이 땅의 밖을 싸고 있는데, 마치 알이 노른자를 싸고 있어서 둥근 탄환彈丸과 같으므로 혼천渾天이라 하였으니, 그 형체形體가 뒤섞여 있음을 말한 것이다. 척려陟慮이니 기술紀述함이다. ≪영헌靈憲≫의 서문序文에 “옛날 선왕先王이 하늘의 길을 걷고자 하여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운행하는 길(궤도)을 정하여 본원本元의 실마리를 찾을 적에 먼저 혼체渾體에 기준하였으니, 이것을 바른 의식이라 한다. 그러므로 ≪영헌靈憲≫이 일어났다.” 하였다.
性恬憺하여 不慕當世하니 所居之官 輒積年不徙注+恬, 安也. 憺, 杜覽切, 靜也.하다 阿母後竟坐構姦誣罔하여 收印綬還里舍하다
성품이 편안하고 담박하여 당세에 등용되는 것을 사모하지 않으니, 재직한 관청마다 여러 해가 되어도 옮겨가지 않았다.注+은 편안함이다. 두람杜覽이니, 고요함이다. 아모阿母는 뒤에 끝내 간악한 짓을 꾸미고 황제를 속인 죄에 걸려서, 인수印綬를 바치고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秋七月 太尉龎參하다
】 가을 7월에 태위 방참太尉 龎參이 면직되었다.
太尉龎參 在三公中 最名忠直이라 數爲左右所毁하니 司隷乘風案之한대 稱疾注+乘風, 通鑑作承風, 謂承望風指也. 作乘風亦通, 猶言乘勢也.하다
태위 방참太尉 龎參삼공三公 가운데 가장 충성스럽고 정직하다고 이름났다. 황제의 좌우左右 측근들에게 자주 비방을 받았는데, 사례교위司隷校尉가 황제 측근들의 뜻에 영합하여 그의 죄를 조사하자, 방참이 병을 핑계하였다.注+승풍乘風”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승풍承風”으로 되어 있으니, 황제 측근들의 풍지風指(뜻)에 영합함을 이른다. “승풍乘風”으로 써도 또한 통하니, 기세를 탔다는 말과 같다.
廣漢上計掾段恭 上疏曰 伏見 道路行人, 農夫, 織婦皆曰 太尉參 竭忠盡節하고 不能曲心하여 孤立群邪之間하여 自處中傷之地라하니이다
광한廣漢 지역의 상계연上計掾단공段恭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엎드려 보건대, 도로道路행인行人농부農夫와 길쌈하는 부인들이 모두 말하기를 ‘태위太尉 방참은 충성과 절개를 다하고 마음을 굽히지 못하여 여러 간사한 신하들 가운데 고립孤立되어서 스스로 중상中傷을 당하는 자리에 처했다.’ 합니다.
夫以讒佞傷毁忠正 此天地之大禁이요 人主之至誡也 國以賢治하고 君以忠安하나니
참소하고 말 잘하는 자가 충성스럽고 정직한 자를 중상하고 훼방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크게 금하는 것이요, 군주가 지극히 경계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어진 자 때문에 다스려지고 군주는 충성스러운 자 때문에 편안합니다.
今天下咸欣陛下有此忠賢하니 願卒寵任以安社稷하소서 書奏 詔遣小黃門하여 視參疾하고 致羊酒하다
지금 천하 사람들은 모두 폐하陛下에게 이처럼 충성스럽고 어진 자가 있음을 기뻐하니, 원컨대 끝까지 총애하고 중용重用하시어 사직社稷을 편안하게 하소서.” 글을 아뢰자, 조령詔令을 내려 소황문小黃門을 보내 방참의 병을 살피게 하고 과 술을 하사하였다.
參夫人 疾前妻子하여 殺之하니 雒陽令 奏參罪하여 竟以災異免注+參, 素與雒陽令祝良不平.하다
뒤에 방참의 부인이 전처前妻의 자식을 미워하여 살해하니, 낙양령雒陽令이 방참의 죄를 아뢰었다. 방참이 끝내 〈가을에〉 재이災異가 있었다는 이유로 면직되었다.注+방참龎參이 평소 낙양령 축량雒陽令 祝良과 화평하지 못하였다.
鮮卑寇馬城하다
선비鮮卑마성馬城을 침략하였다.
是後 其至鞬하니 鮮卑抄盜差稀注+其至鞬, 鮮卑種帥之名.하다
】 그 뒤에 기지건其至鞬이 죽으니, 선비鮮卑의 노략질과 도둑질이 다소 뜸해졌다.注+기지건其至鞬선비족鮮卑族 우두머리의 이름이다.
역주
역주1 (王)[三]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與)[興] : 저본에는 ‘與’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興’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三朞 : 朞는 100년으로, 300년을 뜻한다.
역주4 (詩)[時] : 저본에는 ‘詩’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時’로 바로잡았다.
역주5 高祖는……있다 : 자세하지 않다. ≪後漢書≫에는 ≪詩氾歷樞≫를 인용하여 “卯․酉는 革政이 되고 午․亥는 革命이 되며, 神이 天門에 있어 출입하며 善惡을 살핀다.” 하였는데, 注에 “神은 陽氣이니 군주의 象이다. 天門은 戌․亥의 사이이니 乾이 점거한 방위이다.” 하였으며, “王命 1節이 10歲가 된다.” 하였으나 亥仲과 戌仲 및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바 緯書가 없어졌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역주6 詩氾歷樞 : ≪詩經≫의 緯書 중 하나로,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역주7 封乳母宋娥爲山陽君 : “順帝가 儲貳(동궁)에 있을 때에 억울하게 廢黜을 당하였는데, 비록 나이가 한창 어렸으나 반드시 마음을 격동시키고 성질을 참아서 그 부족한 바를 더하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大統을 이은 초기에는 환관들이 功을 믿고 조정을 擅斷하는 일이 없지 않았으나 政事가 크게 전도되고 잘못됨이 없었으니, 이 또한 그 淸明한 천성이 심히 더렵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때에 이르러서 春秋가 이미 18세가 되었는데, 乳母를 封爵하여 친히 잘못된 전철을 밟아서 ≪資治通鑑綱目≫의 기록에 자세히 보이는 것은 어째서인가. 황제는 타고난 자품이 높지 못해서 장성할수록 어두워졌다. 그러므로 음악과 여색과 嗜慾에 미혹되고, 총애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에게 빠져서 흘러가 돌아올 것을 잊고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이다. 아! 왕의 처소는 薛居州와 같이 善한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고 임금의 곁에는 子思와 같은 聖賢이 없었으니, 비록 밝고 지혜로운 군주라도 뜻을 확립함이 있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순제임에랴![順帝在儲貳之時 橫罹廢黜 雖年方沖幼 亦必動心忍性 增益其所未能 由是 繼統之初 非無閹宦挾功擅朝 然政事無大顚錯者 亦其淸明之天 未甚淟汩爾 夫何至是 春秋已十有八 乃使封爵乳母 親尋覆轍 備見於綱目之所書 何哉 蓋帝天資不高 浸長浸昏 故爲聲色嗜慾之所惑 便嬖佞倖之所移 流而忘返 不自知也 嗚呼 王所非居州 君側無子思 雖明智之君 且不能有立 況順帝乎]” ≪發明≫
역주8 先帝(安帝)……되었습니다 : 王聖은 安帝의 乳母로, 鄧太后로부터 안제를 보호하여 즉위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러나 안제가 즉위한 후 딸 伯榮과 함께 내외를 선동하고 사치스러움과 포악함을 부리다가 閻顯에 의해 여러 환관들과 함께 축출되었다.
역주9 瞽言 : 사리를 분변하지 못하는 말로, 자신의 말에 대한 겸사이다.
역주10 京師地拆……對策 : “京師에 地震이 있을 적에 ≪資治通鑑綱目≫에 ‘京師’라고 쓰지 않은 것은 地道의 變함이 遠近이 다르지 않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京師를 두 번 쓴 것은 어째서인가. 같은 달에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졌으니, 경계함이 지극한 것이다. 그리하여 代 땅에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짐에(B.C.231) 趙나라가 이 때문에 망하였고, 京師에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짐에(B.C.8) 漢나라가 이 때문에 쇠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 지진이 났을 때 ‘京師’라고 쓴 것이 2번인데, 順帝 때 같은 달에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졌을 때(이해) ‘京師’를 썼고, 獻帝 때 한 달에 두 번 지진이 났을 때(194) ‘京師’를 썼으니, 모두 큰 災異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돈후하고 질박한 선비를 천거하게 했다고 쓴 것이 2번(B.C.43년과 이해)이다.[京師地震 綱目不書京師 地道之變 遠近不異也 此其再書京師 何 震坼同月也 警戒至矣 是故代地震坼而趙以亡 京師震坼而漢以衰 綱目地震書京師二 順帝以同月震坼書京師 獻帝以一月再震書京師 皆大異也 終綱目擧敦樸二” ≪書法≫ “順帝 初年에 환관들이 조정에 가득하였는데도 큰 災異가 없었던 것은 황제가 한창 어린 나이라서 하늘이 기다려주는 뜻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서는 제법 장성하였는데도 소행이 날로 더욱 법도에 어긋났으므로 하늘이 꾸짖고 경고하여 그가 알아서 깨우치기를 바란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 위에서 유모에게 封爵했다고 쓰고 아래에서 京師에 지진이 나고 京師에 땅이 갈라졌다고 썼으며, 分注(目)에 〈돈후하고〉 질박한 선비의 對策을 기록하면서도 먼저 이 하늘의 변고를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사람의 말이 명백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황제는 오히려 편안히 여겨 깨닫지 못하였으니, 저 昏愚한 황제와 더불어 말할 수 있겠는가.[順帝初年 閹宦滿朝 然無大變異者 時方幼沖 天意若有待也 至是年已浸長 所爲日益乖錯 故上天譴告 以冀其知悟爾 綱目上書封爵乳母 下書京師地震 京師地坼 而分注載樸士對策 亦首及此天變 人言非不明白 帝猶恬然不寤 彼昏不知 尙可與之言乎]” ≪發明≫
역주11 永平과 建初 : 영평은 明帝 때의 연호로 58년부터 75년까지이며, 건초는 章帝 때의 연호로 76년부터 83년까지이다.
역주12 黃門의 관직 : 黃門은 宮中과 宮名 또는 內侍(환관)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무엇을 지칭했는지 자세하지 않다.
역주13 中朝의 신하 : 中朝는 內朝와 같은 말로 중조의 신하는 앞에서 언급한 侍中과 尙書를 이르는바 이들은 황제의 측근 신하들로 중앙 최고 정책을 결정하였다. 이와 반대로 外朝는 三公과 九卿을 가리킨다. 내조와 외조의 구분은 漢 武帝 때부터 형성되었다.
역주14 六藝 : 여섯 가지 기예로 禮․樂․射․御․書․數를 가리키며, 때로 유교의 경전인 ≪詩經≫․≪書經≫․≪易經≫․≪禮經≫․≪樂經≫․≪春秋經≫을 가리키기도 한다.
역주15 靈憲 : 고대의 천문학자 張衡이 지은 천문학 도서로, 수년간의 실천과 이론 연구를 거듭하여 천지의 생성, 우주의 변화, 천지의 구조, 日月星辰의 본질과 운동 등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또한 ‘渾天說’을 발전시켜 해․달․지구의 위치에 따라 일식과 월식이 발생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하였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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